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산(鐵馬山, 787m)

 

산행일 : ‘15. 8. 8()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오남읍, 그리고 진접읍의 경계

산행코스 : 오남저수지복두산천마지맥 삼거리철마산(남봉)길재철마산(북봉)비월교 갈림길비월교(산행시간 : 4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철마산은 웅장하거나 빼어난 자태는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큰 오르내림이 없는 능선은 아기자기한 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족하다. 특히 스키장으로 유명한 천마산이 남쪽으로 10km나 떨어져 있는 덕분에 사람들의 때를 거의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깨끗함을 보존하고 있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산이라는 얘기이다. 북봉과 남봉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뛰어난 편이다. 거기다 비록 길지는 않지만 바윗길까지 끼고 있어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꼭 천마지맥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라는 얘기다.

 

산행들머리는 오남저수지(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산9-1)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하철2호선 선릉역에서 2000번 좌석버스를 타고 곧바로 오남저수지·팔현리 입구까지 오는 것이다. 수도권전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고 사릉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이곳으로 오는 버스 노선이 많음은 물론이다. 우리 일행은 마석역에서 택시(16천원)를 이용해 저수지 제방(堤防) 바로 아래까지 왔다.

 

 

 

오남저수지는 남양주시에 있는 몇 안 되는 저수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희귀성보다는 저수지 경관의 수려함 때문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남양주시에서는 이곳에다 호수공원을 만들었다. 산책로는 물론이고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찾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쉬다가 갈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저수지 둑에는 무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특별한 날에는 음악회 등의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다.

 

 

산길은 오남저수지 둑의 왼편 끝자락에서 열린다. 산길의 폭이 넓은데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여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수많은 현수막과 입간판들이 너절하게 내걸려있는 곳을 찾으면 될 일이다.

 

 

산행 초반은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가끔 숨을 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소나무향이 온 몸 구석까지 깨끗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함께 걷는 이들 모두 행복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하긴 이런 산행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산행 내내 이런 산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맘껏 들이키면서 걷는 힐링(healing)산행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바닥은 바위는커녕 돌맹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흙길, 거기다 경사(傾斜)까지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느긋하기만 하다. 물론 올라가는 곳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요즘은 뭐든지 빠른 게 대세(大勢)인 시대이다. 그러나 산만은 예외이어야 한다. ‘빠름의 유혹을 버려야만 산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산에다 호흡을 맞추어 본다. 그러다보면 산에서 살아가는 것들에 동화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나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작은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오남읍 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날씨가 좋을 경우 서울시 외곽에 위치한 산들까지 잘 조망될 터인데 연무(煙霧)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가까이 되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정표(복두산 0.09Km/ 극동아파트 2.20Km/ 오남저수지 1.40Km)를 만나게 된다. 왼편은 극동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 복두산으로 가려면 물론 곧장 능선을 따르면 된다.

 

 

극동아파트 갈림길을 지나면서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잠시 치고 오르면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복두산 정상(이정표 : 철마산 2.80Km/ 극동아파트 2.30Km)에 올라서게 된다. 해발고도(海拔高度)458m에 불과한 복두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정상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에 만들어진 쉼터의 느낌이 강하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평상과 벤치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널따란 정상은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래의 주인이어야 할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아 그런 느낌이 들었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의 시야(視野)는 한쪽 방향으로만 열린다. 그러나 그 조망(眺望)은 썩 뛰어난 편이다. 발아래에는 오남저수지와 오남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무(煙霧) 때문에 또렷하지는 않지만 아마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연결되는 바위능선일 것이다. 오늘은 근교 산행이라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다. 마침 전망 좋은 곳에 벤치까지 놓여있다. 느긋이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에 담아본다.

 

 

 

산길은 복두산을 지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길바닥은 변함없이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고, 오르막길의 경사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달라진 점이 있기는 하다. 길의 폭이 아까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둘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충분했던 길이 복두산을 지나면서부터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진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길 오른편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그 바위 틈새에서 자란 오래 묵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 잠깐의 쉼터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마침 시야(視野)까지 트이기에 올라봤으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별로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서울방향의 산들이 나타나나 연무 때문에 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복두산에서 40분 남짓 걸으면 천마지맥(天摩枝脈)의 마룻금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철마산 0.85Km/ 천마산 6.2Km/ 복두산 1.9Km)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천마산, 물론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왼편 철마산으로 향하는 능선이다. 참고로 천마지맥이란 한북정맥 상의 운악산과 수원산 사이 424.7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分岐)되어 주금산과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 예봉산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5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천마지맥을 만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는 짧다. 4~5분이면 봉우리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철마산 0.8Km/ 천마산/ 복두산 2.1Km)를 만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천마산에서 오는 길로 조금 전에 올랐던 봉우리를 우회(迂廻)해서 돌아오는 길이다. 천마지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길로 왔을 게 분명하다.

 

 

갈림길에서 요기를 달랜 후, 다시 철마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에는 금곡리(초당)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철마산 0.76Km/ 금곡리(초당) 3.9Km/ 천마산 6.4Km)에 이른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오른쪽으로도 길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 쇠푸니고개가 아닐까 싶다. 안부에는 벤치 몇 개를 놓아두었다. 아마 이제부터 시작될 오르막길을 대비해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난 후 출발해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쇠푸니고개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또 어떤 곳에서는 바윗길도 만난다. 가파른 곳에서는 헥헥소리가 빠질 수 없고, 바윗길이라도 만나면 행여나 빗물에 흠뻑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산길이 힘들다는 얘기이다. 옛날 임꺽정은 천마산에 근거지를 두고 의적 활동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가 이웃에 있는 이곳 철마산까지 안 넘어왔을 리가 없다. 이렇게 험한 곳이다 보니 관군들의 토벌로부터도 안심할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빗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왼편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빗줄기와의 싸움을 버거워하면서도 바위 위로 올라가본다. 조망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되어서이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만큼 빗줄기가 거세졌던 것이다.

 

 

간간이 보이던 바위들이 그 빈도를 높이더니, 산길은 우리를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 위에다 올려놓는다. 쇠푸니고개에서 25분 정도가 걸렸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삼각점(성동427,19994재설)이 또렷하다. 어쩌면 이곳이 지도상의 철마산일 것이다. 삼각점봉을 지나자마자 철마산 정상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내마산 2.2Km, 주금산 8.1Km/ 천마산 7.1Km)외에도 국기봉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국기봉에는 거센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꿋꿋하게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뭘까. 얼마 안 있으면 70돌을 맞는 광복절(光復節)이 돌아오고, 또한 요즘 박근영이라는 또라이가 대통령을 팔고 다니며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혼돈의 상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다시 한 번 조국을 되돌아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정상 부근에서의 조망은 괜찮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폭우로 인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정상을 떠나는 이유이다. 참고로 철마산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대동지도(大東地圖)’ 등 고문헌(古文獻)에는 검단산(黔丹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주봉인 남봉(철마산 : 711m)과 북봉(내마산: 786m)의 두 봉우리가 있는데, 산의 이름은 남쪽의 쇠푸니, 북쪽의 검다니가 들어간 지명으로 보아 각기 '쇠를 캐는', '검은 또는 수풀이 우거진'의 의미에서 유래하여 철마산, 검단산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에 조선지형도를 만들면서 '철마산' 만을 기록해 놓은 이래 검단산은 사라지고 두 봉우리 모두 철마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남쪽을 철마산 또는 철마산 남봉’, 북쪽을 철마산 북봉또는 내마산이라 부른다.(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서 인용)

 

 

 

내마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의외로 순탄하다. 경사가 거의 없이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15분쯤 걸었을까 삼거리(이정표 : 주금산 7.4Km/ 철마산 0.86Km, 천마산 7.8Km/ 진벌리)가 나타난다. 아까 지나왔던 쇠푸니고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이정표도 왼편 진벌리 방향만 표기를 해 놓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편으로도 길이 희미하게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곳이 수산리와 진벌리를 연결한다는 길재고갯마루가 아닐까 싶다.

 

 

쇠푸니고개를 지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철마산 근처에서부터 폭우(暴雨)로 변했다. 혹시 누가 바가지로 퍼 붓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몇 미터 앞이 채 안보일 정도인 것이다. 거기다 머리 위에서는 쉴 새 없이 번개가 불빛을 내뿜고, 뒤이어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혹시라도 나도 모른 사이에 죄라도 짓지 않았을까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정도로 무섭기까지 하다. 이건 숫제 오르막길과의 싸움이 아니라 폭우와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고 또 걸을 따름이다. 제발 천둥번개가 빨리 지나가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산길은 길재를 지나면서 다시 가파르게 변한다. 그렇다고 오르막길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그러던 산길은 이정표가 없는 진벌리 갈림길을 다시 한 번 분가시키고 난 뒤에 험한 바윗길 앞에 이른다. 바윗길에는 설치한 지 얼마 안 되는 듯한 나무계단이 놓여있다. 계단 옆 바위 위에 로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프에 매달려 올라야만 했던 모양이다.

 

 

계단에서부터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비록 쉽지 않은 바윗길이지만 목숨에 위협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고, 거기다 험한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물에 젓은 바위가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할 일이다.

 

 

조심스럽게 바윗길을 통과하면 능선은 또 다시 흙으로 변하면서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이정표 : 주금산 5.26Km/ 수산리 4.0Km). 수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천둥번개에 겁을 먹었는지 일행 중 한분이 이곳에서 수산리로 내려가잔다. 그러나 난 반대이다. 수산리로 내려가는 길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내려가다가 계곡이라도 만날 경우에는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에 진퇴양난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느니 조금 더 걸을망정 계곡을 건너지 않고 능선으로 연결되는 코스를 찾아보는 게 옳은 것이다.

 

 

수산리갈림길을 지나서도 바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거기다 왼편은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산길은 바위를 잘도 피해 간다. 흙길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리고 가는 길에 보면 가끔 왼편 방향으로 길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진벌리나 학력골에서 올라오는 길인 모양인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길재를 출발하고 40분쯤 되었을까 헬기장(이정표 : 내마산 0.35Km/ 철마산, 천마산)이 나온다. 정상 직전에 있는 헬기장인데 곱게 핀 마타하리꽃이 지천인 것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망이 트이지 않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는 곳이다. 헬기장에 세워진 이정표에서 우린 또 다시 내마산이라는 낯선 이름을 만난다. 아까 철마산 정상에서 처음으로 조우했던 이름이다. 그리고 내마산은 아까 철마산을 얘기할 때 요즘 불리는 이름이라고 짧게 소개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이름인지 모르겠다. 출처가 분명한 이름보다는 차라리 옛 이름대로 검단산(黔丹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이 봉우리 부근에 검다니라는 마을이 있다니까 말이다. 이때 검단산은 검은 산이나 수풀이 우거진 산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주장 또한 국토지리정원의 한국지명유래집을 참조했다.

 

 

헬기장에서 잠깐 내려서면 팔야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정표 : 주금산 6.1Km/ 천마산 9.4Km/ 팔야리 3.5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다시 한 번 울퉁불퉁한 바윗길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드디어 철마산 북봉, 그러니까 아까 이정표에서 보았던 내마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철마산을 출발한지 1시간10분 정도가 걸렸다.

 

 

 

10여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내마산 정상은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주금산 6.0Km/ 철마산 2.2Km, 천마산 9.6Km)에도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은 없다. 그저 아까 지나왔던 철마산 정상 및 이곳의 이정표에 표기(表記)된 두 봉우리간의 거리 표시를 서로 비교해봄으로써 이곳이 내마산 정상인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 외에도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는 있다. ‘화광중산악회에서 내건 내마산(철마산 북봉)’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수막이란 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곳이 정상임을 알아낼 수 있는 위의 방법을 적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題)이다. 헬기장으로 되어있어 시야(視野)를 가리는 방해물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기는 있다. 비록 조금이기는 하지만 잡목(雜木)들이 나타나는 풍경의 아랫도리를 잘라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정상에 놓인 의자 위로 올라서면 되니 문제될 것은 없다. 눈을 들면 멀리 포천 땅 한북정맥의 주 마루금인 죽엽산과 수원산이 잘 보이고 동쪽으로 축령산과 오독산이 길게 누워있다. 북쪽에서 삐죽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산은 물론 주금산이다. 비온 뒤 끝에 나타난지라 또렷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주변을 떠다니는 구름들까지 보태지니 한마디로 그림이다. 그것도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인 것이다.

 

 

오래 전 2000년대 초반에 높고 큰 산들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백두대간과 한북정맥 등을 종주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었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때 만났던 이들이다. 각설하고 그때 적었던 글을 살펴보면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렸다라는 표현이 가끔 나타난다. 극한(極限)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내가 쓰는 표현이다. 오늘도 그때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고 싶어진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녹음으로 물든 산하(山河)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거기다 하얀 뭉게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어찌 한마디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아름다움에 놀라 나도 몰래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하산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뛰어난 조망(眺望)에 취했나보다. 남은 술과 안주를 털어버리자는 핑계로 뭉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 길은 여전히 험한 바윗길이 계속된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그저 손맛을 보기에 딱 좋을 정도다. 짧게 끝나버리는 게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길이다.

 

 

앞서가던 최군이 오른편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뭔가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명품소나무(名品松)로 분류해도 될 만큼 기이하게 생긴 노송(老松)이 한 그루 자리 잡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뿌리를 드러내면서 쓰러져 있었지만 말이다. 가능하다면 예산을 들여서라도 그 소나무를 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옆에 벤치라도 하나 놓아둔다면 또 다른 명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명품소나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이정표(수산리 2.2Km, 주금산 5.8Km/ 천마산 9.8Km) 하나가 보인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비월교로 내려가는 길이 나뉜다. 주능선을 조금 더 따라가다 금단이고개에서 비월교로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타기로 한다.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코스를 답사해 보려는 이유이다.

 

 

비월교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지점에서 폐()타이어를 쌓아 만든 벙커가 있는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된다. 처음에는 길이 희미하지만 10m정도만 더 나아가면 길은 또렷해진다.

 

 

비월교로 내려가는 산길은 줄곧 능선을 따른다. 능선은 의외로 양호하다. 거기다 뛰어난 볼거리까지도 제공한다. 초반 구간이 바위들이 많아 두어 곳에서 뛰어난 전망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내마산 정상에서 보았던 축령산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또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조망을 즐기고 나면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돌변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닥이 흙으로 이루어진데다가 지그재그로 갈지()자를 그리면서 내려서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볼거리가 사라진다. 대신 육산(肉山)의 특징을 살린 또 다른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수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온 뒤끝인지라 싱싱하기까지 하니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아래 사진들은 무작위로 뽑은 것이다.

 

 

 

하산을 하다가 행운을 만났다. 비록 왜소하지만 연리목(連理木)을 쏙 빼다 닮은 나무를 만났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거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견(比肩)되는 연리목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그러한 끝없는 사랑의 이미지는 백낙천의 장대한 서사시(敍事詩) ‘장한가(長恨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극한 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나무를 그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간에 나누었던 사랑의 의미로 탈바꿈시켰다. 그것도 지극한 사랑이야기로 말이다. 마침 오늘 산행도 집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느꼈을 현종의 감정을 상상해보며 집사람에 대한 내 사랑을 조금이나마 키워본다.

 

 

또 다른 볼거리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위로 솟아오른 잣나무 숲이다. 낙엽송 또한 볼만한 것임은 물론이다. 한 아름이 넘는 잣나무와 낙엽송 숲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이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드문 탓인지 사람의 손때도 타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쓰레기 또한 눈에 띨 리가 없다. 도심(都心)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산길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냥 좋지만은 않다. 능선이 끝나갈 무렵에서 산길이 거의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넝쿨식물들이 능선을 온통 장악해버린 탓이다. 만일 반팔셔츠나 반바지를 입었다면 욕설(辱說) 두어 마디 정도 내뱉는 것은 각오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구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다는 점이다.

 

 

산행날머리는 비월교(수동면 내방리)

넝쿨식물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덧 임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임도라고 해서 나아질 것은 거의 없다. 아까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가평군 상면과 남양주시 수동면을 연결하는 387번 지방도에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이곳 수동면은 이름 그대로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특히 비금계곡은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물놀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계곡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도무지 비집고 들어앉을 틈을 찾을 수가 없다. 앉을만한 터는 어김없이 인근 식당들이 선점(先占)을 해버린 탓이다. 자릿세를 받아먹고 살아야 하는 그네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덕분에 우린 도로가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취우님 부부가 손수 길렀다는 갖가지 야채와 삼겹살을 먹지 않고 헤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순수하게 걸은 시간만 약 4시간30분이 걸렸다. 그러나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초반 천마지맥에 이를 때까지의 구간은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 걸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금계곡은 풍류와 연관이 깊다. 옛날 선비들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거문고를 숨겨 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계곡의 곳곳에 들어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는 저 사람들 역시 풍류를 즐기고 있는 격이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