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靈鷲山, 418m)-진례산(進禮山, 510m)

 

산행일 : ‘12. 4. 11(수)

소재지 : 전남 여수시 상암동과 삼일동의 경계

산행코스 : GS칼텍스 여수공장 앞→진달래군락능선→진례산→시루봉→진달래군락→영취산→ 원동천계곡→흥국사(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우리나라의 꽃들을 이야기할 때, 진달래를 빼놓고는 얘기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산하(山河)에는 진달래가 많은 분포되어 있고, 화전놀이 등 우리네 조상들의 일상생활에서까지 친근(親近)했던 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周邊)에는 글이나 노래, 그리고 갖가지 설화(說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수의 영취산 진달래는 그 어느 산(山)보다 곱고 화사하다. 키 작은 나무 수만 그루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으며, 곳곳에 무리를 지어 피어난 진달래는 큰 산 군데군데에 분홍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 영취산은 흥국사가 창건(創建:1195년)되기 훨씬 이전인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견훤, 김총, 박영규 3인이 후백제(後百濟) 건국을 도모하고 세력을 규합했던 발상지(發祥地)이다. 그리고 김총이 고려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리다 이곳에서 생(生)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죽어서 영취산의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됐고,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성황제를 올리기 시작했고 전한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견훤과 김총은 신라 장수로 서남해방위(防衛)에 파견돼 근무하였고, 거기에다 박영규는 순천의 재력(財力)이 풍부한 호족(豪族)이었으니 이들의 만남은 숙명적(宿命的)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들은 ‘순천 견씨(견훤)’, ‘순천 김씨(김총)’, ‘순천 박씨(박영규)’의 시조이다.

 

 

산행들머리는 여수산업단지(産業團地)의 GS칼텍스 정문 앞 임시주차장

순천-완주간고속도 동순천 I.C를 빠져나와 17번 국도(國道/ 여수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산단(産團) 육교(陸橋) 앞’ I.C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여수산업단지(産業團地 : 옛 여천화학단지)로(路)를 따라 들어가면 GS칼텍스(GS-CALTEX Corporation) 여수공장(石油 精製施設)이 나온다. GS정유 정문 건너편에는 널따란 주차장(駐車場)이 만들어져 있다. 주차장 바닥에 깔린 자갈이나 막걸리와 갓김치 등을 팔고 있는 간이천막들을 볼 것 같으면, 아마도 며칠 전에 열렸던 ‘진달래 축제’ 행사를 위해 임시(臨時)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주차장에는 수많은 인파(人波)들로 북적이고 있다. 진달래의 만개(滿開)시기에 맞춰 전국에서 찾아든 사람들이다.

 

 

 

산행은 주차장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입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林道)를 따라 얼마간 올라가면 왼편에 널따란 공터가 보인다. 제단(祭壇)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이 진달래 축제(祝祭)가 열리는 장소인 모양이다.

 

 

 

진달래축제장에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진달래 꽃등 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첫 번째 이정표(영취산 진례봉정상 1.1Km/ 골명재 0.5Km/ 돌고개 주차장 0.8Km)를 만나게 된다. 왼편에서 올라오는 길은 골명재 방향이다. ‘진달래 꽃등 길’에 올라서면 온산이 붉게 물든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절경(絶景)이다. 영취산 정상에서 뻗어 내린 수만 평의 능선을 따라 연분홍 꽃솜을 뿌려놓은 듯한 모습에 감탄사만 나올 따름이다. 꽃을 기리는 축제(祝祭)는 대개 그 꽃의 개화(開花)시기에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 영취산의 진달래 축제(4.5~8)가 지난주에 열렸으니 3일이 지난 지금이 가장 절정(絶頂)에 이르는 시기일 것이다.

 

 

‘진달래 꽃등 길’ 삼거리에서부터는 좌우로 시원스레 전망이 열린다. 오른편 발아래에 GS칼텍스 여수공장이 보인다. 석유 정제(精製)시설과 거대한 원유(原油) 저장탱크가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동네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지만,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시설을 부조화라는 미명(美名)하에 비난하는 것은 차라리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가 작은 바위 턱으로 올라서면 드디어 진달래 터널에 들어서게 된다.

 

 

 

 

‘워메(’아이, 참‘을 뜻하는 전라도 지방의 감탄사) 불나 부렀네!’ 온통 붉게 물든 능선은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꽃 속에 들면 다들 꽃으로 변하는 것일까? 까르르 까르르 내지르는 웃음소리들이 하나같이 해맑다. 다들 20대 꽃띠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모두들 나이를 잊고 진달래 꽃무더기 속으로 들어가 예쁜 포즈를 잡으며 추억(追憶)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영취산의 진달래는 암팡지다. 나무들이 어른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웃자랐지만, 빽빽하고 촘촘히 들어차 있기 때문에, 온통 산을 꽃들이 둘러싸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다. 진달래나무 사이로 난 길은 꽃으로 만든 터널이다. 산 아래에서 보면 꽃이 만들어낸 동굴(洞窟)을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능선에는 온통 진달래로 만든 융단이 펼쳐져 있다. 연분홍 여린 꽃잎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진달래 꽃물결이다. 진달래 숲길에 들어서면 꽃 속에 파묻힌다. 어른의 키보다 더 훌쩍 큰 진달래나무가 만들어내는 꽃길을 들락거리는 집사람의 뒷모습이 더 이상 고울 수가 없다.

 

 

진달래 군락지 능선에서 바라본 457봉

 

 

붉게 타오르고 있는 진달래꽃 터널을 따라 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뾰쪽하게 솟은 바위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원상암 가는 길과 나뉘는 457m봉이다(이정표 : 영취산정상 0.6Km/ 골명재 2.2Km/ 돌고개 주차장 1.3Km). 진행방향에 진례봉으로 가는 길이 일직선으로 펼쳐지는데, 한 가운데에 바위봉우리인 개구리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457봉에서 바라본 진례봉 방향 능성, 가운데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개구리바위이다.

 

 

헬기장을 지나면 계단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인 개구리바위기 앞을 가로막는다. 우회(迂廻)하는 길도 있으나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다. 튼튼한 철계단이 설치되어있어 오르내리는데 조금도 위험(危險)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하여 개구리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은 자못 빼어나다.

개구리바위 위에서 바라본 457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개구리바위

 

 

계단을 내려서서 진례봉 정상까지 오르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송신탑(送信塔)이 서 있는 바위 봉우리인 정상 한 가운데에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뒤편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이곳에서 성황신(城隍神)을 모셨다고 하던데 제단(祭壇)은 어디쯤 있었을까? 정상에 서면 사통팔달 시원하게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을 조금 더 편하게 감상하라는 배려인지, 남(南)과 북(北) 양쪽에 나무데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와 광양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수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니 당연히 조망(眺望)이 뛰어날 것이다. 직선의 해안선(海岸線)이 눈길을 붙잡는다. 여수공단의 간석지(干潟地)가 모두 공장용지로 개발된 덕분이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에 놓인 바다는 마치 갓잡은 생선의 비늘마냥 반짝이고 있다.

 

 

 

 

정상에서 봉우재로 내려서는 길은 송신탑의 오른쪽으로 열린다. 송신탑 옆에 이정표(흥국사 2.4Km, 도솔암 0.2Km, 봉우재 0.4Km/ 돌고개 주차장 1.9Km/ 중흥동 3.1Km)가 세워져 있으니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은 먼저 침목(枕木) 계단을 2~3분 정도 내려선 뒤, 이어서 가파른 철계단길을 5분 정도 더 내려가게 된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의 왼편 언덕위에 등산객의 뒷모습이 어른거리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동굴(洞窟) 하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수십 명이 들어갈 만큼 널찍한데도 아무런 설명이 없다.

 

 

 

 

동굴 아래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도솔암 입구다. 시멘트로 엉성하게 만든 계단의 양옆으로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山竹)이 천연(天然)의 울타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절벽(絶壁)의 중턱에 올라앉은 도솔암은 비좁은 터에 비해 꽤 많은 전각(殿閣)들이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에 바람이 많은 탓인지 특이하게도 전각의 앞면을 유리로 막아 놓았다. 도솔암은 고려중엽 보조국사가 창건한 흥국사의 산내암자(山內庵子) 14곳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암자이다. 이 암자는 예부터 영험(靈驗)있는 기도도량(祈禱道場)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비구니스님 한분이 기거하면서 정진(精進)하고 있다고 한다.

 

 

 

도솔암에서 되돌아 나와 지루한 침목(枕木) 계단을 7~8분 정도 내려서면 봉우재다. 도솔암에서 봉우재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 숫자가 831개라고 한다. 암자(庵子)로 이어지는 산길이니 물론 108계단도 있을 것이다. 속세(俗世)에 찌든 중생(衆生)들은 이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며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을 것이다. 무엇인가로 다시 채우고 싶다면 먼저 비우는 것이 반드시 선행(先行)되어야 하니까. 그러한 마음자세(姿勢)라면 계단을 오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수행(修行)이며, 또 다른 정진(精進)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봉우재는 사거리로서 오른쪽으로 가면 흥국사로 가게 되고, 왼편의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골명치를 지나 돌고개입구가 나온다. 물론 영취산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봉우재 이정표 : 영취산 정상 0.6Km/ 흥국사 2Km/ 호명동 사근치 2.3Km, 영취산 시루봉 0.4Km/ 돌고개 임도입구 2.8Km)

봉우재 4거리

 

 

봉우재에서 진행방향으로 난 계단을 밟고 오른다. 또 다시 진달래 꽃밭이 펼쳐지고 있다. 길 좌우(左右)를 진달래가 빼곡히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바위를 타고 오르는 비탈진 오르막길의 바위 곳곳에 분홍색 치마를 두르고 있는 진달래가 장관이다. 더욱이 이곳의 진달래는 때깔까지 곱다. 꽃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면 너른 터가 나타나고 '영취산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다. ‘영취산이란 이름의 유래(由來)는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說法)했던 인도의 영취산과 산의 모양이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와 ‘439봉과 510봉을 아울러 영취산으로 통용(通用)되어왔으나 최근 옛 지명(地名) 찾기의 일환으로 진례산과 영취산으로 나눠 부른다.’라는 얘기가 적혀 있다.

 

전면에 보이는 봉우리가 시루봉

시루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진례봉

 

 

영취산 안내판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6~7분 정도 더 오르면 바위봉우리인 시루봉에 올라서게 된다. 시루봉은 조망(眺望)도 뛰어나지만 우람한 근육질의 암릉과 암벽(巖壁)의 사이마다 꽉 들어찬 진달래꽃이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어 바라보는 이의 눈을 호사(豪奢)를 누리게 만들어 준다. 이곳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題). 남해 바다의 이름 모를 섬들이 올망졸망하고 바다 건너편의 산 그림자도 손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시루봉에서 영취산으로 가는 길은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살짝 방향을 튼 후, 바위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시루봉을 내려서서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진달래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본 군락지(群落地)보다는 밀도(密度)가 약간 옅은 편이다. 그러나 푸른 빛 감도는 소나무와 분홍빛 진달래가 어울리는 눈요깃거리를 즐기는 재미는 있다. 진달래터널을 벗어나 작은 봉우리 두어 곳을 넘으며 15분 정도를 걸으면 이내 영취산 정상이다. 돌탑 10여 기(基)가 서있는 영취산 정상은 밋밋한 능선상의 한 지점이다. 까딱하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봉우리답지 않을뿐더러, 119 표지판 외에는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어떠한 표시도 발견할 수가 없다.

< 시루봉에서 바라본 영취산 방향 능선 >

 

 

 

두견새가 울면 일제히 흐드러지게 피어난다는 진달래, 아직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미 영취산은 꽃의 사태를 이루고 있다. 조그마한 아기진달래에서 크게는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참꽃까지, 온 산등성이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연분홍 진달래는 비탈에서만 타오르는 게 아니고, 바위에서도 타올라 온 산을 불태우고 있다. 사방팔방에 분홍빛 불길로 치솟는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영취산 정상

영취산 정상의 돌탑 : 119구조지점 표시목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영취산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호랑산으로 가는 길이고, 흥국사로 가려면 오른편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돌탑 두어 기(基)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다. 걷기에는 편하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를 걷다가 진행방향 전면에 보이는 암봉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원동천계곡으로 내려서게 된다. 암팡진 경사(傾斜)의 너덜길을 20분 정도 힘겹게 내려서면 원동천계곡이다. 원동천계곡은 그 길이가 그다지 길지는 않지만, 진례산과 영취산이 흙산으로 이루어진 탓인지 수량(水量)은 의외로 풍부하다. 흥국사를 조금 남겨둔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의 바위틈에서 여울지며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앗 차거! 맨발로 물속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라 뛰쳐나오고 만다. 그래도 좋다. 지금은 황홀한 아름다움의 봄이니까...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며 내려선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 주변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새로운 생명(生命)이 움트고 있다. 새 순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맞다. 그러고 보니 신록(新綠)의 계절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결코 매섭지 않은 것은, 이미 꽃소식을 듬뿍 안은 봄바람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곡이 끝날 즈음 전통(傳統)의 홍교(虹橋)를 닮은 다리 하나가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다리를 건너면 벚꽃 그늘 아래에 흥국사가 한가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서 막걸리를 시음(試飮)해 보라며 붙잡는 젊은이들을 보고 집사람이 의아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사찰입구에서 막걸리를 권하고 있으니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유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임을 알아야 한다. 저 젊은이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실 때, 안주로 갓김치를 함께 먹어보고 맛이 있을 경우에는 한 박스쯤 사가라는 간절한 염원(念願)이기 때문이다.

 

 

 

흥국사(興國寺,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8호), 고려 명종 25년(1195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창건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승군(僧軍)의 거점으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법당(法堂)과 요사(寮舍 :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그리고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가 소실(燒失)되었는데, 인조 2년에 계특대사(戒特大師)가 건물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보유 문화재(文化財)로는 대웅전(보물 제396호)과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578호),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 등이 있다. ‘나라가 흥(興)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로 호국불교(護國佛敎)와 연관이 깊은 사찰이다.

 

 

산행날머리는 흥국사 앞 주차장

흥국사 입구에는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기 있다. 화사한 차림으로 들놀이를 나온 젊은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얼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밝은 미소들이 활짝 핀 벚꽃만큼이나 아름답다. 흥국사 앞에서 일주문(一柱門)까지의 벚꽃 터널은 그다지 길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주변풍경은 갑자기 변해버린다. 속세(俗世)의 한 복판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일주문 밖은 일렬로 임시(臨時)천막이 죽 늘어서 있고, 갓김치를 파는 호객꾼들의 외침소리가 요란하다. 하나같이 막걸리로 사람들을 유인(誘引)하고 있으니 속세(俗世)의 한 가운데임이 분명할 것이다. 일주문 앞 광장에서 왼편에 보이는 홍교(虹橋 : 보물 제563호)를 건너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이 보인다.

 

 

 

통명산(通明山, 764.8m)

 

산행일 : ‘12. 2. 25(토)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 오곡면, 석곡, 죽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용계마을→바람재→남봉(우회)→통명산→북릉→구성신풍재 갈림길→괴티재 갈림길→당고개(구성재)(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요즘 사람들의 화두(話頭)인 웰빙(well-being)을 찾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산이다. 통명산 산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웰빙(well-being)산행 외에는 딱히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온통 소나무로 우거져있기 때문에 산행 내내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무한정(無限定)으로 선물하고, 골이 깊지 않은 능선은 오르내리기에 힘들지가 않을뿐더러, 거기에다 솔가리(소나무 낙엽)가 수북이 쌓여있어 푹신푹신하기가 양탄자보다 한 수 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산 자체의 아름다움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삼기면 금계리 용계마을

호남고속도로 곡성 I.C을 빠져나와 27번 국도(國道/ 순천방향)를 타고 잠깐 달리다가 삼기면 경악리에서 왼편 통명산길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금계리 용계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참고로 이번에 안전산악회에서 선택한 88고속도로 순창 I.C를 통해 들어오는 방법도 있으나, 거리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는 않다. 용계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전면에 통명산의 전경(全景)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명산이 곡성의 최고봉(765m)이라면 결코 낮은 산이 아닐 터인데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곳 용계마을의 고도(高度)가 제법 높은 때문일 것이다.

 

 

용계마을로 향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초가(草家)로 지어진 아담한 정자를 지나서 조금 더 걷다가, 마을 조금 못미처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외딴 농가(農家)로 가는 농로로 접어든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 아래에는 소담스런 연못이 있다. 농가를 지나 통행(通行)을 못하도록 막아놓은 대나무 금(禁)줄을 넘은 후, 맞은편에 보이는 산으로 접어든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들머리는 별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듯,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묘(墓) 두어 기(基)를 지나면 차량(車輛)이 지나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임도(林道)를 만나게 된다. 용계마을을 통과하는 코스를 선택했더라만 아마 이 임도로 올라왔지 않았을까 싶다. 임도를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고갯마루에 이르게 된다. 바람재로서, 옛날 용계마을 사람들이 방계리에 일보러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개이다.

 

 

 

바람재에서 등산로는 왼편(동북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비록 이정표는 보이지 않으나, 능선 위에서 높은 곳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생각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능선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적송(赤松)들로 가득 차 있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에다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폭신폭신한 흙길은 마치 고향의 뒷산을 걷는 듯하다. 솔향 그득한 숲길이니 당연히 삼림욕장(森林浴場)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버스에서 시달린 긴 여정의 피로(疲勞)는 피톤치드로 가득채운 포만감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지 이미 오래이다.

 

 

 

산길은 초입(初入)부터 온통 소나무 일색, 솔가리(소나무 落葉)들이 수북이 쌓여있어 폭신폭신하기가 그지없다. 거기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걷기에 조금도 부담이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하나, 얼마나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마침 하산까지 주어진 시간까지도 넉넉하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코끝에 맴도는 솔향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솔향에 얹힌 피톤치드 때문인지 머릿속까지 상쾌해 진다.

 

 

 

산행을 시작하지 한 시간 가량 지나면 높다란 봉우리 하나가 진행방향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남봉(南峰, 754봉)이다. 남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은근히 기(氣)를 죽이나, 다행이도 산길은 우회(迂廻)길도 준비해 놓고 있다. 망설임 없어 우회하면 반대편 능선의 안부 사거리에 닿게 된다.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왼편은 남봉,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통명사, 그리고 통명산 정상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이정표 : 금계마을 2.2Km/ 통명산 정상 0.5Km/ 통명사 1.1Km)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뭇잎까지 온통 하얀 색으로 덧칠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온통 하얀 세상으로 뒤바뀌어있다. 나뭇가지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는 것이다. 상고대(rime)이다. 겨울산이라고 해도 흔하게 볼 수 없다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오늘 산행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안부사거리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널따란 헬기장, 당고개로 향하는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구성신풍재 방향)을 따라 이어진다(이정표 : 통명산 정상 0.1Km/ 구성신풍재 2.3Km/ 통명사 1.5Km). 그러나 통명산 정상은 주능선에서 100m쯤 벗어난 지점에 있기 때문에 잠깐 다리품을 더 팔아야만 정상을 밟을 수 있다. 헬기장에서는 주변의 산군(山群)들이 잘 조망(眺望)되지만 흐릿한 날씨 탓에 어느 산인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헬기장에서 산죽(山竹)으로 둘러싸인 ‘산불 감시탑’을 지나면 이내 통명산 정상이다. 정상은 3평 남짓한 봉우리, 한쪽 귀퉁이에 닭의 벼슬을 닮은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높이가 1.5m쯤 되는 반반한 바위 위로 올라서면 사방이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트이고 있다. 인근의 동악산과 곤방산, 남원의 고리봉, 그리고 날씨만 좋다면 지리산과 무등산까지도 보인다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린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바위를 지나 능선의 막바지에 서면 겨우 헬기장 옆의 남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상표시석은 바위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정도 지났다.

 

 

 

 

 

곡성 8경(八景) 중의 하나인 통명숙우(通明宿雨)의 통명(通明)이라 함은 이곳 통명산을 지칭(指稱)하고 있다. ‘비구름이 자고 간다.’는 의미의 숙우(宿雨)는 그만큼 이 봉우리가 인근에서 제일 높기 때문에 비구름까지도 수월하게 이곳을 넘지 못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정도로 높은 곳이라면 당연히 시야(視野)가 시원스레 열릴 것이건만, 찌푸린 날씨 탓에 조망(眺望)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기만 하다. 참고로 통명산이라는 이름은 산 아래에 있는 통명사라는 절에서 유래(由來)되었다고 전한다.

 

 

 

 

 

헬기장 삼거리에서 구성신풍재 방향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또 하나의 헬기장이 나온다. 철지난 억새로 뒤덮인 헬기장을 지나 구성신풍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삼기금반3.7km/ 구성신풍재1.7km/ 통명사2.1km)까지의 600m 구간은 참나무 일색(一色)의 숲이 이어진다. 참나무 아래에는 진달래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소나무들이 보내주는 피톤치드의 기운이 사라진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대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매워주고 있다. 참나무와 진달래나무 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상고대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와! 매화꽃이 활짝 피었네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신랑의 곁에서 정서해 주기를 십(十)하고도 여러 해, ‘당구삼년 음풍월(堂狗三年 吠風月)’이라고 어느새 집사람의 표현도 문학적(文學的)으로 변해 있다. 그래 그녀의 말마따나 나뭇가지에 하얗게 피어난 상고대가, 매화꽃밭을 닮아있다. 그날 광양의 매화농원에서 바라보던 매화꽃은 서럽기까지 했다. 바람결에 흩날리던 꽃잎은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감돌았다. 저 숲에 바람 한 점이라도 불라치면 서러울 만큼 하이얀 눈 꽃잎 한 점, 하늘거리며 날아오를 것만 같다.

 

 

 

 

구성신풍재 갈림길에서는 삼기금반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해야 한다. 이곳에서부터는 등산로 주변은 또다시 소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간에 가끔 참나무 군락지들도 보이지만 대부분 소나무들 천하이다. 중간에 삼기금반 갈림길(이정표 : 삼기금반2.4km/ 괴티재3.3km/ 통명산2.0km)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괴티재 방향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삼기금반 갈림길을 지나 송전탑(送電塔)이 세워져 있는 봉우리를 넘으면 이번에는 괴티재 갈림길(이정표 : 괴티재 1.2km/ 통명산 3.5km/ 당고개 6.6km)이 나온다. 이 삼거리가 당고개까지 가는 오늘 산행의 중간지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이 지났다

 

 

 

 

 

 

 

괴티재 갈림길에서는 당고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뒤에 이곳을 찾아 올 사람들에게는 그냥 괴티재로 내려가라고 권하고 싶다. 곡성군청(郡廳)에서 신경을 써서 등산로를 정비한 덕택에 대부분의 산길은 비교적 뚜렷하지만, 일부 구간은 아직까지 정비를 하고 있는 탓에 경사(傾斜)도 심할뿐더러 잡목(雜木)에 시달리기까지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간혹 참나무군락지(群落地)도 보이나 소나무가 대부분인 산길은 한마디로 지루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봉우리를 오르내림이 반복될 따름이다. 피톤치드라는 달콤한 유혹까지 없었더라면 그냥 아무 골짜기로나 탈출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산길의 정비가 한창인 구간을 지나면 길은 또다시 뚜렷해진다. 비록 나뭇가지 사이이지만 조망(眺望)도 서서히 깨어난다. 왼편에는 곡성의 너른 들판, 그리고 오른편에는 구성저수지와 어우러지는 능선들이 어렴풋이 내다보이기 시작한다.

 

 

 

 

산행날머리는 오곡면 구성리의 당고개

구성저수지 위 벌목(伐木)지대가 끝날 즈음 오른편 구성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미 능선이 고도(高度)를 많이 낮추어 놓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문화 유씨 사정공파’의 재각(齋閣)인 ‘구성재(龜成齋)’가 있는 당고개에 이르게 된다. 재각 앞에 보이는 구성저수지는 둑 높임 공사가 한창이다.

 

 

 

 

 

조도 돈대산(墩臺山, 230.8m)

 

산행일 : ‘11. 12. 31() - ’12. 1. 1()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하조도

산행코스 : 어유포선착장도리산 전망대(日沒)한옥마을(1)하조도 등대(日出)창유의 구()보건지소 앞에서 산행 시작돈대산킹콩산손가락바위산행마을에서 산행 마감 (산행시간 : 1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매듭여행이야기

 

특징 : 조도의 풍광(風光)은 가히 낭만적이다. 도리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모습이 그렇고, 층암절벽(層巖絶壁)으로 이루어진 손가락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도 그렇다. 특히 손가락바위의 바위동굴에 들어가 바라보는 밖의 풍경, 액자(額子) 속에 가둬놓은 다도해의 풍경은 가히 압권(壓卷)이다. 바다와 산이 빚어놓은 기경(奇景), 섬과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곳이 조도이다. 특히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돋보이고 있었다. 관광지와 산행로는 말끔히 정비(整備)되어 있었고, ‘하조도 등대에서는 새해(新年) 해돋이(日出)를 보기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뜨끈뜨끈한 떡국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떡국이 맛이 있는 것은 국에 들어간 굴과 전복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건네주는 정감(情感)어린 마음만 가지고도 떡국은 틀림없이 맛이 있었을 테니까 

 

관매도에서 배를 타고 진도 쪽으로 30분 정도 들어가면 조도가 나온다. 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아치형 연도교(連島橋)가 보이더니 배는 하조도의 어유포항에 도착했다. 지금은 창유라고 불리는 어유포항은 면소재지가 위치한 하조도의 관문이다. 육중한 철갑의 선수(船首)를 밟고 부두로 내려서면, 정면에 터미널과 민박집, 매점, 다도해국립공원 조도분소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관광지(觀光地)와는 거리가 먼 차분하고 조용한 첫인상이 무척 낯설다. 조도면의 소재지인 창유는 이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창유항에 도착해서 국립공원관리소 조도분소에 들러 간이 지도(地圖)를 구한다면 섬내를 둘러보는데 편리할 것이다.

어유포항에 내리자마자 포구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갈아탄다. 내일의 투어(tour)일정이 타이트(tait)하기 때문에 오늘 앞당겨서 도리산 전망대를 답사한다는 것이다. 도리산 전망대는 해넘이(日沒)를 지켜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가야만했던 곳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해를 이렇게 소문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도리산 전망대(展望臺, 210m)에서 바라본 조도대교(大橋), 도리산 전망대는 상조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저 다리를 건너야만 이곳에 올 수가 있다. 관광버스 기사의 말에 의하면, 다리가 아치(arch)형이기 때문에 안개라도 잔뜩 낀 날에 다리 위로 차를 몰라치면 전면(前面의 차창에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하늘다리라고도 불린단다. 1997년에 세워진 저 다리() 덕분에 조도군도의 핵심을 이루는 두 섬을 한꺼번에 묶어서 여행하기가 쉬워졌다. 참고로 이 조도대교와 주변 갯벌사이로 난 도로(道路)2006년 당시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중 하나로 꼽혔던 곳이다. 하조도와 상조도 앞에 있는 훼도를 연결한 아치형의 다리로 다도해의 구름다리로 불리는 아름다운 구조물(構造物)이다.

조도를 찾아온 어느 여행객(旅行客)이 일기가 나빠서 새때 같은 섬들을 제대로 구경 못했답니다. 속이 상한 여행객이 섬을 돌아다니면서 조도에 조금 힘을 주어 좃도! 좃도!‘하고 다니다가, 섬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좃나게 뺨을 얻어맞았답니다. 그러니 이 섬에 들어와서는 조도를 발음할 때 힘(accent)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광버스 기사의 넉살좋은 재담(才談)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톳이나 무우 그리고 전복 등, 이 섬의 특산물(特産物)이나 풍물(風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음담패설(淫談悖說)까지,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잘도 넘나들고 있다.

 

 

 

도리산 전망대가 있는 상조도로 가려면 우선 조도면소재지(所在地)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차를 달려야한다. 조도대교를 넘어 상조도에 위치한 도리산 전망대는 비교적 좁은 편이지만 정상까지 포장이 돼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산길은 벼랑을 타고 산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가는 길에 행여 바다라도 내려다볼라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길옆에 가드레일이 쳐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산 전망대(展望臺)에 가까워지자 일행들이 갑자기 !’하고 탄성(歎聲)을 터뜨린다. 발아래 비취색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이곳은 다도해(多島海), 말 그대로 섬이 많은 바다이다. 그래도 그렇지, 많아도 너무 많다. 유인도와 무인도(119)를 합해서 154개나 된다니 말이다. 그 많은 섬들이 잔잔한 바다에 널려있는 광경(光景)을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남해안에는 대략 2,300여 개의 섬이 있고, 그중 전라남도가 1,800여개로 전체 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바다 위에 섬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새떼가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조도(鳥島)라고 불렀겠는가?

 

 

 

진도군청(郡廳)에서는 조도군도 일대의 다도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리산에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부에 있는 KT중계소 바로 앞에 목조(木造) 조망대(眺望臺)가 만들어져 있다. 이곳 외에 하조도의 돈대봉에서도 다도해의 절경(絶景)을 감상할 수 있으나, 산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일 것이다. 조도에서는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도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섬들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만큼 뛰어난 경관(景觀)을 보여주는 곳은 흔치 않다. 거기다 힘들이지 않고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조도를 찾는 사람들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 관광명소(觀光名所)가 되었다.

 

 

 

전망대에 서면 수많은 섬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光景)이 펼쳐진다. 일찍이 남해안의 많은 섬들을 둘러봤지만 이곳의 다도해 풍경이 가장 으뜸이다. 코앞 나배도를 비롯해 조도대교와 하조도 일대, 대마도, 소마도, 관매도, 옥도, 관사도 등 새떼 같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쓴 글에서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곳을 첩첩섬중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올망졸망한 섬들이 구태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한눈에 다 들어오고 있다. 왜 이곳 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 부르는지 실감이 난다.

 

 

 

도리산 전망대 아래 주차장 옆 언덕 위에는 정자(亭子)가 하나 세워져있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냉큼 올라선다. 그러나 조금 전 올랐던 도리산 전망대에 비하면 조망은 한참 뒤떨어진다.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에 그냥 발길을 돌려버린다.

 

 

주차장에서 100m정도 걸어 내려오면 왼편에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또 하나의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종합경기장의 성화대(聖火臺) 모양을 하고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조금 전의 도리산 전망대에서 보았던 경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 풍광(風光)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섬의 동북쪽 바다가 잘 조망된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광경은 아예 시야(視野)의 범주를 넘어서버린다. 상조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문인(文人)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앞도, 뒤도, 옆도 모두 바다이고 섬이다. 수많은 섬들이 본섬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다 초점(焦點)을 맞추고 풍경을 살펴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짙은 먹구름 틈새로 하늘이 열려야할 시각, 태초(太初)의 그날처럼 황금색 빛줄기가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 위로 쏟아져야 하건만, 화려한 색의 축제는 시작될 줄 모르고 있다. 하늘을 온통 구름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지금쯤은 저 구름 너머에는 노루 꼬리만큼 남은 신묘(辛卯)년의 해가 서둘러 수평선을 향해 동백꽃처럼 낙화하고 있을 것이다. 구름 너머에 있을 낙조(落照)를 상상으로나마 그려본다.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해가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오색 향연(饗宴)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문득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려 본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도로(道路)로 올라가기 전에 이정표 하나가 세워져 있다. 오른편으로 약수터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들러보자. 아직 조성(造成)공사가 덜 끝났지만 역사적(歷史的)으로 의미 있는 공원이니까. ‘바실 홀 함장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고 있단다. 영국 해군이었던 바실 홀 함장은 조선항해기(1816)에서 조도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풍경을 지구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적었다. 그가 올라가 감탄을 했던 곳이 바로 도리산 전망대이다. 가장 편하게 조도 주변의 새떼처럼 흩어진 섬들을 한눈에 구경하는 방법은, 당연히 도리산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조도 주변의 섬들은 모두 군도(群島)로 이뤄져 있다. 가사군도, 성남군도, 독거군도, 거차군도, 맹골군도, 상도군도 등등. 이 군도들을 다시 모두 묶어서 조도군도라고 부른다.

 

 

새벽 6,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일출(日出)을 보러가기 위해 일어나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다들 눈가가 부스스하다. 새해(新年) 해맞이 행사는 조도에 있는 또 하나의 명소(名所)하조도 등대(燈臺)’에서 열리니 응당 등대로 가게 될 것이다. 등대는 창리마을에서 어류포항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어가다가 오른편에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면 된다, 겨우 차() 한 대나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시멘트 도로는 이내 비포장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외길을 따라 들어가면 하조도의 동쪽 끝 벼랑을 끼고 있는 곶부리에 순백(純白)의 등대가 서 있다. 바로 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라는 행정명칭(行政名稱)으로 불리는 하조도 등대다. 이 등대는 1909년에 세워진 인천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라고 한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고 협소(狹小)한 비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면, 결코 나타날 것 같지 않던 하조도 등대가 문득 나타난다. 등대는 마치 괴물처럼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고, 머리꼭대기에서는 레이저(laser) 광선을 마구 쏘아대고 있다. 등대 입구의 건물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에는 고사(告祀)상이 차려져 있고, 이곳 주민들이 따끈따끈한 떡국을 나누어주고 있다. 인파들이 몰려 많이 혼잡스럽지만 봉사(奉仕)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은 어느 한사람 얼굴에서도 결코 짜증스러운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전복과 굴로 국물을 잘 우려낸 떡국이 유별나게 맛이 있는 이유이다.

 

 

주민들은 떡국 외에도 불꽃놀이용 폭죽을 나누어주고 있다. 비록 해는 떠오르지 않지만 다들 행복(幸福)과 희망(希望)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인정이 넘치는 폭죽으로 일출(日出)을 대신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등대 뒤편의 암벽(巖壁)까지 나무데크 계단으로 연결시키면서, 그 끝에다 정자(亭子)도 세워놓았다. 이곳까지 왔으니 운림정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운림정에 올라서면, 거센 파도와 함께 비릿한 바닷 내음을 가득 품은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친다. 비록 이곳이 따뜻한 남쪽바다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동장군(冬將軍)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1월 하고도 초하루인 것이다. 몹시 춥다.

 

 

 

등대 아래 해안(海岸)의 절벽 위에는 나무데크를 만들어놓았고, 가운데에 둥그런 조형물(造形物) 하나가 보인다. 지구(地球)를 표현한 조형물인데 돌고래 세 마리가 힘들게 떠받들고 있다. 정월 초하루 스산한 겨울날의 하조도 등대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해풍(海風)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극한(極限)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꿋꿋이 홀로 지켜내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絶壁)과 군데군데 에메랄드(emerald)빛 바다 빛깔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널려있는 남해안의 풍경을 연상하고 찾아온 사람들이라면, 의외의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보며 조금은 실망할 것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중간에 몇 개의 섬이 있지만 동해안의 탁 트인 바다를 연상케 한다.

 

 

창리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촌닭육수를 사용해서 끓인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도의 마지막 일정인 돈대산 등정에 나선다. 창리마을의 팽나무 보호수(保護樹) 옆을 지나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진행방향 오른편에 조도 보건지소건물이 보인다. 보건지소 조금 못미처에서 왼편으로 보이는 임도(林道)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잘 닦인 임도는 얼마안가 오솔길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숲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솔길은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경사(傾斜)도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0분 정도 지나면 약수(藥水)터 삼거리에 닿게 된다. 플라스틱 통의 절반가량까지 물이 고여 있으나 마시는 것은 망설여진다. 아무리 좋은 약수라고 하더라도 고여 있는 물의 위생(衛生)상태까지 믿을 수는 없으니까. 이곳 삼거리에서 어느 곳으로 진행하더라도 주능선을 거쳐 돈대봉 정상으로 오를 수 있으나, 손가락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려면 왼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돈대봉 정상을 밟은 후, 다시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야 하는데, 등산마니아(mania)들이 제일 싫어하는 코스선택이기 때문이다.

 

 

 

약수터를 지나면서 길은 가팔라진다. 숨이 턱에 차게 5분 정도 치고 오르면 능선(稜線) 안부에 닿게 된다. 안부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신금산으로 가게 되고, 돈대봉은 오른편에 오롯이 솟아있다. 뒤돌아보면 창리마을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때 오늘 산행의 천려일실(千慮一失)이 발생했다. 왼편으로 진행해서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진 암릉을 밟아봐야 하는데도. 빼먹고 오른편 돈대봉으로 올라버린 것이다. 돈대봉 정상에 오른 후,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는 암릉을 보고 그런 사실을 알았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다시 되돌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빼어난 풍광(風光)만 가슴에 차곡차곡 담아본다.

 

 

 

긴 나무계단을 밟고 오른 돈대봉 정상은 의외로 평범하다. 수풀로 뒤덮인 조그마한 공터 한쪽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보이지 않는 정상표지석 대신에 이정표(里程標)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정표만 아니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기상(氣象)이 나빠지는지 시계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한다. 조도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산의 이름인 돈대는 높은 언덕에 옹벽이나,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 등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던 곳을 말한다. 흔히 이곳에서 봉화를 올려 다른 지역으로 위험을 전하는 구실을 했다. 아마 이곳도 봉화대의 역할을 수행했었을 것이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돈대봉 330.8m, 약수터 500m/ 손가락바위 400m)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틀림없이 이 이정표는 진도군청에서 세웠을 것인데도 고도(高度)330.8m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도군청의 홈페이지에는 이곳의 높이를 230.8m로 표기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더라면 이런 언밸런스(unbalance)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돈대봉 정상에서 손가락바위로 향한다. 손가락 바위는 이 섬의 최대 명물(名物)로 소문이 나있다. 흙과 암릉이 알맞게 섞인 능선은 비록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료할 만큼 심심하지도 않다. 능선을 걸으면, 양편으로 쪽빛 바다와 섬들이 내 발걸음에 보조(步調)를 맞추며 따라오고 있다.

 

 

 

 

조도에 오면 사람들은 대부분 상조도에 있는 도리산 전망대를 찾는다. 상조도에 도리산 전망대가 있다면 하조도에는 푸근한 바다와 근육질의 산이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풍경(風景)이 있다. 바로 돈대봉이다. 해발고도(海拔高度)로 보자면 육지의 이름난 산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지만, 암릉(巖稜)과 층암절벽(層巖絶壁)이 빚어내는 풍광(風光)은 가히 절경(絶景)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벼랑길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범상치 않은 바위 하나가 건너다보인다. 바로 손가락바위이다. 건너편 손가락바위로 가려면 우선은 이쪽 벼랑을 내려서야만 한다. ‘머리 조심하세요.’ 벼랑에 매어진 로프는 하나,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겹쳐져서 지체현상을 빚고 있다. 반대편 사람들이 모두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머리 위에 있는 바위를 조심하라는 조언(助言)으로 소일거리를 삼아본다.

 

 

 

 

손가락바위는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층암(層巖)으로 이뤄져 있다. 솟아있는 층암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섯 개의 손가락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엄지손가락에 해당되는 손가락의 중간쯤에는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한 동굴(洞窟)이 나있다. 나무로 엮어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혹시라도 부서지지나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사다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올라보자. 그 끝에는 희열(喜悅)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다리 위로 올라 굴 안으로 들어선다. 어른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수 있는 크기의 바위굴은 어둡고 침침했다. 그래도 동굴 바닥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다녀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굴에 들어서면 처음에는 점점 좁아지다가 반대편 끝이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다. 그것은 다도해(多島海)를 향해 열린 천연(天然)의 창문이다. 창문은 멋진 전망대이다. 창틀이 액자(額子)로 변하면서 그림처럼 관매도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동굴(洞窟) 안에서 바다를 내다본다. 동굴의 테두리가 흡사 액자(額子)의 틀을 닮았다. 비록 희미하지만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액자 속에 갇혀 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다도해(多島海)란 많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란 뜻이다. 다도해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 익숙하지만, 이정도로 섬들이 꽉 들어찬 바다는 결코 흔치 않다. 우리의 남해안은 그리스의 에게해와 함께 대표적인 다도해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다도해의 진수라고 소문난 전남 해안(海岸), 그중에서도 154개가 밀집하고 있는 이곳 조도군도는 그리스의 에게해를 뛰어넘는 리아스식 해안의 진수(眞髓)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굴 끝 오른쪽 사면(斜面)의 계단처럼 생긴 바위를 타고 오르면 길지 않은 벼랑 위의 능선이다. 한 번 더 모서리를 잡고 올라서면 손가락바위 정상이다. 그러나 오르는 길이 까다롭고 위험하니 조심을 요한다. 요즘 부쩍 바위 위로 오르기 좋아하는 집사람, 부득불 올라가야겠다고 우긴다. 바치고 떠밀어서야 겨우 바위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바위 정상은 제법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는데, 전망대(展望臺)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기가 나빠서 희미하지만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섬들이 펼쳐지고 있다.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동굴을 빠져나온 후, 이번에는 손가락바위 아래로 우회(迂回)를 한다. 바위구간을 지나 뒤돌아보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아까는 손가락 다섯 개의 바위였는데 이번에는 손가락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우람한 손가락을 곧게 펴고 있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곧바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곤우마을로 가게 되고, 산행마을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편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흙길에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내려서는데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하산길에서도 이곳 주민들의 정성은 눈에 띈다. 가지런히 정리된 등산로가 정성들여 손질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가시덤불과 난대림(暖帶林)이 우거진 산길을 빠져나가면 곧이어 시멘트포장도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리 마을로 연결되는 아스팔트도로를 만나게 되면서 산행은 끝을 맺는다. 총 산행거리 약 4km. 최고 고도(高度) 230.8m. 오늘 우리가 걸었던 산행기록이다. 산행이라고 부르기에 낯간지러울 정도이지만, 산세(山勢)만 볼 것 같으면 다른 곳의 커다란 산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창유로 넘어가는 도로의 좌우(左右)로는 겨울철 바닷바람에 속살이 돋은 무밭이 천지다. 검은 천을 덥고 있는 밭도 보인다. 쑥밭이란다. 저렇게 검은 천을 씌우면 웃자라지 않을뿐더러, 쭉정이도 생기지 않아서 좋단다. 갑자기 들려오는 집사람의 탄성(歎聲)! ‘! 강원도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데...’ 한겨울에 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하긴 집사람의 고향인 강원도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관매도(觀梅島)

 

산행일 : ‘11. 12. 31(토)

소재지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산행코스 : 진도 팽목항→관매도 선착장→관호마을→꽁돌→하늘다리→선착장(회귀)→해수욕장→곰솔 밭→방아섬→선착장(산행시간 : 2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매듭여행이야기

 

특징 : 관매도(觀梅島)는, 옛날 매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새가 입에 먹이를 물고 잠깐 쉬어간다고 해서 '볼매도'라고도 불린다. 관매도는 목포에서 여수에 이르는 ‘다도해(多島海) 해상국립공원(海上國立公園)’에 점점이 박힌 섬 중의 하나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예쁜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주민들은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국립공원에서는 개발이 제한되는 등 많은 재산(財産)상의 제약(制約)이 따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립공원에서 해제(解除)될 자격을 얻었지만, 이곳 주민들은 국립공원에 남아 있기를 원했고, 전국 최초로 ‘명품(名品)마을’로 선정된바 있다. 뛰어난 경관에다가 ‘1박2일’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에 소개까지 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국립공원에 남으면서 개발(開發) 대신에 자연경관을 보존한 주민들의 선택이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참 고>소문에 이끌려 찾아온 관매도는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을 못 미치고 있다. 우선 뱃길부터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과연 무사히 목적지(目的地)에 도착할 수 있을 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배는 낡았고, 거기다 이층 선실은 한술 더 떠서 비좁고 허접하기까지 하다. 이 좁은 선실(船室)에 웬 사람들을 이리도 많이 태웠는지 앉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 도착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선답자(先踏者)들로부터 습득한 정보도 이미 어긋나고 있다. 이곳저곳 4개의 섬을 골고루 들른 배는 무려 2시간을 넘기고서야 관매도 선착장(船着場)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두 번째로 섬에는 겨울철에 운영 중인 식당(食堂)이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선금(先金)까지 보냈다는 여행사 총무님의 ‘완전 사기 당했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주인 할머니의 핸드폰에서 식사와 민박(民泊)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주인할머니께 보낸 메시지를 찾아서 보여드려도, 연락을 못 받았다고 막무가내로 우기시더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식사와 숙박을 조도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명품(名品)마을로 조성하면서 만들어 놓은 시설물(施設物)들이 망가진 채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 많이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다. 혹시라도 관매도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소문을 너무 믿지 말라는 충고(忠告)를 해드리고 싶다.

 

 

조도로 가려면 우선 진도로 가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나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해남까지 간 후, 진도대교를 건너야 한다. 그런 다음 18번 국도(國道/ 진도읍 방향)를 이용해서 진도의 남단(南端)에 위치한 임회면 팽목항까지 가야한다. 조도로 들어가는 배가 팽목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팽목항에서 관매도선착장까지는 2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도선(渡船)이 운항(運航)하므로 차를 싣고 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관매도는 조그만 섬이기 때문에 구태여 차량을 갖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혼잡한 선실을 벗어나 갑판(甲板)으로 올라선다. 섬이 많은 것은 조도뿐이 아닌가 보다. 사방에 섬들이 널려있다. 난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흡사 한 폭의 동양화이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뱃전에 서서 다도해(多島海)의 비경(秘境)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동해안을 제외하고는 일몰(日沒)이나 일출(日出)을 보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日氣豫報)가 맞을라나 보다. 먼 곳에 있는 섬들이 안개에 싸여 희뿌연 색을 띠고 있다. 그보다 가까이 있는 섬들은 검은색, 뱃머리에서 잡힐 듯 가까운 섬들은 검푸른 색이다. 날씨가 맑을 때는 서남쪽으로 한라산이 바다에 둥실 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지만, 오늘은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에서 내리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선착장(船着場) 맞은편 바위 벼랑에 쓰인 ‘걷고 싶은 매화의 섬, 관매도’라는 문구이다. TV 프로그램 '1박2일' 소개 덕으로 유명해진 탓인지, 선착장 바로 맞은편에 커다랗게 붙여놓았다. 그 옆에는 아담한 쉼터가 보이고, 화장실을 갖춘 대합실이 깔끔하게 지어져 있다.

 

 

관매선착장에서 오른편 해안도로(海岸道路)를 따라 들어가면 관호마을이다. 마을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시원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재가 있다. 하늘다리로 가려면 이 재를 넘어야만 한다. 마을입구와 마을을 벗어나기 직전에 있는 샘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길 잃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바다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길게 늘어선 돌담이 보인다. 바로 우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돌담이다.

 

 

 

 

 

마을의 일부 건물 벽에다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 보인다. 모처럼 엄마아빠를 따라나선 꼬맹이들이라도 있다면 동화(童話)속 상상의 나라로 안내해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실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돌담을 일컫는다. 그 돌담 앞에 그네의자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흔들리는 의자에 앉으면 전망(展望)이 탁 트인다. 발아래에 쪽빛으로 빛나는 남쪽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혹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왔다면 의자에 앉아보길 권하고 싶다. 쪽빛 바다가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재(우실)에 올라서면 먼저 탁 트인 바다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스레 청량(淸凉)한 느낌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해변 우측 저 멀리 콩돌바위가 보이고, 왼편에는 돈대산 정상과 해변풍경이 바라보인다. 흔들리는 나무 의자 앞에는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도록 나무테크로 만든 계단이 바다를 향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오른편 바닷가로 내려서면 바닷가는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에서 왕돌끼미라고 불리는 곳이다. 남쪽 먼 바닷가의 특징을 나타내는 거친 암반 한쪽 귀퉁이에 콩돌이 보인다. 콩돌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커다란 바위덩어리이다. 바위에는 움푹 페인 구멍들이 많고, 그 구멍들은 갖가지의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 돌묘와 꽁돌 : 관호마을 뒷재너머 해안에 있는 커다란 바위와 돌로 만들어진 묘(墓)이다. 이곳에는 꽁돌 옆 손바닥자국의 주인인 하늘장사와 꽁돌에 얽힌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돌인데, 두 왕자가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지상으로 떨어뜨려버렸단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하늘장사에게 명하여 꽁돌을 가져오게 하였으나 거문고소리에 취한 하늘장사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렸나보다. 다시 내려 보낸 두 명의 사자(使者)까지도 거문고 소리에 반해 돌아오지 않자, 진노(震怒)한 옥황상제가 그들을 묻어 버린 곳이 돌무덤이라는 전설이다.

 

 

 

콩돌의 바로 곁에 돌무덤이 있다. 그러나 그 크기가 하도 작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칠 염려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돌무덤은 작고, 낮은 높이의 동그란 형태, 무덤의 주위를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다.

 

 

관매도는 해변 풍광(風光)이 뛰어나다. 바다와 접하고 있는 해변은 온통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둘레는 가는 띠를 두른 것 같은 다양한 표층(表層)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수억 년 동안 바다 속 갯벌이 켜켜이 쌓이다 지각변동(地殼變動)에 의해 수면(水面)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흡사 전북 부안의 채석강에 와 있는 느낌이다.

 

 

 

돌무덤에서 하늘다리를 가기 위해서는 오른편의 해안(海岸)을 따라 만들어진 산길을 따라가야 한다. 산길은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진행방향으로는 하늘다리와 다리여를 잇고 있는 해안의 해식애(海蝕崖)가 우람하고, 그 곁을 관광유람선(觀光遊覽船)이 지나가고 있다. 유람선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뒤돌아보면 돈대산과 우실을 바위절벽이 떠받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조망(眺望)을 즐기며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하늘다리이다. 하늘다리는 섬이 둘로 나뉘는 해안절벽(海岸絶壁)을 철제(鐵製)다리로 연결시켜 놓았다. 다리 아래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리의 모습은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슴에 담을만한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사진(寫眞)에서 봤던 멋진 하늘다리의 풍경은 조감도(鳥瞰圖)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 하늘다리 : 바위산의 중심(中心)부가 마치 칼로 자른 듯이 똑바로 갈라져 있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의해 갉아 먹힌 자국이란다. 3∼4m 폭으로 갈라진 틈으로 돌을 던지면, 물에 빠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3초나 될 정도로 높은 다리이다. 다리 가운데에서 발아래 투명유리를 내려다보면, 오싹한 기운이 들 정도로 높지만, 주변 기암절벽(奇巖絶壁)의 아름다운 경관에 취하다보면, 두려운 마음 정도는 금방 사자져 버릴 정도이다.

 

 

 

 

 

 

다시 돌아온 우실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선착장에서 하늘다리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30분, 꼭 둘러봐야할 또 다른 명소(名所)인 방아섬까지는 또다시 1시간 30분이 더 걸린다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뿐이니 말이다. 아쉽지만 돈대산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관호마을로 내려선다. 그러나 선답자(先踏者)들이 느긋하게 걸었던지, 아니면 ‘다시는 여행에 따라나서지 않겠다.’는 집사람의 불평이 나올 정도로 바쁘게 걸은 내가 잘못이었던지, 두 곳의 명소를 다 둘러보고도 30분이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늘다리를 둘러보고 다시 선착장으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방아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방아섬으로 가려면 우선 관매도해수욕장을 통과해야만 한다.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그 백사장 뒤에 늘어선 해송림(海松林)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소나무 숲을 따라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길을 걷다보면 눈이 호사를 누리게 된다. 거기에다 피톤치드는 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이곳을 관매도 제1경으로 꼽고 있나 보다.

 

 

기나긴 해수욕장 주변에는 50년 이상 된 소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다. 해수욕장 소나무 숲(松林)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란다.< *학명은 Pinus thunbergii PARL. 잎이 소나무(赤松)의 잎보다 억센 까닭에 곰솔이라고 부르며, 자생지가 주로 바닷가이기 때문에 해송(海松)으로도 부른다. 또, 줄기껍질의 색깔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이 곰솔 숲은 산림청이 주최하는 ‘제11회 아름다운 전국 숲 대회’에서 ‘올해의 가장 아름다움 숲’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경관(景觀)을 자랑한다. 이 숲은 1600여년 경 나주에서 강릉 함씨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일구면서 방풍(防風)과 방사(防沙)를 목적으로 조성한 숲이란다. 1200m의 해안(海岸)에 폭 200m로 넓게 서식하고 있다. ‘관매도에서 가장 뛰어난 여덟 곳’ 중에서도 제1경으로 일컬어지는 이 숲의 존재 때문에 현재의 마을이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숲이란다.

 

 

 

솔숲으로 들어서면, 수백, 수천 그루의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키가 족히 20m는 넘을 것 같다. 자태(姿態)도 늠름하다.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탐방로(探訪路)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주위에 소나무들이 길게 도열해 있다. 솔숲 사이로 바라보이는 바다는 비취색이다. 귓가에는 철썩이는 파도소리 들리고, 솔내음이 코끝을 간질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산책코스가 그 어디에 있으랴?

 

 

곰솔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장산편마을 앞을 지나면 조그만 주차장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부터는 도보(徒步)로만 탐방(探訪)이 가능하다. 잠깐의 오르막 끝, 독립문바위로 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에서 방아섬은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길가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지만, 가끔은 가을의 전령인 억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아직도 못다 전한 사연들이 많은지 연약한 대공들을 바람결 따라 나풀거리고 있다.

 

 

 

 

 

삼거리에서 방아섬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왼편으로 바다가 열리면서 섬 하나가 바라보인다. 섬의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관매 제2경인 방아섬으로, 꼭대기의 바위는 남근(男根)바위란다. 방아섬 맞은편에 있는 섬은 하조도인데, 일부 사람들은 음부도(陰部島)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여자의 음부(陰部)를 쏙 빼어 닮았다는 하조도의 신전리 마을이 하조도 전체로 와전(訛傳)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어느 전문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맞는 추론(推論)일 것 같다. 아무튼 방아섬의 남근바위와 신전리의 생김새만 놓고 볼 때에는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지만, 양쪽 다 기(氣)나 너무 샌 탓인지 혼인(婚姻)만 하면 불화가 심하기 때문에 관매도 사람들은 하조도의 신전리 사람들과는 혼인을 하지 않는단다.

* 옛날에 선녀(仙女)가 방아섬에 내려와 방아를 찧었단다. 그렇다면 방아섬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방아는 꼭 곡식(穀食)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성행위(性行爲)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리곤 문득 떠오르는 발칙한 생각 하나, 저 섬 위에 뽈록하니 솟아오른 남근(男根)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는 선녀(仙女)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떠올리면서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는 난, 아마 세파(世波)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온 중년남자가 분명하다.

 

 

 

방아섬을 둘러본 후에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 같은 길을 또 다시 걸으니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전까지 상상했던 방아섬을 떠올리다보면 지루할 새가 없을 테니까. 다만 옆 사람에게 들키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자. 장산편마을 앞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해수욕장의 곰솔 숲이 아닌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걸어본다. 길가에는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늘어서있고, 오른편에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건물 하나가 빼꼼히 들여다보인다. 조도초등학교 관매분교란다. 학교 운동장에 길게 자란 잡초나 건물의 외관(外觀)을 봐서, 이미 폐교(廢校)가 되었지 않나 싶다.

 

 

 

 

관매분교의 정문을 조금 지나면 나무 울타리 안에 놀라우리만치 우람한 나무 몇 그루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매도에 들르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가는 소문난 후박나무이다. 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될 정도로 멋진 외모(外貌)를 자랑하고 있다. 수령이 무려 800년이나 되었다니 곁에 있는 곰솔 숲의 역사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정월 초(初)이면 마을주민들이 후박나무 앞에서 당제(堂祭)를 지낸다고 한다.

 

 

 

후박나무를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니 왼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산행대장의 적극적인 초대(招待)를 차마 거절 못하고 일행에게 다가간다. 코펠에는 어묵이 끓고 있고, 주변엔 빈 소주병이 이미 서너 개나 빈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먹는 것은 낯설어하지 마시고 무작정 덤벼드는 것이랍니다. 그래야 친해지니까요.’ 뜨끈뜨끈한 국물에 소주 몇 잔 들이켜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둥그렇게 파인 구멍에는 숯이 널려있고, 주변엔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숯가마이려니 하다가 문득 어느 선답자의 여행기(旅行記)를 떠올린다. 전통기법의 삼굿이라고 했고, 구덩이에 불을 지펴 수증기를 이용해서 삼을 굽는 전통기법인데, 갖가지 음식을 쪄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고 전하고 있었다.

 

 

운영진(運營陳)에서 준비한 따끈따끈한 어묵국물에 소주 몇 잔 마시다가 돌아온 선착장, 배가 들어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았다. 집사람의 손목을 잡고 방파제 위를 거닐고 있는데, 집사람이 탄성(歎聲)을 내지른다. ‘와! 고기들 좀 봐요!’ . 아니나 다를까 바닥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 속에서 수많은 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관매도 인근 바닷물은 비취(翡翠)색을 띠고 있다. 남해(南海) 연안을 연상(聯想)할 때 제일먼저 떠오르게 되는 탁한 황색(黃色)과는 달리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섬은 양식장(糧食場)으로 포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관매도의 주요 소득원인 톳을 기르고 있단다. 참고로 진도 주변의 해역(海域)에서는 전복과 같은 종패(種貝) 양식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월출산(月出山, 809m)

 

 

산행일 : ‘11. 12. 3(토)

소재지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

산행코스 : 경포대 주차장→바람재→구정봉(왕복)→천왕봉→통천문→구름다리→천황사→천황사지구 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좋은 사람들

 

 

특징 : 조선(朝鮮) 세조 때의 시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칭송하였을 정도로 자못 그 자태가 빼어나다.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지고 있는 광경은 거대한 수석(壽石)전시장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20번째로 국립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

 

 

산행들머리는 경포대 탐방지원센터

무안-광주고속도로 서광산 I.C를 빠져나와 49번 지방도를 따라 영산포까지 들어간 후, 13번 국도(國道/ 해남방향)로 바꾸어 달리다가 영암읍을 지나 월남교차로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경포대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월출산 방향으로 접어들면 먼저 월출학생야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야영장의 정문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철다리를 건너면, 등산로는 왼편에 경포대 계곡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벗하며 내딛는 발걸음은 상쾌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경포대계곡은 월출산의 여러 계곡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약 2Km를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맑은 물이 굽이치며 수많은 곡류와 폭포수를 빚어낸다. 참고로 이곳의 경포대(鏡布臺)는 같은 이름인 강릉 경포대(鏡浦臺)의 개 포(浦)가 아닌 베 포(布)자를 쓰고 있다. 곧 바위 위를 흐르는 물길이 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학생야영장 입구에서 약 400m정도 걸어 들어가면 경포대 야영장(野營場)이 나온다. 허름한 건물들 몇 동이 늘어선 야영장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은 탓인 지 인적을 느낄 수 없다. 요즘 방방곡곡에 널린 깔끔한 야영장을 생각하고 여길 찾는 다면 낭패(狼狽) 보기 십상일 듯, 여름철에 백 패킹(Back Packing) 장소로나 어울릴 것 같다. 야영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편에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금릉 경포대(金陵 鏡布臺)’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소로(小路)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선다. 암반을 따라 흐르는 물길을 돌리며 꽤나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다. 저 바위에 ‘금릉 경포대’라는 글귀가 적혀있단다.

 

 

산길로 접어들면 우선 하늘로 시원하게 뻗은 나무숲이 보인다. 편백나무 숲이다. 편백나무 아래로는 동백나무, 위나 아래나 온통 푸르름, 겨울의 초입인데도 이곳은 아직도 싱그러움으로 넘치고 있다. 녹색의 숲 사이를 걷다 보면 갈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성분이 심신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일상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싶은가? 그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산으로 떠나라.’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월출산을 찾은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산은 인간에게 좋은 많은 것을 선물한다. 산의 좋은 기(氣)를 받고, 특히 침엽수림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한 치유능력은 학술적으로도 입증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러니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어디에 있을 손가?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구정봉 1.7km/ 경포대 1.0km/ 천황봉 1.9km). 오른편으로 가면 통천문을 지나 곧바로 천황봉으로 오르게 되고, 구정봉을 들러보려면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서슴없이 왼편 바람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월출산에서도 장관(壯觀)으로 소문난 구정봉을 결코 빼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재로 오르는 산길은 물기가 없는 계곡을 여러번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길가에는 허리춤 정도로 자란 산죽(山竹)들이 가로수(街路樹) 마냥 늘어서 있다. 길가 빈 나뭇가지들 사이로 살짝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하늘에 딸려 바위능선들이 고개를 내민다. 차곡차곡 기단(基壇)처럼 쌓인 바위들 위에 살짝 올라앉은 또 하나의 바위는 아예 서커스를 보는 것 같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요?’ 집사람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긴 조금 전에 지나왔던 돌무덤을 보더라도 굴러 떨어지는 돌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바람재 쪽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들을 압도(壓倒)하는 기이한 바위들의 자태(姿態)가 늘어나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언제 굴러 떨어질지 모르게 생긴 바위들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데, 바람을 갈수록 세지고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얼마나 바람이 센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래서 바람재라는 이름이 붙었나보다. 바람재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가면 구정봉, 정상인 천황봉으로 가려면 왼편의 구정봉을 다녀온 후,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야한다.

 

 

 

 

 

 

 

 

구정봉을 가려면 베틀굴을 지나야 한다. 구정봉 바로 아래에 베틀굴이 있기 때문이다. 베틀굴은 일명 음굴(淫窟)이라고 부르는데, 남근석(男根石)과 반대로 여성의 성기(性器)와 비슷하다. 굴속에는 물이 고여 있지만 바닥이 흙이라서 마시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샘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나 보다. 생김새는 그야말로 굴의 명칭과 판박이다. 아마 설악산 흘림골에서 만날 수 있는 여심폭포보다도 한수 위가 아닐까 싶다.

 

 

베틀굴 바로 위로 구정봉(九井峰, 705m)이 있다. 베틀굴에서 왼편에 매달린 로프를 잡고 능선으로 오르면 구정봉으로 오르게 된다. 구정봉은 커다란 바위다. 바위 위로 올라가려면 우선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구정봉에 올라서니 신기하게도 물웅덩이가 여기저기에 있다. 마르지 않는 샘. 이 웅덩이에는 전설(傳說)이 내려온다. 옥황상제께서 도술을 함부로 쓰는 동차진이란 젊은이를 아홉 번의 번개로 죽였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면 부족함만도 못하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증명하는 설화(說話)가 아닐까 싶다.

 

 

 

구정봉 정상에는 나무하나 없는 커다란 바위다. 천황봉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산을 오르면서 집사람에게 부탁했던 기도가 약발을 받았음일까? 비만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는데,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햇살까지 선물해 주시다니... 구정봉을 둘러싸고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데, 동녘의 천황봉은 유난히도 높게만 보인다. 맞다. 저 봉우리 이름이 천황봉이니 옥황상제(天皇)님 아니겠는가? 오늘의 안전(安全)산행도 빌어볼 겸 옷깃을 여미어 본다. 자연스레 자만(自慢)과 만용(蠻勇)이 사라진다.

 

 

 

 

 

 

남근바위, 산 자체가 암릉과 암봉으로 이루어진 월출산은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부러 만든다 해도 이보다 더 닮게 만들 수 있을까. 남성의 모양을 조각해 놓은 듯한 남근(男根)바위와 여성의 성기(性器)모양을 한 베틀굴은 그중 압권(壓卷)이다. 돼지머리 모습을 한 ‘돼지바위’도 있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봉우리들도, 구태여 닮은 것 몇 가지쯤은 쉽게 댈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상으로 서 있다.

 

 

 

남근(男根)바위를 지나 천황봉으로 향하는 길은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바위로 된 능선이 험하기도 하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에 정신을 빼앗기다보면 자연스레 걷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구정봉 근처의 기암(奇巖)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진행방향에는 천황봉이 우뚝 솟아있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천황봉은 어찌나 웅장한지, 꼭대기를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개미보다 더 작아 보인다. 시선(視線)을 두는 곳마다 늘어선 각양각색의 바위 군상(群像)들은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으니. 여기가 바로 세외 선경(世外 仙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에 바라보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의 형상은 상상(想像) 이상이다. 문득 어느 글에서 본 ‘수석(壽石) 전시장’, ‘신의 걸작들을 모아놓은 바위조각공원’이라는 어구(語句)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바람재를 떠나도 바람은 잘지를 모른다. 천황봉까지 가는 동안 매서운 바람을 피해 여러 번 바위틈새에서 숨을 돌려야만 했다.

 

 

 

 

 

‘도드람산 생각이 나네요.’ 아내의 말대로 도드람산에서 눈여겨 본적이 있는 ‘ㄷ'자 모형의 철근(鐵筋)을 암벽(巖壁)에 박아 계단을 만들어 놓고 있다. 철계단과 철난간을 교대로 지나면 드디어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이다.

 

 

 

 

 

천황봉 정상은 300명은 족히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또 하나의 타원형 비석이 서있고, 지도를 동판에 새겨서 바위에 밖아 놓은 것도 두 개나 보인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마치 수석 전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깝거나 멀리에 있는 산세(山勢)가 한눈에 들어오고, 우뚝 솟은 사자봉은 우람하기만 하다. 능선에는 아기자기한 바위 군상(群像)들의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하산은 천황사 방향으로 잡는다. 암봉을 돌아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通天門)을 벗어나면, 천상에서 속세로 내려다보듯, 세상이 발아래에 깔려있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상의 바위들이 늘어선 암능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삼거리,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경포대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능선을 버리고 산의 허리를 감아 돌며 이어진다. 그러다가 만나게 되는 지루한 내리막길,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채로 쌓아 놓은 돌계단은 거칠면서도 가파르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쉽지 않다. 이제나 저제나 끝나기만을 고대해보지만, 내 집사람의 연약한 무릎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돌계단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사자봉의 고개를 넘으면 이번에는 철제(鐵製)계단이 반긴다. 계단의 난간을 붙잡은 집사람의 팔에 힘줄이 돋고 있다. 그만큼 계단이 가파르게 서 있다는 얘기이다. 주변에는 기암괴석(奇巖怪石)이 나름대로의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건만 주변에 시선(視線)을 돌릴 겨를이 없다. 발밑이 이렇게 허전한데 어떻게 한 눈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수직에 가까운 철(鐵)계단을 내려서면 구름다리이다. 수직의 계단을 연속으로 내려가다 보면, 보기만 해도 아찔한 붉은 구름다리가 공중에 걸려 있다. 영암을 대표하는 것이 월출산이라면, 월출산을 대표하는 풍광(風光)은 구름다리다. 1978년 만들어졌고 2006년에 재시공(再施工)해 현재 2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닥에서 다리까지의 높이가 120m이며, 구름다리가 설치된 해발고도는 510m다. 여기서 바라보는 영암 풍광은 가히 압권(壓卷)이라고 할 수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바람골을 지나 천황사 주차장으로 가게 되고, 왼편으로 진행하면 천황사를 지나 역시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왼편 천황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 일찍 내려가서 산행의 피로(疲勞)를 막걸리로 달래볼 요량에서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마음먹은 대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또다시 거친 돌계단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천황사지구 주차장

천황사를 지나면서 길은 차도(車道)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넓어진다. 길가는 언제 스릴을 만끽하며 산행을 즐겼냐는 듯이 고와진다. 길가에는 어른들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시누대가 숲을 이루고 있고, 평평한 나무다리 아래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온화하게 흐르고 있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잘 가꾸어진 조각공원(彫刻公園)을 지나면 주차장이다. 시원한 맥주를 찾아 들어선 상점에서, 주인아주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녹아 맥주대신 ‘무화과 동동주’로 목을 축이며 산행을 접는다.

 

 

 

 

남망산(南望山, 164m)

 

산행일 : ‘11. 11. 20(일)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의신면 접도

산행코스 : 수품항→일출전망대→해안→아홉봉→고갯마루 주차장(2코스 출발지)→쥐바위→남망산→사랑의 숲→솔섬바위→작은 여미→말똥바위→여미사거리→제일수산 앞 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남망산은 높은 것도 아니고, 드넓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산세(山勢)가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다. 산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에 한 발짝만이라도 들어서면 그러한 선입견은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비록 조그마한 산이지만 오르는 이가 얻는 만족은 큰 산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도해(多島海) 풍광이 빼어나고, 또한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진귀한 나무가 지천이다. 또 하나 남망산의 특징은 등산로가 해변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絶壁)이 늘어서 있는 바닷가에서 등산화를 잠시 벗고 맨발로 모래밭과 자갈밭을 거닐어 보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산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이정표에는 ‘웰빙 등산로’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산행들머리는 접도의 수품함(港)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I.C를 빠져나와 77번 국도(國道/ 해남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해남군 문내면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18번 국도(진도 방향)로 들어서면 진도대교를 건너게 된다. 계속해서 18번 국도를 따라 가다 금갑 해수욕장 이정표(里程標)를 보고 좌회전해 금갑리로 접어든 후, 접도대교를 건너 끝까지 가면 수품항에 닿는다.

* 본 섬인 진도(珍島)에 접해 있어 접도라 불리는 접도(接島)는 전남 진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교량으로 연륙되어 차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많은 이들이 유배생활을 보낸 섬으로, 전남 지방의 30개 국가지정 어항 가운데 하나인 수품항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섬의 모양은 북, 남, 동쪽 세 방향으로 반도가 돌출한 형태로, 산줄기는 돌출된 반도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특히 서쪽 산자락 해안에 발달한 2km에 이르는 해식애(海蝕崖)가 장관을 이룬다.

 

 

산행은 수품항에서 시작한다. 항구 안쪽의 마지막 민가(民家) 옆 골목길 입구에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 우측에는 ‘아기밴 바위’가 일출 전망대(日出 展望臺)로 뛰어나다고 소개하는 또 하나의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마다 아래편에 ‘난·분재 채취금지’라고 적는 것을 보면, 아마 이곳이 춘란(春蘭)의 자생지인가 보다. 안내판 옆 작은 소로를 따라 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설혹 이정표가 없더라도 등산로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진도군에서 가벼운 산책코스인 ‘웰빙 등산로’를 조성했다고 들었는데 맞는가 보다.

* 접도 9경중 제일이 임중암동춘란향(林中暗動春蘭香)인 것을 보더라도, 이곳은 봄이 되면 섬 어디서나 춘란을 볼 수 있고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란다.

 

 

 

 

산행이 시작되면 이곳이 왜 ‘웰빙 등산로’라고 불리고 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산은 높지 않고 길은 보드랍다. 말 그대로 가벼운 산책로라 보면 틀림없다. 천천히 걸어 15분이면 일출전망대로 알려져 있는 아기밴 바위가 나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출시간을 조금 넘겨버렸다. 수면(水面)을 박차고 뛰쳐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해는 수줍은 듯 구름 속에 숨어있다. 왼편 수품항의 새하얀 가로등 불빛은 다가오는 여명 속에서 마지막 숨결을 내뿜고, 금방 뜬 햇살은 저 멀리 바다를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곱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아기밴 바위에서 돌아 나오다가 왼편 해변으로 내려선다.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진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기 위해서이다. 경사(傾斜)가 급하기 때문에 걷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상큼한 바닷바람을 듬뿍 마시다보면 조그만 두려움 정도야 금방 사라져버리고 만다.

 

 

 

 

해안(海岸)의 바윗길이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게 서버리면, 해안선을 벗어나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된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는 길은 거칠다. 잡목 가지에 두어 번 뺨을 맞다보면 어느새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어른 키를 넘길 정도로 큰 돌탑이 서있는 아홉봉이다. 아홉봉은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는데, 주변 섬의 아홉 개 봉우리가 잘 보이는 전망대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아홉봉을 둘러보고 수품항 쪽으로 나오다가, 여미 방향으로 내려서면 ‘제일수산’으로 연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가 ‘제1코스’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위로 오르면 널찍한 주차장이 조성된 고갯마루에 닿는다. 산행안내판이 서있는데, ‘제2코스’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제2코스 입구에는 산행안내판 외에도 커다란 이색적인 표석(標石)이 하나 세워져 있어,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체력(體力)은 국력(國力)’이라는 문구 대신에 ‘체력은 정력(精力)’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래 건강한 내가 있고 나서야, 나라도 있을 것이니 맞는 표현일 것이다. 걷는 운동은 하체(下體)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하체가 튼튼해지면 정력은 자연스럽게 강해질 것이니, 과연 오늘 산행은 내 정력을 얼마만큼 더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인가?

 

 

 

남쪽에 있는 제일수산의 양식장(養殖場)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면 이내 쥐바위이다. 양식장은 제법 큰 규모인데,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인 듯, 이미 황폐화(荒廢化) 되어있다. 쥐바위를 오르는 가파른 사면 직전에 갈림목이 있다. 얼핏 보면 오른편으로 난 길이 우회로(迂廻路) 같지만, 남망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먼저 쥐바위부터 둘러보고 남망산으로 가기 위해 바위 위로 오른다. 쥐바위 정상은 뛰어난 조망처(眺望處)이다. 다도해(多島海)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마치 돛단배인양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쥐바위에서 내려서서 남망산으로 향한다. 능선은 안부를 향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을 만들고 있다. 오르막의 끄트머리에서 바위 위로 치고 오르면 남망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정상이라는 공식적인 상징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길손들이 만들어 놓은 듯, 허접한 돌탑 하나가 쌓여 있고, 그 위에 놓인 넓적한 바윗돌에다 누군가가 매직펜으로 남망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남망산 정상은 서쪽 바다의 조망(眺望)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이 오늘 걷는 능선 중에서 가장 높다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의미이다.

 

 

 

 

남망산 정상을 둘러보고 나면 다시 쥐바위로 돌아나와야 한다. 오늘의 메인이벤트 (main-event)인 주능선은 쥐바위에서 해안선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쥐바위를 거쳐 서쪽 주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야생화·야생초 시험장’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어서 나뭇가지에 구실잣밤나무와 소사나무의 등의 이름표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주위는 짙은 동백나무 숲으로 변해있다.

* 오늘 걷고 있는 이곳은 진도(珍島). 그 유명한 진돗개(犬)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려는 듯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우리화 함께 걷고 있는 잘생긴 저 개도 그 유명한 진돗개이겠지? 이 개는 오늘 산행 중에 가장 경관이 뛰어나다는 솔섬까지 우리를 안내해 준 후부터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눈에 띄지 않았다.

 

 

 

 

12간지(干支)나무, 가지가 12개가 있어 12간지나무로 불린단다. 밑동에서부터 12개의 가지로 나눈 나무에는 가지마다 자, 축, 인, 묘 등 12개의 간지가 적혀있다.

 

 

‘12지(十二支)나무’를 지나면서 숲은 울창해진다. 능선에는 후박나무, 동백나무, 소사나무, 모새나무(요건 이번에 처음 보았다), 구실잣밤나무 등 다양한 난대(暖帶) 상록수가 빼곡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름표들을 이곳에는 동백나무 다음으로는 소사나무가 많은가 보다. 극심한 가뭄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는 소사나무는, 남도사람들의 기질을 쏙 빼다 닮았다고 한다.

 

 

 

 

금갑진성 조군만(造軍幕)터와 특징 없는 병풍바위를 지나면 또 하나의 명물이 길손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사랑의 숲’이다. 남녀의 성행위(性行爲)를 연상시킨다는 ‘사랑하는 나무’와 사랑의 메신저(messenger)라는 연리목(連理木 : 두 나무의 줄기가 서로 맞닿아 결이 통하는 것)이 보이고, 그 곁에 ‘남성 느티나무’와 ‘여성 느티나무’가 남녀의 심벌(symbol)을 닮은 형상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서 있다.

 

 

 

 

 

사랑의 숲을 지나서 조금만 더 걸으면 ‘선달봉 망(望)터‘이다. 옛날 금갑진성에서 근무하던 선달이 죽은 뒤, 이곳에다 묘(墓)를 썼단다. 그러다가 후손들에 의해 묘는 이장되고, 이곳은 요 아래 조군막터에 근무하던 군사들의 망(望)터로 사용되었단다. 망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섬 주위로 쏟아지고 있는 햇살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풍광(風光)은 조물주(造物主)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이다. 인간이라면 제 아무리 뛰어난 화공(畵工)도 저런 그림은 결코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거북바위와 병풍바위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솔섬바위로, 왼쪽으로 내려서면 말똥바위로 이어진다. 두 곳을 모두 돌아보려면 먼저 솔섬바위를 둘러본 후, 해안선(海岸線)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오른 후 능선을 타고 말똥 바위를 다녀오면 된다. 두 곳 모두 멋진 해안 절벽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솔섬바위 올라 빼어난 다도해(多島海) 풍경(風景)에 심취되었다가, 문득 깨어나 보면 왼편으로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꽤나 가파른 경사(傾斜)를 만들어내면서 길게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 끄트머리가 작은여미 해안이다. 이곳에서 대도전을 촬영했다는 안내문이 이정표에 적혀있다. 작은여미 해안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직각으로 곧추 뻗은 암벽은 수천만 년 세월에 씻겨 장엄한 비경을 보여준다. 해안선(海岸線)을 이루고 있는 절벽은 반도가 돌출한 형태로서, 온통 해식애(海蝕崖)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부근의 해식애가 접도에서 가장 장관을 이루는 구간이다.

 

 

 

 

 

 

 

 

해식애를 둘러보고 난 후에는 해안선을 따라 말똥바위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바닷물 때문에 말똥바위 아래까지는 다가갈 수 없다.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즈음에 왼편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말똥골짜기를 따라 통나무 계단이 깔려있다. 등산로는 짙은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말똥골짜기를 따라 안부로 올라선 후, 오른편 능선을 따라 걸으면 이내 말똥바위에 다다르게 된다. 말똥바위에서 바라보는 솔섬바위 경관(景觀)이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날씨에 따라 자연이 베푸는 특별이벤트(event)를 감상할 수 있다. 빛살이 구름을 뚫고 바다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산행 날머리는 제일수산 앞 주차장(駐車場)

말똥바위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와, 여미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여미해안이다. 여미해안은 오늘의 웰빙(well-being)산행 중에서도 손꼽히는 구간인 맨발체험구간이다. 오늘 산행의 말미를 해안(海岸)가를 맨발로 걷다보면, 5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쌓인 피곤함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는 구간이다. 해안의 바윗돌이 끝나서 다시 신발을 신을라치면 이내 제일수산의 주차장에 닿아 있다.

 

 

 

 

 

귀경길에 소치 허유 선행의 생가인 운림산방 (雲林山房)에 잠깐 들렀다.

* 운림산방 : 운림각(雲林閣)이라고도 하며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옆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가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은 운림각이라고 지었고 거실은 묵의헌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연못을 만들고 다양한 화훼와 임목을 심었다. 하지만 허련이 사망하고 아들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면서 매각되어 운림산방의 연못과 가옥은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렸다. 이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운림산방을 다시 사드렸고 1982년 허형의 아들 허건이 운린산방의 예전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992년과 1993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철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지었다 한다.

 

 

 

 

 

 

 

 

 

가거도 독실산(犢實山, 639m)

 

산 행 일 : ‘11. 10. 30

 

일 정 : 10.30(일) 06:30 홍도 출발

08:00-13:00 가거도 도착 및 독실산 등반

산행코스 : 대리항→하늘공원→달뜬여→벙커→삿갓고개→독실산→임도→대리항(산행시간 : 3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가거도'의 다른 명칭인 '소흑산도'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의 명칭(名稱)이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가히 살만한 섬'이란 뜻의 '可居島'로 불리게 된 것은 1896년부터라고 한다. 마을은 1구 대리, 2구 항리, 그리고 3구 대풍리 등 3개의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는데 인구는 약 400여명, 그 중 대부분은 1구인 대리에 모여 살고 있다. 주민(住民)들의 주요 수입원(收入源)은 어업(漁業)인데, 찾아오는 관광객(觀光客)들이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민박집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홍도를 출발한지 1시간30분 쯤 되면 가거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바다가, 가거도에 가까워지면서 파도(波濤)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탄 배는 높은 파도를 따라 춤을 추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한다.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면 아마 뱃멀미를 참을 수 없나보다. 고개를 돌려본다. 다행이 집사람은 멀미기색이 없다. 멀미약을 마시고, 거기에다 귀미테까지 붙인 효과가 있나보다. ‘조금만 참으세요. 5분 후면 항구에 도착합니다.’ 남해 퀸‘ 선원(船員)의 안내에 모든 승객들의 희색(喜色)이 완연(完然)해진다.

 

 

높은 파도를 뚫고 들어온 가거도 대리항은 예상과 달리 물결이 잔잔하다. 바다라기보다는 하나의 호수(湖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잔잔한 수면(水面)과는 달리 방파제(防波堤) 위에는 지난번 태풍 때 망가진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방파제를 만드는데 27년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이번에 보수할 때에는 어떤 태풍(颱風)에도 끄떡없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배에서 내려 전면에 보이는 절개지(切開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대한 절개지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오름길은 나름대로 운치(韻致)가 있다. 이 절개지는 방파제(防波堤)를 만들면서 개발한 석산(石山)의 한 면(面)에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절개지 밑은 가거도의 명물(名物)인 동개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의 몽돌 해변(海邊)과 그 끄트머리에 있는 ‘마법의 성’처럼 우뚝 솟아오른 바위가 무척 인상적이다.

 

 

 

 

 

절개지(切開地)를 오르면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이정표 너머로 대리항과 회룡산의 바위봉우리들이 절묘(絶妙)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면 한층 더 뛰어난 조화를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風景)은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처럼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절개지 위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새하얀 억새꽃들의 군무(群舞), 육지에서 만나게 되는 억새꽃 명산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면서도, 화려하게 피어있다. 바람 부는 대로 춤추는 억새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오른다. 어른 키보다 큰 억새 춤에 동화되어버린 듯, 내 몸도 저절로 따라 흔들린다. ‘벌써 가을이 깊어가는구나.’ 가을이 몸과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가거도의 전체 면적(面積)은 여의도와 엇비슷하다. 그런 작은 섬인데 한복판에 해발(海拔) 639m에 이르는 독실산이 우뚝 서있다. 서울 남산보다 2.4배 이상 높을뿐더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多島海 海上國立公園)에 있는 수많은 산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높다. 그러니 가거도는 평지가 있을 수 없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가거도는 하나의 산으로 보인다. 이는 섬과 독실산이 하나라는 얘기이다.

 

 

 

억새밭을 지나고 나면 산길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등의 상록수(常綠樹)들로 울울창창(鬱鬱蒼蒼)하다.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해뜰목을 가는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은 숲 길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고 있다. 고개를 내밀어 본다. 안내판 넘어 저만큼에 해뜰목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을 달뜬목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달뜬목에서 독실산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숲길은 청량(淸凉)하기만 하고, 심심찮게 나타나는 바윗길은 긴장감을 떨쳐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 나타나는 조망대에라도 올라설 것 같으면, 저 만큼 멀리 해안선에 빈주암 절벽(絶壁)이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버티고 있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채로 방치되어 있는 벙커지역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온다. 체력(體力)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대리항(港)으로 내려가는 탈출로이기 때문이다.

 

 

 

가거도를 종주하다 보면 후박나무가 흔하게 보인다. 후박나무 껍질은 건위(健胃), 강장(强壯)에 특효가 있는 한약재로 쓰이고, 말린 후박피를 끓여서 보리차처럼 마시면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이나 소화불량(消化不良)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가거도에서 생산하는 후박피 양이 국내 전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니, 가거도 주민(住民)들의 생계(生計)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삼거리를 지나도 지나온 길과 다름없는 느낌의 산길이 이어진다. 후박나무 우거진 상록수(常綠樹) 숲은 짙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고, 해안(海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기만 하다. 간혹 나뭇가지 사이로 열리는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슬며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바다는 쪽빛으로 빛나고 있다. 어쩌다가 보이는 길쭉한 해안선에는 가파른 해안절벽이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기나긴 능선이 끝나면 대리에서 대풍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시멘트포장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삿갓재이다. 임도는 이곳에서 삼거리를 만들고 있는데,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대항리로 가게 되고, 곧바로 진행하면 독실산 정상이 있는 군부대(軍部隊)까지 연결된다. 삼거리를 지나 10m정도 더 올라가면 왼편에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이나, 구태여 산길로 접어들 필요는 없다. 등산로도 희미할 뿐더러, 거칠고 험하기만 할뿐, 볼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왼편 등산로를 따라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또다시 군부대로 오르는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를 따라 곧장 올라왔더라면 거친 산길에서의 고생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철문(鐵門)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해군(海軍)의 시설물인 ‘가거도 레이더기지’이다. 문 옆에는 ‘독실산 하늘별장’이라는 나무간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하늘 별장’이란 이곳 레이더기지의 애칭(愛稱)이란다. ‘정산악회에서 오셨나요?’ 누군가가 미리 조치를 취해 놓았는지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軍人)이 친절하게 독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독실산 정상은 군부대(軍部隊)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군부대로 들어서서 우측에 보이는 계단(階段)을 따라 조금 오르면 이내 독실산 정상이다. 정상에도 군시설(軍施設)이 자리하고 있고, 그 곁의 바위 위에 독실산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시설을 지키고 있는 군인이 친절하게도 카메라 셔터까지 눌러준다.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바위는 좁기 때문에, 옆에 있는 건물의 옥상이 조망대(眺望臺)를 대신하고 있다. 대풍리 방향에 빈주암 절벽(絶壁)이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실산 정상에서 내려와 군부대(軍部隊)의 정문을 나선 후에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곧장 걸어 내려 가야한다. 아까 지나왔던 대항리 갈림길을 지나서 한참 더 걸어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항리마을에 닿게 된다. 또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 정도 터벅거리다보면 대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회룡산의 암릉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전면 발아래에는 대리 항구(港口)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역시 머나먼 남쪽 섬, 항구에는 우리가 타고 온 배 한척이 외롭게 떠있을 따름이다.

 

 

 

기나긴 시멘트 포장도로와의 싸움 끝에 드디어 대리항(港)이 눈앞이다. 이때 대리 방향에서 트럭 한 대가 임도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금방 우리부부 옆에 도착한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산악회 정회장님, 우릴 보고 무조건 타란다. 절대 후회(後悔)할 일이 없을 터이니 고민하지 말고 타라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우리부부는 예정에 없었던 항리마을로 향했다. 항리마을은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撮影地)로 잘 알려져 있고, 강호동의 ‘1박2일’이 이곳에서 촬영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어떻게라도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정회장님 덕분에 우연찮게 들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그래서 내가 정회장님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항리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도로는 경사(傾斜)가 심하기 때문에 웬만한 승용차는 다니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도로(道路)의 왼편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비록 나무들이 우거졌지만 행여나 차(車)라도 구를 경우에는 바다로 직행(直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주요 운송(運送)수단이 트럭인가 보다. 가슴을 조이며 달리길 10분 정도이면 드디어 항리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섬등반도의 목덜미 부분에 해당하는 항리 마을은 이름도 지형(地形)상 생김 그대로 목 항(項) 자를 쓰고 있다. 항리마을에 도착하면 평소 우리 주위에서 보기 힘든 경관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대표적 명물인 구릉(丘陵)은 두 말할 나위가 없지만, 구릉의 왼편 까마득한 절벽(絶壁)아래 해안까지 이러지는 계단도 평소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나무테크 계단(階段)이 해안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있는데, 계단의 맨 아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길이가 길다.

 

 

 

가거도의 해안(海岸)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절경(絶景)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섬등반도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서 공중에서 바라볼 경우 완벽한 반도지형을 그려낸다고 한다. 작은 암봉과 푸른 초원으로 이루어진 섬등반도는 폐교(廢校)와 근처 폐가(廢家)들의 집모양만 빼면 영락없는 이국적(異國的) 풍경이다. 오래전에 업무 때문에 들렀던 스코틀랜드의 북단에서 보았던 구릉(丘陵)을 연상시키고 있다. 구릉에서 뛰어 놀고 있는 염소 한 마리, 같이 간 아낙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염소 옆으로 향하고 있다. 주민들이 풀어 키우던 흑염소들이 언제부턴가 야생(野生)으로 변했고, 지금은 가거도에서 어엿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항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이다. 절벽 위에 올라 앉아있는 민박집 방안에서도 해넘이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가거도는 홍도의 명성(名聲)에 가려 관광지(觀光地)로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절벽(絶壁)이 어우러지고 있는 광경(光景)은 홍도보다 더 나았지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홍도보다 훨씬 더 빼어난 자태(姿態)이네요’ 집사람도 나와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觀點)이 다르겠지만, 나와 내 집사람의 눈에는 홍도보다 더 멋진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항리부락에서 3구인 대항리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선다.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를 찍은 몇 채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집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살지 않아 폐가(廢家)로 남아 있다. 영화를 찍었던 흔적까지도 폐가로 변한 집주인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가져가버린 듯 영화촬영의 흔적(痕迹)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강호동의 '1박 2일'이 놀았던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빈 뜰에 그저 무성하게 자란 잡초(雜草)들만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오후 1시 정각에 ‘남해 스타’호는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남겨둔 채로 가거도를 출발한다.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배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얼마나 파도(波濤)가 거친지. 우리가 탄 배가 제법 커다란 배인데도 공중으로 붕 떴다가 떨어지는 것이 숫제 ‘파도타기’ 수준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성(奇聲)들, 대부분이 날카로운 소프라노들인 것을 보면 여자 분들이 내지르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겁에 질려서 내지르는 소리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괴(奇怪)한 외침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그 소리 지름은 결코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스릴을 즐기면서 외치는 환호성(歡呼聲)이었던 것이다. 누가 여자를 보고 약하다고 했던가? 겁에 질려있는 나를 비웃듯이, 나름대로 위험(危險)을 즐기고 있는 저런 여자들을 보고 말이다. 거친 파도가 뒤에서 배를 밀어주었는지, 4시간30분이 걸린다는 목포까지의 뱃길을 3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도(紅島) 유람선 투어

 

일정

10,29(토) 15:30 흑산도에서 홍도로 이동

                       * 유람선을 이용하여 홍도해안선 순회 투어(소요시간 : 2시간30분)

10.30(일) 06:30 가거도를 향해 홍도 출발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흑산도를 출발한 쾌속선(快速船)은 30분 만에 홍도의 북항(北港)에 닻을 내린다. 배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집사람이 흔들어서 깨어보니 어느 틈에 벌써 홍도에 도착해 있다. 아마 흑산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飯酒)로 들이킨 술이 제법 되었나 보다. 아니 칠락산을 오르면서 인연(因緣)을 맺은 아주머니들과 술잔을 나누는 재미에 과음(過飮)으로까지 치닫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홍도는 마을을 1·2구로 나누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산을 오를 목적으로 마을을 벗어날 경우에는 카메라와 물병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단다. 섬에서 자생하고 있는 ‘난(蘭)’과, 섬 특유의 돌을 섬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또한, 이곳에서는 주민(住民)들조차도 돼지나 닭 등 가축을 못 키운단다. 그만큼 이 섬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매화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해서 ‘매가도(梅加島)’라고도 불렸던 홍도는 작은 섬이지만 33경을 내세울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낙원(樂園)을 떠올리며 도착한 홍도의 첫인상은 충격적이다. 보이는 것이 온통 여관(旅館)이다. 음식점들까지 산 중턱을 따라 닥지닥지 붙어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지정되어 있고, 인위적(人爲的) 개발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일까?

 

 

 

홍도에 도착하자마자 유람선(遊覽船)으로 옮겨 탄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다이다. 그만큼 유람선을 타지 않고서는 홍도의 참맛을 알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홍도는 역시 유람선 관광(遊覽船 觀光)이 으뜸. 섬을 둘러친 기암괴석은 멀리서 보면 꼭 거대한 분재 같다. 2시간30분짜리 유람선관광에 나서면 가이드의 구성진 목소리를 따라 갖가지의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만물상, 거북바위, 도승바위, 남문바위, 기둥바위, 주전자바위 등등... 검푸른 바다 위에 솟은 붉은 때깔의 바위는 유람선(遊覽船)이 만들어내는 각도(角度)에 따라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불쑥불쑥 뛰쳐나온다.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歎聲)이 흘러나온다. 눈길 주는 곳마다 선경(仙境)이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유람선(遊覽船) 가이드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홍도의 아름다움을 늘어놓는다. 바위섬 하나하나에 감상 포인트와 전설(傳說)까지 들려준다. 이내 남문바위가 보인다. 홍도 제1경으로 바위섬에 구멍이 뚫려 있다. 소형 선박(船舶)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데, 이 석문(石門)을 지나간 사람은 1년 내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해진단다. 이곳 주민(住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어민(漁民)들이니, ‘고깃배가 그 아래를 지나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전설(傳說)은 물론 보너스이다. 대문바위 앞에 서면서 가이드는 갑자기 선상사진관(船上寫眞館)의 영업사원(營業社員)으로 돌변해 버린다. ‘2만원’하는 사진 값이 저렴한 편은 아닌데도, 의외로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들은 많다. ‘와! 바다 속이 훤히 들어다 보이네요!’ 유람선을 타고 가며 집사람이 내지르는 탄성(歎聲)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의 절묘한 조화로 인해 바다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물이 맑고 투명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다 속 10m가 넘게 들여다보일 정도라고 한다. 물빛은 고운 청잣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거북바위, 탑바위, 연인바위, 병풍바위, 독립문바위 등등 이름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아직도 이름이 얻지 못한 바위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누울 때도 자리를 보고 누워라!’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곳에 누웠더라면 멋진 이름 하나 쯤은 거저 얻고도 남았을 만큼 빼어난 외모(外貌)를 가졌으면서도...  

 

 

 

 

 

 

 

 

 

 

 

바위들에 매료되다보면 슬그머니 해상(海上) 회집이 등장한다. 이곳 주민들이 조그만 배를 타고 유람선으로 다가와서 회를 떠 관광객(觀光客)들에게 파는 것이다. 가이드는 국내 최초의 바다 횟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그렇게 희귀한 횟집이라면, 한 접시에 3만원을 받는 회 값은 그리 비싼 가격(價格)은 아닐 것이다. 어제부터인가 선상(船上)에는 빠른 대중가요가 흐르고 있다. 다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있는데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무래도 필요 없는 것에 시간을 많이 지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분 이상을 지체시킨 유람선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독립문 바위 등 몇 군데를 생략(省略)하고야 만다. 유람선(遊覽船)에 탄 사람들의 목적은 하나라도 더 많은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가는 것인데도,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관광객들의 소망(所望)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상식(常識)을 벗어난 상행위(商行爲)가 극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말이다.

 

 

 

 

만물상(萬物相)이 끝나갈 즈음이면 가이드의 손끝이 위로 향한다. 바위 위를 보라는 표현이다. 바닷물을 뚫고 솟구친 바위들 위에 만고풍상을 이겨낸 해송(海松)들이 의연히 자리를 잡고 있다. 저 해송의 아래에는 몇 포기의 풍란(風蘭)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바위들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천연공원(天然公園)이 된다. 거기에 옛 얘기라도 하나 얹을 것 같으면 또 하나의 관광자원(觀光資源)으로 태어날 것이다.

 

 

 

 

 

 

 

홍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多島海 海上國立公園 : 천연기념물 제 170호>

전남 신안군 흑산면, 즉 대흑산 본섬의 부속 도서(島嶼)로서 매가도(梅加島)라고도 불린다. 해질녘에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고 하여 ‘홍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홍도는 본섬을 비롯한 20여 개의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범상치 않는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어, 남해(南海)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다도해국립공원의 수많은 섬 중 가장 아름다운 '보석(寶石)'으로 불리는 홍도는 목포항에서 서남쪽 115㎞에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홍도는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주봉인 깃대봉(해발 367m) 주변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 숲, 후박나무, 식나무 등 희귀식물(稀貴食物) 270여 종이 있으며 170여 종의 동물과 곤충이 함께 서식하고 있단다. 정부에서는 홍도의 원시 자연을 보전하기 위해 지난 1965년에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0호)으로, 1981년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런 아름다운 원시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홍도로 가는 배는 매번 관광객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유람선에서 내려 산악회별로 숙소로 향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싫은 우리 부부는 3만원을 더 내고 독실(獨室)을 배정받는다. 손발을 씻고 나니 허기(虛飢)가 동한다. 그러고 보니 주위가 어두워진지 이미 오래이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식당의 음식솜씨는 뛰어나지는 않지만, 한 끼의 저녁거리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선착장으로 밤마실(밤에 놀러 다닌다는 북한지방의 사투리)을 나선다. 섬에 들어올 때 봐 두었던 횟집에 들르기 위해서이다. 회 한 접시 시켜놓고, ‘홍도야 울지 마라.’라는 유행가라도 들으면서 술 한 잔 들이킨다면 이보다 더한 호사(豪奢)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노래가사의 홍도와 이곳의 홍도는 무관(無關)하지만 말이다. 집사람이 좋아하는 해삼 한 접시와, 내가 좋아하는 소라 한 접시를 시켜놓고 기울이는 소주 한 잔,,, 관광지이니 당연히 비쌀 것이라는 선입감(先入感)이 무색하게 회 값은 저렴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밀어(密語)를 나누는 이 시간, 이것이 바로 신선(神仙)놀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소주잔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낮부터 함께 술잔을 나누던 여자 분들이 약속을 잊었는지 도통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별수 없이 집사람이 따라주는 술잔으로 객고(客苦)를 풀어 볼 따름.... 그렇게 홍도의 밤은 깊어만 갔다.

 

 

5시30분에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부부 2사람이 앉은 밥상에는 밥이 나오지를 않고 있다. 한 상에 4명이 앉기 전에는 밥을 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막무가내(莫無可奈)이다.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지만, ‘너무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는 이내 가거도 가기 위해 또다시 '남해 퀸'호에 승선(乘船)한다. 씁쓸하고 불쾌한 이미지를 뒤에 남겨두고서...

 

 

 

 

 

 

흑산도 칠락산(七落山, 272m) - 홍도 - 가거도 독실산(犢實山, 639m)

 

산행일 : ‘11. 10. 29-30

 

일정

10.28(금) 23:00 서울 출발

10.29(토) 04:30 유달산 등반

07:50 목포 출발

09:50 흑산도 도착~칠락산 등반

15:00 흑산도 출발

15:30 홍도 도착~유람선 투어

10.30(일) 06:30 홍도 출발

08:00 가거도 도착~독실산 등반

13:00 가거도 출발

16:00 목포항 도착(서울도착 22:30)

 

함께한 산악회 : 정산악회

 

유달산에서 준비운동 삼아 몸을 풀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아직 사위(四圍)는 어둠에 쌓여있다. 화장실도 다녀올 겸 버스 밖으로 나온다. 렌턴 불빛에 비치는 안내판과 이정표, 어느새 목포의 유달산에 도착했었나보다. 정산악회 회장님께서 유달산 정상에 다녀올 것을 권한다. 정상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히 다녀올 수 있다고 하니, 구태여 버스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더해 누구 말씀인데 아니 따를 수 있으랴? 두말없이 산행(山行) 준비에 들어간다. 난 정회장님이 좋다. 꼭 여자분 이어서만도 아니다. 난 정회장님의 자상한 배려(配慮)가 좋고, 그녀가 만들어오는 만찬이 내 입맛에 딱 맞아서 좋다. 하긴 정회장님의 음식솜씨는 나 혼자만 반한 게 아니라 내 집사람도 매료된 지 이미 오래이다. 집사람이 먼저 정산악회 따라 산에 가자고 투정을 부릴 정도이니 말이다. 어둠을 뚫고 정상으로 향한다.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은 산이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정상을 거쳐 반대편의 노적봉 주차장(駐車場)으로 내려오니 서서히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있다. 그리고 버스 옆에는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와!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정회장님의 음식솜씨는 오늘도 결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목포항으로 이동, 우리를 태우고 갈 ‘남해 퀸’호(號)에 승선(乘船)한다. 정산악회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아니고 관광회사(觀光會社)에서 기획한 상품인 탓인지, 300석이 훨씬 넘는 1, 2층 선실(船室)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차 있다. 대전, 인천, 부산 등등 각기 다른 지역(地域) 이름이 적힌 리본들이 배낭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배는 7시50분, 정시에 출항(出港)한다. 선박 우측 유리창 너머로 유달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후에는 목포시 죽교동(북항) 과 충무동(신외항)을 잇는 목포대교 아래를 통과하고 있다. 목적지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 칠락산을 오를 체력을 비축(備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눈을 부쳐야 한다.

 

 

 

 

흑산도(黑山島)

우리나라 최서남단(最西南端) 해역(海域)에 위치한 섬으로,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다 해서 흑산도라 불린다. 섬의 면적은 19.7㎢로 신안군 흑산면의 소재지(所在地)일 정도로 제법 큰 섬이다. 대흑산도를 중심으로 한 인근의 영산도, 다물도, 대둔도, 홍도 등은 천혜의 관광보고(觀光寶庫)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多島海海上國立公園)에 속해 있다. 흑산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옛날에는 많은 인물들이 유배생활(流配生活)을 하던 섬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자 조선후기 문신인 손암(巽庵) 정약전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유배생활 15년 동안 근해(近海)에 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 155종을 채집하여 명칭, 형태, 분포, 실태 등을 기록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남긴바 있다. 자산(玆山)의 자(玆)는 검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자산은 곧 검은 산, 바로 흑산도에 있는 물고기들에 대해 기록했다는 뜻이다. 또한,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조선과 일본 간의 화의(和議)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던 고종 때의 문신(文臣) 면암(勉庵) 최익현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고 한다.

 

 

2시간을 달리면 목적지인 대흑산도 예리항에 닿게 된다. 우리일행은 여기서 두 팀으로 나뉘게 된다. 칠락산을 오를 사람들과, 흑산도를 둘러보는 관광(觀光)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는 칠락산 방향으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흑산도는 항상 홍도와 한 묶음으로 여겨져 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홍도로 가는 길목쯤으로 여겼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섬 전체가 국립공원에 지정된 흑산도에도 홍도에 견줄만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비록 관광차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이지만. 바위와 흙이 알맞게 섞인 이곳 칠락산 등반(登攀)은 제법 감칠맛 나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흑산도는 크고 넓기 때문에, 관광객(觀光客)만 북적이는 홍도와는 달리 한가롭게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어 좋은 섬이다.

 

 

 

칠락산 산행코스 : 예리항→샘골→전망대→삼거리→칠락봉→면사무소→예리항(산행시간 : 3시간)

 

산행이 시작되는 샘골 입구는, 예리항에서 해안선(海岸線)을 따라 이어지는 일주도로(一週道路)를 따라 700m 정도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일주도로 오른편에 있는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오르는 길에 잠시 뒤돌아보면 시원스런 바다가 펼쳐진다. 흑산도항 뒤쪽의 바다라고 뒷대목이라고 부른단다.

 

 

 

등산로는 바로 숲길로 이어진다. 길은 푸르다 못해 싱그럽기까지 하다. 상록수(常綠樹)인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보여주는 풋풋한 젊음은 아예 계절을 잊게 만들 정도다. 흑산도의 이름이 검도록 푸른 산에서 비롯됐다는데, 어쩌면 이런 숲길이 있어서 그리 불리게 되었나보다. 하늘을 덮은 상록수의 푸르름만 짙은 게 아니다. 바닥에 깔린 키 작은 풀(?)들의 초록이 유난히 더 짙다. 동백나무 잎 모양으로 두툼하면서도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흐르고 있다. 육지(陸地)에선 말라비틀어진 이파리들마저 모두 떨어져버린 지 이미 오래인데, 흑산도의 숲은 아직도 싱그러움으로 넘쳐나고 있다.

 

 

 

 

오르막이 계속되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경사(傾斜)가 심하게 가파르지도 않을뿐더러 길가 상록수들이 내뿜는 싱그러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이정표 : 1.26km) 남짓 지나면 드디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초록의 숲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드넓은 다도해(多島海)가 시원스레 펼쳐지는 것이다.

 

 

 

 

 

 

흑산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다. 능선은 동북(東北)에서 서남(西南)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바윗길을 밟으며 얼마간 능선을 걸으면 ‘칠락산 전망대(展望臺)’이다. 전망대에는 ‘칠락산은 어머니의 산’이라고 적힌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곁을 못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다. 전망대는 흑산항을 굽어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위에서 내려다 본 항구(港口)에는 어선(漁船)과 여객선(旅客船)들이 쉴 사이 없이 오가고 있다. 뱃길의 자국을 하얗게 만들어 내면서....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그 내리막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길은 다시 다음 봉우리를 향해 치닫는다. 이어지는 능선은 전형적인 흙산(肉山), 등산로 주변에 핀 억새꽃을 보고서야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깨닫는다. 길가에는 가을꽃들이 이제야 꽃술을 활짝 열고 있다. 역시 이곳은 따뜻한 남쪽나라, 이제야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빛이 완연한 능선(稜線)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에 삼거리에 이르게 만든다. 이곳에서 오른쪽의 샛길을 밟으면 흑산면사무소에 내려서게 된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칠락봉 정상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삼거리에서 칠락봉으로 가려면 우선 왼편 바위벼랑 아래를 지나야만 한다. 바위벼랑이 끝나면 나무테크로 만든 계단이 보이고, 계단을 밟고 능선에 올라서면 진행방향에 시원스런 암릉이 펼쳐진다. 위험구간이라는 '용요릉' 길이다. 각진 바윗길이 마치 용의 거친 허리에 오른 듯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칠락산의 암릉은 월출산처럼 화려(華麗)하지도, 그렇다고 설악산처럼 웅장하지도 않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면서도, 그렇다고 어디가 부족한지를 꼭 집어낼 수 없는 아기자기한 암릉미(巖稜美)를 보여주고 있다.

 

 

 

 

 

 

 

칠락봉 정상은 제법 널따란 분지(盆地)로 되어있다. 분지의 한 가운데에 정상표지목(頂上標識木)이 세워져 있지만, 인증(認證) 사진을 찍을 틈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를 거쳐 이곳으로 온 우리 일행 외에도 반대방향인 상라봉에서 올라온 산악회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시장바닥을 연상시킬 정도로 혼잡스럽다. 정상에서는 오늘 걸어온 능선들이 모두 조망(眺望)된다. 섬을 둘러싼 바다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정상에서 면사무소로 내려가는 삼거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상라봉으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산행대장의 강한 톤은,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 명령(命令)이기 때문이다. 고집을 부려볼 엄두도 못 내고 순순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상라봉을 못 보는 내 가슴 아픔이야 어디다 비기랴,,,

 

 

 

삼거리에서 면사무소(面事務所)로 내려가는 길은 발걸음을 내려딛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다. 거기다 흙길이다 보니 주위 경관(景觀)에 한눈을 팔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순하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따라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는 물론 아침에 흑산도에 들어설 때 들려오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이다. 내려서는 내내 눈앞에는 멋진 바다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왼편에는 구불구불 12구비로 틀고 있는 일주도로가 보이고, 전면에 펼쳐지는 예리항 앞 바다에는 파란 숲으로 우거진 여러 개의 섬들이 띠처럼 이어지고 있다. 저 멀리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서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는 여객선(旅客船)에는 푸른 꿈이 가득 실려 있을 것 같다.

 

 

 

 

능선을 내려서면 흑산면사무소, 면사무소(面事務所)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나오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진리 지석묘군’이다. 육지(陸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청동기시대의 지석묘란다. 지금까지 흑산도에서 확인된 유일한 지석묘(支石墓)로서 문화재자료(文化財資料) 194호로 지정된바 있다. 네모꼴이나 타원형의 덮개돌을 서너 개 정도의 지석들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6기(基)가 놓여 있다.

 

 

 

다시 돌아온 예리항, 부둣가에는 아침에는 못 보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해산물(海産物)을 팔고 있는 좌판(坐板)들이 늘어서있는 것이다. 팔고 있는 해산물은 오로지 전복 한 가지, 1Kg에 5만원인데, 크기에 따라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네 종류로 나누어 팔고 있다. 모처럼의 나들이, 거기다 사랑하는 집사람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싱싱한 전복을 안주삼아 마시는 소주, 싱그러운 바닷바람 덕분인지 도통 취할 줄을 모른다.

 

 

 

 

지리산 만복대(萬福臺, 1,433m)

 

산행일 : ‘11. 10. 15(토)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주천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성삼재(1,090m)→고리봉(1248m)→묘봉치→만복대→정령치휴게소(1,172m)→큰고리봉→고기리(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동강산악회

 

특징 : 지리산의 노고단에서 남원의 세걸산까지 이어지는 20Km의 능선(稜線)을 ‘지리산 서북능(西北稜)’이라고 부르는데, 서북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만복대이다. 만복대는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으로 유명하다. 시종 억새들이 반기고 있는 능선을 걸으면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장쾌(壯快)한 주능선을 바라보는 맛은 일품이라 할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성삼재 주차장(駐車場)

88고속도로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861번 지방도(地方道/ 구례방향)를 따라 달리면 남원시 인월면과 산내면을 거친 후, 구불구불 산굽이를 돌아올라 지리산을 종주(縱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행들머리인 삼는 해발 1,090m의 성삼재에 이르게 된다. 요즘은 새로 개통(開通)된 ‘완주-순천고속도로’의 구례 화엄사 I.C에서 내려와 구례군 광의면사무소를 거쳐 861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성삼재에 오르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이 코스를 이용할 경우 1인당 1천원의 입장료(入場料)를 내야만 하는 손해(損害)를 감수해야만 한다. 천은사라는 절에서 성삼재로 오르는 차도(車道)를 가로막고 막무가내로 입장료를 징수하기 때문이다. 천은사에 들르지 않고 그냥 성삼재로 오를 거라고 항변해보아도 막무가내다. 사찰(寺刹)소유 토지를 통과해야하니 통행료라 생각하고 돈을 내야한단다. 이건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원~~~ 그럼 스님들은 왜 남의 땅을 밟고 다니면서도 떳떳하기만 할까???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극치...

성삼재에서 남원방향으로 조금만(50m정도) 내려가면, 도로의 왼편에 만복대로 가는 등산로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북진할 경우 제2구간인 만복대코스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혀 지지 않을 추억(追憶)을 간직한 곳이다. 11년 전 제1구간을 마치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1년 중 가장 춥다는 1월 중순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엄동설한인데 눈이 무릎까지 차올라서 대절해온 관광버스가 이곳 성삼재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저 아래 심원마을에 주차하고 있단다. 눈 쌓인 빙판(氷板)길에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길 2시간, 산행을 마치고 2주일 동안을 우리는 시퍼렇게 멍든 무릎과 엉덩이에게 미안해야만 했다. 2월에 제2구간을 시작할 때는 출입이 금지된 이곳에 들어서기 위해 우린 모두가 잠든 새벽을 틈타 살그머니 철조망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누구나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산에 들어서면 주변은 온통 노랗고 빨간 색깔로 통일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간혹 계절감각을 잃어버린 나무들이 아직까지 파란 나뭇잎들을 힘겹게 매달고 있긴 하지만, 지금이 만추(晩秋)의 계절임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을 걷다보면 오른쪽 발 아래로 861번 도로가 지나고 있고, 왼편에는 구례군 산동면의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작은 헬기장 하나를 통과한다. 길가에 억새가 보이나, 잠깐 입맛만 다시게 만들더니 이내 사라져 버린다. 빨갛게 물든 나무들 사이를 헤치다가, 가팔라지는 산죽(山竹)군락지대를 통과한 후,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가쁜 숨 몇 번 내뿜으면 이내 고리봉 정상이다. 고리봉 오르는 길에서 억새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남짓 걸렸다.

 

 

고리봉에서 내려다본 성삼재 휴게소(休憩所), 휴게소 너머로 종석대가 보이고, 그 왼편에 노고단, 그리고 그 옆으로 반야봉이 우뚝 솟아 있다.

 

 

 

 

고리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선 후에는, 등산로는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어른들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산죽(山竹)을 헤치고 나가다 보면 어느덧 헬기장인 묘봉치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산수유축제로 유명한 산동면 상위마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정도가 지났다.(이정표 : 성삼재 3.1Km/ 만복대 2.2Km/ 상위마을 3Km)

 

 

 

 

 

묘봉치를 지나면 조금씩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만복대 능선은 어느 누구나 오를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묘봉치를 지나 다음 봉우리로 오르는 능선에서 다시 억새군락지(群落地)가 나타난다. 제법 풍요로운 꽃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지만, 그 범위는 별로 넓지 않다.  억새군락지를 지나면 등산로는 또다시 갈참나무 숲 아래를 지나게 된다. 이곳은 벌써 겨울의 초입(初入), 나뭇잎들이 다 져버린 빈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걸려있다. 갈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저 멀리 만복대가 바라보이고, 드디어 억새군락지가 시작된다.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더군요’ 산행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앞자리에 앉은 분이 하신 말씀이다. 그분 말씀처럼 많은 기대를 갖고 찾아온 만복대의 억새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명성산이나 민둥산처럼 화려하지도 않을뿐더러, 영남알프스와 같이 광활(廣闊)하지도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이름난 억새군락지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들의 얼굴들이 행복(幸福)으로 넘쳐나고 있다. 행복이 묻어날 정도로 뛰어난 억새밭이 아닌데도 말이다. 어쩌면 저 사람들은 다른 이름난 억새밭을 구경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긴 멀리서 찾아와 경관에 실망하고, 한숨 쉬어본들 자기만 손해일 것이다. 그럼 나도 웃어보자, 환호(歡呼)해보자, 그러자 주변의 억새꽃들이 따라서 활짝 웃는다. 그 웃음이 서서히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가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피어난 억새꽃은 10월 중순이면 전국(全國)의 산과 들을 새하얗게 뒤덮는다. 영남알프스의 재약산(載藥山)과 신불산, 정선의 민둥산, 포천의 명성산 등 유명한 억새 명승지(名勝地)가 많지만, 지리산의 서쪽에 우뚝 솟아오른 만복대의 억새꽃 구경도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곳이다. 다른 곳에 비해서 비록 그 크기나 화려함이 뒤떨어질지 몰라도 우리 민족(民族)에게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서 만나는 억새꽃은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복대 정상은 사방으로 탁 트여있다. 능선은 온통 하얗게 일렁이는 억새밭이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은 시골 초가집 지붕이나 여인의 가슴 곡선을 닮았다. 만복대 능선에 새하얀 억새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눈에 걸릴 것 없이 펼쳐지는 능선에 서서 파도(波濤)처럼 일렁이는 억새꽃을 바라본다. 억새꽃 물결 너머로 천왕봉과 가슴 시원한 지리연봉들이 일렁이고 있다. 이곳은 또 하나의 별천지이다.

 

 

 

억새군락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만복대 정상이다. 만복대 정상은 아무런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평범한 구릉(丘陵), 그저 능선상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밋밋한 봉우리일 따름이다. 정상에 서면 묘봉치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는 억새밭이 내려다보인다. 마치 고원(高原)의 분지(盆地)를 연상시키고 있다. 만복대의 특징을 들라면 맨 먼저 지리산의 조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름에 둘러싸인 산하(山河)는 도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저 진행방향인 정령치 쪽에 빼꼼히 솟아오른 큰고리봉을 제외하고는...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조금 못 되었다.(이정표 : 성삼재 5.3Km/ 정령치 2Km)

 

 

 

 

시원한 눈(眼) 맛이 일품인 만복대에 올라선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리산의 헌걸찬 산군(山群)들, 비록 짙은 구름사이로 숨어있지만, 저 산릉(山稜)을 힘차게 밟으며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면 당연히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또 한 번의 가슴떨림이 시작된다. 오른쪽 발아래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ㆍ달궁 마을이 놓여 있고, 왼편에는 봄이면 산천(山川)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산수유의 고장인 상위마을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늦봄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철쭉들이 만들어내는 ‘꽃 대궐’인 바래봉...

* 만복대(萬福臺) : ‘만(萬)’이란 현대사회처럼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전부의 개념이다. 따라서 만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복(福), 즉 복의 근원(根源)을 의미하고,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복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稜線), 강한 바람에 밀려 빈 공간을 만들어낸 구름사이로 잠깐이나마 시계(視界)가 열리고 있다. 저 멀리 고리봉과 노고단, 반야봉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어쩌면 천왕봉일 것이다.

 

 

정령치를 향하여 북서(北西)쪽으로 휘어지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정령치로 이어지는 길은 북동(北東)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밋밋한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서쪽의 요강바위를 거쳐 다름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능선은 산동면과 주천면의 경계(境界)이기도 하다. 정령치로 내려가는 능선을 걷다보면 지리산 서북능선에서는 만나기 힘든 바윗길을 몇 번 통과하게 된다. 바윗길이라고 해봐야 다른 바위산처럼 암릉 위를 걷는 것은 아니고, 기껏 흙으로 된 능선위에 커다란 바위가 몇 개 놓여있고,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정도이다. 그러나 지루하게 이어지던 흙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바윗길은 신선(新鮮)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 급경사(急傾斜) 내리막 잡목지대와 낙엽송(落葉松), 그리고 잣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오면 진행방향의 자그만 봉우리 위에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봉우리로 오를 수 있도록 통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으나 구태여 오를 필요는 없다. 봉우리 위에 올라봐야 조망(眺望)뿐만 아니라, 다른 볼거리도 일절 없으니까...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회하면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그 끄트머리에 ‘정령치 휴게소(休憩所)’가 있다. 만복대의 억새꽃 잔치가 빼어나다고 소문이 난 탓인지, 정령치 휴게소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목이나 축여볼까 해서 들른 휴게소는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데, 음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 가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정갈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참고로 정령치 휴게소에서는 막걸리와 소주 등 술을 팔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이 음료수로 생각하는 ‘캔 맥주’만 팔고 있을 따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2시간30분이 지났다.

 

 

 

정령치(正嶺峙) : 삼한(三韓)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숨어들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웠던 모양이다. 그는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八郞峙),서쪽 능선은 정씨(鄭氏) 성(性)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鄭嶺峙, 요즘은 正嶺峙라고 적고 있다), 동쪽은 황씨(黃氏) 성(性)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性)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였다고 해서 성삼재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휴게소 뒤편 전망대를 통과하여, 고리봉을 향해 나무계단을 올라선다. 정령치에서 큰고리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주변은 지리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자연탐방로(自然探訪路)를 조성해 놓았다. 잘 가꾸어진 잣나무 조림지(造林地)를 통과하면 개령암자터와 마애불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길과 잠깐 씨름하고 나면 드디어 큰고리봉(1305m) 정상이다. 콘고리봉 정상도 지리산의 산군(山群)들을 바라보는 조망(眺望)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대신에 ‘고리봉 1305m’이라고 쓰인 이정표(里程標)와 삼각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령치에서 이곳까지는 0.8Km, 넉넉잡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 정령치산성(山城), 고리봉으로 가는 능선에 올라서니 왼편에 성벽(城壁)을 쌓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오른편은 반반한 것이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너른 공터가 있다. 어쩌면 옛날 진한 왕이 이 근처에 피난을 와서 성을 쌓았다는 전설(傳說)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리봉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마룻금은 북서쪽으로 이어지지만, 우리가 하산지점으로 삼고 있는 고기리로 가려면 왼쪽 길로 내려서야 한다. 하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파르기 그지없는 흙길인데다가, 로프나 계단 등 안전장치(安全裝置)가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걸음을 내려딛기가 두려울 정도이다. 비록 힘든 하산길이지만 주변에 붉게 물든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잠시나마 피곤함을 잊어본다.

 

 

 

 

산행 날머리는 남원군 주천면 고기리

지능선 내리막길에서 만나게 되는 무덤을 통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무 숲길 왼편으로 하얀 비닐로프가 쳐져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저 로프 넘어는 산삼(山蔘) 채취(採取)구역일 것이고, 그렇다면 저 로프는 등산객들의 출입(出入)을 제한하는 금(禁)줄일 것이다. ‘처음에 본 곳은 백삼(白蔘)이 나는 지역, 그리고 조금 전에 지났던 곳은 홍삼(紅蔘)지역, 마지막으로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은 황삼(黃蔘)이 나는 지역일 것입니다.’ 백삼은 5~6년 근을 그냥 말린 것이고, 홍삼은 증기(蒸氣)에 쪄서 말린 삼(蔘)을 말한다. 그럼 황삼은? 물론 황삼이라고 불리는 삼은 없다. 왼편 소나무 군락지에 쳐진 비닐로프가 하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더니, 다음에는 노란색으로 변하고 있기에 같이 걷는 집사람에게 던진 조크였을 따름이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며 웃어주는 집사람이, 오늘 따라 더 예쁘게 보이는 것은 아마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소나무 군락지(群落地)가 끝나면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이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 끝에 737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 이(李)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지, 도로 옆에 그들의 공을 기리는 공덕비(功德碑) 몇 개가 늘어서 있고, 효자비(孝子碑)는 전각(殿閣)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큰고리봉에서 고기리까지는 3Km,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