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Cambodia) 여행

 

여행지 : 캄보디아 앙코르(Angkor) 지역

여 행 일 : ‘14. 3. 22() - 3. 26()

 

전체 여행 일정

3.22() : 인천공항씨엠립공항

3.23() : 바래이 호수, 실크 팜, 민속촌

3.24() : 따프롬, 앙코르톰, 앙코르와트, 야시장

3.25() : 와트마이 사원, 툰래삽 호수, 쇼핑(상황버섯,목청꿀, 잡화, 보석)

3.26() : 씨엠립공항인천공항

 

나무 요정들이 살고 있는 비밀의 사원, 따프롬(Ta Prohm)

 

특징 : 따 프롬(Ta Prohm)’이란 브라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가 그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앙코르왕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라 칭송받는 이가 지었으니 그 규모나 컸었음은 물론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비문(碑文)에 의하면 3.140개의 마을을 관리하고 79.365명이 사원을 관리하였으며 고승(高僧) 18명과 관리(官吏) 2.740명 그리고 인부 2.202명과 무희(舞姬) 615명이 있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 방방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자연이 만들어 낸 파괴와 융합의 이중성(二重性) 때문이다. 정글처럼 나무뿌리가 사원의 기둥과 지붕을 감싸 안거나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나무를 죽일 수도 없단다. 그럴 경우에는 그나마 남아 있는 사원 자체조차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나무가 건물에 해를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오늘은 앙코르(Angkor)지역 유적들을 둘러보는 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유적지 매표소(Main Entrance)까지 와야 한다. 그리고 일단 표부터 사야한다. 1인당 20(USD), 꼼꼼히 다 둘러보고 싶다면 3일짜리(40USD)는 사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유적군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물론 1일 이용권이다. 역사 공부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니 대충 둘러보기만 할 요량이다.

 

 

 

 

 

 

 

 

 

 

매표소 앞에서 돈을 내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즉석에서 아래와 같이 사진이 콕 박힌 입장권을 건네준다.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공짜 손님을 막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아니면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해서 건성건성 할지도 모르는 캄보디아 직원들을 못 믿어서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사실 이 입장료는 전액 다 이웃나라인 베트남에서 가져간단다. 이유는 캄보디아를 침공했던 베트남군()이 철군하는 조건으로 앙코르유적의 관리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적의 구경은 툭툭이를 타면서 시작된다. 오늘의 첫 방문지는 따 프롬’, 이어서 앙코르 톰앙코르 와트를 계속해서 둘러볼 계획이다. 그런데 그 유적지들 간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전세버스를 이용할 수도 없단다. 아예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적들의 보호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때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바로 툭툭이이다. 툭툭이는 이곳 캄보디아 등 동남아의 대중적인 운송수단 중 하나이다. 바퀴 2개로 된 좁은 공간에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놓았다. 물론 동력(動力)은 오토바이다. 오토바이가 뒤편의 차체(車體)를 끈다는 얘기이다. 차창이 없이 사방으로 뻥 뚫렸기 때문에 차가 달릴 경우 시원한 바람이 맘 놓고 들어온다. 눅눅하고 더운 캄보디아 기후에서는 선풍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툭툭이를 달리면서 주변 경관에 푹 빠져본다. 툭툭이가 달림에 따라 주위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풍경은 거침이 없다. 차창이 없는 툭툭이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툭툭이는 널따란 강변을 달리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성벽(城壁)을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가 어딘지는 알 수가 없다. 설마 앞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이 캄보디아 총각이 가이드 역할까지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수시로 변하는 볼거리들을 바라보며 눈의 호사(豪奢)만 즐기면 된다.

 

 

 

 

 

 

 

 

얼마쯤 달리니까 그만 내리라고 한다. ‘따 프롬에 다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이 따 프롬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허물어져가는 성문으로 들어설 따름이다. 혹시 동쪽 탑문이 아닐까 싶다.

 

 

 

성문을 통과하고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만 따 프롬의 본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따프롬은 동서 1km에 남북 600m의 주벽(周壁)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사원이다. 한참을 걸어야만 본전(本殿)에 이를 수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본전으로 가는 숲길은 갈수록 점점 깊어진다. 그리고 나무들 또한 거침없이 굵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다 쓰러져가는 낡은 사원(寺院)이 나타난다. 쇠파이프에 의지해 겨우 서있는 건물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죽어있는 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좀 부풀려서 표현을 한다면 나무 그루터기 안에다 살림집을 차려도 될 정도로 말이다.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 나무의 크기는 더욱 굵어진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하나같이 사원을 감싸고 있다. 이는 폐허(廢墟)가 된 사원(寺院)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린 인상적인 풍경이다. 처음 사원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나무의 역할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무너져가는 건물의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공생(共生)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다.

 

 

 

 

 

건물을 뚫고 나온 나무들이 기둥과 벽을 감싸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모양새가 하도 특이하다보니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포토죤(photo zone)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나무들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모습이 없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기괴하지 않은 생김새가 없다. 신비스러움을 넘어 괴기스러움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하긴 그렇기에 영화의 배경까지 되었지 않았겠는가. 따프롬은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액션과 판타지에 모험까지 곁들인 영화 툼 레이더(Tomb Raider)’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유적이다. 여러 개의 팔이 달린 불상(佛像)이 덤벼드는 유명한 액션 장면의 배경지로 나왔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로 인한 붕괴(崩壞)로 통행이 불가능해진 곳이 많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굵기의 나무들이 보인다. 무너져가는 건물은 어찌 보면 흉한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기괴하게 보이기도 하다. 거의 다 무너진 폐허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상상을 초월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어질 당시만 해도 3천명에 가까운 승려들이 살던 큰 사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내버려졌고, 이제는 돌기둥과 천장이 무너져 내린 채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다 무너져 내린 폐허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 그리고 그 폐허의 속살까지 파고 든 나무뿌리들은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앙코르에 갈 경우 꼭 들러봐야 하는 곳으로 주저 없이 추천하는 모양이다.

 

 

 

 

 

▼ 따 프롬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원(寺院)이다. 무너진 돌 더미가 통로를 막고 있고, 거대한 쉬펑나무 뿌리는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을 완강히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1860년 발견 당시부터 사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들인데, 새가 먹이로 먹은 씨앗이 배설물을 통해서 다시 싹을 틔웠고, 그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자란 것이란다. 헌데 이 나무는 생명력이 무척 강한 모양이다. 번개를 맞아 다른 나무는 다 죽어도 이 나무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생명력이 강한 나무가 못 뚫을 게 뭐겠는가.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사원을 완전하게 포박(捕縛)해 버렸다. 나무는 지금도 자란다. 나무가 자랄수록 사원을 더 파괴시키지만 베어내거나 죽일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럴 경우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한꺼번에 그나마 남아있던 것마저도 무너져버린 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대로 살려두면서 성장을 더디게만 만든단다. 사원의 무너져가는 속도를 조금 더디게 만드는 셈이다.

 

 

 

 

 

앙크루 왓의 모든 건축물을 겉으로 보기에는 다 사암으로 쌓아 놓은 것 같지만 실상은 라테라이트(Laterite) 벽돌로 지어진 것이란다. 이 벽돌은 적토인 라테라이트 진흙에 개미집과 꿀, 이앵나무(학명은 Dipterocarpus alatus)에서 나오는 수액들을 배합하여 말려서 만든 벽돌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벽돌은 제주도의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다. 벽돌에 습기가 찰 것은 당연하다. 나무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벽돌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습기와 양분을 먹으며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가 굵어지면서 사원들을 파괴하게 되고 말이다.

 

 

 

 

 

 

 

 

 

 

 

따프롬은 캄보디아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 바르만7(1181~1220)가 어머니를 위해 건축한 사원이다. 그래서인지 사원의 중앙부에 중앙 성소(中央 聖所)’를 배치해 두었다. ‘어머니의 방이라고도 불리는 공간으로 채광(採光)이 잘되고 구멍들이 일정하게 뚫려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이 안에다 진귀한 보석들을 가득 채웠단다. 첩으로 살아야했던 모친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500kg이 넘는 황금접시가 한 쌍, 35개의 다이아몬드와 40,062개의 진주, 4,540의 루비 그리고 싸파이어 512개로 채워졌었다는 이 공간은 지금은 텅 비어있다. 그리고 담겨있던 구멍만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세월의 무상함이라고나 할까.

 

 

 

 

 

15세기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에서 남으로 쫓겨난 뒤 앙코르를 덮친 것은 시암족(태국)이 아니라 더디지만 놀라운 자연의 힘이었다. 앙코르 유적(遺跡), 아니 어느 유적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적의 복원(復原)이 진행되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 놓은 흔적들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곳 따프롬만큼은 그 흔적들을 지울 수가 없었단다. 그 흔적들을 지울 경우 유적 자체의 존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란다. 유적과 나무들이 공존해가고 있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볼상사나울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밀림에 묻혀있던 당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정점도 있다.

 

 

 

 

 

자연 앞에 인간 왜소(矮小)할 뿐이다. 그 인간이 만들어 낸 업적 또한 미미할 수밖에 없다. 열대의 밀림은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이토록 완벽히 사원을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버렸다. 밀림은 담을 허물고 탑문을 부쉈다. 그리고 회랑(回廊) 안까지 침범하여 도저히 사람이 들어 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에 경외(敬畏)를 드려야 하는 이유이다.

 

 

 

 

 

마치 거대한 문어를 닮았다. 그 육중한 다리들이 사원의 벽을 집어삼킬 듯 움켜쥐고 있다. 자연의 힘이 인간의 힘을 이기는 모양새이다. 그게 사람들의 눈에는 경외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에 주워 담기 바쁜 것을 보면 말이다.

 

 

 

 

 

사원의 거의 대부분은 사람의 통행마저도 어려울 정도이다. 곳곳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미로 속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밖에서 본 따프롬사원은 그저 숲 속의 작은 폐허에 불과했다. 그리나 나에겐 또 하나의 교훈을 얻게 해준 고마운 곳으로 남았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얼마 전 막을 내린 연속극 주인공들 이름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을 이르는 말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게 인생일진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최고로 화려하게 사원을 짓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수많은 보석으로 치장까지 했었다는 사원도 끝내는 저렇게 폐허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순리인데도 말이다. 인생 또한 저와 같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