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령산(鷲靈山, 621.6m)
산행일 : ‘12. 12. 1(토)
소재지 : 전남 장성군 북일면⁃서삼면과 전북 고창군 고수면의 경계
산행코스 : 추암마을 주차장→왼편 임도→서우재→능선→축령산정상→건강숲길→금곡마을 갈림길→숲내음 숲길→추모비삼거리→추암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옛 이름은 취령산(鷲靈山)이며, 문수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산세(山勢)만 놓고 볼 것 같으면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없는 이름 없는 산이다. 높지도 그렇다고 깊지도 않은 흙산(肉山)인데다 산세까지도 다른 산들에 비해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요즘의 축령산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뭔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볼거리가 생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산림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치유의 숲’ 때문이다. 국내 최대의 편백나무 숲인 ‘치유의 숲’이 요즘 세간(世間)의 화두(話頭)인 힐링(Healing)과 맞물리면서 도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편백나무에서 만들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보다 더 나은 심신(心身) 치료제가 어디 있을까 싶다.
* 축령산의 숲은 자연이 만든 숲이 아니라 인공(人工)으로 조성(造成)한 숲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헐벗게 된 산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은 독립운동가 출신인 고(故) 임종국 선생이라고 한다. 그는 1956년부터 20년간 사재(私財)를 털어 596ha에 임야에 253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만을 심고 가꿨다. 양잠 등으로 모은 상당한 재산도 모자라 빚까지 져가며 조림(造林)을 계속했다고 한다. 60년대 말의 혹독했던 가뭄 때에는 온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비탈길을 오르내리기도 했단다. 한 개인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을 후대(後代)인 우리들이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 산행들머리는 추암리 괴정마을 주차장
고창-담양 고속도로 장성물류 I.C를 빠져나오자마자(300m) 우회전한 후에 축령산 휴양림(休養林) 표지판을 보고 진행한다. 몇 번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휴양림 안내판을 보고 전진하다가, 편백로와 추암로가 만나는 네거리에서 우회전, 추암저수지 방면으로 간다. 이어서 그럴듯한 한옥(韓屋)들을 새로 짓거나 이미 지어진 홍길동 숲 마을을 지나 추암마을 입구까지 올라가면 된다. 산행이 시작되는 추암마을에는 그리 넓지 않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차장 한편에는 식음료(食飮料)를 파는 간이식당까지 갖추어져 있다.
▼ 산행의 출발점은 추암마을 주차장이다. 안내소 왼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축령산 휴양림 안내센터 방향으로 10분(이정표에 500m라고 적혀있으나 믿음이 가지 않는다)정도 걸으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숲치유센터 1.6Km(30분)/ 전망대 5.3Km(132분)/ 추암마을 0.5Km(10분)로 나뉜다. 이곳에서 곧바로 직진하면 휴양림으로 가게 되고, 왼편은 축령산 능선으로 연결시키는 임도(林道)이다. 만일 편백나무를 이용한 치유(治癒)를 위해서 축령산에 온 것이 아니라면, 이곳 삼거리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곧바로 휴양림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조망(眺望)도 즐길 수 없을뿐더러 산행거리도 너무 짧아지기 때문이다.
▼ 차량(車輛)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는 시멘트포장구간과 비포장구간이 번갈아가며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다. 임도는 걷기가 편안해서 일행과 담소(談笑)를 나누며 걷기에 딱 좋다. 차량이 다닐 목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널따라면서도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도로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참나무 등 잡목(雜木)이 주종인데, 가끔 나타나는 편백나무 숲을 보고 너무 왜소하다고 지레짐작하면 안 될 일이다. 편백나무로 유명한 축령산휴양림은 아직 들어서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정제된 산소를 듬뿍 마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숲길을 걷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편백나무 숲이라고 할 수 있다.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피톤치드(phytoncide)를 내뿜어주기 때문이다. 정제된 산소와 힐링(Healing)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는 길에서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사색(思索)을 시작하게 된다. 사색하기 싫은 사람들도 별 수 없다. 걷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사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 한동안 가슴을 짓눌러오던 고민 한 조각은 해결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40분가량 걷다보면 어느새 서우재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전망대 2.5Km(65분)/ 추암마을 2.8Km(48분)/ 길 없음). 서우재에서는 임도의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붙어야 한다. 비록 이정표에 붙어있던 전망대 표지판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지만, 임도 방향의 표지판에 길 없음이라고 적혀있으니 참조하면 될 일이다. 서우재 고갯마루에 가까워지면서 오른편 사면(斜面)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가끔 보이지만 개의치 말고 진행하면 된다. 능선으로 오르는 지름길이지만 구태여 산행을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능선산행이 시작되면 조망(眺望)은 왼편으로만 열린다. 왼편의 사면(斜面)은 조림지(造林地)로서 편백나무의 크기가 어른의 키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오른편은 빼꼭하게 들어찬 참나무들이 시야(視野)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우재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능선에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전망대 1.5Km(35분)/ 서우재 0.5Km(10분), 추암마을 3.3Km(56분)>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오른편으로 등산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아까 서우재로 올라오면서 보았던 지름길로 들어섰을 경우, 이곳으로 올라오게 된다. 시야(視野)가 뻥 뚫린 왼편으로 고창의 들판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다.
▼ 너른 고창들판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고창-담양간 고속도로를 보여주는 것을 끝으로 왼편도 시야(視野)가 가려버린다. 이후부터 능선은 고저(高低)의 차이가 거의 없는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가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잠깐이면 끝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이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능선을 걷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머릿속에 든 궁금증의 크기 또한 커져간다. 축령산 하면 편백나무 숲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고, 나 또한 편백나무 숲을 걷기 위해 찾아왔건만, 막상 편백나무 숲은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 축령산 정상에 가까워오면서 능선의 경사(傾斜)가 점점 가팔라지고, 산길의 주변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의 숫자 또한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곳의 바위는 유난히도 하얀 것이 우리가 평소에 보아온 여느 바위들과는 사뭇 다르다. 바위들의 생김새도 제법 기기묘묘(奇奇妙妙)하기 때문에 가슴에 담노라면 짧은 오르막길 정도는 금방 지나가 버린다.
▼ 서우재를 출발한지 5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100평도 더될 정도로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이층으로 지어진 정자와 무인산불감시탑, 그리고 이정표와 의자, 산행안내판 등 제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만, 유독 정상표지석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등산보다는 편백나무 숲을 보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정상의 이정표 #1 : 추암마을 5.3Km(106분)/ 숲 치유센터 0.6Km(12분)/ 조림성공지 1Km(20분), 이정표 #2 : 안내센터 0.6Km/ 금곡안내소 1.7Km)
▼ 정상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정자(亭子)에 오르지 않고는 조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이층으로 된 정자에 오르면 갑자기 시야(視野)야 뻥 터진다. 내장산과 백암산이 멀리서 실루엣처럼 펼쳐지고, 반대편의 고창 벌판 뒤편으로는 태청산과 장암산 그리고 불갑산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발아래에 깔려있는 산기슭에는 그렇게도 고대했던 편백나무 숲이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 하산은 이정표가 표시하고 있는 금곡안내소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왔던 길과 마찬가지로 고저(高低)의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길가에 하얀 바위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상에서 금곡마을 갈림길인 임도(林道)까지의 구간을 ‘건강 숲길’이라고 부른다. 축령산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침엽수림으로 소문났지만 정작 건강숲길은 산죽과 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숲길’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간단해진다. 능선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다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능선의 경사는 완만(緩慢)하지만, 금곡마을 갈림길에서 능선으로 붙으려면 경사(傾斜)가 가파른 오르막길이 제법 길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려면 산책은 당연히 등산으로 변할 것이고, 그 뒤에 건강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일 것이기 때문이다.
▼ ‘건강 숲길’을 걷다보면 다른 산에서는 보지 못한 시설물이 눈에 띈다. 갈림길에 세워 놓은 정자가 바로 그것이다. 한 개의 기둥 위에 둥그런 초가지붕을 얹은 것이 흡사 우산을 빼다 닮았다. 나름대로 운치(韻致)가 있어 보이는 게 축령산의 이미지까지 한층 업그레이드(upgrade)해 주고 있다. 조그만 것에 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우리는 것을 마다 않는 산림청관계자들에게 찬사를 보내드린다.
▼ ‘건강 숲길’을 걷다가 첫 번째 갈림길(이정표 : 금곡안내소 0.7Km/ 고 임종국선생 수목장 0.6Km/ 안내센터 1.6Km)에서는 직진, 두 번째 갈림길(이정표 : 금곡안내소 0.5Km/ 안내센터 1.8Km)에서는 오른편의 금곡안내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에서부터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길이 조금만 거칠어도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고, 거기다 내리막길의 거리도 짧기 때문이다.
▼ 참나무와 산죽 등 잡목(雜木)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오늘의 주 메뉴인 편백나무 숲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산길이 다시 능선 위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 쭉쭉 뻗은 편백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잘 빠진 미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름드리나무가 군살 같은 곁가지 하나 없이 미끈한 몸통 줄기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편백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常綠樹)다. 상록수 숲은 푸름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있는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위용(偉容)은 대단하다. 구불구불한 길과 망망한 나무가 만들어낸 바다(樹海), 마치 외국에서나 볼 법한 풍광(風光)을 보여주고 있다. 그 덕분인지 축령산 숲의 아름다움은 이미 여러 차례 공인을 받았다. 산림청이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으로 지정했고,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도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한 사람의 선각자(先覺者)가 품었던 꿈이, 현실로서 이루어져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기운에 이내 정신이 맑아진다.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다. 모든 나무는 피톤치드를 발산하지만 그 양(量)에는 차이가 있다.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2배 이상 많고, 침엽수 중에서도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가장 많다. 전국의 삼림욕장 중 이곳을 첫 번째로 꼽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삼나무는 상록수인데요.’ 능선에 즐비한 낙엽송(落葉松:일본이깔나무)을 보고 삼나무라고 했더니 여동생이 바로잡아준다. 축령산에 오기 전에 취득한 사전정보에는 이곳 축령산의 조림지(造林地)에는 편백나무와 삼나무만 있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낙엽송이라고 추측했던 내 판단을 뒤집은 결과는 참으로 무참했다. 졸지에 무식이 탄로나버린 것이다.
▼ 낙엽송 숲이 끝나면 화장실과 조그만 초소를 갖춘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의 임도를 따라가면 영화 '태백산맥'과 '서편제'의 촬영지였던 금곡영화마을로 가게 된다. 물론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려면 임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산악회에서 바닥에 깔아놓은 쪽지에는 임도를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설 것을 지시하고 있다. ‘하늘 숲길’을 따라 전망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보니, 숲길을 온통 신갈, 상수리, 졸참, 굴참나무 등 활엽수림(闊葉樹林)이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앙상한 나뭇가지 외에는 볼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구태여 삭막(索莫)한 겨울풍경을 보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편백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것이 났다 싶어 그냥 뒤돌아 나와 버린다.
* 금곡 영화마을, 영화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 그리고 드라마 ‘왕초’의 배경이 됐던 초가 마을이기 때문에, 꼭 산행과 연관을 짓지 않더라고 한번쯤은 시간을 내 둘러볼 만한 곳이다. 20여 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인데, 아직까지도 전형적인 시골 풍경(風景)을 지니고 있다. 아니 요즘에는 조금 변했다고 한다. 축령산이 개발되면서 길바닥은 정갈하게 포장되었고, 축령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들릴만한 음식점과 찻집 등이 들어섰다. 덕분에 오지(奧地)라는 느낌은 다가오지 않지만, 봉우리를 배경삼고 다랑논을 낀 풍경(風景)은 여전히 산촌마을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자연과 마을이 한 단위의 공간(空間)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금곡마을 갈림길에서 휴양림안내소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숲내음 숲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들어서면 눈이 번쩍 뜨인다. 길가, 아니 산 전체가 편백나무와 삼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아름드리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았다. 눈만 호사(豪奢)를 누리는 게 아니다. 눈에 뒤질세라 코끝을 흐르는 짙은 솔향기를 닮은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져 온다. ‘숲내음 숲길’은 따로 산행기가 필요 없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오른편이나 왼편에 길이 보이면 무조건 내려가 보면 된다. 웬만큼 구경하다가 되돌아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숲길을 넓고 반반하다. 평탄한 임도(林道)는 자동차로도 오갈 수 있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삼림욕(森林浴)을 겸해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기 위해 만들었던 임도가 지금은 훌륭한 산책로(散策路)가 되었으니, 천천히 걸으면서 임종국 선생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드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마음으로 숲속을 걷다보면, 다른 숲에서보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장성 치유의 숲(산림청 운영)’은 국내 3대 ‘산림(山林) 치유센터’중 하나이다. 편백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국내 최대의 난대림(暖帶林) 조림지(造林地)이기 때문에, 삼림욕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이다. ‘장성 치유의 숲’에는 암환자 등 질병(疾病)의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피톤치드(phytoncide)가 식물이 병원균이나 해충, 곰팡이 등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分泌)하는 물질로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stress)가 해소되고 장(腸)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殺菌)작용까지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머지 두 곳은 횡성의 청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숲체원(한국녹색문화재단 운영)’과 양평의 용문산 자락에 위치한 ‘산음(山陰) 휴양림(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운영)’이다.
▼ ‘치유의 숲’에서의 치유(治癒)는 본래 자연요법이나 대체요법에서 사용하던 어휘다. 서양의학의 ‘치료(Treatment)’와 구분되는 의미로 ‘테라피(Theraphy)’ 또는 ‘힐링(Healing)’의 번역어였다. 한데 요즘엔 힐링으로 통일되는 분위기다. 올해 서점가를 달군 힐링 서적은 말할 것도 없고, 힐링투어나, 힐링캠프, 심지어는 힐링푸드나 힐링무비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힐링을 팔고 있다. 테라피가 아니라 힐링으로 정리되면서 요즘 치유는 위안에 가까운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여행이나 레저에서도 힐링이 대세(大勢)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힐링 열풍인데 그중에서도 유독 산림청이 더욱 열심인 것(오늘 찾는 치유의 숲도 산림청에서 운영하고 있다.)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에코힐링투어(Eco-Healing Tour)가 숲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지만, 면역력 증대 등 숲이 지닌 치유 기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월등하기 때문이다.
▼ 우람한 편백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간혹 '치유필드'가 보인다. 편백나무 아래에는 곳곳에 평상을 만들어 놓았다. 제법 추운 겨울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위에 드러누운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 피톤치드를 이용해서 병든 몸을 치료하고 있는 모양이다. 축령산 ‘치유의 숲'에는 봄, 여름, 가을철뿐만 아니라 겨울철까지도 매일 아토피나 천식 환자는 물론 암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꼭 '치유필드'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비록 텅 비어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숲속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삼삼오오 자리를 깔고 앉아,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피톤치드에 일상에서 지친 자신들의 심신(心身)을 내맡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숲의 이름이 .치유의 숲‘인 것이다.
▼ 한때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 신드롬에 빠진 때가 있었다. 몸에 좋은 여행, 몸에 좋은 음식 등등, 그러나 그 웰빙에서는 서민들이 넘보기 어려운 ‘고급스러움(Luxury)’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화두인 힐링(Healing)에는 고급스러움보다는 일상에서 지친 서민들의 피난처라는 느낌에 더 가깝다. 경쟁에 몰리고 일상에 찌든 서민들이 치유를 위한 몸부림이 곧 힐링인 것이다. 그리고 그 피난처 중의 하나가 오늘 찾은 장성의 ‘치유의 숲’이다. 요즘에는 고단한 심신(心身)을 달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불황이라는 의류업계에서도 레저용품 만은 호황이라는 뉴스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산을 오르기에 힘이 부치는 사람들은 산 아래에 있는 숲이라도 찾는다. 그들은 숲속을 걸으면서 세파(世波)에 지친 심신을 치유(Healing)하기를 원한다. 숲의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人體)의 면역력(免疫力)을 높이고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물질이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을 의미하는 피톤(phyton)과 살균력을 의미하는 치드(cide)의 합성어로 숲 속의 향긋한 냄새를 만들어 낸다. 피톤치드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말초 혈관을 단련시키며 심폐 기능을 강화시킨다. 기관지 천식과 폐결핵 치료, 심장 강화에도 도움이 되고 피부를 소독하는 약리 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톤치드의 효과는 산 중턱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리고 삼림욕(森林浴)은 일사량(日射量)이 많고 온도와 습도가 높은 시간대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 ‘치유의 숲’을 걷는 일은 일정한 격식(格式)이 없다. 아니 구태여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숲길을 걸으며 오감(五感)을 일깨워 몸과 마음을 치유하면 된다. 그냥 걷다가 심심하면 그곳에서 숲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거나, 그것이 싫다면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숲을 바라보아라. 그저 쉬는 것으로도 치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내음에 취하다보면 어느새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어서 오라고 팔랑이는 침엽수림의 푸른 손짓도 정겹기 그지없다. 넘치도록 쏟아지는 피톤치드(PhytonCide)에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진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서너 곳뿐인 단조로움이 차라리 여유로워서 더 좋다.
▼ ‘숲내음 숲길’을 걷다보면 나무로 테크를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보자 ‘습지원(濕地院)’이라는 습지도 만날 수 있고,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가장 밀집된 지역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에 효과를 주는데 특히 녹시율(綠視率)이 높을수록 정서적 안정감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계곡물소리 등 소리가 쾌적감과 평안감을 주고, 나뭇잎으로 필터링된 간접 햇빛은 비타민D 합성에 기여하고 세로토닌을 잘 분비시켜 활력과 생기를 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숲을 찾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효과를 알고도 숲을 찾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 얼마 전 산림청에서 발표한 ‘산림치유 효과에 대한 연구’를 보면 숲이 갖고 있는 치유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제대 서울백병원과 국립산림과학원의 공동연구에서 우울증 환자에게 4주간 산림치유를 실시했더니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고 한다. 또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혈압이 9.6㎜Hg(수축기)~4.5㎜Hg(확장기) 낮아졌고, 소아(小兒)아토피(atopy) 환자도 진단 척도가 평균 7점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심장박동, 혈압은 낮아지고 면역세포는 증강되는 등 건강 회복에 숲이 대단한 효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숲이 가진 다양한 치유(治癒:Healing) 인자(因子) 덕분이라고 한다. 숲은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경관, 소리, 햇빛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돼 심신(心身)에 평안함과 쾌적감을 준다고 한다. 가령 숲에 풍부한 피톤치드의 주성분은 테르펜(terpene)이라는 유기화합물인데 들이마시면 심신에 상쾌함을 주고 피로회복을 촉진시킨다. 음이온은 뇌파의 알파파를 증가시켜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숲속에 풍부한 산소도 신진대사와 뇌의 활동을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그런 산소의 농도(濃度)가 도시 공기 중에는 20.9%이나, 산림에는 이보다 1~2% 더 많다고 하니, 숲은 자연스레 치유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장성의 편백나무는 모두가 잘생겼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20m정도, 위를 향해 쭉쭉 잘도 뻗어 올랐다. 위를 보려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이다. 수십 년 묵은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수백만 그루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단일 군락지로 국내 최대 규모의 숲이라고 한다. 지금 걷고 있는 편백나무 숲길은 그 옛날 홍길동이 숱하게 걸으면서 다니던 길이란다(장성군의 주장). 그렇다면 당시에 홍길동은 별 볼일이 없는 길에서 수련을 쌓았었나 보다. 당시에는 이렇게 멋진 편백나무 숲이 아닌 소나무나 참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장성군은 요즘 홍길동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 실존(實存)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일고있던 홍길동을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주장하더니, 최근에는 모든 홍길동 캐릭터와 상표권까지 소송과 등록을 통해 확보해 놓고 있다. 홍길동 생가(生家)터를 복원(復原)한 것도 모라자, 대단위 홍길동 테마파크까지 조성했으니 장성 땅이 온통 홍길동판인 것이다.
▼ 숲은 ‘병원’이다. 특히 바쁘고 치열하게 사느라 생채기가 난 도시의 환자들에게 효과가 크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숲에서 배출하는 피톤치드가 암이나 아토피, 천식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일본의 니혼의과대학에서도 같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편백나무가 가장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 이곳 장성의 축령산이고, 그래서 전국에서도 가장 삼림욕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언젠가 장성군에서는 우울증과 아토피에 특효약인 자오스민에 관한 발표를 한 일이 있었다.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이 흙길이 조성된 도내 휴양림(休養林) 6곳의 토양(土壤)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오스민 함유량 조사 결과, 장성 축령산이 136.1㎍/㎏ 로 도내 휴양림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지오스민(Geosmin)은 숲에 들어서면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흙냄새를 풍기는 탄소와 수소 그리고 산소로 만들어진 무색(無色), 무미(無味)의 천연물질로써, 방성균에 의해 부엽토(腐葉土)가 쌓인 토양의 상층에서 대부분 생성된다. 이 지오스민은 초조함이나 불안감을 완화해 정서적 안정을 통한 우울증 치유에 효과적이며, 면역력이 증가하고 피부세포도 건강해져 아토피(atopy) 진균을 없애는 자연항암제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뇌의 이완도와 활성화가 증가되고 집중도가 높아지는 반면,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 숲내음 숲길이 끝나면 임도의 왼편에 ‘휴양림 안내소’가 보인다. 안내소 건너편에 ‘고 임종국선생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장성 치유의 숲’은 조림왕(造林王)으로 불리는 고 임종국 선생(林種國 1915~1987)이 1956년부터 20년 동안에 걸쳐 조성한 편백, 삼나무 숲에 만들어져 있다. 1987년 선생이 작고한 이후, 2002년 산림청이 숲을 매입하고 2007년엔 체험의 숲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10년에 치유의 숲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쉼터가 있는 ‘하늘 숲길(2.7km)’, 축령산 주능선을 걷는 ‘건강 숲길(1.97km)’, S자 숲길이 아름다운 ‘숲내음 숲길(2.2km)’, 고 임종국 선생을 수목장한 나무가 있는 ‘산소숲길(1.9m)’ 등 4개의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되어 있다.
* 산림청은 임씨를 ‘숲의 명예전당’에다 모셨다. 그가 남기고 간 숲에 기념비도 세웠다. 산림청은 고향(순창)의 선산에 모셔져 있던 그의 유골을 이곳으로 옮겨와, 축령산 중턱의 한 그루 느티나무 아래에다 수목장(樹木葬)을 했다. 임씨는 죽어서도 나무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추곡마을(원점회귀)
휴양림 안내소를 나와 200m쯤 내려가면 차량 통행을 막을 목적으로 만든 차단기(遮斷機)가 나타나고,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추암마을 주차장은 임도를 따라 1.5Km 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시멘트포장도로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기 쉬운 코스이다. 이럴 때에는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아직까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붉은 감이나, 흐드러지게 핀 꽃을 연상시키는 피라칸타(firethorn)의 핏빛 열매를 감상하며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산이야기(전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들이 연출하는 파노라마와 함께하는 산행, 금오도 대부산('13.4.13) (0) | 2013.04.18 |
---|---|
한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또 하나의 금강산-만대산('13.1.13) (0) | 2013.01.21 |
원불교의 영산성지를 끼고 있는 구수산('12.11.25) (0) | 2012.11.28 |
바위 벼랑에 제비집 같은 보리암을 매달고 있는 산, 추월산('12.11,3) (0) | 2012.11.07 |
동악산의 산군이면서도 별개의 산으로 취급받는 최악산('12.8.11) (0) | 201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