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靈鷲山, 418m)-진례산(進禮山, 510m)

 

산행일 : ‘12. 4. 11(수)

소재지 : 전남 여수시 상암동과 삼일동의 경계

산행코스 : GS칼텍스 여수공장 앞→진달래군락능선→진례산→시루봉→진달래군락→영취산→ 원동천계곡→흥국사(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우리나라의 꽃들을 이야기할 때, 진달래를 빼놓고는 얘기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산하(山河)에는 진달래가 많은 분포되어 있고, 화전놀이 등 우리네 조상들의 일상생활에서까지 친근(親近)했던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周邊)에는 글이나 노래, 그리고 갖가지 설화(說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수의 영취산 진달래는 그 어느 산(山)보다 곱고 화사하다. 키 작은 나무 수만 그루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으며, 곳곳에 무리를 지어 피어난 진달래는 큰 산 군데군데에 분홍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 영취산은 흥국사가 창건(創建:1195년)되기 훨씬 이전인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견훤, 김총, 박영규 3인이 후백제(後百濟) 건국을 도모하고 세력을 규합했던 발상지(發祥地)이다. 그리고 김총이 고려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리다 이곳에서 생(生)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죽어서 영취산의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됐고,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성황제를 올리기 시작했고 전한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견훤과 김총은 신라 장수로 서남해방위(防衛)에 파견돼 근무하였고, 거기에다 박영규는 순천의 재력(財力)이 풍부한 호족(豪族)이었으니 이들의 만남은 숙명적(宿命的)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들은 ‘순천 견씨(견훤)’, ‘순천 김씨(김총)’, ‘순천 박씨(박영규)’의 시조이다.

 

 

산행들머리는 여수산업단지(産業團地)의 GS칼텍스 정문 앞 임시주차장

순천-완주간고속도 동순천 I.C를 빠져나와 17번 국도(國道/ 여수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산단(産團) 육교(陸橋) 앞’ I.C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여수산업단지(産業團地 : 옛 여천화학단지)로(路)를 따라 들어가면 GS칼텍스(GS-CALTEX Corporation) 여수공장(石油 精製施設)이 나온다. GS정유 정문 건너편에는 널따란 주차장(駐車場)이 만들어져 있다. 주차장 바닥에 깔린 자갈이나 막걸리와 갓김치 등을 팔고 있는 간이천막들을 볼 것 같으면, 아마도 며칠 전에 열렸던 ‘진달래 축제’ 행사를 위해 임시(臨時)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주차장에는 수많은 인파(人波)들로 북적이고 있다. 진달래의 만개(滿開)시기에 맞춰 전국에서 찾아든 사람들이다.

 

 

 

산행은 주차장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입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林道)를 따라 얼마간 올라가면 왼편에 널따란 공터가 보인다. 제단(祭壇)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이 진달래 축제(祝祭)가 열리는 장소인 모양이다.

 

 

 

진달래축제장에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진달래 꽃등 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첫 번째 이정표(영취산 진례봉정상 1.1Km/ 골명재 0.5Km/ 돌고개 주차장 0.8Km)를 만나게 된다. 왼편에서 올라오는 길은 골명재 방향이다. ‘진달래 꽃등 길’에 올라서면 온산이 붉게 물든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절경(絶景)이다. 영취산 정상에서 뻗어 내린 수만 평의 능선을 따라 연분홍 꽃솜을 뿌려놓은 듯한 모습에 감탄사만 나올 따름이다. 꽃을 기리는 축제(祝祭)는 대개 그 꽃의 개화(開花)시기에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 영취산의 진달래 축제(4.5~8)가 지난주에 열렸으니 3일이 지난 지금이 가장 절정(絶頂)에 이르는 시기일 것이다.

 

 

‘진달래 꽃등 길’ 삼거리에서부터는 좌우로 시원스레 전망이 열린다. 오른편 발아래에 GS칼텍스 여수공장이 보인다. 석유 정제(精製)시설과 거대한 원유(原油) 저장탱크가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동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지만,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시설을 부조화라는 미명(美名)하에 비난하는 것은 차라리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가 작은 바위 턱으로 올라서면 드디어 진달래 터널에 들어서게 된다.

 

 

 

 

‘워메(’아이, 참‘을 뜻하는 전라도 지방의 감탄사) 불나 부렀네!’ 온통 붉게 물든 능선은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꽃 속에 들면 다들 꽃으로 변하는 것일까? 까르르 까르르 내지르는 웃음소리들이 하나같이 해맑다. 다들 20대 꽃띠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모두들 나이를 잊고 진달래 꽃무더기 속으로 들어가 예쁜 포즈를 잡으며 추억(追憶)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영취산의 진달래는 암팡지다. 나무들이 어른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웃자랐지만, 빽빽하고 촘촘히 들어차 있기 때문에, 온통 산을 꽃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다. 진달래나무 사이로 난 길은 꽃으로 만든 터널이다. 산 아래에서 보면 꽃이 만들어낸 동굴(洞窟)을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능선에는 온통 진달래로 만든 융단이 펼쳐져 있다. 연분홍 여린 꽃잎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진달래 꽃물결이다. 진달래 숲길에 들어서면 꽃 속에 파묻힌다. 어른의 키보다 더 훌쩍 큰 진달래나무가 만들어내는 꽃길을 들락거리는 집사람의 뒷모습이 더 이상 고울 수가 없다.

 

 

진달래 군락지 능선에서 바라본 457봉

 

 

붉게 타오르고 있는 진달래꽃 터널을 따라 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뾰쪽하게 솟은 바위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원상암 가는 길과 나뉘는 457m봉이다(이정표 : 영취산정상 0.6Km/ 골명재 2.2Km/ 돌고개 주차장 1.3Km). 진행방향에 진례봉으로 가는 길이 일직선으로 펼쳐지는데, 한 가운데에 바위봉우리인 개구리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457봉에서 바라본 진례봉 방향 능성, 가운데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개구리바위이다.

 

 

헬기장을 지나면 계단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인 개구리바위기 앞을 가로막는다. 우회(迂廻)하는 길도 있으나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다. 튼튼한 철계단이 설치되어있어 오르내리는데 조금도 위험(危險)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하여 개구리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은 자못 빼어나다.

개구리바위 위에서 바라본 457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개구리바위

 

 

계단을 내려서서 진례봉 정상까지 오르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송신탑(送信塔)이 서 있는 바위 봉우리인 정상 한 가운데에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뒤편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이곳에서 성황신(城隍神)을 모셨다고 하던데 제단(祭壇)은 어디쯤 있었을까? 정상에 서면 사통팔달 시원하게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을 조금 더 편하게 감상하라는 배려인지, 남(南)과 북(北) 양쪽에 나무데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와 광양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수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니 당연히 조망(眺望)이 뛰어날 것이다. 직선의 해안선(海岸線)이 눈길을 붙잡는다. 여수공단의 간석지(干潟地)가 모두 공장용지로 개발된 덕분이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에 놓인 바다는 마치 갓잡은 생선의 비늘마냥 반짝이고 있다.

 

 

 

 

정상에서 봉우재로 내려서는 길은 송신탑의 오른쪽으로 열린다. 송신탑 옆에 이정표(흥국사 2.4Km, 도솔암 0.2Km, 봉우재 0.4Km/ 돌고개 주차장 1.9Km/ 중흥동 3.1Km)가 세워져 있으니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은 먼저 침목(枕木) 계단을 2~3분 정도 내려선 뒤, 이어서 가파른 철계단길을 5분 정도 더 내려가게 된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의 왼편 언덕위에 등산객의 뒷모습이 어른거리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동굴(洞窟) 하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수십 명이 들어갈 만큼 널찍한데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동굴 아래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도솔암 입구다. 시멘트로 엉성하게 만든 계단의 양옆으로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山竹)이 천연(天然)의 울타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절벽(絶壁)의 중턱에 올라앉은 도솔암은 비좁은 터에 비해 꽤 많은 전각(殿閣)들이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에 바람이 많은 탓인지 특이하게도 전각의 앞면을 유리로 막아 놓았다. 도솔암은 고려중엽 보조국사가 창건한 흥국사의 산내암자(山內庵子) 14곳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암자이다. 이 암자는 예부터 영험(靈驗)있는 기도도량(祈禱道場)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비구니스님 한분이 기거하면서 정진(精進)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암에서 되돌아 나와 지루한 침목(枕木) 계단을 7~8분 정도 내려서면 봉우재다. 도솔암에서 봉우재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 숫자가 831개라고 한다. 암자(庵子)로 이어지는 산길이니 물론 108계단도 있을 것이다. 속세(俗世)에 찌든 중생(衆生)들은 이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며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을 것이다. 무엇인가로 다시 채우고 싶다면 먼저 비우는 것이 반드시 선행(先行)되어야 하니까. 그러한 마음자세(姿勢)라면 계단을 오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수행(修行)이며, 또 다른 정진(精進)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봉우재는 사거리로서 오른쪽으로 가면 흥국사로 가게 되고, 왼편의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골명치를 지나 돌고개입구가 나온다. 물론 영취산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봉우재 이정표 : 영취산 정상 0.6Km/ 흥국사 2Km/ 호명동 사근치 2.3Km, 영취산 시루봉 0.4Km/ 돌고개 임도입구 2.8Km)

봉우재 4거리

 

 

봉우재에서 진행방향으로 난 계단을 밟고 오른다. 또 다시 진달래 꽃밭이 펼쳐지고 있다. 길 좌우(左右)를 진달래가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바위를 타고 오르는 비탈진 오르막길의 바위 곳곳에 분홍색 치마를 두르고 있는 진달래가 장관이다. 더욱이 이곳의 진달래는 때깔까지 곱다. 꽃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면 너른 터가 나타나고 '영취산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다. ‘영취산이란 이름의 유래(由來)는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說法)했던 인도의 영취산과 산의 모양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와 ‘439봉과 510봉을 아울러 영취산으로 통용(通用)되어왔으나 최근 옛 지명(地名) 찾기의 일환으로 진례산과 영취산으로 나눠 부른다.’라는 얘기가 적혀 있다.

 

전면에 보이는 봉우리가 시루봉

시루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진례봉

 

 

영취산 안내판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6~7분 정도 더 오르면 바위봉우리인 시루봉에 올라서게 된다. 시루봉은 조망(眺望)도 뛰어나지만 우람한 근육질의 암릉과 암벽(巖壁)의 사이마다 꽉 들어찬 진달래꽃이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어 바라보는 이의 눈을 호사(豪奢)를 누리게 만들어 준다. 이곳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題). 남해 바다의 이름 모를 섬들이 올망졸망하고 바다 건너편의 산 그림자도 손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시루봉에서 영취산으로 가는 길은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살짝 방향을 튼 후, 바위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시루봉을 내려서서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진달래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본 군락지(群落地)보다는 밀도(密度)가 약간 옅은 편이다. 그러나 푸른 빛 감도는 소나무와 분홍빛 진달래가 어울리는 눈요깃거리를 즐기는 재미는 있다. 진달래터널을 벗어나 작은 봉우리 두어 곳을 넘으며 15분 정도를 걸으면 이내 영취산 정상이다. 돌탑 10여 기(基)가 서있는 영취산 정상은 밋밋한 능선상의 한 지점이다. 까딱하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봉우리답지 않을뿐더러, 119 표지판 외에는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어떠한 표시도 발견할 수가 없다.

< 시루봉에서 바라본 영취산 방향 능선 >

 

 

 

두견새가 울면 일제히 흐드러지게 피어난다는 진달래, 아직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 영취산은 꽃의 사태를 이루고 있다. 조그마한 아기진달래에서 크게는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참꽃까지, 온 산등성이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연분홍 진달래는 비탈에서만 타오르는 게 아니고, 바위에서도 타올라 온 산을 불태우고 있다. 사방팔방에 분홍빛 불길로 치솟는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영취산 정상

영취산 정상의 돌탑 : 119구조지점 표시목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영취산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호랑산으로 가는 길이고, 흥국사로 가려면 오른편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돌탑 두어 기(基)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걷기에는 편하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를 걷다가 진행방향 전면에 보이는 암봉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원동천계곡으로 내려서게 된다. 암팡진 경사(傾斜)의 너덜길을 20분 정도 힘겹게 내려서면 원동천계곡이다. 원동천계곡은 그 길이가 그다지 길지는 않지만, 진례산과 영취산이 흙산으로 이루어진 탓인지 수량(水量)은 의외로 풍부하다. 흥국사를 조금 남겨둔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의 바위틈에서 여울지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앗 차거! 맨발로 물속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라 뛰쳐나오고 만다. 그래도 좋다. 지금은 황홀한 아름다움의 봄이니까...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며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 주변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새로운 생명(生命)이 움트고 있다. 새 순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맞다. 그러고 보니 신록(新綠)의 계절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결코 매섭지 않은 것은, 이미 꽃소식을 듬뿍 안은 봄바람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곡이 끝날 즈음 전통(傳統)의 홍교(虹橋)를 닮은 다리 하나가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다리를 건너면 벚꽃 그늘 아래에 흥국사가 한가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서 막걸리를 시음(試飮)해 보라며 붙잡는 젊은이들을 보고 집사람이 의아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사찰입구에서 막걸리를 권하고 있으니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유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임을 알아야 한다. 저 젊은이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실 때, 안주로 갓김치를 함께 먹어보고 맛이 있을 경우에는 한 박스쯤 사가라는 간절한 염원(念願)이기 때문이다.

 

 

 

흥국사(興國寺,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8호), 고려 명종 25년(1195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창건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승군(僧軍)의 거점으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법당(法堂)과 요사(寮舍 :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그리고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가 소실(燒失)되었는데, 인조 2년에 계특대사(戒特大師)가 건물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보유 문화재(文化財)로는 대웅전(보물 제396호)과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 등이 있다. ‘나라가 흥(興)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호국불교(護國佛敎)와 연관이 깊은 사찰이다.

 

 

산행날머리는 흥국사 앞 주차장

흥국사 입구에는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기 있다. 화사한 차림으로 들놀이를 나온 젊은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얼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밝은 미소들이 활짝 핀 벚꽃만큼이나 아름답다. 흥국사 앞에서 일주문(一柱門)까지의 벚꽃 터널은 그다지 길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주변풍경은 갑자기 변해버린다. 속세(俗世)의 한 복판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일주문 밖은 일렬로 임시(臨時)천막이 죽 늘어서 있고, 갓김치를 파는 호객꾼들의 외침소리가 요란하다. 하나같이 막걸리로 사람들을 유인(誘引)하고 있으니 속세(俗世)의 한 가운데임이 분명할 것이다. 일주문 앞 광장에서 왼편에 보이는 홍교(虹橋 : 보물 제563호)를 건너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