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白頭大幹)!
대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뜻함이니,
백두산 (白頭山 2,750m)의 병사봉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
즉 우리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
그 동안 말로만 전해 듣었고,
글에서나 접할 수 있어 왔기에 백두대간을 완주했다는 이들을 보며
그들의 성취를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나 또한 완주의 꿈을 소중히 키워왔다.
작년말 산이 좋아 산과사람들을 찾은 후 같이한 산행이 벌써 열두번...
어느정도 산행에 자신감이 붙다 보니 백두대간 종주계획을 찾아 두리번거려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산과사람에서도 백두대간 마룻금 잇기계획이 서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곧 바로 신청부터 해 놓고 나서야 체력을 걱정해본다.
산행이 코 앞에 다가올 수록 과연 내 체력으로도 가능할까로 걱정하다,
참가자 예비모임에서 완주를 눈앞에 둔 하정님과 다른 몇몇 님들로 부터
나 정도의 체력이면 충분하다는 조언에 힘을 얻고 나서야 장비를 점검해본다.
그 동안 백두대간을 위해 윈드자킷 등 기존의 장비외에도 쿨맥스, 파워스트레치,
폴라폴리스, 거기다 헤드랜턴, 스틱, 장갑, 선그라스 등등 꽤 거금을 투자했다.
이정도 정성이면 산신령께서도 가상히 여겨 안전산행으로 보상해 주시겠지?
운명의 날...1월 하고도 9일 오후....
장거리 산행에는 체력이 국력이니 점심은 영양식으로 할지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뿔싸! 두시경 주섬주섬 퇴근을 준비하는 나에게 사장님을 수행하란다.
설날을 앞두고 수출품 물류기지와 불우시설 방문을 나가니 카메라기자 대동하고
사장님 곁에 붙으라하나 그렇게는 못하지? 암 얼마나 기다리던 백두대간인데...
젊은 사무관 한명을 대신 내 보내고 온다간다 말없이 집으로 도망오는 길에
아예 헨폰도 꺼버리고 나니 목요일 출근해서 깨질망정 당장은 속이 편하다.
까짓거 짤리고 나면 밥벌이 할 곳 하나쯤 챙겨줄 산사람님이 있겠지 뭐~ ㅎㅎㅎㅎ
어차피 오늘 산행에 나서면 늦은 구정전날에 집에 돌아올것이 뻔하고
이것 저것 집안 정리를 마친 후 다시한번 장비를 점검하고 집을 나선다.
얼마전 예비모임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우리팀의 오디세이님과 악수를 시작으로...
30여명의 참가자들 면면이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눈에 익다.
이미 종주를 마쳤다는 김병장님 등 몇분 님들의 전송을 받으며 가자 지리산으로...
설연휴 고속도로 정체를 예상하고 출발시간을 앞당긴 명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버스는 잘도 잘린다. 우리 님들의 원활하고 수월한 산행을 예고라도 하는 듯...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미르님의 사회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설빔 준비에 눈코뜰새가 없을 터인데도 시어머님께서 산행을 허락해 주셨다는
바퀴님 옆지기의 인사말을 듣으며 얼마 안있으면 며느리를 맞을 나이인 나도
과연 그렇게 자상한 시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결과는 나는 며느리와 같이 술은 자주 마시겠지만 이런 산행은 못보내줄 것 같다.
또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산골 순창출신의 예쁜이 소령님을 만나 반갑고,
이콩으로 닉을 삼겠다는 승현님의 발랄함과, 닉과 연관이 있는 일을 하셨다는
마도로스님의 듬직함이 처음 뵙지만 느낌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세차게 흔들리는 차의 율동에 놀라 눈이 떠진걸 보니 아마 고속도로를 벗어났나보다.
명님의 준비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장비를 점검하고 산행을 나서니 지금은 세벽 두시...
서울 출발시간이 앞당겨 진걸 늦제야 알고 허겁지겁 나오느라 헤드랜턴을 잊고
나왔다는 여란님이 중산리에서 손전등을 새로 산것 같은나 앞일이 걱정된다.
여란님! 팀장인 제가 알려드리고 싶어도 전화번호를 몰라 별 수 없었나이다.
매표소 입구에는 야간산행 금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으나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산행을 포기할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해!
조심조심 소리내지 말구 통과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산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맨 탓인지 투박하기만 하다.
명님! 가능한 명령을 내려야 따를거 아니우?
아니나 다를까 뒤 늦게 올라온 명님曰 관리인에게 들켜 각서 쓰고 입장료 다
물고 들어왔다나?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기 만원 덜 써도 됐을건데 안됐다.
우리팀은 팀장(완존히 명예직임)인 나를 위시해 암벽훈련의 교관이시라는
현역 원사이신 오디세이님, 나이에 불구하고 평소 산에서 씽씽 나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여란님, 거기다 두말하면 잔소리인 명륜당님... 이렇게 넷이다.
이번 산행은 죽으나 사나 팀별 산행이니 말은 안해도 배테랑 두분이 아마튜어
두명을 보살펴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산의 초입...
눈은 구경할 수 없고...
포근함에 가을 등반에 나선 기분이다.
아무튼 산행을 시작한지 한시간여...
산을 오를 수록 기온이 떨어지더니 어느새 밖으로 노출된 부분이 시릴정도다
한손에 손전등을 들고 힘겹게 산을 오르던 여란님의 입에서 신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오딧세이님의 도움이 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멈춤이 잦아지고 신음의 톤은 높아만 간다.
로타리산장에서의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난 후 다시 오르는 길. 길. 길...
가도 가도 오르막 길... 끝날 줄 모르고 빙판인 오르막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글에 지리산은 바위가 별로 없다고 적혀있는걸 보았는데
그 분이 법계사에서 천왕봉을 올라본다면 그 엉터리 글 다시 고쳐쓰겠지?
겨우겨우 서로를 도와가며 도착한 천왕봉은 구름에 둘러 쌓여
행여나 일출을 볼까해본 내 자그만 소망을 무참히 짖이겨 놓는다.
그리고 그 바람, 그 추위(오딧세이님의 말로는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라나?)...
눈만 빼꼼이 내 놓은 모습으로 한컷 누른뒤 쫒기듯이 장터목으로 달릴 수 밖에 없다.
추위에 쫒겨 달려온 장터목의 취사장은 인파로 아수라장... 발디딜 틈이 없다.
옛날 산청과 함양사람들이 만들었던 노천 장터가 이랬을까?
뒤이어 각 팀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감자팀의 감자님, 달구지팀의 산나무님도 여란님 만큼이나 힘들어 하는것 같다.
아무리 비좁아도 비비다 보면 늘어나게 됨은 진리일지니 억지로 자리를 만들고...
장거리 산행에서는 체력이 최우선이라는데... 설 익은 햇반이면 어떠리!
속에 들어가면 퍼질지니... 명님이 끓인 찌게에 말아 정신없이 목으로 넘긴다.
아쉽지만 여란님, 이콩님, 그리고 우리의 막내 태자무를 백무동으로 내려보내고
촛대봉을 거쳐, 세석산장에서 잠시의 휴식... 간간히 눈발이 날린다.
칠선봉을 거쳐 선비샘에서 끓여먹는 떡라면...젓가락 잡은 손가락이 얼어 붙어
포킷에 넣어 녹인 후 다시 젓가락을 잡아야 할 정도로 추위는 비정하다.
아!
한쪽에서 그 추위에 음식을 준비하며 뒤로쳐저 도착할 줄 모르는 낭군을 기다리는
바퀴님의 옆지기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이다.
점심을 끝내자 마자 추위에 쫒겨 다시 시작한 산행....
같이 출발한 해밀님을 먼저보내고 뒤쳐저 걷는데도 산사랑님을 만났으니
님도 무지 힘든 산행을 하고 있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무릎이 아프다는 것이 나와 같은 증세이다.
힘들어 도착한 벽소령산장은 다섯시가 지나야 방이 배정된다 하지만...
추위가 싫어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간 사무실 앞은 이미 사람들로 넘치고,
한켠에 먼저 자리잡은 부지런한 바퀴님 옆지기가 웃음으로 반기주시고,
저쪽 귀퉁이에는 방에 불넣고 기다리겠다고 먼저 들어가신 해밀님이 잠들어있다.
우리팀 세명에 바퀴님 부부를 합한 저녁식사 명님의 음식솜씨가 아니드래도
시장의 반찬인데 무엇인들 맛없는게 있으랴~
반주로 시작한 쐬주가 나중에는 양주로 발전...오고가는 술잔따라 우정이 오간다.
아! 빼먹을 뻔 했다.
식사를 시작할 즈음에 도깨비처럼 나타난 의지의 한국인 우림님!
중산리 초입에서 컨디션이 안좋아 내렸갔다고 들었는데 버스속에서
한 30분 쉬고난 후 혼자서 벽소령까지 따라 붙었다나?
에이 여보슈! 그럼 잔다님 댁으로 갔을거라는 우리들의 기대는 어떻게 허우?
그리고 아무곳에나 드러누운 잠자리...
분명히 옆자리에 계셨던 바퀴님이 안보이는 아침... 내 잠버릇이 심히 걱정된다.
바퀴님 부부를 음정으로 탈출시키고 다시 출발하는 두쨋날 산행...
강한 바람에 눈뜨기 조차 힘들지만 묵묵히 종착역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그러나 삶을 살다보면 가끔은 좋은 일도 생기듯이 산행에도 좋은 일이 있나보다.
형제봉에서의 일출....
중턱에서 거암 넘어로 보이는 붉은 색으로 물든 여명이 눈부시더니만,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왕봉에 걸린 일출은 가히 환상적이었나이다.
그 붉디 붉은 태양을 가르는 가늘디 가는 어쩌면 연약하게 까지 보이는 구름의 시내....
이 아름다움의 감동을 새해 내내 간직하며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싶다.
연하천 산장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토끼봉을 거쳐 뱀사골 산장에서 점심식사...
다시오르는 계단의 높이(200미터)에 질려 차라리 화개재 언덕에서 먹구 말것을...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계단은 장난이 아니다.
글구 앞으로 지리산을 찾을 계획인 님들께 제일 중요한 정보 하나!
"뱀사골산장에서는 절대루 음식을 많이 먹지 마실 것"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
800미터인데 그 중의 600미터 정도가 나무계단이다.
오르고 올라도 끝나지 않는 계단이니 이걸 보고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이라면 어떨른지?
아무튼 떡라면으로 배채우고 오르는 계단의 저 끝에 천국이 있더이다.
아무러면 그 튼튼한 오딧세이님까정 죽는다고 낑낑거리셨을까?
반야봉을 옆에 끼고 돌아 임걸령... 돼지평전을 거쳐 노고단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라면은 끓여먹는 미르님 팀에게 소주한잔 얻어 마시고...
(뱀사골 산장에서의 점심을 포기한것은 진짜루 현명한 선택이었다우~)
또 다시 걷는 길은 강풍에 눈보라까지 겹쳐 더 이상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뒤에 곧바로 산사랑님이 따라오는걸 알기에 조금 쉬면서 님을 기다려보고 싶어도
시야에 벗어나지 않을 정도 거리에서 기다려가며 길을 인도하시는 오딧세이님에게
미안하여 의식없이 님을 따르는 내 발은 감각을 잃어 내것이 아닌지 이미 오래다.
겨우겨우 도착한 노고단대피소 왕건님팀과 미르님팀이 이미 도착해 있다.
뒤이어 감자님팀, 달구지님팀, 도사님팀이 속속 도착하시고 모인김에 단체사진...
아! 먼저 도착하신 미르팀님들!
대피소에 도착하자 마자 코앞에 내미는 커피가 너무 좋았다우~
종착역인 성삼재를 향해 달려가는 하산길...
대피소에서 쉬지않고 근육을 풀어준 덕분인지 선두그룹에 끼어 달릴 수 있다.
눈이 쌓인 덕분에 버스는 뱀사골에서 기다린다는데....
뱀사골은 여기 성삼재에서도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는데....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버스에서 쉬고자 선두그룹에 끼어 내려가는길...
다리에 힘이 빠져 자주 미끄러지다 결국에는 근육이 놀랬나보다.
겨우겨우 절뚝거리며 도착한 버스앞...
왕건님이 따라주시는 막걸리에 김치안주로 목을 축이고 버스에 올라...
가만히 의자에 몸을 묻고 이틀동안의 여정을 정리해본다.
삼십명이 중산리를 출발하여 25명이 무사히 성삼재에 도착했음은
모르긴해도 서로를 챙겨주는 산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거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눈을 좋아하고 눈내리는걸 기다리는 일은 없을것 같다.
산행 내내 나를 괴롭힌 빙판길...
눈을 뜰 수 없도록 몰아치던 강풍을 동반한 그 혹독했던 눈보라...
앞뒤 좌우를 둘러봐도 보이는건 온통 눈... 눈.... 눈...
종내는 아름답다는 미몽에서 깨어나 차라리 지겹기까지 했던 눈이었기 때문이다.
산행에 참가한 님들의 많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내 생애에서 최초로 시도한 지리산 종주이며 최고로 힘들었던 장거리 산행에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완주는 아마 불가능 했을테니까요.
임오년의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
새해에는 하시는 모든 일이 님들께서 의도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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