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무릉원풍경구 : 황석채(黃石寨)

여행일 : ‘13. 11. 4()

 

특징 : ()의 책사(策士)였던 장량(張良)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고통을 당할 때 사부인 황석공에 의해 구출되었다 해서 황석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장가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웅장(雄壯)함으로 장가계를 대표한다. ‘황석채에 오르지 않고 어찌 장가계를 봤다고 할 수 있으랴(부상황석채 왕도장가계 : 不上黃石寨 枉到張家界)’ 첫날 천문산에 오르면서 보았던 문구(文句)이다. 이 문구는 황석채의 입구에서도 눈에 띈다. 황석채가 장가계 여행의 백미(白眉)임을 나타내주는 문구(文句)이며, 빼어난 경관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황석채를 좀 더 편하면서도 깊이 있게 구경하려면 정상으로 올라갈 때에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5정도 되는 탐방로를 한 바퀴 돌며 눈요기를 한 뒤 내려올 때는 금편계곡입구로 걸어 내려오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케이블카는 1995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2개월 만에 완공되었는데, 길이는 973m이고 높이는 430m라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서 10분 정도 들어가면 깔끔하게 정비된 공원(公園)이 나온다. 이곳은 웨딩촬영의 명소인가 보다. 열 쌍도 넘는 신혼부부들이 웨딩드레스(wedding dress)를 입은 채로 갖가지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촬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한편에는 원숭이들의 재롱, 황석채와 금편계곡 주변에는 유난히도 원숭이들이 많다. 그러나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먹이를 채려고 덤벼드는 통에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의 원숭이들은 제법 사납다. 카메라 앞에서 원숭이들과 포즈를 취해보려던 집사람은 사납게 덤비는 원숭이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 했다. 금편계곡으로 하산을 할 경우 이곳이 하산지점이 된다. 황석채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의 탑승장(搭乘場)은 이곳에서 셔틀버스로 3~4분 정도 더 들어가는 곳에 있다.

 

 

 

 

 

부상황석채 왕도장가계(不上黃石寨 枉到張家界)라는 문구는 산정(山頂)에 오르기도 전에 증명이 되어 버린다. 케이블카가 출발하자마자 장관(壯觀)이 펼쳐지는 것이다. 너무나 독특하고, 기이해서 말문이 탁 막힌다. 절벽과 절벽사이를 휘감아 돌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기암괴봉(奇巖怪峰)들의 풍경은 한마디로 신비(神秘) 그 자체이다. 그러나 나 같이 고소공포증(高所恐怖症)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공포로 인해 눈을 뜨는 것부터가 고통인데, 쾌감과 짜릿함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집사람의 놀림에 못 배겨 겨우 눈을 떠보지만, 시선(視線)은 위로만 고정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눈을 조금만 아래로 깔 경우에는 어김없이 수백 길의 낭떠러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기증이 날 정도의 가파른 바위틈을 지나면 어느덧 정상에 오르게 된다.

 

 

황석채 케이블카에서 내려 맨 처음 오르는 전망대(展望臺)가 육기각(六奇閣)이다.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정자(亭子)3층 전망대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필설(筆舌)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경(秘境)이 펼쳐지는 것이다. 육기각은 산, , 돌 그리고 구름, , 동물 등 여섯 가지의 기이한 것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자의 가운데에 계단과 기념품 가게가 있고, 그리고 그 외부를 전망대로 만들어 놓았다. 정자가 제법 큰데도 불구하고 사진촬영이 힘든 것은 그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바위봉우리들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근사한 수묵화(水墨畵)를 펼쳐 보인다. 어제 본 미혼대만이 사람의 혼을 빼앗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은 자연에 동화되어 버린 듯 그저 넋을 잃고 앞을 바라보고만 있다. 마치 넋을 빼앗겨버린 것처럼 말이다.

 

 

 

 

육기각을 올라봤으면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적성대(摘星臺)이다. 적성대는 해발 1,082m의 높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높이에서 별을 딸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일출을 감상하는데도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시야(視野)가 넓고 멀리 열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손가락을 펴거나 오므린 것처럼 보인다는 오지봉(五指峰), 수많은 돌봉우리들이 보이는데, 그중의 한 무리가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절경(絶景)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 400~500높이의 뾰족바위 수백 개가 버티고 있는 형상은 보는 순간 숨이 멎을 정도다. 그리고 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아슬아슬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로 그저 눈만 껌벅이고 있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소름이 끼치면서도 황홀해 진다.

 

 

 

 

케이블카 상부 탑승장(上部 搭乘場) 부근에 있는 세 개의 전망대를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정상을 한 바퀴 둘러보는 트레킹을 시작해야 한다. 황석채는 산의 꼭대기에 16.4나 되는 매우 넓고 평평한 구릉(丘陵)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정상에는 음식점과 관공서 등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경작지(耕作地)까지 있을 정도이다. 황석채를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트레킹을 빼먹어서는 결코 안 된다. 황석채는 우리들이 흔히 보아오던 산들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산들은 산 자체가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을 품고 있지만, 이곳 황석채는 정상(頂上)을 이루고 있는 분지(盆地) 자체에는 기암괴봉(奇巖怪峰)이 하나도 없다. 분지를 가운데에 두고 기암괴봉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따라서 분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돌게 되는 트레킹을 하지 않고는 황석채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트레킹은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트레킹을 하는 내내 눈은 호사(豪奢)를 누리게 된다. 분지를 한 바퀴 돌게 되는 코스는 곳곳이 뛰어난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회음벽(回音壁), 구중벽(九重壁), 비운동(飛云洞), 통천하(通天河), 선녀헌화(仙女獻花) 등 수많은 전망대들은 다양(多樣)한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장가계의 첫 번째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암봉이다. 인사동에 갈일이 있을 때면 가끔 들러보았던 화랑(畵廊), 그곳에서 보았던 옛 그림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다. 그림에서나 보았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림보다 차라리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은 기껏해야 십여 개, 많아봐야 수십 개 밖에 표현해내지 못하지만 이곳에서는 손가락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널려있는 것이다. 그 놀라움에 그저 감탄사만 쏟아놓을 따름이다. 그런 암봉들이 가장 많이 널려 있는 곳이 황석채가 아닐까 싶다. 양가계나 원가계, 그리고 천자산 등 장가계의 다른 관광지들은 한 방향, 기껏 해봐야 두 방향 정도에 암봉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황석채는 사방으로 생김새가 제각각인 암봉들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널려있는 것이다 

 

 

 

장가계가 산()이 아니었다고 하면, 다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장가계는 먼 옛날에는 평평한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38천만 년에 걸친 융기(隆起), 풍화(風化), 침식(浸蝕) 작용으로 인해 장가계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무른 흙더미는 비바람에 쓸려나가고 바위 덩어리만 남아 봉우리가 됐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이 만들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피뢰침처럼 수직으로 꽂혀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장기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게 서있는 것도 보인다. 또 어떤 것은 윗부분보다도 아랫부분이 더 가늘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봉우리까지 보인다. 그런데 어떤 봉우리 위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한 줌의 흙도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를 보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작은 고난에도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삶이었기를 바래본다.

 

 

 

 

 

서로 다른 높이로 뾰족뾰족 솟은 수백 개의 바위는 흡사 도심의 고층빌딩들을 연상시킨다.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려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광대한 자연 속에 동화돼 버린다. 넓고(野), 높으며(峻) 험(險)하다. 기이(奇)하고, 수려(秀)하며, 아름답고(巧), 묘(妙)한 것이 딴 세상(幽)이다, 관광안내책자에 적혀있는 장가계의 특징이다.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이 있을까? 단 여덟 글자로 장가계, 그중에서도 황석채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 것 같다.

 

 

 

마치 수천 개의 봉우리가 바다를 이루는 것 같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과 그 위에 의연하게 서 있는 몇 그루의 노송(老松). 그리고 깊은 계곡 사이를 빼곡히 채운 수목(樹木), 그 신비로움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문득 장가계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하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그 장가계가 바로 이곳 황석채를 이르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산트레킹은 적성대 옆에서 시작된다. 트레킹은 계단의 연속이다. 이 계단의 숫자가 4천여 개나 된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많은 계단을 사람들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구가 넘쳐나는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산은 남천문(南天門)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틈을 지나기도 한다. 남천문은 거창한 이름에 비해 조형미(造形美)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하산길에는 기념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조잡한 기념품과 입맛을 돋우지 못하는 음식물, 가끔 사먹는 사람들도 보이는 것을 보면,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운 내 눈에만 음식물이 불결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대암옥(大岩屋), ()이란 집을 뜻하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바위의 중간 하단에 있는 전망대(展望臺)로 가는 길이 푹 파여 있어서 마치 처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옥에는 지붕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바위의 외형에 비해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眺望)은 썩 뛰어나지 못하다. 하긴 산의 아랫자락에서 바라보는 경관(景觀)을 어찌 위에서 아래를 내다보던 경관에 비할 수 있겠는가 

 

 

 

 

트레킹은 1시간30분이 채 못 되어 끝난다. 아까 올라갈 때 셔틀버스를 탔던 공원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날머리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는 가마의 요금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번 장가계 여행 내내 탑승요구에 시달렸던지라 안내판을 들여다 본다. 안내판은 구간별 정액 요금을 표시하고 있는데, 짧은 거리인 100위안(한화 약18천원)에서 먼 곳은 300위안까지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장가계 여행 중에 만난 가마꾼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장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장가계라는 술 한 병을 샀다. 장가계주()를 마시지 않고는 장가계를 다녀갔다고 할 수 없다라는 광고판(廣告板)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술은 병의 디자인이 좋아서 지금도 거실의 장식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물론 마시지 않은 채로다. 장사에 도착해서 공항으로 가기 전에 서호루(西湖樓)라는 식당에 들러 중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한꺼번에 3천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이란다. 그의 말대로 식당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자금성(紫禁城)을 닮은 외형과 정원(庭園) 등 외부의 휴게시설도 수준급 이상이었다. 그러나 음식(飮食)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동안 공무출장(公務出場) 때문에 들렀던 북경이나, 상해, 항주, 광주, 청도 등 다른 지역에서 맛보았던 음식들에 못 미치는 편이었다. 

 

 

여행지 : 중국 무릉원 명승풍경구 : 천자산(天子山)

여행일 : ‘13.11.3()

 

특징 : 무릉원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개발(開發)이 늦게 된 곳이다. 당연히 자연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천자산자연보호구(天子山自然保護區)’의 총 면적은 65이고 주 봉우리의 해발은 1,250m이다. 주 봉우리에 오르면 무릉원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자산 관광의 백미(白眉)인 어필봉(御筆峰)전망대와 선녀산화(仙女散花)전망대가 주봉(主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는 주봉에서의 조망(眺望)보다 차라리 하산할 때에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조망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눈요기는 2시간 정도 소요되는 트레킹을 강행해야만 만날 수가 있다. 천자산(天子山)은 이름을 얻게 된 설화(說話) 하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명나라 홍무왕(洪武王) 시절 향왕천자(向王天子, 向大坤)가 큰 뜻을 품고 명() 나라에 항거하기 위해서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훈련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 산을 천자산(天子山)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양가계 관광이 끝나면 또 다시 셔틀버스(shuttle bus)를 타게 된다. 이번에는 천자산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또 다시 익숙한 풍경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길가를 점령하고 있는 상점(商店)들이다. 천자산의 상가는 다른 곳들에 비해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정상에 있는 상가임에도 불구하고 맥도널드 상점이 있을 정도이다. 기나긴 회랑(回廊)형의 상가를 통과하면 전망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룡공원(賀龍公園)이라고 쓰인 빗돌(碑石)이 서있다. 자세히 보면 19953월에 강택민(江澤民) 총서기가 직접 쓴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곳 말고도 금편계곡 입구에 세워진 장가계라는 거대한 빗돌 등 여러 곳에서 그가 쓴 빗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글씨를 무척 잘 썼었나 보다. 하룡공원은 천자산 자연보호구에 속해있는 공원으로 중국의 10대 원수 중 한 명인 하룡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공원에는 하룡장군의 동상과 병기관(兵器館), 하룡 전시관 등이 함께 들어서 있다.

 

 

 

하룡공원을 지나면 곧이어 전망대(展望臺)가 나온다. 전망대는 좌우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오른편이 어필봉(御筆峰)이고, 왼편은 선녀산화(仙女散花)이다. 먼저 오른편의 어필봉 전망대로 향한다. 이곳도 역시 아까 원가계나 양가계에서 보았던 풍경과 별반 다른 게 없다.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전망대가 암릉이 아니고 흙으로 된 분지(盆地)이기 때문에 바위들의 하단(下端)을 숲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조망(眺望)은 원가계나 양가계만 못하다. 그나마 위치가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좌대(座臺)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는 사진촬영을 업으로 삼고 있는 현지인들이 올라가 있다. 인물을 넣은 제대로 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면 현금을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어필봉은 세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높이가 일정치 않고 들쑥날쑥 하지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바위봉우리들의 사이사이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봉우리 이름에 필()자가 들어가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전쟁에서 진 후 하늘의 천제(天帝)를 향해 황제(皇帝)가 쓰던 붓을 던진 것이 땅에 꽂혀 만들어진 봉우리라고 하여 어필봉(御筆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필봉은 무릉원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걸출한 대표로 뽑힌다. 그러나 그러면 무얼 하겠는가. 차라리 시장바닥이 낫다 싶을 정도로 혼잡하고 소란스러운 전망대는 오래 머무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인파에 밀려나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선녀산화(仙女散花) 전망대로 자리를 옮긴다. 선녀산화전망대는 어필봉전망대에서 불과 50m도 떨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보여주는 풍경(風景)은 확연히 다르다. 두 전망대가 보여주는 계곡이 서로 다른 계곡(溪谷)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전망대가 있는 능선을 가운데에 두고 양편에 계곡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선녀헌화전망대에 서면 먼저 병풍(屛風)처럼 늘어선 바위절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병풍의 앞에는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봉우리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그 바위봉우리들 중 하나의 생김새가 선녀(仙女)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선녀산화(仙女散花)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은 어필봉보다는 사람이 덜 붐빈 덕분에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어필봉(御筆峰)과 선녀산화(仙女散花) 구경이 끝나면 하산이 시작된다. 십리화랑의 끝부분까지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다섯 번 올랐다가 다섯 번 내려가야 하니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세 시간 정도 걸리는 트레킹이니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라는 가이드의 안내가 마치 겁을 주려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산악회에서 주관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카로 향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천자각(天子閣) 뒤로 내려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트레킹은 십리화랑이 있는 삭계곡(索溪峪 : 색계욕)까지 이어진다. 산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돌계단뿐이다. 가이드의 다섯 번 올라가고 다섯 번 내려간다.’는 코스 안내는 처음부터 아귀가 맞지 않는다. 말대로라면 마지막에는 다시 산봉우리 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길은 짧게 올라섰다가 길게 내려서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떨어뜨려 간다. 산길 주변은 온통 원시(原始)의 숲, 아마 천자산자연보호구의 개발이 다른 보호구에 비해 늦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 원시의 숲이 가끔 열리면서 눈요기를 시켜준다. 주봉에서 보던 경관(景觀)들이 더 가까이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새로운 풍광(風光)이 펼쳐진다. ! ! 정말! 그저 감탄사만 쏟아낼 따름이다. 그렇다. 이런 광경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차라리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두는 방법이 제일 나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생각날 때마나 하나씩 꺼내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위봉우리들은 눈에 띄는 봉우리 마다 그 하나하나가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을 하고 서있다. 억겁(億劫)의 세월동안 수많은 풍상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자국이리라. 감히 입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신비하게 생긴 바위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이게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닐까 싶다.

 

 

 

 

 

 

 

 

 

 

세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하산 트레킹은 두 시간쯤이면 끝을 맺는다. 트레킹의 끝은 천자산과 삭계욕보호구의 경계선에 있는 십리화랑(十里畵廊)이다. 십리화랑은 걸으면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모노레일(monorail)을 타고가면서 구경을 한다. 따라서 그 경계선에 모노레일 탑승장(搭乘場)이 있다. 후미그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다가 청도맥주를 목을 축이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눈에 띄는 ‘하나투어여행사’의 전용(專用)휴게소가 어쩐지 익숙하다. 이국(異國)에서 만난 국내여행사의 전용휴게소 무엇이 익숙할까마는 그런데는 이유가 있다. 공무(公務) 때문에 해외출장이 잦은 편인 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하나투어를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하나투어는 내 조국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국에서 만난 한국여행사의 전용휴게소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특히 올 봄에 ‘시장개척단(市場開拓團)’을 인솔하고 터키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만난 하나투어 전용버스는 차량의 겉면이 온통 하나투어를 알리는 광고로 디자인 되어 있었다.

 

 

 

십리화랑(十里畵廊)은 길이 5.8Km의 폭이 좁고 긴 협곡(峽谷)인데, 글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십리에 걸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금방 실감이 난다. 수석(壽石)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온갖 바위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암괴봉(奇巖怪峰)들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는데, 십리화랑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 느낌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십리화랑은 약초 캐는 노인바위를 비롯해 손가락바위, 강아지바위, 가족사진바위, 세자매바위 등 기암괴봉들이 늘어서 있는데 눈으로 식별해내기는 쉽지가 않았다. 누군가 유산완산수간동(游山玩山水看洞)이라고 했다. 유유자적(悠悠自適)으로 산을 노닐면서 산수를 희롱하라는 뜻인데, 십리화랑 구경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서서히 걸으며 감상해야만 제대로 십리화랑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삭계욕자연보호구(索溪峪自然保護區)에는 보봉호와 삭계호, 그리고 십리화랑, 황룡동, 원앙계, 장백협 등 200여 곳의 관광지들이 있다고 한다.

 

 

 

 

여행지 : 중국 무릉원 명승풍경구 : 양가계(楊家界)

여행일 : ‘13.11.3()

 

특징 : 동쪽으로 원가계, 북쪽으로는 천자산과 인접해 있는 양가계는 10년 전만해도 사람들의 입에 떠올려지지 않던 장소였다.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지도(地圖)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양가계라는 지명(地名)은 보이지 않는다. 양가계는 양()씨 일족들이 이 지역에 많이 산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 북송의 양가장(楊家將)이 향왕천자(向王天子)를 토벌할 때 천자산에 군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길어지면서 양씨의 후손들이 이 지역에 번성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양가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가계가 장씨 성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고, 원가계가 원씨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양씨 가문에 전해져오는 족보(族譜)와 명청시대(明淸時代)의 양씨 조상(祖上)들의 묘(), 그리고 천파부(天波府), 유량완(六浪灣), 쫑바오완(宗保灣) 등의 지명(地名)들이 이러한 전설(傳說)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양가계에는 8개의 웅장한 바위봉우리(石峰)이 있는데, 양씨가문의 여덟 장수(將帥)가 바위로 변한 것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원가계 관광이 끝나면 또 다시 셔틀버스(shuttle bus)를 타게 된다. 이번에는 양가계를 보기 위해서이다. 양가계의 주차장에 도착하면 주변에 들어선 상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길가에는 노점상, 대부분 밀감 등 과일을 팔고 있다. 이곳의 상인들도 역시 한국 화폐로 가격을 흥정한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마, 중국의 관광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이다. 그들이 받는 요금(料金)은 부르는 게 값이었지만, 공식적인 요금은 사실 정해져있다. 이는 황석채 트래킹을 마치고 나서 날머리에 세워진 정액요금(定額料金) 안내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입구에서 10분쯤 들어가면 길은 계곡 아래로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편으로 붙는다. 바위절벽 아래로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오룡채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을 통과하게 된다. 예로 들면 양가계의 대문인 셈이다. 오룡채 대문을 통과한 후, 돌계단을 잠시 오르면 조금 너른 공터를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전망대(展望臺) 역할을 한다. 공터의 뒤편 벼랑아래에는 현지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노래를 불러주고 얻는 팁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전망대에서 볼 때 맞은 편에 보이는 절벽이 회음벽(回音壁)일 것이다. 이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앞에 보이는 절벽에 부딪친 후에 메아리가 되어서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바위벼랑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편은 좁다란 협곡(峽谷)을 통과하여 위로 오르는 길이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더라도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천파부로 가기는 매일반이다. 마음에 드는 길로 갔다가 되돌아 올 때는 반대방향의 길로 나오면 된다. 그러나 난 오른편 협곡으로 진행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벼랑으로 난 길은 조망(眺望)이 뛰어나기 때문에 산을 내려오면서 봐야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景觀)을 등 뒤에 놓고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불행한 일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협곡(峽谷)으로 들어서게 된다. 좁다란 협곡은 한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길이라면 아무리 많은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곳 오룡채가 산적(山賊)들의 소굴로 이용되었나 보다.

 

 

 

천파부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토가민간공예전시관, 전시물의 종류도 적고 모양도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사진은 못 찍게 한다. 카메라만 꺼내들면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자칫 사진을 찍었을 경우에는 봉변을 감수해야만 한다. 막무가내로 돈을 내라고 윽박지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돈을 주든지 아니면 사진을 지우는 수밖에 없다.

 

 

오룡채 산길의 끝에는 하늘도 출렁인다는 바위봉우리인 천파부(天波府)가 있다. 오룡채 대문에서 서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이다.

 

 

천파부에 올라가려면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바위벼랑을 내려갔다 다시 기어 올라가야 한다. 때문에 맨몸으로는 결코 위로 오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다. 천파부로 올라갈 수 있도록 철사다리 두 개를 걸쳐놓은 것이다. 하긴 인간이 원하면서도 못해내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워낙 아래가 비좁은 탓에 사다리는 수직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선지 사다리의 밖을 철근으로 빙 둘러 놓았다. 사람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한 것이다.

 

 

전에는 구름다리를 이용해서 건너편으로 갈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너무 낡아서 통행이 불가능한 탓이다. 내려섰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 짜증은 났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름다리의 모습이 제법 정겨워서 짜증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전망대에 서면 천파부라는 말 그대로 각양각색(各樣各色)의 바위봉우리들이 파도처럼 일렁거리고 있다.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문득 언젠가 옛 그림에서 본적이 있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이곳을 무릉원이라고 부르나보다.

 

 

 

 

 

 

천파부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여러 곳에서 시야(視野)가 열린다. 곳곳이 전망대인 것이다. 아름다운 양가계 트레킹은 장가계 관광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다른 곳들은 산봉우리에서 멀리 떨어진 분지(盆地)에서 봉우리들을 바라보게 되지만, 이곳 양가계는 직접 산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는 것이다. 산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비좁다. 그래서 한 발만 내디디면 곧바로 하늘로 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일보등천(一步登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협곡과 다른 방향으로 내려올 때 만나게 되는 절벽구간, 얼핏 봐서는 오금이 저리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막상 걸어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 길이 제법 너른데다가 쇠파이프로 가장자리에 난간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여행지 : 중국 무릉원풍경구 : 원가계(袁家界)

여행일 : ‘13.11.3()

 

특징 : 전문가들이 대자연의 미궁이라고 일컫는 무릉원(武陵源)’은 장가계시의 핵심 경치구역이다. ‘무릉원 명승풍경구‘**)장가계국가삼림공원’, ‘천자산 자연보호구그리고 삭계욕 자연보호구로 나뉜다. 원가계는 양가계와 함께 장가계국가삼림공원에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결코 빠뜨리지 않고 찾아보는 명소 중의 하나이다.

(**) 아주 오래 전, 장가계(張家界)장씨의 마을이라는 뜻, 장가계는 원래 청암산(青岩山)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한()나라 유후(留侯, 유주의 제후) 장량(張良)이 은거한 것이 인연이 되어 장가계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는 한신(韓信)이 죽어가며 했던 말,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며, 높이 나는 새를 다 잡고 나면 좋은 활은 감춰지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모신(謀臣)은 버림받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도망쳐 정착했는데, 그곳이 바로 토가족이 살던 청암산이었고, 이곳에서 수행하고 도()를 배워 장씨의 도맥(道脈)을 남겼다고 한다. ‘대용이라고도 불리는 장가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220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다. 이 지역 출신 화가가 장가계의 산수를 담은 그림을 발표하면서 중국 정부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됐다고 한다.

 

 

보봉호수를 둘러본 다음에는 원가계(袁家界) 관광이 기다리고 있다. 원가계로 가려면 먼저 무릉원(武陵源)시설지구로 와야만 한다. 이곳에서 입장권(入場券)을 구입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화폐로 5만원 정도되는 입장권은 한번 구입하면 2일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장가계국가삼림공원과 천자산 및 삭계욕자연보호구, 그리고 황석채까지 둘러볼 수가 있다. 그런데 플라스틱 카드(plastic card)로 만들어진 이 입장권이 좀 특이하다. 구입한 사람의 지문(指紋)을 입력시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장할 때마다 지문 확인과정을 거쳐 입장을 허락한다. 카드 하나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또 셔틀버스(shuttle bus)가 기다리고 있다. 원가계 입구에 있는 백룡엘리베이터(elevator)까지의 이동수단이 셔틀버스이기 때문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장가계는 매표소(賣票所)와 관광지(觀光地), 그리고 관광지와 관광지 사이를 모두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이동시키고 있다. 물론 도보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실제 걷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셔틀버스는 백룡엘리베이터 앞이 아닌 금편계곡 광장에다 내려놓는다. 오후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금편계곡이 아니면 오후 일정 중에는 식당가가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관광지의 간이식당에서 중국 고유의 간편식(簡便食)을 사먹을 수는 있지만 그럴 수야 없을 것이다. 계곡의 상가에 있는 조선족 식당에서 먹은 점심은 국내에서 사먹는 식사와 별반 다른 점이 없을 정도로 맛깔스러웠다. 아니 두부조림과 목이버섯은 차라리 국내에서보다 더 나은 편이었다. 참고로 이집에서는 자연산 목이버섯을 팔고 있다. 사가지고 돌아와 먹어본 결과 진품이었는데, 값까지 저렴하니 선물용으로도 구입해볼만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금편계곡(金鞭溪谷)을 둘러보는 시간이다. 1시간을 채 못 넘기는 자투리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계곡을 다 둘러볼 수는 없고, 상가의 광장(廣場) 근처만 돌아볼 수가 있었다. 광장 근처는 기암절벽(奇巖絶壁)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오로지 기암(奇巖)뿐이다. 금편계곡으로 들어서본다. 하지만 멀리 갈 수는 없고, 길가를 점령하고 있는 원숭이들만 희롱하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기암괴석이야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원가계에서도 실컷 구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경을 일컬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금편계곡이라는 이름은 금편암(金鞭岩)을 지나서 흐른다는 데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으로는 비파계로 모여들고, 동쪽으로는 삭계로 들어가는 한 줄기의 깊고 고요한 7.5Km 길이의 협곡(峽谷)이다.

 

 

 

 

 

 

 

 

금편계곡에서 탄 셔틀버스는 채 5분도 안되어 **)백룡엘리베이터 입구에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 기암절벽(奇巖絶壁)으로 둘러싸인 협곡(峽谷)의 안이다. 그런데 한쪽 절벽에 밧줄처럼 길게 매달린 시설물 하나가 보인다. 백룡엘리베이터로 그 높이가 무려 326m나 된다고 한다. 어떻게 저기에 저런 시설을 만들겠다는 발상(發想)을 했을까? 그들의 창의적(創意的)인 발상에 찬사를 보내본다. 원가계 관광은 백룡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직(垂直)으로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올라간 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봉우리 주변을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원가계를 구경하려면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 물론 엘리베이터의 탑승권(搭乘券)무릉원입장권과는 별도로 따로 돈을 내고 구입해야만 한다.

(**)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내 수요사문에 설치된 백룡 엘리베이터는 높이 335m에 이르는 세계 제일의 관광전용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실제 운행높이는 326m로 밑으로 156m는 산속 수직동굴(垂直洞窟)이며 그 위로 170m는 산에 수직 철강구조를 설치해 만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기암절벽과 괴석(怪石)들이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기이한 형태의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루며, 봉우리 아래 울창한 계곡을 내려다보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한눈을 팔다가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백룡에레베이터에서 내려 20분 정도 걸으면 셔틀버스 정류장, 줄을 서서 기다리다보면 군밤을 파는 여자들이 몰려든다. 2천원이라며 막무가내로 권한다. 집사람이 한 봉지를 사서 먹고 있는데도 한 봉지 더 사라고 조를 정도인 것이다. 좀 짜증스러웠지만 다행이도 군밤은 맛이 있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원가계 최고의 전망대라는 미혼대(迷魂臺)이다. 정신()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미혼(迷魂)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미혼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부분이 2미터 정도 더 높으며 열댓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이다. 전망대에 서면 불규칙적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석봉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역광(逆光) 때문에 흐릿하게 나타나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광경도 잠시 시장바닥을 방불케 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내 자리를 뜨고 만다.

 

 

 

 

좁은 산길을 한참 가다보면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번 전망대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 조형물(造形物)이 만들어져 있다. 아바타의 주인공이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형을 만들고, 수많은 영화의 내용을 담은 벽보(壁報)들을 붙여 놓았다. 마치 이곳에서 영화(映畵) 촬영(撮影)한 것처럼 꾸며 놓았으나 사실은 모티브(motive)만 따왔을 따름이다. 원가계의 풍경을 모티브로 한 그래픽(graphic)을 영화에 삽입했을 뿐인 것이다. 그래도 아바타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현지인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때문에 관광객들이 자기 카메라에 자기 모습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가계의 험준한 바위절벽과 쭉쭉 뻗어 오른 바위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영화 아바타의 장면들이 떠오르게 된다. 실제와 영상(映像)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영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실제로 원가계의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 앞에 서면, 설 때마다 그 어느 수식어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멋진 풍경(風景)이 펼쳐진다.

 

 

 

 

 

 

 

 

 

 

 

산길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전망대에서 한눈을 팔다보면 또 하나의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천하제일교이다. 1982년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천하제일교'는 자연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傑作)으로 실제 처음 발견 했을 당시에는 수()나라때 만들어진 석교(石橋)인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정교(精巧)하게 생겼다는 얘기이다긴 세월 동안 여러 차례의 지각변동(地殼變動)과 기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이 천연 석교는 350미터 높이의 두 바위벼랑 위에 놓인 두께 2m에 길이가 20m인 돌다리(石橋)이다.

 

 

 

 

 

천하제일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 위에 놓여있기 때문에 다리 위를 거닐 때는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다리 위를 걷다보면 색다른 풍경(風景)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 부근의의 난간에 수많은 열쇠들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중국의 민간 풍속(風俗) 중의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난간에 열쇠를 채우고 그 키를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면 그 키는 영원히 찾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도 영원히 깨지지 않게 된다고 한다. 우리부부도 하나 채워볼까 하다 그만 둔다. 열쇠가 꼭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깨질리 만무하니까 말이다.

 

 

 

 

천하제일교를 건너 맞은 편 봉우리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면 원가계의 관광은 거의 끝이 난다. 마지막 하나 남은 전망대를 둘러보고나면 수많은 상점들이 늘어서있는 상가에 이르게 되면서 원가계 관광이 끝을 맺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관광지는 항상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다시 되돌아 올 필요가 없도록 개발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지 : 중국 장가계 보봉호(寶峰湖)

여행일 : ‘13.11.3()

 

보봉호의 특징 : 삭계(索溪)자연보호구 남쪽에 위치한 보봉호는 댐(dam)을 쌓아 물을 막아서 만든 자연의 호수에 인공적 준설을 더한 인공호수(人工湖水)이다. 길이는 2.5이며, 수심은 평균 72m이고 깊은 곳은 150m나 된다고 한다. 원래는 수력발전(水力發電)과 양어장(養魚場)으로 사용되었는데 말레이시아 상인이 투자를 더하여 관광지(觀光地)로 개발하였다. 아름다운 호수와 그윽한 주위 환경이 잘 어울려 무릉원(武陵源) 수경(水景)중의 대표로 뽑힌다. 참고로 보봉호는 해발 555m 정도의 산 중턱에 만들어져 있는데, 호수의 물은 하늘의 비와 땅의 샘, 두꺼비의 눈물로 채워졌다는 전설(傳說)이 전해진다.

 

 

보봉호의 트레킹은 삭계욕마을에 있는 보봉호풍경구(寶峰湖風景區)’의 매표소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입구로 들어서면 길은 둘로 나눠진다. 왼편은 자동차 등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널따란 포장도로, 인도(人道)는 포장도로의 오른편에서 나란히 이어진다. 입구에는 지팡이를 파는 곳이 자주 눈에 띈다. 보봉호까지 가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도 않은데 지팡이를 팔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 노약자(老弱者)들도 꽤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왼편에 거대한 폭포(瀑布) 하나가 보인다. 바위절벽에 뚫린 구멍에서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아쉽게도 인공폭포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절벽 뒤편이 보봉호수인데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어 폭포를 만들었단다. 보봉호수의 수위(水位) 조절과 관상용(觀賞用)을 겸하고 있으니 다목적 폭포인 샘이다.

 

 

 

 

매표소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오른편에 보봉사(寶峰寺)라는 절이 나타난다. 사찰 뒤편의 암봉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威勢)를 뒤로 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오늘의 관광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에 돌로 만든 아치(arch) 다리가 하나 보인다. 보봉호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넌 후 이번에는 돌계단을 밟고 고갯마루로 올라서야 한다. 제법 긴 계단을 힘들게 올라 고갯마루를 넘으면 드디어 보봉호수이다.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는 호수는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과 잘 동화(同化)되고 있다.

 

 

 

 

 

호수에 왔으면 이번에는 유람선(遊覽船)을 타야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봐야만 보봉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온전히 구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을 탈 때는 따로 돈을 낼 필요는 없다. 아까 입구에 들어올 때 구입(購入)한 입장권에 이미 승선료(乘船料)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념품 가게 앞에 있는 승선장(乘船場)에 서면 꽤 많은 배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호수 위에도 오가는 유람선들이 보인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유람선은 호수를 한 바퀴 돌며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배마다 토가족 여성안내원이 한사람씩 승선하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그녀의 설명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호수를 거의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마이크를 넘겨줄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된다. 그의 설명에 따라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아름다운 바위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니 두 개다. 시선(視線)을 잠시 아래로 돌리면 바위봉우리 하나가 더 물위에 떠 있는 것이다.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물에 비쳐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가 된다.

 

 

 

 

손뼉을 크게 쳐 주세요.’ 난데없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무조건 박수를 치고 본다. 그러자 오른편에 보이는 작은 배에서 묘령(妙齡)의 토가족(T'u-chia, 土家族) 여성이 나타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토가족이 짝을 찾을 때 부르는 구애가(求愛歌)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여자의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올 때 맞은 편에 있는 배에다 다시 한 번 박수를 치면 이번에는 남자가 나타나 노래를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배 한척에 남녀(男女) 한 쌍이 함께 머물며 노래를 불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즘은 왜 그들을 떼어 놓았을까? 가이드의 귀띔에 의하면 유람선이 뜸할 때, 선남선녀(善男善女)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하기 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30분 정도 유람선을 타고 있노라면 선녀바위, 두꺼비바위, 공작새바위 등 사람이나 짐승을 닮은 바위들이 보인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뜨리게 만든다어떤 사람들은 마치 신선(神仙)이 되어 무릉도원(武陵桃源)에 있는 듯하다고 표현을 할 정도이다. 하긴 보봉호가 위에서 내려다볼 때 마치 산 속에 비취 알맹이를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했으니 그런 느낌을 받았을 만도 하다.

 

 

 

 

 

보봉호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모습이 꼭 천연요새같다. 말 그대로 보물 같은 바위봉우리들이 호수에 비치고 고개를 올려보면 보이는 것 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곳이 영화촬영지(映畵撮影地)로 자주 이용되나 보다. 참고로 이곳에서 우리가 잘 아는 영화인 '와호장룡'서유기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30분 정도의 선상(船上)트레킹이 끝나면 유람선은 아까 배를 탔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건너편에다 관광객들을 내려놓는다. 보봉호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보봉호를 벗어나는 길은 계단과 함께 시작해서 계단으로 끝을 맺는다. 고층건물의 비상계단을 닮은 계단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바위벼랑에 난 옛길이 보인다. 새로운 계단을 만들기 전에 통행하던 길이다. 난간도 없는 저런 길을 다녔을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계단이 끝나면 보봉폭포 아래로 내려서게 된다. 아까 올라갈 때 보았던 인공폭포이다. 폭포는 호수와 함께 이곳 풍경구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것이 분명하다. 온통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촬영 포인트 주변에는 예쁘게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토가족 아가씨들이 많이 보인다. 1천원만 주면 함께 사진을 촬영(撮影)을 해주겠단다.

 

 

 

폭포를 빠져나오는 길은 딱 하나뿐이다. 토산품전시장을 통과해야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목조 조각품, 중국전통의 수예품, 보석류 등 상당히 이국적인 것들로 꽉 채워졌지만 내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거기다 하나 더 눈에 띄는 것은 장뇌삼이다. 한국에서 그리도 비싸건만 이곳에서 1만원이면 한 뿌리를 살 수 있으니 엄청나게 싼 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내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오랜 여행에서 쌓인 노하우(knowhow), 관광지에서의 쇼핑은 후회와 함께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 : 중국 장가계 천문산삼림공원 #2 : 천문산사, 천문동

여행일 : ‘13.11.2()

 

귀곡잔도에서 천문산사로 가기 위해서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름다리를 건너 천문산사로 가는 길의 주변은 원시(原始)의 자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천문산 정상은 구릉지(丘陵地)로 되어있다.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이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이다. 사람들은 이 구릉지를 산산화원이라고 부르는데, 도처에 푸른 이끼가 끼어 있고 야생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도착한 천문산사(天門山寺)는 소림사를 연상케 하는 큰 규모의 절로서 중국인들도 와보고 싶어 하는 유명한 사찰(寺刹)이라고 한다. 하늘 아래 제일 높은 절벽위에 지어진 사찰,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그저 감탄사만 튀어나올 뿐이다. 천문산사는 당나라 때에는 호남성 서부의 불교중심지였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유적으로만 남아있던 것을 청나라(靑代) 때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존 건물로는 천왕전, 대웅보전, 관음각, 장경각, 고루, 종루 등이 있다. 천문산사를 둘러 본 결과 청대에 재건되었다고 알려졌지만 1,500m 고지에 이렇게 크고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 지어진 것은 천문산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천문산사 입구 건물에 붙어 있는 天門山寺현판 좌측에 표시된 ‘1999년 중건을 보고나서다. 중건된 사찰은 2008420일에 일반인에 개방하였다고 한다.

 

천문산사 앞 광장의 연못

 

 

 

 

 

천문산사 구경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스키장의 곤돌라(gondola)를 닮은 리프트(lift)를 이용한다. 리프트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아까 지나왔던 귀곡잔도를 다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문산사 앞에서 출발한 리프트(lift)는 케이블카의 상부 승강장이 있는 곳의 산봉우리(운몽선정:雲夢仙頂) 위에서 끝이 난다. 케이블카를 타고가다 보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도 역시 한국 관광객들, 오가며 나누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 잠시나마 이곳이 중국 땅인 것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산봉우리에 도착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까 올라올 때 케이블카를 내렸던 상부 승강장까지 내려가야 한다. 천문동굴로 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중간 승강장까지 되돌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승강장에서 산꼭대기 가까이에 있는 천문동굴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올라가게 된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천문동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는 발아래에 아흔아홉 구비의 길인 통천대도(通天大道: 하늘로 통하는 길)가 내려다보인다. 수직 절벽의 천 길 낭떠러지에 어떻게 저런 길을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저런 길을 셔틀버스로 올라갈 일을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두렵던지 차라리 천문동 구경을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하늘과 연결된 문이라는 천문동구경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고로 천문동은 동굴의 높이가 130m, 너비가 57m에 이른다. 중간 승강장(昇降場)에서 셔틀버스(shuttle bus)를 이용해서 천문산 정상어림까지 이동하게 된다. 아까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볼 때 소름끼치도록 위험하게 보였던 통천대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셔틀버스가 도대체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별로 새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버스에는 안전벨트도 없다. 하긴 안전벨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일 구르기라도 할 경우에는 뼈도 추리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거기다 겁 없는 운전사 아저씨는 빨리 달리기까지 한다. 커브를 돌 때 버스가 휘청거릴 정도로 말이다. 동굴의 구경을 포기하고 그냥 내려버리고 싶지만 이미 차는 출발해 버렸다. 이제는 차에서 내릴 수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중간승강장에서 바라본 천문동

천문동광장에서 내려다본 통천대도

 

 

셔틀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99개의 고개를 돌며 올라가면 천문동굴 앞의 광장에 이르게 된다. 천문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는 동굴은 이곳에서도 999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계단의 숫자가 불어날수록 구멍의 크기가 점점 거대(巨大)해져가는 것이 보인다. 하긴 비행기가 곡예비행으로 저 문을 통과했을 정도이니 당연히 거대할 것이다. 천문동굴은 1999년에 열린 곡예비행대회 때 비행기 4대가 이 큰 동굴을 꿰뚫고 지나가면서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진 동굴이다. 우리 부부는 계단의 끝까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에서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어두워지기 전에 중간 승강장으로 되돌아 내려가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아도 셔틀버스가 믿음이 가지 않는데, 어둡기까지 할 경우 버스에는 버스를 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행에서 빠져나온 이 독단적인 행동이 가이드를 고생시키고 말았다. 먼저 내려간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온 탓에 우리 일행을 찾느라 가이드가 고생을 한 것이다. 중간 승강장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직원의 도움으로 가이드와 통화를 했었는데, 만일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만 가이드가 크게 낭패를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케이블카 중간승강장에서 바라본 천문동,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는 천연동굴이라고 한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형상은 기묘(奇妙)하고도 신비(神秘)롭다. 천문동은 지대가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동굴 사이에 수시로 구름이 걸린다고 한다. 동굴 아래에서 바라보는 그 광경은 차라리 경이로운 기운마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천문산의 옛 이름은 원래 숭량산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263, 숭량산 1000m의 가파른 절벽에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큰 동굴이 뚫렸는데, 그 문이 마치 환하게 열려 있는 문과 같았다고 한다. 그 후에 산의 이름을 천문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천문산의 이름이 바로 저 거대한 천문동굴로 인해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가계에서 묵은 산수중천호텔’, 천문산트레킹을 끝내고 한식당으로 이동하여 삼겹살파티가 시작된다. 이국에서 맛보는 삼겹살이 반가워 나도 몰래 카운터를 기웃거린다. 그리고 고량주 한 병을 챙겨서 반주로 즐겨본다. 저녁을 마친 후 호텔에 여장을 푼다. 오성급 호텔에 어울리는 시설을 갖추었지만, 아침 식사는 내 입에 맞지 않아 고역을 치렀다.

 

 

여행지 : 중국 장가계 천문산삼림공원 #1 : 유리잔도, 귀곡잔도

여행일 : ‘13.11.2()

전체 여행 일정

11,2() : 천문산(유리잔도, 귀곡잔도, 천문산사, 천문동굴)

11.3() : 보봉호수, 원가계, 양가계, 천자산

11.4() : 황석채

 

장가계의 특징 : 장가계는 호남성(후난성) 서북부에 위치하며, 1982년 중국 정부가 최초로 국가삼림공원(국립공원)으로 지정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景觀)을 자랑하는 곳이다. 천자산, 색계욕 등과 함께 무릉원풍경구를 이루고 있으며, 3곳은 산책로(散策路)로 연결돼 있다.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하겠는가(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이다. 그러나 요즘 장가계에 가보면 중국인들보다 외국인(外國人)들 숫자가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비록 외국인들 대부분은 한국인들이지만 말이다. 이는 이곳 장가계가 유네스코(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등록되었을 정도로 빼어났음을 반증(反證)하는 결과일 것이다.

 

장가계에 가려면 우선 국제공항이 있는 호남성의 성도(省都)**)장사(長沙)까지 와야만 한다. 역시 호남성에 위치한 장가계시까지 직항하는 국제선(國際線)이 없기 때문이다. 장사에서 장가계시까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관광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대략 4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장사(長沙, Changsha), 호남성의 성도(省都)로서, 호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교육, 비즈니스와 여행의 중심지이자, 중국 남쪽 지역의 중요한 자원, 기술, 원자재의 집산지(集散地)이자 교통의 요충지(要衝地)이다. 총면적 11,800에 인구는 613만 명이지만, 그중 순수 도시면적은 556이며 인구는 199만 명이다. 장사는 호남성의 동북쪽에 있으며, 아열대 계절풍의 습윤한 기후가 나타난다. 연평균 기온은 17.20()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360mm이다. 일찍이 서주(西周)시기에 장사라는 지명이 있었으니 역사가 3000여년이나 되는 도시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장사는 초()나라의 중요한 진()으로, 진대(秦代)에는 장사군(長沙郡)이 설치되었고, 한대에는 장사국(長沙國)으로 거듭나, '초한(楚漢)의 유명한 도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 장사는 중요한 문화재 보호단위(單位)140여 곳이 있으며, 그 중 국가급의 문화보호단위가 7곳이다.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문화재도 4만여 개에 달하며 그중 1급 문화재도 100여개에 이른다. 1970년대 이래 장사는 계속해서 대량의 역사문물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에 마왕퇴한묘와 삼국 손오기년간독(孫吳紀年簡牘)은 세계를 놀라게 한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안내한 가이드(guide)의 말로는 오래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관람이 가능한 유적(遺跡)은 보잘 것이 없다고 한다. 일제(日帝)의 침략 때에 약탈을 우려한 장개석 군대가 전부 불살라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장사는 파란만장한 중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중국혁명 발원지의 하나이다. 모택동, 유소기, 호요방, 주용기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태어났다. 지금도 장사는 공산당의 유적지가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곳이 많다.

 

 

첫날(111) 저녁 머물렀던 화시호텔(Huaxi Hotel), 인천공항을 출발한 것이 8시반경, 기내에서 제공되는 저녁밥을 먹고 잠깐 졸다보면 어느새 장사국제공항이다. 인천에서 장사까지는 3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녁에 인천을 출발한 탓에 장사시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마치고나니 이미 자정이 가까워져 있다. 장가계는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고, 우선 근처 호텔에 여장(旅裝)을 푼다. 5개짜리 호텔은 예상보다 더 깔끔했고, 다음날 아침에 제공되는 식사도 다른 일행들의 불평과는 달리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하긴 오랜 공직생활 중에 수많은 해외출장을 해오면서 현지 음식에 적응해온 결과일 테지만 말이다.

 

 

장사에서 **)장가계시까지의 거리는 대략 350Km 정도, 고속도로(高速道路)인데도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4시간30분 정도나 되니 꽤 늦은 속도(速度)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시속 100Km를 초과할 수 없도록 관광버스의 기계장치를 조정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을 버스에서 게기는 것이 안쓰러웠던지 가이드는 중간에 있는 휴게소에서 두 번을 쉬었다 가게 해준다. 슈퍼마켓(supermarket)과 간이음식점이 있는 휴게소는 우리나라의 70년대 풍경, 내가 군복무 중에 보았던 고속도로 휴게소의 풍경보다도 더 옛스런 모습이다.

(**) 장가계시는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신흥 국제 관광도시이며, 중국의 첫 국가삼림공원인 장가계가 있어서 얻어진 이름이다. 면적 9,563, 인구 155만명이고 그 중 소수민족인 투쟈족(土家族), 바이족, 묘족이 60%를 차지한다. 장가계시의 원이름은 대용시(大庸市)였으나 1944년에 장가계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요 명소로는 무릉원(武陵源) 풍경구, 천문산, 옥황동, 오뢰산, 팔대공산, 모암동, 구천동, 보광사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기암봉림지모(奇巖峰林地貌)는 장가계시 경관의 자랑이다.

 

 

 

 

장가계시에 도착하여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곧바로 천문산케이블카로 향한다. 천문산을 걷지 않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케이블카(cable car)를 타야만 하기 때문이다. 참 식당풍경을 이야기 안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식당 안이야 어느 나라나 비슷하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식당 밖은 참으로 이색적(異色的)이다. 그야말로 시장바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식당 바로 앞의 커피코너는 물론이고 망고나 귤을 팔고 있는 과일노점상과 해바라기 등의 견과류, 심지어는 기념품까지 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만큼 이 식당을 찾는 관광객(觀光客)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천원’ ‘2천원’, 그들의 위안(Yuan : )화는 어디로 가고 외국화폐인 한국 화폐(貨幣)만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의 돈 계산법이다. 그냥 무작정 돈을 지불하지 말고 위안화로 가격을 한번쯤 물어보자. 1천 원짜리는 5위안, 2천 원짜리는 10위안이라고 할 것이다. 1위안에 170원 정도 하는 환율을 그들은 1위안에 200원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는 한국화폐보다 중국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경비를 절약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가 있다.

 

 

 

천문산(톈먼산 : 天門山)은 해발 1519로 장가계의 대표적인 성산이자, 장가계 자연 경관의 절정이다. 그리고 장가계에서 가장 먼저 역사서에 기록됐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 과연 그 기백이 말대로 우람한지는 산위로 올라보면 알 것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이 케이블카는 세계 최장으로 알려져 있다. 길이만 해도 7가 넘는단다. 케이블카는 시내 한복판을 지나고 지붕 위로도 지나간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하는 일일 것이다. 만일 내가 살고 있는 집 지붕위로 매일매일 관광객들을 태운 케이블카가 지나간다면 과연 어떨까? 어쩌면 촛불이라도 들고 거리로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천문산은 19927월 장가계의 두 번째 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장자계 시내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昇降場)에서 산위까지는 40여 분 가량 걸리는데, 그 길이 가히 장관(壯觀)이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으로 접어드는데, 점점 멀어지는 지면(地面)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느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집사람이 내 손을 꼭 잡아준다. 조금은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무서움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때 최선의 방법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시선을 위로 올려본다. 빼곡하게 산을 메우고 있는 바위 숲이 펼쳐지면서 살며시 긴장감을 풀어준다.

 

 

 

케이블카는 산허리에 있는 중간 승강장에서 잠깐 속도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중간승강장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천문산의 또 하나 명물인 천문동굴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승강장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은 아까 지나왔던 구간보다 훨씬 더 산세(山勢)가 위태롭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정상을 향해 올라 갈수록 구름이 짙어지면서 발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기암괴석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서움이 줄어든 나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절벽 안에 갇힌 듯, 골짜기 위를 나는 듯 산세에 몸을 맡기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향한다

 

 

 

두 번째 승강장을 지나다보면 맞은편 바위벼랑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에 이곳에서 열린 제2회 세계베이스점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선수가 시험비행을 하다가 추락 사망(死亡)한 지점이라고 한다. 목숨까지 걸고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천문산의 경관이 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 더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기암괴석(奇巖怪石), 뾰족한 바위밖에 없는 곳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싶다. 케이블카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구름 속에 쌓인 기암절벽들은 그야말로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구나.’라는 감탄사를 절로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정상에 오르면 다시 아슬아슬한 트레킹(trekking)이 시작된다. 바위절벽의 벽면(壁面)에다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든 잔도(棧道)를 걷게 되는 것이다. 수천 길이나 되는 벼랑에 걸쳐진 위태로운 길이지만 생각만큼은 무섭지가 않다. 짙게 낀 구름 때문에 바위벼랑 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걸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구름 때문에 비록 아름다운 경관은 볼 수가 없지만, 대신에 두려움 때문에 트레킹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으니 말이다.

 

 

 

가슴 졸이는 트레킹의 시작은 유리잔도(玻璃栈道)로 시작된다. 2011101일에 개통된 유리잔도는 관광지를 잘 꾸미기로 소문난 중국에서도 대 역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최고 높이가 1,430m나 되는 바위벼랑에 1m 간격마다 철근혼합토로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투명 강화유리를 얹었다. 60m 길이(폭은 90)의 강화유리 구간이 버틸 수 있는 하중은 무려 1Kg에 달한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노력에 대한 보상차원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길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1만원 가량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또한 강화유리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장객들은 모두 헝겊으로 만든 덧신을 신도록 하고 있었다.

 

 

 

 

 

앞서 가는 집사람의 발길이 바위벽면 쪽으로 바짝 붙어있다. 그만큼 아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유리바닥에 오금이 저린 탓이다. 다행이도 짙은 구름으로 인해 바닥까지는 보이지 않음이 망정이지 행여 날씨라도 맑았다면 과연 한걸음이라도 뗄 수가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구름으로 인한 아쉬움도 있다. 주변 천문산에 대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리잔도가 끝나면 곧바로 귀곡잔도(鬼谷棧道)가 시작된다. 귀신들도 다니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귀곡잔도는 천문산 정상에서 천문산사(天門山寺)까지 이어진다. 귀곡잔도는 해발 1,500m의 바위벼랑에 난 좁고 위태로운 길로서 그 길이가 장장 1,600m에 이른다. 귀곡잔도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바위절벽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잔도를 따라 걷는 오금저리는 트레킹이다. 그리고 하나 더 들라고 하면 잔도를 온통 포장하고 있는 붉은 색 천들이다. 귀곡이라는 지명이 꼭 아니더라도 귀신이 나오기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나름대로의 소원을 빌었으면 저렇게 많은 천들이 걸려있을까 경이(驚異)스럽기까지 하다.

 

 

 

 

 

 

 

 

귀곡잔도는 높은 절벽 옆으로 통행로를 놓아 천문산의 풍경(風景)을 구경하도록 한 코스이다. 절벽(絶壁)의 벽면(壁面)에 난간 모양으로 길을 만든 것이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길을 두려움에 가슴조리며 걷다가, 가끔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다본다. 구름 때문에 비록 천 길 낭떠러지 아래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오금이 저려오기는 매 한가지 이다. 이런 길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데 말이다. 귀곡잔도가 끝날 즈음에 만나게 되는 휴게소에서는 전통복장의 현지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귀신잔도를 걷다보면 발아래 풍경을 감상하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강화유리 구간이 있다. 그 곳에 서면 발 아래로 1,500m 낭떠러지가 투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중국 서하구촌(西霞口村) 트레킹 : 복여동해(福如東海)풍경구

 

여행일 : ‘13. 9. 28

소재지 : 중국 위해영성시 성산진 서하구촌(威海 荣成市 成山镇 西霞口村)

 

국가지정 관광명소인 성산두에서 복여동해풍경구는 지척이다. 작은 만()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산두와 마주보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바다 건너편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해려도(海驴岛)가 보이는 테마풍경구로서 그 규모는 42에 달한다고 한다. 풍경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복문화(福文化)를 테마로 하여 자연경관과 유적지, 각종 사료, 신화전설, 민간풍습 등을 아울러 보다 깊이 문화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복여동해(福如東海)란 보통 복이 동해처럼 끝없이 펼쳐지길 바란다.’는 축원(祝願)을 비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롱박처럼 생긴 지형으로 인해 복여란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간신경시관(奸臣警示館)은 중국의 역대 간신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풍경구의 관광은 간신경시관(奸臣警示館)의 옆으로 난 긴 회랑(回廊)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회랑을 내려서면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염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날카로운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단애(斷崖) 아래로 난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중국 제일의 태양신(太陽神)이 바다를 향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머리는 용의머리를 몸은 거북이 모양을 한 동물위에 한손에 태양을 들고 서있는 형상이다. 중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거대한 것들로 넘친다는 것이다. 이 태양신 조형물 또한 거대한 것이 영락없이 중국적이다.

 

 

 

태양신 조형물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염복도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가면 행운전과 기운전, 개운전 등 여러 전각(殿閣)들이 지어진 시설지구(施設地區)가 나오는데, 이때는 3~4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서야만 한다. 시설지구가 절벽(絶壁)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이 나쁠 때는 태양신 조형물까지만 관람이 허용된다. 특히 태풍이라도 몰아칠 경우에는 아예 바닷가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한다고 한다. 파도가 높을 경우에는 염복도로 건너가는 출렁다리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란다.

 

 

 

태양신 조형물에서 왼편으로 조금 더 걷다가 출렁다리를 건너면 염복도(艳福島)이다. 염복도에는 정자(亭子) 하나가 지어져 있는데, 정자 안에는 인어상을 모셔 놓았다. 중국에서는 인어(人魚)도 복()을 불러오는 것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자에 올라서면 건너편에 바위 하나가 뾰쪽하게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바위에는 맹서대(盟誓台)라고 적혀있다. 냉큼 바위 위로 올라서고 본다. ‘맹서대라는 글자가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는 몰라도, 우리 부부는 사람의 맹서를 다시 한 번 해보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다. 물론 아들 내외도 예외는 아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성산두이다

 

 

 

다시 태양신 조형물로 되돌아와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널따란 분수대이다. 분수대 안에는 십이지신상 등 갖가지 조형물들이 만들어 놓았다. 분수대 옆에 마조상(妈祖像)이 보인다. 마조(妈祖)는 천후, 성모라고도 불리는 데 중국은 옛날부터 선원(船員)과 항해(航海)를 관장하는 여신(女神)으로  모시고 있다. 

 

 

 

 

분수대를 지나 거대한 인공 호수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기운전(起運殿)이 나온다. 이곳에는 중국의 고대 사상가와 병법가, 장수들의 동상들을 전시하고 있다.

 

 

 

기운전에서 다시 돌다리를 건너면 이번에는 행운전(幸運殿)이다. 이곳에는 중국 국내외(國內外) 정치가나 사상가, 수학자, 물리학자, 예술가들의 상들을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등소평의 좌상(坐像)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의 장보고, 이황, 허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의 동상(銅像)도 세워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상들의 앞에 세워진 안내판이 중국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혀있는 것인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행운전을 지나면 이번에는 개운전(開運殿)이다. 이곳에는 염제 신농씨부터 청대까지의 황제들이 모여 있다.

 

 

 

 

 

 

 

간신경시관 앞의 광장(廣場)으로 다시 돌아오면 복여동해풍경구의 관광은 끝이 난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영성항으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다. 이왕에 이곳까지 왔으니 풍경구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한번 타보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간신경시관 옆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매표소 밖에 있는 주차장까지 꽤나 먼 거리를 공중으로 이동시켜주는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주변 관광지의 풍광(風光)이 제법 뛰어나다.

 

 

 

 

중국 서하구촌(西霞口村) 트레킹 : 성산두(成山斗)

 

여행일 : ‘13. 9. 28

소재지 : 중국 위해영성시 성산진 서하구촌(威海 荣成市 成山镇 西霞口村)

 

신조산야생동물원에서 성산두까지는 버스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성산두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해상일출(海上日出)을 보는 곳으로 예로부터 중국의 희망봉이라 불리었다. 진시황이 이곳에서 불로장생을 구하기 위한 배를 띄웠고, 당나라 때는 백제를 치기 위한 배를 띄웠던, 우리에게는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해발(海拔) 200m에 동서(東西)의 길이 약 750m, 그리고 남북(南北)의 폭이 약 2.5Km인데,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참고로 성산두는 국가급명승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150위안이다.

 

 

 

성산두는 곳곳에서 진시황의 동상을 볼 수가 있다. 진시황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두 번이나 찾았고 두 번째 방문에서 돌아가는 길에 그만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이유로 곳곳에다 진시황의 동상(銅像)을 세워 놓은 것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불로장생'이라는 말 속에 담긴 잔인하고 어리석은 군주의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중국민족에게 끼친 시황제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 같다. 오늘날에도 시황제가 잠시라도 머문 곳은 거의 유명세(有名稅)를 타니 말이다.

 

 

 

성산두는 예로부터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다.’ 성산두는 태양신(太陽神)이 거주하는 곳이라 해서 중국 역대 황제들이 여러 차례 시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먼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2번이나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하려 했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조선반도로 가는 다리를 놓아달라고 해신(海神)에게 청했다. 해신은 그러면 내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라. 약속을 지키면 조선으로 가는 다리를 놔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진시황이 해신의 얼굴을 그리는 바람에 다리를 쌓다가 부쉈다는 전설이 이곳 비문(碑文)에 새겨져 있다.

 

 

 

 

 

성산두(成山头)의 최동단에 위치한 호운각(好運角)이다. 호운각은 방문객들에게 행운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호운각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서인지 호운각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게끔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난간을 설치해 인증사진을 찍도록 해 놓았다.

 

 

 

3면을 둘러싼 바다와 기이한 형태의 절벽(絶壁)이 어우러지는 성산두는 한마디로 절경(絶景)이다. 중국 대륙에서 가장 먼저 일출(日出)을 만날 수 있다는 동쪽 끝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복과 행운(幸運)을 주는 곳이라는 뜻의 호운각(好運角)’비석이 최동단을 알리며 우뚝 서 있다. 참고로 성산두는 한국의 정동진에 비유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바다, 일출과 함께 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곳이라 해서다. 실제 한국의 정동진이 드라마로 유명해진 뒤 이곳엔 '중국 산동의 정동진'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고 한다.

 

 

 

바닷물에 잠겨있는 용을 닮은 바위가 해룡(海龍)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먼저 태양을 보는 곳이라고 적어 놓았다.

 

 

 

깎아지는 듯한 기암괴석(奇巖怪石)과 너른 바다는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전임 중국 총서기 호요방은 이곳에 천진두란 휘호를 남겼는데 이는 하늘이 끝나는 곳’, ‘육지의 끝이라는 뜻이다. 중국국가지리위원회는 이곳을 중국 최대의 8대 해안으로 지정했다. 북경에 가면 성두(城斗)를 보고, 상해에 가면 인두(人斗)를 보고, 소주에 가면 교두(橋斗)를 보고, 위해에 가면 성산두를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산두는 중국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94해리도 되지 않는 곳에 우리나라가 있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 '맑은 날에는 인천항이 보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오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갑자기 망망대해(茫茫大海), 그 위에 부서지는 햇살 부스러기들이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내 가슴속에는 아직까지도 조그만 애국심(愛國心) 한 조각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서하구촌(西霞口村) 트레킹 : 신조산 야생동물원(神雕山野生动物园)

 

여행일 : ‘13. 9. 28

소재지 : 중국 위해영성시 성산진 서하구촌(威海 荣成市 成山镇 西霞口村)

산행코스 : 용안항신조산야생동물원성산두복여동해풍경구용안항

함께한 산악회 : 영진투어(집사람 및 아들내외와 함께)

 

특징 : 산둥반도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융청(荣成市)는 인구 249만 명의 웨이하이(威海)시에 행정구역이 편입된 소도시로 인구 40만 명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서하구촌(西霞口村)이란 지명은 저녁노을이 이쪽으로 흘러간다.’는 데서 유래한다. 용안항 주변에는 중국에서도 내세울 만한 유명 관광지가 많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면서 중국의 희망봉으로 일컬어지는 성산두는 진시황의 불로초(不老草) 일화(逸話)가 서려 있고, 산둥성에서 가장 큰 사설 야생동물원이면서 중국 3대 동물원으로 꼽히는 성산두야생동물원’, 그리고 중국국가보호급 명승지인 복여동해가 있다. 복여동해는 자연적 지형이 조롱박처럼 생겨서 복여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유적(遺跡)도 눈에 띈다. 해상무역왕 장보고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불교사원 적산법화원장보고 기념관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서하구촌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경기도에 있는 평택으로 와야만 한다. 서하구촌에 있는 용안항으로 가는 배(18t급 대룡호)가 평택항의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박(船舶)을 이용해 여행을 하면서 낭만이라는 단어(單語)들을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난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배편을 이용했다. 선박을 이용할 경우 많이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시간에 쫒기는 직장인들이라면 선박을 이용한 여행은 가급적 피하라고 일러주고 싶다. 배에서 머물러야만 하는 시간이 지루한 것을 넘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4시에 승선(乘船)한 배는 830분에야 출항(出港)을 하더니, 한숨이 날 정도로 늦은 속도로 달리다가 아침 8시가 다 되어서야 용안항에 도착했다. 지루함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출입국(出入國)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출근(出勤)하는 시간까지 배에서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에 배를 타서, 다음날 아침 930분에야 중국 땅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무려 15시간 30분을 배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물론 돌아올 때에도 형편은 똑 같으니 시간이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용안항에서 신조산 야생동물원은 버스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동물원은 신조산이라는 바다와 인접한 산에 맹수류, 초식동물, 희귀동물, 조류, 열대우림 동물, 아프리카동물, 해양동물 등 200여종, 3,000여 마리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동물들이 뛰어 놀 수 있게 만듦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야생(野生)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동물원의 특징이다. 참고로 동물원의 입장료는 성인 1인당 120위안이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조산의 바위절벽(絶壁) 앞에 있는 광장에까지 곧바로 올라갈 수 있다. 바위 절벽 앞에 서면 금방 동물원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거대한 절벽에 갖가지의 동물 모형들이 빽빽하게 들어붙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광장의 한쪽 귀퉁이에 지어 놓은 화장실도 이채롭다. 독특하게도 하마와 코뿔소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코뿔소가 남자화장실, 그리고 하마는 여자화장실이다. 이왕에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곳에서 만난 화장실 문화(文化)도 이야기 해볼까 한다. 동물원을 관람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황당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여자들이라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화장실 바닥에 재래식 변기의 구멍만이 뻥 뚫려있고,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변기(便器)에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줄을 서있는 사람들 앞에서 일을 보아야 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중국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대소변을 자기만의 비밀로 여기고 싶어 하는 한국 사람들은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틀림없다.

 

 

관람은 일방통행(一方通行)으로 이루어진다. 출구와 입구가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만 진행이 가능한 것이다. 관람은 맹수류 구역부터 시작된다. 마치 성벽을 연상케 하는 담장 위로 관람로(觀覽路)가 나있고, 양 옆으로는 갖가지 맹수류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담장의 높이가 의외로 낮다. 혹시라도 맹수들이 뛰어오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다행이 맹수들은 초가을 날씨인데도, 오뉴월 염천(炎天)이라도 된 듯이 늘어져 있다. 덕분에 안심하고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지루함을 달래본다고 어제 저녁에 마셔댄 술 탓인지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행여 음료수를 파는 코너라도 보일까봐 살피는데, 다행이도 음료수와 선물들을 파는 곳이 눈에 띈다. 이런 코너들은 이곳 말고도 관람로의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15위안인 캔맥주 값은 생각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집사람과 며느리가 집어든 조개로 만든 팔찌도 15위안이란다. 혹시 이 코너의 모든 상품들이 모두 15위안짜리가 아닐까? 참고로 맹수류 구역에서는 살아있는 닭을 팔고 있는 것이 보인다. 관람객들이 사서 맹수들에게 던져줄 수 있다는데,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 난 그냥 지나쳐버린다.

 

 

 

 

 

 

맹수류 구역을 지나면 자그만 바위산에 지어진 원숭이 아파트가 나타난다. 원숭이들과 관람로 사이에 따로 벽()을 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직접 원숭이들은 만져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람을 하다보면 그동안 주변에서 보아오던 동물원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우선 자연친화적(自然親和的)이라는 것이다. 시설(施設)은 다소 거칠고 조잡하지만 신조산과 바다를 크게 훼손하지 않고 지형을 있는 그대로 이용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동물들과의 거리를 없앤 것이다. 맹수류나 독물류(毒物類)를 제외하고는 관람객들이 동물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중국의 국보인 대형 팬더곰, 시엔즈(仙子)와 징징(晶晶)이라는 이름의 형제인데, 오늘은 한 마리만 보였다. 중국의 국보급 팬더곰은 쓰촨(四川)성에 있는 중국 팬더곰 보호센터인 비펑씨아(碧峰)’라는 국가기관이 엄격한 관리를 한다. 시엔즈와 징징은 사천성에 있는 와룡 대형 팬더 자연보호구로부터 들여와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팬더곰은 하루에 대나무 24~30(40~50)을 먹고 당근 600g, 2.4의 워터우, 사과 3개를 먹어치운다. 팬더곰 1년 사육비만 약 15천만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동물원 관람은 바닷가에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코스가 해양동물(海洋動物) 구역이기 때문이다. 바닷물을 막아 물개, 수달과 같은 해양 동물들을 키우는 발상이 참 신선하다. 바닷가에 있는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해양 동물구역 앞의 광장에서 버스에 올라타면서 직접 체험하며 즐겼던 동물원 관람이 끝난다.

 

 

 

동물원 관람이 끝났으면 이제는 출출해진 배를 달래줘야 할 시간이다. 허기를 달래줄 식당은 멀리 갈 것까지는 없다. 아까 동물원에 들어갈 때 입장권을 샀던 매표소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마침 다음 행선지인 성산두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더욱 시간에 부담이 없다. 그러나 맛을 기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중국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내 식성에 까지 미치지 못할 정도였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긴 이런 소도시에서 맛까지 챙길 수야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