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와타츠미 신사(和多都美 神社)

여행일 : ‘14. 2. 28()

 

특징 : 와타즈미 신사는 이즈하라의 팔번궁 신사와 더불어 대마도의 대표적인 신사로 꼽힌다. 풍어와 뱃길 안전을 기원하는 해신(海神), 토요타마 히매와 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해궁이다. 이곳 신사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신사문(토리이)이다바다 속에 세워진 토리이가 지상으로 이어지는데 만조 시에는 2m 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독특한 구조이다. 특히 토리이 방향이 옛 신라의 수도 서라벌과 일치하고 있는데, 와타즈미신사가 '도해궁(바다를 건너온 궁)'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을 모신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일본 대마도 아소만 입구에 위치한 와타즈미 신사. 에보시다케전망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다.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794~1185)의 율령 세칙을 적은엔기시키( 延喜式 )진묘쵸( 神名帳 )에 표기된 신사로서 아주 오랜 역사과 유서를 간직한 곳이다. 이 신사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천신(天神)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와 해신(海神)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姬命)를 모신 해궁으로서 이들에 얽힌 용궁 전설이 남겨져 있다. 신화시대에 해신인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豊玉彦尊)가 궁을 지어 와타즈미노미야(海宮)라 이름하였는데 어느날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가 잃어버린 낚시바늘을 찾기위해 이 궁으로 내려왔다가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의 딸 도요타마히메를 만나 결혼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가 출산과정을 훔쳐보지 말기로 한 약속을 어긴 탓에 도요타마히메는 낳은 아들을 갯벌에 놓아두고 해저 용궁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이때 버려두고 간 아들이 성장해서 이모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일본의 초대 천황이라고 전해진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다에서부터 신사의 본전까지 5개의 도리이(鳥居 : 일본식 솟대)가 이어져 있다는 것. 바다에 사는 신이 바다 속에서부터 도리이를 따라 신사로 올라오는 길을 표현한 모양인데, 아마 용궁으로 돌아가 버린 도요타마히메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다섯 개 도리이(鳥井)중 바다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도리이는 만조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뀐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찾았을 때는 썰물, 그것도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시간이었다.

 

 

 

 

 

 

 

토요타마히메공주가 용궁으로 돌아가면서 아들을 버려둔 곳이라고 한다.

 

 

 

 

 

신전 앞에 있는 아주 오래된 느낌이 드는 샘, 마시지 말라는 안내판이 보이는데도 바가지까지 준비해 놓은 이유가 뭘까? 어느 분의 글에서 손을 씻으면 된다고 적혀있는 것을 봤다. 그렇다면 신전(神殿)에 들기 전에 거쳐야할 의례(儀禮) 중의 하나일까?

 

 

 

일본 황태자가 직접 방문했음을 기념하는 비석(碑石). 일본 건국신화의 배경이 전해지는 신사라서 황태자가 결혼기념으로 다녀갔나 보다. 그만큼 일본사람들에게는 꽤 의미가 깊은 장소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을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한국인들뿐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미구지 자판기(自販機), 오미구지(おみくじ)란 신사나 절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사물의 길흉(吉凶)을 점치기 위한 것으로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길흉을 적은 기록지가 나오는 것이다. 먼저 종합적인 운세(運勢)를 대길·중길··소길 흉 등 다섯으로 나누고, 그 밖에 학문, 장사, 혼담, 승부사 등, 여러 가지 항목 마다 운세가 기록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정월이면 첫 참배(參拜)를 가서 가볍게 점을 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아마, 정말로 자신의 운세를 알기 위해서 이기 보다는 가벼운 놀이 감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미구지는 보통 길쭉한 종이에 적혀있으므로 읽고 난 뒤에는 보통 나뭇가지에 묶어 기원의 성취를 빈다고 한다.

 

 

 

에마(絵馬), 신사(神社)나 사원(寺院)에 기원(祈願)했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 사례로 봉납하는 그림이 그려진 작은 나무판이다. 말 등의 그림이 그려지고 나머지 여백이나 이면에다 기원의 내용이나 이름 등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판자는 신사나 사원에서 판매하고 있다. 나라시대에는 신이 탈 것으로 말(神馬 : 신사에 봉납한 말)을 봉납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은 고가(高價)라서 자주 헌납할 수가 없었고, 또한 신사나 사원들도 헌납된 말들을 돌보는 것이 어려운지라 다른 대용품을 찾게 되었는가 보다. 그 대용으로 나온 것이 나무나 종이, 흙으로 만든 말의 상이었고, 헤이안 시대부터는 나무판에 그린 말의 그림으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신전(神殿)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신사 입구의 토리이나 안내판 등을 보았을 때는 신전의 건물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쉽게 판단하지 말라고 했나 보다. 신전의 입구에는 굵은 새끼줄을 쳐 놓았다. 이곳뿐만이 아니고 일본에 있는 모든 신전들은 이렇게 새끼줄을 쳐 놓았다. 이는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단다.

 

 

 

 

 

 

 

 

 

 

 

신전을 왼편으로 돌면 편백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하늘 높이 뻗어 오른 편백나무들이 원시림을 방불케할 정도이다. 짙은 피톤치드 향이 한 가득, 삼림욕하기에 안성맞춤이겠다. 숲이 끝나면 아까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 지나왔던 도로와 만난다. 도로로 빠져나가 주차장으로 향해도 되고, 다시 신사의 정문으로 되돌아나가도 되니 알아서 할 일이다.

 

 

 

 

 

숲속에서 만난 작은 신단(神壇), 풍왕희지분묘(豊王姬之墳墓)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도요타마히코노미코토(豊玉彦尊)의 딸 도요타마히메 즉 풍왕희(豊王姬)의 분묘인 모양이다. 다른 곳에서 만났던 신단들보다 동전(銅錢)이 많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토요타마히메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만큼 각별하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