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를 해보셨나요?
언제쩍 입던 것들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옷가지들이 첩첩이 쌓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버리자니
영 마음이 안내킵니다.
두번 다시 입을 일도, 또다시 옷장 정리를 하며 마음만 쓰일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속에 묻어있는 추억 때문일까요?
추억속에 숨겨있는 놓치고 싶지 않은 사연 때문일까요?
매서운 겨울이 가버렸습니다.
한동안 겨울다운 추위가 왔다 했더니만 어느새 바람은 매운기를 벗어버렷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옷장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내 가슴속 겨울을 버리려 산을 찾았습니다.
설경이 아니더라도 겨울산의 정취는 적막함 그리고 아늑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찾은 한밭골의 주산은 번잡 그 자체였습니다.
곳곳에 늘어서 사람들의 행렬...
그나마 내 좋아하는 사람들 곁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욕께나 했겠지요.
29인승 버스에 15명이니 영리산악회라도 적자는 아닙니다.
매표소에서 안내판을 보면 그 꿈은 무참히 깨져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3,200원이 누구네 집 애 이름이나요? 그중 절반이 넘는 돈은 문화재관람료라는군요.
동학사, 갑사의 관람료인 셈인데 저는
사찰 구경은 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무조건 받습니다.
항상 공짜로 다니다가 뒷문을 몰라 입장료 다 내니 아깝다는 생각에 목이
매입니다.
동학사를 지나자 마자 얼음길이 어서오라 우릴 반깁니다.
원래부터 아이젠을 싫어하는 전 맨몸으로 버텨보지만 결국엔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50미터도 채 못가서 다시 벗습니다. 양지쪽 너덜길엔 아이젠이 극약이니까요.
우~쒸~ 누구 약 올리는 기야?
뭐야? 그리곤 산행 내내 아이젠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어리석은 사나이 헛된 배짱 때문에 온몸으로 얼음과 싸워야 했지만, 그게 나인
바에야....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깔딱고개, 급경사라 앞사람 엉덩이에 코가 닿을 지경입니다.
거친 콧김을 내품으며 베 모양을
떠올려봅니다. 울 주인장나리는 얼마나 힘들어할까요?
호흡도 고를겸 발길을 멈춘 은선폭포 전망대에서 에너지 보충용으로 소주 한병
꺼내듭니다.
건너편엔 겨울가뭄에 말라버린 은선폭포가 있읍니다.
말라버린 폭포는 일면 초라해 보이나 봄이 오면 우렁찬 모습을 또 다시
보여주겠지요.
물이 넘치는 폭포를 그리며 기울이는 소주잔, 캬~ 분위기 끝내줍니다.
라면냄새가 구수한 은선산장을 지나니 또다시 빙판길이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한참을 오름짓 하니 능선인데 관음봉고개 이정표가
있읍니다.
왼쪽으로 통신시설을 머리에 인 천황봉인데 가면 안된다는군요. 출입금지구역이라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더 오르니 관음봉입니다.
정상엔 제법 그럴싸한 정자도 있군요. 많은 사람들이 쉬며 먹으며 즐거운
표정들입니다.
천황봉이 막힌 후론 관음봉이 정상이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카메라 앞에서 폼잡는 이쁘니... 살짝 얼굴 내밀어
나두 한 장 찰칵해 봅니다.
관음봉에서 급하게 내려꽂힌 사다리를 내려와 문뜩 고개를 드니
삼불봉으로 날카롭게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계룡산은 봉우리 이름들이 불교분위깁니다. 삼불봉, 관음봉, 등등
이름에 걸맞게 오밀조밀한 암릉과 오르내림이 심한 봉우리들이 닭 벼슬처럼 생겼습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 사이의 능선은
자연성능...오르내림이 많지만 천연의 산성 모습입니다.
東高西抵인 강원도의 대간 구간이 문득 떠오름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쾌청한
날씨에 대전 시가지의 성냥곽같은 아파트 단지가 눈앞까지 다가옵니다.
자연성능은 오른편에 낭떠러지를 두르고 왼편으론 경사가 심하게
비탈져있습니다.
앞서가던 분이 점심 먹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고 목청 높여 으시대고 있네요.
'그냥 넘기기는 아쉬운데...' 진한 사투리
충청도아저씨의 우스개는 결코 우습지 않습니다.
절반 앉고 절반은 서서 먹을 수 밖에 없는 비좁고 비탈진 공터지만 점심상은
풍요롭습니다.
'40대의 풍요로움' 40대는 몇 명 되지도 않은데 왜이리 풍요로울까요?
흰밥만은 외롭다 오곡밥도 나오고, 산꼭대기에 국까지
공수되고, 와~ 카레까지 이어집니다.
'웬 초장?' 깔판에 엎지른 초장에 놀라다가, 쭈꾸미와 드릅에 벌린 입들을 다물지
못합니다.
과일후식에 커피까지 느긋이 해치우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아~ 하나 빼뜨렸네요. 산중의 일미인 라면... 모처럼
큰 배낭을 맨 운영자의 작품입니다.
또다시 오르락내리락 빙판길을 걷습니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아이젠은 사양합니다.
불쑥불쑥 솟아오른 암봉들과 양쪽 낭떠러지 사이로
좁게 난 등산로며 바위 속으로
뿌리를 뻗고 괴목으로 자라나는 소나무들과 함께 걷는 능선길은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응달진 곳의
찬바람이 제법 춥지만 웅크리지 못함은 빙판길 발걸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이지요.
삼불봉을 바라보는 삼거리에서 다들 하산하고, 몇 명만이 삼불봉의 철계단을 오릅니다.
하산한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려 속도를
내어봅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불평...힘들다나요?
두세평 정도 바위봉우리 정상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네요. 삼불봉이 풍수상
주봉이랍니다.
멀리 대전과 주변의 산과 산자락에 들어앉은 작은 집들이 눈앞에 잡힙니다.
금잔디 능선의 쉼터에서 앞서간 탈출자들을 만납니다.
금방 쫒아온 게 못마땅한지 베모양 때문에 늦었다며 다른사람들이 입술을
삐쭉이는군요.
어느 분이 준비해온 양주와 햄으로 목을 축이고 부지런히 갈길을 재촉합니다.
엉덩방아를 찢는 사람들을 보고 미소 두어번
짓다 보니 어느새 갑사입니다.
갑사앞 거북이 입에서 물 한모금 보시 받고, 절 기웃거리다 기절할 번 했네요.
느긋이 후미를 기다리다 안내판 앞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스님이 나오잖아요?
깜짝 놀라 뜰로 뛰어 내릴 수 밖에요. 우~쒸~ 나쁜 스님!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구...
경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종과 목판, 당간 등 보물이 몇점 보이는군요. 주위 경관도 좋구요.
동학사에 1.500원 갑사
500원 준다고 했던 입장료를 아무래도 뒤집어 분배해야할 것 같습니다.
불심을 모르는 저는 산에 다닌 이후로는 절 구경은 거의 한 기억이 없읍니다.
신앙도 없고 특별히 구경할 거리도 없어서인데,
오늘은 모처럼 한가하게 둘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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