캄보디아(Cambodia) 여행
여행지 : 캄보디아 앙코르(Angkor) 지역
여 행 일 : ‘14. 3. 22(토) - 3. 26(수)
전체 여행 일정
3.22(토) : 인천공항→씨엠립공항
3.23(토) : 바래이 호수, 실크 팜, 민속촌
3.24(일) : 따프롬,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야시장
3.25(일) : 와트마이 사원, 툰래삽 호수, 쇼핑(상황버섯,목청꿀, 잡화, 보석)
3.26(일) : 씨엠립공항→인천공항
‘작은 킬링필드’인 와트마이사원과 밤의 축제장 나이트마켓
특징 : ‘킬링필드(Killing Fields)의 축소판’이라는 와트마이(Wat thmei)사원은 킬링필드의 대학살 당시 씨엠립과 앙코르유적지 인근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유골을 모아놓은 곳이다. 킬링필드란 1975에서 79년까지 4년 동안 폴 포트의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했는데, 이 부근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유골을 한곳에 모아 놓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 바로 와트마이사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의 밤이 무료하다면, 아니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한번쯤 찾아가 볼만한 곳이 나이트마켓(Night Market)이다. 2007년에 개장한 나이트마켓의 영업시간은 오후 4시부터 정오까지이고 무수한 상점과 카페, 작은 영화관, 마사지 가게 등이 있다. 옷, 조각품, 향신료, 해먹, 실크 스카프, 지갑, 아로마 오일, 초, 장신구 등이 주요 쇼핑 품목이다.

▼ 앙코르 시내,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내에서 ‘앙코르 매표소’ 방향으로 1Km쯤 가면 새로 지은 듯한 느낌의 사원을 만나게 된다. 크메르 루즈 집권 때 학살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와트마이(Wat thmei)라는 사찰이다. 당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유골을 모아 놓고 있다고 해서 ‘킬링 필드 사원(Killing Fields Temp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 킬링필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캄보디아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싶어 했던 미국의 닉슨대통령은 끝내 주변국에 까지도 폭격을 시작했다. 캄보디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분노한 캄보디아 국민들은 ‘폴 포트’라는 공산주의자를 내세워 ‘크메르 루즈’라는 이름으로 단결했다. 이에 친미(親美) 노선을 견지했던 당시의 정부군은 공산주의를 외치는 국민과 크메르 루즈군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것이 ‘1차 킬링필드’로 이때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단다.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대통령이 물러나고 뒤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폭격은 중단된다. 뒤이어 크메르 루즈군이 수도인 프놈펜에 입성하자 시민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정부 역시 미국에 속았다며 그들을 환영했다. 당시만 해도 모두의 마음속에는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학살의 시작이었다.
‘2차 킬링필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인에 대한 증오가 컸었던 크메르 루즈는 가장 먼저 외국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을 죽였다. 다음 차례는 지식인들 이었다. 크레르 루즈 대부분이 못 배우고 가난한 계층이었기에 지식인과 부유층에 대한 분노가 컸던 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외국어가 들어간 티셔츠만 입고 있어도 이를 이유로 죽였다고 한다. 의사와 공무원, 교사들도 학살 1순위 이었다.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죽기도 했다. 안경을 쓴 사람을 지식인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살 그룹인 ‘부르주아(bourgeois)’를 골라내는 방법은 더 기가 찼다. 손에 굳은살이 없거나, 피부가 희고 고울 경우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시계를 차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학살 대상자는 어른들 뿐만이 아니었다. 임산부와 어린이 심지어는 갓난아이까지 포함되었다니 얼마나 끔찍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큼 학살이 진행되었다 싶으니 이번에는 강제노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산주의자였던 폴 포트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원시적인 농경주의(農耕主義)였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모든 국민을 농경지로 강제이주 시킨 뒤 노역(勞役)을 강요했다. 이 강제이주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일을 하는 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죽어나갔다. 이렇게 질병과 기아(飢餓), 그리고 과로 등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또 다시 80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5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200만 명이 죽어나간 것이다. 이는 캄보이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단다.
어느 글에선가 캄보디아의 문맹률이 ‘60%'에 이른다고 적혀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지식인들을 색출해가며 학살했던 ’킬링필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당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공부하지 마라‘이었다고 하니 그런 결과가 나올 만 하지 않겠는가. 나라의 장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기는 캄보디아로 보아서는 잃어버린 세월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람의 잘못된 지도자가 만든 캄보디아의 가난한 현실과 결코 밝지만은 않은 미래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 사원 안으로 들면 수많은 납골탑들이 보인다. 누구를 모셨는지는 몰라도 저 정도로 반듯하게 지어졌다면 그런대로 잘사는 후손들을 두었으리라.


▼ 사원 안에는 해골을 모아 놓은 탑(塔)이 있다. ‘킬링필드’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遺骨)을 모아 놓은 것이란다. 크메르 루즈 정권이 무너진 후 씨엠립 근처에서도 수많은 유골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사원에서 이를 한데로 모아 탑을 짓고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해골만 보아도 소름이 돋는 법인데 수백 개의 유골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을 보니 그 ‘소름’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허술해져버린다. 그렇다. 그 어떤 말로도 이렇게 끔찍한 상황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이곳에다 유골탑을 세운 이유는 사원을 짓기 위해 터파기 공사를 하다가 이곳에서 수많은 유골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란다.

▼ 자기가 죽어야 하는 이유라도 알고 죽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왜 죽어야 하는 지도 모른 채로 죽어갔을 것이다. 거기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땅속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뼈도 제대로 추리지 못했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고 말이다. 비록 우리나라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넋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없어 조용히 묵념(黙念)을 드려본다. 넋이라도 평안히 잘 가시라고.

▼ 납골탑에는 꽤나 많은 이름들이 적혀있고, 이름 오른편에는 숫자들이 적혀 있다. 이마 이 유골탑과 관련된 일에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내 기부금의 단위인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도 보인다.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가 낸 기부금이 많고 적음은 둘째 치고 좋은 일에 우리나라 사람이 참여했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 납골탑 옆의 안내판에는 수많은 사진들을 붙여 놓았다. 크메르 루즈 정권 당시에 촬영된 사진들이란다.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인물사진들을 위시해서, 여러 종류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학살당하고 있는 장면들도 보인다. 끔찍하다.



▼ 사원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마음속에 담아둘만한 유물들이 없는 것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동남아 사찰의 특징대로 화려함만은 나름대로 볼만 했다.


▼ 이곳도 역시 망고나무가 정원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추나무만치나 흔한 것이 망고나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의 수세미를 쏙 빼다 닮은 열매가 매달린 넝쿨도 보인다. 야채의 한 종류라는데 먹어보지 않아서 맛을 글쎄다.


▼ 캄보디아에 왔다면 저녁시간을 내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다. 밤에만 오픈한다는 나이트 마겟(Night Market)이다. 오래 전부터 있던 시장이라고 해서 올드마켓(old market)이라고도 불린단다. 앙코르 나이트 마켓은 캄보디아어로 ‘프싸 리어뜨라이 앙코르’이다. 2007년에 처음 생겼으며 캄보디아 최초의 야시장이다. 앙코르와트 사원 구경에 바쁜 관광객들에게 밤에 여유롭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한다. 나이트 마켓에는 초가지붕과 대나무로 만든 대략 240개의 상점이 있다.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주로 캄보디아의 전통 수공예품, 옷, 실크, 보석, 그림과 여러 기념품을 팔고 있다. 야시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주로 시엠립 주변의 외진 시골마을에서 캄보디아인들의 수공업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몇 가지 사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사다줘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때에는 꼭 흥정을 해야 한단다. 옛날 옛적의 우리네 시장과 마찬가지로 물건가격이 대부분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로는 처음 부르는 가격에서 일단 절반으로 깎아보라고 했다. 물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원하는 가격을 부르고 가는 척을 하면 대부분 다시 불러서 싼 가격에 주곤 한다는 것이다.

▼ 버스는 우릴 큰길가에다 내려놓는다. 나이트마켓은 차가 들어 올 수 없는 거리란다.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준 가이드는 모이는 장소만 알려주고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이젠 우리 나름대로 눈 구경을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장의 범위가 그다지 넓지를 않아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거기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띠기 때문에 언어소통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상인들을 붙잡고 말을 건네 보면 된다. 비록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번화가까진 잠시 더 걸어야 한다. 어둡던 거리가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휘황찬란해졌다. 그리고 나타난 곳이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펍 스트리트(pub street)이다. 한마디로 외국인이 가득한 유러피안(European)의 거리이다. 거리에는 노천카페와 바와 기념품점으로 가득 차 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고 구경거리가 지천인 문화의 거리이다.

▼ 거리는 발 딛을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노천카페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술을 좋아하는 나 또한 구석자리라도 잡고 싶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단점이다. 하긴 개인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가이드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개인적으로 호텔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나에겐 그럴만한 자유가 없다. 집사람이 그런 걸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말을 거슬릴 배짱이 나에게 없음은 물론이다. 그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하고 사람들을 헤집고 거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얼마쯤 걸었을까 거리가 온통 음악으로 들썩이고 있다. 누군가가 높은 곳에 올라가 춤을 추고 다른 이들은 손뼉을 치며 몸을 흔들어 대고 있다. 이래서 이곳을 유러피안의 거리라고 부르나 보다.



▼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먹거리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시장을 둘러보면 각종 현지 간식거리들을 파는 곳들이 보인다. 이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길거리 좌판(坐板)이었다. 개구리나 메뚜기 등의 곤충들은 물론이고 뱀과 거미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종류가 다양했다. 징그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바라보는 것만도 힘이 드는데 함께 간 형우군은 맛있게도 잘만 먹는다. 그리고 저녁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먹겠다고 싸달라고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호텔 술자리에서는 그 친구 곁에 앉지 말아야겠다.

▼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잠깐 과일가게에 들렀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냥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에는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소주가 아직까지 2병이나 더 남아있고, 통조림 등의 안주 또한 넉넉하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과일만 몇 가지 더 산다면 훌륭한 저녁파티가 이루어질 게 분명하다. 그리고 우린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보낼 수 있었다. 비록 다음날 아침에 쓰라린 속을 부여안고 식당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 캄보디아에 와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 중의 하나가 참으로 과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 과일들을 다 모아 놓은 곳이 과일가게이니 또 다시 부러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흔하다는 망고와 바나나, 파파야, 코코넛, 파인애플 등은 이미 눈에 익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생산되는 수박과 자몽, 단감 등을 단번에 알아보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림에서만 보았던 짹프르츠와 망고스틴, 두리안, 리치 등은 이름을 물어보고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듣도 보도 못했던 미은이나 마쁘라, 끌렁껑, 뜨넉, 스칸니아, 따읍, 크로잇뽀삿, 스와이짠띠 등은 다시 본다고 해도 기억을 못해낼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모두 다 맛보고 싶었지만 우린 눈에 익은 과일들 몇 가지만 주워들 수밖에 없었다. 나이 육십을 넘기면서 모험보다는 안정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고 보수라고 해야 하나?

'해외여행(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바이 여행 ② : 최고를 자랑하는 ‘버즈 알 아랍’,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 몰’ (0) | 2016.10.10 |
---|---|
두바이 여행 ① : 옛스럼이 그대로 묻어나는 ‘바스타키야’, ’올드 수크‘ (0) | 2016.10.06 |
캄보디아 앙코르 여행 ⑦ : 바다를 연상시키는 경이로운 호수들, 바래이호수와 톤레삽호수 (0) | 2015.08.28 |
캄보디아 앙코르 여행 ⑥ : 실크 제조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실크 팜(Silk Farm) (0) | 2015.08.27 |
캄보디아 앙코르 여행 ⑤ : 다양한 부족들의 문화와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캄보디아 국립민속촌 (0) | 2015.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