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계림(中國)

 

여행일 : ‘14. 11. 27() - 12.1()

일 정 :

11.28() : 천문산트레킹(선착장-전망대-천등-일선천-약초밭-산장, 2시간), 팔각채드레킹(주차장-용등-전망대-천교-일선천-팔각채 정상-주차장, 3시간30)

11.29() : 어강 선상유람(죽강양삭, 4시간), 서가재래시장, 은자암동굴, ‘인삼유삼저관람

11.20() : 요산, 천산, 양강사호(주간 : 삼호, 야간 : 용호), ‘이강몽환쇼관람

 

첫날 오전 : 하늘을 받치고 있는 뼈대, 천문산(天門山. 630m)

 

특징 : 계림에서 98km 떨어져있는 자원현(資源縣)에 위치한 천문산은 국내는 물론 중국 현지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지형이 단하(丹霞)지역이라서 보통의 산들과는 다른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마이산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하긴 오후에 가게 될 팔각채가 이곳보다 더 마이산을 닮았지만 말이다. 약초가 많기로 소문난 이 산은 산 자체가 지닌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자강(資江. 즈짱)이라는 또 다른 볼거리를 품고 있다. 강의 길이는 비록 22.5km밖에 안되지만 31개의 물굽이와 45개의 여울이 있어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보는 경치는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주차장에 내리면 양편으로 거대한 바위벼랑이 펼쳐진다. 오른편에 보이는 것은 신선채(神仙寨)이다. 산 하나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신선들이 머물다 가는 곳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광이 아닐 수 없다. 그 서슬 시퍼런 바위벼랑에 홈이 파여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홈은 완만하게 위로 향하고 있다. 신선채로 오르는 길이라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지금은 통행을 막고 있다고 한다. 열려있다고 해도 그 길을 걸을만한 담력(膽力)이 내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차후의 문제에 불과하다. 신선채 위에 있다는 관경대(觀景台)를 보고 싶은 욕심이 커질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신선채에 난 저런 길을 보통 잔도(棧道)라고 부른다.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 낸 저런 길이 중국에는 유난히도 많다. 저런 길을 내느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 나갔을 것이다. 그런 아픔의 길을 우리는 희희낙락(喜喜樂樂) 걷고 있을 테고 말이다.

 

 

천문산 트레킹은 주차장에서 자강(資江)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산이 끼어있어 당연히 올라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이다. 강가까지 차량이 내려갈 수 없도록 생긴 지형(地形)이 원인인 모양이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천문사(天門寺)이다. 생각할 것도 없이 냉큼 들어서고 본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절간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막상 들어가 본 천문사는 기대에 못 미쳤다. ‘사적보호지역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할 정도로 절의 규모나 외관(外觀)이 우리나라에서 보아오던 절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절 주변에 어수선하게 매달려있는 빨간 리본들은 절간이라는 느낌보다는 무당집의 냄새를 더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기원(祈願)을 할 때 매단다는 빨간 리본들이 나에겐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물론 문화의 차이가 그 원인일 게다.

 

 

 

절을 빠져나가는데 왼편의 울창한 숲속에 집들이 몇 채 보인다. 자그마한 것들이 얼핏 보면 영화 세트장을 닮았다. 이런 건물들은 천문산으로 오르는 길 산자락에서도 만나게 된다. 옛날 이곳에서 살던 원주민(原住民)들의 가옥(家屋)이란다. 지금은 사람이 다 떠나고 그저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으로 유지되고 있단다.

 

 

20분 정도의 숲길을 빠져나오면 자강(資江)이다. 그리고 그 건너에 있는 유난히도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압도적이다. ‘도화도(桃花島)’ 복숭아꽃섬이란다. 강가에 내려서자 의외의 풍경과 맞닥뜨린다. 강물이 온통 흙탕물인 것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에 어울리지 않은 낯선 풍경이다. 그래서 강의 이름이 자강일까? 강의 이름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지만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려면 검붉은 색이라는 뜻의 자()를 써야하는데 재물이라는 뜻의 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가에서 오른편으로 향한다. 천문산은 물론 왼편에 있다.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유람선을 타보기 위해서이다. 유람선(遊覽船)은 자강(資江)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코스로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양안(兩岸)이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 자강을 따라가며 수시로 바뀌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유람선(遊覽船)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뗏목 모양으로 생겼다. 네모로 된 갑판에 10여 개의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천막을 씌워 놓았다. 비록 동력선이지만 원시의 모습 그대로이다. 다른 하나는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식 유람선으로 특이할 게 없다.

 

 

 

유람선은 중간에 잠깐 멈춰주기도 한다. 천문진강(天門鎭江)이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면 산이 마치 손바닥을 폈을 때의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오지산(五指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다섯 개의 손가락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강가의 능선이 그렇게 생겼다는데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알아 챌 수 없으니 구태여 명물로까지는 꼽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아까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던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왼편으로 향한다. 길가에 건물들이 몇 채 보인다. 그 앞에 물건을 팔 수 있는 좌판(坐板)까지 놓여있는 것을 보면 관광지 안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모양이다.

 

 

강가에서 보면 왼편 천문산 자락, 그러니까 거대한 바위벼랑을 위에서 아래로 길게 연결시키고 있는 뭔가가 보인다. 위로 오르는 것 자체가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케이블카이다. 중국의 산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다녀본 중국의 산들은 하나같이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에 밀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문처럼 생긴 아치(arch)형 문을 지나면 잠시 후에는 아까 천문사 근처에서 보았던 가옥들이 또 다시 나타난다. 아니 아까보다 그 숫자가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 규모다 아까의 것들보다 훨씬 더 크다. 울창한 숲속 이곳저곳에 들어앉은 집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이다.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찍기에 딱 좋은 장소로 보인다.

 

 

 

얼마나 걸었을까.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이미 갈려나간 뒤이다. 백약곡(百葯谷)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아주 옛스런 문이 하나 나타난다. 백약곡에 들어선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무작정 걷지만 말고 주위를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자. 혹시라도 귀한 약초 한 뿌리 캘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백약곡 문을 지났다싶으면 조금 후에는 약왕(箹王) 손사막(孫思邈)의 동상(銅像)이 나타난다. 이곳은 약초가 많기로 소문난 백약곡, 그래서 만들어 놓은 동상도 약왕인가 보다. 손사막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의약학에 조예가 깊은 도사이다. 그리고 중국 의약학 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대접을 받는 천금요방천금익방등을 남겼다. 후세 사람들이 손사막을 약상진인(藥上眞人)’이라 일컬으며 약왕묘(藥王廟)에 모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인연이 이곳에까지 미친 모양이다.

 

 

 

협곡 사이로 난 아름다운 바윗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또 다른 동상이 나타난다. 이번 것은 약왕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그 크기부터가 거대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향로까지 갖추어져 있다. 그만큼 존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농(神農)씨의 상()이란다. 신농씨는 신화(神話) 시대의 황제다. 그가 신농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최초로 나무를 깎아서 호미를 만들었고, 나뭇가지를 구부려서 호미자루를 만든 농기구의 발명자이며, 그것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각지의 모든 약초를 모아 임상시험을 거친 후에 마침내 365종류의 약을 발명하여 신농본초(神農本草)’라는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약황제(藥皇帝)로 섬기어져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다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상() 앞에다 향로까지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신농상을 지나면 이번에는 명의(名醫) 편작(編鵲)이다. 괵나라(BC 655년 멸망) 태자의 급환을 고쳐 죽음에서 되살렸다는 편작은 흔히 인도의 기파(者婆)와 함께 명의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당연히 백약곡에 들어앉아 마땅한 인물인 것이다. 이 외에도 백약곡에는 두어 개의 동상들이 더 보였으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협곡(峽谷)으로 난 길은 곳곳에서 천연의 굴을 통과하기도 한다. 밝고 어둠이 수시로 교차되는 실로 멋진 길이다. 길의 상황은 아래사진을 뒤집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올라갈 때 촬영했던 사진이 별로라서 내려올 때 촬영한 것들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동굴 지역을 지나서 조금 더 오르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다원·일선천/ 返程路)로 나뉜다. 양쪽 모두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다시 만나게 되므로 어디로 가더라도 매한가지이나 이곳에서는 이정표에 적힌 대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험한 바윗길은 올라가면서 바라봐야 그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선천으로 가는 길도 협곡으로 나있기는 매한가지이다. 길은 넓어졌다가 좁아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어디를 봐도 바위뿐 다른 것은 없다. 그 바위벼랑의 생김새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각기 다른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게 협곡산행의 참맛인가 보다.

 

 

 

천문산(天门山)은 마치 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선채(神仙寨)와 천문산 최고의 전망대라는 천척(天脊), 천척으로 가는 계곡인 백약곡(百葯谷), 그리고 자강이 휘돌아가는 곳에 있는 바위산 도화도(桃花島)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와 바위산이 지닌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산길은 언제부턴가 암봉 사이의 좁은 틈으로 난 계단을 오르게 된다. 양쪽 절벽의 높이가 60m에 이르고 폭이 0.5~5m, 그리고 길이가 170m에 이르는 좁은 바위 통로이다. 그 이름은 일선천(一線天), 아마 하늘이 일직선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천문산에는 일선천이 두 곳에 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곳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동일선천(東一线天)으로 불린다. 다른 하나는 신선채에 있다는 서일선천(西一线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선채 탐방로는 막혀있다. 서일선천도 가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일선천을 통과하고 나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능선으로 놓인 긴 나무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전망대가 있는 천척(天脊, stone ridge)으로 가는 길이다. 천척으로 가다보면 왼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그쪽 방향에서 오는 젊은이들이 보이기에 물어보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란다. 다행이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었기에 알아보는 게 가능했다.

 

 

천척에 이르는 능선은 등뼈동물의 등허리처럼 길다. 하긴 천척(天脊, stone ridge)이라는 단어의 뜻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등마루(척추)'라니 그리 생겼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능선의 양면(兩面)은 천 길의 단애(斷崖)로 이루어져 있어 내려다보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내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것이다. 그 중간에다 전망대를 겸한 이층의 누각(樓閣)을 배치했고, 조금 더 나아간 능선의 끄트머리에는 또 다른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천척(天脊.天梁 stone ridge)은 폭2~5m에 길이가 300m 정도 되는 바위 능선이다. 능선은 삼면(三面)이 깍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높이가 무려 600m에 이른다. 비록 안전시설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소름끼치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엄청나다. 주변의 단하군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풍광이 경이로울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끄트머리 전망대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서슬 시퍼런 벼랑 위를 통과하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끄트머리에 있는 전망대가 더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서 한참을 더 나아간 허공에다 만든 것만 해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바닥에다 강화유리를 깔아 놓았다. 때문에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그 높이가 수천 길이나 되다보니 벼랑의 허리 어림을 지나고 있는 구름까지도 내다보일 지경이다. 신선들이 하늘에서 바라보는 인간세상의 풍경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망대에서는 천문산을 이루고 있는 웅장한 돌봉우리들과 그 사이를 채운 빽빽한 산림(山林), 그리고 계림 지방 특유의 둥글고 뾰족한 산봉우리들을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행운이 없나보다. 주위가 온통 구름으로 둘러싸여 시야(視野)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S'자를 그리면서 산자락 사이를 흐르는 자강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하늘과 땅 사이를 받치고 있는 척추 위에서 바라보는 자강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 말이다.

 

 

 

내려올 때는 아까 올라왔던 일선천이 아닌 다른 코스를 이용한다. 내려가는 계단 역시 경사(傾斜)가 가파르고 험하지만 아까 올라올 때보다는 한결 낫다. 그리고 그 거리 또한 짧다. 이 길은 아까 올라올 때 지나갔던 갈림길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는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밟아 내려가는 여정이 된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아까 올라갈 때 보았던 좌판(坐板)에 뭔가가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대나무를 잘라 만든 통에다 찹쌀을 넣고 지은 죽통밥이란다. 그 맛이 궁금하지만 참기로 한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점심요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출출한 채로 속을 비워두는 게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요리는 유람선 선착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 차려져 있다. 한 끼 때우기에 충분한 식당이 강가에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다만 시골이라는 여건을 감안한다면 손님이 많을 경우에는 미리 주문해 놓는 센스를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맛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썩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뒤떨어지지도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술값을 흥정하는 내 비위까지 맞추어 줄 정도로 주인장의 서비스 또한 괜찮았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식당의 이름은 산지항(山之港), 어쩌면 유람선 선착장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천문산안내도에는 이외에도 천지항(天之港)이라는 지명도 보였다. 이것 역시 어디를 나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식사를 하면서 창밖으로 나타나는 도화도를 바라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