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923m)
북쪽 산기슭에 있는 가락국 제10대 왕 호왕(護王)의 능인 전구형왕릉
(타원형 돌무덤으로 사적 제214호)에서 유래하였고, 산 일대는 예로부터 고령토 산지로 유명하다. 필봉산까지 능선길로 이어지며, 정상에서의 전망이 뛰어나다 하나 오늘은 장맛비 탓에 시계가 제로다
산행코스 : 특리교-삼거리-필봉산-왕산-망경대-유의태약수-구형왕릉(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산악랜드
특징 : 전형적인 육산이나 능선은 암릉... 흡사 맨탕에 바위가 심어져 있는 듯한 형상이다. 특리교 쪽 하산길은 가시넝쿨식물들이 울창해서 반소매 차림은 삼가하는게 좋을 듯...
산행 들머리인 특리교의 현수교
현수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
암반위를 흐르는 계곡은 수량이 제법 많아 여름철 피서객들이 찾을 만하다
필봉산 오르는 길에 등산객들을 위해 굵은 쇠줄을 설치해 놓았지만
경사도 완만하고 발 디딜 바윗길도 넓기에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필봉산(848M)
정상은 온통 바위투성이로서 사방이 날카로운 벼랑이다.
멀리서 보면 여자의 젖가슴 같다하여 일명 유두봉(乳頭峰)이라고도 불리운다
필봉산이나 왕산 모두 정상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라 하나, 장마의 대미를 장식이라도 하려는 듯 물러가는 길에 내려주는 는개 탓에 사방은 그저 구름에 쌓여있다
빗속에서 산목련은 오히려 화려하게 피어난다
필봉산에서 왕산까지는 요런 바윗길로 이어진다
왕산에서의 하산길은 싸리나무와 억새가 조화롭게 섞여있다. 간간히 보이는 철쭉은 양념...
만경대
'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지조를 지킨 선비의 고집이 서려 있는 바위다. 고려에서 판서 벼슬을 한 農隱 閔安富가 나라가 망하자 조선에선 벼슬을 할 수 없다며 두문동에 들어갔다가 낙향해 살면서 이곳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무색무취의 서출동류수인 유의태 약수
색깔도 없고, 맛도 없지만 뒷맛은 상큼,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는 샘물..
소설속의 명의 유의태가 이 물을 이용해 한약을 다렸다 한다. 물까지 가려쓰는 정성... 제자들이 이곳의 물을 길어오지 않으면 혼냈다니 그 제자들 고생이 어떠했을까 휴~~
전(傳) 구형왕릉
仇衡王(521-532재위)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10대왕으로, 신라의 법흥왕에 항복하였다. 이 지방의 전설에는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 속에 묻힐까, 차라리 돌로 덮어 달라"고 하여, 살아남은 군졸들이 구형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잡석을 하나씩 포개어 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료의 뒷받침이 부족해 구형왕릉이라 확정받지는 못하고 전(傳) 구형왕릉이라 불린다.
법정스님은 ‘홀로사는 즐거움’에서
‘땅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제 발로 걷지 않고 자동차에 의지하면서 건강을 잃어간다. 제 발로 걷는다는 것은 곧 땅을 의지해 그 기운을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걸어야 대지에 뿌리를 둔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의 말대로 걷기는 곧 ‘생각하기’다.
그래, 스님의 말씀대로 오늘 하루 산길을 걸어보자...
두 발로 걸을 때 머리와 가슴은 자유로워지게 하고, 걷기는 사람을 맑고 밝게 한다. 걷기 자체는 사유이며, 철학... 사상가, 철학자들의 고언을 되뇌이며 한걸음 한걸음 왕산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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