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삼악산 산행기

2005. 12. 1. 15:02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한기... 제법 초겨울의 맛이 납니다.
이맘때 떠나는 산행은 실로 상쾌한 기분을 듬뿍 안겨주지요.
나뭇잎들이 떨어져 푸짐한 낙엽길을 만들었고, 비인 가지 사이로 쪽빛하늘이 걸려있습니다.
땀 식히기에 딱 좋은 서늘한 바람은 해맑은 물소리를 타고 쏟아져 내립니다.
가벼운 산행으로 초겨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난 삼악산으로 길을 나섭니다.


조금 일찍 나섰더니만 청량리에 도착하니 9시...약속시간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수퍼에 들러 소주 네병 챙기고...이건 내 주식이니 결코 빠뜨릴 순 없지요.
분수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윗층으로 오르니 어~ 일행들이 반가이 맞아주네요.
아마 다들 엄마에게 졸라 새벽밥 먹고 나왔을 것입니다.


사정이 있는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도착했는데 허브는 아직 건대입구랍니다.
반찬 당번이라 장만하다 늦었다는데 그럼 밥만 싸온 솔피네는 어쩌란 말인가요.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는 무정한 열차는 허브를 버려두고도 잘만 달려갑니다.


어~ 갑자기 꽃사슴의 얼굴색이 변합니다. 왜냐구요?
두 청춘남녀가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조그만 틈새도 없이 밀착하고있거든요.
약오르겠다고요?  아니랍니다. 주위야 어떻든 깔깔거리며 마냥 즐거운 열차여행이거든요.


차창으로 바라보는 초겨울의 풍경이 스산하게 느껴집니다.
멀리 옅은 물안개가 강변을 누르고, 앙상한 나뭇가지 남은 잎 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니, 벌써 봄을 기다리는 마음 옅은 신음으로 답합니다. 겨울날 정경.....


나의 춘천행 열차는 가슴설레는 추억의 열차랍니다.
조이님 만나기전, 사귀던 여인을 찾아 달려가던 낭만의 열차, 무던히도 좋은 분이었는데...
나이차를 무시하지 못해 끝내 헤어져야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살포시 차창에 어립니다.
아차~ 조이님 알면 안좋아할텐데...쉬잇~ 조이님껜 비밀입니다. ᄒᄒᄒ


강촌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의암호반에서 내립니다.
의암호의 파아란 물빛을 따라 이어진 강변도로... 이곳도 추억의 드라이브길이랍니다.
동료교수의 카페라며 간혹 들르던 곳이 의암호반에 있거든요.


상원사쪽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겨울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초반부터 땀이 비오듯 하는군요.
상원사 감로수로 목축이고 나니 또다시 깔딱고개가 어서오라 손짓합니다.
오늘도 역시 베로니카가 힘들하는군요. 속도를 늦추고 보조를 맞춰줍니다. 나 착하지요?


휘어지는 길목에 세워진 이정표가 정상이 3.5㎞라고 알려줍니다.
다른 이정표엔 누가 지웠는지 정상까지 35분이라고 적힌 흔적이 보입니다.
오르막 3.5㎞를 35분에 주파하다니, 아마 속았음에 마음상한 이가 지워버렸나봅니다.


또다시 가로막는 깔딱고개, 아예 네발로 기어오르라는 군요.
오른쪽에 의암댐과 춘천시가 보이는군요. 그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놓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운데 섬이 중도라고 자신있게 가르켜줍니다. 사실은 붕어섬인데....
정상의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컷~ 증명판으로 단체사진도 필요하지요?


정상을 지나 펼친 점심상, 바람은 조금 불어도 포근한 날씨이니 아무렇지 않습니다.
베로니카가 잡곡밥을 참 맛있게도 지어왔네요. 이젠 시집가는 일만 남았나봅니다.
무쏘님의 양주에 얼큰해진 난 하산길의 경사가 무섭지 않습니다.
웃고 떠들며 흥국사 지나, 등선폭포... 후미 기다리는 길에 탁족까지 빼 놓지 않습니다.


덧 붙이는 글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이해인 수녀님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산을 다녀오면 다시 처음의 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잇는 건
그만큼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삼악산... 산행 내내 아름답다를 외쳤고 수없이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들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말마따나 나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는 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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