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태국 여행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알카자쇼)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둘째 날 : 산호섬, 꼬란(Koh Larn)

 

특징 : 파타야(Pattaya) : 동남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파타야는 다양한 해양 스포츠와 화끈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방콕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패키지 여행사들은 하나같이 방콕과 연계한 상품을 판다. 이때 꼭 끼워 넣는 곳이 산호섬인 꼬란이다. 해양스포츠는 물론 여유로운 선탠과 바다낚시까지 즐길 수 있어 태국 남부의 여느 휴양지가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파타야는 원래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1년 베트남전쟁의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발전했다. 지금은 국제적인 휴양도시로 변해있다. 그래선지 파타야 해변에는 고급호텔과 방갈로, 레스토랑 등이 널려있다시피 했다. 밤에는 화려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꼬란(Kho Larn) : ’산호섬으로 더 익숙한 꼬란(Kho Larn)은 파타야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양 스포츠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바나나 보트제트 스키‘, ’패러세일링(오는 도중)‘, ’시 워킹등을 체험해볼 수 있는데, 해변에 사물함과 샤워 시설, 비치 의자,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개별적으로 이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우리 부부처럼 체험 참가가 번거롭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물놀이로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이다. 바닷물이 하도 깨끗해 물을 조금 마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하나여행사를 따라간 우리는 여행사의 전용공간을 이용했다. 여행사에서 열대 과일과 치맥(치킨&맥주)까지 제공해주어 편하고 즐겁게 놀다 올 수 있었다. 이런 호사로움이 있어 패키지여행을 따라나서는가 보다.

 

 

 

꼬란(Kho Larn)의 투어는 파타야 비치(Pattaya Beach)’에서 시작된다. 섬으로 들어가는 보트들이 이곳 모래사장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타야 비치는 해양 관광도시 파타야의 대표적인 해변으로 해안선을 따라 3km가량 백사장이 이어져 있다. 해변 주변으로 고급 호텔들과 쇼핑몰 등이 위치해있고 워킹 스트리트 등 도심 번화가가 가까워 파타야를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필수로 들르는 곳이다. ! 개별적으로 온 여행객들은 워킹스트리트를 지나 발하이 선착장(Bali Hai Pier)’까지 가야 한단다.

 

 

 

 

파타야는 반세기 전에 조성된 계획도시. 덕분에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파타야 비치로드파타야 2로드라는 큰 도로 2개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 작은 골목(Soi)들이 바둑판처럼 설계되어 있다. 두 도로 사이에는 호텔과 나이트클럽들이 북적거린다. 특히 남 파타야 로드 주변은 유흥거리로 밤이 되면 환락가로 변해서 세계 각국의 유흥장을 모방한 술집은 물론 자질구레한 옷가지나 물건들을 파는 야시장이 성황을 이룬단다.

 

 

해변에는 현대적 감각의 조형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뭘 상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양새는 하트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조형물을 감싸고 있는 널찍한 광장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면 제격이겠다.

 

 

파타야 해변은 동양의 하와이태국의 리비에라라 불리기도 한다. 하늘을 누비는 파라슈트나 바다 위를 날듯이 달려가는 윈드서핑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언젠가 이곳 파타야의 물이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나 보다. 오래전부터 관광지였던 탓에 수질(水質)이 많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는 또 해양 정화사업으로 수질이 점점 회복되어 가는 중이라고도 했다. 참고로 이곳 파타야 비치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질녘이라고 한다. 이때 해변 근처 카페나 호텔 레스토랑의 테라스와 창가 테이블 좌석은 금방 만석이 된단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와 백사장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에는 엄청나게 많은 모터보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은 편도 30바트(Baht: 한화 약35)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인천공항에서 인연을 맺은 패키지 여행객들을 한꺼번에 태운 보트는 바다를 가르며 달려 나간다. 이따금 바다 위에서 높이뛰기도 하고, 춤을 추듯 좌우로 흔들거리기도 한다. 스릴을 느낄 수 있도록 일부러 그랬지 않나 싶다.

 

 

 

 

꼬란(Kho Larn)으로 가는데 하늘이 온통 낙하산(parachute) 천지다. 이곳 파타야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패러세일링(parasailing)이란다. 특별히 만들어진 낙하산(parasail)을 이용한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인데, 낙하산에 사람을 묶어서 긴 밧줄로 연결한 뒤 모터보트에 매달아 빠르게 달려 나가는 힘으로 낙하산을 하늘 높이 띄게 하는 원리다. 원래는 프랑스 공수부대의 훈련용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1950년의 일이다. 이게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레포츠로 발전되었단다. 이후 세계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레포츠로 성장했으며, 우리나라에는 1985년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처음 선을 보인바 있다.

 

 

 

 

 

 

 

 

20분쯤 달린 보트는 꼬란(Kho Larn)의 바닷가에 여행객들을 내려놓는다. 일명 산호섬이라고 불리는 꼬란은 파타야보다 바닷물이 깨끗해 물놀이를 즐기기에 편하고 각종 해양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 이를 권하는 호객꾼들이 선착장에서부터 덤벼드나 서둘지 말고 가격 비교 후 이용하면 된다. 해안에는 유료 샤워장과 탈의실, 기념품 상점,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비취빛 바다는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맑다. 물을 좀 마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겠다는 얘기다. 제트스키와 바나나보트 등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짓는 이유일 것이다.

 

 

 

 

바다는 두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다. 드럼통 같은 커다란 비닐 통을 연결한 부표 안쪽에서는 해수욕객들이 수영을 하고, 바나나 보트제트 스키등의 해양스포츠는 부표 밖에서만 하도록 했다.

 

 

바닷가 풍경은 우리나라의 해수욕장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시스템까지 같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안전요원이 전망대에서 눈에 불을 켜고 물놀이객들을 살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괜한 욕심을 부려 깊은 바다로 나가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음주 수영은 금물이라 하겠다.

 

 

 

 

 

 

 

 

과도한 스릴을 피하고 싶었던 우리 부부는 간단한 물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한데다 수심까지 낮은 게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겠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는 이유일 것이다.

 

 

휴식은 하나투어에서 제공하는 장소를 이용했다. 여행사에서는 열대 과일에다 치맥(치킨&맥주)까지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몸뿐만이 아니라 입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해변은 여름사냥에 나선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그런데 낯선 이국땅인데도 불구하고 오고가는 언어가 온통 한국말이다.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한다는 태국, 그 주역은 한국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비치파라솔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보는 즐김으로, 바다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탈거리'를 통해 느끼는 스릴로 시간을 보낸다.

 

 

선착장 부근에는 해양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사람들만큼이나 제트스키들도 많다. 그보다 숫자는 적지만 바나나보트도 보인다. 호객꾼들에게 가격을 흥정해보고 그중 하나를 이용하면 될 일이다. 우리처럼 패키지여행을 온 사람들도 같다. 이용요금은 각자 부담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산호섬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탈거리'로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사실. 바다에 온몸을 던져버리는 체험을 통해 가슴까지 차올랐던 스트레스를 훌훌 던져버리는 쾌감이 산호섬에 넘실댄다.

 

 

 

 

파타야 시내 풍경,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는 전선(電線)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곳 파타야 뿐만이 아니라 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새로운 선로(線路)를 깔 때 기존의 것을 제거하지 않는 탓이란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에 묻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뱀들 때문에 그것마저도 어렵단다.

 

 

 

 

거리는 송크란 축제(Songkran Festival)’의 분위기로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설날인 413일을 전후(前後)해 열리는 전통 축제이다. 태국에선 태양이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중 처음인 양자리에 들어가는 413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긴다. 물 뿌리기는 본래 상대방의 어깨나 손에 뿌리는 전통이 있었다. 자신의 죄와 불운을 씻고 새해 복을 빌어주는 풍습이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인 만큼 더위를 식히기 위한 목적도 있다. 송크란 축제를 물 축제라 부르는 이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 뿌리기 행사는 점차 활동적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거리에서 물총이나 호스 등을 사용해 사람들이 모두 서로를 향해 물을 뿌린다. 축복의 의미로 뿌리는 것이므로 맞는 사람이 화를 내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물 뿌리기의 규모가 커지면서 종종 과격해진 물싸움으로 인해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단다. 참고로 송크란(Songkran)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삼크란티(Saṃkrānti)’에서 유래한 말이다. 삼크란티가 태양이나 행성의 이동이나 이동경로를 의미하므로 송크란은 태양이 양자리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새해 첫 날을 일컫는다.

 

 

이틀 밤을 머문 티식스5 페노미널호텔(Tsix5 Phenomenal Hotel)’

도심에서 4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파타야의 명소인 나끌루아 베이진리의 성전등도 15분 정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4성급 호텔에 걸맞게 객실이 넓고 깨끗했고 욕실에는 무료 세면용품은 물론이고 목욕가운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호텔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특징은 객실마다 발코니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파타야 시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가 된다. 특히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물든 야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호텔에도 송크란 축제의 흔적이 보인다. 태국 국왕으로 보이는 사진과 함께 부처님과 물 항아리를 진열해 놓았다. 송크란 축제는 무더위를 식히고 곧 시작될 우기에 많은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의식이다. 1년 중 가장 더운 계절에 사람들은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긴다. 태국은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다. 물 항아리 옆에 부처님이 모셔진 이유일 것이다. 이 기간 중에 불상을 물로 씻는 행사도 열린다니 말이다.

 

 

여행지 : 태국

 

여행일 : ‘19. 4. 12() - 16()

일 정 :

4.13() : 방콕(왕궁, 에메랄드사원, 보트투어)

○ 4.14() : 파타야(산호섬, 농눅빌리지)

○ 4.15() : 파타야(진리의 성전)

 

여행 첫째 날 : 방콕의 하루, 왕궁과 에메랄드사원 그리고 보트투어

 

특징 : 태국(泰國, Thailand) : 인도차이나 반도 서부 지역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방콕이다. 옛 이름은 시암(Siam,18561939). 국민의 75%가 타이인이며 14%는 중국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13세기에 발달한 수코타이 왕조 때 영토를 넓히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였다. 14세기 아유타야 왕국의 전성기를 거쳐 16세기 후반에는 일시 미얀마군에게 지배당하였으나 곧 물리치고 독립하였다. 19세기에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되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타이가 당시 유능한 통치자를 만났고,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그들의 경쟁의식과 자존심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이다. 1932년 무혈 군사혁명이 일어나 지금의 입헌군주제가 되었으며, 타이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군사혁명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타이의 정치적 특징은 군부와 민간정치세력 간의 균형 위에서 정치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국왕은 국민적 단결과 화합의 구심점으로, 국가적 위기 때에는 조정자 구실을 수행한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독립국가를 유지한 데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왕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방콕(Bangkok) : 타이 만에서 약 40떨어진 지점,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에 위치한 세계적 거대도시로 문화·상업·금융의 중심지이다. 1971년 원래의 시가 차오프라야 강 서쪽 연안에 있는 옛 자치시 톤부리와 통합되었고, 1972년 다른 외곽지대들과 통합되면서 방콕 대도시권을 형성했다. 때문에 3륜 택시, 자가용, 버스로 이루어지는 도심 교통은 매우 혼잡한 편이다.

 

왕궁(The Grand Palace) : 방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둘레 1.9의 왕궁 안에 왕족들의 주거 공간과 국왕의 접견과 집무를 위한 건물, 왕실 사원인 왓 프라 깨우(Wat Phra Kaew) 등이 위치해 있다. 18세기 후반 라마 1세가 민심을 수습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건설했다. 라마 8세까지 차크리 왕조의 왕들은 모두 이곳에서 생활했지만 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라마 9)이 두싯 지역에 있는 칫라다 궁전(Chitralada Palace)‘으로 거주를 옮긴 다음에는 왕실이나 국가 행사 때만 이용된단다. 왕이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태국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복장에 유의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왕궁으로 향한다. 4차선을 내도 충분할 정도로 널찍하지만 보행자 전용이어선지 차량은 지나다니지 않는다. 아니 임시로 쳐놓은 듯한 차단 펜스 너머에 별도의 보도(步道)가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그렇게 200m 남짓 걸었을까 하얀색 담벼락에 둘러싸인 왕궁이 나타난다. 왕궁의 높다란 담벼락을 끼고 왕복 4차선의 도로가 널찍한데도 관광버스들은 지나다니지 않는다. 안전을 대비해선지는 몰라도 대형버스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멋지게 차려입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조그만 미동도 없이 그림처럼 서있는 풍경은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 보아오던 것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너른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만 왕궁에 들어갈 수 있다. 아니 정확히는 왓 프라깨우(에메랄드사원)‘로 들어가게 된다. 하긴 에메랄드사원이 왕실의 부속사원이니 왕궁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다.

 

 

왕궁은 복장의 제한을 두고 있으므로 민소매와 반바지, 짧은 치마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만일 민소매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엔 왕실 입구에 옷을 대여해주는 곳에 들러 반드시 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왓 프라깨우(에메랄드사원)‘가 자리한다. 사원의 본당은 벽화(The Murals)가 그려진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여 있다. 길이가 1,900m에 달한다는 이 벽화는 라마야나(Ramayana, 태국에서는 라마키안)’이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대서사시를 그림으로 구성해 제작한 것으로 총1708칸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벽화는 장인들의 손길에 의해 수시로 복구된단다. 참고로 라마야나는 총 116권의 방대한 서사시로 8가지 이야기가 한꺼번에 구성되어 있다.

 

 

 

 

에메랄드사원(왓 프라깨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본당 건물인 봇(대법전, Bot)이다. 왓 프라깨우 입구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불전으로, 불전 앞에는 관음보살, 불전 처마에는 가루다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불전 내부에는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인 프라깨우가 안치되어 있다. ‘에메랄드 불상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옥()으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인도에서 스리랑카를 거쳐 태국으로 전해진 것이란다. 1434년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석고 반죽으로 감싼 불상이 실수로 파손되면서 옥 불상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크기는 비록 66cm밖에 되지 않지만, 왕조의 번영과 왕실의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단다.

 

 

 

 

본당인 봇(Bot)의 옆에는 황금색 불탑(佛塔)프라 씨 라따나 쩨디(Phra Si Ratana Chedi)’가 있다. 스리랑카 양식으로 지어진 불탑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단다.

 

 

에메랄드사원의 대표적인 불탑은 물론 프라 씨 라따나 쩨디(Phra Si Ratana Chedi)’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쩨디(Chedi)들이 평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양이 각기 다른 불탑들도 사진의 배경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에메랄드사원의 문들은 어김없이 보초를 세워놓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거인 아니면 무섭게 생긴 동물들 일색이다. 깔끔한 군복을 차려입은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왕궁지역과는 또 다른 풍경이라 하겠다. 해당 지역에 머물고 있는 인간과 신()의 차이라고나 할까?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은 하단을 사원처럼 보이게 하고 상단은 봉 선인장을 닮은 크메르 불탑인 쁘랑으로 장식했다. 안에 라마 1세 이후 역대 왕들의 동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의 앞에 있는 금색의 불탑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인비인(人非人) ‘끼나라(Kimnara)’들이 둘러싸고 있다. ‘끼나라는 그 형태가 사람과 닮았다. 하지만 신인간짐승의 어느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천룡팔부 중의 하나로 불법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희귀성 때문인지 탑 주변은 끼나라와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쁘라쌋 프라 텝 비돈(Prasat Phra Thep Bidon)’의 옆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히고 있는 사각 건물 프라 몬돕(Phra Mondop)’이 있다. 왕실 도서관으로 쓰였으며 안에는 불교 서적이 보관되어 있단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뜬금없는 풍경과 맞닥뜨린다. 캄보디아에 있어야 할 앙코르 왓(Angkor Wat)’을 축소시킨 모형(Model)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는 15세기 아유타야 왕조와 19세기 짜끄리 왕조의 라마 4세 때 앙코르 왓을 점령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태국인들로 봐서는 영광이겠지만 캄보디아인들에게는 기분 나쁜 현장이라 하겠다.

 

 

흰두교는 물론이고 불교에서도 신성시 여기는 코끼리가 에워싸고 있는 불탑도 보인다.

 

 

사원의 안은 시골 장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곳 왕궁이 방콕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들어서 있는 건물들이 모두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띄고 있어 종교적인 의미는 물론이고 태국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니 어찌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당의 내부도 인산인해(人山人海)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태국인이다. 태국인에게 불공을 드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신성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왕궁의 한켠 문에서는 연꽃·국화, 금박, , 양초 등의 불공세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금박은 불상에 붙이기 위한 것으로 그 위치에 따라 본인의 몸이 치유된다고 전해진다.

 

 

 

 

왓 프라깨우를 보고 남서쪽 통로로 나오면 왕궁(Bangkok Grand Palace)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전각은 보름피만 궁전(Borom Phiman Mansion)’으로 1903년 라마 5세 때 유럽 양식으로 건축했으며 라마 6세부터 라마 8세까지 왕궁으로 사용했었단다.

 

 

다음은 짜끄리 마하 쁘라쌋(Chakri Maha Prasat)’이다. 왕궁에서 가장 웅장한 유럽풍의 건물로, 라마 5세가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와 짓기 시작해 1882년 완공했으며 라마 5세부터 라마 6세까지 외빈을 위한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단다.

 

 

보름피만 궁전 옆에는 1785년 라마 1세 때 지어진 사원 모양의 프라 마하 몬티안(Phra Maha Montien)’이 있다. 이 건물에는 국왕이 주요 인사를 알현하던 프라티낭 아마린 위니차이(Phra ThiNang Amarin Winitchai)’, 대관식이 열리던 프라티낭 파이싼 딱씬(Phra ThiNang Paisan Taksin)’, 라마 1세부터 라마 3세까지 궁전으로 사용한 프라 티낭 짜끄라팟 피만(Phra ThiNang Chakraphat Phima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짜끄리 마하 쁘라쌋의 옆 태국 사원풍으로 지어진 건물은 두씻 마하 쁘라쌋(Dusit Maha Prasat)’이다. 1790년 라마 1세 때 건축되었으며 십자가 모양의 구조와 네 겹의 겹지붕, 7층 첨탑 등이 인상적이다. 화장하기 전의 왕과 왕족의 시신을 안치하고 조문을 받는 곳으로 이용된단다.

 

 

궁전의 안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원래부터 출입을 막고 있는지 아니면 시간의 제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이드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리야 하는 패키지 여행자인 것을 어쩌겠는가. 미동(微動)도 없이 서있는 근위병과 사진이라도 찍어두었으면 좋은 추억거리라도 되었을 것을 그마저도 못할 정도로 소심한 여행자였으니 가이드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중문을 빠져나오면 왓 프라깨우 박물관(The Temple of The Emerald Budda Museum)’이다. 유럽풍 건물로 궁전을 장식할 때 쓰였던 각종 부재, 궁전에서 쓰던 그릇, 장식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입장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가이드가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왕궁을 빠져나오면 아까 궁으로 들어갈 때 건넜던 4차선 도로이다. 다음 일정은 유람선 투어, 유람선 선착장은 입구의 반대편 진행하면 된다.

 

 

가는 길에 만나는 노천시장을 잠시 기웃거려 보지만 입맛에 맞는 상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돌아서기도 멋쩍어 태국산 캔 맥주 하나 주워든다. 국내에서도 음료수처럼 마셔댈 정도로 좋아하는지라 시원하면서도 맛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에 있는 창 선착장(Tha Chang)’에 이른다. 매표소가 들어있는 건물에도 기념품과 과일, 잡화 등을 파는 가게가 빼꼭히 들어차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살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참고로 짜오프라야강에는 이곳 창 선착장(Tha Chang)’말고도 파아팃 선착장(Tha Phra Arthit)’랏차윙 선착장(Tha Ratsha Wong), ’오리엔탈 선착장(Tha Oriental)‘ 등 여러 곳의 선착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유람선은 강가를 둘러보는 보트와 디너 크루즈로 나눌 수 있단다.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선착장에는 여러 종류의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인원에 맞는 유람선을 골라잡으면 되겠다. 정원이 40명쯤 되는 배에 올라타자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된다. 태국인 가이드인데도 한국어가 유창하다. 하지만 태국의 지명이 낯설어 내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을 따름이다. 참고로 방콕의 상징은 역시 왕궁과 많은 사원이다. 그렇다고 짜오프라야강을 빼놓을 수는 없다. 방콕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봐서는 한강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우리나라의 마한과 백제, 조선이 한강을 근거로 했듯이 이곳 태국의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톤부리, 짜끄리 왕조가 모두 짜오프라야강유역에서 기반을 다지거나 유지했다.

 

 

 

 

유람선 투어는 방콕의 매력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각기 다른 모습과 빛깔을 내는 방콕의 여러 왕궁과 사원들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사원과 불탑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하긴 태국은 불교국가가 아니겠는가. 불교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27000여 개의 사찰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개개의 사찰들마다 건축·회화·조각품·고전문학 등의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 있음은 물론이다.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의 물빛은 우리의 한강에 비해 썩 맑지는 못했다. 맑디맑은 강물에 익숙한 우리네에겐 낯선 색깔이라 하겠다. 이유는 동남아 대륙부의 내륙 각지를 어루만지며 흘러오면서 풍부한 무기질을 품었기 때문이란다. 무기질이 저런 색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얼마쯤 달렸을까 잘 달리던 배가 뱃머리를 강가에 댄다. 왕족으로 보이는 세 명의 초상화가 세워진 강변이다. 배에 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빵조각을 강물에 던져준다. 그러자 물속에서 노닐던 수많은 물고기가 퉁퉁한 모습을 드러낸다.

 

 

 

 

유람선은 우릴 리버 시티(River City)’로 안내한다. 보석과 골동품 가게로 유명한 상가이다. 이곳에서는 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골동품도 판매하고 있단다. 하지만 안내서에는 눈팅만 하고 구매는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었다. 골동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진품을 가리기 어려운데다 한 번 사면 반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 저변에는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을까 싶다. 배에서 내리는 곳으로 이용했을 뿐인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리버시티 근처에 있는 훨람퐁 역(Hua Lamphong Station)’의 건물이 독특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저곳에서는 북부 치앙 마이(Chiang Mai)’ 방향과 남부 버터위스(Butterworth)’ 방향, 북동부 농카이(Nong Khai)’ 방향까지 운행하는 기차를 탈 수 있다고 한다. 방콕의 중앙역쯤으로 보면 되기 않을까 싶다.

 

 

 

하룻밤을 머물렀던 이스틴 타나시티 골프리조트(Eastin Thana City Golf Resort Bangkok)’는 오랜만에 만나본 괜찮은 호텔이었다. 객실과 화장실은 널찍하면서도 깨끗했고 면도기와 칫솔·치약만 빼고는 일회용 세면도구를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 미니바와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드라이기 등의 용품들도 준비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종합 스포츠 콤플렉스라 할 정도로 골프 코스 외에도 피트니스센터와 야외 수영장, 탁구장, 당구장, 테니스코트 등 각종 스포츠 시설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아침 식사도 골프장의 부속시설이라는 특성답게 뛰어난 편이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퍼들의 입맛에 맞추다보니 뛰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행지 : 대만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셋째 날 저녁 : 타이페이 101 빌딩(Taipei 101)

 

특징 : 타이페이 101 빌딩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빌딩의 정식 명칭은 타이페이 세계금융센터이다. 당초 대만 정부의 아시아 태평양 운영 센터정책에 힘입어 복합 금융 서비스 시설로 기획되었으나, 이후 종합 비즈니스 센터 건물로 변경되었다. 지상 101, 지하 5층으로 이루어진 508m 높이의 빌딩은 현재 대만과 타이페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중국 고전 문화와 대만 본토의 특색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평가 받고 있다. 대나무의 형상으로 생긴 이 빌딩은 대나무의 성질과 같이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주고 있으며, 중국의 행운, 부를 상징하는 숫자 8을 반영하여 대나무를 닯은 8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건물의 층수를 101층으로 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완벽한 숫자를 상징하는 100을 초월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 ’타이페이 101‘은 대만의 자랑이다. 2004년 지어진 이 빌딩은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빌딩이자 인간이 지은 건축물 중 최초로 500m를 넘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할리파(828m), 사우디 아라비아의 아브라즈 알 베이트(601m), 미국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541m) 등 초고층 건물들이 줄줄이 지어지면서 현재는 여덟 번째로 밀려났다. 이 건물의 91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타이페이 시내의 전경은 타이페이 관광의 백미(白眉)로 알려진다.

 

 

 

시내 투어 중에 바라본 타이페이 101 타워‘, 대만의 랜드 마크(landmark)‘2004년 지어질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 높이(508)를 자랑했었다. 현재 B1~5층까지의 쇼핑몰, 사무공간, 그리고 89층의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89층 전망대까지 37초 만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대만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9층에서부터 84층까지는 사무실로 사용된다. 그중 35층과 36, 59, 60층에는 편의점이나 우체국, 관리 사무소 등의 편의 시설 및 컨벤션 센터(36)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5층에는 20065월 문을 연 패미리 마트편의점이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편의점이기도 하단다. 35층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도 명소로 꼽힌다. 커피라도 한잔 앞에 놓고 타이페이의 경관을 감상하려면 최소 하루 전 예약을 해야만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단다. 그것도 1인당 90분만 주어진 채로 말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는 타이페이 101’이 눈앞에 펼쳐진다. 화려한 조명(照明)을 넣지 않은 순수함이 돋보이는 건축물이지 않나 싶다. 건물이 하도 높다보니 땅바닥에 주저앉고 나서야 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타이페이 101’은 여의도에 있는 63빌딩보다는 2배나 높지만, 최근에 지어진 롯데월드타워의 높이인 555m(123)에는 한참이나 못 미친다. 여기서 롯데월드타워를 들먹인 건 다른 이유가 있다. 두 건물이 건축허가를 받던 과정에서 돌출되었던 문제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2롯데월드가 건축 허가를 받을 당시, 성남에 위치한 서울공항의 항로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타이페이 101 빌딩역시 타이페이 도심에 자리한 송산 공항의 비행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해결 방법 또한 같았다. 두 공항의 항로를 조금씩 변경한 것이다. 이때 대만에서는 항공기가 육군부대의 위로 지나가게 되는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다. 찬반에 대한 격론이 심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 천수이벤 총통이 대만의 경제적 위기를 강조하며 타이페이 101빌딩이 가지고 올 경제적 파급 효과를 국민들에게 호소했는데 이게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군부대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한편, 101빌딩은 처음 설계보다도 오히려 더 확장시켜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 설득과정에 소홀했던 우리의 롯데월드타워 빌딩이 아직까지도 특혜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비교해봤다.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타이페이 101빌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사무 공간을 비롯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쇼핑몰인 ‘TAIPEI 101 MALL’, 그리고 타이페이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일단 5층까지 올라가야만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위로 오르다보면 타이페이 101빌딩의 하단부에 위치한 쇼핑몰인 ‘TAIPEI 101 MALL’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6개 층에 만들어진 거대 쇼핑센터인데, 이 안에는 소고 백화점을 비롯하여 뷰티 플라자’, ‘애버뉴 101’ 등 다양한 패션·뷰티 상품 매장이 들어서 있다. 이 밖에도 레스토랑과 대형 서점 등 쇼핑과 오락,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복합시설이 존재해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타이페이 현지 주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복합 쇼핑센터이기도 하다.

 

 

 

 

 

5층으로 오르면 타이페이 101’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엘리베이터(elevator)가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인 89층까지 데려다 줄 초고속 엘리베이터이다. 엘리베이터 매표소에서 약 500NT 가량의 표를 구입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 ‘귀가 먹먹해 두 번 침을 삼키니 벌써 도착했다.’는 얘기가 떠도니 이따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한번 따라해 보면 어떨까?

 

 

 

 

 

 

 

 

줄을 서서 나아가는데 사진을 찍는 코너가 나타난다.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여 우리부부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보안용 사진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상업용이었다. 그리고 이 인물사진은 타이페이 101’ 전경과 합성되어 출력된다.

 

 

이 엘리베이터는 시속 60.6의 속도로 기네스북(기네스 세계기록, The Guinness Book of Records)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로 등재되어 있다. 5층에서부터 전망대인 89층까지 무려 37초 만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에 비해 속도가 조금 떨어져서 지상 5층까지 약 46, 1층까지는 48초 만에 도달한단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타원형 그림 속에 층수와 시간이 화면으로 나타난다.

 

 

89층 전망대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어느 위치에서든 타이페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각각의 전망 포인트에는 번호가 쓰여 있는데, 안내 부스에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무료)를 대여할 경우 당해 번호에 해당되는 각 포인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89층 전망대에서 계단을 통해 다시 더 위로 올라가면, 91층에 대만의 기상 상태에 따라 공개하는 야외 전망대가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타이페이의 기후 탓에 못 올라가는 여행자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늘은 다행이 개방이 되어있다.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유리창 없이 바라보는 타이페이의 야경(夜景)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망대보다 더 높은 건물이 보인다. 저 건물은 사무공간이 아닌 기계실과 전기실 등이 들어있다고 한다.

 

 

91층에는 타이페이 101 빌딩에 대한 기록들을 영상(映像)으로 보여주는 홍보관이 있다. 빌딩의 설계에서부터 부지정리와 건설과정을 거쳐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영상물로 만들어 보여준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으니 한번쯤 관람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시 89층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그리고 여유롭게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89층 전망대에는 기념품가게가 만들어져 있다. 101빌딩 마스코트인 뎀퍼(Damper)와 컵, 티셔츠, 모자, 빌딩모형 등 기념품 외에도 여러 가지 상품들을 진열해 놓은 걸로 보아 편의점 기능까지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89층에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스카이카페도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의 곳곳에는 타이페이 101 빌딩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려주는 시설들을 설치해 놓았다. 건물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아볼 수 있는 디지털 안내판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형태의 조형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귀금속 판매점도 보인다. 대만의 특산품인 옥()으로 만든 제품과 건강보조품 위주로 진열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도자기들도 보인다.

 

 

 

 

아까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찍었던 사진을 출력해주는 곳이다. 사진촬영은 필수였는지 몰라도 사진을 찾는 것은 선택 사항임이 분명하다.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 부부는 기념 삼아 사진을 구입해봤다. 하지만 실망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타이페이 101’ 전경 옆에 인물을 집어넣은 것이 80~90년대 사진을 연상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격도 2장 들이 한 세트를 600NT(한화로 22천원 정도)나 받았으니 만만찮다고 볼 수 있다.

 

 

전망대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겨 한층 아래(88)로 내려가면, 87층에서부터 92층까지의 건물의 중앙에 매달려있는 일명 골든볼이라고도 불리는 커다란 구() 형태의 댐퍼(damper)를 구경할 수 있다. 댐퍼란 진동에너지를 흡수하는 장치로서, 강한 풍압 혹은 지진 발생 시 빌딩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종의 무게 추와 같은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바람으로 건물이 오른쪽으로 흔들리면 추가 왼쪽으로 치우쳐 흔들림을 막는다고 보면 되겠다. 대만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환태평양 지진대에 놓여있는 섬이다. 때문에 지진과 태풍이 비교적 잦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이 댐퍼로 인해 타이페이 101빌딩은 초속 60m의 강풍 혹은 2500년에 한 번 올 정도의 강력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지름 550cm, 무게 약 680t의 거대한 황금색 구()가 강철 로프로 빌딩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또 다른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댐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즈라고 알려진다. 또한 이 댐퍼는 101빌딩의 마스코트인 댐퍼 베이비의 모티브(motive)가 되기도 했다. 다섯 가지 색의 댐퍼베이비는 각각 캐릭터가 있는데, 레드는 행운, 골드는 부, 블랙은 용기와 침착함, 실버는 명석한 최신 기술, 그리고 최근 추가된 그린은 환경이라는 캐릭터를 갖고 있단다.

 

 

 

이 밖에도 88층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호 전문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산호를 가공하고 디자인하여 만든 각종 예술 작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얼핏 미술관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진열품들은 판매용이란다. 아무튼 눈에 띄는 것마다 아름답기 짝이 없다. 타이페이 전경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것 같다.

 

 

 

 

 

 

 

 

 

 

 

 

 

 

 

 

밖으로 빠져나오니 붉은 색의 ’LOVE 조형물이 가장 먼저 길손을 맞는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로버트 인디애나 (Robert Indiana)‘의 팝아트 조형물이다. 아마 미국이나 일본으로 여행을 가셨던 분들이라면 이미 익숙한 조형물일 수도 있겠다. 그건 그렇고 ’LOVE 조형물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조형물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하긴 ’LOVE‘가 전해주는 의미에 가슴 설레이지 않는 이가 그 얼마나 되겠는가.

 

 

 

 

LOVE 조형물 외에도 ‘101’을 형상화한 조형물 등을 비롯하여 101빌딩 주변에서 많은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여유를 갖고 이러한 예술 작품들을 둘러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곳 대만에도 의사표현의 자유는 확실한가 보다.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좌세로 앉아있는가 하면, 그 옆에는 자기의 주장을 적은 입간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게 대만정부를 향한 외침이 아니라 중국 본토를 향한 비판으로 보인다는 게 조금 낯설지만 말이다.

 

여행지 : 대만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셋째 날 오후 : 야류 지질공원(野柳 地質公園)

 

특징 :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야류 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의 기암(奇巖)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절경이다. 외부적으로 파도에 의한 침식과 암석의 풍화 작용에다 지각운동의 영향까지 더해져 희귀한 지형과 지질 경관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바람과 태양과 바다가 함께 만든 해안 조각 미술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1구역에는 버섯 모양의 바위와 생강 모양의 바위가 밀집되어 있는데, 이런 모양의 바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구역의 경관은 제1구역과 유사하나 수량 면에서는 제1구역보다 적은 편이다. 하지만 야류지질공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여왕머리 바위가 이곳에 있다. 3구역은 야류의 다른 축으로 해식평대(침식에 의한 평탄한 지형)이며, 2구역보다는 범위가 좁다. 해식평대의 한쪽은 절벽이며, 다른 쪽 아래에는 파도가 용솟음치고 있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괴석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제3구역에서는 기암괴석의 자연 경관을 보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야류 지질 공원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 보호 구역이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맞은편에 야류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야류(野柳)‘라는 지역에 위치한 지질공원(地質公園)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야류라는 이름이 붙게 된 연유가 재미있다며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 야류의 주민들은 옛날부터 바다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했는데 쌀이 늘 부족해서 내륙의 상인을 통해 쌀을 공급받아야 했다. 매번 식량을 운송할 때마다 주민들 몇몇은 끝부분을 날카롭게 깎은 대나무로 상인이 등에 메고 있는 가마니를 찔러 구멍을 내고, 가마니 속의 쌀이 흘러나오면 그것을 주워 훔쳐갔다고 한다. 그래서 쌀 상인들이 자주 촌사람(野人)에게 또 당했어()‘라고 말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평포족(平埔族) 원주민이 믿는 지신(地神)의 이름을 발음에 따라 한자로 野柳라고 표기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로는 스페인어로 마귀 곶이라는 뜻의 ‘Punto Diablos’‘Diablos’에서 ‘D’‘B’ 음이 생략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안내판 뒤의 휴게소 건물을 왼편에 끼고 돌면 공원의 정문이 나온다. 왼편에 야류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의 특징 등을 자세히 설명해놓은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그중 지리적 위치와 지질변화, 암석 등은 한국어로도 표기가 되어있다. 중국어와 영어 등 7개 국어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한글인 것이다. 우리의 국력(國力)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지질공원은 야류어촌 동북해안의 좁고 긴 곶에 위치하며, 곶은 길이 1700m에 넓이가 250m쯤 되는데 중간의 가장 좁은 곳은 50m라고 한다.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선다. 수목원의 나무들처럼 잘 손질된 숲길이 공원까지 길손을 안내해 준다. 반석(盤石)을 깔아놓은 길바닥의 곳곳에는 여왕머리 바위화석등 지질공원의 상징물들을 타일로 만들어 배치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아주 잠깐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저 멀리 바닷가에 낙타바위가 보인다. 사진의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은 예류하이양스제(野柳海洋世界)‘이다. 돌고래 쇼와 해양 생물 전시 등을 관람할 수 있다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문이 닫혀있었다.

 

 

 

5분쯤 걸었을까 왼편 언덕으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놓여 있는 게 보인다. 지질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공원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길이 1.7km에 가장 넓은 곳의 폭이 300m가 채 되지 않는 가늘고 긴 형태의 해안공원이다. 모두 3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맨 왼쪽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 1구역(아래 두 번째 사진)이고, 가운데(아래 첫 번째 사진)의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2구역, 그리고 3구역은 그 뒤편 산자락의 왼편 아래에 있다.

 

 

 

 

먼저 1구역으로 들어선다. 버섯 모양의 바위와 생강 모양의 바위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구역에서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생강 모양의 바위, 벽개(갈라진 틈), 주전자 동굴과 카르스트판 등이 아주 풍부하며, 유명한 촛대 바위와 아이스크림 바위도 이 구역에 위치해 있다.

 

 

1구역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심상암(蕈狀岩, Mushroom rock). 즉 버섯바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심상암은 지각(地殼)이 융기되는 과정에서 해수의 차별 침식을 받아 큰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목처럼 솟아올랐는데, 마치 커다란 버섯이 자란 것 같다 해서 버섯 바위라고도 불린다.

 

 

지면(地面)이 길게 갈라진 곳이 가끔 눈에 띈다. 제법 넓기까지 한 것이 지각운동으로 인해 생긴 벽개(갈라진 틈)가 아닐까 싶다.

 

 

바닥에 화석(化石, fossil)이 보인다. 꽃잎을 닮았기에 식물화석인가 했더니 아니란다. 꽃잎 모양을 한 성게 화석인데 이것은 실체 화석에 속한다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이런 것 말고도 게 종류가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관 형태의 모래 방망이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이것은 생흔 화석에 속한단다.

 

 

 

앞에서 거론했던 생강바위이다. 암층(巖層)의 불규칙하게 함유하고 있는 결핵 주위의 비교적 부드러운 지질은 침식으로 움푹 들어가게 되고 단단한 결핵은 지표로 드러나게 된다고 한다. 이어서 바람과 파도의 침식으로 인해 거친 외관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강 바위 표면상의 가로선과 세로선이 교차하는 줄무늬는 바로 결핵이 지층 깊이 묻혀 있을 때, 지각의 횡압력으로 만들어진 균열면들이란다. 늙은 생강 뿌리와 같은 줄무늬를 지질학적으로 절리(節理, joint)‘라 일컫는다. 거친 표면에 회색에 노란색을 띄는 색채가 더해지면서 마치 음식을 만들 때 쓰이는 생강과 매우 흡사해져 생강바위라 부른다.

 

 

다음은 지질공원에서 가장 기이한 지형이라는 촛대바위이다. 원추형으로 생긴 바위가 지면(地面)에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지름이 1~1.5m쯤 되는데, 위는 가늘고 아래는 굵으며 꼭대기 중앙에는 석회질의 동그란 결핵을 가지고 있다. ’촛대바위는 그 생김새가 촛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작은 종()들로 보이니 어쩌란 말인가.

 

 

 

 

어린 학생들이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을 지어 있기에 다가봤더니, 다들 눈에 익은 형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통닭 배달을 시켰지?‘ 하며 너스레를 떠는데 제대로 맞혔다고 가이드가 맞장구를 쳐준다. ’닭다리바위라는 것이다. 다른 바위들을 다 놓아두고 유독 이곳에만 몰려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는 통닭만한 간식거리도 없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아이스크림 바위이다. 위치를 바꿀 때마다 다른 형상이 나오기에 두 장을 올려봤다. 닮지를 않았다고 툴툴 거리는데, 후식(後食)으로 아이스크림을 주는 식당에 가서 손수 뜨다보면 저런 모양이 나온다며 집사람이 점잖게 타이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개국초기의 승려인 무학대사가 썼던 어휘인데,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집사람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나 보다.

 

 

 

 

아래 사진의 바위들은 갑순이와 갑돌이바위란다. 바위의 생김새가 남자와 여자의 뒷머리를 쏙 빼다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 하나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여기는 대만인데 어떻게 한국이름이 붙여졌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가이드는 한국근무를 꽤나 오랫동안 했던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이드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이름일 것 같다는 얘기이다.

 

 

 

관람을 하다보면 붉은 색 금()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래사진에는 안 나와 있지만 다음에 첨부되는 다른 사진들에서 종종 보게 될 것이다. 바닷가와 기암의 주변에 쳐져있는데, 바닷가야 물론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겠지만, 기암(奇巖)의 주변은 지형의 변화를 가속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란다. 지질공원의 절경(絶景)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존해보고 싶은 그네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이는 곧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이다.

 

 

야류지질공원의 기암괴석은 세계 제일의 기이한 풍경으로 꼽힌다. 외부적 요인으로 파도의 침식, 암석의 풍화작용, 해륙 상대 운동 및 지각운동과 지질작용까지 더해져 희귀한 지형과 경관을 만들어 냈다. 모든 바위와 지형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만 년 전부터 파도의 침식과 풍화 작용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지형과 바위라 할지라도 먼 훗날에는 또 다시 변화될 풍경들이다.

 

 

 

 

 

 

 

 

1구역과 2구역은 다리로 연결된다. 수직으로 깎인 해식 골짜기를 건너기 위해 돌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경우에는 또 따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외계(外界)의 행성에서는 인공(人工)의 사물들마저도 그네들 나라의 물건으로 변화시켜버리는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아까와는 다른 모양의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버섯모양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생강을 닮은 것도 아니다. 같은 작용에 의해 다듬어졌을 텐데도 그 결과물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아무튼 깎인 지층의 모양들이 마치 인간이 조각해 놓은 것처럼 섬세하기까지 하다. 아니 어느 예술가가 저렇게 오묘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조물주(造物主)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구역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청동상(靑銅像) 하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이 청동상의 주인은 린티엔전(林添禎)‘이라는 어민(漁民)으로, 1964년 이 곳에서 사진을 찍다 바다에 빠진 대학생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대학생과 함께 익사한 의인(義人)이라고 한다. 훗날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자는 의미로 이곳에 동상을 세우게 되었단다.

 

 

바닥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려놓기도 했다. 마치 별자리를 헤아리는 기본 틀 같기도 하다. 안내판에는 측속태간개(測速台簡介, Speed trial station)‘라고 적혀있다. 대만국제조선공사가 선박의 운항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1972년에 만든 시설이란다. 당시에는 위성 항법 보정 시스템(DGPS:Differential Global Positioning System)‘이 도입되기 전이라서 전자파(raido wave)를 사용했단다.

 

 

2구역으로 들어선다. 이곳도 1구역과 마찬가지로 심상암(蕈狀岩, Mushroom rock)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량 면에서는 1구역에 못 미치지만 야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여왕머리 바위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밖에도 용머리바위와 금강바위 등 유명한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주변 해변에도 멋진 바위들이 널려있다시피 하니 한번쯤 나아가볼 일이다.

 

 

야류에는 여왕이 있다. 그것도 고대 이집트에서 이민을 온 여왕이다. 쉽지 않은 그 결정이 고마웠던지 그녀 앞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그녀와 함께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보려면 언제 줄어들지도 모르는 줄을 서야만 하는 불편쯤은 감수해야 한다. 아무튼 이 여왕머리 바위(女王頭)’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신기한 조각품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1330) 여왕을 닮았다고 해서 여왕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위는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 왔으며, 가장 높은 부분이 해발 8m이다. 타이완 북부지역 지각(地殼)의 평균 융기 속도가 연간 2~4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여왕머리 바위의 연령은 4,000년 이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햇빛과 비바람을 맞는 동안 여왕머리 바위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의 목둘레는 158cm에 불과하며, 직경은 50cm 정도이다.

 

 

 

 

여왕머리 바위근처로의 접근은 철저하게 막고 있다. 붉은 색 금지선(禁止線)을 긋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곳에는 아예 돌로 담을 쳐놓았다. 그 담이 높지 않은 것은 사진촬영을 원하는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야류 지질공원의 마스코트(mascot)이니 이 정도의 보호조치는 필요했으리라. 관광객들의 찾아와 계속 만지는 바람에 침식 속도가 가속화되어 오히려 이제는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튼 여왕머리 바위는 버섯 바위의 일종으로 50여 년 전에 풍화 작용으로 인해 우연이 머리 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가자, 현재와 같이 보는 각도에 따라 왕관을 쓴 여왕의 옆모습이 보인다 하여 여왕머리 바위라는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렇게 생긴 바위들도 가끔 보인다. 파도와 바람이 서있는 바위가 아닌 바닥에까지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런데 그 모양새들이 보는 이들을 놀라 게 만들 정도로 괴이(怪異)하게 생겼다.

 

 

 

 

 

두 개의 바위가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만들고 있다. 집사람은 베트남 하롱베이의 키스바위보다도 더 뛰어나다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멋지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둘이 합쳐지면서 중간에 동굴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런 멋진 포토죤(photo-zone)을 집사람이 놓칠 리가 없다. 냉큼 포즈부터 잡고 본다.

 

 

 

 

 

수천만 년 전부터 파도와 바람에 석회질 바위가 조금씩 깎여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만들어졌다. 바위 위쪽에 색상이 진한 부분은 단단한 재질이라 많이 남겨졌고, 아래쪽 밝은 부분은 연약해 좀 더 깎여져 있다. 또한 바위 표면이 파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크고 작은 구멍들을 만드는데, 이때 벌집바위와 풍화창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느 하나 똑 같은 것이 없고, 그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괴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2구역에서도 화석이 눈에 띄었다. 아니 아까 1지역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더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양(文樣)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안으로 나아가면 코끼리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코끼리 바위는 그 재질이 비교적 단단한 석회질 결핵 혹은 단괴(團塊)로써, 차별침식의 영향으로 형성된 기형 바위이다. 게다가 테레브라튜니나 필로사(Terebratulina Filosa)의 흔적까지 더해져 생동하는 얼굴 표정을 이루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선녀가 야류 거북이를 굴복시킨 후, 코끼리를 하늘로 데리고 가는 걸 깜빡 잊어버리고 혼자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코끼리는 지금까지도 선녀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며 뭍으로 올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란다. 이밖에도 2구역 해안에는 선녀신발과 지구바위, 땅콩바위 등 기이한 암석 4종류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모두 특이한 형상을 지닌 암층 속의 단괴 또는 결핵이 해수 침식작용을 통해 해변으로 돌출된 것이라고 한다.

 

 

3구역의 방문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3구역의 해식 평대(Abrasion Platform)‘가 나온다고 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길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해식평대 지역이란 해안 침식에 의해 암석해안이 후퇴되고, 그 앞면의 해면 가까이서 나타나는 평탄한 지형을 뜻한다. 이곳에는 수많은 괴석(怪石)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중 구슬바위와 새바위, 24효바위 등이 유명하단다. 특히 3구역은 기암괴석의 자연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곳이며 그와 동시에 야류 지질공원 구역 중 가장 중요한 생태보호구역이라고 한다.

 

 

대신 구두산(龜頭山)‘으로 연결되는 길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오른쪽 해안가로 나있는데 길옆이 깎아지른 벼랑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면 수직으로 깎인 해식 골짜기에 걸쳐놓은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길이란 얘기이다.

 

 

2구역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구두산(龜頭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마령조바위가 있다. 이름으로 보나 아니면 생김새로 봐도 새()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새는 아니다. 익룡(翼龍, Pterosaurs) 쯤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새는 새이되 사람까지 먹어치울 수 있는 새, 그래서 이름에다 자를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사진은 마령조 바위의 오른편 해안을 촬영한 것이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아찔한데다 길도 보이지 않지만 끄트머리까지 가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나 같이 젊은이들이다. 오래 전, () 박동진(朴東鎭) 명창(名唱)님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며 관객들을 희롱하는 선생님의 추임새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에는 젊은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고쳐 넣으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공원에는 휴게소도 만들어져 있다. 2구역과 3구역의 경계쯤 되는 곳인데, 해각휴게참(海角休憩站)’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걸로 보아 휴게소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 육지가 바다 가운데로 돌출한 부분, 즉 곶(, cape)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휴게소의 화장실은 공원에서 유일하니 알아두면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무료인 사용료가 부담스럽다면 맛있는 커피라도 한 잔 갈아주어도 될 일이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JTBC’의 손석희 앵커처럼 나도 사족을 한번 달아보자. 화장실은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 하나가 더 있다고 한다. ’구두산(龜頭山)‘의 정상 어림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보면 나오지만 실제 가보지 않았기에 표현을 자제했었을 뿐이다.

 

 

되돌아나가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눈여겨 살펴본다. 1구역과 2구역 사이에 해식동굴(海蝕洞窟, Seaeroded caves)이 있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야류 해갑(海岬)이 해수면 위로 상승하면서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암층이나 자연적으로 생긴 파열면을 파도가 날마다 깎아내면서 오목한 벽이 생기고 결국에는 이것이 해식동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여왕두 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투어를 시작하면서 가이드가 얘기하던 곳인가 보다. 그는 여왕머리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줄을 섰을 경우 자칫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는 이곳을 찾으라고 했다. 여왕님의 실물과 똑 같은 크기와 모양새로 제2의 여왕머리바위를 만들어놓았으니 이곳에서 실컷 사진을 찍어보라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까 2구역에서 보았던 여왕머리와 똑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옆에는 1구역에 있는 초피공주(俏皮公主)‘의 모조품도 보인다. 두 바위의 앞은 포토죤으로 만들어져 있다. 친절하게도 서있어야 위치까지 바닥에 그려놓았다.

 

 

 

 

여행지 : 대만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셋째 날 오전 : 스펀(十分), 천등(天燈)날리기

 

특징 : 지우펀(九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스펀(十分)은 소원을 적은 천등(天燈)을 하늘로 띄워 날려 보내는 풍습이 있는 작은 동네다. 산과 탄광이 많았던 핑시 지역에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스펀은 그중에서도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나르기 위한 협궤 철도가 있는 동네였다. 지금은 석탄을 나르던 기차는 사라지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아기자기한 스펀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철로를 이용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등(天燈)이란 작은 열기구와 비슷한 종이 등()’이다. 천등 아래 장착된 고체연료에 불을 붙이면 뜨거워진 공기가 등을 띄우는 것이다. 원래 천등은 지역 주민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도적을 막기 위해 마을 간에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복이나 건강, 행운 등을 비는 소원 등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여행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참고로 스펀(十分)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 살던 주민 열 가구가 마을 주변의 땅을 공평하게 10등분 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버스는 우릴 대로변에다 내려놓는다. 이곳 역시 대형버스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차에서 내리자 한적한 산골마을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여러 겹의 산들이 마을을 빙빙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지룽천이라는 제법 큰 강물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스펀은 대만 동북부의 스딩(石碇)과 루이팡(瑞芳), 솽시(雙溪)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지룽천의 지류에 있어 폭포와 계곡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로 들어가면서 투어가 시작된다. 방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천등이 떠오르고 있는 방향만 보고 걸으면 되니까. 참고로 대만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예스진지라는 용어가 자주 눈에 띈다.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로 예를 들어 예스진지 투어라고 한다면 예류와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하나의 코스로 만들어 투어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여행은 예스진지가 아닌 예스지로 짜여있다. 누군가 이곳 스펀을 일러 낭만과 즐거움, 희망이 숨 쉬는 곳이라 했으니 잘 짜여진 스케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 스펀은 대 히트(hit) 프로그램이었던 TvN'꽃보다 할배' 대만편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 그 존재를 알렸다. 그 덕분에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이곳을 찾은 이는 신구와 이서진이었다. 다른 출연진들을 각자의 일정 때문에 귀국을 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둘은 천등(天燈)에다 자신들의 소원이 아닌 먼저 떠난 꽃할배멤버들을 위한 작은 메시지를 적었었다. 신구는 맏형 이순재에게 일 좀 그만 하세요. 주위를 둘러보고 일하세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고, 박근형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여유로워 보인다라고 축복했다. 백일섭에게는 담배를 그만 피라라고 충고했으며, 이서진에게는 빨리 장가들어라. 금년 안이면 더욱 좋다라는 압박 아닌 압박을 가했다. 이서진도 내 바람은 국민의 바람이라며 이순재 선생님, 조금만 천천히 걸어가요’ ‘백일섭 선생님, 조금만 빨리 걸어가요라는 문구를 적어 웃음를 유발했다. 또한 박근형 선생님, 닭살은 이제 그만’, ‘신구 선생님은 술 좀 줄이세요등을 적으며 애교를 떨었었다.

 

 

잠시 후 펑시선철로(鐵路)에 이른다. ‘펑시선은 싼띠아오링(三貂嶺)역에서 징동(菁桐)역까지 약 12.9km의 노선으로, 일제 치하 시기였던 1918년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철로로 처음 개설되었다가, 1992년 관광 노선으로 리모델링되어 현재까지 운행되고 있다.

 

 

 

 

철로 주변에는 천등(天燈)에다 붓글씨로 소원(訴願)하는 일을 쓰거나, 또는 천등을 날려 보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어나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으로 쓰여 있는데 글로벌(global) 관광지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다. 소원을 적어 하늘에 날리는 천등은 원래는 주민들이 도적을 막기 위해서 마을 간에 통보를 주고받던 용도로 날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재운이나 건강을 비는 소원의 등불로 바뀌었다. 1m정도 높이의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천등은 4면에 소원을 적어 열기구처럼 공중에 띄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여행자들이 스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천등(天燈)을 날리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건강과 사랑, 재물 등 각자의 소원을 적은 천등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 모습이 장관이기에 이를 감상하는 재미만으로도 찾는 사람들도 꽤 된단다. 참고로 매년 음력 정월 15일이면 스펀에서 천등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하늘로 날아오르는 붉은 천등은 황홀경 그 자체란다. 이를 보려고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단다.

 

 

 

 

 

 

 

 

 

 

 

 

 

 

눈요기가 끝났으면 이젠 직접 천등(天燈) 날리기에 도전해 보자. 스펀에는 생각보다 많은 상점에서 등()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등은 색상과 크기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며, 색상이 많을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그러나 매장마다 가격은 거의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어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등은 종이의 색에 따라 의미가 다른데 빨간색은 건강, 노란색은 재물, 파란색은 사업, 보라색은 학업, 오렌지색은 애정, 녹색은 운수대통, 흰색은 장래, 분홍색은 행복, 복숭아색은 이성운을 뜻한단다. 천등을 구매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등을 골랐으면 이젠 소원(所願)을 적을 차례이다. 천등을 판 가게에서 행거 같은 곳에 걸어주니 이 또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각자가 원하는 소원만 적으면 된다는 얘기이다. 등은 총 네 개의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원은 네 개의 면 모두에 작성할 수 있다. 4명이 한 묶음으로 해서 천등을 날리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얘기이다. 우리 부부도 퇴계원에서 오신 부부와 함께 어울리는 지혜를 발휘했다.

 

 

글쓰기 삼매경(三昧境)’에 푹 빠져있는 젊은이가 보인다. 그 뒤에서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는 건 여자 친구가 분명하다. 그가 쓴 영원히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에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꼭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외국인들도 가끔 눈에 띈다. 중국인들이 쓴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영어로 쓰는 이들의 글도 건강과 사랑이 대부분이다. 국적은 달라도 소원은 비슷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젠 천등(天燈)을 날리는 일만 남았다. 이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작성이 다 끝나면 매장의 직원들이 등을 날리기 위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직원들 대부분이 한국말을 사용한다. ‘등을 돌려주세요’ ‘한 번 더’ ‘김치’ ‘웃어라는 말들이다. 등을 날리기 전에 손님이 가져온 사진기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그런 다음 등에 불을 붙이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주의할 점도 있다. 스펀 기찻길은 실제로 기차가 운행되는 곳이니 오가는 기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물론 기차가 오기 전 경고 안내를 하니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경고방송만 따르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방심하지 말자는 의미로 적어봤다. 또 하나, 등은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을 때 날리는 것이 좋다. 비가 많이 올 경우 등이 날지를 못하고 추락하거나 건물 옥상에 주저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빌고 난 뒤 등이 날지 못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게 분명하기에 거론해봤다. 특히 대만은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비가 많은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곳은 최근 JTBC'뭉쳐야 뜬다'에서 다녀가면서 여행시장에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켰다.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과 게스트인 비가 이곳을 찾아와 천등(天燈) 날리기를 실제로 해보았었다. 천등 하나를 2~3명이 공유해서 각자의 소원을 적었는데, 비는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새 앨범이 잘되기를 바랐다. 안정환은 '대한민국 러시아 월드컵 16'을 적었고 김성주는 엄마와 가족들 건강을 빌었다. 정형돈은 '어머님 눈 뜨시고 한번이라도 말씀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아픈 어머니의 건강을 원했다. 이중 출연료 인상을 소원으로 적은 김용만의 글이 백미(白眉)였지 않나 싶다.

 

 

 

 

 

 

 

 

천등 날리기를 마친 사람들은 파도에 떠밀리듯 앞 사람과 걸음을 맞춰 스펀 라오지에(老街)’로 향한다. 물너울을 뒤덮으며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처럼 쏴하는 순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들로 메꿔진다.

 

 

 

 

스펀 라오지에(老街), 즉 스펀의 오래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집과 상점들은 역()을 동경이라도 하듯 선로(線路) 가까이에 붙어 자리했다. 기차라도 지나갈라치면, 아슬아슬하게 집과 상점을 피해 선로를 달리는 기차 소리가 집 밖처럼 집 안에서도 똑같이 들릴 것만 같다.

 

 

스펀 라오지에(老街)에는 상점은 많지 않다. 종류 또한 몇 되지 않는다. 풍등가게가 대부분이고, 기념품가게와 음식점, 그리고 주전부리 가게가 몇 보일 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우린 눈물이 나도록 반가운 가게 하나를 만났다. 지우펀에서 찾지를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땅콩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났던 것이다. 땅콩아이스크림은 땅콩엿을 직접 갈아서 얇은 피 위에다 올린 후. 아이스크림을 넣고 돌돌 말아서 주는 일종의 디저트(dessert)이다. 피의 쫄깃함과 땅콩의 고소함, 그리고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다. 하도 맛있어서 제조과정 전반을 올려본다.

 

 

 

 

 

 

 

 

 

 

 

 

 

 

 

 

저만큼에 스펀 기차역(十分車站)’이 보인다. 옛날 시골 간이역을 연상케 할 만큼 외관은 볼품이 없다. 하지만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이곳 스펀은 기차여행이 제격이라더니 맞는 말이었던가 보다. 아무튼 주변 철로는 온통 관광객 차지이다. 곳곳에서 천등(天燈)을 날리려는 이들의 즐거운 함성도 들려온다.

 

 

 

 

 

 

 

철로변에 세워진 이정표에 스펀 폭포공원(十分瀑布公園)’이란 방향표시가 보인다. 북미 지역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형태가 비슷하다고 해서 대만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그 폭포를 말하는 모양이다. ‘핑시 철도노선의 스펀역과 따화역 중간 지점에 자리하는 스펀폭포는 폭은 넓은 편이나 높이는 비교적 낮아 마치 장막이나 커튼과 같은 형태를 띠며, 폭포 아래 부분의 수량이 많고 수심이 깊어 마치 수십 마리의 말이 달리는 것과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스펀 폭포는 암반의 기울기와 물이 흐르는 방향이 서로 상반되어 역사층 폭포에 속한다고 한다.

 

 

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셋째 날 오전 : 낭만의 홍등거리 '지우펀(九份)

 

특징 : 타이페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우펀은 산을 끼고 바다를 바라보며 지룽산(基隆山)과도 마주 보고 있다.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의 특성상 모든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계단으로 되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래된 집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네 골목마다 독특한 분위기의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찻집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지우펀은 원래 매우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다. 청나라 시대에 금광으로 유명해지면서 화려하게 발전했으나 광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급속한 몰락을 맞게 되었다. 그러다 현대에 와서 이런 지우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198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지금은 타이완에서 손꼽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참고로 지우펀(九份)이란 동네 이름은 옛날 이곳에 아홉 가구가 살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 아홉 가구가 밖에 나가 생필품 등을 사올 때는 아홉 집이 똑 같이 나누어 가졌다고 하여 지우펀(九份)이라 불렸고, 그게 공식적인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버스는 마을의 뒤편 언덕에 위치한 주차장에다 우릴 내려놓는다. 이곳 지우펀의 길들이 하나같이 좁다보니 내려줄 곳조차 마땅찮았던 모양이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가 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대만에 도착한 지 오늘로서 3,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리고 있다. 대만은 비가 잦은 나라이다. 지우펀은 그중에서도 비가 더 자주 내리는 곳이란다. 1365일 중 300일 동안이나 비가 내린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그래서 SBS 드라마 '온에어'에서도 두 주인공 고() 박용하와 김하늘이 우산을 쓰고 뛰는 장면을 넣었던 것 같다.

 

 

 

 

 

 

 

 

’102공로(公路)‘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투어가 시작된다. 내려가는 길에 낯익은 풍경이라도 시선에 잡힐까봐 열심히 살펴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은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찾아 헤맸을까? 지우펀은 드라마 온에어(On Air)‘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마을이다. 2008SBS-TV에서 방영되었는데 27.4%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당시 박용하(드라마 PD)와 송윤아(작가), 김하늘(연기자), 이범수(매니저) 등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잘 다루었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그들이 노닐던 장소를 지금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 장소가 수치로(竪崎路)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내 눈과 머리는 필요 없는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셈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태평양의 너른 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로 아래에는 화려하면서도 커다란 도교사원(道敎寺院)이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이곳 대만의 특징대로라면 도교의 신들 외에도 부처님을 함께 모시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만큼에 버스정류장이 보이는가 싶더니 잠시 후 세븐일레븐(7Eleven)‘ 간판을 단 편의점 앞에 이른다. 오늘 지우편 투어의 기점(基點)점이 되는 곳이니 잘 기억해 두자. 또한 들머리에 세워진 이정표도 놓치지 말고 챙겨볼 일이다. 오늘 투어의 핵심이랄 수 있는 기산가(基山街)의 입구를 알려주고 있음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꼭 필요한 상식인 화장실의 위치와 거리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때문이다.

 

 

왼편에 보이는 골목이 지우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기산가(基山街, 지산제)이다. 지산제라는 이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기념품 가게와 과자집, 음식점, 카페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소문과는 달리 관광객들로 붐비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했는가 보다.

 

 

지산제(基山街)‘를 버려두고 들머리 초입의 우측건물 끝으로 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얼핏 남의 건물 지하실로 내려가는 느낌이나 이 길은 경편로(輕便路, 창비엔루)로 연결된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진행방향의 맞은편이 훤히 열리면서 지우펀마을이 그 속살을 내보여 준다. 경사(傾斜)가 심한 산비탈에 수많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 늘어선 모양새가 계단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처음에 볼 때에는 다랑논이 연상되었었다. 비탈진 산자락까지도 삶의 터전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그네들의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불대는 계단 길을 돌아 내려가니 차량이 다녀도 될 정도로 제법 넓은 길이 나타난다. 첨부된 지도에 경편로(輕便路, 창비엔루)로 표시된 길이다. 길에 대한 첫 느낌은 매우 한적하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지우편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홍등(紅燈)도 매달려 있지 않다. 누군가는 이곳이 지역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라고 했다. 그래서 길이 소소하면서도 아티스틱(artistic)한 분위기를 띤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로 치면 면소재지쯤 되는 시가지, 그것도 뒷골목의 풍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상점들도 한산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작은 공방(工房)과 찻집들이 보이는가 하면 목각(木刻) 인형이나 도자기 등 소품위주의 상품들이 진열된 작은 상점들이 몇 보인다. 하긴 품목이 저러니 기호품(嗜好品)을 사 모으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겠다.

 

 

 

 

건물의 외벽을 벽화로 채워 넣은 건물도 보인다. 영화의 캐릭터(character) 비슷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지우펀 극장(九份劇場)이라는 글귀가 보이다. 영화 상영관이 맞았던 것이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는 게 보통인 민박(民宿) 집과 이발소도 보인다. 전형적인 뒷골목 풍경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70년대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이 바로 이러지 않았을까?

 

 

 

 

얼마쯤 걸었을까 붉은 홍등이 유난히도 곱고 가지런하게 매달려 있는 건물이 보인다. 앞의 건물에 아랫도리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전망 좋은 찻집(茶樓) 중 하나란다. 태평양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풍경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홍등이 몰려있는가 싶었더니 삼거리가 나타난다. 아니 삼거리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작은 골목길이라고 하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이곳이 그 유명한 수기로(竪崎路, 수치루)이다. ’비정성시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온에어는 물론이고, ’센과 치히로도 이 골목에서 모티브(motive)를 얻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조금 더 걸어보기로 한다. 50m쯤 나아갔을까 시야가 툭 트이면서 주변경관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낯익은 홍등이 사라져버렸다. 이곳까지는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멀리만 보이던 바다는 한참이나 앞으로 다가와 있다. 날씨까지 맑았더라면 엄청나게 고운 풍경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삼거리로 되돌아오니 아까보다 훨씬 더 복잡해져버렸다. 중국 본토에서 몰려온 관광객들과 겹쳐버린 것이다. 소란과 무질서를 배겨내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해버리기로 한다.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찾겠다며 말이다. 아래 사진은 다시 찾아와 찍은 사진들이다. 비 때문에 사진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뛰어오느라 땀을 한바가지나 쏟았으니 귀한 사진으로 봐도 좋겠다.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우편 관광객센터의 사진을 두어 장 빌려와봤다.

 

 

 

 

수치루(竪崎路) 골목을 걷다보면 옛날 금광(金鑛)으로 호황기를 누리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3층으로 지어진 아매다루(阿妹茶樓, 아메이차러우)‘일 것이다. 차 맛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전망이 뛰어난데다 저녁이면 환하게 켜진 홍등의 물결까지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찻집 말이다. 지우펀을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저 집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고 가는 것이 절차요 소원이라 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어선지 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아니 열려있다고 해도 한가하게 차를 마시고 앉아있을 시간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우린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패키지여행자이다. 그건 그렇고 아메이차러우(阿妹茶樓)‘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세상에 더 알려졌다. 한국인들에게는 SBS 드라마 온에어촬영지, 일본인들에겐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motive)가 된 장소로 입소문을 탔다. 두 나라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관광지로 굳어진 이유일 것이다.

 

 

눈을 조금만 위로 치켜뜨면 급경사의 홍등이 가득 내걸린 계단 길이 나타난다. ‘지우펀 관광은 지산지애(基山街)로 시작해서 수기로(竪崎路)로 끝난다.’라는 말을 낳게 한 수기로(竪崎路, 수치루)이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지산지애(基山街)는 잠시 후에 만나게 된다. 참고로 이 거리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비정성시(非情城市)’의 주요 촬영지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비정성시라는 찻집도 보인다. 테라스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가파른 산길에 불을 밝힌 마을, 그리고 홍등거리까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관을 편히 볼 수 있다는 메리트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찻집 중 하나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은 비정성시의 촬영지가 아니었다.

 

 

 

 

생각보다는 훨씬 긴 계단길을 오르니 사거리가 나온다. 수치루(竪崎路) 계단길은 또 다시 위로 향한다. 하지만 우린 더 이상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왼편으로 향한다. 좌우로 연결되는 길이 지우편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기산가(基山街)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산가는 지우펀산 중턱을 동서로 길게 가로지르는 골목상가이다.

 

 

지산제(基山街)‘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에 계단이 아닌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다. 그 골목 양쪽에는 식당, 기념품 가게, 먹거리, 찻집 등 수많은 상점들이 쭉 늘어서 있다. 그 위에는 역시나 홍등이 장식되어져 있다. ’지산제(基山街)‘는 길거리의 맛있는 먹거리들이 특히나 유명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동그란 전병에 땅콩엿을 뿌린 후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더해 쌓아 먹는 땅콩 아이스크림과 커다란 소시지, 대왕오징어 튀김, 치킨, 과일, 떡 등이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먹거리를 파는 집들이다. 찰떡이나 크래커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본 듯한 풍경을 갖고 있는 식당도 눈에 띈다. 식당을 찾았던 기념으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을 벽면 가득히 걸어 놓았다. 대만에서는 알아주는 인물들일 게 분명하다.

 

 

 

 

 

 

 

 

 

 

 

생필품가게가 있는가 하면,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특산품은 물론 건강제품 등 다양한 제품들을 팔고 있다. 그중 기념품 가게는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타이페이 시내보다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혹여 사고 싶었던 물건이라도 있을 경우 이곳에서 사는 게 경제적이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파는 누가 크래커‘, 대만에서 가장 맛있는 집 가운데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데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아까 지나쳐버렸던 수치로(竪崎路)를 한 번 더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집사람과 분담을 해서 나 혼자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명소에서의 인증사진을 못 찍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나중에 면세점(免稅點)에 사면되겠지 했지만 이는 공염불(空念佛)이 되어버렸다. 면세점에 나오는 크래커는 포장만 그럴싸하지 가격이 40%정도 더 비싼데다가, 특히 맛이 이곳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남은 일정 중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점은 땅콩 아이스크림까지 그만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수치로(竪崎路)에 들르고 싶은 욕심에 바쁘게 서둘다보니 그만 가게를 지나쳐버린 것이다. 크래커 가게는 일부러 지나쳤지만 아이스크림 가게는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다. 나중에 사진 작업을 하다 보니 가게가 눈에 띈다. 무의식중에 셔터를 눌러 댔던 모양이다. 아무튼 지우펀에 들른 사람이라면 무조건 먹어봐야한다는 땅콩아이스크림은 맛도 못 봤다. 아니 구경도 못했다.

 

 

 

 

 

 

 

 

민박집들은 대부분 골목에서 최소한 몇 걸음쯤은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 어느 하나를 기웃거려보니 동화나라에서나 볼 법한 건물이 들어앉아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기대했던 스머프가 아니라 인상 팍팍 쓴 주인할멈이라도 튀어나올까봐 에서다.

 

 

 

 

 

지산제(基山街)‘는 좁은 골목길의 연속이다. 두세 사람이 겨우 비킬 만큼 비좁다. 길 주변엔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미니 카페, 작은 음식점, 기념품가게, 악기가게, 잡화점, 심지어는 무당집도 있고 술집이나 민박집도 보였다. 공통점이라면 집집마다 거리마다 하늘 높이 홍등(紅燈)을 매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등은 지우펀을 상징하는 풍경이자 타이완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단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붉은 등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이쯤에서 참기로 하고 또 다시 수치루(基山街)의 열기에 빠져든다. 지우펀의 좁은 골목은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안으로 빨아들이는가 하면 또 다시 밖으로 내뱉는다. 그렇게 우린 지산제(基山街)‘를 빠져나온다. 지우펀 투어를 마친 셈이다.

 

 

 

 

 

 

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둘째 날 : 화련의 태로각 협곡(太魯閣 峽谷)‘

 

특징 : 중앙 횡단고속도로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화련 태로각 협곡은 평균 해발 2,000m의 험준한 산과 바위에 첩첩이 둘러싸인 대만에서 4번째로 지정된 국가공원(國家公園)이다. 공원의 전체 면적은 920이고 길이가 20쯤 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이 무려 3,742m나 된다고 한다.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의 색깔이 탁한 이유는 이 협곡이 거대한 대리석 협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 정도 규모의 대리석 암반으로 구성된 협곡은 거의 없을 것이란다. 협곡(峽谷)은 침식작용에 의해 대리석과 화강암의 산이 강의 흐름을 따라 깎여져 좁은 협곡을 이룬 독특한 지형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장춘 폭포와 '태로각 협곡' 중 가장 좁은 절벽인 연자구는 '태로각'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명소라 할 수 있다. 거센 물살의 괴롭힘에 깎여나간 바위벼랑들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거기에다 산 속에 뚫린 작은 터널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과 출렁이는 다리, 폭포의 물줄기는 장엄한 '태로각'의 역사를 고스란히 관광객에게 전하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태로각이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타이야르족의 용감한 족장이었던 타로코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태로각협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타이페이역에서 기차를 타야한다. 자동차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길이 험한 탓에 기차에 비해 소요시간이 훨씬 더 걸리기 때문이다. 지하에 있는 승강장으로 가서 기차를 타려면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한 절차와 풍경을 거치게 된다. 타게 될 기차는 타이루거하오(太魯閣號)’,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나라의 새마을호쯤 되는 등급이란다. 널찍하면서도 깨끗한 열차 안에서의 풍경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간식거리를 파는 손수레가 지나다니는가 하면, 가끔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손수레도 나타난다. 예쁘장한 검표요원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열차를 타고가다 보면 심심찮게 바닷가 풍경이 차창 밖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이다. 태평양과 맞닿은 바닷가 풍경들이 눈에 담을 만 했지만 아쉽게도 빗줄기에 가려 반쪽짜리 풍경화가 되어버렸다.

 

 

 

화련까지는 3시간이 조금 못 걸리는데, 가는 도중에 일곱 번 정도 정차(停車)를 한다. 화련역 바로 전에 있는 신창역(타로코)’에서 내리라는 가이드의 연락이다. 행선지인 태로각협곡이 화련역보다 이곳 신청역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기 때문이란다. 아니 그보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화련역의 복잡함을 피해보려는 심산(心算)이 더 강했을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점심식사도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

 

 

 

 

태로각 협곡의 동쪽은 태평양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차로 약 2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만 웅장한 협곡과 아찔한 절벽 사이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날 수 있다. 그 시작지점에는 커다란 대문을 만들어 놓았다. 들머리임을 알리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판은 동서횡관공로(東西橫貫公路)‘가 전부가 아닌가. 국립공원의 입구인데도 말이다. 그게 미안했던지 그 옆에다 빗돌(碑石)을 하나 더 세우고 태로각국가공원(太魯閣國家公園)‘을 횡관공로와 함께 병기(倂記)해 놓았다.

 

 

잠시 후 길이 둘로 나뉜다. 버스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왼편은 사카당보도(神秘谷步道)라고 한다. 예전 이름은 신비곡 보도(神秘谷步道)’였는데 2001년부터 아타얄족(Atayal, 泰雅族)의 지명이었던 ‘Sagadan(어금니라는 뜻)’을 따서 사카당(砂卡礑)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보도는 사카당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로, 절벽을 깎아 만들었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달리면 왼편 산자락에 조금 전에 갈려나갔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에 홈을 파서 만든 것이, 2년 전엔가 둘러봤던 사천성의 차마고도(茶馬古道)’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 도로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널찍하다니 말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장춘사(長春祠)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장춘사는 동서횡관공로를 건설하다가 순직한 인부들의 영령을 기리는 사원(寺院)이다. 장제스 총통은 본토에서 이곳으로 쫓겨 오면서 많은 군인들을 데려왔다고 한다. 본토 수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군인들은 일반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할일 없이 밥만 축낸다는 불평들이었을 것이다. 이때 생각해 낸 것이 이 도로를 건설하는데 군인들을 활용하는 것이었단다. 국민들의 불만도 잠재우면서 숙원사업인 동서횡단공로를 만드는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어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죽었는데, 당시에 순직한 사람들의 영령을 기리는 곳이 장춘사이다.

 

 

건너편 산자락에 당나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장춘사(長春祠)가 보인다. 이곳 태로각 협곡 도로를 짓는 데는 2만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들 중에 225명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들의 명복을 장춘사를 지었는데 태로각을 찾은 여행객들이라면 한번쯤은 꼭 방문하는 명소이다. 사원의 앞에는 장춘사 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떨어지는 부챗살 물줄기가 장관을 연출한다. 4년쯤 전에 들렀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에서 만났던 큰폭포(Veliki slap = Big waterfall)’의 경관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단()을 나누어가며 떨어지는 모양새만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장춘사 뒤편 절벽에 제비집처럼 걸터앉은 사원 하나가 보인다. 선광사(禪光寺)라는 사찰인데 갈자()자로 난 트레킹 코스로 연결된단다. 이 길은 선광사 보도또는 천당보도(天堂步道)’라고 불리는데, 대만 현지에서는 트래킹 코스로 각광받는 길이란다. 선광사는 불교의 사찰이지만 특이하게도 절 내에 장개석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곳의 방문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 자체를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전망대 옆에는 빨강 일색인 다리가 하나 놓여있다. ‘장춘교라는 다리인데 장춘사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만 한다. 다리의 끄트머리에서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이 나뉘기 때문이다.

 

 

다리를 지나다보면 다리 양쪽의 계곡의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물의 색깔이 마치 우유가 섞인 것처럼 뽀얗다. 석회질이 많은 것이 그 원인라고 한다. 생물들이 살지를 못함은 물론이다. 이따가 연자구 협곡에 들어서면 물빛은 이보다도 훨씬 더 짙어진다.

 

 

다리를 건너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은 다리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로 연결된다. 계단과 전망대의 사이에는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부처님의 양 옆에는 두 분의 보살을 협시보살(脇侍菩薩)로 배치했다.

 

 

 

 

조망대에 서면 장춘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바위절벽에 굴을 뚫어 길을 냈다. 눈요깃거리뿐만 아니라 스릴까지 느껴볼 수 있는 멋진 길이지만 지금은 통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서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태로각협곡의 제2경이라는 연자구(燕子口)로 이동한다. 물론 버스를 이용해서다.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엄청나게 긴 폭포가 보인다. 마치 하늘로 승천(昇天)하는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목포의 이름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는 자그마한 댐(dam)도 보인다. 태로각협곡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만든 댐이라고 한다. 그렇게 돌려진 물은 큰 낙차를 이용해 전기(電氣)를 만들게 된단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저런 발전시설들이 모이면 대만 소요전력의 10%를 차지하게 된다니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봐야하겠다.

 

 

잘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추어서더니 가이드가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관리사무소에서 챙겨온 안전모(安全帽)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잠시 후 트레킹이 있는데 필히 안전모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언제 낙석(落石)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비록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峽谷)이지만 생각보다는 암질이 약하단다. 아까 오는 길에 보았던 산사태 현장이 그 증거란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산사태로 봉우리 하나가 거의 다 무너져 내린 광경을 보았었다. 어찌나 많이 무너졌던지 다른 산자락에 터널을 뚫어가며 아예 새로운 도로를 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위협곡에 자리 잡은 연자구(燕子口)’이다. 해발이 247m쯤 되는 연자구는 절벽 아래 부분에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긴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다. 이 구멍을 제비들이 자신들의 둥지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예전에는 많은 제비들이 살았었으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공사가 계속되면서 이곳을 찾는 제비들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앞서가던 가이드가 침 흘리지 마라는 조크(joke)를 던진다. 중국의 진미(珍味) 중 하나로 꼽히는 제비집 요리(燕窩:연와)’를 떠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연와(燕窩)의 재료는 바닷가에서 사는 재비의 둥지로 만들기 때문에 이곳과는 무관하단다.

 

 

억겁의 세월동안 폭풍우와 홍수로 등으로 침식작용을 일으켜 단애(斷崖)가 형성되었고, 또 아주 오랜 세월동안 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구멍, 즉 포트홀(Pothole)이 만들어 졌다. 저 구멍에 제비가 집을 짓고 산다고 해서 제비구멍이란 뜻의 연자구(燕子口)’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출렁다리 하나가 보인다. JTBC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의 출연자들이 건너던 다리가 아닐까 싶다. 겁쟁이 정형돈이 무섭다고 벌벌 떨다가 중간에도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서던 그 다리 말이다. 하지만 우리 팀의 일정에는 다리를 건너보는 게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연자구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곳이다. 이 바위들이 자연적인 침식작용에 의해 아름다운 지형과 독특한 협곡을 만들어 냈다. 탐방로는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태로각협곡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 협곡 쪽으로 뚫린 작은 터널들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수려하기 짝이 없다. 하긴 대만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라니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길을 걷다가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협곡이 보이고, 내려다보면 한없이 꿈틀대고 있는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은 옥빛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정도의 풍광만 갖고도 훌륭하니 만족하고 볼 일이다. 아무튼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은 장춘사 앞에서보다 훨씬 더 탁해졌다. 참고로 이곳 태로각협곡의 대리석 암반(巖盤)은 탄산칼슘의 함유량이 높아 물에 잘 녹는다고 한다. 그렇게 녹아내린 물이 우유를 연상시킬 정도로 뽀얀 색깔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잠시 후 진행방향 저만큼에 기둥들이 늘어선 근형교(斳珩橋, 진헝차오)가 보인다. 하지만 저건 다리가 아니다. 그 왼편에 보이는 다리가 근형교(斳珩橋)이며, 기둥들이 늘어선 곳은 근형교의 부수시설쯤으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도로를 내면서 깊게 파인 터널의 외곽에 교각(橋脚)을 세운 것이 여간 특이한 게 아니다.

 

 

 

근형교가 멋진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작년에 로마에 들렀을 때 보았던 성 베드로성당의 열주(列柱)들처럼 늘어선 교각들이 여간 멋스럽지가 않다. 근형교 아래의 독특하게 생긴 바위가 바로 추장암(酋長岩)‘이다. 그 모양이 인디언 추장의 옆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추장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툴툴 거리는데 토사 붕괴를 우려하여 입 부분을 메워 모양이 조금 바뀐 탓일 거라고 일행이 알려준다.

 

 

잠시 후 각종 음료와 간편한 음식 등을 파는 휴게소 하나가 나타난다. ’근형휴게소(斳珩休憩所)‘라는데 이곳 동서횡관공로공사 중에 순직한 근형((斳珩)‘이라는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휴게소란다. 휴게소 주변은 전망대와 쉼터를 갖춘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공원에는 근형((斳珩)‘의 흉상(胸像)이 세워져 있다. 그는 동서횡관공로 공사의 기술부문 총 책임자였는데, 195710월에 발생했던 지진의 피해상황을 점검하러 나갔다가 산사태에 휩쓸려 순직했다고 한다. 이에 장제스의 아들이자 역시 총통이었던 장징궈(蔣經國)가 그를 기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고 흉상을 세웠다. 공원의 옆에 있는 다리의 이름도 백룡교(白龍橋)‘에서 근형교(斳珩橋)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휴게소를 지나면 근형교(斳珩橋)‘가 길손을 맞는다. 근형공원을 조성하면서 다리의 이름까지 바꿨다는데, 다리의 초입에는 제비의 동상을 만들어놓았다. 이곳이 연자구 협곡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다리를 지나면서 뒤돌아본 풍경

 

 

협곡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폭포들도 꽤나 많이 눈에 띈다. 바위에 뚫린 구멍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힘이 제법 강하다. 아무튼 누군가는 저때만 해도 맑은 물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반원형으로 늘어선 교각들이 올해 초 스웨덴에 들렀을 때 보았던 왕궁 앞 회랑(回廊)을 쏙 빼다 닮았다. 아니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앞 열주들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옳겠다. 재질이나 마감은 많이 다르겠지만 저런 외형 하나만 갖고도 포토죤(photo zone)‘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이제 탐방로는 구곡동(九曲洞)‘으로 들어선다. 태로각 협곡의 절벽 사이를 꺾어 들어가는 아홉 개의 동굴이라 하여 구곡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해발 300m를 기점으로 하는 태로각 협곡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들은 ()‘라는 숫자를 아주 많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구곡동 또한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짜기가 있는 골짜기라는 것이다.

 

 

길은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나있다. 건설 당시만 해도 이 길은 군사용 목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도로를 낸 곳에서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경관을 보여준다.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걸쳐진 도로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그 하나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멋진 풍경화가 되어 다시 되살아난다.

 

 

용해(溶解)가 잘되는 암반이 물길에 닿아 쉽게 침식(侵蝕)되면서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지금과 같이 구불구불하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가 저런 절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에 나쁜 점도 있다. 비가 오면 낙석이나 산사태가 발생하는 빈도가 매우 잦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안전모를 그 증거로 보면 된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깎아지른 절벽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다. 소문대로 뷰포인트(viewpoint)로 각광받을 만하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절벽의 거대한 암반들이 보이는데, 저 절벽들의 대부분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태로각의 가치가 그저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이곳의 대리석을 모두 채취하여 수출할 경우 대만의 2천만 국민들이 2년 동안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라고 한다.

 

 

 

연자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 태로각 협곡에서 가장 거대한 바위인 추록 대단애(錐麓大斷崖)와 복기 대단애(福磯大斷崖)를 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각각 한 덩어리로 이루어졌는데, 길이 1.2km에 높이가 200m쯤 되는 거대한 바위들이다. 그런데 앞서가던 탐방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카메라로 잡지는 못했지만 산자락에서 원숭이가 노닐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공로를 걷다보면 새소리와 시원한 바람은 기본, 운이 좋을 경우엔 타이완 원숭이의 특이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행운이 찾아왔는데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추록 대단애(錐麓大斷崖) 앞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더 이상은 관광객의 통행이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대만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환태평양 지반 위에 위치한 섬으로 태풍과 지진이 비교적 잦은 편이다. 거기다 급한 경사면이 더해지니 낙석(落石)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항상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가끔은 통행이 금지되기도 한단다. 그런데 다음 구간은 이보다 한 수 위의 조치가 내려졌다고 한다. 아예 통행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낙석이 우려되는 구간의 보수공사가 한창이란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 글에선가 두 대단애(大斷崖)가 맞닿아 있는 부분의 하늘이 마치 대만 국토의 생김새와 흡사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대만의 북쪽 부분, 그러니까 고구마의 머리 부분을 쏙 빼다 닮았다.

 

 

협곡의 바위들은 대리석의 무늬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아름다운 문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탁하기 짝이 없다. 미추(美醜)가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 행선지인 천상(天祥)‘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잠시 후 달리는 차창 밖으로 붉은 빛 다리가 하나 보인다. 자모교(慈母橋)라는 다리인데, 이름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장개석의 아들이자 대만의 전 총통이었던 장징궈(蔣經國)가 이 지역의 순찰을 돌다가 밤이 늦어 하룻밤을 자모교 인근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이 다리의 이름을 자모교로 지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공사에 동원된 원주민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 그의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였으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믿지 않고 이곳에서 아들이 오기만을 계속 기다렸다고 하여 자모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이 자모교는 본래 현재 위치보다 30m 가량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는데, 1979년 태풍으로 유실되어 1984년에 현재의 위치에 붉은 색 기둥과 대리석으로 재건하였다고 한다. 자모교의 반대편에는 난정(蘭亭)이라는 정자가 지어져 있다. 정자가 세워져 있는 바위는 옆에서 보았을 때 그 모양이 마치 개구리 같아 예전부터 개구리 바위라고 불렸는데, 난정이 세워지자 마치 개구리가 왕관을 쓴 것 같다 하여 개구리 왕자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잠시 후 널따란 주차장에 이른다. 원주민인 아미족(阿美族)이 운영하는 휴게소가 이곳에 마련되어 있다. 길은 계속해서 협곡을 따라 위로 향한다. 대만의 동과 서를 관통하는 도로(東西橫貫公路)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막혀있다고 한다. 폭풍우로 인해 막힌 길을 다시 잇는 공사가 지금 한창이란다.

 

 

주차장에는 삼각으로 된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녹수상조(綠水賞鳥)라는 새와 이곳 녹수(淥水, Lushui)의 관광안내도와 함께 중횡공로(中橫公路), 즉 동서횡단공로(東西橫貫公路)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건설 당시의 험난했던 공사현장의 사진을 첨부해두었다.

 

 

고개를 드니 반대편 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의 한가운데를 마치 숟가락으로 긁어낸 것과 같이 골짜기가 깊게 파여 있다. 이른바 바위 협곡(峽谷)이다. 그 한쪽 바위벼랑에 길을 내놓았다. 이 길은 자연적으로 생긴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삽과 곡괭이로 파내려가 조금 더 넓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원주민들을 감시하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넓게 만든 것이란다.

 

 

 

 

천상(天祥)은 태로각협곡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서비스구역이다.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식당과 상점, 그리고 호텔까지 갖추고 있다. 일단은 식당으로 내려가 본다. 원주민인 아메이족(阿美族)이 운영하고 있는 시설들 중 하나인데 테라스(terrace)까지 갖추고 있는 걸로 보아 손님이 제법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이곳 천상에서는 아메이족들의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무희들이 수렵과 결혼, 축제 등을 주제로 노래와 군무(群舞)를 펼친다는 것이다. 특히 끝부분에 이르면 출연자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울려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단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던지 공연관람은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휴게소의 별미라는 망고주스 한잔 마시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일정이다.

 

 

태로각협곡을 둘러보고 타이페이로 되돌아 나가는 도중에 칠성담(七星潭) 해변에 들렀다. 화련을 대표하는 칠성담은 별과 관련이 많은 해변이다. 밤이 되면 빛나는 북두칠성이 가장 잘 보이고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고 해서 ‘7개의 별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칠성담(七星潭)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곳 칠성담은 시간에 따라 물색이 바뀌는 태평양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타이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한데 당장이라도 고래가 튀어나올 것 같은 바다 옆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단다.

 

 

 

빗속에 도착한 칠성담은 한마디로 광활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는 비 때문인지 파도가 무척 높다. 바람 또한 거세기 짝이 없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산을 펼칠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느긋하게 머물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수면 가까이 가보기로 한다. 바닷가로 가까이 가면 바닥에 깔린 특별한 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게 될 거라는 누군가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회색돌 표면에 누군가 직선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석화암(石畵岩)이 해안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몽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파도가 높은 탓에 물로 들어가 볼 수도 없다. 몽돌의 반출이 불가능하니 정 욕심이 날 경우 자그마한 것 한 개만 살짝 들고 가라는 가이드의 충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첫날 저녁 : 스린 야시장(士林夜市)시먼당(西門町)거리 야경

 

특징 : 타이베이 사람들에게 야시장(夜市場)은 퇴근하는 길에 잠시 들러 저녁을 해결하는 곳인 동시에,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의 부담 없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스린 야시장은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대만 제1의 야시장이다. 규모만큼 다양한 스린야시장의 먹거리는 타이완 사람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야시장 인근에 학교가 많아 젊은이들을 타켓으로 하는 물건들이 골목골목마다 가득하고 가구, 의류, 액세서리, 애완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어 구경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 또한 음식 천국인 스린야시장에는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자의 입맛이든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먹을거리들로 가득하다

 

 

 

버스는 우릴 시장 앞 대로변에다 내려놓는다. 그리고 냉큼 떠나버린다. 주차가 금지된 장소라는 얘기일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 대만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 의외의 조형물이라 할 수 있겠다. 스린야시장을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다온다는 게 설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만은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1225일은 공휴일이 분명하단다. 웬 말장난이냐고 나무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1225일을 공휴일인 제헌절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쉬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까 보았던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照明)이 들어와 있다. 은은한 잉크 빛깔의 조명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그 아름다움에 끌려 다가가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생수병이었던 것이다. 폐품(廢品)을 재활용한 설치미술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X’형 횡단보도를 건너면 스린시장(士林市場)’이 나온다. 반듯한 외관(外觀)을 갖춘 것이 제법 규모가 있는 시장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불을 밝히면 야시장(夜市場)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시장 특유의 먹거리를 찾는다면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먹거리 좌판들은 안쪽으로 100m쯤 더 들어가는 곳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시장으로 들어선다. 식료품과 잡화, 과일가게가 대부분인데, 깔끔한 외관은 물론 정갈한 것이 야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쇼핑공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기웃거릴 필요도 없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온통 먹거리 일색이다. 잠이 안 오는 밤, 특히 출출한 밤이라면 야시장을 찾아보라는 여행안내서의 문구가 참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먹거리들이 새벽 3시까지 대기하고 있다니 먹거리 천국이 아니고 뭐겠는가.

 

 

 

 

야시장의 먹거리들은 여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다음날에 필요한 활력을 충전해준다. 육지의 탱크, 바다의 잠수함, 하늘의 비행기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먹는다는 중국 민족답게 야시장에는 오만가지 먹거리들이 널려있다. 반듯한 규모를 갖춘 식당이 있는가 하면, 길가에는 크고 작은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어 온종일 발품을 팔아 타이페이를 다닌 여행자들의 예민한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요리를 파는 상인이나 가볍게 야참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시끌벅적한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대만 야시장의 핵심은 먹거리이다. 과일, 해산물, 국수, 곱창, 튀김, 고기, 밀크티 등 간식에서부터 식사로 해결 할 수 있는 요리까지 다양하다. 가격대비 양도 많고 질도 좋다. 이러한 먹거리 상점은 유명 야시장 뿐 아니라 동네 곳곳에 위치해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계절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한국돈 1000원에서 2000원 수준이면 각종 생과일 쥬스나 버블 밀크티를 마실 수 있다. 또한, 닭튀김 도시락이나 굴이 들어간 국수도 2000원 수준이면 먹을 수 있다. ()도 대체로 푸짐한 편이다.

 

 

이곳 스린 야시장은 규모가 제법 큰 시장인 모양이다. 먹거리 외에도 쇼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옷이나 생필품, 기타 잡화 등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거리에는 자성궁(慈誠宮)이란 도교 사원(道敎 寺院)도 보인다. 사림마조묘(士林媽祖廟)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천상성모(天上聖母)를 제사지내는 절로 유명하다. 자성궁의 전신은 1796(청 가경 원년) 업주 하금당(何錦堂)이 땅을 헌납하여 지은 절로 당시의 명칭은 천후궁(天后宮)이었다. 1859(함풍9) ·천 결투 때 지란가(芝蘭街)와 함께 천후궁도 불타버렸는데, 후에 하수림(下樹林)에 새로운 시가지를 건설하여 오늘날의 사림 신시가지가 되었다. 동시에 거리 중앙에 절터를 만들었으니 현재의 자성궁이란다.

 

 

 

 

골목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마 닭튀김인 지파이(鷄排)‘일 것이다. 지파이를 파는 곳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막 튀겨 낸 닭튀김에 후추 양념을 뿌려 포장해 주는데 한 조각의 크기가 손바닥 2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크다. 한 조각이 2인분 정도 되니 두 사람이 한 개를 사는 게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격도 몹시 착한 편이다.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구경하다 문어가 그려진 다코야키코너 잎에 멈춰 선다. 올봄 오오사카에서 먹어본 맛이 괜찮았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주문부터 하고 본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을 보니 문어를 작게 잘라 넣어주던 일본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작은 꼴뚜기를 통째로 넣어주고 있다. 꼴뚜기의 크기로 인해 먹기는 조금 사나왔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가격 또한 부담이 없었다.

 

 

 

 

 

음식 천국인 스린 야시장에는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자의 입맛이든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들로 가득하다. 그걸 다 맛보느라 느끼해졌다면 찻집에 들르면 된다. 버블티(珍珠奶茶, 전주나이차) 한잔 마시고 나면 또 다시 입맛이 돌아와 있을 것이다.

 

 

 

 

여행 둘째 날 저녁, 버스가 우릴 시먼당(西門町) 거리의 초입에다 내려놓는다. 태로각협곡을 다녀오느라 지친 육신을 달콤한 망고빙수로 풀어보라면서이다. ’시먼당 거리는 타이페이 최초의 보행자 전용도로로 서울의 명동이나 신촌쯤으로 여기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번화가인 때문에 타이페이 젊은 세대들의 쇼핑과 만남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가던 가이드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망고빙수 식당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걷고, 차에서 시달린 양떼들에게 목부터 축여줄 요량인 것 같다. 찾아 들어간 집은 삼형매라는 망고빙수 판매점이다. 이 집은 스무시하우스‘, ’아이스몬스터와 함께 대만의 3대 망고빙수 맛집 중 하나로 소문나 있다. 주관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코스인데 이왕에 사주는 김에 가장 맛있는 걸 골랐던 모양이다.

 

 

 

 

식당 안은 낙서천국이다. 바닥을 제외하고는 벽면과 천장 할 것 없이 온통 낙서들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이 모근 낙서가 다 한글이다. 영어 약어(略語)가 몇 보이지만 문맥으로 보아 이 또한 한국인들이 적은 게 분명하다.

 

 

 

 

망고빙수는 대만 여행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디저트 중 하나이다. 곱게 갈린 얼음과 싱싱한 망고의 조합에 아이스크림(우유푸딩을 넣기도 한다)을 토핑으로 얹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망고빙수를 먹고 난 뒤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곳 시먼딩(西門町)에도 불이 켜졌으니 야시장으로 변해있을 거라며 구경해보라는 것이다. 시먼딩(西門町)은 일제시대 유흥가가 있던 자리에 백화점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클럽 등이 들어서 있다. ’타이페이 101‘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타이페이의 유행을 선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있기에 다가가보니 거리공연이 한창이다. 아크로바트(acrobat)의 일종인데 정육면체의 쇠틀을 빙빙 돌리는 와중에도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자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타이완 연예인들이 팬 사인회를 갖거나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니 참조한다.

 

 

 

 

 

 

역시 번화가가 맞다. 거리에는 잡화와 음반, 신발, 액세서리 상점과 간식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중저가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명품 브랜드들 대부분이 타이페이 101‘을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로 옮겨갔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뒤덮인 거리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직도 많이 보인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역시 옥수수는 만국(萬國) 공통의 먹거리인가 보다. 거리를 통 털어 딱 한곳뿐인데도 옥수수 마니아인 집사람의 눈은 피해갈 수 없었다. 냉큼 쫒아간 집사람이 가격도 물어보지 않은 채로 옥수수 한 개를 주워드는 게 아닌가.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면서 말이다. 주인아주머니도 금방 알아채고 가격은 나에게 알려준다.

 

 

 

 

 

 

 

느긋이 걷다가 화들짝 놀라고 만다. 갑자기 악취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코를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범인은 취두부(臭豆腐)’ 포장마차였다. 취두부(처우더우푸, 臭豆腐)는 소금에 절인 두부를 발효시켜 석회 속에 넣어 보존한 식품으로 향이 아주 강하다. 이것을 즐겨 먹는 사람들은 냄새는 역겨워도 먹으면 고소하다. 실로 특이한 맛이다라고들 말하지만, 난 이 음식의 냄새 자체부터 싫다. 냉큼 자리를 옮겨버리는 이유이다. 참고로 대만의 취두부는 중국 본토에서 건너간 것이다. 1949년 호남성의 노병인 이명전이 가지고 건너간 것이 시초라고 한다. 후에 대만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개량하여 지금의 대만 취두부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 표면은 바삭바삭하며 부스러지기 쉽고, 내면엔 많은 구멍이 있다. 이 두부는 냄새를 맡을 때는 구린내가 독하나 막상 먹을 때는 그리 독하지 않는 대륙의 취두부와는 다르게 처음 맡을 때나 먹을 때를 막론하고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 그런 게 바로 대만 취두부의 특징이란다.

 

 

취두부는 왕치화(王致和)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청나라 강희제 때, 안후이 성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북경으로 올라온 왕치화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그만 낙방하게 되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고향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북경에서 두부장수를 하게 되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는 구질구질 내리고 두부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두부는 곰팡이가 피어났고, 밑천까지 날리게 될 판이었다. 생각하던 끝에 그는 곰팡이가 핀 두부를 소금물에 절였다. 그후 두부는 푸른색으로 변했고 먹어보니 맛이 특이했다. 그는 취두부 간판을 내걸고 팔기 시작했다. 한번 산 사람은 다시 사러 올 정도로 그의 가게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온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음식은 황제의 식단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단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번호표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타이완어 발음으로 오아젠이라고도 부르는 커짜이젠(굴전, 蚵仔煎)’을 파는 집이란다. 녹말 반죽에 신선한 굴을 넣어 기름에 부치고 마지막에 계란을 넣어 익히며, 먹을 때는 야채와 간장, 달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니 우리나라로 치면 해물전쯤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즉석에서 부친 커짜이젠을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으면 금세 더위가 잊혀질 정도란다.

 

 

 

 

 

 

 

에필로그(epilogue),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難關)에 부딪히고 말았다. 야시장에 가려는데 상인들이 대만달러(TWD)‘만 받는다는 것이다. 출국 전 대만달러를 환전해가라는 여행사의 연락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귓전으로 흘려버렸다. 그동안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지만 ’US 달러를 받지 않는 나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내 설익은 지식이 사단을 부르고 만 셈이다. 이때 구세주로 나서준 게 가이드였다. ’대만달러(TWD)‘를 빌려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환율(換率)대만달러(TWD)‘ 1원에 한화(KRW)로 약 36원이 된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1 40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사족 한마디 더, 지면을 통해서나마 우리를 안내해준 장상가이드께 감사인사를 드려본다.

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여행 첫날 오후 : 타이페이 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

 

특징 :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은 중국의 5,000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타이페이의 명소이다. 이 박물원의 역사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혁명이 청나라 정권을 전복시키고 마지막 황제 푸이가 1924년 자금성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자금성은 황제가 거처하는 공간이 아닌 박물관으로 계획된다. 이에 따라 청실선후위원회에서 자금성에 들어가 문물들을 조사·정리하였고, 19251010일에 정식으로 고궁박물원이 설립되었다. 당시 자금성 안에 보관되고 있던 문물들은 역대 왕조의 궁중 소장품들을 물려받은 것으로 화하문화(華夏文化)‘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33년 만주 사변 및 중일 전쟁 등으로 박물원의 유물들이 안전에 위협을 받게 되자, 주요 보물들은 상자에 담겨져 중국 남방으로 옮겨진다. 상해, 안순, 낙산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남경에서 보호되던 유물들 60여 만 점은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패퇴 후 안정을 찾는 듯하였으나,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내전(国共内戦)에서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가 패배하여 대만으로 쫓겨나면서 유물들을 함께 옮겨 간 것이 지금의 타이페이 고궁 박물원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참고로 고궁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알려진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다. 크기는 비록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 작지만, 소장한 문물의 양과 질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단다. 소장하고 있는 보물의 수량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2배가 넘는다면 대충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70만 점에 이르는 이 유물들은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교체해가면서 한 번에 약 15000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렇게 교체되는 것을 다 보려면 30년은 족히 걸릴 거란다. 물론 매번 교체할 때마다 모든 작품들을 교체하는 것은 아니고, 인기가 많은 몇몇 작품은 상설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작품들을 특정한 테마(thema)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고궁박물원의 정문이다. 빗줄기가 제법 거세서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공개된 자료사진으로 대신해 본다. 정문의 상단에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문장이 적혀있다.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사상인데,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평하다는 뜻으로 대만의 국부인 손문(孫文)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런 손문선생의 흔적들은 대만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빗줄기 때문에 송대와 명대의 전통 정원을 본떠 조성했다는 지선원과 지덕원, 후락원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중국의 유물들을 모아놓은 고궁박물원은 이곳 타이페이 말고도 다른 곳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북경의 있는 고궁박물원(紫禁城)‘이다. 그렇다면 고궁도 없는 이곳 타이페이의 박물원에 고궁(古宮)‘이란 이름을 갖다 붙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보물들이 중국 북경의 고궁(古宮), 즉 자금성(紫禁城)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토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국 5,000년의 역사를 잇는다는 상징성을 보여주기 위함도 잠재해 있었을 것이다. 자금성을 본떠 지은 박물원 건물의 외관(外觀)에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인다. 지나가는 길에 세간에 떠도는 얘기 하나를 옮겨본다. <북경에는 박물이 없고, 타이페이에는 고궁이 없다.> 자금성의 유물들이 얼마나 빈약했으면 이런 얘기까지 떠돌겠는가. 물론 장제스가 대부분의 유물들을 몽땅 가져와버린 게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본토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에 의한 수난과 훼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손문선생의 흔적은 박물원 안에서도 만나게 된다. 지하 1층 매표소 옆에도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긴 이곳 고궁박물원이 처음 개장했을 때의 이름도 손문 선생의 호인 중산을 따서 중산박물원이라고 불렸다니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표를 구입했다고 해서 그냥 들어갈 수는 없다. 철저한 보안검색이 다음 차례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물 등 위험 물품은 거론할 필요도 없고, 이곳에서는 뒤로 매는 가방까지도 검색대를 피해가지 못한다. 가방을 둘러맬 경우 그 높이가 어린이들의 얼굴과 엇비슷해져서 자칫 잘못하다간 어린이들이 부상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단 플래시(flash)를 터뜨리는 행위는 금지된다.

 

 

관람은 3층에서 시작해서 2층과 1층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한다. 오르내리는 불편을 최대한 줄여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유물들이 3층에 몰려있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시관은 1층에서 3층까지 총 3개 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1층은 특별전시관 및 장식품, 가구 전시장이 자리하고, 2층에는 서화, 동기, 도자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에는 동기, 청동기, 옥기, 법기,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개원 당시만 해도 상고시대부터 근세까지 시대별로 분류하여 전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관람객들이 학술적 가치가 있는 상고시대 유물들 보다는 화려하고 섬세하여 볼거리가 많은 후대 왕조의 유물들에만 관심을 갖자 아예 시대적인 구분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서주(西周) 말기에 만들어졌다는 모공정(毛公鼎)’이다. ‘()’은 세발솥을 뜻하는데, 원래 고대에 고기를 삶는 냄비였던 것이 후대에 와서는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기물이 되었다. 모공정은 안쪽에 32497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명문 중 가장 길다고 한다. 또한 문장이 고아하고 서체도 뛰어나 국보로 칭송받는다. 내용은 주나라 왕이 이 그릇을 제작시킨 모공(毛公)에게, 강기(綱紀)의 숙정(肅正), 정치의 부흥을 명()한 것이 적혀 있는데, 그 시기는 선왕(宣王, 재위 B.C.827~B.C. 782) 무렵의 일로 추정된다. 아무튼 가이드의 칭찬이 가장 많았던 작품인데도 몰려드는 관람객들 때문에 사용할만한 사진이 나오지 않아 자료사진을 올려봤다.

 

 

 

 

다음은 이곳 고궁박물원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표 유물 가운데 하나인 취옥백채(翠玉白菜)이다. 실제 배추와 크기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어찌나 싱싱한지 어쩌다 손톱으로라도 건들면 자칫 물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 작품이 유명해진 것은 옥재(玉材)의 자연미와 정교한 조탁미를 겸비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문의 청백과 자손의 변영을 의미한다는 취옥백채는 황실의 혼수용품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다른 설도 있다. 옥의 푸른 부분이 번성이 아닌 청나라를 의미해서, 배추 위에 있는 여치가 배추의 푸른 잎을 갉아먹는 것이 청나라의 쇠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청나라에서 이 취옥백채를 만든 예술가를 수배했으나 그는 이미 외국으로 도피해버린 후였다고 전해진다.

 

 

취옥백채는 북경 고궁(자금성) 내의 영화궁에 있던 보물로써, 청 말기 광서제의 왕비인 근비의 혼수용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청대의 예술가가 한 덩어리의 옥을 교묘하게 조각하여 녹색 부분은 배추 잎으로, 백색 부분은 배추의 뿌리로 조각하였으며, 잎이 구부러져 말린 모습이나 배추의 근맥이 매우 현실적이다. 위쪽에는 두 마리의 여치가 기어 올라가고 있는데, 여치는 번식력이 좋은 곤충 중 하나로, 시경에도 여치가 다른 이들의 자손 번식을 축복한다는 시가 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자손 번영을 상징했었다. 여기에 가문의 청백을 상징하는 배추가 더해져 혼수로 자주 쓰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옥의 하얀 부분인 줄기의 투명함은 신부의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그 옆에는 육형석(肉形石)이 전시되어 있다. ‘홍샤오로우혹은 동파육형석이라고도 불리는데, 홍샤오루우나 동파육은 모두 돼지고기로 만든 중국의 전통음식이다. 한국의 수육이나 족발과 비슷한 요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영락없는 고깃덩어리이다. 차가운 돌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젓가락으로 푹 찌르면 쑥 들어가면서 육즙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삶은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킨다. 비계살의 층이 분명하고, 살결이 또렷하며, 모공의 형태가 완연하여 이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설마 이게 딱딱한 돌덩어리일까 하는 의심이 들게 분명하다. 사실 이 육형석은 천연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란다. 일종의 불투명한 옥수인 마노석 위에 층층이 쌓인 무늬 결들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장인들이 매우 정교하게 가공해 낸 것이란다. 옥수 표면에는 아주 세밀한 구멍을 내어 실제 돼지의 피부와 같이 모공의 효과를 연출하였고, 최상층 부분에는 갈색으로 색을 입혀 간장에 절인 돼지 껍질의 느낌을 한층 더 살려냈다고 한다.

 

 

고궁박물원에서 전시하고 있는 모든 유물들의 앞에는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문물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 등이 쓰여 있는 작은 팻말이 놓여있다. 이 작은 설명 팻말 위에는 문물의 명칭뿐만 아니라 문물의 일련번호와 함께 2개의 한자가 있는데, 이는 각각 문물의 출처와 분류 유형을 의미한단다.

 

 

 

아래 사진들은 가이드가 집중적으로 설명을 해주던 전시물들이다. 아쉽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얼마 되지 않아 글로 옮기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다음 여행지부터는 녹음기라도 들고 다녀야 할 모양이다. 내 나이 이미 예순 하고도 다섯, 이미 경노우대의 대열에 들어섰다. 많은 걸 머릿속에 넣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나이라는 얘기이다.

 

 

 

 

아래 전시품은 옥벽사(玉僻邪)와 옥양(玉羊)이다. 벽사는 용()의 아홉 번째 아들로 사자의 몸통과 봉황의 날개, 용의 얼굴, 그리고 기린의 꼬리를 갖고 있는 전설의 동물이다. 이 벽사는 옥황상제가 매우 아끼던 동물 중 하나였는데 총애를 한 몸에 받다보니 교만해져서, 아무 곳에나 배설을 하고 다니다 옥황상제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후로 항문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만물(萬物)을 삼키고도 밖으로 배출을 하지 않는단다.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를 않으니 재물(財物)을 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귀물을 이재(理財)에 밝은 중국인들이 가만 놓아둘 리가 없다. 숭배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라는 얘기이다. 그건 그렇고 이 동물은 액막이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역할도 해주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집 모퉁이에 벽사를 세워두는 풍습이 있단다.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기념품으로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한나라 때 청백옥을 깎아 만들었으며 가슴에는 황제가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청나라 진조장(陳祖章)이 조각했다는 감람핵주(橄欖核舟)’도 눈에 띈다. 청대의 옹정제 때 궁정장인(宮廷匠人)이었던 진조장이라는 사람이 높이 1.6cm에 길이가 2.4cm에 불과한 천연의 작은 올리브 씨앗을 통으로 활용하여 조각한 작은 배()이다. 상아나 과일의 씨앗에 조각하는 것이 특기였던 진조장은 올리브 씨앗의 절반은 그대로 살려 배의 아래 부분을 만들고, 그 위쪽은 다시 안으로 파 내려가 배의 내부 및 문양들과 그 안에 타고 있는 탑승객들을 조각했다. 설치해둔 현미경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배 안에는 소동파(蘇東坡)를 비롯한 쌀알 크기의 인물 8명은 물론 여닫이 창문과 탁자, 의자, 심지어 탁자 위의 잔과 접시까지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배의 바닥에 있다고 한다. 무려 357()에 달하는 소동파의 후적벽부(後赤壁賦)’ 전문(全文)과 함께 진조장의 서관 및 제작일자까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배와 사람의 윤곽이야 어느 정도 보이지만, 아래의 적벽부는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고 정교해서, 왜 그가 당대 최고의 장인으로 손 꼽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단다.

 

 

4대 전시품 중의 하나라는 옥병풍(玉屛風)’이다. 비취(翡翠)와 오목(烏木)으로 만들어진 이 팔폭병풍(八幅屛風)’은 청나라 서태후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각 비취에는 섬세한 문양과 함께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는데, 특이하게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반면에, 안에서는 바깥쪽의 동정을 살펴볼 수가 있단다. 또한 더운 여름에 이 병풍을 통해서 바람이 들어오면 공기가 차가와진다고 한다. 빛의 색도 조각문양에 따라 달리 들어온단다. 병풍 앞에 선 가이드가 이 병풍에는 한국의 재벌 이병철씨와 얽힌 일화가 있다고 전한다. 그가 이 병풍에 흥미를 느껴 값을 물어본 일이 있는데, 이때 박물원장이 돈은 필요 없고 제주도 땅과 바꿀 수는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냥 웃자고 만들어낸 얘기겠지만 얼마나 고귀한 유물인지를 방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상아로 조각된 청나라 중기의 작품 사층투화제식합(四層透花提食盒)’이다. 상아로 만든 4단 찬합인데, 뚜껑의 무늬 장식에는 인물과 동물, , 초목, , 정자, 배 등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종이보다도 더 얇고 투명하며 정교하고 우아하게 장식된 이 상아 조각품이 정말로 음식물을 담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 조형만큼은 찬합으로서의 실용성을 구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나라 말기 극도로 사치스러웠던 서태후가 이화원으로 나들이 갈 때 딤섬 등 음식물을 담아갔다는 설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찬합의 배경이 되는 상아 부분을 매우 얇은 빗살 모양으로 조각함으로써 통풍이 잘되어 찬합 안 쪽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고자 한 노력도 보인다고 한다. 아무튼18세기 유럽인들은 이 상아 도시락을 처음 보고 환상적인 동방의 낙원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손잡이 부분에는 8명의 신선(八仙)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장수와 길조를 상징한단다.

 

 

전시관에는 몽골텐트인 게르(ger)도 설치되어 있다. 게르의 안에는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벽에다 칭기즈칸(Genghis Khan)’의 초상화까지 걸어놓았다. 북방의 몽고족 또한 중화민국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밖에도 3층에는 청동기와 동기 유물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전시되어 있다. 갑골문자나 상형문자가 적혀 있을 정도로 하나 같이 오래된 문화재들이다. 그 하나하나가 능히 국보급이라 할 수 있겠다.

 

 

 

 

 

 

아래 그릇의 안에도 꽤나 많은 숫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쓰인 글씨의 탁본(拓本)과 그 내용을 뒤편에 게시해 놓았지만 그걸 일일이 읽어볼 시간은 없다. 아니 읽어봤자 이해도 못할 게 뻔하다.

 

 

 

 

 

이 전시물들은 대부분 북경의 고궁박물원과 남경의 중앙박물관 주비처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북경 고궁박물원은 당시 자금성 내의 궁중 소장품들이고, 1933년 설립된 남경 중앙박물관 주비처는 청대의 각 이궁에 소장되어 있던 문물들을 모은 것들이다. 대만으로 옮겨져 왔을 때의 수량은 총 60여만 점, 그 후로 구매와 기증 등으로 2006년에는 소장품의 수량이 약 69만점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문물의 출처가 서로 다르고 그 종류 역시 방대한 까닭에 고궁박물원에서는 문물 일련번호로 문물의 출처와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문물 일련번호의 첫 글자를 보면 ()’, ‘()’, ‘()‘, ’()‘ 4가지 글자가 있는데, 이는 순서대로 각각 북경 고궁박물원, 남경 중앙박물관 주비처, 외부 인사의 기증, 구매 등을 뜻한다. 문물 일련번호의 두 번째 글자에서는 문물의 분류 유형을 표시하는데, 서예작품을 의미하는 ()’, 청동기의 ()’, 선본 도서의 ()’, 자금성 무영전본도서의 (殿)’, 문구류의 ()’, 불경의 ()’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문물의 설명 팻말 아래 부분에 고동(故銅)’이라고 쓰여 있는 문물이 있다면, 이는 본래 북경 고궁 박물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청동기 문물이라고 단번에 그 출처와 분류를 알 수 있다.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아닐까 싶다.

 

 

 

 

 

 

 

 

 

 

 

 

 

 

2층으로 내려오면 온통 도자기 일색이다. 백자에서 청자에 이르기까지 명품 도자기들이 빽빽하니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는 고려청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청자도 보인다. 가이드의 부연설명도 있었으니 아마 사실이었을 게다. 가슴이 뿌듯해져 온다. 오래 전 현직에 있을 때 독일의 쿠텐베르크박물관(Johannes Gutenberg Museum)’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당시 우리를 마중 나왔던 박물관장이 자기네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솔직한 고백을 해주어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에는 못 미치지만 어디 이런 일이 흔하겠는가.

 

 

아래 사진은 정요백자(定窯白磁) ‘어린이 모양 베개이다. 이 어린이 모양 베개는 일상 생활용품으로 쓰였던 것으로 생각되며 활달하고 건강하게 생긴 귀여운 아이가 저고리와 바지, 테두리가 있는 꽃무늬의 긴 조끼를 입고 비단 깔개 위에 누워 두 다리를 뒤로 교차하고 엎드려 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사랑스럽다. 이 베개를 베고 자면 이렇게 귀엽게 생긴 옥동자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사용했지 않나 싶다. 참고로 정요(定窯)’는 중국 송대의 대표적인 백자요(白磁窯)로서 주요 산지인 허베이(河北)성의 바오딩(保定)시 취양(曲陽)현 일대가 당송시절 정저우(定州) 관할이었기 때문에 정요백자라고 불렀다. 당나라 말기에 시작되어 송대에는 상아와 같은 크림색 백자를 구워 궁중에서 사용하였다. 참고로 최근(2015) 정요백자 가운데 미인침(美人枕)’이라는 작품 하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마카오에서 거행된 공예품 경매에서 미인침32천만 위안(563억원)에 낙찰됐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높은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비슷한 수준의 작품이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회전식 꽃병도 보인다.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발이 4개짜리 용 조각이 화려하다.

 

 

 

 

 

 

통통한 여인상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보인다. 당현종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의 상()이란다. 그런데 모양이 좀 이상하다. 양귀비라면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한 명이며 중국 미인을 대표하는 여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눈앞에 서있는 여자는 통통할 뿐만 아니라 얼굴 또한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당시 미인의 기준이 그랬단다. 하얀 피부에 부드럽게 풍만한 몸의 곡선, 쌍꺼풀 없이 찢어진 작은 눈이었다는 것이다. 당나라를 망하게 만든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였다지만, 요즘이었다면 시집도 못가고 늙어 죽기에 딱 맞을 것 같다.

 

 

청나라 건륭제 때의 도자기인 분채백록존(粉彩百鹿尊)‘이다. 말 그대로 백() 마리의 사슴들이 소나무 숲 사이에서 뛰노는 모습을 그려 넣은 도자기이다. 아무튼 이 그림은 청나라 황실의 수렵활동을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1681년 강희황제는 하북성의 북쪽에 수렵장을 만들고 매년 가을마다 왕공대신들과 팔기군을 이끌고 가 사냥을 했다. 대외적으로는 사냥이지만 실제로는 군사훈련으로 보면 된다. 이 수렵활동은 가경제까지 계속되다가 도광제 때 폐지되었다. 그때의 광경을 건륭제 때 도자기에 응용한 것이다.

 

 

1층으로 향한다. 올라올 때 에스컬레이터를 탔던 것과는 달이 이번에는 계단을 이용한다.

 

 

1층에는 금 공예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층의 최고 명물은 단연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이다. ‘상아다층구(象牙多曾球)’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니 참조한다. 18세기 청나라 때의 작품인데, 3대에 걸쳐 백 년 동안이나 상아를 가공하여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 진상품을 처음으로 본 황제가 이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귀신의 솜씨라고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청대 후기에는 황실에서도 서양의 예술품들이 선호되어 황궁 소속의 공방에 있던 장인(匠人)들이 민간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민간으로 흘러 들어온 장인들은 본인의 기술을 이용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일부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높은 난이도(難易度)의 신기술을 창조하는 한편, 이를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상아로 만든 노리개 역시 이러한 노력과 기술의 집약체가 아닐까 싶다.

 

 

구경 11.7cm 의 구() 안에 총 17개의 구가 들어있으며, 각 층의 구는 서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회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 층마다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서로를 관통하는 12개의 구멍이 나있단다.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당시의 기술력에 대해 감탄하게 되는데, 작은 구부터 만든 후 접착제 등을 사용하여 큰 구를 그 위에 덮어 씌워 붙인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통 상아를 바깥쪽에서부터 조각해 들어가서 안쪽에다 무려 17개나 되는 상아 구를 만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17개의 구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따로 회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단다.

 

 

옛날 궁중에서 사용하던 집기들을 진열해 놓았는가 하면 황제들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기도 했다.

 

 

 

 

 

에필로그(epilogue), 회남자(淮南子) ’인생훈(人生訓)‘새용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나온다. ’변방 늙은이의 말로 인해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기도 한다는 뜻으로 길흉화복의 변화가 잦은 것을 비유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고궁박물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물들에 딱 어울리는 얘기일 것 같아서 적어봤다. 사연은 이렇다. 모택동의 군사들에게 턱 밑에까지 쫒기는 와중에도 장제스(蔣介石)는 어렵게 가지고 온 보물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보물을 옮겨야할 수송선이 턱없이 부족했던 장제스는 피난민들을 수송한다는 핑계로 미군의 군함과 상선 등을 빌린 후, 실제로는 보물을 싣고 직속 군대와 함께 대만으로 넘어 갔단다. 모택동 군대가 미국의 배를 공격하기 어려웠을 테니 안전을 확실히 보장 받았던 셈이다. 아무튼 중국 공산당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런 국민당의 행위가 매우 부당하고 비겁하다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있었기에 중국의 국보급 보물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만일 이 보물들이 중국 본토에 남겨졌더라면 대륙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피해가지는 못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행지 : 대만 여행

 

여행일정 : ‘17. 12. 12() - 15()

여행국가 : 대만

여 행 지 : 타이페이(용산사, 고궁박물관, 101층 전망대, 스린야시장, 시먼당거리), 화련(태로각협곡, 칠성담 해변), 지우펀, 스펀, 야류 지질공원

 

개관 :

대만(臺灣 Taiwan) : 고구마처럼 생긴 36000(한국의 약 4분의 1)의 땅덩어리에서 약 2300만 명의 국민(대만성인 84%, 대륙본토 14%, 원주민 2%)이 살아가는 인구밀도(人口密度)가 매우 높은 섬나라이다. 이중 원주민은 루카이, 파이완, 부눈, 트로코, 아미 등 13개 부족으로 약 325000명에 이르고 있다. 수도는 타이페이(臺北 Taipei)로 대만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또한 대만의 발상지이자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대남(臺南 Tainan), 대만서쪽의 교통중심도시 대중(臺中 Taichung), 대중시의 중앙고속도로 끝에 위치한 대만 5대 국제항과 태로각 협곡의 도시 화련(華連 Hualien), 대만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고웅(高雄 Kaohsiung), 열대지방의 아름다움이 있는 최남단 도시 간정(墾丁 Kenting)) 등의 주요도시가 있다. 대만의 정식 명칭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하며, 중국의 내전에서 밀린 국민당이 세운나라로 쑨원(孫文)을 국부로 삼고 있으며, () 장쩌스(張介石)총통이 장기간 집권하면서 대만을 번영시켜 놓았다고 해서 장 총통의 동상과 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타이페이의 중정기념관과 중정기념공원, 충렬사, 고궁박물관 등이 장 총통 집권과 그의 사후에 건립된 관광명소이다. 하지만 집권당인 현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Tsai Ing wen)의 민진당 정부는 중정기념관의 현판인 '중정지정(中正至正)을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바꾸는 등 탈() 장쩌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찬반 양측의 충돌과 데모가 잦은 편이다.

 

타이베이(臺北, Taipei) : 타이완 섬의 북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시간을 돌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기원전 4000~2500년의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동아시아 해상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17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이 차례로 점령하며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제1 항구인 멍자(艋舺), 즉 오늘날의 완화(萬華)를 통해 중국 동남부 해안 지역의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여 타이베이 성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 후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반세기 동안 받게 되었고, 2차 대전 이후에 국민당 정부에 반환되어 1949년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타이베이의 문화는 다원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타이베이에는 중국 역사의 보고인 국립 고궁박물원과 현대의 건축 기술을 자랑하는 타이베이 101‘ 빌딩이 공존하고 있으며,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사원들과 야시장의 음식이 여행자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또한 중국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면서도 세련된 현대 문화를 향유하고 있어, 여행자들의 발이 닿는 곳 어디든 독특한 문화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국제도시이다.

 

 

 

 

 

여행 첫날 오후 : 타이페이 용산사(龍山寺)

 

특징 :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寺院)으로, 1738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중국 복건성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어 전후인 1957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이 사원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조용하고 고즈넉한 우리나라의 사원들과는 달리 매우 번잡한 도심(都心)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모시는 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절들과는 달리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 그리고 토속 신앙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용산사가 대만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이 절의 대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 때문이라고 한다. ’2차 세계대전당시의 일이다. 공습경보가 발령될 때마다 이곳 타이페이의 주민들은 용산사로 대피하였다. 부처님의 가호를 받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모기떼들이 용산사로 몰려들었단다. 모기에 시달리다 못한 주민들이 용산사에서 나와 다른 대피장소로 이동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모두 이동하자마자 용산사에 폭격이 떨어져서 절이 초토화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이 용산사로 돌아왔는데, 폭격을 맞은 절에 오로지 관세음보살상만이 아무 피해가 없더란다. 이에 주민들은 폭격을 피했던 것이 관세음보살의 가호라고 생각하여 용산사를 다시 재건하고 관세음보살을 크게 모셨다고 한다.

 

 

 

버스는 용산사의 담벼락 아래에다 우리를 내려놓는다. 사원의 정문 앞으로도 차도(車道)가 나있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는 주·정차가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튼 담벼락 아래로 난 인도를 따라 50m쯤 걷자 사원의 정문(正門)이 나타난다. 정문은 세 개로 나뉘어 있다. 가운데는 차량이 지나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반면에, 양 옆의 두 문은 그보다는 한참이나 좁게 만들었다. 신도(信徒)나 관광객 등 방문객들을 위한 문일 게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용산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전전(前展)이 길손을 맞는다. 용산사의 전체적인 구조는 중국 궁전(宮殿)의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삼진사합원(三進 四合院)’의 양식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후원(後園)까지 이르는데 문()을 세 번 통과해야 하는 건축양식이다. 산문(山門)과 조정(朝庭), 전전(前殿), 중정(中庭), 대전(大殿), 후정(後庭), 후전(後殿)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돌아올 회()’ 혹은 날 일()’자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조정(朝庭)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방금 산문이랄 수 있는 정문을 들어섰으니 말이다.

 

 

전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삼천전(三川殿)과 두 개의 출입문인 용문(龍門)과 호문(虎門)이다. 이중 삼천전의 ()’은 전각이 갖고 있는 문()의 개수를 나타내고, 천은 내 천()’자를 사용하여 전각문의 외형을 상징한단다. 참고로 이곳 삼천전의 중앙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 인왕이 서 있으며, 동서남북 방향으로는 지국천왕과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 사대천왕이 절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러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용산사의 전각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붕에 있는 화려한 색채의 장식들이 눈길을 끈다. 중국 남부와 대만의 전통 양식인 교지도(交趾陶)’라고 한다. 교지도(交趾陶)란 광동(廣東)에서 발원한 저온(低溫) 다채(多彩) 유약(釉藥) 도자기로 현재 대만 가의현에서 적극 보호 발전시키고 있는 전통공예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용산사의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 요란해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다. 담백하면서도 고풍스런 것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의견보다는 가이드가 전해준 내용을 잠시 옮겨본다. <용산사는 중국 남방 지역과 대만의 전통 건축 기술이 융합된 건축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전(前殿) 특유의 팔각 천장 장식(조정, 藻井) 및 대만 유일의 주동 용()기둥과 대전(大殿)을 떠받치고 있는 황금 기둥의 나선형태의 천정 장식 등은 매우 희소한 양식이다. 또한 지붕에 있는 화려한 색채의 장식도 빼놓을 수 없다.>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지붕과 처마는 화려하게 채색(彩色)되어 있다. 특히 지붕의 장식물들 모두는 도자기로 되어 있단다. 햇빛으로 인한 변색(變色)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란다. 가이드는 그 예로 서안(西安)의 병마총(兵馬塚)을 들었다. 무채색(無彩色)인 현재의 도용(陶俑)이 발굴 당시만 해도 화려한 색상을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중국 당국은 다른 여러 황릉의 발굴을 추후로 미루고 있다고도 했다.

 

 

오른편에는 정심폭포(淨心瀑布)’라는 인공폭포가 만들어져 있다. 저 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세속에 찌든 잡념들을 다 씻어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 뒤에 사원으로 들어가라는 모양이다. 그 맞은편에도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과 잉어 조형물이 가는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 여간 예쁘장한 게 아니다. 연못에는 여러 색깔의 인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아래 그림들은 삼천전의 양 옆으로 난 용문(龍門)과 호문(虎門)을 차례로 올렸다. 대만 사람들은 흔히 오른편으로 난 용의 입으로 들어갔다가 왼편 호랑이의 입으로 나오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단다. 가이드의 말로는 용과 호랑이가 갖고 있는 신성함의 차이 때문이라는데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는 삼천전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이런 행위는 자칫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삼가야 한단다. 그래선지 삼천전으로 들어가는 문에다 아예 울타리를 쳐놓았다.

 

 

 

 

 

용문을 통과하면 2개의 향로와 함께 대전(大殿)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나타난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脇侍菩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사찰 중앙의 가장 큰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그 안에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게 보통이다. 이때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하지만 용산사는 이와 반대로 되어 있다. 대전에다 보살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관음보살로 줄여 부르는 게 보통이다. 이는 당태종의 이름인 이세민의 자와 같다고 해서 민간에서 줄여 부른데서 연유한단다.

 

 

 

 

 

사원은 참배객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우리나라 절간이 조용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도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부처님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의 신들까지 몽땅 모시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향을 태우며 신들께 비는 게 습관화된 중국인들의 특성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용산사는 수많은 신()들과 7개의 큰 향로가 있다. 7개 향로는 관음로(불교의 대보살이자 대만 가정오신의 수존, 자비로 중생들을 구원), 천공로(천계를 다스리는 신이자 도교 최고의 신인 옥황상제), 마조로(항해의 수호여신 및 재물신인 천상성모와 천성성모, 천후, 천기 등), 수선존왕로(바다의 수호신), 주생랑랑로(순산의 신), 문창로(승진과 시험의 신), 관성로(상업과 무의 신인 관우) 등인데, 먼저 가장 인기가 좋은 천공로와 관음로를 들른 후, 후전의 가운데에 있는 마조로를 참배하고 이어서 우측의 수선존왕로, 좌측의 주생랑랑로에 향을 올리고, 다시 우측의 문창로와 좌측의 관성로를 참배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참배 방법이란다.

 

 

 

 

! 깜빡 잊을 뻔 했다. 들어서자마자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사원에서 모시고 있는 신들을 참배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용산사의 구석구석을 설명해놓은 팸플릿도 비치되어 있으니 한번쯤 들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전을 왼편에 끼고 돌면 후전(後展)이 나온다. 용산사의 가장 뒤 쪽에 위치한 후전에는 천상성모전과 문창제군전, 화타청, 관성제군전, 월노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전과 대전과는 달리 후전에는 주로 도교(道敎)의 신들이 모셔져 있다. 후전의 중앙에 위치한 천상성모전은 바다의 여신이자 재물신인 마조를 봉양하는 전이다. 그 양 옆으로 문창전과 관제전이 위치하고 있으니 문무(文武)를 좌우에 끼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성모전 안쪽 중앙에는 천상성모, 즉 마조 상이 있으며, 양 옆에는 해의 신인 태양성군과 달의 신인 태음성군이 있고, 도교의 신이자 마조의 호법인 천리안과 순풍이가 있다. 천리안과 순풍이의 도움으로 마조는 바다 위의 재난의 모습과 통곡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천상성모전 내부 우측에는 바다의 왕인 수선존왕, 권선징악을 행하는 성황예, 토지의 신이자 농업과 상업을 보호하는 복덕정신, 비와 바다의 신인 용신이 위치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순산과 육아의 신인 주생랑랑,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매인 지두부인, 잉태부터 육아까지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12노파가 자리 잡고 있다.

 

 

천상성모전을 마주보고 우측에는 학문의 신이자 수험의 신인 문창제군을 모시는 문창제군전과 의술의 신인 화타를 모시는 화타청이 자리하고 있다. 문창제군은 학문의 신이어서 고대만 해도 인기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명나라 시대에 과거시험이 새로이 정비·활성화되는 한편, 많은 이들이 과거 합격에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청나라 시기에는 대륙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화타청은 삼국지를 읽으신 분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다. 당시 외과술에 대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았으며, 후대에는 도교의 신으로 추앙 받게 된다. 또한 화타청 벽면에는 사신무 중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이 교지도로 장식되어 용산사의 동쪽을 지키고 있다.

 

 

문창제군전의 반대편에는 무신이자 재신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관우(關雲長)를 모시는 관성제군전이 있다. 관우의 양 옆으로는 관우의 장자인 관평과 그의 충성스러운 장군인 주창장군이 관우를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평은 관우와 함께 형주에서 오나라의 군대에 죽임을 당했고, 주창은 관우와 관평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알려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관우는 무신일 뿐만 아니라 재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과거 관우가 의형인 유비의 부인과 함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내렸으나 그것을 전혀 쓰지 않고 두었다가 유비의 생환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바로 떠나 버린 적이 있는데, 이러한 금전적인 청렴함 때문에 관우에게 기원을 하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준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무신과 재신 이외에도, 관우는 요괴를 퇴치하는 신, 재난을 예지하는 신, 천계를 지키는 신 등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동묘(東廟) 역시 관우를 모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묘(關廟)’이다. 관우 우측의 삼궁대제는 도교의 신으로써, 본래 천궁대제, 지궁대제, 수궁대제 셋을 합쳐 삼궁대제로 칭하나, 이 곳 용산사에는 수궁대제만 모셔져 있다. 관우의 좌측에는 불교의 지장보살이 있는데, 중생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대보살로 숭배된다. 관성제군전을 나서면 바로 옆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월하노인의 월하청이 있다. 월하노인은 흔히 알고 있다시피 남녀 사이에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전설 속의 노인으로, 월하노인의 주머니에 있는 붉은 색 실로 서로 묶인 남녀는 서로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고 전해진다. 월하청의 벽면에는 반대편 화타청과 마찬가지로 사신무 중 서쪽을 수호하는 백호가 교지도로 장식되어 있다.

 

 

 

 

 

 

 

 

 

 

 

사원의 곳곳에는 제대(祭臺)가 만들어져 있다. 제대에는 과일이나 과자 등 갖가지 제물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 제물들은 봉양한 사람들이 도로 가져가 먹는다고 한다. 자신이 불을 붙인 향 한 자루가 다 타고 난 후에 제물을 내리는데 이 제물들을 먹을 경우 복을 받은 다는 것이다.

 

 

이번 나들이는 패키지여행이다. 그러니 쇼핑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대리석 가공품과 잡화, 보석 상점을 둘러봤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리석공장이었다. 대만의 특산품 중 하나인 대리석으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정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선지 가격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가장 비싼 것은 4억 원이 넘는다니 말이다. 대리석 조각품 외에도 옥()으로 만든 팔찌와 반지들을 팔고 있었다. 하나같이 건강과 재복(財福)을 위한 것들이라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내부 사진은 생략했다.

 

 

이번 패키지여행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특전으로 특별한 식사를 내걸고 있었다. ‘금품딤섬샤브샤브이다. 이중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은 샤브샤브이다. ‘딤섬은 상하이에 출장 갔을 때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에 이미 들러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라는 JTBC-TV의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흘렸던 침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옳겠다. 지난주엔가 방영되었던 대만편에서 출연진들이 정신없이 먹어대던 샤브샤브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우선 맛도 기대에 못 미쳤을 뿐만 아니라 뭉쳐야 뜬다에서 제공되던 무제한 리필도 여기서는 없었다. 각자의 앞에 제공되는 야채와 몇 점 안되는 대패 소고기로는 고량주 한 병 비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패키지여행의 또 다른 특징인 선택 관광이 빠졌을 리가 없다. 일정에는 타이페이 101’ 전망대 투어와 전통 발마사지를 끼워 놓았다. 이중 발마사지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코스였다. 그저 피로를 풀어주는 다른 나라의 발마사지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반사요법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특정 부위의 경혈(經穴)에 자극을 줌으로써 관련된 다른 부분에까지 자극을 미치게 하는 치료요법이다. 특히 마사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평소의 질환까지 알아맞히는 그네들의 능력에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다. 가이드의 전언에 의하면 이 기술은 대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스위스의 오약석신부(본명 Fr. Josef Eugster)가 기존의 지압요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원주민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병치레를 하는 이주민들을 위해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약석신부자신의 치료 경험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라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랫동안 류마티스(rheumatism)로 고생을 하던 그가 제도권 의학으로는 효험을 보지 못했는데, 동료 선교사가 권한 '각부반사구건강안마법'으로 치료해 본 결과 3일 만에 병마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발의 안마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수많은 임상 시험을 거친 후, 그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대만에서 큰 센세이션(sensation)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고, 아시아 각국과 유럽에서까지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 자금성을 닮은 지붕이 보여 렌즈에 담아봤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꽃보다 할배(tvN 방영)’의 대만편에서 출연자들이 머물렀던 호텔이라고 한다.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금색 타일 지붕과 붉은색 기둥으로 외부를 장식했다니 내 눈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정식이름은 그랜드호텔(The Grand Hotel)’, 중국어로는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이다. 원래는 타이완 신궁이 있던 곳이었으나, 1952년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의 영부인인 송미령여사의 제안으로 호텔로 재 조성되었단다.

 

 

 

여행 내내 머물렀던 쿠바 샤또 호텔 (Kuva Chateau Hotel)’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255개의 객실을 보유한 5성급 호텔이다. 무료 Wi-Fi에 헬스클럽과 야외 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객실 또한 깨끗하면서도 널따랗다. 칫솔에 치약, 비누, 헤어·바디 샴푸는 물론이고 드라이기까지 제공되고 있어 잡다한 세면도구들을 챙겨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다. 룸에 전기포트가 비치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아침 식사 또한 최근에 들렀던 호텔 가운데 가장 뛰어났음을 보장한다. 5성급 호텔에 어울리는 시설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텔의 바로 앞에는 광명 공원(Guang Ming Park)이 있어 산책이 가능하고, 특히 5분 거리에 중리 야시장까지 끼고 있어 저녁시간대의 무료함까지 달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에필로그(epilogue), 거리의 이정표나 광고판 등은 하나같이 눈에 익은 한자(漢字)로 표기되어 있다. 변형된 한자인 반자(半字)로 쓰여 있던 중국 본토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농땡이를 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웬만큼은 알아차릴 수가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다만 표의문자(表意文字)라는 한자의 특징으로 인해 영어를 바꿔놓은 한자 앞에서 쩔쩔매야 하는 상황도 가끔은 연출되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대만의 언어는 북경어와 대만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길가에 수많은 오토바이(스쿠터)들이 주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예 주차장까지 만들어져 있다. 퇴근 때에는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서민들이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또한 아열대성 기후가 만든 특징이라고 한다. 더운 날씨다보니 걷는 게 죽기보다 더 싫은데, 이때 목적지까지 닿을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이동수단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하긴 옳은 말이다. 부피가 큰 승용차의 주차장은 시설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