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빌딩 숲에 갇혀
늘상 일상에 쫓기는 난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을은 남의 일이었답니다.
오색 단풍으로 타들어가는 산...
빨간 연지처럼 곱게 물들은 감도 기껏 TV 화면 아니면
빛 바랜 앨범을 뒤적여야
만날 수 있었지요 ‘산과 사람들’을 찾기 전 까지는....
나무들이 이파리에 공급하는 수분과
영양분을 비밀리에 줄여가던 어느 날, 난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마주
보이는 관악산 자락을 보며 부르짖었답니다. "오매 단풍 들었네."
어느 해부터 가을을 잃어버렸을까요.
아니 실제로 잃은 것은 마음의 여유 아닐까요?
곧바로 짐챙겨 ‘산과 사람들’을
찾은게 두해 전 어느 가을날 적상산이었지요.
추억의 적상산을 떠올리며 따라나서 본 설악산행...
가을하면 설악산인데 거기다 공룡능선이라니 그냥 넘길 수
있겠어요?
갑자기 떨어진 일로 일요일 출근이 불가피한데도 ‘배째라’는 식의 막가파로 밀고나갔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죽어라 올라갔고... 목숨걸고 인파를 헤집었지만 그결과는 우중산행...
언제나와 같이
설악은 날 반기지 않더군요. 난생 첨으로 무릎이 아파 죽는줄 알았습니다.
끝내 ‘내 다시는 공룡 안 탄다. 비선대 내리막길이 있는 한’을
내 뱉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이 담소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분들이 있어 좋았고,
만화에서만 보던 이마에 도깨비뿔을 단 아가씨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하산길... 단풍나무가 하나 둘 보이는게 가을이 스쳐간 자리에 단풍이 들어와 있나봅니다.
산허리... 제몸을 태워 산을 밝힌
나무들이 앞다퉈 노랗고 붉은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이파리 끝부분부터 빨갛게 물들어가는 활엽수....
붉은 단풍잎은 때론 꽃보다
곱고 화려합니다. 꽃은 아무리 고와도 산을 물들이진 못하거든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나 거세지는 않습니다
비구름 사이로 칼날 같은 돌봉우리들이 순간순간 비칩니다.
멀리 백두대간이 파도처럼
다가오고, 젖어있기는 하지만 바람은 참으로 깨끗합니다.
그 깨끗한 바람 때문인지 아님 선홍빛 단풍이
빗속 나그네들의 가슴까지 확확 붉은 기운을 댕겨놓았는지 다들 즐겁게
떠들어댑니다
티없이 맑게 웃는 그들의 얼굴에선 한줌의 번뇌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오늘은 월요일...어제 땡땡이 친 여파가 제법 큽니다.
경위서... 참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인데... 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거야 원~ 자판 두드리는 와중에도 이번주 백두 하늘길이 머리를 꽉 채우는 건
아마 난 산에 미쳐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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