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도(金鰲島) 대부산(貸付山, 382m)

 

산행일 : ‘13. 4. 13(토)

소재지 : 전남 여수시 남면 금오도

산행코스 : 함구미선착장→팔각정→대부산→칼이봉→느진목→옥녀봉→우학리(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인 금오도(金鰲島)는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한편으론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棺)을 짜는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이었을 만큼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으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거무섬’으로도 불렸다고 한다<조선왕조실록>. 섬 산행의 가장 큰 매력(魅力)은 지루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등산코스가 아무리 험준하거나 길어도 별로 지루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어디에서든 눈길만 돌리면 상쾌한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산길을 걸으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매력(魅力)에 푹 빠진 사람들은 아무리 멀고 외딴섬이라도 천 리 길 다리품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금오도의 대부산도 그런 매력을 듬뿍 갖고 있는 산이다.

 

 

이번 산행은 무박(無泊)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금오도에 이르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뿐만 아니라, 배편을 이용해야만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선잠을 자면서 돌산도에 도착하니 새벽 5시,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식사를 마친 후에 다들 향일암으로 향한다. 향일암에서 일출(日出)을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미 두어 번을 올라봤기에 향일암으로 오르는 것을 생략하고 주차장에서 일출을 맞이하기로 한다. 해돋이는 한마디로 장관(壯觀)이다. 흠 하나 없는 온전한 해가 떠오른 것이다. 그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출을 보았지만 오늘 같이 온전한 해돋이는 결코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금오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금오도로 들어가는 도선(渡船)이 출발하는 돌산도의 신기항까지 와야 한다. 먼저 완주-순천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순천까지 온 후, 17번 국도로 갈아타고 신기항까지 오면 된다. 신기항에서 금오도의 여천선착장까지 오전 7시45분부터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왕복 운항한다. 도선은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외에도 수십 대의 승용차를 더 실을 정도로 크니 안심하고 승선해도 된다.

 

 

 

배 위에서 바라본 금오도, 맨 왼쪽이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 그 옆이 대부산일 것이다. ‘뭔가 닮은 것 같지 않아요?’ 집사람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젖가슴’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여성의 가슴을 쏙 빼다 박았다.

 

여천선착장

 

 

산행들머리는 함구미선착장 갈림길

산행들머리는 함구미선착장 갈림길이다. 섬 일주도로에서 내려다본 함구미 마을은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에 확 풍길 것 같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함구미(含九味)란 지명은 해안(海岸)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이 아홉 골짜기의 다양한 절경으로 이뤄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앞 포구가 크고 넓어 한구미라고 하던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함구미(含九味)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천선착장에서 이곳 함구미까지는 섬(島) 일주도로를 운행하는 버스가 다니니 이용하면 된다.

 

 

 

 

섬 일주도로의 함구미선착장(船着場) 뒤편 일주도로의 끄트머리 근처(갈림길에서 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을길을 지나야 한다. 올레길 같은 골목길의 양 옆은 온통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무척 높다. 세찬 바람을 막아내기 위해 돌이 많은 섬의 특성을 잘 활용한 사람들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돌담은 대문을 따로 달지 않았어도 각(角)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집 안이 내다보이지는 않는다.

 

 

 

마을 돌담길을 지나 산길로 들어선다. 대부산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간간히 동백나무가 보이는데 나무아래 풀섶(풀숲의 사투리)에 떨어져 내린 붉은 꽃이 서러울 정도로 곱다. 마을을 벗어나 10분 조금 못 되게 올라가면 또 다시 돌담을 만나게 된다. 이번의 것은 조금 전의 돌담만큼 높지는 않지만, 대신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돌담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역역한 빈 집들도 간혹 보인다. 저 집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돌담을 닮은 소박한 사람들은 이제는 없다. 이곳까지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다보니 전부 바다 가까운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벌써 마을은 저만큼 멀어지고, 그 너머 다도해(多島海)는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텅 빈 마을을 지나 5분쯤 더 올라가면 또 다시 돌담이 보인다. 이번에는 돌담 안은 온통 빈터로 남아있다. 아주 오래 전에 이주해버린 탓에 가옥의 잔해(殘骸)까지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돌담길을 지나서 너덜길까지 통과하면 숲속에 긴 의자까지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쉼터에서 능선에 들어서면 나무껍질이 온통 하얀 나무들 천지이다. 소사나무 군락(群落)이다, 생존력이 매우 강해 비탈진 능선이나 바람이 센 정상에서도 번성하는 소사나무의 특성대로 산등성이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커다란 나무로서 보다는 분재(盆栽)로 만날 기회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크게 잘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면 이내 375봉이다. 이 봉우리에는 전망대를 겸한 팔각정(八角亭)이 세워져 있다. 정자(亭子)에 올라서면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눈앞으로 도열한다. 대두라도 소두라도 소횡간도 대횡간도 나발도 월호도 돌산도가 한 눈에 보인다. 멀리 여수 시가지도 아련하다.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 풍경(風景)은 한없이 아름답다. 경이롭기까지 한 풍경은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한동안 놓아주질 않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은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어난다. 아름다움에 취해 자기도 몰래 행복(幸福)해진 모양이다.

 

 

 

팔각정에서부터는 휘파람이 절로 나올 정도로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능선에는 온통 소사나무가 울창하고, 소사나무 사이사이에는 진달래가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앉아있다. 연분홍 진달래꽃은 스러져 가는 봄을 안타까워하는 듯 마지막 힘을 다해 꽃망울 활짝 터뜨리고 있다. 대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흙길과 바윗길을 번갈아 지나게 된다. 간간이 나타나는 바윗길 구간에서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감상하며 걷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 있다.

 

 

 

 

가야할 남쪽 능선. 대부산을 걷다보면 가끔 작은 해송(海松)들을 볼 수 있다. 황장목(黃腸木) 새끼들이다. 금오도는 원래 황장목 해송의 천연군락지로 명성이 나있던 곳이다. 숲이 크고 무성했던지 거무섬(巨茂島)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궁궐과 지방 관청을 축조하기 위하여 목재를 철저히 관리하면서, 금오도의 거대한 수림(樹林)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였다. 금오도의 황장목은 단단하고 쉽게 썩지 않기 때문에, 건축자재로 소문난 춘향목 이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바다 색깔이 너무 곱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바다는 비취빛으로 빛나고 있다. 화려하게 빛나는 바다 위에 올망졸망한 수많은 섬들이 떠 있다. 마치 모이를 찾아 모여드는 새때를 보는 것 같다.

 

 

바윗길의 바다 쪽은 급경사(急傾斜)의 벼랑이지만, 바위의 윗면이 넓기 때문에 공포감은 느낄 필요가 없다. 그저 눈의 호사만 누리면 된다. 다도해의 풍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가 대부산 조금 못미처에 있는 바위이다.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위로 오르면 또 다시 일망무제(一望無題)의 다도해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다 건너편에는 개도와 대·소두리도 그리고 화태도와 돌산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가벼운 전율마저 느껴질 만큼 조망(眺望)이 탁월하다.

 

바위에서 뒤돌아보면 지나온 능선과 팔각정이 보인다. 이곳이 대부산의 정상어림인데도 맞은편 372봉에 있는 팔각정이 더 높아 보인다.

 

 

 

팔각정에서 천천히 조망(眺望)을 즐기며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대부산 정상이다. 대부산 정상은 아주 평범하다. 소사나무숲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문바위 1.29Km/ 함구미 1.6Km)만 아니라면 이 섬의 최고봉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부부도 이곳이 정상인줄 모르고 지나쳐 버렸다. 산을 한참이나 내려가다가 되돌아와 인증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정상은 소사나무가 우거져서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기 때문에, 다들 머무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대부산은 얼마전에 매봉산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궁궐토지(宮闕土地)로 되어있던 섬을 1886년에야 일반인에게 출입을 허용하였고, 일제 강점기(日帝 强占期)에는 산을 임대해서 삼림을 개척하였다. 이때 빌렸다는 의미의 대부산(貸付山)이 산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왜 매봉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엉겁결에 얻게 된 이름을 엉겁결에 잃게 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정상에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20m정도만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바윗길이 뛰어난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바윗길은 바다 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거침없이 시야(視野)가 열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섬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돌산도의 신기항에는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대부산에서 바윗길과 흙길을 번갈아가며 30분 정도 걸으면 문바위(이정표 : 칼이봉 1.29Km/ 대부산 2.1Km)가 나온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양쪽에 솟아 있는 모습이 문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문바위의 문설주 역할을 하는 양 옆의 바위 위에서 다시 조망(眺望)이 트이지만 아까보다는 한참 뒤진다.

 

 

 

 

 

문바위에서 다시 15분 정도를 걸으면 여천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 쉼터(이정표 : 칼이봉 0.5Km/ 여천 0.8Km/ 문바위 0.79K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아침에 배에서 내린 여천선착장까지는 800m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여천에서 이곳으로 올라와 대부산을 경유하여 함구미선착장으로 내려간 후, 금오도의 또 하나의 명품인 비렁길을 걷는다고 한다. 산행과 비렁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싶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인 것이다.

 

 

 

 

여천갈림길에서 10분 정도 지나면 칼이봉에 올라서게 된다. 칼이봉도 대부산과 마찬가지로 별 특징이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이곳도 역시 이정표(느진목 1.29Km/ 문바위 1.29Km)만 아니라면 정상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칼이봉에서 내려서면 또 다시 눈은 호사(豪奢)를 누리게 된다. 진행방향의 나무들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남해바다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의 바다는 아까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올망졸망한 섬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대신에 바다는 멀리 망망대해(茫茫大海)의 끝에다 수평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칼이봉을 내려서면 거대한 동백나무 군락을 만나게 된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게 우거졌는데, 크고 작은 나무들이 가는 줄기들을 하늘을 향해 뻗고 있다. 저마다 햇빛을 보기 위해 키 경쟁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숲은 난대림(暖帶林)의 진수를 보여준다.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비자나무는 물론 나무에 기생하는 부착식물들이 지천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온통 헐벗은 나무들뿐이었는데, 이곳은 온통 푸르름에 넘쳐난다. 마치 여름 산행을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사방이 온통 푸른 잎들로 꽉 차있다. 이런 숲에서는 가끔 불어오는 바람까지고 신선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도 모르게 입가에는 한줄기 미소가 묻어난다. 칼이봉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느진목(이정표 : 옥녀봉 2.7Km/ 대유 0.3Km/ 느진목 0.5Km/ 칼이봉 1.29Km)이다. 만일 육지로 돌아가는 배시간이 빠듯하다면 이곳에서 왼편에 보이는 길로 내려가면 된다. 대유에서 여천선착장까지는 지척이기 때문이다. 이런 길은 무리에 휩싸이지 말고 홀로 걸어야 더 운치(韻致) 있다. 아니 어쩌면 혼자보다는 둘이 걷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같이 걷는 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렇게 호젓한 산길에서 주고받는 사랑의 밀어(蜜語)는 그 농도가 더울 짙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숲길 위에는 생명을 다한 동백꽃들이 시체마냥 널브러져 있다. 물론 붉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고 있는 나무들도 보인다. 아마 게으름을 피우다가 제철을 놓쳐버린 모양이다. 지금은 4월 중순, 금오도가 자랑하는 ‘산벚꽃’도 이미 져버린 늦은 봄인 것이다. 보통 동백꽃은 두 가지 느낌으로 표현된다. ‘바람 난 아가씨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살아있는 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모가지 째 뚝뚝 떨어져 바닥에 낭자한 선혈의 꽃’이다. 대부분의 선비들은 동백꽃을 후자로 보았기 때문에 동백꽃을 멀리했다고 한다. 특히 귀양살이를 하는 선비들은 아예 나무를 베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동백꽃을 찾아 천리 길도 멀다 않고 떠난다. 세월 따라 인심도 변한 탓이리라... 동백은 추위에 약하지만 해풍(海風)엔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남해안의 섬들에서 이렇게 광활한 동백나무 군락(群落)들이 자주 눈에 띄는 모양이다. 동백나무 군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동백나무 군락지라는 오동도가 인근에 있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않을 듯싶다.

 

 

 

느진목사거리에서 다시 3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소유갈림길사거리(이정표 : 옥녀봉 0.5Km/ 소유 0.6Km/ 느진목 0.6Km/ 냉수동 0.8Km)가 나온다. 갈림길에 가까워지면서 진행방향에 옥녀봉이 그 자태를 들러내면서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칼이봉을 출발해서 녹음이 짙은 동백나무 숲 아래로 난 길을 1시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옥녀봉이다. 가는 길에 두어 개의 봉우리를 넘고, 또 대유와 소유 탈출로를 지나면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바위를 피해 왼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오르면 드디어 옥녀봉이다. 옥녀봉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傳說)이 하나 있다. 옛날 하늘에서 네 명의 선녀가 금오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내려왔는데 셋은 승천하였지만 한명의 선녀는 올라가지 못하고 금오도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옥녀봉이라는 이름은 그 선녀의 이름에서 따온 모양이다. 옥녀가 이곳 바위 위에서 베를 짜다가 베틀의 북을 놓친 것이 유송리 앞 바다의 납덕섬이 되었더란다. 참고로 지금도 옥녀봉 근처에서는 벌채하는 것을 금기시 하고 있다. 벌채가 곧 옥녀의 치마를 벗기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란다.

 

 

 

 

옥녀봉의 북동쪽은 날카로운 수직 암벽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시야(視野)가 뻥 뚫리면서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터진다. 대부산에서 누리는 마지막 눈의 호사(豪奢)이다. 멀리 떠있는 섬들은 산행을 하는 내내 보아온 섬들이고, 발아래에 수항도와 형제도가 보이는데, 수항도에 집들이 보이는 것은 조그만 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옥녀봉에서 능선산행이 끝나는 곰바위까지는 1.9Km, 길이 거칠지 않기 때문에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옥녀봉에서 검바위는 동백나무 숲 아래를 걷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기 때문에 해찰을 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싱싱한 산나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르다. 길가에 두릅나무가 꽤나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집사람은 오늘도 역시 부지런히 손을 놀렸고, 한 끼 먹거리로 충분할 만큼의 양을 뜯을 수 있었다.

 

 

 

 

 

산행날머리는 우학리선착장

능선산행의 끝은 섬 일주도로이다. 도로를 건너 검바위까지 진행할 수 있으나, 밭에서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고 한다. 더 이상 능선산행을 이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주도로를 따라 남면 소재지인 우학리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지름길을 찾아 도로를 가로지르면 20분이면 우학리에 있는 우실마을회관에 이르게 된다. 비렁길을 걷고 온 아주머니들의 양손에는 비닐봉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금오도의 특산품인 ‘방풍나물’과 ‘고사리’를 구입한 모양이다. 여천선착장에 도착한 집사람이 방풍나물 2봉지를 챙겨든다. ‘한 봉지에 5000원'이면 거저먹기란다. 집사람은 그것도 부족했는지 ’여수수산시장‘에 들러 돌김과 멸치, 그리고 북어포에 갓김치까지 푸짐하게 챙겨 담는다. 그 많은 걸 혼자 짊어질 난 괴롭지만, 집사람은 그런 내 애달픔에는 관심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