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雪山 , 522.6m) - 괘일산(掛日山, 441m)

 

산행일 : ‘13. 6. 29(토)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옥과면․오산면, 담양군 무정면, 전북 순창군 금과면의 경계

산행코스 : 과치재→무이산(304.5m)→괘일산→쉼터→금샘→설산→392봉→성륜사→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곡성군에는 동악산과 봉두산 그리고 통명산 등 등산객들에게 제법 알려진 산들이 있다. 1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전국에 널려있는데도 700m 정도밖에 안 되는 산들이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산들이 남성미(男性美) 넘치는 근육질의 바위로 이루어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설산과 괘일산은 그런 산들보다도 한참이나 더 낮은 500m 남짓한 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찾아든다고 한다. 그것은 아찔한 고도감(高度感)을 느낄 정도로 날카롭게 선 정상어림의 바위절벽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서일 것이다. 설산의 바위는 규사(硅砂) 성분이 많아서 멀리서 보면 하얗게 빛난다고 한다. 그 광경이 마치 산 정상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참고로 호남정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무이산을 오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등산로가 엉망일뿐더러 특별한 볼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13번 국도의 과치재

호남고속도로 옥과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를 따라 담양방면으로 달리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과치재에 올라서게 된다. 과치재는 담양군 무정면과 곡성군 오산면의 경계를 가르는 야트막한 고갯마루이다. 고갯마루에 신촌주유소가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주유소에서 옥과 방향으로 30m 정도를 내려와 13번 국도를 가로지르면 산등성이로 오르는 오솔길이 보인다. 들머리에 이정표(무이산 정상 2.5Km, 괘일산 정상 4.2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솔길로 들어서면서부터 고난(苦難)이 시작된다. 산길이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것이다. 이 길은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찾고 있는 **호남정맥(湖南正脈)의 일부 구간이다. 그런데도 나 몰라라 방치하고 있는 지자체의 무관심을 탓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호남정맥(湖南正脈), 전북 장수군에 있는 주화산(珠華山 : 금남호남정맥의 끝 지점)에서 시작해서 호남내륙을 관통한 후, 광양만의 외망포구에서 그 생명을 다하는 도상거리가 430Km인 남한에 있는 9정맥 중에서 가장 긴 산줄기이다. 호남정맥은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천운산, 제암산, 일림산, 방장산, 조계산, 백운산 등 수많은 명산(名山)들을 품고 있는데, 이 산줄기에 의해 서쪽 해안(海岸)의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을 이루는 동쪽의 산간지대로 나누어진다. 

 

 

 

‘새로 산 바지인데 걱정이네요’ 집사람이 결코 엄살을 떠는 것이 아니다. 산길을 온통 쓰러진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다. 지난해에 몰아쳤던 태풍(颱風)을 못 배기고 넘어진 모양이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을 위로 넘거나, 아니면 나무 아래를 기어나가다가, 그것도 안 될 경우에는 새로 길을 내며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쓰러진 나무들이 없는 지점이라고 해서 나을 것은 하나도 없다. 길이 안 보일 정도로 잡목(雜木)들이 우거져 있는데,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명감나무나 찔레나무 등 온통 가시넝쿨이 아랫도리를 휘어 감는다. 따가울 뿐만 아니라, 가시에 긁힌 바지가 보푸라기가 일어서 엉망이다. 그래서 집사람이 새로 입고 나온 바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15분 정도를 힘들게 진행하면 엉망진창인 산길이 끝을 맺으면서 자그마한 산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제법 또렷해진다. 그러나 정비(整備)로 인해 뚜렷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을 따름이다. 봉우리에서 3분 정도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안부에서 산길이 맞은편 봉우리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하고 있다. ‘정맥은 봉우리를 피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아니나 다를까 우회를 한 봉우리의 뒤편에서 봉우리를 넘어오는 산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산길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밋밋한 풍경(風景)이 이어진다. 산세(山勢)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고, 거기다가 능선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소나무들로 인해 조망(眺望)까지도 꽉 막혀있다. 능선은 자그마한 봉우리들을 넘으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경사(傾斜)를 유지하면서 짧게 내려섰다가 길게 올라서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것이 지겨워질 즈음이면 묘(墓) 하나를 만나게 된다. 봉분(封墳)은 비록 허물어져 가고 있지만, 돌이끼가 잔뜩 낀 상석(床石)까지 갖춘 것을 보면 뼈대 있는 집안의 묘지임이 분명할 것이다. 묘지를 지나면 금방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났다.

 

 

 

봉우리답지 않게 무디게 생긴 무이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없다. 대신에 소나무 줄기에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정상표지판’이 두 개나 매달려 있다. 비록 높지도, 그렇다고 잘생기지도 못한 봉우리지만 호남정맥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톡톡히 보는 모양이다. 하긴 옛말에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격언(格言)까지 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봉우리의 한가운데에는 삼각점(순창458)이 심어져 있다.

 

 

무이산에서 괘일산 방향으로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안부사거리에 닿게 된다. 오른편은 성림수련원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편으로 내려가면 무정면(담양군)이다.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는 진행방향의 소나무 숲 사이로 괘일산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얼핏얼핏 보이는 거대한 암릉이 사람의 기(氣)를 단번에 꺾어버리고도 남을 정도이다. 첫 번째 사거리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임도 사거리에 이르고, 다시 10분쯤 더 걸으면 또 다른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편으로 성림수련원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이곳 삼거리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정표(괘일산, 설산/ 성림수련원)를 만나게 된다.

 

 

 

 

 

 

임도삼거리에서 임도(林道)를 따라 괘일산으로 가는 길은 짙은 소나무 숲이 계속된다. 작달막한 키의 토종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오르고 있는 것도 보인다. 길가의 소나무들을 벗 삼아 걷다보면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드디어 괘일산에 이른 것이다. 앞을 가로막는 암벽을 왼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오르면 이정표(괘일산 0.5Km, 설산 2.6Km/ 성림수련원 0.8Km)가 길손을 맞으며 현재의 위치를 알려준다.

 

 

 

 

 

 

이정표를 지나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바위능선을 타고 오르게 된다. 이어지는 바윗길은 암릉의 전형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뛰어난 조망(眺望)을 선사하는 것이다. 발아래에는 수련원과 저수지가 깔려있고, 그 너머에는 백아산이 아스라하다. 바위에 얹혀있는 작은 소나무들이 바위들과 어울리며 멋지게 조화(造化)를 부리고 있다.

 

 

 

 

잠깐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 또 하나의 멋진 전망대(展望臺)가 손님을 맞이한다. 아니 두 곳 뿐만이 아니다. 오른편이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시야(視野)가 열리는 곳마다 뛰어난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일부러 조각(彫刻)이라도 해 놓은 것 같이 잘 다듬어진 바윗돌이 왼편에 우뚝 솟아있다. 그 옆으로 곡성의 산하(山河)가 펼쳐지며 잘 그린 그림 한 장을 만들어놓는데 한마디로 장관이다. 그리고 잠깐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지나온 무이산은 물론 곡성의 명산인 동악산과 통명산, 그리고 백아산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전망대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임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괘일산 0.1Km/ 임도 0.5Km/ 성림수련원 1.2Km)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 근처에서도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곡성의 산하(山河)가 다시 한 번 넓게 펼쳐진다.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옥과 들녘을 둘러싼 산자락들이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옥과면에게 안녕을 고하고 남쪽으로 달려가는 호남고속도로가 멀리 산과 산 사이로 보일 듯 말듯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왼편으로 돌아 오르면 드디어 괘일산 정상이다. 좁다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괘일산 정상은 아까 지나왔던 무이산과 마찬가지로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도 역시 검은색 나무판자(板子)로 만들어진 정상표지판이 걸려있을 따름이다. 무이산에서 괘일산까지는 한 시간 가량이 걸렸다. 참고로 괘일산은 ‘해가 산에 걸렸다’는 뜻이다. 옥과면 방향에서 볼 때에는 온종일 하늘을 떠돌던 해가 괘일산 너머로 사라지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 때문에 괘일산이라는 이름이 붙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지는 해가 하얀 암릉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석양(夕陽)의 황혼(黃昏)에 붉게 물든 암릉을 상상해본다.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다울 것이 뻔하다. 설산낙조(雪山落照)라는 말이 있다. 곡성팔경(谷城八景)의 하나로, 설산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빼어나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잠깐 발상(發想)을 전환(轉換)해보자. 지는 해를 보겠다고 바위로 이루어진 험산(險山)에 오를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는 해를 설산에 올라가지 않고도 보는 방법은 없을까? 옥과 들녘에서 설산의 암릉 위로 지는 석양을 보면 될 것이다. 황혼에 물든 암릉의 자태는 그야말로 빼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설산보다 괘일산이 더 뛰어난 게 아닐까 싶다. 괘일산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것을 보면 말이다.

 

 

 

괘일산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자못 빼어나다. 무이산과 만덕산을 거쳐 남쪽으로 뻗어가던 호남정맥이 불쑥 솟구치며 무등산을 만들고 있고,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악산은 물론, 화순의 백아산까지도 가깝게 다가온다. 남원 땅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문덕봉과 고리봉은 아기자기한 암릉을 한껏 자랑하고 있고, 맞은 편 설산은 괘일산과 어께를 마주하고 있다. 옥과 방향으로 발아래 깔려있는 산촌(山村)마을은 아마도 설옥리일 것이다.

 

 

 

괘일산에서 설산으로 가는 길은 암릉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암릉이 끝나는 지점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을 우회(迂廻)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조망(眺望)을 즐기기 위해 바위 위로 오르다보니 자연히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다. 바윗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눈이 즐거워진다. 괘일산과 설산의 암릉이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처럼 연속해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괘일산은 의외의 장소에서 정상을 나타내는 이정표(설산정상 2.1Km/ 쉼터 1.3Km/ 성림수련원 1.3Km)를 만나게 된다. 정상을 나타내는 이정표가 정상이 아니라 정상에서 설산 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설산방향으로 가는 길은 도처(到處)에 멋진 전망대(展望臺)가 널려있다. 스스럼없이 나타나는 절벽(絶壁)에서의 조망도 뛰어나지만, 어쩌다가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은 이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 능선을 가다가 혹시라도 암봉이 보일라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올라가 보자. 올라오느라 고생한 것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한 뛰어난 조망(眺望)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암릉이 끝나는 지점에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길의 흔적이 보이지만, 얼마안가 절벽을 만나면서 길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암릉 끝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왼편으로 희미하게 나 있는 내리막길이 보인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아까 정상에서 내려오는 정상적인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암릉을 내려서면 산길은 고와진다. 소나무가 가득한 흙길은 솔가리(소나무 落葉)가 수북이 쌓여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능선 중간에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수련원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게 된다. 임도에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이곳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한가 보다. ‘임도의 끝’은 장의자를 갖춘 작은 쉼터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이정표가 2개(이졍표 #1 : 괘일산 1.2Km, 이정표 #2 : 설산 0.9Km/ 괘일산 1.3Km/ 수도암(임도) 2.0Km)나 세워져 있다. 임도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양편에 하나씩 세워진 것이다.

 

 

 

 

쉼터(임도 끝)에서 5분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에 보이는 길은 그동안 같이 달려오던 호남정맥이 다시 갈라져나가는 길이다. 설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또 다른 갈림길(이정표 : 설산 0.4Km/ 임도 0.4Km/ 괘일산 2.1Km)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길이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다. 

 

 

 

임도 갈림길을 지나면서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오르막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오르막길이 통나무 계단으로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속도가 결코 빨라질 수는 없다. 오늘 같이 폭염(暴炎)주의보가 내려진 무더운 여름날에 속도를 내는 행위는 자칫 사고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분정도를 오르막길과 싸우다보면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데, 암벽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나무계단이 놓여있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금샘이다. 금샘은 쪼개진 듯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에서 솟아나는 석간수(石間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같이 뚱뚱한 사람들은 결코 들어갈 수가 없는 금(禁) 뚱뚱이의 영역이다. 바위 틈새가 그만큼 좁다는 얘기이다. 덕분에 집사람이 떠다주는 물을 편하게 마시는 호사(豪奢)를 누렸다. 호사를 누린다는 선입감(先入感) 때문인지는 몰라도 물맛은 달고도 시원했다.

 

 

 

 

금샘에서 바위벼랑을 오른편에 끼고 잠깐 치고 오르면 능선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안부에는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표시지가 보인다. 좌우(左右) 양쪽으로 방향표시를 해 놓고 오른편 방향표시 아래에다 조망이 보잘 것 없다고 적어 놓았다. 안부에서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 얼마 안 있어 곡성군 특유의 이정표(설산 정상/ 수도암, 성금샘터/ 금샘, 괘일봉)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또 다시 갈림길(이정표 : 순창 풍산/ 괘일봉(임도끝)/ 설산정상)을 만나게 된다. 왼편 능선을 따라난 길(순창 풍산방향)은 아까 괘일산 아래의 쉼터 근처에서 갈려나갔던 길이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풍산갈림길에서 정상은 바로 코앞이다. 10평도 넘는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설산의 정상은 순창방향은 쇠사슬 난간으로 막혀있다. 아마도 그쪽 방향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탓일 것이다. 쇠사슬에 매달린 리본들이 무당집처럼 거창한데, 그 앞에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설산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성륜사 2.9Km, 지동입구 4.2Km/ 수도암 0.9Km/ 괘일산 2.1Km)로 나뉜다. 오른편은 수도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성륜사로 하산지점을 잡은 경우에는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설산 정상에서 성륜사로 내려가기 전에 수도암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수도암까지의 암릉을 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같이 무더운 여름날에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괘일산에서 설산까지는 1시간10분이 걸렸다.

 

 

 

 

설산 정상에 올라서면 의외로 시야(視野)가 막혀있다. 사방으로 탁 트인다는 사전지식과 달라 어리둥절하다. 북쪽 방향만 시원스럽게 시야가 트이고, 남쪽은 숲으로 꽉 막혀있는 것이다. 만일 남쪽의 조망(眺望)을 즐기고 싶다면 수도암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된다. 수도암 방향의 암릉에서 조망이 트이기 때문이다. 동쪽에 있는 동악산과 문덕봉, 그리고 고리봉이 남성미(男性美) 넘치는 근육질을 자랑하고, 남쪽에는 무등산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괘일산의 암봉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사방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어, 강원도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지경이다. 그래도 이곳은 남도의 땅이다. 아무리 산들에게 포위 되었다고 해도 너른 들녘 한 자락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발아래에 옥과 들녘이 넓게 펼쳐지고 그 사이를 지나는 호남고속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옥과 들녘을 바라보면서 성륜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거리가 제법 멀다. 그러나 흙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내려서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는 편한 길이 계속된다. 하산을 시작한지 30분이 조금 더 지나면 능선안부에서 갈림길(이정표 : 성륜사 1.3Km/ 등산로 아님/ 설산 정상 1.6Km)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오른편 길은 통행을 금지시키고 있다. 아마 성륜사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다. 선원(禪院)까지 갖추고 있는 성륜사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안부갈림길을 지나도 능선은 고도(高度)를 더 이상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고도를 더 높이고 있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던 산길은 능선 상에 우뚝 솟은 392봉에다 올려놓는다. 392봉은 흙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봉우리이지만 조망(眺望)은 사뭇 시원스럽다. 능선에 웃자란 나무들이 별로 없는 덕분일 것이다.

 

 

 

 

392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 가파름의 정도가 내려서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닐뿐더러, 그마저도 힘들 경우에는 길가에 메어있는 로프에 의지해서 내려오면 되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10명이 앉아도 여유로울 만큼 넓고 반반한 바위를 만나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흙길이 계속된다. 그러다가 산길이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이정표 : 성륜사 0.4Km/ 지동입구 1.6Km/ 설산 정상 2.5Km) 나무숲 사이로 ‘옥과미술관’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옥과미술관(玉果美術館)은 한 화가(畵家)의 뜻 있는 선의(善意)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남 무안출신의 ‘아산(雅山) 조방원(趙邦元)’화백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기증(寄贈)한 미술품 6700여 점과 부지 1만3000여㎡을 바탕으로 전라남도에서 미술관을 건립한 것이다. 1996년 문을 연 미술관은 1층에 남도 작가들의 동·서양화 40여 점이 전시돼 있고, 2층에는 조 화백이 기증한 소치 허련 선생의 사군자, 추사 김정희의 서간문, 퇴계 이황의 시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전시(展示)되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고 대신 개들만이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는 미술관 앞을 지나면서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과연 누가 이곳까지 미술품을 관람하러 올까?’ 해답은 미술관 관계자들만이 알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성륜사주차장

옥과미술관에서 잠깐만 내려서면 성륜사(聖輪寺)이다. 성륜사는 청화(淸華)스님이 1990년에 창건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寺刹)이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승으로 꼽히는 청화스님이 수행하다가 입적(入寂)한 곳으로 잘 알려졌다. 10만평에 대웅전, 지장전, 성련대, 조선당, 백련당, 금강선원(불교대학) 등 수많은 전각(殿閣)들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20여년 남짓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사찰의 규모는 제법 큰 편이다. 창건자인 청화스님의 유명세 덕을 본 모양이다. 이 외에도 성륜사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2001년에 스리랑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오면서 이를 안치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청화스님은 한국불교의 큰 기둥인 송만암 (宋曼庵)대종사의 계보를 잇는 큰스님이다. 만암스님의 상좌인 금타스님을 스승으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출가(1947년)한 스님은 40여 년간 상무주암, 백장암 등 20여 곳의 토굴을 옮겨 다니며 하루 한 끼와 장좌불와(長坐不臥 : 눕지 않고 늘 좌선하는 것)를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륜사를 빠져나와 100m쯤 더 걸으면 일주문 앞에 만들어 놓은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설산정상에서 날머리인 주차장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