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지금 자서는 안되지?
지하철 의자가 편한가 싶었는데 어느새 꾸벅거렸나 보다.
오리번개로 부족한 잠 보충하려 프리랜서 특권으로 점심전에 퇴근했는데...
결국에는 침대 쿠션만 원망하다 소설책만 한권 읽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내 몸하나 내 맘대로 못함을 탓하며 결국에는 서서 갈 수 밖에 없다.
이번 산행은 좀 특이한 산행이니 나두 좀 바뀌어보기로...
남들에겐 두번짼지 몰라도 나에겐 첫 경험이다.
여성의 지휘를 받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이는데
하물며 그 여자분이 찔레꽃 같은 미인이신대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가락시장 물건 다가지고 나오라는 오더를 반가워하며
참외, 오렌지, 오이...
거기다 더하여 삼겹살에 야채... 양념된장에 마늘까지 준비하는건
미인에게 순종하는 평소의 습관 탓이다.
이정도 준비해가면 다른 넘(男)들보다
특히 갑장갑장하며 살갑게 구는 달구지보다 더 이뻐해 주시겠지?
다시 만나는 산과사람들...
명님, 서방님, 하루님, 섬소년님, 여란님, 김형희님, 달래님, 높낮이님....
앞줄에 쫘악~ 앉은 4학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또 한번의 첫경험...
팀장이 여자분들이어선지 오늘따라 사회까지 여자인 것이 오늘은 여자세상?
잔다가 좀 졸면서 사회를 보면 어떠리 즐겁기만 하면 되는 것을...
참 귀신이다.
통근버스로 출근할 때마다 주차장에 차가 도착하자마자 눈이 뜨여져서
내 예지력에 나 혼자 놀라곤 했는데...
지리산 휴계소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뜨여졌으니 나두 귀신이 다되었나보다.
하긴 내나이 지천명이니 통달할만도 하겠지?
한시간쯤 후에 출발한다 하나 한번 깬잠 다시 청하기는 힘들 것 같다.
등산화끈 고쳐 메며 다시금 마음을 독하게 고쳐 먹는건
이번 산행이 무지 힘든 코스라고 겁주는 명님 때문만은 아니고
태산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는 내 배를 바라봐야하는 평소의 아픔 탓이다.
헬기장까지 곧바르게 뻗은 오르막길은 장난이 아니다.
시작부터 씩씩거리기 미안하여 숨 고르며 얼마나 올랐나 재보는데
갈지자로 춤을 추는 헤드렌턴의 불빛이 흡사 뱀의 용트림을 보는 것 같다.
오르며 내리며 두시간쯤 걸려 도착한 씨리봉!
누구 글에 씨리봉이라고 적혀있지만 아마 싸리봉이라고 해야 맞을거다.
길가 헤드렌턴에 비추이는건 아무리 봐도 철지난 철쭉과 싸리나무뿐이니까.
비온 뒤끝이라서인지 부딪치는 나무 줄기마다 물기가 나르고
돌맹이 하나 없는 바닥은 질퍽거려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게 아니다.
잘 가던 달래님의 호흡이 갑자기 바빠지는걸 보니 또 경사인가 보다.
평지는 거침없이 잘 걸으시는데 경사만 만나면 힘들어 하신다.
산새들의 경쾌한 입놀림과 함께 여명따라 사위가 밝아오고...
꽤나 짙은 안개로 일출은 보지 못하겠으나 산행에 햇빛걱정은 덜해도 되겠다.
갑자기 나타난 바위의 위용에 가픈 호흡도 잊은 달래님 땡민을 찾는다.
땡민군! 경치 좋은 곳에서는 발바닥에 땀이 나야 훌륭한 사진사라네~
돌맹이 몇개 엎어지고 뒤집혀진 언덕에 오르니 앞서가던 명님왈 아막성터란다.
몇 명이나 보초 섰을까 지나는 길에 물으니 자기는 세명 새웠었다나?
그래 삼국시대 장군님 오래도 살아오셨수~
복성이재 못가 마주친 임도에서의 사고...
모두들 걱정하는 중에서도 산행을 포기하신 명님, 여란님, 달래님, 유자향...
님들이 있기에 산과사람들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거고...
님들이 있기에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아직은 살아갈 만한가 봅니다.
그리고 누이를 걱정해 주시는 모든 님들의 모습들 너무 보기 좋았답니다.
복성이재에서의 아침식사...
찔레꽃 팀장님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지고 온 것을 풀어 놓는다.
역시 달구지는 능력자 닷!
맨날 술마실거구 일요일은 산에 다니다보면 집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을텐데도
이렇듯 맛있는 김밥을 이렇게 넉넉히 싸주도록 와이프를 꼬셔놓다니...
라면 두개 달랑 들고온 나는 젓가락 두짝들고 눈치껏 먹어야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라면에 과일후식까지 먹다보니 누이를 따라갔던 하이에나 일행이 도착한다.
뒤에 도착한 이들을 남겨두고 또 출발...
앞서 출발한 이들을 따라잡으려 속도를 내보지만 여간 힘든게 아니다.
호흡도 호흡이지만 가는 길에 널린 나무들...
특히 산딸기 넝쿨이 영 부담스럽다.
몇번을 긁히며 나아가길 한시간여
드디어 하루님과 타임님을 지나치고 얼마 안있어 짱구일행과도 합류...
짱구일행에게 막걸리에 오미자 술까지 얻어 마시며 즐기는데
4학년이 안 일어서고 뭐하냐는 김향희님의 나무람에 겨우 엉덩이 흙을 턴다.
찔레꽃님의 얼린 맥주도 한모금 얻어 마시고...
가는 길 틈틈히 고사리 꺾는 김향희님의 뒷모습 바라보는 여유도 부려본다.
봉화산 지나 바위전망대...
전망 좋은 바위에 서니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한줄기 청량한 바람에
일상에 찌들었던 내 가슴 밑바닥의 찌꺼기까지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경관 좋고 바람시원하면 무엇하나 몸은 자꾸 무거워지는걸,
이제는 그만 중재가 나와도 되련만...
다왔다 싶으면 다시 앞에 나타나는 산! 산! 산!
광대치 못미처 양무릎에 아대를 찬 높낮이님 드디어 신음을 쏟기 시작한다.
배꼽시계(혁대에 붙은 시계인데 놓인 내배 위치가 배꼽위라서)는 아직 11시...
명님 얘기로 1시반쯤에야 도착이 가능하다 했으니 아직도 두시간 넘게 더 걸어?
점심시간을 1시반이라 말했을거라고 서로 위안해 주며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더 이상은 못간다를 외치기 서너번에 드디어 도착한 중재...
비포장도로를 내려오는데 나타나는 잘 닦인 또하나의 비포장도로...
어! 여기서는 어디로 가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디로 간다?
한참을 내려오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방님의 뒷모습이 영 미덥지 못하다.
맨땅에 주저 앉아 헨폰을 때려보지만 여기는 여기는 난청지역...
이럴 때 제일 좋은 해결책은 무대포가 아니겄수?
가다 아니면 택시불러 움직입시다 그려~
하늘아래 첫동네! 아니 중재아래 첫동네!
그 동네 어귀에 어렴풋이 우리를 살려줄 구세주(트럭)가 보인다.
서방님이 마을로 트럭쥔장에게 사정하러 간사이 높낮이님 그여 퍼지고 만다.
글구 우여곡절 끝에 트럭 빌려타구 집결지까정 내려왔으나
정규산행 종착역인 중재를 지난 여벌의 여정이었으니 반칙은 아닌줄아뢰오
반갑게 맞아주시는 여란님... 달래님...
특히 주막까지 안내해 주시고 안주와 술까정 자상히 챙겨주신 달래님...
오랬만에 받아보는 환대에 젖어 발씻으러 맨발로 나간걸 까마득히 잊고서리
점심 먹고 차에 돌아와서야 아차한거 아니겄수?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