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절은 아름답습니다.
풍경소리도 염불소리도 신록으로 스며들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연록에서 진록으로 변해가는 참으로 좋은
계절에 부처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난 산속에 들었습니다. 꼭 부처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요.
산사의 숲길
걷다보면, 내 가진 번뇌 잠시라도 날려보낼 수 있을지 누가 아나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의 후유증... 골이 지끈거립니다.
물론 속도 쓰리지만
조이님께는 내색할 수가 없습니다. 금주령 내릴지도 모르니까요.
수건만 달랑 들고 냇가로 내려갑니다. 이리도 맑은 물, 어찌 비눗물로 흐릴
수 있나요?.
봄의 계곡은 온유하고, 흐르는 물도 거칠지 않고 물가 풀잎은 보드랍습니다.
앗 차거~ 손가락 끄트머리, 돌 틈에 고인 초록빛
물속엔 묵색 조약돌이 옹기종기....
어~ 송사리 몇 마리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드는 걸 보니 동네 경사라도 있나봅니다.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산행을 나섭니다.
발걸음이 왜이리 경쾌하냐구요? 저의 팔에 그녀가 매달려있거든요.
산의 초입...
꽃보다 고운 연둣빛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킁~킁~ 연둣빛 잎들의 싱그러운 비린내가 온 산에 가득하다 못해 산머리를
넘어섭니다.
새봄의 연둣빛 잎들은 조금씩 짙은 초록을 품어갑니다. 아마 여름을 예비하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녀린 잎들이
부대낌이 간지럽다 애교를 부립니다. 사르르~사르르~
산허리쯤에서 왼편에 편백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수백 그루가 어디 하나 뒤틀린 곳 없이 하늘로 쭉쭉 뻗었습니다.
오른편엔
활엽수인 팽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들이 새 잎을 틔워 연둣빛 터널을 만드네요
양 숲의 머리끝에 짊어진 푸른 잎은 하늘에 맞닿았습니다. 열린
하늘가로 구름 한점 둥둥...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언젠가 들렀던 선암사 뒤깐에 붙어있던 종이쪽지가 새삼스럽게
떠오름은 왜일까요.
어쩜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조그만 인연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이랍니다.
늦은 봄 숲길 걷다보면 모든 번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조차도 허망한 욕심...
숲의 넘치는 산소와 석가탄신일의 의미, 조그만 깨달음이 함께 해준 여행...
"하루를 잘 보내면 달콤한 잠을 이루고, 인생을
잘 보낸 이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어디선가 읽어본 글귀대로 오늘 저녁엔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귓가에 맴도는 창불(唱佛)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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