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Cambodia) 여행

 

여행지 : 캄보디아 앙코르(Angkor) 지역

여 행 일 : ‘14. 3. 22() - 3. 26()

 

전체 여행 일정

3.22() : 인천공항씨엠립공항

3.23() : 바래이 호수, 실크 팜, 민속촌

3.24() : 따프롬,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야시장

3.25() : 와트마이 사원, 툰래삽 호수, 쇼핑(상황버섯,목청꿀, 잡화, 보석)

3.26() : 씨엠립공항인천공항

 

돌 조각의 진수를 보여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 와트(Angkor Wat)

 

특징 : 서기 802년부터 1430년경까지 크메르 왕국의 중심이었던 거대한 사원으로 앙코르(Angko)’는 크메르어로 도시 또는 수도’, 그리고 와트(Wat)’는 태국어로 사원'을 뜻한다. 이는 15세기 태국 아윳디야(Ayudhya)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태국의 소승불교와 함께 태국어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인공저수지 위에 뜬 섬으로 좌우대칭형 직사각형 형태를 취하며 총면적이 210ha에 이른다. 현재의 건축물은 서기 1113~1150년경 사이에 수리야바르만 2(1113-1150)가 세웠는데, 거대한 힌두교의 비슈누 신을 봉안해 두고 자신이 곧 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후에는 자신의 분묘(墳墓)로 삼았다. 앙코르와트는 세계 최대의 석조(石造) 사원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pyramid)나 중국의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건축물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8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모어가 오치를 탐험하다가 밀림 속에서 이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꼭꼭 숨어있었던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이 사원의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앙코르와트는 우주의 축소판이란다.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진 중앙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Sumeru, 須彌山,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며 둘러싼 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앙코르와트가 지니는 건축적 의미는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天上界), 2층은 인간계(人間界), 그리고 1층은 축생계(畜生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는 중앙에 있는 신전(神殿)을 세 겹의 회랑(回廊)이 감싸고 있으며 바깥쪽에는 주벽(周壁)을 만들고 그 외부에 저수지(해자,垓字)를 배치했다. 또 사원 안에 40m의 작은 연못을 남쪽과 북쪽에 한 개씩 만들고, 주벽을 4.5m의 높이로 쌓아올려 사원을 속세와 구분 짓는 공간 개념을 반영했다. 중앙사원과 4개의 망루(望樓), 그리고 첨탑들은 지상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성스러운 산인 메루(Meru)를 나타내고, 성벽 밖의 해자는 대양, 그리고 중앙의 신전은 신왕(神王)의 권위를 상징한다.

 

 

 

 

 

 

앙코르와트는 인공호수(人工湖水)가 사원을 둘러싸고 있다. 깊이가 대략 3m정도 된다니까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해자의 폭은 약 260, 길이는 약 5.5에 이른다고 한다. 해자 위의 다리를 건너면서 투어가 시작된다. 해자의 안쪽 주벽(周壁)을 경계로 신의 세계와 인간세계로 나뉜다니 지금 난 신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해자(垓字)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앙코르와트, 비록 사진에는 전체 모습이 모두 잡히지 않지만 사원(寺院) 전체가 물에 포위되어 있는 모양새이다.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진입로를 걷다보면 바닥 중앙선을 경계로 양쪽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곳을 보수했던 나라와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란다.

 

 

 

해자를 건너면 탑문이 기다린다. 서쪽으로 난 문으로써 정문이라고 보면 된다. 앙코르와트는 사면(四面)에 출입문이 있다고 한다. 출입문은 주벽의 동, , 북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정문인 서쪽에는 다섯 개나 된다. 서쪽 정문의 출입구 가운데 두 개는 코끼리 부대와 기마 부대인 주력군이 출입할 수 있도록 군사용으로 활용되었으며, 나머지 세 개는 바라문을 비롯한 출입자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탑문에 부조(浮彫)되어 있는 압사라, 압사라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옆에 새겨진 화려한 문양도 빼어나다.

 

 

 

 

 

탑문(塔門)을 지나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앙코르와트의 본 건물이 나타난다. 우리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 건물이다. 뾰쪽한 세 개의 거대한 탑()이 솟아있다. 탑의 모양은 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연꽃 모양 또는 원뿔형으로 생겼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두 개가 더 있다. 이는 잠시 후에 알게 된다. 옆에서 볼 때는 3 기단(基壇)’의 모서리에 1개씩, 그리고 가운데에 가장 높은 탑 1개가 서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앙코르와트는 남북(南北)의 길이 1.3km에 동서(東西)1.5km에 이를 만큼 광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건물은 개방형으로 건축되었으며 좌우 대칭미(對稱美)와 뛰어난 시각성(視覺性)을 자랑한다. 출입구가 서쪽을 향해 있고 건축의 중심축이 서-동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신전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탑문(搭文)

 

 

 

탑문에서 신전까지는 다리모양으로 생긴 진입로가 놓여있지만 어느 정도에서 왼편으로 내려선다. 앙코르와트의 장관이 제대로 나타난다는 사진촬영 포인트를 찾아서이다. 앙코르와트가 연못의 수면 위로 투영(投影)되는데, 다섯 개의 첨탑까지 온전하게 나타나는 것이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라는 것이다.

 

 

 

왼편으로 내려서면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도서관 역할을 하던 장서각(藏書閣)이란다. 신전(神殿)으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각각 하나씩 대칭(對稱)으로 세웠다니 우리는 지금 왼편의 장서각 앞에 서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장서각은 좀 특이하다. 보통 앙코르와트의 장서각(예로 들면 반띠아이 쓰리, Banteay Srei)들은 실제로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실내의 벽면에 부조(浮彫)를 새겨 건물 자체를 아예 경전(經典)으로 만들어 놓았다.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티베트불교의 마니챠(이것을 한 번 돌리면 경전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함)나 우리 사찰의 외벽을 장식하는 탱화불화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벽면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물론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건물의 배치로 보아 장서각으로 분류했을 뿐이란다.

 

 

 

장서각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연못이 나온다. 이 또한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하나씩 대칭으로 배치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뿐이 보이지 않는다. 건기(乾期)라서 물이 마른 것이 원인인데, 다행히 왼편은 인공적(人工的)으로나마 물을 채워 넣었단다. 그러나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연못의 물 위로 나타나는 앙코르와트의 건물이 또렷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이다. 연못의 물 상태가 좋지 않아 수면이 잔잔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사진촬영 포인트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찾아온 시기가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앙코르와트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다섯 개의 탑()이 보인다.

 

 

 

측면에서 앙코르와트의 전모(全貌)를 보았다면 이젠 신전(神殿)으로 들 차례이다. 신전으로 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긴 회랑(回廊)이다. 앙코르 와트는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중앙 탑을 안에 두고 세 겹의 회랑(回廊)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중에서 가장 바깥에 있는 회랑이 가장 뛰어난 시각성(視覺性)과 회화성(繪畫性)을 자랑한다. 회랑의 벽면에는 크메르인의 신화, 왕의 행군도, 천국과 지옥 이야기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았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이층의 회랑을 감고 도는 430미터의 벽에는, 1500명의 무희가 압사라(Apsaras) 춤을 추고 있다.

 

 

 

 

 

회랑(回廊) 부조(浮彫)의 주요 장면은 대략 열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서쪽 정면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쿠루평원의 전투, 시바신(남서쪽 모서리), 수리야바르만왕의 행진(남쪽벽 서측면), 천국과 지옥(남쪽벽 동측면), 유유바다 젓기(乳海攪拌, 동쪽벽 남측면), 비슈누신과 아수라(동쪽벽 북측면), 크리슈나와 아수라인 바나의 전투(북쪽벽 동측면), 21명의 신과 21명읭 아수라(북쪽벽 남측면), 비슈누신(동서쪽 모서리), 랑카의 전투(서쪽벽 북측면) 등이 새겨져 있단다.

 

 

 

 

 

인간세상을 의미하는 2층의 회랑(回廊)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 십 개의 기둥이 서 있는 다주실(多柱室) 건물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곳이 십자회랑(十字回廊)이다. 두 회랑 사이에 황금으로 덧칠한 기둥이 십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십자회랑이라 부른다. 앙코르와트에서 유일하게 넓은 공간이다. 2층의 회랑에는 천상의 무희 압사라(Apsaras)가 끝없이 새겨져 있다. 그 숫자가 무려 1500명에 이르고 길이도 430미터나 된단다. 머리카락부터 보석 장신구까지 섬세하면서도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더 특이한 것은 같은 모양의 압사라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장서각, 이곳 앙코르와트에는 장서각이 6개가 있단다. 그중 아까 신전으로 들어오면서 뜰에서 보았던 두 곳은 일반 국민들을 위한 시설이고, 이곳은 승려용, 그리고 이층에 있는 것은 왕족들이 사용했단다.

 

 

 

 

 

 

 

회랑을 돌다보면 다양한 불상(佛像)들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처음에는 힌두교식으로 지어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일 것이다. 실제로 불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신자들도 많이 보인다.

 

 

 

 

 

2층의 회랑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건축으로 표현한 곳이기 때문에 회랑 내부가 어둡다. 우선 서쪽에는 하나의 창문만 있고 남쪽 75m 길이에는 9개의 창문이 나있다. 반면 동쪽에는 26(북측 14, 남측 12), 북쪽은 32개의 창문이 나있다. 이들 창문은 달의 주기를 의미한다.

 

 

 

 

 

밀림 사이로 군데군데 위치한 앙코르 사원들을 내려다보인다.아침이면 이 부근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중앙탑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日出)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주인공이란다. 하여간 이곳에서는 앙코르와트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경이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훼손된 부분까지도 말이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든 난 갑자기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위에서 본 앙코르와트는 마치 정글의 한가운데에 있는 요새(要塞)와 같은 느낌이다. 아니 정글에 포위된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하긴 그래서 20세기, 그것도 말()에 가까워져서야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이층의 인간계에서 바라본 삼층은 신의 영역이다. 네 곳 귀퉁이에 각각 탑이 세워져 있고, 중앙에 또 다른 탑이 하나 더 있다.

 

 

 

 

앙코르와트는 미물계인 1층과 인간계인 2, 그리고 3, 즉 신들의 영역인 천상계로 이루어졌다. 그중 중앙탑이 있는 3층은 왕과 승려들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그 경사(傾斜)가 엄청나게 가파르다. 70도 정도로 가파른 것만 해도 아찔한데 계단의 폭 또한 장난이 아니다. 어른들이 디딜 경우 발의 앞꿈치 정도만 겨우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것이다. 신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인간들이 두발로 꼿꼿이 서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이 계단을 오르려면 허리를 구부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해야 겨우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로운 것이다.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3층에 오를 때에는 반바지 차림이나 모자를 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계단의 입구에서 제지를 당하니 미리 조심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 모자는 벗어서 손에 들고 가면 된다.

 

 

 

 

삼층으로 오르는 기존의 계단 옆에다 여행객들을 위해 새로운 계단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는 유적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점도 감안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오르지는 말자. 3층의 중앙신전은 당시에 왕과 최고의 사제들만이 출입하도록 제한했을 만큼 성스러운 곳이었다. 신들이 거주하는 우주의 중심 메루산이며, 비슈누신이 강림하여 왕과 신이 일체화하는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올라가보자는 얘기이다.

 

 

 

 

 

중앙신전은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마다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여 국민들에게 신왕사상(神王思想)을 주입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만다라(Mandala : , (), 차륜 등 완전무결과 무수한 원심을 가진 원을 상징) 세계를 이루어 나가려 했다. 만다라는 중앙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세계를 구성해 간다. 최고의 신이 사방과 주변의 신을 창조하여 만다라를 채워간다. 즉 앙코르와트는 바로 우주의 중심 메루(Meru 또는 Sumeru, 須彌山)산을 중심으로 우주적인 만다라를 이루고 바깥을 향해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는 형식의 비슈누 사원이다.

 

 

 

 

삼층의 회랑에도 다양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삼층의 중앙탑까지 다 둘러봤다면 이젠 되돌아 나갈 차례이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가 쉽지만은 않을 터이니 대충 지나쳤던 곳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둘러볼 일이다. 그만큼 이곳 앙코르와트는 대충 보아 넘길 만큼 허술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신전을 빠져나오는 길에 고개를 돌려보면 다시 한 번 앙코르 와트가 나타난다, 앙코르와트는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사원(寺院)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앙코르 와트가 신()들을 위한 사원인지, ()의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인지 건축용도를 둘러싸고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조르쥬 세데스(Geore Cœdès1886 1969)’는 비뉴수신에게 바쳐진 신전이었으나 수리야바르만왕의 사후에는 왕의 묘가()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캄보디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도 는 같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앙코르 유적 사원의 대부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해, 앙코르 와트만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묘지였을 거라고 주장한다.

 

 

 

되돌아 나올 때는 아까 들어갔던 북쪽이 아닌 남쪽을 따른다. 숲속으로 난 길이다. 숲속을 걷다가 문든 떠오르는 생각, 아마 호젓한 숲길이 여유로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흔히 캄보디아에 간다.’는 말보다는 앙코르와트에 간다.’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하다. 무슨 이유일까? 캄보디아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어감이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던 게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킬링 필드(Killing Fields)’에서의 그 끔찍했던 장면들이 쉽게 지워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앙코르와트라는 건축물 하나로 부정적인 인상을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앙코르와트가 그만큼 뛰어난 건축물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해자를 건너면 우린 또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인간들이 내품는 열기 속으로 빠져든다. 기념품이나 과일, 음료수 등을 팔고 있는 허접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 우리네 이웃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