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봉(象皇峰, 644m)
산행코스 : 대구미→전망바위→심봉(598m)→상황봉→하느재→백운봉(白雲峰, 600m)→업진봉(544m)→숙승봉(宿僧峰, 461m)→원불교 청소년수련원(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과 군외면의 경계
산행일 : ‘14. 1. 1(수)
같이한 산악회 : 온라인산악회
특색 : 완도 본섬과 완도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을 한꺼번에 구경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조망(眺望)이 뛰어난 산이다. 상황봉을 위시하여 심봉과 백운봉, 그리고 업진봉, 숙승봉 등 다섯 개의 봉우리 들이 완도 본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다섯 개의 봉우리들을 함께 아우르는 이름은 갖고 있지 못하다. 최근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오봉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아직 공식화(公式化)되지는 못하고 있다.
▼ 산행들머리는 대구미마을 주차장(駐車場)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고속도로 강진무위사 I.C를 빠져나와, 13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완도대교를 건너면 목적지인 완도(莞島)이다. 다리를 건넌 후, 오른편에 보이는 77번 국도를 따라 들어오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해신(海神)의 촬영지인 대신리를 지나,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완도읍 화흥리 대구미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 대구미 마을의 새동백수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상황봉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상황봉 3.8Km, 심봉 3.3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면 그리 넓지 않은 등산로(이정표 : 상황봉 3.2Km)가 왼편에 나타난다.
▼ 산으로 들어서면 먼저 커다란 소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등 상록활엽수만이 울창할 것으로 예상했었기에 낯설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근처에 무덤 몇 기(基)가 보이는데, 묘(墓)를 쓴 사람들이 심은 것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무덤 뒤에 있는 짙은 숲속으로 연결된다. 등산로는 초반에 상당히 급경사(急傾斜)를 보이고 있다. 산의 초입에서 주종을 이루던 상록활엽수는 산이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점차 앙상한 가지만 허공에 걸고 있는 관목(灌木)들로 바뀌기 시작한다.
▼ 산행을 시작하고 20분 남짓, 그러니까 산으로 들어선지 10분 남짓이면 능선위로 올라서게 된다. 일단 능선에 올라붙고 나면 언제 가팔랐느냐는 듯이 길은 편해진다. 그리고 조망(眺望)이 터지면서 처음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능선을 걷다가 바위라도 만날라치면 어김없이 전망대(展望臺) 노릇을 하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구리 마을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마을 앞은 바둑판같은 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옆 산봉우리 너머로 김양식장으로 조성된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共存)하는 곳, 능선에서 만나게 되는 소사나무를 보면서 느낀 소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들이 가득한 푸른 숲속을 걸으면서 여름을 느꼈었는데, 능선에 오르자마자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빈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소사나무가 가득한 것이다.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여름과 겨울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능선을 걷다보면 생소한 모양을 하고 있는 119의 ‘구호지점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말뚝 모양으로 생긴 다른 산들과는 달리 판자(板子)로 만들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안내판은 구호지점 안내 외에도 이정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어 등산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봉, 2봉 등 지도(地圖)에도 나와 있지 않은 봉우리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은 흠(欠)이라면 흠일 것이다. 지명(地名)을 표시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는 지명을 표기(標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119의 안내판대로라면 심봉은 4봉, 그리고 상황봉은 5봉이 된다. 백운봉과 업진봉, 그리고 숙승봉을 넣지 않고도 완도의 오봉산이 이미 완성되어버리는 것이다. 능선에 올라 10분 쯤 더 걸으면 119가 이름표를 붙여 놓은 제1봉, 그리고 제2봉과 제3봉이라는 봉우리들을 넘으면서 산길이 연결된다. 그러나 봉우리들이 올망졸망하고 굴곡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명확히 안부라고 느껴질 만한 곳은 없다. 산길이 한마디로 유순하다는 의미이다.
▼ 전망대(구호지점 안내판에서는 2봉)에서 바라본 상황봉, 왼편에 뽈록하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심봉이고, 상황봉은 그 오른편에 있는 완만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이다. 지금 산행을 하고 있는 이 산은 모두를 아우르는 이름이 없다. 상황봉을 중심으로 심봉과 백운봉, 그리고 업진봉, 숙승봉 등 다섯 개의 봉우리들이 독립된 이름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던 것이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오봉산(五峯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있다.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고 해서이다. 그러나 오봉산이라는 이름은 전국에 너무 흔하다. 그래도 완도를 대표하는 아니 완도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산인데 말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도 해서 산을 아우르는 이름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 2봉을 지나서 산길을 맞은편에 보이는 산봉우리를 오른편으로 우회(迂廻) 한다. 구태여 올라갈만한 가치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회를 한 산길은 안부에서 갈림길 하나를 만난다. 갈림길에는 산행안내도와 이정표 2개(#1 : 상황봉/ 대구미, #2 : 세트장 3.7Km) 외에도 119의 ‘구호지점 안내판(3봉 : 2봉 0.8Km/ 상황봉 0.9Km)’ 하나가 더 보인다. 그런데 이 구호안내판에 적혀있는 위치표시가 조금 애매하다. 이곳은 봉우리가 아닌 안부인데도 ‘3봉’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아마 조금 전에 우회했던 산봉우리를 3봉으로 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은 다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이번에는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안전장비의 도움 없이 거뜬히 올라서니 또 다시 바위 벼랑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로프에 매달려 바동거리고 있는 모습들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암벽이 수직(垂直)으로 되어있는 데다가 몸을 비틀면서 힘을 써야만 위로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이런 오름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뒤쪽으로 우회(迂廻)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들머리에서 심봉까지는 1시간20분 정도가 걸렸다.
▼ 심봉은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봉우리 중 하나이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쉼봉 정상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넓고 평탄한 바위지대로 이루어진 정상은 수십 명이 앉아 식사를 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이다. 옛날에는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쉰다’라는 의미를 넣어 ‘쉼봉’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심봉으로 변한 모양이다. 정상은 고도(高度)가 높고 주변에 나무가 없는 탓에 주변의 경관을 조망(眺望)하기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광활한 산자락에는 초록빛 난대림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완도 남부 일대와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지만 아쉽게도 연무(煙舞) 때문에 또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 심봉 정상에서 바라본 상황봉
▼ 상황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심봉, 바위봉우리가 우람하다.
▼ 쉼봉을 내려서자마자 갈림길 하나가 나타난다. 아까 쉼봉 아래에서 우회했을 경우 다시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쉼봉에서 상황봉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거기다 고저(高低)가 거의 없는 능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진행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여유 있게 걷다보면 갑자기 문설주처럼 서있는 바위틈을 지나게 된다. 상황봉의 바로 아래에서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통천문(通天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면 곧이어 상황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 상황봉 정상은 오늘 오르게 되는 다섯 개의 봉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꽤 넓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의 가장 높은 곳에는 잡석(雜石)으로 엉성하게 쌓아올린 봉수대(烽燧臺)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아래에 네모난 정상표지석이 옆으로 누워있다. 상황봉은 해상왕 장보고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가 해상왕국(海上王國)을 만들면서 자신을 코끼리황제에 비유하고, 왕국에서 제일 높은 이 산봉우리를 상황봉(象皇峰)이라고 지었단다. 그러나 완도는 그로 인해 큰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신라는 장보고의 세력을 소멸시키기 위해 이곳 토착민(土着民)들을 전북 김제로 강제이주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려 말이 되어서야 다시 완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상황봉 정상은 한마디로 볼품이 없다. 다른 봉우리들이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비해 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眺望)은 시원스럽다. 다도해(多島海)의 수많은 섬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저 섬에 가고 싶다’라는 이름표를 단 다도해 조망도(眺望圖)가 정상에 세워져 있는 것은 이를 증명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정상에서는 다도해 풍경 외에도 호남 남해안의 유명한 산들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북쪽에 있는 달마산과 두륜산, 주작산, 덕룡산인데, 아쉽게도 오늘은 그 형태만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 상황봉에서 내려와 백운봉으로 향한다.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대야리갈림길(이정표 : 백운봉 2.5Km/ 대야리 3.4Km/ 상황봉)을 만나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내리막길이다. 그렇다고 마냥 내리막길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끔 오르기도 하지만 길지도 그렇다고 가파르지도 않기 때문에 오르막길로 느껴지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상황봉에서 20분 남짓 내려오면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 하나가 나온다. 제2전망대(119 구호지점 안내판 ; 하느재 0.7Km/ 상황봉 1.3Km)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전면에 대야저수지 너머로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백운봉의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우뚝하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운봉
▼ 제2전망대에서 조금만(8분) 더 걸으면 안부사거리(이정표 : 2전망대 0.5Km, 백운봉 1.0Km/ 숙승봉 5.6Km/ 수목원정문 4.0Km/ 상황봉 1.4Km)에 내려서게 된다. 대야리와 완도수목원을 잇는 임도가 지나가는 하느재라는 고갯마루이다. 그런데 숙승봉을 가리키는 방향이 오른쪽 임도를 향하고 있다. 숙승봉을 가기 위해서는 백운봉과 업진봉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부랴부랴 지도를 확인해 본 결과, 이곳에서 임도(林道)를 따라 진행할 경우 앞의 두 봉우리를 거치지 않고도 숙승봉에 이를 수가 있었다. 또 하나 헷갈리는 것이 있다. 아까 지나왔던 전망대에 붙어있던 ‘구호지점안내판’에는 그곳이 제2전망대라고 적혀있었는데, 하느재의 이정표는 다른 방향으로 제2전망대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 하느재에서 또 다른 전망대까지는 금방이다. 평지와 다름없는 산길을 따라 걸으면 4분이 채 안되어서 3층으로 된 목조(木造)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수리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낡은 전망대를 조심조심 오르면 아까 지나왔던 전망대에서 보았던 조망(眺望) 외에도, 이번에는 군외면 쪽에 있는 섬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3층으로 된 전망대는 3층에서만 조망이 트인다. 그렇다면 1층과 2층은 잠시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20~30명이 둘러앉아도 충분할 만큼 넓게 조성해 놓았다.
▼ 하느재를 지나면서 시작된 상록활엽수 숲은 전망대를 지나면서 더욱 짙어진다. 동백나무보다 후박나무의 개체수가 더 많은 숲은 겨울철인데도 푸르기만 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웃자란 나무들로 인해 숲은 어두울 정도인데, 고개를 들면 허공에 또 하나의 길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길 양쪽으로 가지런히 선 나무들이 가지 위에서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고저(高低)가 거의 없이 오르내리던 산길은 헬기장을 지나면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어낸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백운봉 정상이다. 하느재에서 35분 조금 넘게 걸렸다.
▼ 백운봉 정상은 전망 좋은 너럭바위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네모난 바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으로, 그 아래쪽은 수십 길 낭떠러지로 되어있다. 그런데 아까 지나왔던 봉우리들에서 봤던 익숙한 정상표지석이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절벽위의 네모난 커다란 바위에 ‘백운봉’이라고 적어 놓았을 따름이다. 자연석(自然石)을 활용해서 정상표지석을 만든 것이다.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으로 다가가던 집사람이 자꾸만 주춤거린다. 정상석 아래가 수십 길의 낭떠러지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양이다. 백운봉에서도 다도해(多島海) 풍경은 시원스럽다. 수십 개의 섬들이 넘실대는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시야(視野)를 가리던 연무(煙舞)가 서서히 걷혀가고 있는지 아까 심봉이나 상황봉에서 보다는 한층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백운봉에서 내려서서 200m쯤 더 걸으면 대야리 갈림길(이정표 : 숙승봉 1.8km/ 대야리 3.6km/ 백운봉 0.2Km)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은 대야리로 내려가는 길이니 체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숙승봉 방향으로 곧장 나아가면 된다. 백운봉에서 업진봉으로 이어지는 길도 유순한 편이다. 비록 중간에 바위구간이 두어 번 나타나지만 우회(迂廻)하면 되고, 나머지 구간은 큰 오르내림이 없기 때문이다. 백운봉에서 20분 남짓 걸으면 업진봉에 올라서게 된다.
▼ 업진봉 정상은 너른 암반(巖盤)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한가운데에 서있는 눈에 익숙한 정상표지석이 우람하지만, 왠지 텅 빈 느낌이 드는 이유는 어쩌면 정상이 너무 넓은 탓이 아닐까 싶다. 왼편(서쪽) 방향이 툭 트여있기에 다가가보니 전력선을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보인다. 아마 활공장(滑空場)으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활공장너머로 군외면 시가지(市街地)와 완도와 육지를 연결하고 있는 완도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에는 물론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 오는 길에 보아왔던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긴 다른 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진행방향에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숙승봉이 우뚝 솟아있는 것이다.
▼ 업진봉 정상에서 바라본 숙승봉
▼ 업진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리기 위해 가파르게 변한다. 길가의 나무들도 언제부턴가 소사나무로 바뀌어 있다. 빈가지 사이에 허공이 열리는 앙상한 겨울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소사나무 군락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나고 다시 상록활엽수림이 변하더니, 이번에는 억새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너른 평원이 길손을 맞는다.
▼ 업진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라본 숙승봉, 마치 거대한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는 형상이다. 참고로 숙승봉은 백운봉 정상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 형상, 그리고 하산지점인 불목리에서는 정수리 위의 외뿔을 잃은 거대한 동물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숙승봉이라는 이름은 백운봉에서 바라본 형상을 보고 붙였나보다. 숙승봉이 잠든 스님의 얼굴에서 모티브(motive)를 따왔다고 하니 말이다.
▼ 억새군락지를 지나면 송전탑(送電塔)이 있는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아까 하느재에서 임도를 따라 진행했을 경우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임도를 건너 다시 맞은편 능선으로 들어서서 10분 남짓 걸으면 산길은 오르막으로 변하면서 길이 둘로 나뉜다. 숙승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비탈길로 올라가야 한다. 왼편은 숙승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迂廻)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오른편 비탈길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긴 철계단을 다시 한 번 힘겹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숙승봉 정상이다. 업진봉을 출발한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마치 볼록렌즈처럼 가운데가 뽈록하니 솟아오른 모양으로 생긴 숙승봉에는 가장 뽈록한 부분에 낯익은 정상표지석이 의젓하게 서있다. 정상에 서면 하산하는 방향으로 다도해의 풍광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아늑하고 포근한 마을 풍경들이 유난히도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포근한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우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多島海)의 조망(眺望)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만일 이렇게 뛰어난 절경(絶景)일지라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가슴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눈이 호사를 마음껏 누려도 된다. 여유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산길이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 숙승봉 정상에서 하산방향인 불목리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울창한 숲속에 기와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해신(海神)‘의 신라방 촬영세트장이다. ’왕(王)‘으로 불리던 장보고는 언젠가부터 신(神)으로 승격해 버렸다. 무역입국(貿易立國), 무역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렇게 만든 모양이다. 그 덕분에 저 아래에 보이는 드라마 세트장은 완도의 주요 관광상품이 되었다. 그로 인해 강제이주까지 당했던 이곳 토착민들에게 그가 늦게나마 보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원불교수련원 옆에 있는 저수지(貯水池) 위쪽으로 난 지방도
숙승봉에서의 하산은 아까 정상과 만났던 철계단의 반대편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안전로프와 철계단을 이용해서 바위지대를 내려서도, 산길의 가파름은 약해질 줄을 모른다. 숙승봉에서 원불교수련원까지는 1.5Km, 동백나무 숲이 우거진 숲길이다. 상황봉을 오르고 내릴 때 제일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푸른 난대림(暖帶林) 숲을 걷는 일이다. 산의 대부분이 동백나무, 후박나무, 소사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처럼 한 겨울에 푸른 숲을 걷는 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내리막길은 속도를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다. 때문에 내려서는 시간이 더 걸렸던 모양이다. 원불교수련원 입구(이정표 : 숙승봉 1.5Km, 백운봉 3.5Km, 상황봉 6.0Km)까지 40분이 걸린 것을 보면 말이다. 이곳에서 왼편에 보이는 저수지의 제방(堤防)을 따라 잠깐 걸으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지방도가 나온다. 원래의 날머리는 불목리에 있는 덕운동주차장이었으나 완도회센타에서의 자유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코스를 단축한 것이다. 상황봉을 오르고 내릴 때 제일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푸른 난대림(暖帶林) 숲을 걷는 일이다. 산의 대부분이 동백나무, 후박나무, 소사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처럼 한 겨울에 푸른 숲을 걷는 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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