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나설가로 토요일 내내 고민...
스키장 계획이 취소되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지우로부터
필드나 나가자는 제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못 봤다는 얘기에 돌아보니 작년 11월에
산사람들을 찾은 뒤로는 필드에는 얼씬도 안한게 사실이다.
지우들의 배려로 빈손으로 따라다니다 보니 미안하기고 했지만
그보다는 산사람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면 믿어질라나?
오후 내내 사장님따라 수출업체를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들여다본 산행신청방은 평시와 다르게 썰렁하다.
조금은 내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 명님께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한자리 부탁해 본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출발시간 전에 버스에 승차...
앞자리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여유님이 사진을 건네준다.
산행기록을 정리해오는 나이기에
언젠가 게시판에 북한산 사진을 부탁드린 일이 있었고,
2월쯤에 전해주겠다고 하시더니 일부러 시간내어 산행에 나섰나보다.
자유인님과 유자향님께 나누어 주는데,
자기건 왜 안주냐는 달구지님... 여보슈 없는걸 어떻게 준단 말이우?
사진방에 올릴테니 제발 여유님께 시비걸지 마슈!
오늘의 사회는 유자향님...
처음잡는 사회라서인지 약간은 서툴지만 표정만은 무지 진지하다.
어찌하야 그동안 사회보던 인재들이 다 빠져 유자향님을 고생시키누?
돌아올 때는 익숙해졌겠지만 일찌감치 잠들어버린 나는 기억이 없다.
시간이 타이트하니 미리 준비하라는 명님의 말에 눈을 뜬다.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얼핏 잠이 들었나보다.
무주에서 합류한 호남팀들과 같이 도착한 동안리 주차장엔 우리외에도
덕유산을 찾은 다른 산악회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명님의 채근에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산행을 시작...
그저 남보다 처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산행 오르며,
혹여라도 고마운 여유님을 도울일이 없나 두리번 거려보지만
나보다 더 수월하게 산을 오르시는게 걱정을 한낫 기우로 돌리고 만다.
다른 산악회님들을 앞지르기도 하고, 추월당하기도 하면서 오르는 길...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
갑자기 산좋고 물좋은 내고향 순창이 생각나고...
갑자기 주위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전주고를 목표로 초등학교 때 전학간 전주에서 내 별명은 "나라우!"
전학간 첫날 아는 사람 손들라는 선생님의 말에 무심코 지껄인
"저요!"의 순창 방언이 그대로 별명으로 굳어버린 탓이다.
하기사 촌놈이... 그것도 공부못하는 촌뜨기가 방언을 밥먹듯이 쓰니
하나쯤은 놀리감이 필요하기도 했겠지?
그러나 놀리던 그 도시애들 따라잡는데는 일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시간여를 오르다가 다른 산악회님들을 앞지르고 나니
갑자기 앞에 아무도 안보인다.
길을 잘못든 것 같다는 어느님의(닉이 기억안나 죄송^.^) 의견을
전격 수용하며 잠간 쭈그리고 앉는데 진철님이 켄맥주를 내민다.
시원한김에 채면불구하고 벌컥거리는데 곧 바로 도착한 명님,
진철님을 째려보는 눈초리가 심상찮다.
아니나 다를까 명님의 잔소리에 이은 진철님의 궁시렁거리는 소리...
"목마를 때는 물보다 맥주가 더 나은데 씨~
(문법상으로는 이소리가 나와야하는데 속으로 했는지 안들렸음)"
그리고 동엽령삼거리를 콧김으로 발동기를 돌리며 오르는데
저 위에서 손을 흔들며 맞아주는 산새님이 디게 이쁘게 보인다.
언제나 봐도 명랑하고 심성이 착한 건강미인이다.
누군가 산행에서 힘들게 앞선 사람들 쉬는 곳에 도착하면 곧 바로
출발해 버리는 사람들이 제일 악질들이라는 말만 들어왔는데...
이번 덕유산에서 산과사람들에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았다.
누군지 말은 안해도 산새님 후기를 읽어보면 알수 있을걸? ㅎㅎㅎㅎ
동엽령의 능선길...
저 멀리 보이는 능선이 남덕유...
남덕유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이는 능선! 능선! 능선들!
밋밋한 산허리를 보여주려고 작심이나 한 듯 모든 능선들이
하나같이 벌거벗었다.
미끈...
철퍼덕...
지난 겨울 쌓였던 눈이 따뜻한 기온에 항복하며 졸졸...
제법 소리내어 녹아내려 갈길 바쁜 풋내기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다.
덕유산에 눈이 많기에 무주리조트가 생겼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녹아내리는 눈의 두께는 얼핏 1미터는 넘을 것 같다.
백암봉을 지나 중봉을 오르는길....
금요일 번개에 벼락맞아 쉬임없이 화장실을 드나든 토요일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가뜩이나 힘든 산행길에 다리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며 다시 켄맥주를 내미는 진철님께
초컬렛으로 답례...
자기도 하나 달라는걸 보니 베테랑인 명님도 배고품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고마운 여유님께 주는 김에 욕 안 얻어먹으려 유자향님도 하나...
힘들여 중봉에 도착하니 앞에 도착한 님들이 점심자리 찾고 있다.
여기 저기 걸터앉아 도시락을 꺼내들고...
명님, 짱구님 버너에 코펠 꺼내는걸 보니 역시 프로는 프로다.
아! 여기서 짱구님의 불평 한마디 전해볼까?
전에 백두대간 타러 지리난으로 가는 길에 경부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로
나와 있으라는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명령을 내린 님이 계셨는데도
후기에는 아무도 안썼더라나?
짱구님!
인제 원 풀었수?
다시 라면 야그로 돌아가서...
맨날 얻어먹기 미안하여 오늘은 슬그머니 물도 붓고 라면도 내 놓았겠다?
글구 오늘은 떳떳히 라면상 앞에 앉으려 마음먹는다.
그러나 오늘 새로만난 술꾼들이 있는데야 라면이 중요하랴!
진철님과 망치님... 글구 나
각자의 배낭에서 나오는 무궁무진한 술! 술! 술!
거기다 더하여 망치님의 쏘시지에 진철님의 당근 안주까지...
그래도 국물이 필요하기에 라면타령을 좀 했더니만
말 떨어지기도 전에 유자향과 짱구의 라면 대령...
역시 산사람들의 젊은이들은 무지 착하더이다.
하기사 이 맛에 골프장 안가고 산사람들 따라나선 것이라오.
향적봉을 거쳐 하산길...
다리가 풀린 나로서는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하다.
비록 풋내기 산악인이지만 다리 풀린 때는 하산길이
더 위험하다는걸 아는 까닭이다.
별 수 없이 곤돌라를 이용 무주 리조트로...
탈출조가 나외에도 10명이나 더 있어 조금은 덜 창피하다.
향적봉 슬로프에는 스키어들로 넘치고 있고
곤돌라로 향하는 내 발이 갑자기 근질거리는건
이왕이면 스키로 내려가고 싶어서일거다.
제일 고난도일텐데도 어설픈 스키어들이 눈에 띄고
부상이 우려되서 안탄다고 자위를 하며 곤돌라로 발길을 돌린다.
셔틀버스를 이용해 도착한 구천동....
화창한 날씨가 완연히 봄이다.
글구 모두들 둘러 앉은 전주집이라는 식당...
동동주에 파전, 감자전, 그리고 더덕구이를 시켜놓고
사진을 전하러 일부러 산행에 따라나선
여유님의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기념품가게에 들러 소품 하나 챙긴다.
모처럼 쏜다고 실컷 인심썼는데 늦게 도착한 달구지님이
구태여 계산을 하겠단다.
연봉 자랑 좀 했더니만 자기는 더 높다나?
그러면 그렇게 허슈!
그나저나 인심은 내가 쓰고 돈은 달구지님이 냈으니
오늘의 경제행위는 에이플러스다.
이게 바로 내가 산사람들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돌아오는 버스속....
분명히 여유님과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누군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교대역이다.
실컷 잔 덕분에 오늘 컨디션은 베리굿!
님들 반가웠습니다.
좋은 산!
좋은 님들과 함께함은
누군가가 얘기한 엔돌핀이 펑펑 쏟아지는 일이고....
이런 즐거운 산행은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건강에도 최선이겠지요.
또다시 산에서 뵈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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