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절은 아름답습니다.
풍경소리도 염불소리도 신록으로 스며들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연록에서 진록으로 변해가는 참으로 좋은 계절에 부처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난 산속에 들었습니다. 꼭 부처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요.
산사의 숲길 걷다보면, 내 가진 번뇌 잠시라도 날려보낼 수 있을지 누가 아나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의 후유증... 골이 지끈거립니다.
물론 속도 쓰리지만 조이님께는 내색할 수가 없습니다. 금주령 내릴지도 모르니까요.
수건만 달랑 들고 냇가로 내려갑니다. 이리도 맑은 물, 어찌 비눗물로 흐릴 수 있나요?.


봄의 계곡은 온유하고, 흐르는 물도 거칠지 않고 물가 풀잎은 보드랍습니다.
앗 차거~ 손가락 끄트머리, 돌 틈에 고인 초록빛 물속엔 묵색 조약돌이 옹기종기....
어~ 송사리 몇 마리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드는 걸 보니 동네 경사라도 있나봅니다.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산행을 나섭니다.
발걸음이 왜이리 경쾌하냐구요? 저의 팔에 그녀가 매달려있거든요.
산의 초입... 꽃보다 고운 연둣빛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킁~킁~ 연둣빛 잎들의 싱그러운 비린내가 온 산에 가득하다 못해 산머리를 넘어섭니다.
새봄의 연둣빛 잎들은 조금씩 짙은 초록을 품어갑니다. 아마 여름을 예비하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녀린 잎들이 부대낌이 간지럽다 애교를 부립니다. 사르르~사르르~


산허리쯤에서 왼편에 편백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수백 그루가 어디 하나 뒤틀린 곳 없이 하늘로 쭉쭉 뻗었습니다.
오른편엔 활엽수인 팽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들이 새 잎을 틔워 연둣빛 터널을 만드네요
양 숲의 머리끝에 짊어진 푸른 잎은 하늘에 맞닿았습니다. 열린 하늘가로 구름 한점 둥둥...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언젠가 들렀던 선암사 뒤깐에 붙어있던 종이쪽지가 새삼스럽게 떠오름은 왜일까요.
어쩜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조그만 인연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이랍니다.
늦은 봄 숲길 걷다보면 모든 번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조차도 허망한 욕심...


숲의 넘치는 산소와 석가탄신일의 의미, 조그만 깨달음이 함께 해준 여행...
"하루를 잘 보내면 달콤한 잠을 이루고, 인생을 잘 보낸 이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어디선가 읽어본 글귀대로 오늘 저녁엔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귓가에 맴도는 창불(唱佛)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봄산을 보고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소나무의 '진 초록’과 활엽수의 색‘연 초록’두 가지 초록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진초록의 산에 점점이 박힌 연초록...마치 폭죽을 터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신록의 산은 날씨에 관계없이 아름답습니다.
맑으면 눈이 부시고, 비가 오면 머금은 물기가 반짝입니다.
어쩌다 옅은 안개라도 낀다면, 그야말로 수채화를 보는 듯 하겠지요.

 

신록에는 땅에서 솟구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청정의 에너지입니다.
그 기운을 제대로 받기 위해 전 또 산을 찾았습니다. 숲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요.

 

주말이지만 도래기재는 텅 비어 있습니다.
지난달 서너대의 관광버스가 지키던 곳도, 얼굴 씻으며 깔깔대던 동굴도 비어있습니다.
2시30분 출발선상에 섭니다. 헤드랜턴에 비추이는 얼굴 표정들이 다들 밝군요.
비가 안 온다는 안도감에서 나오는 은근한 미소일 것입니다. 깊은 행복감에서 우러나오는...

 

구룡산을 향합니다. 초반부터 속도들을 내는군요.
헉헉대는 숨결이 턱에 차 오릅니다. 오로지 앞사람의 발뒤축만 보며 달립니다.
하기사 별빛 한점 없는 어두운 밤에 다른 것이 보일리도 없지만 볼 여유도 없습니다.
바람에 휘둘리는 짙은 안개가 발목어림에서 바람결 따라 물결무늬를 연출해 냅니다.
제법 조도가 높은 랜턴의 불빛까지도 흐리게 만들어 갈길 바쁜 산나그네의 발목을 잡는군요

 

두시간쯤 걸었나요? 쉬지도 않고 내빼는 선두가 어딧냐고 외치는 이가 보입니다.
아서라~ 앞선 사람도 뒷선 사람도 힘들기는 매 한가지인걸요.
바람결에 후두둑 떨어지는, 나뭇잎 위에서 잠자던 시원한 빗방울이 그나마 작은 위로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숨결들을 안고 도착한 구룡산, 조그만 입석이 지키고 있습니다.
어둠에 쌓인 정상은 볼품이 없습니다. 잠깐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출발입니다.

 

곰넘이재를 내려올 즈음해서 여명이 찾아옵니다.
배가 고파 미치겠는데 아직은 이르다지만, 슬그머니 술을 내놓습니다. 안주? 전입니다.
뭔가 들어가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깁니다. 5시30분, 벌써 세시간을 걸었습니다.
부지런한 산새들의 합창... 누군가 도심의 새소리보다 맑고 밝게 느껴진다고 말하는군요.
또 다른 누군가는 맑은 공기 때문에 음이 잘 전달되어서 그렇다합니다.
날이 밝자 길가의 들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보드라운 들풀에 얼굴 대보고 싶네요.

 

6시20분, 30여분의 힘든 오르막길 끝에 신선봉 정상입니다.
기진맥진한 우리를 경주 손씨들의 묘가 반깁니다. 성묘? 어떻게 할까요? 잡초만 무성합니다.
깃대배기봉, 벌써 8시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더 이상은 못 참습니다.
펑퍼짐하게 주저앉아 아침상을 차립니다. 뒤에서 서성이는 몇몇은 오는 길에 해치웠을까요?
또다시 두어병의 소줄 내놓습니다. 푸짐한 안주거리에 술이 술술 잘도 넘어갑니다.
추위에 떨던 얼굴들이 소주한잔에 발그레해집니다. "술은 에너지다" 제 주장이랍니다.

 

9시40분, 부소봉을 지날즈음 저멀리 천제단이 보입니다.
납작한 활엽수들로 우거진 능선에 듬성듬성 고사목들이 나도 있다 자태를 뽐냅니다.
밑에 보이는 건 하단? 천왕단, 장군단은 정상부위에 있는데 밑에 있다고 하단인 모양입니다.
그 옆엔 밀양 박씨의 묘가 있군요. 태백산이 영산이어서 일까요? 묘가 꽤 많습니다.
등산복 차림의 행락객일까요? 묘 옆엔 무지하게 많은 음식을 펼쳐 놓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10시, 드디어 천제단에 도착합니다.
저멀리 함백산이 한눈에 들어오는군요. 그리고 다른 이름 모를 군봉들도...
산허리에 운해가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능선에 지천으로 널린 철쭉의 군락...
화사하지 않은 태백산의 철쭉은 기후변화가 무쌍한 탓인지 꽃 색깔이 연분홍에 가깝습니다.
고산 철쭉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지요.
다음주에 열리는 철쭉제에 맞추느라 이제 막 꽃몽오리를 열고 있습니다.

 

천제단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오렌지 한 알, 찹쌀떡 네 개, 그리고 오이와 방울토마토, 그리고 소주 한 병...
우선 고시래... 절도 해야겠지요? 우쒸~ 절 받는 곳에 웬 도인이 앉아 있습니다.
음복으로 한잔 쭈욱~ 문득 소원을 빌지 않았음을 생각해냅니다.
오랫동안  믿어온 하느님외의 다른 신에 익숙하지 않았나 봅니다.
차라리 같이하는 선남선녀들 시집장가나 빨리 가게 해달라 빌어줄걸 그랬나요?

 

부지런한 몇몇 "이제 내려가죠?"
“뭘 그렇게 서둘러요? 자주 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다시 주저앉아 과일 안주에 소주 몇잔 곁들입니다. 철쭉 꽃향 실은 바람이 볼을 건드립니다.
쨍쨍 햇살아래서도 연초록 신록의 미소들이 피어납니다. 이마엔 땀방울 하나 열려있습니다.

 

꽃과 제대로 눈맞춤도 못하고, 가슴 깊숙이 계절의 향기조차 들이켜지 못했는데...
봄꽃의 끝물이며, 여름을 여는 철쭉이 우리를 반기는데 벌써 내려가자니요.
산 정상에 한데 모인 철쭉이 일제히 꽃몽오리를 여는 모습은 하늘을 떠받치는 향로같습니다.
천제단의 향로처럼 신성하기까지 합니다

 

태백산 철쭉제!
이달 하순이면 철쭉은 한꺼번에 꽃잎을 열고 꽃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인파가 태백산을 찾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수난을 겪을까요.
길가에 죽어있는 이식한 주목의 시체들과, 골다공증에 걸린 늙은 주목들에 가슴 저려옵니다.

사람을 포함은 모든 생물들, 삶과 죽음은 백지장 한장 차이... 무상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산천이 변합니다. 아니 아침저녁으로...
갈색의 나뭇가지들은 이제 푸른 잎을 한껏 머금었습니다.
그야말로 신록(新綠)의 물결입니다. 그 물결은 청초하고 마냥 싱그럽습니다

 

청초하고 싱그러움을 호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숲으로 드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 숲 옆으로 물 넘치는 계곡이라도 흐르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사랑을 키워 가는 가정의 달... 하고도 어버이날...
비록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길을 나서지는 못하지만,
난 산으로 나섭니다. 푸르름을 더해가는 앙증맞은 새 잎이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꽃을 봐야 꽃을 그릴 수 있듯이, 산으로 들어야 연초록의 추억을 그릴 수 있을테니까요.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이 있다하여 찾아 나선 곳...
빗속에 도착한 주왕산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습니다.
제법 샌 빗줄기를 피해 민박촌 입구 취사장에 자릴 잡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요.

 

어버이날 부모님께 재롱부리느라 한병, 조이님 아버님 기분 맞추느라 한병...
술에 취해 도착한 버스 속에서 또 한병... 제가 잠을 잤었나요? 술이 취해서 기억이 영~
아직도 술이 덜 깼지만 반주는 해야지요? 이번엔 와인으로... 아침부터 비몽사몽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산행입니다.
대부분의 산행에선 비가 오면 우선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본인은 비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소풍 나온 것일까요? 배낭은 어디다들 버렸는지 맨몸에 우산을 쓰고 있군요.

 

주왕산 입구... 두가지에 놀랍니다.
매표소의 요금표...와~ 3,500원이나 됩니다. 문화재 관람료가 많아서랍니다.
대전사에 뭐 볼만하게 있나요? 있다해도 산에 왔으니 문화재엔 관심이 없습니다.
문화재관람은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전문가 조언이 있을 경우에야 의미가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대전사 뒤쪽에 우뚝 솟은 암봉의 위세에 눌려 튀어나온 입술을 곧 오므리고 맙니다.
안개구름에 허리 아래를 감춘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입니다. 안개 아래로 내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여백에 나룻배 한척 띄우고 난간에 걸터앉은 영감님께 낚싯대 하나 쥐어드립니다.

 

내원마을을 향해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오늘의 산행은 여태껏 경험했던 산행하곤 완전히 다릅니다.
계속 평지...길은 부드럽고 숲이 빽빽하니 훌륭한 산책로입니다.
계곡을 따라 아무리 올라가도 고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땀이 날리 없는 신선 놀음입니다.
그럼 주변의 경치가 시시하냐고요?  기암 괴석이 즐비하고 계곡의 물소리는 싱그럽습니다.

 

잘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면 바윗덩어리들은 점차 커져 갑니다.
갑자기 물소리가 거세지고, 빗줄기에 가린 너머로 거대한 암벽이 보입니다.
그 아래 놓인게 제1폭포입니다. 계곡을 둘러싼 까마득한 절벽과 웅장한 바위들...
제2폭포...제3폭포... 물살에 팬 커다란 동굴들에 저절로 탄성을 지릅니다. 계곡미의 극치...

 

그러나 누가 폭포의 이름을 지었을까요? 
이리도 아름다운 폭포에 걸맞은 이름하나 지을 수 없었을까요? 싱거운 사람들...

 

구비 구비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천년 묵은 때를 벗겨 내듯 시원합니다.
비 때문에 매미소리. 새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폭포소리 하나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 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한적함까지...혹시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이 이렇지 않을까요? 고요와 평화...

 

내원동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보입니다.
얼마안가 허름한 민가가 보이고 곁에 조금 큰 낡은 건물이 있네요. 내원분교랍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고 민박집으로 마지막 역할을 하고 있군요. 1박3식에 4만8천원입니다.

 

비싸다구요? 걱정마세요.
건물 앞에 "참 좋은 인연 입니다."라고 써진 판자가 원인?. 예약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안에 들어서니 고장난 풍금에 난쟁이 의자... 주인장이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줍니다.

 

따뜻한 난로를 버리고 정상쪽으로 올라가봅니다.
솔방울을 맞히려면 달을 보고 쏘랬다고, 마을을 알려면 끝까지 가봐야 하니까요.
오르는 길목에 드문드문 초췌하지만 정겨운 민가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민박한다고 써 있는데, 과연 잠이 올까요? 전 "아니올시다"입니다.
냇가엔 물이 넘치고, 주변엔 밭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잡초만 무성합니다. 직업전환?
방아취라는 이름에 끌려 들어간 헛간(주인장껜 미안!), 아~ 써! 동동주로 행구어냅니다.

 

비 오는 날 숲길을 거닐면 누군가 뒤에서 따라 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곳을 다녀오면 뒤에 뭔가를 남겨 놓고 온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슴에 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목, 쏟아지는 폭포소리에 넋을 잃습니다.

 

문화재 관람료가 아까워 들른 대전사 앞마당의 수국이 비가 무거워 고갤 숙이고 있습니다.
초입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암봉을 배경삼아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물론 수국도 함께입니다.

지난주 후반 충청도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 때아닌 폭설이 내리고
한겨울 같은 추위가 몰아닥치는 바람에 계절이 잠시 거꾸로 가는 듯했습니다.


말 그대로 '봄이 왔으나 봄답지 않았다'(春來不似春).
하지만 봄은 동장군의 시샘을 아랑곳하지 않는 법이지요.
대지에 흠뻑 밴 봄기운의 완숙함에 비하면 꽃샘 추위는 앙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내렸던 눈은 대부분 녹아 땅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눈 녹은 물은 봄을 더욱 살찌우고 풍성케 하는 자양분이 됐습니다.


봄빛 잔치가 시작됐다는 남녘의 화사한 봄소식을 뒤로하고 난 북녘으로 떠났습니다.
꼭 꽃이 아니더라도 봄을 불러온 빛깔, 봄이 흠뻑 담긴 빛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그리고 난 그 곳 오봉산에서 봄기운 완연한 연초록 푸르름 듬뿍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의 안내로 자기소개가 이어지는데, 창밖의 하늘이 어둡습니다.
일기예보는 오전에 비가 올 확률이 60%이지만 그러나 비가 올 것 같지는 않군요.
지난번 내린 눈에 춘천가도 주위 들과 산이 촉촉이 젖어 창밖에는 봄기운이 피어오릅니다.


물어물어 잘못 도착한 소양호 입구입니다. 아저씨왈 배후령은 입산통제라나요?
오늘의 리더 베모양 부지런히 헨펀을 때립니다. '못 들어갑니다' '교섭중입니다' '통과했습니다'
구불구불 전형적인 강원도 도로를 올라 배후령에 도착합니다. '산불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한번만 싹~싹~' '저렇게 담배피우는 사람이 있는데도요?' 하필 그때 담배를 피울게 뭡니까.
그래도 우린 꿋꿋이 시산제 잘 지내고 입산을 합니다. 사교력의 승리입니다.


남의 눈에 안띄게 빨리 올라가라는 아저씨의 말에 깔딱고개를 쉬지도 않고 채 오릅니다.
숨이 턱에 차오르니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느새 머리위에 해가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는데도 말입니다.
떡갈나무(?) 낙엽이 쌓인 길은 푹신푹신합니다. 길가에는 진달래 관목이 계속 이어집니다.
봄에 다시 찾아오면 원 없이 분홍 진달래 구경할 수 있다는 어느 분의 해설이 친절합니다.


밋밋한 나한봉과 관음봉을 넘으니 드디어 쇠줄로 연결된 암릉 구간이 나타납니다.
비교적 시설이 잘된 암릉은 오봉산의 묘미를 만끽하게 하고,
바위에 까지 기기 묘묘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노송은 가히 압권입니다.
푸르른 생명력이 무생물인 바위에 기대어 공생하는 절묘한 어울림은 기막힌 궁합입니다.


줄을 붙잡고 바위를 한번 치고 오르니 정상(보현봉)입니다.
자그마한 정상 표지석 이 보이고 조망 또한 비교적 좋은 작은 암봉입니다.
북동쪽에 추곡약수로 유명하다는 사명산이, 남서쪽으로는 마적산과 수리봉이 보입니다.
'사진대형으로 헤쳐 모여!' 찍사의 명령에 팻말의 모교이름이 가릴까봐 걱정인 분도계십니다.


정상의 작은 공터에서 점심을 하기로 합니다.
좁은 공간이라 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새내기분들을 챙기는 운영자의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역시 여럿이 어울려 먹는 점심은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서 늘 즐겁습니다
오늘의 별미는 이천댁의 오리알, 큰건 거위알이라네요. 못먹는 사람의 몫까지 제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알콜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겁많은 사람에겐 용기까지 선물하지요.


사봉(문수봉)을 향해 가는 길은 암릉의 연속입니다.
산다람쥐(맞나?) 앞의 아가씨가 릿찌로 우회하며 따라오라 손짓하는군요. 물론 따라야지요.
그리 멀지 않게 소양호가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고즈넉이 자리잡은 청평사도 보입니다.


술취한 아줌마의 모습까지도 밉지 않는 산, 역시 산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드나봅니다.
오봉(비로봉)에서 청평사로 내려가는 슬랩지대에는 쇠줄로 계속되어 손목이 힘들어합니다.
오죽 쇠줄이 길면 `쇠줄 지역'이라고 안내지도에 표시했을까요.
힘들지만 오봉에서 내려오는 바위지대를 좋아할 사람들이 많을 걸요? 스릴을 좋아들 하니까요


암릉이 지루할 즈음 천년의 고찰 청평사에 닿습니다.
시원한 약수를 한바가지 마시러 가는 길에 윤회를 상징하는 회전문(보물)을 지납니다.
다시 한번 '사진 대형!' 산행을 마무리 지어야하니까요.


요즘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산행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산과 싸움이나 하려는 듯 앞사람 발 뒷쿰치만 바라보며 걷는 야간산행이나,
구간을 정해 놓고 그 구간을 짚어보는 목적산행... 이러니 산행기 적을 소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산이 좋아 산에 들고 있으니, 아름답지 않다 산에 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무작정 걷고, 무작정 메모하고, 무작정 정리해 봅니다. 다만 나만의 앨범에...
한장한장 쌓여가는 앨범의 숫자만큼이나 산에 대한 내 사랑도 두터워만 갑니다.


다시 돌아온 일터는 힘들기만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일을 해야 또 다음 산행을 나설 수 있는 걸요.


어깨가 축 늘어져서 힘없이 걷고 있는 친구에게
'거치른 벌판을 달려 가자~~♬'
하면서 씨익 웃어주는 최민식이 나오는 TV의 선전광고가 생각납니다.


우리 살아가면서 내 맘대로 안될때..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서 길을 못찾고 헤맬 때
내 등을 토닥거려줄 친구가 있다면 우린 정말 외롭지 않겠지요?


내가 아는 모든 분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으로 고행길을 떠나는 이유...
오염되지 않은 빛과 바람을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태초의 하늘과 바람과 물을 만나면 분명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이 얼마나 비참하고 기막힌 것인가를.
그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어야 편리하기만 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우리가
진작 무엇으로부터 버림을 받앗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겠지요.

 

편리해진 문명 덕택에 저는 신새벽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잠을 깨고
산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인생사 희노애락을 반추했을 그 과정을 놓쳤습니다.

 

김훈이 말합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러울수록 산의 유혹은 절박하다고,
우리는 산이 아름다워 찾는 게 아니라
산아래 문명을 반성하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물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나는 산신이 여신일 것 같은 산, 선운산에 있었습니다.
선운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련하고 아늑하고 풍요롭게 느껴졌습니다.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눈을 돌리는 것마다 뭘 믿고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운 것은 아깝고, 안타깝고... 헤어지기 아쉬움에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별을 보듯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해는 구름에 눌린 채 우리의 산행을 축복 해주는군요.
아, 하늘! 얼마나 오랜만에 마음놓고 올려다보는 하늘인지 모릅니다.
너무나 그리워했던 하늘...바람 한점이 흔적 남기는 그 하늘은 넉넉했습니다.

 

저 멀리 서해의 섬들이 조각배 마냥 수면 위에 떠 있습니다.
물안개에 휘감긴 섬 조각들... 화선지 위 한폭 그림인양 축복처럼 떠올라있습니다.

 

어서오라 날 반기던 산사초입의 벚꽃 터널, 꽃향에 그윽합니다.
길섶의 상사초는 더난 님과의 조우를 기다리며 가을을 불태우겠다는군요.
생의 끝자락에서 한 줌 남은 생을 불사르는 동백꽃이 또 다시 보자는데, 그래야겠지요?

 

"산과 하늘"의 41인의 전사들!
좋은 산! 아름다운 사람들! 즐거운 만남! 행복한 추억! 기다리는 여운!

흥부가 살았다는 남원 운봉마을
뒤로 산 하나가 웅장하게 서있으니 이름하여 바래봉...
지리산 서북 능선에 자리잡은 1165m 높이의 밋밋한 봉우리랍니다.

 

스님들 밥그릇(바리때)을 엎어놓은 형세라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그 질박, 검소해야 할 '절집 밥그릇'이
어떤 부잣집 꽃병보다 화려하게 변해버린다는 얘기에 도대체 어느 정도?..

 

진분홍빛 철쭉이 아우성을 치며 온 산을 불태운다 하니
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산, 한번쯤은 올라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남원IC에서 운봉을 지나온 버스가 멈춰 섰으니 여기가 국립종축장?
아니 목장입구라 들었는데 웬 초등학교 앞에서 멈춰 서서는 무조건 걸으라네요.
산은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햇볕가릴 그늘 한점 없는 비포장 일색...
태생이 등산길이 아니라 목장 작업도로라서 멋이라곤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다 못해 지름길이라도 있으련만 트럭 두 대쯤 비켜갈 만큼 널찍한 신작로뿐입니다.
거기에 사람들 북새통에 속도를 내고 싶어도 앞사람 어깨에 걸려 힘이 드는군요.
상큼한 공기에 달콤한 향기를 찾아 온 바래봉엔 온통 시끄러움과 먼지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산행과 곱기로는 세상 으뜸인 산행길
두 극단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내 사전 정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 준비해둔 감탄의 저편에서 찾아야 할 쩔쭉의 무리는 그 어디에도 없답니다.

 

지루함이 극에 달할 무렵 거대한 철쭉밭...
그러나 이미 시들어버린 꽃술엔 한숨으로 답할 수 밖에 없답니다.

 

완만한 경사면에 붉은 철쭉이 마지막 생을 태우고 있습니다.
옳거니 성질급한 산사람들 밭으로 들어가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군요.
아직 군락지엔 도착도 안했는데...
내려오는 어느 등산객의 눈웃음 속에서 "망우리와 무학대사" 전설을 떠올리며 실소를 짓습니다.

 

행여 "어리석은 무학"의 의미를 알아낼까
오기와 끈기로 한참의 땡볕을 더 버텨보지만
도무지 다른 산보다 조금도 나을게 없는 못난이 산일 따름입니다.

 

그래도 참자.
이를 악물고 도달한 앞이 탁 트인 두갈래길에서 청파님과 바래봉으로 향해봅니다.
밋밋한 정상이 무에 볼게 있겠습니까만
두 번은 오고싶지 않은 철쭉놀이에 이왕이면 정상을 밟아두고 싶은 산사나이의 맘에서지요

 

오른쪽 정령치쪽 능선으로 또 꾸역꾸역 올라서 봅니다.
철쭉의 무더기들이 점점 커지고... 또 붉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워메~  산불 나부렀네, 산불~!"
그래~ 거기엔 온통 타오르는 산만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뭄에 좋은 나무들은 목장 염소들이 홀랑 잡아먹고,
'꿀을 따던 벌이 기절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철쭉만 살아남았다나요?
푸른 초원과 철쭉군락...
그야말로 산청화욕연(山靑花欲然)입니다.

 

봉우리하나를 진분홍 철쭉으로 덮어버렸나 하면
초원 가운데 오롯이 난 오솔길...
양옆에 둥그렇게 철쭉 무리를 심어놨군요. 모두가 염소 작품이랍니다.
아까부터 부지런한 동행은 하나라도 더 추억을 선물하고파 열심히 셔터를 눌러댑니다.

 

철쭉 꽃길이 모두 30만평이랍니다.
말이 30만평이지 눈앞에 펼쳐진 꽃길 끝은 구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게 바로 "자연이 만든 미학이 인위를 이기는, 천상화원"이 아닐까요?

 

백두대간 철쭉은 바래봉에서 피어올라
서쪽으로 노고단,
동쪽 천왕봉으로 퍼지고
덕유산으로 소백산으로 태백산, 정선 두위봉으로 북상한답니다.

 

철쭉이 지는 곳에 불쑥 여름이 찾아오고,
꽃불로 뜨겁던 강산이 녹음 짙은 숲으로 서늘한 계절이 됩니다.

 

그럼 또 다시 "입은 채로 퐁당"거리는 계곡산행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사우나안의 多不有時이니 잠금장치가 없어 그냥 열립니다.
그러나 여기는 열린세상 열린마음... 다 벗고 노는 곳인데 무에 두렵겠습니까.
단지 산사람의 예의상 답례를 해 줄 따름이지요.

 

조금 후 또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속도가 빨라진게 급하나 보지요?

 

아직 산행에 대한 정리가 덜되었는데....

 

그러나 더 이상 버티다간 불상사가 생길까봐 상념의 나래를 그만 접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못 버틴 밖의 분 실수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