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巨文島)-백도(白島)

 

 

일 정 : <첫날> 고흥군 녹동항→소록도 중앙공원→녹동항→쾌속선(페스트로이카)→거문도→거문도 등대→ <둘째날> 영국군 묘역→백도(쾌속 유랑선 이용)→거문도→불탄봉 산행→녹동항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산행일 : ‘11. 5. 14(토)-15(일)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에 다소곳하게 자리한 거문도는 끊임없는 왜구의 침략에 이어, 1885년 고종재위 시절에는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위해 강제 점령했던 아픔의 역사를 안고 있다. 또한 일본 강점기(强占期)에는 임병찬 의사가 유배돼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원시림을 헤쳐 가는 거문도 트레킹과, 화려한 백도의 풍광은, 누구나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코스이다. 

 

 

 

여행의 시작은 전라남도 최남단(最南端) 중의 하나인 고흥군 녹동항에서 시작된다. 승선시간이 조금 남을 경우에는 인근에 있는 ‘소록도(小鹿島)’를 탐방하면 되니까 배의 출항시간에 맞추느라 안절부절 할 필요는 없다. 나환자(癩患者 :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수용시설(集團收容施設)이 있는 소록도에는, 한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원으로 손꼽혔던 ‘중앙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공원은 마지못해 들르는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러봐야 할 명소(名所)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도 어김없이 소록도를 향하고 있다. 이곳 소록도는 내가 젊었을 때, 봉사활동을 위해 몇 번 찾았던 곳이다. ‘가톨릭의사회’의 의료봉사활동(醫療奉仕活動)을 따라 다니던 시절, 비위가 약한 편이었던 난, 매번 먹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도 역시 그러한 곳 중의 하나였다.

* 소록도(小鹿島) :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예전에는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살아가던 한적한 섬이었으나,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특히 이곳의 중앙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때에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던 명소(名所)였다. 1940년,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의 노력동원으로 세워진 중앙공원은, 처음에는 ‘부드러운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광복(光復) 후에 중앙공원으로 개칭(改稱) 되었다. 약 2만 5,000㎡에 이르는 면적에 솔송과 황금편백을 비롯하여 향나무, 후박나무 등 잘 손질된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있어 다른 곳의 소문난 수목원들을 무색케 할 정도이다. 공원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적힌 구라탑(求癩塔)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있다.

 

 

 

 

녹동항으로 되돌아와 출항시간을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서 배에 오른다. 배는 비행기보다도 오히려 더 자리가 넓고, 편안 하다. 심지어는 안에 근사한 매점도 갖추고 있다. 카페처럼 스탠드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며, 일행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비록 호화 여객선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호사(豪奢)스런 여행인가? 비록 업무 때문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녀본 내 눈에도, 이만하면 다른 선진 관광국(先進 觀光國)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동항을 출발하고 나서 한 시간 남짓 지나면 망망대해 저 멀리로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後) 거문도에 도착한다.’는 안내멘트와 함께 선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머나먼 남쪽나라, 아름답기로 소문난 거문도에 닿게 되는 것이다. 속도를 줄인 쾌속선은 섬과 섬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거문항으로 들어선다. 거문항은 ‘우묵배미(땅의 한 부분이 움푹 들어간 형태) 항구’다. 항구의 내수면(內水面)을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이 어깨동무를 하고 ‘ㄷ자’를 만들어 놓고 있다. ‘ㄷ자’의 터진 부분이 병(甁) 모가지처럼 좁기 때문에, 거센 파도도 항구 안으로 넘어들지 못한다. 내수면은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다.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 파도가 3개 섬의 등을 죽어라 두들기며 분풀이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 거문항은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늑하고 포근한 1백만 평 정도의 천연적 자연항만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호수를 닮은 곳을 ‘도내해(島內海=灣內)’라고 부른다, 깃을 세운 파도도, 내항에만 들어서면 숨을 죽일 만큼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 등 열강(列强)들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거문도 : 여수와 제주도 중간지점에 위치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 섬으로 서도와 동도, 그리고 고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이름은 삼도, 삼산도, 거마도등 이었으나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가 많다는 뜻을 지닌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해서 거문도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 최초 여기자와 초대공학박사, 제2대 해군참모총장, 울릉도 초대 도감 등이 거문도 출신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거문도가 전국 최고의 학력수준을 보였었단다.).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가운데에 있는 항만이 마치 호수처럼 보일 정도로 물결이 항상 잔잔하다.

* 巨門島라는 이름을 낳게 한 귤은(橘隱)선생은 퇴계, 율곡 등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추앙되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밑에서 수학 했으나 출사 하지는 않았다. 그는 평생 동안 고향 거문도와 청산도 등지에서 제자를 길러내며 야인으로 살았다. 문집으로 귤은재집(橘隱齋集)을 남겼고, 그 속의 <해상기문>에 러시아의 문서를 기록으로 남겼다. 1854년 4월, 푸차틴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기항했을 때, 유학자 귤은(橘隱) 김류(金瀏)선생은 만회(晩悔) 김양록(金陽錄)과 함께, 러시아의 함선에 올라 필담을 나누고 '해상기문'(海上奇聞)을 남겼다. 당시 푸차틴 제독은 귤은 등에게 통상 문서를 건네며 조선 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철저한 쇄국 정책을 견지 하고 있었던 까닭에 문서는 전달되지 못했다.

 

 

 

거문항에 내려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길을 나선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거문도 등대’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오늘 같이 날씨가 화창한 날에나 만날 수 있는, 일몰에 대한 기대감도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거문도등대는 東島와 西島, 그리고 고도로 구성되어 있는 거문도의 세 개 섬 중에서 서도에 위치하고 있다. 고도의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서 삼호교를 건너면 西島이다. 이곳 서도는 대한민국 초창기 해군 육성에 크게 공헌했던 故 박옥규 제독이 태어난 곳이다.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다는 미명(美名)하에 거문도를 무단점령 했던 곳에서, 대한민국 제2대 해군참모총장이 나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다. 그나저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자랑거리였으리라.

 

 

 

삼호교를 지나서 ‘거문도 등대’ 방향으로 걸으면 얼마 안 있어 유림해수욕장이 보인다. 도로(道路)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白沙場) 사이는 시멘트계단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샤워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도로의 오른편에 설치되어 있다. 유림해수욕장을 지나 1.5Km정도를 더 들어가면 서도의 끄트머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등대가 있는 수월산은 '무넹이'로 이어진다. '무넹이는' 좁고, 낮고, 위태롭다. 태풍이나 해일 때면 바닷물이 넘나든다 해서 '무넹이'란다. 무넹이는 물넘이의 이곳 사투리란다. 여기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상록수 숲은 거문도 도보 여행의 백미다.

* 유림해수욕장 : 유루우미(파도가 밀려오다)라는 일본인에 의해 유래한 지명으로 전해오며, 완만하고 깨끗한 사질(紗質)과 투명한 물빛은 여태껏 익사자가 없기로 유명하다.

 

 

 

거문도 등대로 오르는 약1.5㎞의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터널로 꼽힌다. 나무 계단이었다가, 바닥에 돌을 깐 길이 되었다가, 이내 흙길이 된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은 걷는 재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에 이끌려 이곳을 찾고 있으며, 이 길을 밟으며 영감을 충전해 가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길은 숲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 같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햇살이 고개를 내밀려고 애를 쓴다. 천연림(天然林)이 내뿜는 산소는 일반 수목원보다 2배나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 풍부한 산소량에도 불구하고, 길은 경사(傾斜)가 완만하다. 등대에 다다를 때까지 숨도 가쁘지 않을 뿐더러, 발걸음도 가볍기만 하다. 이 길은 양 옆으로 빽빽이 들어찬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는 겨울이 더 장관이라고 한다.

 

 

 

무넹이에서 대략 20분 정도를 걸으면 등대가 보인다. 거문도등대는 수월산(수월산의 ‘수월(水越)’은 ‘파도가 뭍을 타고 넘는다’는 뜻이다. 곧 이곳사람들이 말하는 ‘목넘이’의 한자어다) 정상 바로 아래에 우뚝 서 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우람하게 서있는 등대와 잔디가 고운 별장 같은 관사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절벽 위 관백정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가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거문도 등대 : 인천 팔미도에 이어서 국내에서 2번째로 세워졌으며(1905년), 규모는 동양최대란다. 동지나해를 드나드는 어선들의 뱃길을 안내하는데, 등대의 불빛은 40㎞가 넘는 곳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거문도 등대로 가는 산책길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사방으로 트여 있다. 등산로 옆으로 파도가 넘실대며 밀려오고 있다.

 

 

 

멀리 백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관백정(觀白亭)에 올라서면, 태평양과 이어지는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어디에서 저 짙푸른 색이 나오는 것일까? 시리도록 푸른빛에 세속(世俗)에 찌든 내 마음을 씻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남해 먼 바다에 있는 이곳 선경(仙境)을 떠날 때에는 기쁨으로 충만한 새로운 가슴으로 바꾸어 떠났으면 좋겠다. 쪽빛 날카로움에 내 묵은 마음을 다쳤건만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설레이는 내 마음은 조금도 쓰라리지 않다.

 

 

 

수월산의 까마득한 절벽(絶壁) 위에서 저녁노을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가 저녁노을에 물들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뚝 솟은 등대에게로 저녁노을이 옮겨가고 있다. 바다와 등대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태양이 西島의 봉우리에 걸려버린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를 기대했던 마음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적색 구름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사물들은 어느새 암청색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관을 나선다. 백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전에 근처에 있는 영국군의 묘역(墓域)인 ‘해밀턴 파크’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영국군묘역은 선착장으로 나가는 도로에서 바다 반대편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입구에 이정표가 있으니 찾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골목길로 들어서서 약 1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묘역으로 가는 길의 주변에 쓰려져가는 폐가(廢家)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이곳 거문도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섬을 떠난 모양이다. 길 주위엔 말쑥하게 자란 쑥밭 천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 쑥이라 품질도 으뜸이란다. 보통 쑥으로만 한 해 500만 원씩 소득을 올린다니, 아예 쑥밭이 金밭이 된 셈이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유럽에 있어서일까? 묘역은 대체로 서구풍(西歐風)으로 꾸며져 있다.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묘비가 거문도의 아름다움 풍광과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 해밀턴 파크 : 1885년 러시아의 남하정책(南下政策)을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해군이 이곳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거한 일이 있었다. 당시 9명의 주둔군 수병이 사망하였는데, 이중 3구의 시신을 이곳에 매장한바 있다. 영국에서는 당시 주둔군 제독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수시에서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이 묘역(墓域)을 "해밀턴 파크"라 명칭화(名稱化)하여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백도에 돌아와 숙소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불탄봉 산행을 나선다. 어깨에 배낭이 짊어져 있음은, 육지로 나가는 배의 출항시간에 쫓겨 혹시라도 산행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서이다. 산행의 출발은 어제 답사했던 ‘거문도 등대’와 같다. 다만 삼호교를 건넌 후에, 어제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삼호교를 건너자마자 녹산등대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왼편의 산릉(山稜)이 녹산등대에서 불탄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인줄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야 능선에 닿을 수 있는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진입로 표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올라서면 됩니다.’ ‘사람들이 이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길을 찾기도 어렵고, 오르기도 힘들 것이니, 되돌아가 정규등산로로 올라가세요.’ 이곳 주민 두 분의 답변이 서로 다르니 문제다. 고민 끝에 내 직감(直感)을 믿기로 하고, 왼편 언덕위에 보이는 ‘방송국 송신탑’을 기준으로 삼은 후, 무작정 왼편 골목길로 들어선다. 내 선택이 옳은 줄은 송신탑 근처에서 만난 산행대장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KBS 송신탑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이내 능선 안부 삼거리에 닿는다. 등산로 주변에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나무들이 보이고 있다. 불탄봉은 이곳 능선 안부에서 왼편으로 600m만 더 걸으면 된다.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녹산곶 등대‘가 나올 테지만 등산로는 ’등산로가 아니니 출입을 금(禁)한다‘는 팻말로 막아놓고 있다.

 

 

 

 

불탄봉으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동백나무 숲으로 덮여있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동백나무들이 등산로를 어두운 터널로 만들어내고 있다. 터널을 벗어나면 이내 신선바위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와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왼편으로 짧게 오르면 이내 불탄봉 정상이다.

 

 

 

‘불이 자주 나는 산’이라는 뜻의 불탄봉의 정상은 널따란 분지(盆地), 가운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 대구의 김문암씨가 사비(私費)로 만들어 놓은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정상에 서면 초록 융단처럼 펼쳐지는 동백 숲 너머로 고도와 동도, 초도, 손죽도, 백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징검다리처럼 이어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불탄봉 정상에서 신선바위 방향으로 걷다보면 등산로 왼편에 고사목(枯死木)들이 보인다. 연녹색 담쟁이 넝쿨을 뒤집어쓰고 있는 수십 그루의 고사목들이, 감색 바다를 등지고 이색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불탄봉의 지명(地名)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여러 번에 걸쳐 山불이 났을 것이다. 그 때 타고 남은 잔해(殘骸)위에 세월이라는 이끼가 돋아나, 저러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음이려니...

 

 

 

 

고사목 지대를 벗어난 능선은, 꽤 긴 구간에 걸쳐 나무 한그루가 없는 초원으로 변한다. 능선에는 쑥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꼭 여기뿐만 아니라 거제도 전체가 쑥으로 들러 쌓인 듯, 진한 쑥 향을 내뿜고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집사람 손길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쑥떡을 만들어 주려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 발아래는 거문도의 내수면이 푸르게 빛나고, 오른편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있다.

* 거문도 쑥은 해풍을 맞고 자라 향이 강하고 품질이 뛰어나 비싼 값에 팔리는 특산물이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거문도의 많은 밭들이 채소 대신에 쑥으로 가득 차 있다.

 

 

 

쑥을 뜯으며 한가로이 걷다보면, 어느새 능선은 동백나무 숲으로 뒤바뀌어 있다. 잠시 동안이나마 초원에 자리를 내 주었던 게 못내 아쉬웠던지, 동백나무 숲은 울창하다 못해 차라리 어두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문도를 동백나무의 천국이라고 부르나 보다. 어두컴컴했던 동백 터널이 훤하게 열릴 즈음, 밝은 햇살아래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보로봉이다. 가장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보로봉에 서면, 거문도가 한눈에 펼쳐지고,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어 자연 전망대 구실을 한다. 보로봉의 서쪽 사면(斜面)은 수백 길 절벽, 발아래에는 망망대해에서 밀려온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거문도 전역이 동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시피 하지만, 특히 보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정상을 지나 신선바위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동백터널이다. 동백나무로 가득 찬 울창한 숲은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무들이 길 쪽으로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터널이 만들어졌다. 이곳을 동백꽃으로 수놓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면, 아마 이 길은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보였을 것이다.

*『‘툭’. 꽃이 떨어졌다. 멍든 곳 하나 없이 붉은 이파리 그대로다. 채 시들기도 전에 작정한 듯 훌쩍 뛰어내린다. 말리고 싶다.』 절정에서 추락하는 동백을 보고 소설가 김훈은 ‘백제가 멸망하듯’이라고 표현했다. 필 때보다 질 때가 더욱 아름답다는 동백꽃이 얼마나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면, 떨어지는 동백꽃잎에 ‘비장(悲壯)’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

* 동백나무숲 군락지 : 동백(冬栢) 은 겨울에 피어나야 진정한 동백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천연(天然) 밀림(密林)으로, 이곳에 서식하는 360여종의 아열대식물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단다. 매년 10월말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지천이 붉은빛으로 가득하다는데, 지금은 5월하고도 중순... 선답자(先踏者)들이 남긴 빛바랜 사진들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보로봉에서부터 등산로는 바윗길로 바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등산로 바닥을 납작한 돌(乭)로 정교하게 깔아 놓았다. 바윗길을 얼마동안 걸어 내려오면 돌을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이 정교하게 쌓아 놓은 건물 터가 보인다. 꽤 넓은 것을 보면 이곳이 ‘기와집 몰랑?’ 그러나 아닐 것이다. ‘몰랑’이 산마루를 뜻하는 남도의 사투리일지니, ‘기와집 몰랑’은 당연히 기와집처럼 생긴 산마루를 일컬을 것이니 말이다. 건물터에서 바라보면 신선바위 방향에 기와집의 처마처럼 생긴 절벽이 보이는데, 어쩜 저 절벽을 보고 ‘기와집 몰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쑥 뜯는데 제미를 붙인 집사람은 이곳에서 하산시키고 난 부지런히 신선바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건물터를 지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오른편에 수백 길의 수직절벽(垂直絶壁)을 끼고 이어진다. 저만큼 절벽아래에, 원색차림의 낚시꾼 모습이 개미새끼처럼 조그맣게 점점이 박혀있다. 아마 이 부근이 ‘낚시 포인트’인가 보다. 남해의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7~8기의 돌탑이 보이고, 조금 더 걸으면 오른편에 우람하게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신선바위이다.

 

 

 

 

 

 

신선(神仙)바위, 쪽빛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위치한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겼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란다. 어렵게 바위를 부여잡고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정상은 의외로 넓다. 바둑뿐만이 아니라 수십 명의 신선들이 풍류를 즐기고도 남을 만큼 널따랗다.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방향으로 하얀 바위능선이 마치 용의 꼬리처럼 흐르고 있고, 그 끄트머리에 ‘거제도 등대’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아득한 절벽 아래에는, 바위에 부딪쳐 생기는 새하얀 거품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신선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되돌린다. 발아래에는 하늘을 닮았다는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다른 파란 색의 정수가 발아래에 있다. 그 파란색의 정수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득 ‘하얀 포말에서 머리를 베었더니 하얀 피가 나왔다’는 어느 일화가 떠오른다. 자신을 바위에 부딪쳐가며 순백색의 하얀 색을 만들어내는 파도, 그렇게 자신을 정화시키는가 보다. 능선 안부로 되돌아와 거문항 방향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또다시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백도 : 거문항에서 유람선으로 바꿔 탄 후 동쪽으로 28km를 푸른 바다 물살을 가르고 달려가면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만날 수 있다. 백도는 독도와 흡사하다. 백도와 거문도는 마치 독도와 울릉도처럼 한 세트로 여겨진다. 백도도 독도처럼 일반인이 발을 디딜 수 없는 무인도(無人島)일뿐더러, 크게 두 개의 섬으로 이뤄진 점도 닮았다. 국가명승(國家名勝) 제7호인 백도는 39개의 무인군도(無人群島)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섬을 멀리서 보면 온통 하얗게 보인다 하여 백도라 하였다는 설과, 봉우리가 아흔 아홉 개이므로 백 개에서 하나가 부족하다 하여 百자에서 한일(一)자 한 획을 떼고 白島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본디부터 흰 白자가 들어가는 白島로 불리어 왔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강하게 보인다.

* 백도의 전설 :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아들이 노여움을 받아 귀양을 왔다가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바다에서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단다. 수년 후 아들이 보고 싶어진 옥황상제가 아들을 데려오라고 백 명의 신하들을 보냈나 보다. 신하들마저 돌아오지 않자, 분노(憤怒)한 옥황상제는 그만 그들 모두를 돌로 만들어 버렸단다. 그것이 크고 작은 섬으로 변해서 백도가 되었다고 한다. 섬이 백 개 정도여서 백도라 하였는데, 섬을 헤아려 본 바 ‘일백 百’에서 한 섬이 모자라 ‘한 一’을 빼고 보니 ‘흰 白’자가 되어 白島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해밀턴 파크’을 둘러보고 있는데,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배 출항시간이 다 되어가니 빨리 내려오란다. 서둘러 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침 여섯시, 배가 출항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선착장은 이미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옆 사람과 어울려 떠들어대는 광경은 마치 초등학교 소풍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긴 아름답다고 소문난 백도에 들어가면서 가슴 설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백도에 들어올 때 타고 들어왔던 페스트로이카 보다는 조금 더 작은 유람선(遊覽船)에 승선하여, 맨 앞쪽 자리에 앉는다. 맨 앞쪽에 선수(船首)로 오르는 문이 있으니,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선수에 오르기 위해서다. ‘좋은 자리에서 좋은 작품이 탄생(誕生)한다’ 이 말은 진리이니까 말이다. 물론 쾌속선인 이 배는 항해 중에는 선수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는 안 얻느니 만도 못하다’ 이 門은 영원히 열리지 않는 다는 것을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나는, 덕택에 사람들 틈에 끼어 겨우겨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선실 앞에 부착된 TV에서는 왕년의 유명가수 나훈아가 열창을 하고 있다. MBC 주관 광복절 특집을 녹화해서 보여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승객들은 그 유명한 나훈아까지도 외면한 채, 시선들을 모두 창(窓)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사람들마다 얼굴들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아무래도 미지(未知)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레임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모양이다.

 

 

100명도 넘게 승선(乘船)한 유람선은 백도를 행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유람선의 특징대로 앞에서 안내하는 가이드가 이런 저런 설명을 해준다. 작은 돌섬이 99개로 이루어진 백도는 사람은 내릴 수 없고, 새(鳥)들만의 천국(天國)이란다. 백도만이라도 사람들로 인한 오염이 없는 천국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 거문도에서 출발한지 대략 40분 정도 지나면 저 멀리 무리를 짓고 있는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안개에 아랫도리를 내준 섬들이, 마치 돛단배 마냥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떠다니고 있다. 이때쯤이면 선미(船尾)와 선수(船首)를 막아 놓았던 쇠사슬이 걷어지고, 가이드의 멘트에도 흥이 실리기 시작한다. 우르르 船首로 자리를 옮긴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탄성이 터지고 있다. 덜 영근 아침 햇살이 비치는 섬들이 진주알처럼 아름답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다도해, 미끄러지듯 섬 사이를 항해하는 배가 가까워 질 때마다 작은 섬 들은 仙女들의 나신(裸身)처럼 물안개를 걷고 다가선다.

 

 

원할 때마다 백도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3代가 공덕(功德)을 쌓아야 맑은 날에 섬을 볼 수 있다는 말이 거문도에서도 전해지고 있단다. 울릉도 사람들도 독도를 이야기할 때 그렇게들 말하고 있는데... 산을 좋아하는 난 백두대간(白頭大幹) 중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인 지리산의 천왕봉에서 일출(日出)을 한번쯤은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천왕봉으로 오르기를 세 번 만에야 풋풋한 해를 볼 수 있었고, 그때 누군가가 천왕봉의 일출은 ‘3대가 공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했다. 섬사람들이나 산사람들 모두, 자기들이 아끼는 섬과 바다가 귀하다는 생각에 그렇게들 표현하고 있나보다.

 

 

 

 

도착한 바다 위에는 예술가들이 공들여 빚은 듯한 조각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먼 행로에 피곤해 하던 사람들도 백도(白島)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지막이 탄성을 지르고 말문을 닫는다. 환하게 비치는 햇살에 백도는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꽃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한다. 명승지 제 7호로 지정된 백도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일반 관광객들은 섬의 상륙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선상관광으로도 백도는 충분히 감탄할 만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성(固城)을 닮은 궁전바위 등 온갖 형태의 기암괴석이 푸른 바다를 화선지 삼아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듯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워 국가명승지 제7호로 지정된 백도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손재주 좋은 조각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 그 바위에다 그럴듯한 이름과 전설(傳說)을 붙여 놓은 이곳 사람들의 재치도 놀라기에 충분하다.

 

 

 

백도는 계절(季節)에 따라, 또는 그날의 기상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오전과 오후 또는 저녁 등 시각이 변할 때마다...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화가 무쌍하단다. 겨울철에는 보통 흰색의 톤이 강하고, 비가 개인 직후에는 갈색의 톤을 강하게 발산하기도 한단다. 때문에 혹자(或者)들은 이곳 백도를 ‘마법의 성(magic cast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은 백색의 톤을 진하게 내보이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곳 백도는 겨울철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나 보다.

 

 

 

 

병풍처럼 늘어선 병풍바위, 꾸지람을 받고 있는 모습의 형제바위, 곡식을 쌓아놓은 듯한 노적섬, 매가 먹이를 채갈 듯한 매바위, 남근을 닮은 서방바위, 서방바위를 마주보고 있는 각시바위, 불상 모양의 석불바위…. 이름만큼이나 해풍에 씻긴 바위 모양도 제각각이다. 백도에는 희귀 란이 많이 자라는데 향이 진해서 옛날 어부들은 안개가 끼면 백도를 찾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형상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양으로 생긴 여인, 성모마리아상 등 이런 저런 사람 모양의 바위들이 우리를 반긴다. 바위에 구멍이 많이 있는 것은 새들의 안식처라 했다. 모두들 환호성 이다.

 

 

 

백도는 무인도로 알려져 있지만 생명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무인도라 오히려 더욱 다양한 생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천연기념물 21호인 흑비둘기를 비롯해 휘파람새, 팔색조 등 40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백도는 ‘자연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섬에 발을 내디디지도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하게 하고 있나 보다. 백도는 그저 눈으로 보고 귀로만 즐겨야 한다. 자연의 보고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백도 유람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하백도가 백미(白眉)다. 전설을 담은 수십 개의 바위가 천태만상을 연출한다. 옥황상제 아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서방바위’, 용왕 딸이 바위로 변했다는 ‘각시바위’, 그들의 패물상자였다는 ‘보석바위’ 등이 전설과 함께 전해진다. 각양각색으로 생긴 바위들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살짝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지고 있다.

 

 

 

백도의 바위로 된 섬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명장(明匠)들을 시켜 일부러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들을 하고 있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절벽이지만 각자 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 매, 서방, 각시, 형제 바위 등. 가이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자연스레 바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觀光客)들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자신의 모습까지 합성하려는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이때는 일행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백도의 변화무쌍한 절경만 눈에 가득한 뿐이다.

 

 

 

 

 

 

하백도를 한 바퀴 돈 유람선은 뱃머리를 다시 거문도로 돌린다. 선실속으로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신비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은 그저 멍할 따름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더니, 신묘(神妙)하고 기묘(奇妙)한 바위와 시퍼런 바다가 하나로 일체가 되어, 나를 몰아지경의 세계로 빠뜨려 버렸나 보다.

 

 

 

곤방산 (困芳山, 715m)-천덕산(天德山, 552m)

 

 

산행코스 : 당산마을→덕양서원→주능선→천덕산→큰봉→곤방산→샘터 이정표→심청이마을 ( 산행시간 : 4시간10분)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과 오곡면의 경계

산행일 : ‘10. 5. 12(목)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색 : 곤방산은 곡성의 진산(鎭山) 동악산과 곡성의 최고봉인 통명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던 山이었으나, 최근 곡성군 오곡면에서 등산로를 새로 개발했단다. 山 자체만 놓고 보아서는 특별히 뛰어난 점이 없지만, 신숭겸의 얼을 기리는 덕양서원과 날머리인 ‘심청이야기 마을’, 그리고 보성강이 섬진강에 합류되는 압록유원지 등 관광명소(觀光名所)를 함께 둘러볼 때는, 즐거움이 배가되는 코스로 변한다. ‘가족 산행지’로 추천할만하다.  

 

 

산행들머리는 오곡면 오지리의 덕양서원

‘전주-순천고속도로’ 서남원 I.C에서 내려와, 745번 지방도를 따라 남원시 주생면까지 간 후, 17번 국도로 곡성・순천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남원시 금지면과 곡성읍을 거친 후, 오곡面事務所 소재지인 오지리에 닿게 된다. 이곳 오지리의 오지1교를 지나자마자 곧바로 우회전하여, 하천제방(河川堤防)위 로 난 840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왼편에 ‘덕양서원 진입로(德陽書院 進入路)’ 표시석이 커다랗게 서 있다. 그 오른편에는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진입로 맞은편 하천의 한 가운데, 물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기묘(奇妙)하게 생긴 바위가 조각품인양 아름답다.

 

 

 

 

산행은 덕양서원의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100m쯤 들어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어느 길로 가던지 덕양서원에 당도하게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왼편의 완계정사(浣溪精舍) 팻말이 있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진한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스치는 숲길과 인공폭포, 그리고 규모는 비록 작지만 천연의 폭포도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봄이 절정을 지나고 있다. 결코, 서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봄이 정상에서 하산을 준비하고 있다. 기후 탓이겠지만, 요사이에는 이 땅에서 봄을 잡아두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인공(人工)의 폭포(가느다란 물줄기가 공중에서 하천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았다) 오른편 언덕에 완계정사(浣溪精舍)가 보이고, 완계정사 앞 수풀사이에는 완계폭포(浣溪瀑布)라고 적힌 멋진 표지석이 서있다. 그러나 표지석의 멋진 외모에 이끌려 내다본 폭포는 왜소하기 그지없다. 폭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완계정사 뒤편으로 꽤 큰 규모의 덕양서원이 고즈넉하게 앉아있다.(이정표 : 천덕산 2.3Km/ 곤방산 5.8Km)

 

완계폭포(浣溪瀑布)

 

 

덕양서원(德陽書院) : 이 고장에서 태어난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 신숭겸(申崇謙)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 후손(後孫)들의 발원으로 세워졌으며, 숙종(肅宗) 21年에는 은액(恩額 : 임금이 祠堂이나 書院 등에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특별한 은전을 나타내는 일로 賜額과 同義語)이 내려진바 있음.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렸다가, 1934년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전라남도 지방 기념물 56호

 

 

書院을 왼편으로 끼고돌아, 대나무 숲과 ‘배 과수원’ 옆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잠깐 걸으면, 오른편 능선(稜線)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아침나절까지 내린 비 탓에 등산로 컨디션은 좋지 않은 편, 많이 질척거리기 때문에 능선으로 올라서기가 만만찮다. 등산로는 경사가 별로 심하지 않은데도, 바닥에 통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등산로 정비에 신경을 많이 써준 이곳 지방행정기관(地方行政機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야! 취나물 밭이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탄성!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 주변에는 참취 나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조금 덜 자란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이런 취나물의 군락지(群落地)를 만나는 행운(幸運)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숲(松林)이 울창하고, 사람 발길이 뜸한 탓인지 숲은 훼손이 덜되어 원시(原始)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송이버섯은 소나무 숲에서 자생(自生)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증명이라고 하려는 듯이 등산로 주변에는 금(禁)줄을 쳐 놓아 등산객들로부터 송이버섯을 보호하고 있다.

 

 

 

 

취나물 군락지에서 산나물을 뜯으며 걷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머리 위로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편백나무와 소나무 숲(松林)이 지나간다. 길가의 소나무들은 노란 송홧가루를 머리에 이고 있다. 길은 폭신폭신, 마치 실크로드 같은 느낌으로 발바닥을 간질이고 있다. 몇 개의 너럭바위와 철쭉이 어우러진 오르막길을 오르면 이내 천덕산이다.

 

 

 

 

천덕산 정상은 오르막 능선의 조금 튀어나온 한 부분으로, 천덕산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누구라도 정상임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이다. 정상은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하긴 오늘 같이 안개가 자욱한 날은 소나무가 없었다 하더라도 시야(視野)가 트일 수 없겠지만...(이정표 : 팔각정 1.5Km/ 큰봉 2.2Km / 곤방산 3.5Km)

* 천덕산(天德山)은 ‘임금(天)이 큰 덕을 베푸는 산’이라는 뜻으로,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얼을 기리는 덕양서원이 이곳 오지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평산(平山) 신씨(申氏)의 시조인 신숭겸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주역으로서,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왕건을 구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임금이 그에게 큰 덕을 베푸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일 것이다.

 

 

 

 

 

능선을 걸으면, 곡성읍 쪽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곡성팔경 중의 하나라는 순강청풍(鶉江淸風, 순강은 섬진강 상류라고 한다)인가? 비온 뒤끝의 습기 탓에 유난히 많이 흘리고 있는 땀방울을, 한 방울 두 방울 훔쳐가 주더니 어느새 이마는 뽀송뽀송하게 변해있다. 자연스레 걸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고, 집사람의 손끝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우리집 밥상은 풍요로워질 게 틀림없다.

 

 

 

 

천덕산에서 큰바위 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傾斜)가 심한 비탈길이 눈에 띈다. 아무리 나지막한 흙산이라지만 비탈길 한 번 만나지 않으랴, 그래도 산은 산인데 말이다. 그것도 700m가 넘는... 길가에는 연분홍 철쭉꽃이 지나가는 봄의 끝마무리를 아쉬움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곳 큰봉도 능선상의 볼록한 한 지점으로 보일 정도이지, 봉우리로서의 의미는 보여주지 못한다. 차라리 봉우리를 조금 못 미쳐서 만나게 되는 헬기장이 더 봉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고사리를 꺾느라 분주한 등산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큰봉 이정표 : 곤방산 1.3Km/ 동점재 1.4Km/ 덕양서원 4.5Km/ 깃대봉 2.3Km)

 

 

 

 

 

엎드린 소 등허리같이 완만한 능선에는 철쭉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만개한 꽃들은 이미 하나 둘 지는 것도 있다. 오월로 들어서면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그야말로 극락세계다. 길을 나서면 훅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여러 꽃향기가 들어있다. 어느 꽃길이든 한 곳을 찾아 나서면 다른 꽃들에는 어쩔 수 없이 한 발 늦게 닿게 된다.

 

 

큰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섰다가 다시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면 거대한 바위벼랑(바위산이라면 굳이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없겠지만)이 앞을 가로막는다. 바위벼랑을 왼편으로 끼고 우회한 후, 이번에는 바위를 부여잡고 오르면 이름 없는 봉우리 위에 닿게 된다. 봉우리 위는 거대한 암반이 차지하고 있고, 그 위를 ‘누운 향나무’가 점령하고 있다. 그 기묘한 모습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빼어난 Photo zone이 아닐까 싶다. 향나무 앞에는 ‘광산김씨’의 묘소, 문관석(文官石)까지 갖추고 있다. 요즘 산은, 산등성이 목 좋은 곳을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무덤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곤방산은 그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지세(地勢)가 좀 좋다 싶으면 으레 무덤들이 차지하고 있다.

 

 

 

 

 

 

광산김씨 무덤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곤방산 정상이다. 곤방산 정상은 공동묘지(共同墓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묘지들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봉우리의 제일 높은 지점에 세워진 이정표가 아니라면, 아무도 이곳이 곤방산의 정상임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다. 짙게 드리운 안개 탓에 주위 조망은커녕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이정표 : 덕양서원 5.8Km, 심청마을 2.3 Km, 기차마을 3Km)

* 곤방산은 50년 전만 해도 웅방산(熊方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곤방산이 풍수지리상 장군대좌(將軍臺座)로 8명의 재상과 장군, 그리고 3명의 왕후가 태어날 길지(吉地)인지라, 조선팔도의 풍수가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와서 묘(墓)들을 썼단다. 그래서 곳곳에 묘(墓)가 널리다시피 많은 모양이다. 웅방산은 단군과 웅녀의 설화와 맥을 같이하는 성산(聖山)으로 여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곤방산 정상에서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심청 이야기 마을’, 그리고 오른편으로 가면 ‘기차마을’에 닿게 된다. 덕양서원에서 곤방산을 거쳐 심청마을까지의 거리는 8.1Km, 산행거리가 조금 짧다고 생각될 때에는, 기차마을 방향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내려서면 심청마을에 닿게 되고, 이럴 경우 약 2km정도의 거리가 늘어난다. 코스 또한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빼어난 경관(景觀)을 보여준다. 약간의 암릉길도 만날 수 있고, 많지는 않지만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도 눈에 띄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기 쉬운 내리막길에서 심심치 않게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싱그러운 연초록빛 잔치다.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은 여리다 못해, 차라리 비릿한 냄새가 연상될 정도이다. 거기다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오솔길은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두컴컴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 보일 듯 말듯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 흐릿한 뒷 모습이, 마치 유령(幽靈)처럼 흔들리고 있다.

 

 

 

곤방산 정상에서 기차마을 방향의 능선을 따라 1Km정도를 내려서면 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전망대 3Km/ 곤방산 1Km/ 우물 0.2Km). 이곳에서 주의의 필요하다. 대충 방향만 보고 우물로 내려서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이정표가 말하는 우물은 결코 ‘심청마을’이 아니니까 말이다. 저지르지 말아야할 우를 범한 덕택에 우린 길이 아닌 길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길의 흔적은 애당초부터 찾을 수가 없었고, 그 흔한 ‘산악회 리본’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이곳은 등산로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길이기를 포기한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100m도 되기 전에 길의 흔적은 사라져 버린다. 설마하며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두리번거려보지만 도무지 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인적이 끊긴 계곡에서 간혹 ‘산두레’라는 산악회 이름을 외치는 고함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다. 물속에 빠지고, 바위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내려서기를 30여분 만에야 겨우 임도(林道)를 만날 수 있다. 그런 험한 지형에서도 인간의 의지는 있었다. 인적이 끊긴 능선 곳곳에 보이는 묘지들, 관리를 안 한 탓에 봉분(封墳)마저 희미해져 버렸지만, 명당(明堂)을 소망하는 인간의 집념들은 곳곳에 널려있었다.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오른편에 제법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 둑 위로 아담하게 무지개다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아직 조성(造成)이 덜된 탓인지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임도의 왼편이 심청이야기 마을이다.

* 심청 이야기 마을 : 효녀 심청이야기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원홍장의 고향인 곡성군 오곡면 송정마을에 조성된 효(孝) 테마 마을이다. 그러니까 심청전은 관음사의 연기설화(緣起說話)인 ‘원홍장 이야기’를 재구성(再構成)한 것이란다. 지금부터 1700년 전 원홍장이라는 효녀가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홍장은 시주를 하겠다고 약속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스님을 따라 나서던 중, 새로운 황후를 찾아 나선 중국(中國) 사신들의 눈에 띄어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황후가 된 홍장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소조관음불상(塑造觀音佛像)을 배에 실어 보냈는데, 그 불상이 이곳 관음사에 보존되어오고 있단다. 참고로 관음사는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의 성덕산에 있는 사찰(寺刹)로서, 송광사의 말사(末寺)이다.

 

 

 

 

산행날머리는 ‘심청이야기 마을’ 주차장

연수관 등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심청마을 안 골목길을 지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마을 어귀에 큰 느티나무가 서 있고, 심봉사와 연꽃 속에 서 있는 심청이 조형물이 보인다. 계곡 위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주차장, 심청이는 뱃머리에 서서, 한창 치마를 들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엊그제가 초파일, 장마 때문에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버렸지요

할일 없이 방에서 딩굴다가, 빛바랜 앨범 속에서 옛추억 하나 끄집어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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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절은 아름답습니다.

풍경소리도 염불소리도 신록으로 스며들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연록에서 진록으로 변해가는 참으로 좋은 계절에 부처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난 성주산에 들었습니다. 꼭 부처님을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요.

산사의 숲길 걷다보면, 내 가진 번뇌 잠시라도 날려보낼 수 있을지 누가 아나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눈을 뜹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의 후유증... 골이 지끈거립니다.

보령시장님이 보내주신 한산 소곡주와 소고기,

고마운 마음으로 마신 것이 아마 도가 지나쳐 버렸나봅니다.

물론 속도 쓰리지만 집사람에게는 내색할 수가 없습니다. 금주령이 내릴지도 모르니까요.

 

수건만 달랑 들고 냇가로 내려갑니다. 이리도 맑은 물, 어찌 비눗물로 흐릴 수 있나요?.

 

 

봄의 계곡은 온유하고, 흐르는 물도 거칠지 않고 물가 풀잎은 보드랍습니다.

앗 차거~ 손가락 끄트머리, 돌 틈에 고인 초록빛 물속엔 묵색 조약돌이 옹기종기....

어~ 송사리 몇 마리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드는 걸 보니 동네 경사라도 있나봅니다.

 

 

 

아침식사 후 느긋하게 산장을 나섭니다. 성주산에 오르려고요.

발걸음이 왜이리 경쾌하냐구요? 저의 팔에 집사람이 매달려있거든요.

 

산의 초입... 꽃보다 고운 연둣빛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킁~킁~ 연둣빛 잎들의 싱그러운 비린내가 온 산에 가득하다 못해 산머리를 넘어섭니다.

새봄의 연둣빛 잎들은 조금씩 짙은 초록을 품어갑니다. 아마 여름을 예비하는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녀린 잎들이 부대낌이 간지럽다 애교를 부립니다. 사르르~사르르~

 

 

 

산허리쯤에서 왼편에 편백나무 숲을 만났습니다.

수백 그루가 어디 하나 뒤틀린 곳 없이 하늘로 쭉쭉 뻗었습니다.

오른편엔 활엽수인 팽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들이 새 잎을 틔워 연둣빛 터널을 만드네요

양 숲의 머리끝 푸른 잎들은 하늘에 맞닿았습니다. 열린 하늘가로 구름 한점 둥둥...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언젠가 들렀던 선암사 뒤깐에 붙어있던 종이쪽지가 새삼스럽게 떠오름은 왜일까요.

어쩜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조그만 인연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이랍니다.

늦은 봄 숲길 걷다보면 모든 번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조차도 허망한 욕심...

 

 

 

숲의 넘치는 산소와 석가탄신일의 의미, 조그만 깨달음이 함께 해준 여행...

"하루를 잘 보내면 달콤한 잠을 이루고, 인생을 잘 보낸 이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어디선가 읽어본 글귀대로 오늘 저녁엔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귓가에 맴도는 창불(唱佛)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초암산 (草庵山, 576m)-주월산(558m)-방장산(536m)

 

 

산행코스 : 수남리 주차장→주능선→초암산→밤골재 삼거리→철쭉봉→광대코재→무남이재→주월산→방장산→수남리 주차장 (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조성면, 율어면의 경계

산행일 : ‘10. 5. 1(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초암산은 산행만을 위해서 찾기에는 20%정도 부족한 산이다. 그러나 구경거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라면 제대로 찾아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곳은 봄이면 철쭉으로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니까 말이다. 철쭉이든 무엇이든 구경거리가 제 몫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찾아가 보기가 편해야 한다. 전국의 이름난 꽃길이 붐비지 않은 곳이 없다. 이곳 또한 붐빌 것이 확실하니 특별히 내세울게 없겠지만, 철쭉꽃 향연이 펼쳐지는 花園까지 가는 거리가 짧은 것은 확실히 다른 산에 비해 뛰어나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한 시간이 채 안되어 닿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철쭉 밭'의 정수만을 똑 따서 즐기고 내려올 수도 있다는 간편함이 두드러진다. 걷는 게 싫은 사람들은 북쪽 임도(林道)로 하여 ‘철쭉 밭’ 바로 아래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도 있단다. 거의 관광에 가까운 꽃구경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는 수남리 駐車場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 I.C를 빠져나와 18번 國道를 타고 순천시 송광면과 보성군 문덕면을 거친 후, 보성군 복내면에서 845번 地方道로 옮겨 달리다보면 초암산이 위치한 겸백면에 다다르게 된다. 이어서 겸백면의 소재지인 석호리와 남양리를 지나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수남리이다. 수남리에 들어서면 우선 널찍한 주차장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봄철 철쭉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면, 찾는 이들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도,  주차장은 엄청나게 큰 규모이다. 거기다 최신식 화장실까지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보성군에서 이곳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철쭉祭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주차장 왼편으로 난 소로(小路)를 따라 300m 정도를 올라서면 금방 능선 안부에 닿게 된다(초암산 정상까지는 2.1Km).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르막 흙길은 한마디로 말해서 곱다. 오랫동안 쌓여온 썩은 낙엽들로 수북한 부엽토(腐葉土) 길은 푹신푹신하고, 작은 돌맹이 하나 없는 흙길은 부드럽기만 하다. 자욱한 황사로 인해 시야가 트이지 않는데, 오른편으로 희미하게나마 주월산과 방장산이 조망되고 있다.

 

 

 

 

 

초암산은 순수한 흙산이다. 비록 몇 곳에서 바위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흙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이다. 문득 작년 말에 거창의 월여산에서 만났던 칠형제바위가 생각난다. ‘어느 힘센 장사가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간 공깃돌’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오늘 초암산에서 만난 둥그런 바위들이, 영락없이 공깃돌로 보였기 때문이다.

 

 

 

바위들이 널려있는 봉우리를 올라서면, 우선 넓게 펼쳐진 철쭉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철쭉평원 너머로 우뚝 솟구친 바위무더기가 보인다. 바로 초암산이다. 밋밋한 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바위들이 울긋불긋한 차림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風景畵)를 만들어 내고 있다.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철쭉평원에 꽃이 만개(滿開)할 경우에는 또 하나의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아직은 50%도 개화(開花)가 안 되어 있다. 일주일 후에 찾아왔더라면....

 

 

 

커다란 바위들이 몇 개 포개져 있는 정상엔 귀엽게 생긴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보통의 정상표지석이라면 ‘세워져 있다’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50㎝도 채 안 되는 크기이니 놓여있다고 하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정상 뒤편에 있는 헬기장의 한쪽 귀퉁이, 그러니까 겸백면 석호리에서 올라오는 길옆에 철쭉祭 제단(祭壇)이 만들어져 있다. 널따란 헬기장은 철쭉을 구경하려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꽃이 덜 피어 구경거리가 없어서일까?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떠드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40분 조금 넘게 걸으면 닿을 수 있다.

 

 

 

 

 

정상의 바위群 중 하나를 골라 바위 위로 올라선다. 철쭉꽃밭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철쭉밭은 정상 암봉 근처에서부터 북동릉을 따라 펼쳐지는데, 어디가 끝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개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붉어야할 기운이 적갈색을 띠고 있어 아쉽기 그지없다. 철쭉밭은 산릉을 꽉 메우며 이어지고, 그 뒤로는 첩첩한 산릉이 눈높이보다 약간 아래로 펼쳐지고 있다.

 

 

 

 

 

 

정상에서 철쭉봉으로 가려면 철쭉군락지 한 가운데를 지난 후, 능선의 오른편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해야한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철쭉무리들이다. 꽃이 피려면 아직도 멀었건만, 밤색의 껍질을 열며 붉은 색 꽃몽오리를 내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지는 철쭉들 사이를 헤치며 20분 정도 내려서면 ‘먹골재 삼거리(이정표 : 초암산 1.6Km, 광대코재 2.2Km, 금천 3.3Km)’에 닿게 된다.

 

 

 

春來 不春來, 5월이면 봄의 한 가운데 놓여 있음이 정상이겠건만, 내가 찾아온 山野는 아직도 봄이 설었다.

 

 

 

철쭉군락지를 끼고 이어지던 등산로는, 먹골재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숲으로 변해버린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적당히 섞여있는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부드러운 흙길에다가 경사까지 완만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 먹골재 삼거리에서 쉬엄쉬엄 10분 정도를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으로 조성된 철쭉봉이다(이정표 : 초암산 정상 2.2Km, 광대코재 2.4Km). 철쭉봉 주위도 철쭉군락지가 넓게 펼쳐지고 있다. 물론 이곳도 아직 꽃들이 개화를 미루고 있지만...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20분 정도 지났다.

* 먹골재 삼거리에서 철쭉봉까지 600m를 올라왔는데, 광대코재는 오히려 200m가 더 멀어져 버렸다. 이정표의 거리표기가 제각각인 것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원수남 삼거리’ 등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의 거리표기는 들쭉날쭉, 아귀가 맞지 않았다. 보성군청에서 철쭉제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한데,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철쭉봉 주변은 이름과는 달리 철쭉이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능선의 양쪽 사면(斜面)을 소나무를 비롯한 키가 큰 나무들이 신록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사이에 넉넉한 양으로 흩뿌려둔 듯, 저 멀리까지 아득하게 또 하나의 철쭉밭이 펼쳐지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실크원단처럼 철쭉꽃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는 정경이 고와서 여기를 철쭉봉이라고 부르고 있나보다. 철쭉무리들 사이를 뚫고 지나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덧 광대코재이다. 호남정맥과 만나는 지점인 광대코재에 다다라 비로소 철쭉군락지는 끝을 맺는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벌교읍 방향으로 내려서게 되고, 주월산과 무남이재로 가기위해서는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다음 목적지인 주월산까지는 2.9Km 남았다)

 

 

 

 

 

 

광대코재에서 무남이재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다. 고도(高度)가 낮아짐에 따라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도 연녹색의 농도(濃度)를 점점 진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나뭇잎의 싱그러움에 젖어 콧노래가 나올 즈음 능선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무남이재이다. 무남이재에는 산행안내도와 원형의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다음 목적지인 주월산으로 가려면 길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산행을 시작했던 수남리이다. 꽃구경이 주목적(主目的)이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른편 수남리 방향으로 내려서고 있다.

 

 

 

주월산으로 오르는 길은 신록(新綠)이 한창이다. 철쭉군락지에서 꽃망울을 열지 않고 있던 철쭉들이, 여기서는 분홍빛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다. 비록 군락지를 이루고 있지도 못하고, 그 크기도 무릎 밑에 깔릴 정도로 작지만...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길은 뚜렷하면서도 부드러운 흙길이 계속된다. 등산로의 오른편으로 주월산 정상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場‘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일듯 말듯 따라오고 있다.

 

 

 

 

주월산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場‘을 겸하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주차장에 '패러글라이딩 場‘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간이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다. 주차장 뒤편의 언덕으로 오르면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쉼터를 갖춘 널따란 활공장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서면 조성면의 넓은 들판이 발아래 펼쳐지고(視野가 트이는 날은 득량만까지 한눈에 들어오지만 오늘은 짙은 黃砂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오른편 저 멀리 무선안테나 시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방장산이 바라보인다.

 

 

 

 

 

주월산에서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등산로는 호남정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임도(林道) 수준이다. 도로로 치면 고속도로 수준일 정도로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간간히 편백나무까지도 보인다. 고저(高低)가 거의 없는 이런 등산로를 따라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된다. 걷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넘치도록 전해져오는 피톤치드까지 덤으로 따라오니 콧노래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當然之事)일 것이다.

* 호남정맥(湖南正脈) :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종착지인 주화산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내장산에 이르고, 내장산에서 남진하여 장흥 제암산(帝巖山)에 이르며, 제암산에서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으로 상행하여 광양 백운산(白雲山)까지 이어지는 약 400Km의 산줄기이다. 이밖에도 백암산, 추월산, 무등산, 일림산 등이 이 산줄기에 놓여있다.

 

 

 

방장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 시작한다. 정상 근처에 ‘무선안테나 시설’이 보이기 때문이다. 몇몇 산에 가면, 아니 가까이는 서울의 청계산에도 이수봉의 정상을 저런 ‘안테나 시설’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기우(杞憂)였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시설물이 정상을 비껴나 조금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장산 정상에도 초암산에서 본 것과 모양과 크기가 같은 정상표지석이 놓여져 있다.

 

 

 

방장산에서의 하산은 호남정맥을 따라 얼마간 내려오다, 오른편 갈림길로 접어들면 된다. 등산로는 조금 전의 호남정맥만은 못하지만 아직도 넓고 뚜렷해서 걷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요즘 부쩍 사랑받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지나서 조금 더 내려오면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보인다. 농로를 따라 ‘광양-목포간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통과하면 이내 수남리 마을회관에 닿게 된다. 마을회관에서 200m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산행을 시작했던 수남리 주차장이다.

 

 

 

 

월각산 (月角山, 456m)

 

 

 

산행코스 : 2번國道 월산교차로→암봉→땅끝기맥 갈림길→월각산→기맥 갈림길→문필봉→주지봉→죽순봉→문산재→도갑사 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과 영암군 학산면, 서호면의 경계

산행일 : ‘11. 3. 27(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월각산은 월출산 남쪽의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능선 위의 한 봉우리다. 산의 규모가 작아 깊은 감동을 주기에 부족한 데다, 交通의 불편으로 인해 접근성까지 좋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근에 땅끝지맥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지만 알찬 산, 各樣各色 바위들의 전시장인 월각산은 나름대로 매력을 갖춘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2번 國道의 월산交叉路(해남읍 진출 교차로)

‘광주-무안 고속도로’ 나주 I.C를 빠져나와, 13번 國道를 따라 해남읍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월평교차로(강진군 성전면)에서 2번 國道와 겹치게 된다. 이곳에서 2번 국도를 이용 목포방향으로 잠시 달리다보면 해남읍으로 들어가는 나들목인 월산교차로(성전면 월평리)와 만나게 된다. 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차에서 내리면, 오른편에 우뚝 솟아오른 월각산의 암릉이 눈에 들어온다. 나들목 옆의 民家 앞을 통과하여 계곡으로 들어서지만 인적이 끊긴지 오래인 듯, 가시넝쿨이 우거진 등산로는 사람들의 통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억지로 길을 뚫어 나가지만, 얼마 안 있어 그나마도 사라져버린다.

 

 

 

 

길 찾기를 단념하고, 능선의 방향을 미리 정한 후, 20분 남짓 무작정 산비탈을 치고 오르면 능선안부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조금 후에 어른 키를 훨씬 넘기는 山竹群落을 만나게 되고, 곧이어 진행방향 전면으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교차로에서 1Km, 월각산 정상까지는 2.9Km가 남았다.

 

 

 

 

본격적인 암릉 산행이 시작된다. 아찔한 구간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지만 의외로 길은 편안하다. 바위 능선 사이사이와 위로 길이 나 있고, 정녕코 위험한 데는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암릉을 오르내리는 곳에 매어놓은 굵은 동아줄만 믿지 않는다면 큰 사고 없이 암릉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암릉에 매달린 로프가 굵지만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탓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끊어질 만큼 낡았기 때문이다.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의 바위 봉우리 윗부분만 싹둑 잘라 옮겨둔 것 같은 축소판이다. 공룡능선을 가고 싶어도 힘든 산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못 가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권해볼만 하다. 월각산은 전체적으로 肉山(흙산)이지만, 산행을 시작한 후 30분 정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첫 암봉에서부터 1Km를 조금 넘는 구간은 바위山의 전형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암릉에서 마주치는 奇奇妙妙한 바위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구간이 월각산 산행의 白眉이다.

 

 

 

 

암릉에 올라서면 시원스레 시야가 열린다. 왼편 발아래에는 월평제 너머 2번 國道위를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월출산의 바위능선이 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진행방향의 바위들 사이에는 용틀임하듯 몸을 꼬고 있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박혀있다. 마치 山水畵 속을 거니는 듯, 韓國的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암릉구간은 도상으로 1km를 조금 넘길 정도로 거리가 짧지만, 50m 남짓한 高度 차이를 보이는 암봉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있기 때문에, 오르내리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眞景山水畵를 감상하며 느긋이 걸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은 오늘 산행에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서둘러야 5시간에 완주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는 산악회장님 말씀... 그래놓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5시간, 速步로 걷지 않는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암릉의 끝인 420봉을 지나서 조금 더 진행하면, 땅끝지맥과 만나게 되는 ‘지맥 갈림길’에 다다르게 된다. 갈림길에 들어서면 등산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마 땅끝기맥 답사를 나온 모양이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걷는 나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매너가 좋은 경남 진해에서 온 산악회원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월각산 일대에 심심찮게 자생하고 있는, 春蘭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는 것이다. * 땅끝기맥 : 호남정맥 깃대봉과 삼계봉 사이의 능선에서 갈려나와 영산강 남쪽을 거쳐 해남의 땅끝까지 뻗은 산줄기다. 도상거리 약 123km 길이로 월출산과 별매산(일명 벌뫼산), 두륜산, 달마산 등을 아우른다. 월각산은 이 산줄기가 월출산에서 밤재로 연결되기 직전 북쪽으로 살짝 벗어난 곳에 솟아 있다.

 

 

 

 

‘기맥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風景이다. 등산로는 철쭉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가운데 참나무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3시 방향에 월각산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올 즈음이면 월각산 삼거리에 다다르게 된다. 월각산 정상으로 가려면, 이곳 삼거리에서 잠깐 ‘기맥 길’을 벗어나,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야한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 등산로 길섶에는 생강나무들이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삼거리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월각산 정상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좁다란 분지의 한 가운데를 월각산이라는 이름표를 단 쇠말뚝 하나가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월출산의 천황봉과 향로봉이 멋지게 조망된다.

 

 

 

 

월각산 삼거리를 뒤로하고 이어지는 기맥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 계곡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15분 정도를 내려서면 묵동재이다. 묵동재는 좌우를 임도로 잇는 고개로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성전저수지이고 왼편은 진행하면 묵동리로 내려서게 된다.

 

 

 

묵동재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도 평범하기는 매 한가지, 지루하게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오르내리는 능선의 高低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걷는 速度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閉헬기장의 잡목 숲을 가로질러 10여분 남짓 진행하면 마루금 좌측으로 바위가 자리하는 조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편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성전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월출산의 향로봉이 다시 한 번 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면에는 문필봉과 주지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오늘 산행에서 또 하나의 白眉인 문필봉으로 가려면 월출산으로 향하는 땅끝기맥의 主능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맥 갈림길을 뒤로하고 주지봉 방향으로 내려서면 등산로가 흐릿해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걱정은 禁物,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주지봉 방향을 목표로 삼아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산죽과 잡목들이 거칠게 저항을 하고 있는 등산로는 걷기에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주지봉이 바라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면 왼편으로 빼곡히 늘어선 신갈나무 숲 사이로 문필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로는 주지봉 아래에서 문필봉을 향해,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문필봉에서 주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안부 삼거리에서, 왼편의 자그마한 둔덕 하나를 넘으면 문필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문필봉의 장엄하고 우아한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문필봉 아래 있는 계곡이 참 깊고 신선해 보인다. 그 깊은 골에 우뚝 선 문필봉!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왼편으로 널따란 영암들판과 영산강하구언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

 

 

 

 

문필봉에서 능선안부 삼거리로 되돌아와 10여분 가파르게 올라서면 주지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이름표 하나 없이 삼각점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별다른 특징 없이 삼형제 바위만이 잡풀 속에 자리하고 있다. 오른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월출산의 천황봉과 향로봉은, 하늘을 뚫고 올라선 듯 구름에 휘감겨 있고, 노적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작은 빛살에,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주지봉을 내려서면 평범한 風景의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흙길이나 곳곳에 각양각색의 커다란 바위들이 심은 듯이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오른편으로 터지는 월출산의 조망은 단연 一品이다. 천왕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진 긴 능선이 한눈에 든다. 水墨畵 속의 山처럼 수려하면서도 정돈된 월출산 풍경이 이곳에 있다.

 

 

 

 

주지봉에서 10여분 정도 내려서면 진행방향에 죽순봉이 바라보인다. 또 다시 이어지는 짜릿한 암릉, 죽순같이 뾰쪽뾰쪽하게 솟아 있는 전면의 죽순봉을 바라보면서 20분 남짓 내려서면 좌측으로 꺾어 문산재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걸을수록 상쾌하다. 바윗길을 이리저리 오르며 딛는 맛과 더 화려해지는 경치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바위들이 기대되고, 뒤로는 저축을 해둔 것 마냥 지나온 바위들이 뿌듯하다.

 

 

 

 

 

 

아기자기하고 奇妙한 암릉 구간을 내려서면 비록 잠시이지만 또다시 전형적 肉山, 등산로는 걷기에 좋은 흙길이다. 마을 뒷산 같은 느낌을 주는 풍경... 이런 길은, 긴장감 없이 편하게 흙을 딛고, 진동하는 숲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바윗길의 아름다움에 너무 빠져버렸던 탓일까? 특별한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는 내리막길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흙길을 밟으면서 조금 더 진행하다보면, 전면으로 큰 바위가 하나 자리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의 왼편으로 우회하여 널찍한 암반을 딛고 내려서면 왼편에 ‘책굴(冊窟) 입구’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책굴은 왕인박사가 홀로 조용히 공부하던 천연석굴로 길이가 7m. 폭은 2.5m라고 한다. 안은 제법 넓고 평평하여 혼자서 조용히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일 듯 싶다.

 

 

 

 

 

책굴(冊窟)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문산재(文山齊)의 뒤뜰로 내려서게 된다. 주지봉 아래에 자리 잡은 왕인박사의 수학지(修學地)인 문산재는 관리인이 없는 듯, 관리인은 보이지 않고 모든 문들이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져 있다.

 

 

 

 

산행날머리는 도갑사 주차장

문산재 앞의 약수터에서 감로수로 목을 축이는데, 약수터 주변의 동백나무들이 붉은 꽃망울을 활짝 열고, 요염한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문산재를 벗어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을 내려가면 죽정마을이다. 죽정마을을 벗어나, 도갑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도갑저수지 위에서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을 만날 수 있다.

 

 

수인산(修仁山, 561m)

 

산행코스 : 상림마을→홈골재→수인사→수인산성 서문→남문→병풍바위→서문(회기)→북문→노적봉→북문(회기)→수리봉→계관암→수미사→자미마을 (산행시간 : 4시간50분)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과 장흥군 장흥읍, 유치면, 부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3. 5(토)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밋밋한 肉山이 대부분인 근처 산들과 달리 암릉과 암벽이 잘 발달된 山, 바위산인데도 산꼭대기에는 천연의 평탄지가 잘 발달되어있으며, 물이 솟아올라 우물이 있다. 그러한 특징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었고, 兵馬節度使營에 소속되었던 修仁山城이 있다.

* 수인산성(修仁山城 : 전라남도 기념물 제 53호), 성곽의 둘레가 약 6km(높이 5m),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수축한 협축식(夾築式 : 城郭의 兩쪽을 돌로 쌓은 형식) 산성으로서 성곽의 兩面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축조(築造)되었다. 백제시대에 최초로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 증·개축을 계속해오다 1410년께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지금의 모습으로 성을 보축했다고 한다. 또한 수인산성은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兵營兵使가 수성별장(守城別將)으로 임명돼 상주했었다.

 

 

▼  산행들머리는 병영면 소재지에 있는 상림마을

광주-무안고속도로 나주 I.C에서 빠져나와, 13번 國道를 이용 나주시와 영암읍을 통과하면 월출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산행기점으로 삼고 있는 천황사로 들어가는 천황사교차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달리면 장흥교차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835번 地方道로 내려서서 장흥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병영면 소재지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 기점인 상림마을은 면소재지 시내 끄트머리에서 만날 수 있다. 상림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 앞이 버스가 들어갈 수 있는 最終地點(물론 승용차는 수인사까지 들어갈 수 있다), 수인사로 들어가는 진입로 왼편에 마을표지석과 등산안내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수인산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홈골저수지 제방 뒤편으로 병풍바위가 보인다.

 

 

▼  수인산 방향의 정면, 농로 수준의 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높다란 제방을 만나게 된다. 바로 홈골저수지이다. 제방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능선의 끝자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악회 시그널이 덕지덕지 매달린 능선의 초입이 278봉과 병풍바위를 거쳐 修仁山城 南門에 닿게 되는 코스의 들머리다.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저수지를 따라 곧장 들어가면 수인사를 거쳐 修仁山城 西門에 도착하게 된다.

* 홈골저수지, 농수용으로 축조되었지만 수인산과 융화된 모습이 여간 멋지다. 잔잔한 물결위로 수인산의 풍광을 스스럼없이 그려내고 있는 모습은 자연과 함께 동화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수지 옆길로 이름 모를 가로수가 펼쳐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0.7㎞ 정도를 들어가면 아담하고 소박한 수인사가 나온다.

 

 

 

▼  홈골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저수지 상류로 들어서면 수인사가 보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民家의 기와집을 닮은 건물형태는, 寺刹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향마을의 여염집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사찰 마당에 서 계시는 부처님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讀經소리만 아니라면, 얼핏 사찰이라고 눈치 채기 힘들 정도이다. 네델란드 상인인 썼다는 ‘하멜표류기’를 보면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이었던 것 같은에... '스님들이 일행에게 옷이나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거나 조선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해 줬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수인사(修仁寺) : 원래의 수인사는 그 흔적으로 볼 때, 병풍바위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兵營의 유서 깊은 사찰로 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홈골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현재의 수인사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절로서, 해남 대흥사의 末寺이다.

 

 

▼  수인사 뒤편으로 흐르는 냇가 다리를 건너면 자그마한 안내판이 길을 안내하는 오래 됨직한 산길이 나온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편으로 감나무 과수원이 보이고, 과수원의 끝에서 본격적으로 산길이 열리고 있다. 완만하게 시작하던 등산로는 금방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주변은 수령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나무 일색, 헬기장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떡갈나무 가지가 긴 터널을 이루기 시작하고, 아랫도리는 山竹들이 나름대로 등산로를 장식하고 있다.

 

 

 

▼  수인사에서 별다른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조금 못되게 오르면 山城의 西門에 다다르게 된다(수인사에서 약 1.4Km). 서문은 북쪽 방향에 成人 男子의 가슴높이로 성벽을 두른 제법 너른 공터만 보일 뿐, 문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쪽 귀퉁이에 삼층 정도 높이의 바위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兵馬節度使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명문바위다. 공터에서 城內로 들어가는 길목에 옹달샘이 보이고,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으나 냉큼 마시기에는 글쎄...

 

 

 

 

▼  481봉과 山城南門의 중간 안부에서, 등산로는 제법 심한 오르막 구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오르막의 끝에는 오르며 힘들었던 고통을 일거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빼어난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눈앞 가득 펼쳐지는 병풍바위의 위용에 놀라, 다들 연방 카메라 셔터만 누르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산성의 南門에 다다르게 된다.

* 西門에서 481봉에서 내려서는 안부까지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순전히 집사람을 향한 내 사랑의 선물이다. 수인사에 들른 탓에 집사람과 길이 엇갈린 난, 山行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간식이나 물 등, 산행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내 배낭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산을 오르고 있을 그녀에 대한 내 배려는, 중간에 만나게 되는 지점(서문)에서 그녀가 오르고 있는 코스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되돌아 내려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평소에는 맨날 후미를 고집하던 집사람이, 당당히 선두 대장과 같은 그룹에 끼어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보고 以心傳心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 것이다.

 

 

▼  병풍바위, 難攻不落의 요새인 양 허공을 갈라 우뚝 서 있는 수인산 최고의 절승인 병풍바위. 저 바위가 山城의 城壁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어느 누가 접근할 수 있으리오...

 

 

▼  성터를 밟고 넘어서면 곧 오른쪽으로 南門이 보인다. 남문은 城樓가 없는 暗門의 형태. 그 남문을 오른쪽으로 보고 정면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갈림길을 만나고 다시 진행방향 약간 왼쪽의 직진 길을 조금 더 가면 성 내에 세워진 이정표를 만난다. 이 부근에 우물터와 맷돌 등의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인다.

* 남문을 지나서 城內로 들어서면, 역사의 편린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멀리는 고려 때부터 가까이는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유적이나 지형적인 특징으로 남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성벽은 물론이고, 곡식을 빻기 위해 만든 돌확과 우물터, 그리고 비밀통로인 水口와 봉수지가 그렇다. 이는 때론 倭寇를 피하거나, 또 다른 난리를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던 민초들이 생존을 위해 도구로 삼았던 흔적들이다.

 

 

▼  北門으로 가는 등산로는 西門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이정표에서 오른쪽 산자락으로 연결된다. 등산로는 능선이자 성터를 따라 이어진다. 오르막 능선은 高度를 낮추었다가 다시 한 번 고갯마루를 넘고, 내리막길을 달린 후에 상당히 너른 공터에 다다른다. 건너편에는 수인산의 정상인 노적봉이 우뚝 솟아있다. 이 분지가 바로 北門터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홈골로 원점회기 할 수가 있다.(홈골까지 1.0㎞)

 

▼  산성으로 둘러쌓인 정상부는 高麗 末부터 朝鮮 末까지 전라 兵營城의 절략적인 요충지로, 왜구가 침략할 때마다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고, 병영면의 지명은 朝鮮 태종때 倭寇를 막을 목적으로 병영을 설치한데서 유래된 것이란다.

 

 

 

▼  北門에서 수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정상 방향을 따라 휑하니 난 봉우리 가운데 길과, 왼편 산성터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으니 입맛에 맞게 오르면 될 일이다. 왼편 山城터를 밟고 오를 경우, 정상까지는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  정상은 열 평 남짓한 분지, 한가운데에 자연석으로 만든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에 오르면 봉수지터답게 사위가 시원하게 트이고 있다. 서쪽으로는 월출산의 뾰쪽한 봉우리들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고, 월출산을 기준으로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흑석산, 만덕산, 천관산, 사자산, 제암산 등 남도의 명산준봉들이 모두 조망된다. 당연히 푸른빛의 탐진호도 발아래 펼쳐지고 있다.

* 노적봉은 옛날 봉수대가 설치돼 있었단다. 동쪽으로 장흥 억불산, 서쪽으로 영암 갈두산, 남쪽으로 마량 남원포를 이어주는 중계 역할을 담당했으며, 강진 병영성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  정상에서 떡갈나무만 무성한 가운데 길로 내려가면 10분쯤 걸려 북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아까 왔던 山城길이 아닌, 왼편으로 난 길(이정표에는 별장터로 표시됨)로 접어들면 西門에서 수리봉으로 내려가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게 된다. 올바른 길로 진행하려던 난, ‘산악회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르라’는 산행대장의 지청구를 듣고 난 뒤, 아까 지나왔던 山城길, 그러니까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  삼거리에서 수리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말갈기 같이 우뚝 서있는 능선을 걷게 된다. 능선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게 되는데, 봉우리들은 대부분 오른편은 絶壁이고, 왼편 斜面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은, 능선의 생김새에 알맞게 돌로 쌓아 놓았다. 떡갈나무와 박달나무, 그리고 산죽이 허리 아래로 차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드디어 성터를 벗어나게 된다.

 

 

▼  수인산은 암릉과 바위벼랑이 범상치 않다. 그래서 산의 능선이 하늘과 맞닿으며 그려내는 하늘금 또한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보면 ‘맥도널드 햄버거’의 상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시 보면 敎育科學技術部의 로고인 기역자들이 포개져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부드러운 능선들이 대부분인 남도의 산하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장관이다. 저렇게 헌걸찬 장관은 이 근처에 있는 월출산이나 주작-덕룡산의 특징인데, 가까이 있는 탓에 감염된 탓일까???

 

 

 

▼  城터를 벗어나서도 등산로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대체로 능선의 마룻금을 이어가게 된다. 간혹 斜面으로 우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험하거나 어려운 곳은 없다. 능선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奇巖怪石들을 만나게 되고, 그 기괴함에 취하다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가벼워진다. 성터를 벗어나 수리봉까지 대략 1시간 가량 걸린다.

 

 

 

 

▼  수인산의 특징 중 하나는 나무들의 수령이 대부분 어리다는 것이다. 성 안은 물론 성 밖을 둘러봐도 여느 산에서 쉬 발견되는 古木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령 60년 미만의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을 위해 공중에서 기름을 뿌려 온 산을 태운 결과에 기인한 것이란다. 특히, 정상인 노적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엔 소나무 한 그루 없이 작달막한 떡갈나무類만 무성하다.

 

 

 

▼  멀리서 보면 奇巖으로 눈길을 끄는 수리봉(412m)은 암봉이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우회하도록 나 있지만, 정상에 오른 후 왼편으로 우회할 수도 있다. 우회하지 않고 수리봉으로 오르는 수고를 조금만 한다면, 그 수고는 곧바로 보상 받을 수 있다. 수리봉 정상은 널찍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탐진호의 리아스식 湖岸이 눈앞에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장흥읍 너머로 희미하게나마 남해바다가 보이니까 말이다.

 

 

 

 

▼  수리봉을 지나 20분 쯤 더 내려가면, 자미마을로 내려가게 되는 254봉에 닿게 된다. 흘러내리는 암릉이 닭벼슬 같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계관암은, 254봉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꺾여 내려가는 길로 연결된다. 鷄冠巖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출되는 계관암의 기괴한 모습에 빠져들다 보면, 오늘 산행의 피로는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  계관암에서 등산로는 왼쪽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이후 낭떠러지 절벽인 병풍암 끄트머리를 20m 정도 앞두고 왼쪽르로 내려서서, 갈之자로 돌아 내려서면 편백나무와 어우러진 병풍암 아래에 닿게 된다.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93호)이 새겨진 병풍암 아래에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의 山神堂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산행 날머리는 자미마을 駐車場

병풍바위를 돌아내려오면 용왕당, 용왕님(?)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약수터인 용왕당은 오랜 가뭄 탓인지 물기 한 점 찾아 볼 수 없다. 용왕당에서 都會地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시가옥 같은 느낌을 주는 寺刹인 수미사를 지나면 자미마을이다. 동네의 고삭을 돌아 내려오면 마을 주차장이 보인다. 254봉에서 대략 25분 정도 걸렸다.

 

 

지리산(1,915m)

 

산행일 : '04. 7.28-29

산행코스 : 노고단-임걸령-세석산장(1박)-천왕봉(일출)-중봉-치밭목산장-대원사  

 

 

 

 

 

 

 

 

 

 

 

달마산(481m)

 

산행일 : '06. 6. 18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과 북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미황사 입구-정상(불썬봉)-전망대-개구멍-도솔봉-임도-마봉리 약수터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백은

둔덕 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트리지 않으며 이어진 다음 땅끝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야 갈무리하는 것이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상)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쇠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를 일구었다고 한다.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미황사는 우리나라 불교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로서,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20여 동이나 있었던 거찰이었다.

대웅전은 보물 제 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어둠속에서

 

제헌절을 낀 3일 연휴...

이런 황금연휴에 산을 찾지 않을 수 있나요?

모처럼 지리산 종주를 기획했더랬습니다.

그러나 폭우가 길을 막네요. 지리산은 입산 통제랍니다.

하루에를 채근해서 찾은 곳이 전남 해남군에 있는 달마산...

몇번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부산에서 피닉스님이 이미 버스를 타버려서...

출발하면서도 빗속을 찾아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달마산은 모처럼 찾은 저희를 반겨주려는듯 햇빛으로 맞아주었습니다

미황사 앞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곧바로 산행...

구름에 뒤덮인 산은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점점 깨어나며 우릴 반깁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구름들이 암봉을 감싸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오늘의 힛트맨은 봉보로봉입니다.

이친구... 53만원짜리 제 디카를 잃어버렸거든요

산지 이주일 밖에 안된 새것을요

목포에서 내렸는데 제걸 가지고 내렸나봅니다.

 

달마봉(489m)...

이때까지만 해도 표정들이 밝습니다.

금방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그러나 저흰 종주를 택했네요.

자주 오기 어려운 먼거리에 있는 산이거든요

"이게 뭐꼬???" 부산서 오신 피닉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산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 않지만 실력은 좀 뒤떨어지거든요

특히 바위산은 어려워하십니다

 

미황사에서 오르기 시작해서

달마봉(489m)이 정상이랍니다.

얕다고요? 그러나 여기는 바닷가...꽤나 높습니다

 

아직은 안개가...

폭우가 올거라는 일기예보여서 불안하기만합니다.

행여 외로울세라 준서가 같이해줍니다

 

도솔봉까지 6시간...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절벽과 기암들이 이어져있거든요

곳곳에 들꽃과 숲들도 심심찮게 반기고요

 

도솔봉으로 가는 능선

 

 

노화도가 있는 방향입니다.

아직은 방향잡기가...

 

 

안개가 걷히자 나타나는 절경들...

 

도솔봉 가는 산길에서...

 

 

서서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남해가 바라보입니다.

완도가 코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곳곳에 요상한 바위들...

이런 돌문도 두군데나 지나야합니다

 

절경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듭답니다

 

사방에 나리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숨어있는 비경

계속되는 암릉은 너무 고왔습니다.

  

도솔압입니다

비윗틈에 살포시 내민 모습...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솔솔 도를 깨우칠 것 같습니다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햇다는군요

중창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송광사의 말사인 모양입니다

 

전국엔 도솔암이 꽤 많습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건 고창 선운사에 있답니다

 

 

 

땅끝기념탑에서...

점심 거나하게 먹고 마신 후라서일까요?

다들 표정이 밝네요

 

  

귀경길에 대흥사에 들렀지요

다들 한잔 더 한다고 입구에 남았지만

우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었답니다

 

 

지리산(1,915m)

 

산행일 : '06. 5. 27

소재재 : 전북 남원군과 경남 산청군의 경계

산행코스 : 거림매표소 - 북해도교 - 세석산장 - 장터목산장 - 중산리매표소 

 

 

세벽 4시 출발 때부터 빗속 행군...

여러번 가본 천왕봉이기에,

시계가 열리지 않을 것 같아 장터목 산장에서 하산...

하산해서 자유인 빗소리, 리산과 함께 토종닭을 주문해 놓고

온수에 샤워... 귀족산행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세석산장 철쭉

 

 

세석산장 - 장터목 산장

 

장터목 산장에서 중사리로 하산하는 길에 만난 폭포

 

빗소리와 함께 

 

자유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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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723m)

 

산행일 : '06. 4. 23

소재지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장천재-체육공원-종봉-구정봉-천주봉-연대봉(정상)-책바위-주차장

함께한 산악회 : 산과 사람들 

 

 

 

 

 

진달래능선... 이제 자기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생기를 잃고 있었습니다

 

 

 

 

 

 

 

 

전나무 길...

드라마 촬영이 잦은 곳이라는 군요...수녀와 비구니의 촬영장이랍니다

 

 

곳곳에 음식점... 이젠 관광지입니다

올해부터는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1,600원이면 적지 않은 돈인데도 입장객이 넘칩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라서 그런가봅니다

 

 

늦부지런 난 벚꽃이 만개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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