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재약산행기

2005. 12. 1. 14:49

오랜만의 산행...
참으로 오랜만의 산행다운 산행이었습니다.
올 봄(3.20)에 사고를 당했으니, 장장 6개월여를 애타게 그리던 산행이었지요.
그러나 부푼 가슴 한켠에는 제 체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산에 대한 두려움이 차곡차곡...
‘초심으로 돌아가자!’ ‘중도 탈출을 수치로 여기지 말자!’


산행을 시작한 이래...
백두대간, 한북정맥, 특히 10시간이 넘는 힘든 장거리 산행을 나설 때마다
산행에 대한 두려움이 미리 신체를 접수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출발 당일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화장실에 앉아있어도 생리작용이 불가능...
배는 더부룩한데도 일을 보지 못하는 거북함... 산행내내 길섶을 기웃거릴 수 밖에...
그러나, 신통방통하게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언제 배속이 거북했느냐는 듯이 말짱했지요.


6개월여를 쉬었어도 그 버릇은 제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더군요.
‘제약산은 전에 다니던 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고,
지난 주말의 시험산행인 5시간짜리 청계산도 결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더부룩한 속에 들어간 컵라면이 기어코 뱃속을 휘져어 버립니다.


진불암으로 오를 요량으로 산행을 출발합니다.
앗불싸!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불암으로 가라는 이정표가 없군요.
그렇다고 돌아설 수도 없고...
가다 못가면 돌아올 샘으로 일행의 뒤를 쫒습니다. 이게 불행의 시작...


‘돈 냈어요?’
이정표도 만들지 않고 입장료를 받는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돌아온 조이님의 충고입니다.
난 그녀가 하는 모든 불평에 맞장구를 쳐주는데... 조금 서운합니다.


금강폭포를 지나자 서서히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서상암 무렵부터 불편하던 아랫배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으휴~ 이래저래 말썽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결, 약간은 시원해졌습니다. ᄒᄒᄒ


서상암을 지나서는 오기... 의외로 제가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학창시절 2등으로 밀린게 억울해서 다시 찾을 때까지 잠자는 것을 거의 포기했을 정도로...
후미담당 연신내가 간간히 기다리며 호흡을 맞춰주네요.
처음에는 컵라면에 채한 처자 덕분에 조금 덜 미안했지만, 회복된 뒤엔 체면이 영...
거기에 더하여 모든 분들이 천왕봉 어림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무릎이 상한 난 하산길이 지옥입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온 억새밭... 이게 아닙니다.
2년전에 들렀을 때 그 넓고 광활하던 곳이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조그만 움막이 있던 억새밭엔 규모가 커다란 주막이 이미 여러곳입니다.   불법영업...
그래도 우린 그 주막에서 막걸리 서너병 시켜놓고 아침식사를 합니다.   아이러니...
막걸리 두잔인데 그만 마시라는 조이님의 잔소리...
어? 편해서 인연을 맺었는데???? 내 기대는 이미 빗나간지 오래입니다.


암릉으로 이어진 재약산 정상을 지나 고사리분교까지는 지루한 내리막길입니다.
조이님과 도란도란 얼마전 구입한 홍천 땅에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지었다, 부수었다...
과수원도, 물론 채마밭도 꼭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평수가 자꾸 변하는 것은 ‘여자니까?’
‘아무나 부담 없이 찾아와 쉬었다갈 수 있는 공간’
‘찾아오는 사람은 내 좋아하는 술 한병 들었으면 되었고, 돌아갈 땐 무공해 채소 두어단...’
결국 우리 둘만의 공간이 아닌, 아는 이들이 찾기 쉬운 곳이면 된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천려일실...
층층폭포로 내려가도 곧 원래도로와 만난다는 얘기만 믿고 내려선게 불행의 시작입니다.
경치가 좋으면 뭐합니까? 무릎이 아파 죽겠는데... 그 험한 길이 가도가도 끝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가면 층층폭포입니다. 힘내세요’
숨이 턱에 차서 산을 오르는 여자분들의 애절한 물음엔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일행인 듯한 남자분의 대답...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맙시다’
다 왔다는 하산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쉬엄쉬엄 보조 맞춰준 모든 님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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