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다케산(白嶽山, 519m) 등반
산행일 : ‘14. 2. 29(토)
산행코스 : 스모(洲藻) 버스주차장→등산로입구→안부 갈림길(神社門)↔정상 왕복→코모다(小茂田)갈림길→카미자카(上見坂) 등산로입구(산행시간 : 4시간10분)
특징 : 대마도의 남부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산으로 마주하고 있는 정상의 두 암봉이 백옥처럼 하얗다 하여 백악(白嶽) 즉, 시라다케로 불린다. 대륙계 식물과 일본계 식물이 섞인 독자적인 식생(植生)을 보여주며, 또한 고도(高度)에 따라 사계절의 다양한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천연기념물 및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등산로의 대부분은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이지만 시라다케신사(神社)의 문(門)을 지나면서부터 경사도 가팔라지고, 특히 마지막 정상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짜릿한 손맛까지 느끼게 해준다.
▼ 산행은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의 스모(洲藻)에 있는 버스주차장에서 포장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등산로입구까지 임도가 이어지나 도로 폭이 좁아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3.2Km의 도로를 꼼짝없이 걸어야한다. 지겨울 정도로 긴 진입여건이지만 그나마 참을 수 있는 것은 도로 주변에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들이 보내오는 신선한 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폭포 앞 광장까지는 포장된 임도가 이어지는데 몇 곳에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갈림길마다 빠짐없이 이정표가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단지 시라다케라 대신에 백악(白嶽)이라고 한자로 표기되어있다는 점에만 유의하면 된다.
▼ 등산로에 들기도 전부터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치솟은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나무가 편백나무가 아니고 삼나무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얻은 얄팍한 상식으로는 사라다께 산은 온통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들었는데 의외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마치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숲에서 청량(淸凉)한 기운들이 끊임없이 내품어져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임도를 따라 30분쯤 걸으면 등산로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시라다케산’을 왔었다는 인증(認證)이 필요하다면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두는 게 좋다. 이곳 외에는 ‘시라다케산’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에도 정상표지석이 없음은 물론이다.
▼ 등산로입구를 지나서도 임도는 계속된다. 그리고 15분쯤 후에는 폭포(瀑布)가 있는 광장에 이르게 된다. 만일 승용차를 가져올 경우에는 이곳에다 주차를 시켜도 될 것 같다. 폭포의 생김새가 그럴 듯해서 아래로 내려가 보니 꽃으로 장식된 제단(祭壇)이 하나 보인다. 아마 현지인들은 이런 폭포에도 신령(神靈)이 있다고 본 모양이다. 제단 앞의 유리로 만들어진 상자에 제법 많은 동전들이 들어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광장의 산자락 쪽에 세워진 산행안내도 뒤로 난 산길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45분, 임도가 끝나면서 처음으로 산길다운 산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안내판에는 이곳에서 백악산 정상까지 2Km,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표기되어 있다.
▼ 산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울창한 원시림(原始林), 그리고 그 아래에는 청정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두어 번의 지점에는 통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자연스러운 멋을 한결 더한다. 산길은 비록 넓지만 있는 그대로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난간이나 계단 등 우리나라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설물들이 일절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대마도를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마도 전체를 ‘국립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 개발보다는 보존에 역점을 두고 모든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있는 모습 말이다.
▼ 폭포에서 잠깐 올라서면 처음으로 거리표시가 된 안내판을 만나게 되는데 고민을 많이 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맨 위에는 이정표의 순번이 적혀있고, 그 아래 중간에는 정상과 등산로입구까지의 거리, 그리고 맨 아래에는 현재지점의 표고(標高)를 표시해 놓았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꼭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안내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안내판은 정상에 이를 때까지 매 300m마다 어김없이 나타난다.
▼ 세 번째 안내판, 그러니까 출발지점에서 600m정도 지나면 하늘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진 삼나무 숲 아래로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위들마다 녹조(祿租 : water-bloom)처럼 파란 이끼들로 뒤덮여있다. 그리고 주변은 온통 고사리류의 양치식물들, 잔뜩 습기를 머금은 주위 풍경은 원시(原始)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길은 마치 전혀 급할 것이 없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당연히 발걸음도 늦어진다. 새로운 풍경에 눈 맞추느라 속도를 낼 겨를이 없는 것이다.
▼ 네 번째 안내판, 출발점에서 900m지점을 지나면 너덜길로 연결되고, 이어서 거대한 바위군락이 나타난다. 바위 아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비박(bivouac)하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굴(窟)바위를 지나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10분 정도 더 오르면 시라다케 주봉과 마에다케(前嶽)의 능선이 만나는 안부에 이르게 된다. 근처에 세워진 6번째 안내판(산행출발지에서 1,500m지점, 해발 290m)를 지나면 곧이어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가면 카미자카(上見坂), 당연히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오른편에 보이는 이시노신사(石神社)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20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 후 38분이 지났다.
▼ 길가는 온통 빽빽한 나무숲이다. 어른 2~3명이 껴안아도 부족한 거목도 많이 보인다. 험준한 산들이 수호(守護)해온 고대 원시림(原始林)이 아직도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 어떤 나무들은 굵고 구불구불한 뿌리들을 지상으로 드러내놓고 있는데, 그 모습은 차라리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 세 개의 이시노신사(石神社) 도리이(門)을 지나면서 산길은 거칠면서도 가팔라진다. 그리고 그 가파름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사나워진다. 산을 있는 그대로 두려던 일본인들로 이곳의 가파른 경사(傾斜)만큼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길가의 나무들도 언제부턴가 변해있다. 울창한 삼나무 숲이 사라진 빈자리를 메밀잣밤나무와 줄참나무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끝도 없이 길게 매어진 로프에 의지해서 오르다보면 8번째 안내판(산행출발지에서 2,100m, 해발 480m)이 세워진 작은 광장(廣場)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도 역시 한쪽 귀퉁이에 자그마한 제단(祭壇)이 세워져 있다. 소문대로 일본은 역시 신사(神社)의 나라답다. 조금만 특이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제단이 세워져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만 해도 손가락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제단을 만날 수 있었다.
▼ 광장(廣場)을 지나면서 바윗길이 시작된다. 악(嶽)자가 그냥 들어간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바윗길은 매섭다. 그러나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굵직한 안전로프를 붙잡고 오르면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 로프에 의지해서 바윗길을 올라서면 잘록이 안부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암봉은 시라다케의 제2봉인 메다케(雌岳 : 일명 東岩逢)이다.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그냥 정상인 오다케(雄岳 :일명 西岩峰)으로 향한다. 하긴 길이 보인다하더라도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잘록이 안부에서 정상으로 가려면 안부의 왼편에 보이는 조그만 신사(神社)를 지난 후 왼편 바위벼랑으로 붙어야 한다. 바위벼랑을 통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안전로프도 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바위의 돌출부에 의지해서 기다시피 올라야만 한다. 신사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날카롭게 선 바윗길에 놀랐음이리라. 하긴 그들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윗길 아래는 천 길의 벼랑,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로 인해 물기를 머금은 바위들이 미끄럽기까지 하니 구태여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이시노신사(石神社) 문에서는 40분 조금 못되게 걸렸다.
▼ 위험까지 감수하며 어렵게 올라선 정상은 의외로 실망스럽다. 한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은 것이다. 거기에다 가는 빗방울을 머금은 바람까지 세차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잘하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한국의 남해안의 조망은 생각지도 못하고,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으로 유명한 대마도의 절경까지도 다음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진 탓에 비좁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오늘은 비까지 내리는 탓에 바위의 가장자리 가까이는 애당초 다가갈 엄두도 낼 수가 없다. 당연히 정상은 더욱 비좁아지고, 덕분에 뒷사람이 올라오면 빨리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막상 인증사진을 찍으려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인증(認證)을 해주어야 할 정상표지석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날씨라도 맑다면 리아스식 해안이라도 배경으로 나오겠지만, 오늘은 이마저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원망하며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가는 바윗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 하산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밟아 내려와야 한다.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신사(神社)의 문(門)을 빠져나와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아리아케(有明山, 558m)산의 들머리가 있는 카미자카(上見坂)로 가기 위해서이다. 갈림길 이정표에 카미자카까지는 12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다. 제시간에 도시락을 전달받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야만 하겠다. 지금이 10시이니 약속시간까지는 정확히 120분이 남았고, 당연히 여유를 부릴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마 도시락 전달시간에 맞춘답시고 너무 늦장을 부린 모양이다. 아니 오늘 산행시간을 제대로 파악 못한 이유도 있다. 난 오늘 산행시간이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카미자카로 가는 산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散策路)라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길이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흙길은 푹신푹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편한 게 아니다. 거기다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우거진 편백나무 숲은 신선하면서도 향긋한 피톤치드(phytoncide)를 끊임없이 보내준다. 그야말로 힐링(healing)산행이 따로 없다. 이런 길은 구태여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서서히 느긋하게 걸으며, 그 걸음걸이에 맞추어 큰 심호흡을 반복해본다. 청량한 기운이 신체(身體) 곳곳으로 퍼지며 온몸의 세포(細胞 : cell)들이 용틀임을 하며 하나둘 깨어난다.
▼ 대마도의 특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울창한 숲이다. 시라다케의 숲은 정령(精靈)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깊고 울창하다. 땅 아래는 아기 손처럼 보송보송한 이파리를 드러낸 양치식물군이 점령하고 있고, 고개를 들면 하늘 위로는 편백나무가 견고하게 뻗어 하늘을 찌른다. 보는 이마다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곳곳에 간벌(間伐)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수십 년 동안 자란 편백나무들로 인해 숲이 너무 우거진 탓이란다. 나무들이 굵어짐에 따라 그 간격이 점점 빽빽해진 탓에 충분한 햇빛과 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까지 된 모양이다. 더 이상의 성장이 멈춰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간벌(間伐)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피톤치드(phytoncide)와 음이온이 많이 나오는 시라다케 산의 숲길을 삼림욕(森林浴)을 하는 기분으로 즐기면서 1시간 조금 넘게 걷다보면 오른편 숲 사이로 주차장이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코모다(小茂田)갈림길이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평소에 아무 말 없이 내가 진행하는 대로 따라다니는 집사람까지도 ‘당연히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산행 종료지점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코모다로 내려가는 길을 무시하고 능선을 따라 곧장 나아가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산행을 같이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코모다로 내려가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제대로 길을 찾아간 사람이 겨우 10명이 못 될 정도였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국도 44호선 시라다케산 등산로입구(카미자카)
코모다갈림길을 지나서 얼마간 더 진행하면 널따란 임도(林道)가 마중 나온다. 임도를 따르다보면 임도가 자꾸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그냥 곧바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된다. 여전히 계속되는 편백나무 숲속을 즐기는 마음으로 걷다보면 드디어 국도 44호선에 이르게 된다. ‘코모다 갈림길’에서 30분 정도 걸렸다. 하산지점에서 아리아케산(有明山, 558m) 등산로 입구로 가려면 국도를 따라 왼편으로 2~3분만 걸으면 된다. 그러나 오늘 산행은 이것으로 마치기로 한다. 비록 2시간30분 정도만 더 걸으면 되겠지만, 산행을 계속해서 이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빗방울이 굵어졌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웬만한 산들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우리나라 산들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일본인들은 ‘온갖 사물(事物)에 영(靈)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산(靈山)으로 알려진 시라다케산은 일본인들이 함부로 밟기 어려운 산일 것이다. 그래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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