쫒비산(536.5m)

 

산행일 : ‘14. 3. 30()

소재지 : 전남 광양시 진상면과 다압면의 경계

산행코스 : 관동마을게밭골재갈미봉(519.8m)쫒비산능선삼거리청매실농원섬진마을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쫓비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던 이름 없는 산이었다. 산이 별로 높지도 않을뿐더러, 전형적인 육산(肉山=흙산)의 특성 상 산세(山勢) 또한 보잘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광양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은 매화축제의 영향이다. 머나먼 매화마을까지 찾아와 매화구경 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은 사람들이 자투리시간을 때우기 위해 쫒비산을 오르기 때문이다. 산행과 매화구경을 함께하는 매화산행이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낸 장본인(張本人)이다.

 

 

산행들머리는 관동마을(광양시 다압면 고사리 538-5)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면으로 달리면 화개장터로 유명한 화개면소재지(面所在地 : 탑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大橋를 건넌 후 861번 지방도(섬진강 매화로)를 따라 광양방향으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관동마을이 나온다. 도로변에 인근 산들의 등산로를 그려 넣은 커다란 관동마을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은 마을안내판 옆으로 난 마을길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 50m쯤 더 내려가다 오른편으로 들어서도 된다. 두 길은 금방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을안내판을 보면 이곳에서 개밭골로 오른 후, 갈미봉과 쫒비산을 거쳐 청매실축제장이 있는 매화(섬진)마을까지는 10.7Km,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관동마을을 통과하자마자 곧바로 매실농원 사이를 지나간다. 오른편이나 왼편, 그 어디를 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매화나무뿐이다. 왜 이곳 다압면을 매화의 고장이라고 부르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어디에도 매화꽃은 보이지 않는다. 말라비틀어진 꽃잎마저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꽃이 저버린 지 이미 오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꽃구경이 아니고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의 산행에다 포인트(point)를 맞추어야할 것 같다. 들머리에서 300m남짓 걸으면 첫 이정표(쫒비산 6.0Km, 매봉 7.3Km)를 만나게 되나 큰 의미는 없다. 갈림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쫒비산까지의 거리를 알려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첫 이정표를 지나고서도 매실농원은 계속된다. 그러다가 매실나무단지가 끝나면서 감나무단지가 나타나더니 이내 오른편에 농가(農家)가 하나가 나타난다. 농가 앞에는 유기농 명인이라는 큰 간판(看板)이 달려있다. 전라남도에서 인증(認證 : 8)까지 한 것을 보면 확실히 요즘의 대세는 유기농(有機農)인가 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쯤 지나면 시멘트포장이 끝난다. 그러나 길의 폭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감나무농원 사이로 난 농로(農路)를 지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중간에 별 의미 없는 이정표(쫒비산 5.2Km, 매봉 6.5Km/ 관동마을 1.3Km)를 하나 더 지나고 나면 정자(亭子)가 나타난다. 비록 과수원(果樹園)의 안에 지어져있지만 주변에 심어져 있는 과일나무들이 감나무인 것으로 보아 쉼터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자에서는 관동마을과 섬진강이 또렷하게 내려다보인다.

 

 

 

 

정자 근처에서 또 하나의 의미 없는 이정표(쫒비산 4.9Km, 매봉 6.2Km/ 관동마을 1.6Km)를 만난 농로는 얼마 안 있어 끝을 맺는다. 물론 과수원도 이곳에서 끝난다. 농로가 오솔길로 변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서 21분 정도 지난 지점이다.

 

 

오솔길로 접어들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숨을 헐떡이게 만들지만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연록으로 물들어가는 주변의 나무들이 보는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가 나뭇가지들에 초록빛 물감이 수런수런 번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래 자취를 감추었던 빛깔이 다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없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어느새 계절을 알아보고 물감을 풀고 있는 저런 모습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니겠는가. 앙상한 가지에서 새 움이 트는 것을 보면서, 그 신기함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배워본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능선 안부인 게밭골재(이정표 : 쫒비산 3.9Km, 매화마을 7.5Km/ 매봉 5.2Km, 백운산 정상 9.6Km/ 관동마을 2.5Km)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1분이 지났다. 게밭골재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가면 매봉을 거쳐 백운산으로 가게 되므로, 쫒비산으로 가려면 당연히 왼편에 보이는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갈미봉까지는 다시 한 번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야 한다.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되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들이 심심찮게 길가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밭골재에서 갈미봉까지는 0.6Km, 대략 16분 정도가 걸린다.

 

 

 

뾰쪽한 산봉우리 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넓은 정상은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정상에서의 인증사진(認證寫眞)이라도 찍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인증사진을 찍는 그 조그만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인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표지판 둘레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산에 대한 예의를 먼저 배우고 나서 산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고집일까?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임을 알려주는 상징물(象徵物)’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런 상징물 앞에서 퍼질러 앉아 먹자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사진촬영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날의 산행은 즐거움보다는 짜증스러움으로 변해버릴 것이 뻔하다.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구호지점안내판(관리번호 : 5-26)을 정상표지판 대신 카메라에 담고 쫒비산을 향해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긴다. 잡목(雜木)들로 인해 조망(眺望)조차 허락하지 않는 정상에서 구태여 짜증나는 사람들과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갈미봉에서 급하게, 그러나 짧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 산길은 이후에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범하게 이어진다. 가끔가다 중간 중간에 험하지 않은 바윗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산행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정도이다. 산길은 왼편에 섬진강을 그리고 오른편에는 억불봉에서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사이에서 평행선을 긋듯이 길게 이어진다.

 

 

길가다 만난 바위, ‘아니 제 눈에는 거북이로 보이는데요.’ 내 눈에는 누에로 보이는데도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김선생님의 눈에는 거북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런 게 바로 삶이 아닐까 싶다. 같은 사물(事物)일지라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觀點)에 따라 달리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런 개성(個性)의 차이가 바로 삶일 테니까 말이다.

 

 

 

 

 

밧줄이 매어진 암릉구간을 치고 오르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그러나 곧장 오른편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왼편으로 5m정도만 나아가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眺望)이 트이는 멋진 바위전망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쪽의 억불봉은 쌍봉으로 나타나고, 억불봉에서 백운봉을 향해 달려가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는 백운산에서 이어지는 매봉과 갈미봉이 또렷하다.

 

 

 

 

 

 

전망대를 지나면 능선은 별 특징이 없는 그렇고 그런 산길이 계속된다. 능선은 고저(高低)가 거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이 계속되고,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조망(眺望) 또한 일절 트이지 않는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능선이지만 오늘만은 예외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봄의 전령사(傳令使)라는 매화꽃을 보러 왔는데, 매화꽃은 보지 못하고 또 다른 전령사인 진달래꽃을 만나게 된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산행을 이어간다.

 

 

 

 

갈미봉에서 쫒비산까지는 3.2Km, 1시간10분이 걸렸다. 그다지 험하지 않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눈요깃거리가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눈요깃거리는 바로 진달래꽃,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과 눈 맞추느라 발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쫒비산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眺望)도 탁 막혀 있는 것이 갈미봉 정상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쫒비산이라는 산의 이름이 산의 모양이 쪼삣(뾰족)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산에서 보는 섬진강의 물이 쪽빛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쫒비산에서 산행날머리인 청매실농원으로 가려면 우선 능선을 따라 토끼재로 향하다가 중간지점인 능선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정상에서 토끼재로 향하는 능선도 역시 순한 산길이 이어진다. 포근포근한 흙길인데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핀 진달래꽃에 눈 맞추며 느긋이 35(0.8Km)정도를 걸으면 청매실농원으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능선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1K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35분이 걸렸으니 이 구간에서도 산길이 편한 것을 핑계 삼아 느림보의 미학을 음미해 보았나 보다.

 

 

능선삼거리에서 청매실농원으로 방향을 틀면서 드디어 산길의 경사(傾斜)가 가팔라진다. 그리고 매화마을까지 꽤 길게(3.4Km) 이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얼마간 걸으면 드디어 눈앞이 시원스럽게 열리면서 섬진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매화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섬진강을 휘감아 도는 언덕배기에 앉아있는 매화마을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하다. 아니 너무 무르익어버렸나 보다. 하얗다 못해 푸르른 빛을 띤 매화꽃이 만발했어야할 농원(農園)이 빈가지만이 남은 매화나무들뿐인 것을 보면 말이다.

 

 

 

 

농원(農園) 지역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웬 간판하나가 보인다. ‘작물에 손대지 마세요.’ 얼마나 많은 농작물(農作物)들이 등산객들의 손때를 탔으면 저런 문구까지 적어 놓았을까? 매주 주말마다 산을 찾는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사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농작물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에서이겠지만 하나둘 반복되다보면 막상 농작물의 주인들은 수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endif]--> 

 

 

농원(農園)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세트로 활용되었던 가옥(家屋)이다. 영화 취화선와 드라마 다모의 촬영지로 알려진 이곳 청매실농원은 두 작품 외에도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 장소로 사용된바 있다. 33나 되는 방대한 언덕에서 군락(群落)을 이루며 피어나는 매화꽃을 전국에서 으뜸으로 치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섬진마을(매화마을) 주차장

영화촬영지를 지나 꽃은 이미 져버리고 빈가지만 남은 과수원을 지나면 청매실농원이다. 농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려 2000개에 달한다는 옹기항아리, 매실장아찌와 장 등을 담아 놓은 항아리라고 한다. 농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빠져나오면 이내 마을앞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주차장 앞에 천막들이 즐비하고 호객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매화꽃 축제(祝祭)’는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꽃은 져버리고 없는데도 말이다. 며칠만 일찍 왔더라도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 아래에서 축제의 인파속에 나도 함께 휩쓸렸으련만 오늘은 아니다. 분위기를 타는 나로서는 꽃이 없이는 도무지 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로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지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매화꽃을 찾아왔건만 매화꽃은 보지 못하고 대신 벚꽃만 실컷 구경했다. 간천면(구례군)에서 청매실 농원이 있는 다압면으로 연결되는 도로가에 심어진 벚꽃나무들이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꽃길 구간을 걸어보기로 했다. 걷는 것보다 더 속도(速度)가 떨어지는 버스 안에서 짜증을 부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벚꽃에 취해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걸으며 바라본 주변 풍광(風光)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것으로 유명해진 남도대교(南道大橋)까지 약 5Km 구간을 걸었는데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전국의 유명한 벚꽃관광지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사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 화개장터와 쌍계사권역도 소문난 벚꽃관광지의 하나가 아닌가. 자동차들이 밀리고 있는 이유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쌍계사 벚꽃축제의 여파 때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