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못에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이는 것입니다. 온갖 산신령들이 거침없이 오락가락 노닐며, 대기
속에는 마치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라도 들리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이 일어납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밤이 오면 그것은 물건들의 세상이랍니다’
알퐁스 도테의 ‘별’을 읽으며
밤하늘이 주는 낭만에 젖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여유 찾기란...
잠시나마 고개 들어 하늘 쳐다본지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희미합니다.
오늘은 한달에 한번 백두대간을 찾는 날입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1400㎞의 크고 긴
산줄기...
거기에는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고
언제나 함께 하는 존재로 알며 살아온 조상들의 세계관이 녹아 있다네요
백두의 등줄기... 누군가의 말을 빌면 하늘길이라 했던가요?
그 하늘길을 달려온 지 어느덧 일년반, 거르면 행여 못
이을까봐
결코 돌아보는 않고 아무 생각없이 이어 왔을 따름입니다.
신성한 등줄길 밟는다는 질책이었을까요?
백두의 하늘길은 언제나 비가 우릴 반겼습니다. 심지어는 때아닌
겨울비까지도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별하나 없는 잿빛 하늘이 조금 서운하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군요.
고개를 들어봐야 가로등과 네온사인뿐인 우리가 사는 곳
차라리 밤하늘만 흐리는 빛으로 가득한 도심을 떠나온 보람을
찾아봅니다.
정보에 의하면 만수동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렸다고 하셨는데...
행여 覆盆子 눈에 들어올세라 힐긋힐긋 숲쪽으로 눈길을
돌려봅니다.
자연이 주는 마실 거리와 먹을거리를 자연의 상태대로 얻어올 수 있다면
도시의 지친 일상에 적잖은 활력소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요즘 자연은 일년 중 생명력의 일어남이 가장 왕성한 때여서
무위의 자연에 들수록 자연의 기(氣)가 몸과 마음에
전이돼옵니다.
그 생생한 자연의 생명력을 잘 전달받기 위해서
산딸기 몇 알 찾아 보는거지 결코 복분자가 그리워 그러는건
아니랍니다.
천황석문 지나 奇巖怪石 가슴에 심으니 속리산에 내 들어섰음이 느껴집니다.
신선대에 들러 마시는 한잔 술...코끝을 간지럽히는
당귀 향에 흠뻑 취할 수 밖에요.
문장대를 지나니 통과하니 개구멍이요, 내려보니 절벽인데 로프 끝에 매달린 중생들...
저 로프를
놓는 날이 곧 해탈일지니... 아서라 큰일 날 소리랍니다.
앞뒤의 시차도 줄일겸 널직한 바위에 널부러져봅니다.
금새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렸던 하늘이 깨어나 건너편 암봉이 눈앞에 서
있네요.
간간히 부는 바람은 물기에 젖어 내 안에 남은 한방울 물기까지도 빼내갑니다.
지루한 바윗길이 식상해질 무렵 우린 어느새 밤티재에 도착합니다.
산을 뒤덮었던 하얀 아카시아꽃이 지고
앙증맞은
찔레꽃마저 그 향기를 지우고 나면 뱀의 혀마냥 길쭉한 밤꽃이 핍니다.
밤꽃이 잘 피면 풍년이 든다는데,
행여 속리산자락을 드나드는 바람이 떠 나르는 연노란 밤꽃의
비릿한 향기을 기대해
보지만 이곳 밤티재 그 어디에도 밤꽃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이곳 밤티재도 속리산권인지라 밤나무 대신 소나무천지입니다.
산행 내내 같이한 소나무...
어느 틈에 솔잎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맴돕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짙은 녹색
솔잎과 붉은 껍질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휘고 굽고 늘어진 소나무들이 눈 속으로 파고드는군요.
온몸을 감싸오는 송진냄새 속에서 내
좋아하는 산님들의 냄새를 찾아냅니다.
그들과 또다시 솔숲을 거닐어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쉬움속에 산행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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