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바람의 숨결이 부드러워지고 있습니다.
새 봄이 겨우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라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계절의 발걸음은 참으로 빨라 어느새 우수(雨水.2월 19일)를 지났습니다.
얼었던 대동강이 우수를 넘기면 풀린다니 내 사랑하는
산에도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겠지요?
그 봄바람, 여린 가슴으로 맞아볼까 산을 찾았습니다.
그것도 우리 산하의 등줄기인 백두의 하늘 길에서 말입니다.
주말에
비랍니다. 주중 내내 쾌청하더니만 하필이면 주말에 비라니 웬 심술이랍니까?
틈틈이 기상청 홈페이지 들락거리며 행여 오보를 외쳐보지만, 요샌
그럴 일 없을거라나요?
초저녁까지 일에 매달리다 집에 들러 몇 술 뜨고 어제 챙겨 놓은 배낭을 짊어집니다.
물론 배낭에는 집사람 챙겨준 정성어린
도시락이 들어있겠지요. 어쩜 술도 한병?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가늘던 비가 교대에 도착하니 주룩주룩... 이게 겨울비라고요?
아닙니다. 이건 숫제 한 여름 장마비입니다. 순진한 리더 曰 ‘소백산은 그쳤다는데요’
달리는 찻속, 내가 이용하는 스포츠센터의 찜질방 수준입니다.
젊디젊은 기사님, 어디 지질 곳이라도 있을까요? 아님 제가 감기
걸린 걸 눈치챘을까요?
하여튼 땀 한바가지를 쏟고, 그리고 난 끈적거림 속에서 파김치가 되어 갔습니다.
2시30분에 출발이랍니다. 아직도 밖은 가는 비가 추적거립니다.
아까보다는 많이 가늘어졌기에 다시 한번 오보이길 빌어봅니다.
헛된 메아리를 기다리며...
한 밤중이라 매표소는 문이 꼭꼭 닫혀있습니다. 국립공원... 어쩜 3,200원 벌었습니다.
충북과 경북, 두개 道의 자랑거리? 연화봉 오르는 길은 관리가 ‘지나치게’잘돼 있습니다.
천문대까지 올라도 신발에 흙이 묻지
않을 정도로 길이 잘 포장돼 있습니다.
흠이 있다면 그게 바로 흠일 것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좋기 때문입니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는 시작부터 경사가 제법입니다.
초반부터 숨이 턱에 차 오르는데, 큰일입니다. 부어오른 기도 때문에 호흡이
힘들거든요.
며칠 전부터 괴롭혀 오던 감기가 기어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한점 빛 없는 어두운 하늘에 간절한
바램 띄우는 건, 그만큼 큰 백두의 집념 때문일 것입니다.
목이 부은 게 무슨 대수냐고요? 아니랍니다. 저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답니다.
몇년 전 갑자기 부어오른 후두개가 기도를
압박하여 숨이 끊어져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갑자기 닥친 일이라 마취도 없이 목을 째고 산소를 공급해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지요
토요일이라 찾아간 곳이 삼성의료원...진찰대에서 숨이 끊어졌기에 응급조치가 가능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두번째 목숨은 즐겁게
살겠다며 요즘은 노는데 목숨건답니다)
아무리 크게 입을 벌려도 가픈 호흡은 가라앉질 않습니다. 또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맞잡은 두손에 힘이 들어가고, 또 한번
완주를 빌어봅니다. 하다못해 비로봉까지라도...
속도를 늦추니 그나마 조금 나아지네요. 한사람 두사람 앞으로 보내드립니다.
겨우
천문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군요. 다행이 제 뒤에도 몇 명이 더 있답니다.
제1연화봉을 향해 다시 출발하나 초반부터 어지럽습니다.
빙판길에 뒤뚱거리니 어지럽고, 흰 눈에 속아 허벅지까지 빠지는 허방에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방향 잘못 잡은 선두 때문에 졸지에 후미로 밀리는 억울함 때문에 어지럽습니다.
뒤떨어져 헤매는 후미그룹,
조금전 선두가 길 잃었던 삼거리에서 다시금 헤매고 있습니다.
백두꾼이라는 자부심으로 용감하게 선두로 나섰지만 누군가 ‘천문대 가늘
길’이라네요. ᄒᄒ
지루한 나무계단 끝에 제1연화봉은 결쳐 있습니다. 아직 사위는 어둡고 빗방울은 굵습니다.
연화봉을 내려와 비로봉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도대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굳어진 걸로 봐서는 분명히 맞는데? 갑자기 눈이 허리춤까지 차오르니
아닌가봅니다.
몇번을 앞으로, 뒤로... 결국에는 각개격파로 뒤지고서야 그 길이 옳다는 걸 알아냅니다.
두어번의 길 잃음, 두어번의 미끄러짐 끝에 우린 비로소 비로봉에 도착합니다
주목관리소에서의 아침은 그런대로 진수성찬입니다.
따뜻란 라면이 있으니까요.
소주로 반주도 하고, 딸기로 후식까지 한 후에야 국망봉으로 향합니다.
이 때쯤 아주 잠깐 시야가 트입니다.
밋밋한 흙산에 바위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소백산은 부드러운 선으로 연속된 산이기에 산릉에 오르면 곧 여체의 굴곡미가 연상됩니다.
비로봉쪽 능선의 한눈에 드러나는 육감적
특징은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다시 올 일이 드문 국망봉에서 사진 한컷~ 이번 구간에서 유일한 사진입니다.
상월봉 밑, 두갈래 길에 리본이 골고루 걸려있습니다.
고민없이 무조건 정상으로 올라섭니다. 그리곤 가파른 하산길을 기다시피
내려갑니다.
길 잘못들어 헤매느라 고생도 했지만, 고치령 가는 길은 밋밋한 능선길이라 편합니다.
다만 이정표가 어지러워 헷갈리는데,
일행중에 지도와 경험자가 있어 다행입니다.
소백산을 종주할 때 주의해야할 것 중 하나가 이정표를 믿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비로봉을 지날 때부터 질퍽거리기 시작한 흙탕길은 늦은맥이재에서 극에 달합니다.
기우뚱거리다, 끝내는 엉덩방아를 찟고, 그러면서
특징없는 능선을 끝없이 오르내립니다.
늦은맥이재에서부터 내리던 눈이 마당치에선 눈보라로 변해있습니다. 손발이 얼어옵니다.
일행들을
채근해 배낭을 뒤져 술과 햄등 먹거리를 찾아냅니다. 저체온증 예방이 필요하거든요.
강추위에는 열량이 높은게 제일인데 술과 햄보다 더 좋은게
어디 있겠습니까?
지도를 봅니다. 고치령까진 아직도 한시간 사십분, 맥이 풀리지만 그래도 출발해야합니다.
거기다 20분을 또 오르막이라나요?
그러나 마주친 길은 의외로 수월했고 또 짧았습니다.
고치령은 시멘트 포장이 된 옛스런 길입니다. 왜 버스가 못 올라왔을까 의심이
들정도로요.
시멘트 딱딱함이 무릎에 모이는 듯 통증에 걸음걸이가 자연스레 뒤뚱거려집니다.
어차피 늦은 몸이니 한가롭게 걷습니다.
건너편 산속 활엽수가 제 색깔 찾음을 반기는데, 길가의 버드나무가 봄소식을
전해주는군요.
봄이 오기는 조금 멀었는데도 버들가지가 복슬복슬한 버들을 줄줄이 매달고 있습니다.
새벽 2시30분에 출발해서 오후 3시30을 조금 넘겨 도착했으니 13시간을 걸었군요.
비와 눈 때문에, 아침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줄곧 걷기만 했으니 꽤 오래 걸었나 봅니다.
산행을 마치며, 힘들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준 저 위에 계신분께 감사기돌 드리며
목숨까지 걸어가며 하늘길을 이어가는 게
지금까진 백두에 대한 집념으로 생각해 왔는데
어쩌면 미련한 고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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