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두바이,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

 

여행일 : ‘16. 3. 12() - 20()

일 정 :

3.13() : 두바이

3.14(월) : 스위스(루체른)

3.15(화)-19() : 이탈리아(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베니스, 볼로냐)

 

여행 첫날 : 두바이(Dubai)

 

두바이(Dubai)의 특징, 두바이(아랍어: دبي)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의 최대 도시이자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의 수도이다. 아부다비와 함께 UAE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으로 UAE에서 가장 많은 인구(2,106,177)를 갖고 있으며 면적은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4,114)이다. 두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75년이며 1799년 최초로 도시로 언급되었다. 1833셰이크 막툼 빈 버티 알 막툼이 바니야스 부족에서 800명을 이끌고 두바이를 공식적으로 세웠고,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인 세컨드 사우디 스테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바니야스 부족의 알 파사씨족 역시 두바이 크리크에서 막툼을 따라 떠났다. 1892년에는 영국이 두바이를 지켜준다는 명분하에 독점 조약을 체결했고 1971UAE에 가입할 때까지 영국의 통제 하에 있었다. 두바이는 지리학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중요한 무역 허브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미 중동에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오늘날 두바이는 중동과 페르시아 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화물과 여객 교통의 중심지이다. 두바이의 경제는 석유 산업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현재는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혁신적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더 월드, 팜 아일랜드, 워터프런트와 같은 사람이 만든 인공섬, 초고층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가 있다.

 

 

 

두바이 국제공항(Dubai International Airport)에 내린다. 스위스로 가는 다른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이다. 스위스까지 가는 직항노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으로 가격을 낮추어 출시되는 패키지상품으로서는 이 방법(환승)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사는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환승에 소요되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두바이 투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발상의 전환일 것이다. 참고로 두바이국제공항은 1960년 개항했으며 2008년 에미레이트항공 전용인 제3터미널을 개관함으로써 연간 여객 처리 능력이 7,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편의시설로 비즈니스 센터와 헬스클럽, 라운지, 의료 센터, 종교관, 어린이 공간 및 육아 휴게실 등이 있다. 활주로는 1개로 4,000×46m 크기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빠져나오니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수인사를 건넨 후 첫 번째 방문지인 왕궁으로 향한다. 참 하나 빼먹을 뻔 했다. 우리가 타고 온 에미리트항공에서는 환승시간에 먹을 수 있는 식사쿠폰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비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샌드위치와 커피 수준)되어 있긴 하지만 다른 비행사에 비해 한결 돋보이는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셰이크 팔래스,’ 일명 왕들의 궁전이다. 안내판에는 통치자의 궁(Za'abeel palace)’이라고 적혀있으니 참조한다. 이곳은 초대 두바이 국왕인 라시드(1958-1990)와 현재 왕인 모하메드, 왕세자인 차남 함단왕자의 궁전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중 현재의 통치자가 살고 있는 셰이크 모하메드 궁전만이 유일하게 입구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그것도 궁전 앞의 정원과 숲을 거닐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안뜰까지는 개방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아직까지 날이 밝지 않은 탓에 불빛만 아스라이 보일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주어진 시간이 덜 되었는데도 발길을 돌리는 이유이다.

 

 

 

 

아무튼 두바이 국왕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현명함이 오늘날의 두바이를 만들었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아랍에미리트연방(이하 UAE)은 산유량이 세계 5위권에 드는 산유부국(産油富國)이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의 95%는 아부다비(أبو ظبي)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1966년 유전이 발견되었을 당시부터 두바이는 석유의 부존량이 바닥을 드러내게 될 머지않은 미래에 대비해야만 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다행이도 두바이 국왕은 현명한 분이었단다. 그는 석유로 벌어들인 막대한 국부(國富)를 당장의 복지보다는 장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두바이를 중동무역의 허브(hub)로 재편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있지만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든든하게 경제를 이끌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부동산 개발 위주의 개발과 성장은 잠시 주춤했으나, 이후 전열을 가다듬어 현재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서고 있단다.

 

 

 

 

왕궁투어를 마치고 바스타키야(Bastakiya)’로 이동한다. ‘알 바스타키아(아랍어: حي الفهيدي التاريخي)’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부르두바이 지역의 전통 건물 유적지이다. 지역의 넓이는 약 31,000m², 19세기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되고 있던 60여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부는 문화 시설과 호텔, 카페와 미술관 등으로 사용 공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민속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중의 하나인 바스타키야는 아랍 문명의 상징인 모스크부터,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다양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기원 전 부터 사람이 살았다하나 오늘날의 모습이 만들어 진 것은 1900년대 초부터라고 한다. 바로 강가에 인접된 지역으로 교통도 좋아 페르시아 상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이란 남부의 바스탁(bastak)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이곳을 바스타키아(bastakia)라 부르게 됐단다.

 

 

 

 

두바이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화려한 스카이라인(sky line)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지어진 마천루들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릴 수 없을 만큼 각자의 독특한 개성들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스타키야 지역의 전통가옥들도 빠뜨려서는 결코 안 되는 볼거리가 아닐까 싶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자 골목에 촘촘히 모여서 지어진 집들과 단정한 골목, 그리고 전혀 외부에 장식을 하지 않은 두바이 전통가옥의 모습들에서 사막과 어우러져 살던 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부유층이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거칠거칠한 벽을 두른 세련된 주택은 바스타키야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바스타키야 지역을 걸어 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두바이의 과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특이하게 생긴 대문이 눈에 띈다. 짝으로 된 대문의 왼쪽 편에 아치(arch)형의 작은 문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는 안에서 살고 있는 여주인을 위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이슬람 여성들은 외출할 때 히잡(hijab)이나 부르카(burka) 등으로 신체를 가린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도 집안에서만큼은 자유스러운 복장으로 돌아간단다. 그런데 행여 외간남자라도 불쑥 들어온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저런 쪽문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서둘러야 하기는 매한가지이겠지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만이라도 마련하려는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

 

 

골목길을 걷다보면 건물의 벽들에 커다란 나무 막대기가 꽂혀있는 것이 보인다. 저 나무에 긴 천을 걸어두어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고, 지나가는 바람을 모아주는 기능도 했다고 들었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하여간 그런 막대들에 관심이 있다면 바람의 탑으로 가볼 일이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건물들은 그늘이 진 시원한 까페, 아트 갤러리 그리고 소형 상점 등으로 개조되어 있다. 덕분에 집안으로 들어가 전시된 그림과 함께 두바이 사람들의 가옥구조까지 덤으로 보게 된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면 한두 시간 정도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지나가 버린다.

 

 

 

 

 

 

마을 안 광장에 무대가 차려지고 있는 걸로 보아 가끔은 문화공연도 열리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이다. 영화배우 최강희도 이곳에서 화보를 찍었었단다. 집사람이라고 해서 포즈를 못 잡을 이유가 없다. 내 눈에는 최강희보다 몇 배나 더 예쁘니까 말이다.

 

 

 

 

살구빛 담장이 이어진 집들 사이에 삐죽하게 생긴 사각형의 탑()이 보인다. ‘윈드 타워(wind tower), 바람 탑(malqaf)’이라고 불리는 천연 에어컨(air conditioner)’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무더운 날씨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 바로 바람의 탑이다.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두바이 사람들은 지혜를 발휘해 뜨거운 태양과 싸웠다. 사막을 가로질러 온 섭씨 50도가 넘는 뜨거운 열기는 바람의 탑 윗부분에 걸려 탑 아래로 꺾어져 내려오고 그 아래 도랑에서 차가운 땅과 물을 만난다. 그렇게 식은 공기는 다시 위로 올라가 두꺼운 세라믹으로 뒤덮인 건물 내부로 들어가 시원한 바람을 집안 곳곳에 전해준다. 이런 게 바로 두바이가 갖고 있는 진정한 볼거리일 것이다.

 

 

이슬람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에 젖어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쫓아 여행자들이 집을 나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아까 내리면서 보지 못했던 건물이 하나 보인다. 아랍풍의 커피라도 한 잔 마셔볼까 해서 다가가 본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어선지 문을 열기 전이었다.

 

 

민속촌을 둘러본 후에는 두바이 크릭(Dubai Creek)으로 이동한다. 호수처럼 보이는 크릭을 따라 이동하는 아브라(Abra : 모터가 달린 수상택시)를 타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다리를 이용해 재래시장으로 갈 수도 있다. 크릭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4개나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찾아온 두바이(Dubai)인데 아브라를 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두바이는 걸프만으로 향하는 작은 강(운하라고도 함)인 크릭(Creek)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인 데이라(Deira)와 신시가지인 두바이(Dubai)로 나뉜다.

 

 

두바이 크릭(Dubai Creek)’은 두바이 중심을 흐르는 운하(運河)이다. 두바이가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두바이 크릭이기 때문에 혹자는 이 운하를 일러 신의 선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크릭의 물은 담수(潭水)가 아니라 바닷물이다. 주변에 소금기가 말라붙어 하얗게 된 돌들을 자주 눈에 띄는 이유이다. 그리고 배를 따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도 눈에 띈다.

 

 

 

 

두바이 전통 목선인 아브라(Abra)를 타고 가면서 두바이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통적인 두바이 건물과 현대의 고층빌딩들이 공존하며 조화롭게 늘어서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현대와 과거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크릭의 주요 운송수단은 수상택시인 아브라이다. 하지만 커다란 목선(木船)들도 운행된다고 한다. 그런 배들은 대부분 에어컨시설까지 갖추고 있단다. 배가 두바이의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중심축이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이 도시의 오랜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는 데이라(Deira)’ 지역이다. 이 지역은 꼬불꼬불한 시장들이 밀집돼 아랍의 옛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라비아인들은 무엇이든 가져다 놓고 파는 시장(Market)수크(souq)’라고 부른다. 바닷길을 따라 실크로드에서 건너온 온갖 물건이 이 지역에 모이면서 수크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황금은 물론 포목, 향료 등이 거래되고 번성했다. 사람들은 이를 올드 수크(Old souk)’라고 부른다. ‘올드 수크에는 금시장(Dubai Gold Souk)’향신료시장(Spice Souk)’ , 여러 수크들이 모여 있다.

 

 

이른 시간인지라 향신료시장으로 향한다. 금시장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금시장이라기에 과연 어느 정도인지가 못내 궁금했지만 어쩌겠는가. 구매를 원할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라고 다시 안내해 주겠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지만 아이쇼핑이 주목적인 나에게는 하나 마나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골드 수크이다. 이탈리아나 아랍은 물론 인디언들이 세공한 것까지 다양한 금이 모여서 거대한 황금시장이 됐는데, 전 세계 금시장에서 미국 다음으로 크단다.

 

 

상가에 들어서자마자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된다. ‘런닝 맨 인 두바이편을 이곳에서 찍었단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가 궁금해진다. 내가 보기에는 특별한 게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들이 찾았던 곳은 이곳이 아니라 수크 메디낫 주메이라(Souk Madinat Jumeirah)’였던 것이다. 같은 전통시장이지만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과는 달리 수크 메디낫 주메이라는 옛날의 전통시장을 현대식 건물에 재현해 놓은 곳이다. 당연히 수크 메디낫 주메이라는 화려한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다. 금자판기 등 두바이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꾸며 놓은 것이다. 그렇다. 그래야만 얘기가 된다. 하다못해 그 정도는 되어야 화면발이 받지 않겠는가.

 

 

 

 

향신료시장은 우리나라의 시장을 닮았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재래시장이다. 현대인들에게는 흑백사진으로 변해버린 낯선 풍경이지만, 이런 옛날 느낌을 찾아 여행자들은 모여든다.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문득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던 판소리 명창 김동원선생의 소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다 한 마디를 덧붙여본다. ‘옛 것도 좋은 것이여

 

 

향신료 외에도 그릇 등 여러 가지 품목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은세공품이 아닐까 싶다. 근처에 있다는 금시장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상점들의 대부분은 향신료를 판매하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향신료의 강한 냄새가 코끝을 알싸하게 할 정도이다. 하긴 그래서 향신료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인도의 커리, 말린 레몬, 비스커스, 계피, 칠리, 생강, 후추, 커민에 무게당 가격이 금값과 동일하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샤프란까지 없는 것이 없다고 한다.

 

 

상점 옆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층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졌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물류창고일지도 모르겠다.

 

 

올드 수크옆은 주택가이다. 잠깐 둘러볼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는다.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니 아침나절인데도 불구하고 무더위가 괴롭힌다. 마침 길가에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그늘막이라도 되어줄까 해서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깜짝 놀라버린다. 에어컨 시설이 되어 있어 시원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두바이의 기후는 더운 사막 기후이다. 평균 최고 온도가 42°C(108 °F)나 될 정도이니 길가에 서서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에어컨시설을 갖춘 정류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