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산 미녀봉 (930m)-두무산-오도산

미녀의 뻗은 발을 무뚝뚝하니 내려다보는 두무산,

미녀의 무릎 옆에 앉아 명상에 잠긴 오도산, 미녀의 머리위로 날아 오르는 비계산, 전설속의 미녀와 사랑을 나누는 장군봉, 미녀를 둘러싸면서 연심을 보내고 있는 보해산, 숙성산...

 

산 전체를 하나의 여체로 만들어 성적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 산으로, 아무리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서운함이 남을 산임은 분명하다

 

산행코스 : 산재치-두무산-오도산-미녀봉-유방봉-유방샘-석강초교(산행시간 : 6시간)

 

함게한 산악회 : 정산악회

 

특징 : 수도지맥답사가 목적이 아니라면 두무산과 오도산은 생략해도 좋을 듯...   고도차가 큰 급경사를 오르는 고통에 비해 가슴에 담아올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 산이다

 

 

 < 가조들에서 바라본 문재산 >

요즘의 산길은 단조롭기만 하다. 봄처럼 연두색 신록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여름처럼 무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붉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산행내내 함께하는 소나무 숲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초가을이 그 정취와 느낌이 더 좋다. 쭉쭉 뻗지는 못했을망정, 변함없는 자태가 그만하면 됐고, 나무가 뿜어내는 향도 한층 더 짙어진다.

혹시라도 가을철 높은 일교차로 인해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오른다면 더욱 몽환적 풍경을 빚어낼텐데...  

 

 

유홍준작가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물에 대한 시각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며 조선 정조시대의 순교자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저 미녀봉이 신비로운 여체로 다가오지 않은 걸 보면, 내 사랑과 내 앎은 아직 일천한가 보다  

 

산행은 아델스코트CC 입구 우측 절개지 경사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산꾼들을 반기는 소나무... 치톤피트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무중의 하나가 소나무이니, 오늘 싱그런 가을기운을 만끽하는 행복한 하루가 될것 같은 생각이 드는게 기우일까?

 

등산로는 왼편에 아델스코트CC를 끼고 진행하다, 아예 CC의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서게 만든다.  클럽 하우스 뒤쪽 가시넝쿨이 무성한 너른 공터에서 넝쿨과 씨름하다 속상해 하며 상소리 두어번~~ 가시넝쿨이 조금 덜 자란 왼편 숲을 헤쳐나가다보면 어느덧 제법 뚜렷한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등산로 주변에는 산초나무가 흔히 보이고, 그 열매의 가루는 추어탕에 넣어 먹는 것이니, 아마 이 고장엔 미꾸라지가 많지 않을까 싶다... 추어탕이라면 지금이 제철인데 꾸~울~꺽~

-= IMAGE 6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오늘 첫 만남인 두무산은 천미터가 조금 넘으니,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 경사가 기를 죽이는데,하늘엔 조각구름 둥둥... 그러나 누구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건 아마 가파른 산세에 놀라서일게다. 행여 시원한 바람이라도 한줄기 불어오나 고갤 들어보지만, 내 가냘픈 소망은 그냥 바람일 따름이다  

 

산재치에서 정상까지 도상거리는 2.4Km에 불과한데, 고도차는 500m가 넘으니 두말하면 무엇하랴~~

 

오도산쪽에서 바라본 두무산(1034m)

 

밑에서 올려다보면 정상 언저리에 늘상 안개가 자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야산 매화산을 비롯한 거창 합천 방면의 산세를 호령하는 조망에는 막힌 속이 뚫린다. 찾는 이 적은 산답게 능선에는 부처손이 보이고, 달디 단 다래는 차라리 부차적인 행운일 따름...

 

두무산 정상 

그리 크지 않은 바윗돌 서너개가 깔린 열평남짓한 공터에 정상이란 표지판만 덩그란이 서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

남쪽에 봉우리가 뾰쪽한 오도산(1,134m)과 숙성산(899m),  오른편에 미녀봉이 가파르게 솟아있고, 북쪽엔 비학산(1,125m)과 시루봉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능선에는 굴참나무가 주종, 가끔 비정상적으로 큰 싸리나무와 소나무들도 보인다. 어느덧 1시... 앞서 도착하신 분들이 요기나 하고가라며 시원한 막걸리와 맥주를 권한다(감사합니다. 물론 배를 권해주신 총무님에게도...)  

 

두무산에서 오도산으로 오르는 능선의 철쭉군락지

두무산은 온통 철쭉으로 포위되어 있는 느낌으로, 철쭉나무들은 아예 터널을 만들고 있다

 

 역시 천미터를 훌쩍 넘기는 고산인지라, 정상어림의 단풍나무는 이미 붉은 옷으로 갈아 입고 있다 

 

또 하나의 산 오도산을 오르려면 가파름이라는 또 하나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 내뿜으며 1.5Km구간에 고도를 600m나 높여야 한다

 

그 고통에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을텐데 그만두지 않음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조금만 더 참고 오르면 눈 앞에 나타날 내리막이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인생에서 힘들고 때론 삶을 포기할 만큼 절망적인 순간에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듯 말이다

 

그러나 사실 내리막길 산행이 더 힘들다.. 인생 또한 이와 같은 것이고...

 

미녀봉에서 바라본 오도산

오도산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산으로 이산의 매력중의 하나는 조망..

지리산을 비롯해 가야산, 황매산, 황석산, 기백산이 사방을 둘러 거대한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으며,주변의 모든 산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촬영 명소로서 인기가 높은 곳중의 하나이다

 

오도산 정상에는 한국통신의 중계소가 들어서 있어 이정표가 없다.

잘 닦인 도로 가장자리, 누군가 공들여 세운 듯 투박한 돌탑이 이름표 하나 없는 정상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이곳 오도산은 1962년 우리나라의 마지막 야생표범이 잡혔을 정도로 첩첩산중이었다

 

 

유방봉 방향 능선에서 바라본 미녀봉

가조들에서 바라본 미녀봉은 남산만한 여자의 아랫배 부분이지만, 도착해 보면 아무런 특징이 없고, 자그마한 표지석 하나 외로이 서 있는, 흙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봉우리에 불과하다

 

미녀봉은 두개?

포대기에 쌓인 미녀봉 표지석이 미녀봉과 유방봉 사이 헬기장 옆 봉우리에 버린듯 방치되어 있다.  헬기를 이용, 미녀봉으로 가져간다는게 낙하지점을 잘못 찾아, 이곳에 떨어뜨린걸 그래도 두었나보다

저 무거운 것을 사람의 힘을 빌어 미녀봉으로 옮긴다는건 어렵겠지만 이대로 두는 것은 좀~~~ 

 

 

얼핏 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한 유방봉 

"내꺼가 더 잘 생겼습니다요~" 사진촬영을 위해 유방봉 앞에 선 집사람이 너스레를 떤다.

"맞습니다. 맞고요" 당신의 아름다움... 누가 고른 걸작인데요

 

 

가조들판... 물을 가득 채우면 생김새가 백두산 천지를 꼭 빼다 닮았다나?

그래선지 가조들에서 온천이 발견되었고, 온천의 이름을 '백두산 천지온천'이라고 부른단다 

(능선에 설치된 신선통시 안내판) 신선이 묘산면 방향을 바라보며 가조면 쪽에다 큰 것을 본 덕분에, 시선이 머문 묘산면엔 인재가 많이 나왔고, 뒷간 신세인 가천면은 토지가 비옥해 부자가 많이 났단다

 

 

눈썹바위쪽에서 바라본 유방봉... 거대한 암봉으로 오늘 산행의 백미이다

 

눈썹바위

산행 클라이막스는 유방봉에서 눈썹바위까지의 이어지는 굴곡 심한 바위길이다. 전혀 닿는 길이 없을 것 같은데 바위 사이로 두손 두발을 이용하면 교묘히 길이 열려 신기하기만 하다.

 

눈섭바위로 오르는 루트

암벽은 제법 높지만 굵은 밧줄이 잘 설치되어 있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두세개 밧줄 중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잡고 오르면 그만이니 사람이 많다고 정체될 일도 없을 듯... 

 

눈썹바위 능선에 외로이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그 우람함을 보면 뭔가 이름이 있을 법도 한데, 이름이 무에 중요하랴 가슴에 담으면 그만인 것을...

 

유방샘

여름산행에 6시간이면 이미 찾아온 탈수현상에, 물한번 실컷 마셔보는 소망도 품어볼 만한 시점... 미녀의 젖가슴에서 흘러나오니, 생김새야 어떻든 꿀맛에 청량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작지 않은 바가지에 넘치게 채운 감로수, 세바가지 단숨에 비우고 쉬었다 두바가지 덤으로 마셔버린다 

 

미녀봉에서 유방봉까지는 편하게 갈 수 있는데 반해, 유방봉에서 유방샘까지는 험로가 많아 제법 힘이든다. 쉽고 어려움의 조화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조물주의 힘은 참으로 무궁무진하기도 하다

 

 

날씨야 아직 푹푹 찌지만 때는 바야흐로 추분이 내일모래다

길가의 억새들은 이미 수술을 활짝 열었고... 하늘엔 새털구름 둥둥, 이만하면 천고마비의 계절이렸다?

 

청명한 가을날,

소나무가 청정하게 늘어선 산길에서 알싸한 나무 향기를 맡으며 걷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지난주 영덕의 팔각산을 다녀오다 맛본 탄산수인 청송약수를 유리컵에 따른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싸~아~'  알싸한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그 청량함에 가슴부터 시려온다

그런 산길에서는 몇 번의 호흡만으로도 온몸이 다 청량하게 씻겨지리라..미녀봉은 바로 그런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