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琵瑟山, 1,083m)


산행코스 : 유가사→도통바위→진달래 군락지→대견봉(정상)→마령재→진달래 군락지→대견사지→자연휴양림→소재사 (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과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의 경계

산행일 : ‘10. 5. 8(토)

함께한 산악회 : 서울가고파산악회


특색 : 비슬산은 비록 1천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산행들머리인 유가사나 날머리인 소재사가 산의 중턱쯤에 위치하고 있어 정상까지 오르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은 산이다. 정상어림은 그야말로 광활한 초원, 봄이면 그 초원에 山上花園을 방불케 하는 진달래 꽃밭이 펼쳐진다. 자연휴양림이 있어 주변 나무마다 명찰을 달아놓고 있으며, 등산로 주변 곳곳에 돌강과 너덜겅이라 일컫는 암괴류를 품고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에도 도움이 많을 듯, 당연히 가족 산행지로 권하고 싶은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瑜伽寺 주차장

구마고속국도에서 현풍IC로 내려서 좌회전 5번국도를 따라 가천방향 진행, 유가면소재지에서 좌회전 이어 4번(이정표에 표기되어 있으나 국도인지 지방도 인지는 불분명)도로로 우회전 하여 ‘비슬산 유가사 주차장’까지 들어가면 된다. 산행은 주차장에서 비슬산 방향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에 내려서면 왼편에 비슬산 등산로 안내판이 우람하게 세워져 있고, 유가사의 간판격인 一柱門이 전면에 우람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  일주문을 지나 얼마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에 시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옥 유(瑜), 절 가(伽)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유가사가 어렴풋이 바라보인다. 유가사 입구에서 사찰까지 제법 큰 규모의 돌탑들을 길 양쪽에 연이어쌓고 있다. ‘탑을 쌓는 돌들을 다른 곳에서 실어오니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요.’ 내 생각에도 다른 곳의 發福을 빼앗아다가 이곳에 옮겨 놓는 것 같은 느낌... 얼마前 열반하신 '무소유'의 법정스님께서 이 광경을 보셨더라면 아마 얼굴을 찡그리시지나 않으셨을까?  

 

<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인 瑜伽寺 >

신라 흥덕왕 때 道成스님이 창건한 사찰로서, 한때는 본사와 99개의 부속암자에서 3천명의 승려가 머물렀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후로는 자그마한 절로 남아 있다가, 1976년부터 대대적으로 불사를 일으켜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부속암자인 道成庵은 경상북도 3대 수도처로 손꼽힌다. 문화재는 국보급은 없고, 시도유형문화재 제50호인 유가사석조여래좌상이 용화전 안에 모셔져 있다. < * 瑜伽寺는 유가종(瑜伽宗)의 총본산격의 사찰이다. 유가종이란 삼밀(三密, 부처의 몸, 입, 뜻)을 종지로 삼는 밀교를 뜻하는 말이며, 밀교(密敎)란 헤아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경전을 말함이다. >

 

 

▼  修道庵

유가사의 후문을 지나면 곧바로 修道庵,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진 修道庵은 이름 그대로 수도에 방해된다며 지나가면서도 조용히 다니란다. 修道庵을 지나 道成庵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왼편 등산로로 접어든다. 도성암은 소문대로 소문난 수도처인가 보다, 등산로에서 도성암으로 접근이 가능한 모든 루트를 철조망으로 막아놓고 있다. 그것도 몇 겹씩이나...

 

 

▼  도로를 벗어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서면, 물기가 느껴지지 않는 마른 개울을 건너게 되고, 이어 잘 닦여진 등산로를 만난다. 등산로는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산행이 진행될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그러다 끝내는 아예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너덜지대로 변해버린다.  

 

 

 

▼  경사가 심한 등산로를 따라 헉헉대면서부터 인파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참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파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산길이 막힐 정도, 능선에 닿을 때까지 추월한 등산객들 대부분은 ‘서울의 00동 등반교실’ 대체 버스가 몇 대나 왔는지 엄청난 인원들이다. ‘여보 우리도 까짓 강남을 떠나 00동으로 이사 갑시다.’ ‘등산교실까지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정겨운 동네겠소?’ 힘든 산행에 잠깐이나마 집사람과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어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이면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강한 피톤치드가 가득 담긴 진한 솔향기 속에서 잠시나마 기운을 되찾는다.

힘든 산행의 산물인 단내, 그런 단내까지도 그리울 때가 있을 줄이야... 어제의 폭음 때문에 단내는 이내 쓰디 쓴 위액으로 변해버린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가셔지지 않는 쓴 위액과 싸우다 보면 암릉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능선에 도달한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군락, 계곡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까지 있어 잠깐 땀을 식히며 쉬어가기 딱 좋은 구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나무그늘아래에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나 또한 잠깐이나마 숨을 고르며 조망을 즐긴다. 발아래 산행을 시작한 유가사가 보이며 그 너머로 비슬천 유역을 따라 형성된 유가면의 드넓은 논밭이 펼쳐지고, 더 멀리로는 굽이굽이 돌고 도는 낙동강의 물 구비가 넘실거리고 있다.  

 

 

 

▼  주능선을 가까이 다가갈수록 참꽃나무의 숫자가 점점 늘어간다. 능선에 올라서면 저 멀리 오른편으로 정상이 보인다. 그 앞으로 붉은 빛 바다가 펼쳐지고... 여기는 비슬산 정상 외에, 청룡지맥으로 연결되는 대구의 앞산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유가사에서 여기까지 1시간30분이 걸렸다.  

 

 

 

▼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등산로 주변은 참꽃들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연분홍 빛깔 또한 진해져간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좌우는 기묘한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 비슬산의 바위들은 중생대 백악기를 통하여 형성된 퇴적암층과 화산암층, 안산암질 암류, 화강암류와 암맥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불리며 인간과는 친한 꽃이다. 술을 담으면 두견주(杜鵑酒)가 되고, 전(煎)을 붙이면 진달래 꽃전[花煎]이 되니, 정성들여 빚은 두견주 한 주전자와, 곱게 붙인 화전 한 접시 소반 위에 놓고, 그리운 벗님 부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 ^^-*   

  

 

▼  참꽃 군락지가 넓게 분포되어있는 탓에, 심심찮게 무리지은 탐스런 꽃다발이 겹치듯 널려있어 부족한 빛의 감도를 다소나마 보완해 주고 있다. 올해는 어느 산이나 만개된 꽃동산을 만날 수 없기에 그나마 비슬산의 꽃 잔치를 상급에 올려놓고 싶다.  

 

 

 

 

▼  참꽃으로 포위당한 비슬산 정상인 大見峰(유가사에서 1시간 45분 소요)

정상 주변으로는 제법 넓은 공간으로 헬기장까지 갖추어져 있다. 청도 방향은 밋밋한 경사면의 육산이나 달성 방면은 수십길 높이의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성 쪽으로 치우쳐 있는 제법 커다란 바위위에 대견봉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  대견봉에서 바라본 유가사 방향의 현풍시가지, 그 너머에는 아스라히 낙동강 강줄기.....  

비슬산은 迦葉부처가 터를 증명하고 靜聖天王(신라 때 山岳神의 하나)이 수도를 봐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 그래서인지 일찍이 이 산 자락 곳곳에  수많은 사찰들이 들어섰으나, 지금은 유가사와 용연사, 소래사 등만 남아 있다.

 

 

▼  헬기장 근처의 이정표, 헬기장에서 바라보면 대구시가지와, 앞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  비슬산(琵瑟山)의 어원

인도 스님들이 신라에 왔을 때 이 산을 구경하더니 이곳은 영험이 있는 수도처(修道處)라 하여 인도의 옛말인 범어(梵語: 산스크리트)로 '비슬'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그 비슬의 뜻이 한자로 포(苞)여서 옛날에는 포산(苞山)이라 하여 오다가, 산의 모습이나,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신선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하여 비파 琵(비), 거문고 瑟(슬) 琵瑟山(비슬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이 이 산의 보당암에서 20대를 보냈다 한다. 

 

 

 

 

 

 

▼  헬기장을 지나 조화봉을 향해 가다 보면 청룡지맥 분기점이라는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마령재, 이곳에서 수성골이 있는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산행을 시작했던 유가사가 나온다(유가사까지 2.6Km). 반대편은 청도 용천사(2.5Km)... 난 대견사지(2.5Km)로 이어지는 비슬지맥의 등허리를 밟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 청룡지맥 >

비슬지맥(낙동정맥의 사룡산에서 밀양의 종남산 오무진나루까지 이어지는 약 146Km의 산줄기)상에 있는 비슬산에서 북쪽으로 줄기가 나눠져, 앞산, 청룡산과 대구시가지를 거쳐, 臥龍山과 弓山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금호강의 남쪽을 이루는 산줄기(37Km)로 대구사람들이 즐겨찾는 코스 중의 하나이다 

 

 

 

 

▼  조화봉 근처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참꽃군락지, 너른 평원에 펼쳐진 꽃 잔치, 아름답지만 어딘가 조금 부족하다. 天上花園이라고 부르기에는... 백년 만에 찾아왔다는 봄철 이상 저온으로 인해 많은 봉우리가 채 피워보기도 전에 시들어버렸거나, 어떤 나무는 꽃과 잎이 함께 피어서 선홍빛 붉음을 많이 삭감해 버리고 있다.   

 

 

  

 

 

▼  붉게 물든 진달래 군락지 너머로 내가 걸어온  길과 대견봉이 바라보인다.  

 

 

▼  조화봉 정상은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공권력이 밀려난 정상은 그 아래 바위무더기 근처로 자리를 옮겨서 손님을 맞고 있다. 구태여 다녀올 메리트를 못 찾은 난 멀리서 정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  왼편에 대견사지를 낀 암괴와, 오른편에 참꽃군락을 끼고 나아가면 팔각정

그 곁, 대견사 방향으로 병풍처럼 둘러진 암괴류가 잘 내려다보이는 1,034봉에 전망대가 있다. 팔각정에서 더 나아가면 유가사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나온다.   

 

 

 

 

▼  참꽃군락지 조망

그렇게 짙지는 않지만, 올해 같은 이상기온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면 수준급, 금주에 절정을 맞는 진달래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로 조망대는 넘쳐나고 있다. 대견사지 위에서 ‘참꽃 조망대’와 ‘팔각정이 있는 1,034봉’까지는 목재 테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 참꽃 군락지의 면적은 30만평으로 국내의 참꽃군락지중에서 제일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  비슬산 중턱에 있는 절터, 大見寺址(대견봉에서 40분 소요)

절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가 없고, 대략 9세기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지금은 축대와 남쪽 절벽 위에 삼층석탑 1기만이 외롭게 빈터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이 삼층석탑은 작년 8월 낙뢰에 맞아, 탑 일부가 훼손된 탓에 지금은 1층 석탑으로 변해 있다... 삼층석탑은 산 정상의 암반에 건립되어 넓은 시계가 확보된 점으로 보아 산천 비보사상(裨補思想 :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이 흥한다는 불교신앙)에 따라 건립된 한 예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大見寺는 당나라의 文宗이 얼굴을 씻으려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는데, 이 터가 大國에서 보였던 경관이라 하여 절을 짓고 대견사라 불렀다고 구전되고 있다  

 

 

▼  대견사지 주변의 암괴군, 천연기념물이라는 암괴가 조화봉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우람하게 병풍을 치고 있다. 조화봉 가는 길목에는 이곳이 얼마 전 종영된 인기연속극 ‘추노’의 최종회분 촬영지였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대견사터를 지나 조화봉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등산로는 임도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휴양림의 뒷 마당에 도착한다. 왼편으로 올라서면 조화봉 정상을 거쳐 다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능선이 목적이 아니라 돌강이 보고 싶은 난 서슴없이 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서 버린다. 등산로는 심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정비가 잘 된 탓에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비슬산 암괴류

돌강을 찍으려고 조심조심 중앙으로 다가가다가 멈칫 걸음을 멈춘다. 쪼르르~ 쪼르르~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돌강의 가운데는 깊이가 5m에 이른다는데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니... 이것이 또 하나의 신선한 감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너덜겅 또는 돌강 >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보게 되는, 산비탈에 모난 돌무더기가 넓게 쌓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곳이 너덜겅이다. 흔히들 산사태의 흔적쯤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만들어진 산물이란다. 비슬산에는 이런 너덜겅(애추)뿐 아니라, 너덜지대와 비슷하지만 탄생배경이 전혀 다른 세계 최대 규모의 암괴류(돌강)가 있다. 이 돌강은 대견사지 아래 해발 1000m 지점에서 흐름을 시작해 700m 고도에서 맞은편 산에서 온 다른 돌강과 합류한 뒤 450m 고도까지 이어진다. 대체로 등산로 왼쪽엔 돌강, 오른쪽엔 너덜겅이라고 보면 된다. 

 

 

▼  돌강아래 물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휴양림이 나온다. 비슬산 휴양림은 꽃, 나무, 주변 시설 등등 내가 다녀본 휴양림 중에서 제일 잘 가꾸어진 것 같다.보이는 곳 어디에나 울긋불긋 꽃 대궐이다. 다만 그 모든 꽃 들이 인위적인 색상을 띠고 있어, 아름답되 자연스럽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휴양림에서 소재사까지는 1km. 주차장까지는 소재사에서 1km정도를 더 걸어 나가야만 한다.  

 

▼  휴양림에서 소재사 가는 도로 우측에 있는 암괴류, 비슬산을 이루는 화강암은 중생대 말 백악기 때 깊은 땅속을 뚫고 나온 마그마가 굳어 형성됐다. 빙하기가 끝나고, 빗물이 모래와 진흙을 씻어내리자 바위만 자리에 남게 됐으니 이것이 바로 암괴류란다.  

 

▼  消災寺

비슬산 조화봉의 중턱에 위치한 동화사의 말사, 최초의 창건연대는 신라시대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開山연대는 미상이다. 이곳 역시 국보급 문화재는 없고 시도지정문화재가 전부이며, 대웅전과 지장전,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인 조그마한 규모의 사찰이다.

 

 

▼  산행 날머리는 비슬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휴양림을 벗어나 잘 가꾸어진 꽃길을 따라 내려오면 한우마을이라는 프랭카드가 걸린 휴게소, 아래 공터에는 ‘참꽃잔치 마당’이 열려있고,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엿장수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온 산을 울리고 있다. 휴게소 아래로 이어진 예쁘장한 나무테크 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대형버스 주차장이 나온다. 

 

 

갑장산 (甲長山, 806m)


산행코스 : 주차장→용흥사→제1전망대→제2전망대→바람문→시루봉→갑장산→갑장사→문필봉→상산(694m)→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과 낙동면의 경계

산행일 : ‘10. 5. 2(일)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淵岳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상주 남쪽에 위치한 案山(守護山)으로, 서쪽의 노음산(露岳)과 북쪽의 천봉산(石岳)과 더불어 상주 三岳중의 하나이다. 전체적으로는 육산이지만 시루봉에서 정상인 백길바위까지의 암릉은 다른 유명산들에 그리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쏠쏠한 암릉美를 느끼게 해주는 산, 쉬지 않고 걸으면 3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한 자그마한 산(單山)이나 암릉에서의 조망이 빼어나고, 암릉을 벗어난 산길은 유순하기 짝이 없어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  산행들머리는 용흥사 앞 주차장

‘청원-상주 고속도로’의 ‘남상주 나들목’에서 김천방향으로 3번 국도를 갈아타고 가면, 채 5분 못되어 ‘상주 남부초등학교’가 왼편에 보인다. 바로 앞에 갑장산 이정표가 있다.  산행은 주차장 뒷편으로 난 용흥사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용흥사를 들리기 싫은 용흥사 못미처에서 오른편 등산로로 접어들면 된다(정상까지 3.7㎞). 갑장사는 들머리 입구에서 왼편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  용흥사(직지사의 말사)는 신라 문성왕 때 진감국사 慧昭가 창건한 사찰로, 비구니들이 공부하는 禪院이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374호 삼불회괘불탱이 있다. 용흥사 사적비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도로 아래에서 시작된 등산로와 자연스레 만나게 되며, 등산로는 능선으로 향하게 된다.  

 

 

 

 

▼  산행 초반 30분 정도 된비알에서 땀을 흘리면, 이후론 산허리를 돌거나 부담 없이 오르내리는 오솔길이 이어진다.  

 

 

▼  때는 바야흐로 선홍빛 피의 빛깔이라는 五月, 山野는 철쭉으로 물들어야 하는 시절이건만, 오랫만에 들렀다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이미 시들은지 오래였을 진달래가 시절이 하수상인양 이제야 제철이다. 하긴 철쭉이나 진달래 모두 피빛이긴 매 일반이지만... 갑장산은 소백산맥 줄기의 하나로 상주에서는 속리산 다음으로 꼽히는 수려한 산세를 지닌 명산이다 東高西低형으로 상주시내 방면은 완만하고 동쪽은 천애절벽의 연속으로 무척 가파른 반면에 지능선이 많아 등산코스가 다양하다. 갑장산이란 지명은 고려 충렬왕이 '영남의 으뜸 산이라고 갑장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만 갑장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  첫번째 전망바위, 이곳에 올라서면 갑장산의 속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앞에 보이는 절이 갑장사, 그 옆에 상사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다.  그리고 오른편엔 갑장산 정상...

 

 

  

 

▼  주변에 물푸레나무 무성한 전형적인 흙길을 걸어 정상을 향하다 보면,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등산로 끝에 거대한 바위 두개가 떠억 길을 가로막고 서있다. 길은 그 바위 틈사이로 이어진다. 石門이다. 곧이어 또 하나가 나타난다. 일명 바람문이라는 ‘남석문’... 두 석문은 닮았지만 첫 번째 석문보다는 두 번째 석문의 문설주가 더 고풍스럽다.  

 

 

 

 

▼  두 번째 전망바위, 첫 번째 전망대에서 갑장산의 속맛을 보았다면, 이곳에서는 갑장산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들을 조망할 수 있다. 푸른 들녘 뒤로 팔공산, 금오산, 삼도봉과 민주지산...  

 

 

 

▼  갑장산 주 능선상의 암릉은 오른편으로 천애절벽을 형성하고 있다. 나옹바위의 허리춤을 감으며 도는 암릉코스엔 로프가 걸려있는데, 초등학생 정도이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다. 이 정도도 위험하다 싶은 사람들은 우회를 이용하면 된다.   

 

 

▼  밧줄을 잡고 암릉에 올라서면 떡을 포개놓은 듯한 형상이라는 시루봉이다. 백길바위 방향으로는 나옹화상이 수도했다는 나옹바위가 얇은 슬랩이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시루봉에서부터 갑장산이 자랑하는 암릉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  나옹바위 이후로도 암릉코스는 계속해서 바위를 돌거나, 틈새를 돌고돌아 정상부분의 백길바위까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아스라이 洛東江 물줄기가 바라보인다.

< 尙州사람들이 생각하는 洛東江의 의미 >

낙동강은 통상 1,300리를 굽이돌아 바다로 빠져들지만 상주에서는 ‘낙동강 700리’라고 부르며 ‘낙동강 700리 이곳에서 시작하다’라는 비석까지 세워놓았다. 이 말은 여러 지류에서 모여든 물길들이 상주에 와서 제대로 강의 모습을 갖추게 되고, 그렇게 강의 모습을 제대로 갖춘 길이를 재면 700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상주의 옛 지명도 낙동강의 상류에 있다고 해서 상락(上洛)이라 불렀다.  

 

 

 

 

▼  갑장산 정상에는 못생긴 커다란 돌탑과, 산불감시초소, 안테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뒤로 정상석과 삼각점... 널찍한 직사각형의 정상석엔 ‘상주의 영봉, 갑장산 806m’라 새겨져 있다.  발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 절벽. ‘백길바위’다. 백 길이면 3백 미터쯤일 터인데. 실제 바위의 높이는 어림잡아 30미터 정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백 길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높은 바위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  오늘 갑장산 산행은 이번에 모 공기업의 부사장으로 내정된 바우君이 함께해 주었다. 덕분에 천주교 신자인 난, 갑장사 부처님께 들러 그의 武運長久를 소망하는 정성을 보여드렸고...  

 

 

▼  정상인 백길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서쪽으로는 속리산 방면 산릉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속리산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 상의 청화산, 장성봉, 북쪽에는 역시 백두대간 상의 희양산, 백화산, 조령산, 그리고 월악산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다.  

 

 

 

▼  하산은 갑장사 방향으로... 철쭉으로 둘러싸인 등산로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팔각정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엔 널따랗게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  갑장사는 고려 공민왕 22년에 나옹화상 창건설이 전해질 뿐이고, 1988년 새로 지은 법당 앞에 2m높이의 고려시대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125호)하나만 썰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적한 절이다. 절 마당을 지나 서쪽 능선 끝으로 잠시 나아가면 노송으로 둘러싸인 전망대 같은 곳이 나온다. 아마 상사바위 위일 것이다. 잡석을 정성들여 쌓은 2기의 원형 돌탑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는 용흥사계곡 일대가 한눈에 잘 내려다보인다.

< 상사(相思)바위 > 스님을 사모한 한 처자가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는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데, 실제로 발아래를 보면 현기증이 일 정도로 아찔하다. 갑장산 일대에서 전망이 가장 좋아 최승암(最勝巖)이라고도 불린단다.

 

 

 

▼  상사바위에서 문필봉으로 수월하게 가는 지름길이 있으나, 난 아까 내려왔던 740봉으로 되돌아 올라 주능선 삼거리에 선다. 등산로 주변의 키 작은 산죽들은 새봄맞이 단장을 끝내고, 한껏 연록의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 문필봉 > 뾰족한 바위 세 개가 붓처럼 한데 모여 있어서 문필봉이라고 불리운다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여긴 분명한 육산이다. 문필봉은 문운(文運)을 응축한 영봉(靈峰)으로서, 이 봉우리의 정기로 상주에 큰 선비가 많이 배출돼 예부터 이 산 일대를 장원향(壯元鄕)이라 불렀다 한다. 

 

 

 

 

▼  상산(694m)의 정상은 조그만 암봉, 정상석도 이정표도 없는 그저 큰바위 몇 개를 차곡차고 쌓아 놓은 형상으로 버티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상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상산에서의 하산로는 유순하기 그지없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당분간 걸음의 호사를 누린다. 마침 경사도 심하지 않아 걷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한 시간 정도 함께 걷는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연악산 식당’ 앞마당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금성산(530m) - 비봉산(671m)


산행코스 : 주차장→금성산성→금성산→영니산 봉수대→비봉산→전망대 능선→산불감시초소→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행일 : ‘10. 1. 31(일)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금성산과 비봉산은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생김새는 정 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금성산은 흙산인데 비해, 비봉산은 바위산으로 암릉미가 빼어난 산, 두 산이 닮은 점은 산을 온통 소나무로 둘러싸고 있다는 것, 소나무향을 가슴깊이 들이 마시는 행복한 산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금성산 입구 주차장

의성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68번국도의 의성군 금성면 상운리1리 버스정류장에서 금성산 방향으로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금성산 바로아래 한편에 큰 소나무 숲을 낀 넓은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대형차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은 화장실까지 깔끔하게 갖추어져 있다.

 

 

▼  금성산 산행안내도와 金鶴城址라 새겨진 자연석이 서 있는 곳에서, 소나무 숲 왼쪽으로 시멘트 수로를 따라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  그리 심하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금성산성을 만나게 되고, 야트막한 돌담길 같은 성터를 따라 된비알 산길이 이어진다. 만만찮은 경사를 이룬 지그재그 길...

< 금성산성 >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이 쌓은 성(길이 2,730m)으로, 조문국이 신라에 병합되기 전 신라군에 대항하여 싸우던 최후의 패전장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이 성을 보수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지금의 산성은 높이가 채 1m도 안돼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무너진 돌이 인근에 널려 있어 과거 성의 형태와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  철계단을 오르면 병마훈련장, 이 훈련장을 둘러보면 삼한시대 때, 한 나라의 규모를 대충 유추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살펴봐도 1개 소대병력도 도열시킬 수 없을 정도의 넓이에서 병마를 훈련시켰다니 말이다.  

병마훈련장 옆에는 ‘금성산 산신령’의 메시지... ‘이리 오나라! 그대는 지금 조문국의 主山 금성산에 올랐도다. 삼한시대 문화의 강국 조문국 도읍지 금성면 일대의역사와 문화를 알고 가는 만큼 만사형통할지어다...‘

 

 

▼  구간간의 거리가 잘 표기된 이정표, 산행지도, 쉼터 등등, 의성군에서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역하다. 덕분에 산행 초보자들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산의 정비에 정렬을 바친 의성군청 관계자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담은 감사와 함께, 提言 한마디... ‘산에 설치하는 시설물은 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이 제일 중요’한 것일지니, 산에 설치하는 계단을 철제보다 목제로 설치할 것을 정중히 부탁해 본다.

 

▼  금성산은 소나무 천국... 그리 잘 생기진 못했지만 푸르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소나무 솔향이 솔솔... 걸으면 걸을수록 힘이 솟게 되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  금성산 정상

사화산(死火山)인 금성산은 그럴싸한 풍수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부근 최대의 길지(명당)로 알려진 널따란 분지로 이루어진 정상에 무덤을 쓰면, 석 달 동안 이 지역에 가뭄이 들고 묘를 쓴 후손은 운수 대통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정상에는 움푹 파인 곳이 여럿 보이는데 묘를 쓴 자리로 알려져 있다. 믿거나 말거나... 옛날 내가 태어난 곳에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혹시라도 근처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묘를 쓰지 않았나 해서 정상을 헤집었는데... 우리나라는 지방은 달라도 비슷한 터부를 갖고 있나 보다. 

 


 

 

▼  금성산 정상에 서면 오른편으로 비봉산 능선이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다가온다. 옥황상제의 늦둥이 옥녀가 하늘나라의 율법을 어기고, 이 곳에서 그 벌칙을 받다가, 용부정의 물로 치성을 드려 하늘나라로 올라갔는데, 비봉산의 능선이 승천한 옥녀의 형상을 하고 있단다.  

 

▼  정상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곱디 고와진다. 마치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푹신하다. 오랜 시간동안 떨어진 솔잎들이 길 위에 쌓이면서 만들어낸 자연의 선물이다.  

 

 

▼  영니산 봉수대

영니산을 금학산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금성산이라 부르는데 이 봉수대의 설치연대는 알 수 없단다. '영니산 봉수대 유지' 라는 푯말이 서있고, 주변에는 석축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  쌩뚱맞은 프랭카드, 산불을 조심하자는 문구는 좋다. 그러나 그 밑에 적혀있는 수식어가 난센스의 극치, 산속에서 웬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소각을 금지'라니 말이다. 취사금지나 화기 소지 금지가 맞지 않을까??

 

 

▼  오늘 산행에서는 철제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게 된다. 영니산 전망대에서 비봉산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철제계단은 제법 길다. 이 계단은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는 등산객들의 왕래로 인한 토사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인 듯,... 계단의 경사가 완만해서 두 계단을 한 걸음에 디뎌야 걸음이 더 편하기에...

 

 

▼  금성산에서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고저가 크지 않은 흙길, 간혹 바위구간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 소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길로서, 폭신폭신한 게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거기다 코끝을 스치는 소나무 향이 짙으니 이 얼마나 좋을손가...  

 

 

▼  비봉산 정상은 헬기장

능선을 차고 오르면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가 있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다소 밋밋한 모습이지만 의성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조망만은 일품이다. 헬기장에는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식사중... 번거롭기가 웬만한 시골의 5일장 풍경이다.

 

 

▼  금성산과 비봉산을 둘러보다 보면 특이한 게 눈에 띈다. 두 산을 둘러싸고 수십 개의 저수지들이 널려있다. 금성산과 비봉산은 과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산이라서 샘이나 계곡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고이지 않고 땅속으로 바로 스며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조그만 빗물이라도 모아 두었다가 농용수로 쓰려는 農心이 절박하게 다가온다....

 

 

▼  비봉산 정상을 지나면서 갑자기 주변의 숲이 변한다. 키 작은 진달래 외에는 잡목하나 발견하기 힘들었던 소나무 숲이 사라져버리고, 산은 온통 굴참나무 일색으로 옷을 갈아 입어버렸다. 조금 더 내려가면 소나무 옷으로 다시 갈아입지만....

 

 

 

▼  ‘여인의 턱’에서 이정표는 우회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그만 위험까지도 감수하지 못한다면 苦盡甘來라는 果實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리오... 로프에 매달리는 스릴도 스릴이지만 우회할 경우 남근석을 못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금성산에서 바라보았을 때 ‘누워있는 여인의 턱’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 직벽이다. 여인의 턱에서 직벽의 밧줄을 타고 내려서면 男根石 전망대, 외진 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사전지식 없이 무심코 걷다보면 지나칠 염려가 있다.  

 

▼  男根石

암릉 위에 온갖 풍상을 견디며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와 그 옆에 수줍은 듯 바짝 붙어있는 남근석을 볼 수 있다. 마치 솔숲에 자라난 송이버섯과 흡사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男根石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것은 아닌 듯... 절벽을 母體의 배로 볼 경우, 저렇게 배(腹)에 붙어 있는 根이라면 아무래도 길가다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동물의 것이 아닐런지...

 

 

▼  ‘남근석 전망대.를 지나 올망졸망한 소나무 숲길을 조금 더 진행하다보면 제법 경사가 심한 봉우리를 만난다. 힘들게 오르며 떠올리는 斷想... 금성산에서 바라봤을 때, 지금 오르고 있는 이 봉우리가 여인의 가슴에 해당되는 봉우리일지니,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 여인의 가슴을 정복하기가 어렵지 않으리오... 

 

 

 

 

▼  비봉산을 걷다보면 바위에 얹힌 소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세월의 역경을 딛고 오랜 세월을 바위틈에 붙어 살아와서인지 몸통이 굵지는 않다. 분재소나무처럼 울퉁불퉁... 굳은살이 맺혔으니 알통이 생겨 쉬이 죽지도 쓰러지지도 않겠지?

 

 

 

 

▼  비봉산에서 비봉산 주능선 길은 시원한 조망이 일품... 곳곳에 널린 절경을 가슴에 담으면서 서서히 걷기에 좋은 구간이다. 다만 주위경관에 너무 취하지는 말 것! 바윗길에서 넘어지면 다치니까 말이다.

 

 

 

▼  산불감시초소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금성산의 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산행중에는 바위를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비봉산에서 바라보면 산 허리를 곳곳을 절벽이 심어져 있다.  

 

 

▼  봉황이 날아가고 있는 형상과 비슷하다는 비봉산은 이름만큼이나 춤추듯 흘러내리는 암릉미가 일품이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고추선 노송... 수백년 인고의 세월을 버텨낸 자태는 자못 고고하다

 

 

 

 

 

▼  비봉산 주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엔 천길斷崖, 저 단애를 보며 콜로라도의 대협곡을 떠 올려봄은 나 혼자만의 호사일까???  

 

 

▼  비봉산 주능을 따라 주위 조망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산불감시초소, 하산은 오른편으로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근처의 산신령 말씀을 가슴에 담고서...

 

 

 

▼  산행 날머리는 오전에 산행을 시작했던 대형주차장에서 수정사 방향으로 약 200m위, 아스팔트 도로와 만나는 곳에 최근에 조성한 듯한 깔끔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주암산(舟岩山, 845m) - 최정산(最頂山, 905m)


산행코스 : 광덕사→608봉→주암산→884봉→최정산→768봉→음지머구→운흥사 입구(산행시간 : 3시간 40분)


소재지 : 경상북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산행일 : ‘10. 1. 9(토)

같이한 산악회 : 산악랜드


특색 : 원래 바위로 된 산이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으로 인해 거죽이 흙으로 변하였는지 바위의 外皮를 흙으로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비슬산 등 소문난 산이 많은 달성군에서 방치하고 있는지, 정상 표지석은 물론이고 이정표하나 발견할 수 없는 잊혀진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광덕사

30번 국도 가창삼거리에서 902번 지방도로 전환, 1Km 남짓 진행하면 가창저수지가 나오는데, 가창저수지 초입에 위치한 광덕사를 왼편으로 끼고 산행을 시작한다. 광덕사는 제법 큰 규모의 사찰이지만 최근에 건립되었는지 모든 건물들이 새롭고, 절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도 찾아볼 수 없다. 스님은 보이지 않고, 절을 지키는 보살님, 행여나 사진에 나올세라 손사래를 치고 있다.  

 

 

▼  광덕사를 지나면 곧바로 된비알을 치고 오르게 된다. 등산로 주변은 못생긴 참나무 群落, 산행 내내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들이 번갈아 이어지게 된다.  

 

 

 

 

▼  된비알 끄트머리에 주능선, 그 모퉁이에 전망바위가 있다. 전망바위에 서면 멀리 발아래 가창저수지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고, 그 넘어에 대구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  주암산의 정상부인 배바위

배바위란 이름은 멀리서 보면 배 한 척이 정상에 정박해 있는 듯한 모습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산 이름이 배주(舟)와 바위암(岩)자를 사용해 주암산(舟岩山)으로 불리는 것도 배바위에서 유래된 것 같다.

 

 

 

 

 

▼  저 멀리 대덕산, 앞산, 산성산 등의 능선들이 실루엣처럼 흐른다.  

 

▼  배바위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에는 여러 동의 움막이 보인다. 무슨 절박한 사연이 있기에 깊은 산중에 가건물을 채려놓고 기도수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산중 기도생활은 불교나 무속신앙에서 많이 보아왔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산중에서 움집을 지워놓고 생활하는 것은 이채로운 모습이다  

 

▼  주암산

배바위에서 50m정도 더 올라가면 정상, 서너평쯤 되는 밋밋한 분지에 ‘정상 표지석’ 대신 어느 친절한 등산객이 매달아 놓은 비닐로 코팅된 종이판이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주암산에서 최정산으로 가는 능선은 다른 산들과는 달리, 예전에 화전을 일구던 자리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널따란 분지로 연결되어 있다 

 

 

▼  넝쿨과 잡목이 우거진 평탄한 오솔길로 한참 진행하다 보면 조금 가파른 오르막 암반지대를 만나는데, 884봉으로 이곳에선 최정산  KT통신탑이 어렴풋이 보인다.   

 

   

▼  884봉에서 바라본 주암산 방향 능선

 

 

▼  비슬산이 암릉과 진달래의 조화로 소문나있든 이곳도 진달래 군락지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다만 암릉은 비슬산에 조금 못 미친다.  봄철 진달래가 활짝필 때, 비슬산의 혼잡이 싫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꽃놀이의 화려함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최정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저 돌탑너머로 언덕 비슷하게 생긴 봉우리가 최정산이다.  최정산 정상은 군(공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헬기장에서 우회로로 내려서는데 곳곳에 ‘이곳엔 지뢰가 설치되어 접근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최정산은 비슬산의 주봉에서 동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다 솟구친 산으로, 마치 형제처럼 마주서 있으며 산세 또한 비슬산과 비슷하다.  

 

 

▼  우회로에서 만난 습지, 경상도 남부지역에서는 습지를 안고 있는 산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곳도 그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습지의 자생식물들은 겨울이어선지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있다.  

 

 

▼  최정산은 인근 주민들이 송이를 채취하는 산인 모양이다. 곳곳에 금줄을 쳐 놓아 등산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  하산하면서 바라본 가창저수지와 대구 시가지 

 

 

▼  최정산에서 하산은 음지머구 방향의 능선보다는 운흥사로 곧장 떨어지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음지머구 능선은 가파르기 짝이 없는 암릉으로 되어있는데도 전혀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눈 쌓인 겨울철에는 특히 위험스럽다.  

 

 

 

 

▼  날머리가 머구마을에 가까워지면서 등산로 주변은 일본입깔나무(낙엽송)로 바뀐다. 조금 더 진행하면 못생긴 소나무 군락을 마지막으로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  산행날머리는 운흥사 입구

머구마을은 음지와 양지로 나뉘어있는데 산행 날머리는 음지지구이다. 마을을 벗어나 차량한대가 다닐 수 있는 좁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내려오면 운흥사 들어가는 왕복 2차선 아스팔트도로와 만나게 된다. 삼거리에는 상수원보호초소와 조그만 주차장이 설치되어있다.  

 

비룡산 (飛龍山, 1,129m)


산행코스 : 홍점→홍제사→비룡산→다락재→배바위산(968m)→합수점→승부역(산행시간 : 4시간40분) 승부역→낙동강변→석포역 구간은 트럭으로 이동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산행일 : ‘09. 11. 28(토)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특별히 오지산행을 하고픈 경우가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이유가 없는 산, 배바위산에서 바라보는 낙동정맥의 조망 외에는 달리 볼만한 경관도 없는 산이다. 인적이 드문 탓에 흔적이 희미해진 등산로에는 싸리나무와 진달래나무가 들어차서 걷기에 아주 불편할뿐더러 길 찾기가 여간 힘들다. 또한 하산지점인 승부역은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므로 열차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 두어야만 한다. 

 

 

산행들머리는 홍점마을의 홍제사 입구 주차장

별로 넓지 않은 주차장 한켠에 홍제사의 진입로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다. 그러나 그 뒤엔 낯선 프랭카드 ‘이곳은 등산로가 아니니 출입을 금합니다.’ 비룡산 안부로 올라서는 등산로는 이 길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는데, 절 인심이 이렇게 각박해서야...

 

주차장에서 홍제사까지는 왼편에 가뭄으로 메말라버린 계곡을 끼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도로 주변에 단풍나무가 주종인 것이 가을철에는 핏빛 단풍이 흐드러질 듯 싶다.

 

홍제사(절) 못미쳐 우측 임도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도열해 있는 일본잎깔나무 사이로 쭈욱 뻗은 임도와, 끊어 질듯 이어지는 희미한 계곡길을 완만하게 오른다. 

 

 

 

비룡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안부까지는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다. 캄캄할 정도로 우거진 원시의 숲을 따라...  

 

능선 안부에 올라서 왼편(달바위봉 방향)으로 진행, 한참을 올라가니 위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빽! 빽! 잘 못 왔으니 돌아가세요.’ 안부에서 오른편으로 올라야 비룡산인데 왼편으로 올랐단다. 힘들여 오른 거리가 속상하지만 나보다 던 많이 진행한 분들을 생각하며 꾸욱 눌러 참는다. 아니 어쩌면 미소까지...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니 말이다.  

 

길도 보이지 않는 잡목 숲을 헤치고 심심치 않게 보이는 바위들을 이리저리 우회한다. 싸리나무, 진달래의 잔가지들이 바쁘게 걷는 등산객의 뺨을 심심치 않게 후려친다. 우~씨~~~ 갑자기 심심산골 오지 숲을 왜 헤메고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길가 넘어진 참나무 등걸에는 운지버섯이 덕지덕지... 억센 칡넝쿨, 산죽과 싸리나무,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진달래나무들이 극성을 부리는 숲을 빠져나가니 이름없는 표지기가 얼핏 보인다. 이제 비룡산 일반 등로가 가까워졌나보다.  

 

 

비룡산 정상

등산로를 잘못 들어 죽도록 고생한 다음에야 비룡산은 그 모습을 보여준다. 산죽지대를 따라 능선을 오르면 나타나는 비룡산 정상은 그야말로 ‘에게~’다 벌목된 두세평 남짓의 공터에 '飛龍山‘이라고 적힌 나무 팻말... 이곳의 행정관청이 아닌 대구에 사시는 ’김문암‘씨가 사비를 들여 설치해 놓았단다. 이곳을 찾는 모든 산악인들의 마음을 모두 담아 감사드리고 싶다.  

  

 

 

비룡산 정상에서의 조망  

 

 

정상에서 다락재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곱다’. 발목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낙엽은 포근한 이불... 등산로 또한 전까지와 달리 뚜렷하게 나타난다.

 

 

원래의 등산로를 또다시 벗어난 탓에 꽤나 높은 벼랑을 위험스럽게 내려선다. 조금 더 진행하면 원래의 등산로인 다락재에 도착한다. 배바위산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한다. 굵은 소나무들이 서있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떡으로 요기를 한다.  

 

 

 

다락재를 가로지르면 등산로는 배바위산으로 진행된다. 길은 이어지다 끊어지다를 반복, 만일 이름이 적히지 않은 분홍색 표지기도 없었다면, 결코 길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흔적이 희미하다.  

 

 

배바위산으로 가는 능선의 숲은 하늘을 이중으로 덮고 있다. 맨 위에 참나무, 그 아래로는 진달래나 싸리나무... 봄이면 이곳의 진달래가 붉게 타는 정경을 감상할 수 있으련만, 난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거친 산이다.   무릎을 덮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낙엽은 겨울철 눈 덮힌 산에서 럿셀하는 기분을 자아내게 만든다.

 

 

‘겨우살이 채취 금지’ 홍제사 입구의 프랭카드에 적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 능선은 그야말로 겨우살이의 천국이다.   

 

 

 

배바위산

몇 개의 봉우리를 지루하게 오르내리다보면 배바위산(967.8m)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정상은 벌목이 잘 되어있어 조망이 좋다. 이곳에도 역시 대구의 김문암씨가 설치해 놓은 정상표시목이 곱게 서 있다 

 

 

 

 

배바위산 정상에 서면, 왼편으로 백병산에서 면산을 지나 통고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장쾌한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나무 혹, 원인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 치면 악성 종양이라고나 할까? 

 

 

 

이곳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산골인 春陽面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이곳 春陽은 춘양역에서 질이 좋은 건축용 나무들을 실어 보냈다 해서 春陽木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다. 춘양목이라는 말을 반증이라도 하려는 듯, 곳곳에 굵고 늘씬한 소나무들이 등산로 주변에 빼곡히 늘어서 있다. 금강송, 미인송, 황장목이라고도 불리는... 

 

 

 

발목에 감기고, 몸을 막는 칡넝쿨들을 헤쳐야만하는 계곡 길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곳곳에 ‘멧돼지’ 흔적이 널려있다. 목을 축이려고 했는지 물이 나올 때까지 깊이 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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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묻지 않은 오지의 계곡길이 아름답다.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계곡길은 비록 완만하지만,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서 진행이 쉽지 않다.  

 

 

 

눈꽃 축제장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간이 천막주점들이 나타나고, 눈꽃마을 초가집 앞으로 낙동강이 소리를 내며 여울지어 흐르고 있다. 축제장 입구엔 날씬한 정자 한 채가 외롭게 서있고, 그 앞을 돌지 않는 물레방아가 지키고 있다.   승부마을은 땅이 좁아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토가 좁아 지금도 화전민의 후예들이 약초채취와 약간의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역사 뒤편으로 6호정도의 가옥이 있으나,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은 서너 가옥 정도...

 

 

 

 

 

 

 

 

 

승부역

플렛홈을 들어서니 코레일 직원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빼꼼이 얼굴을 내민다. 코레일에서 운행하는 ‘눈꽃 열차’는 이곳에서 비룡산에 다녀올 수 있도록 1시간 30분을 정차해 준다고 하나. 그 시간에 비룡산 다녀오는 것은 불가능하니 애초에 포기할 일이다.  

프랫홈 한 중앙에는 '사랑의 자물쇠를 매달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다른 나라 출장 중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난 산을 찾는다. 중국에 갔을 때 난 황산 등을 올라본 일이 있었고, 제일 기억에 남은 것 중의 하나가 절벽위 쇠사슬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자물쇠들이다. 연인들이 찾아와 자물쇠를 채운 후, 열쇠는 절벽 밑으로 던져버린단다. 그럼 사랑이 깨지지 않는다는 전설... 조그만 것에서도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승부역은 태백산의 계곡이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평탄한 도로가 없는 관계로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대중교통은 기차가 유일하다.  영주방면으로 향하는 열차가 들어온다. 역사가 분명하련만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몇 집 되지도 않은 가구들이, 춘양 장날에나 한번씩 열차를 이용한다고 하니 이해가 간다.   

 

 

 

자동차 한대 빠듯이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길 따라, 산 모퉁이를 수없이 돌다보면 석포역에 닿는다. 

승부역에서 낙동강을 오른편에 끼고 한 2Km 쯤 가다보면 도로는 강변을 벗어나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산마루 고갯길을 몇 번 휘감으며 몸부림을 치다보면 다시 낙동강이 보이고,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강변의 경관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석포역에 닿는다. 

 

심심산골을 잇는 영암선(영주-철암) 철도를 개설한 군인들의 공을 치하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친히 쓰신 ‘영암선 기념비’도 하나의 볼거리이다.  혹자는 승부마을을 ‘육지의 섬’ 혹은 ‘한국의 시베리아’라고도 부르고 있을 정도로 산간오지... 다른 곳보다 눈이 많이 오는 오지인 탓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고 싶은 청춘 남녀들이 찾아와 물씬 풍기는 겨울정취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코레일에서는 매년 겨울 ‘눈꽃 열차’를 운행하면서 이곳에서 1시간여를 정차해 주고 있다.  

 

龍冠바위

승부역 맞은편 낙동강변에 위치한 절벽으로, 전주 李씨의 7대조와 엮인 전설이 있는 바위, 용관은 龍의 갓이란다.  

 

 

승부역에서 버스가 다을 수 있는 석포역까지는 포터로 이동

승부역에서 석포역까지는 약 12Km, 양 역의 사이에 있는 농가를 다 합쳐봐야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농가들이 40가구 정도 밖에 안 된다니, 그야말로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라고 불러도 될 듯 싶다. 비좁은 도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철로와 마주 달린다. 도로가 낙동강을 오른편에 끼면 철로는 왼편, 왼편에 낄 때는 철로는 다시 오른편으로 도망가 버려, 비록 비좁은 땅이지만 서로의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   

 

공덕산(功德山, 912m), 천주산 (天柱山, 836m)


소재지 : 경북 문경시 산북면, 동로면 경계

산행일 : ‘09. 8. 16(일)

함께한 산악회 : 자이언트 산악회

 

 

특색 : 이 산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을 꼽으라면, 유서 깊은 대승사와 부속 암자들, 그리고 사불암 등 불교유적과 안장바위 능선의 빼어난 암릉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공덕산과 천주산을 연계산행 할 경우에는 함께 둘러볼 수 없다는 것이 흠, 능선과 대승사(사불암 포함) 산행코스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대승사(大乘寺)입구 대형차량 주자창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절로서 목각탱부관계문서(보물 575), 금동보살좌상(보물 991), 마애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239) 등 불교 문화재가를 보유하고 있다.

오늘 공덕산을 찾음은 산행이 주 목적, 대승사와 사불암을 거치는 오른편 도로를 포기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안장바위 능선 방향인 왼편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오른다. 이 길은 윤필암과 묘적암을 지나가지만 주어진 하산시간에 맞추려다 보니 답사는 생략...

 

 

묘적암으로 오르는 길

묘적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서 있다. 암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묘적암 못미쳐 왼편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우측 숲 사이로 묘적암의 지붕이 빼꼼이 내다보인다. 절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처럼 인기척이 없다. 적막 그 자체... 묘적암은 고려 말의 고승인 懶翁화상이 了然선사를 찾아가 출가한 곳으로, 나옹화상이 지어 후대에 전승한 西往歌는 歌辭로 주장될 만큼 귀중한 사료라 한다.

 

 

안장바위 암릉으로 오르는 길가엔 고사목이 쓰러져 있어 삭막하게 보인다. 예전에 산불이 발생하였던 듯... 살아남은 노송들만이 앙상한 뼈를 하늘로 향한 채로 군데군데 능선을 지키고 서 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잠깐의 자투리 시간에 거실의 TV 앞에 앉았었다. 마침 TV는 ‘山'이라는 스페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고, 답사하는 산은 외국의 어느 국립공원... 산행을 안내하는 국립공원 직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산불도 산에 필요한 정상적인 순환과정 중 하나이다. 산불이 나면 그 열기로 인해 열매를 맺고, 그 씨앗을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땅위에 떨어뜨림으로서 또 하나의 생명체를 생성시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산은 영속성을 띤다‘

 

그러나 그 직원의 말은 자연발생적인 산불을 이야기 한 것일 뿐, 결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 산불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일어나는 산불은, 산이 원래의 모습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묘적암을 지나서부터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안장바위 암릉길은 공덕산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을 듯...  

 

 

암릉을 타고 오르다 보면 등산로 주변에 화마로 그을린 고사목들이 자주 눈에 띤다. 가끔은 이렇게 화마속에서도 생명의 끝자락을 용케 부여잡은 나무도... 자연의 치유력은 대단한 듯, 산은 이미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능선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지나온 안장바위 능선이 길게 늘어서 있고, 오지의 첩첩산중을 구불구불 농로가 흘러가고 있다  

 

 

밧줄이 걸린 암괴를 타고 오르면,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만나고, 그 길 끝에 또 암괴가...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바윗돌을 타고 넘는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분재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암릉을 걷는 맛은 그야말로 낭만이다. 이 맛에 산을 찾는 것이 아닐런지 모른다. 이 무더운 여름날씨에 암릉을 걸으며 비 오듯이 흘리는 땅방울만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으련만...  

 

여름이다. 산은 녹음으로 짙푸르다. 세속의 풍광을 저 먼 발치 밑에 둔 한여름의 산... 여름 산이 선사하는 가장 귀한 장면을 연출한다.

 

 

암릉의 끝자락에 안장바위가 있다.

옛날 나옹선사가 이곳에 올라 수행을 하였단다. 맨날 일은 안하고 바위에 올라앉아 놀고만 있는 나옹선사가 미워, 선사가 입적한 후에 마을 사람들이 말머리 부분을 부숴버렸단다. 마을 사람들 눈에 놀고먹는 스님이 얼마나 미웠을꼬...ㅎㅎ 후에 마을에 우환이 끊이지 않자 다시 붙여 놓았다나???  

 

 

암릉 끝에서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 묘봉에 도착한다. 공덕산에서 제일 잘 생긴 묘봉은 바위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부부 바위

올初 지식경제부로부터 사보에 게재할 원고를 부탁받은 일이 있고, ‘戀書’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면서, 난 부부의  因緣을 다음과 같이 적어보았었다. ‘죽음이 우릴 갈라놓을지라도 수만 생의 윤회 속에서... 비록 모습이 바뀌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가슴저린 행복이 서로 사랑했음을 일깨워, 또 한생의 연분을 이어줄 한 자락의 끈이 되어줄 수 있는 것’ 오늘 난 공덕산을 지키고 사는 乭부부의 중간에 걸터앉아 서로의 연을 맺어주는 삼신할아범이 되어본다. ^^-*

 

 

 山 넘어 山... 눈을 들면 山, 내려뜨려도 또 山 ... 그 사이로 길 하나 실뱀처럼 기어가고 있다. 

 

 

능선에 서니 산줄기 사이로 윤필암이 내려다 보인다.

윤필암은 수덕산 경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방의 한곳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절이다. 다녀온 이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많은 야생초와 수목들... 그리고 작은 연못까지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단다. 역시 스님들도 꿈 많은 여성임에는 별 수 없는가 보다. 윤필암은 청담스님의 따님인 수원 봉령사 승가대학장인 묘엄스님의 출가처이기도 하다. 

 

 

참 생명이란게 이렇게도 끈질긴 것인가 보다.

커다란 암릉, 그 위에 걸터앉은 커다란 바위, 그 갈라진 바위 틈에서 저리도 튼실한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니... 수 십년 모진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에 짓눌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주어진 여건부터 불평등이라고 외치며, 그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기보다는 포기가 익숙해져버린 난... 조금은 닮아보고 싶은 삶의 또 다른 형태이다 

 

 

공덕산 정상을 20분 앞두고 만나는 전망대는 바람 솔솔... 쉬어가기 딱 좋다.

공덕산은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이름일 뿐, 산 중턱 바위 사면(四面)에 부처님의 모습이 조각된 사불암(四佛岩)이 있다 하여 사불산(四佛山)이라 불리운다. 운달산(雲達山:1,097m)과 이웃해 있으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사람이 드물다.  

 

 

공덕산 정상은 산행길에서 왼편으로 갈라져 5분여 거리에 있다. 정상엔 숲속 개활지에 조그만 표지석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은 큰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일절 조망이 없다.

 

 

공덕산에서 능선을 따라 천주산으로 가는 능선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다. 숲속 오솔길은 부드러운 흙길... 나뭇가지 사이로 삼각뿔처럼 치솟은 천주봉이 보인다. 사진 촬영은 불가... 

 

 

천주산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 가히 죽음의 루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심한 경사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드는데, 바닥은 미끄러운 마사토... 오히려 바위지대보다도 더 힘이 든다. 가급적 로프와 나무뿌리에 의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오른다. 

 

 

 

정상부는 좁고 긴 능선으로 외어있고,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사진 촬영에 정신을 빼앗긴 모습이 보기 좋아 배경에 담아본다. 진지한 그의 뒷모습이 전문가 못지 않기에... 전문가가 일반인과 무엇이 다르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심취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전문가일터... 

 

 

 

 

천주산에서 바라보이는 산들은 대부분이 천주산보다 높은 산들이다. 북쪽으로는 白頭大幹 위에 놓인 황장산의 바위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벌재넘어 단양의 명산 수리봉... 동쪽으로는 매봉이 마주하고 있다.  황장산의 암릉이 하늘가에 이르러 혼자 보기 아까운 실루엣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천호의 고즈녘한 전경

천주산 산자락을 따라 59번 국도가 이어지고, 저 멀리 농업용수댐으로는 가장 크다는 경천호가 보인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천주산 정상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산은 비가 올때 너댓명은 충분히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遮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바위 밑을 비스듬히 통과해야만 한다. 

 

천주산 정상의 칼날같은 10여터의 암봉은 그 폭이 좁아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 할 것 같이 느껴져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그러나 ‘걱정 마이소~’ 찾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 지자체에서 스텐레스파이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슬랩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

‘경사가 그리 크지 않아서 미끄러져도 걸칠 곳이 많을 것 같아요. 떨어져도 죽지는 않으니 과히 걱정하지 마세요.’  무지막지한 내 일행... 엉금엉금 기고 있는 여자분에게 겁먹지 말고 성큼성큼 내려가라고... 그것도 위안이라고 던지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여자분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질리는 것을...  

 

 

 

까마득한 벼랑을 떨어뜨린 절벽 사이로 노송이 휘휘 늘어진 가지를 펼치고 있고, 그 주위를 참나무, 떡갈나무들이 푸르른 잎으로 둘러싸고 있다. 

  

밧줄을 잡고 암벽을 내려서면서 뒤돌아보면 천주봉정상부의 음영이 하늘과 맞닿아 운치 있게 다가온다. 내려가는 길에는 거대한 소나무가 줄지어 나타난다.

 

 

자료사진 몇 장 구해보려고 들른 천주사,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약수에 취해서였을까? 난 관광버스 주차장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대형주차장을 기웃거려보았지만 버스도 보이지 않고, 인적도 찾을 수 었어 지나쳤으니 놓친 것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을 듯도 싶다.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놀다갔다는 천주산의 형태는 영락없는 남성... 힘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 산자락에는 정력에 좋다는 오미자가 예로부터 자생했단다. 그래서일까? 하산길 등산로 주변의 산비탈엔 빠알간 오미자가 주렁주렁... 전에 문경시장님이 주기적으로 보내 주셨을 때는, 효능도 모르고 그저 술에 섞어 마시는 줄로만 알았다.

 

 

산행 날머리에서 바라본 천주산(824m)

하늘 받침대, 즉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하여 天柱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이산을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붕어산이라고도 불리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바위산이라서 교통이 불편한데도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편이다.

 

 

산행날머리인 간송리 천주사입구

대기 중인 산악회 버스를 지나친 후, 10여분을 더 걸어서 도착한 간송리. 이내 잘못 내려왔음을 알아차렸지만, 경사가 심한 1Km이상 되는 산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갈 수는 없다. 배도 채울 겸 도로변의 횟집에 들러본다. 싱싱한 횟감에 소주 한잔 곁들이는 감칠맛에 입맛을 다시면서... ‘차라리 잘 되었다’ ㅎㅎ

 

 

천주사 입구 앞으로 흐르는 있는 금천(경천호 바로 위)

문 닫힌 식당을 원망하며 출출한 배를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아 두리번 거려보지만... 그저 냇가에서 둘러앉아 무언가를 먹고있는 행락객들이 부러울 따름...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무료한 시간도 죽일 겸 계곡으로 내려선다. 아는 사람도 없으니 채면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웃통 활짝 벗어부치고 땀부터 닦아낸다. 아 시원해~~~

 

 

8월의 산릉은 힘차다. 진록의 나뭇잎은 젊은이들의 알통마냥 힘으로 넘쳐난다.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맑고 고와, 차라리 싱그러웠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화사한 빛으로 봄을 만끽하던 산함박은 꽃봉오리를 닫아버린지 오래지만, 어느새 철 이른 개벌취가 꽃봉오리를 열고 산속의 나그네를 손짓하고 있다.


녹음은 나이를 잊게 하고, 희망을 주고,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무뎌진 감흥도 일깨워주나 보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쳐도 마냥 싱글싱글 즐거운 표정으로 산을 오른다. 수없이 밟고 또 밟혀 죽어버린, 도시 주변의 산들과는 달리 살아 숨쉬는 오지 산의 흙길은 우리의 발길을 포근히, 그리고 부드럽게 받아준다.  그래서 가파른 산릉을 오르면서도 즐겁기만 한가 보다.

 

팔각산(八角山, 628m)


구름위에 첩첩이 솟은 봉우리가 여덟 개라 해서 이름 붙여졌으며, 옥계팔봉이라고도 불린다. (산의 보편적 호칭인 봉(峯)을 피하여 각(角)이라 부르는게 특이하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암괴석과 급경사, 암벽 등으로 인해 산세가 험한 편이다.


산행코스 : 옥산리-출렁다리-산성골-팔각산(8봉)-7봉↔1봉-팔각산장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자이언트산악회


특징 : 전체적으로 그늘이 적은 산이어서 봄, 가을 산행지로 적합하나 알탕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옥계계곡의 물에 반해 찾아올 수도 있을 듯... 절경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산행코스를 1봉에서 8봉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행 들머리는 출렁다리에서...

옥계계곡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길이 70m로 국내에서 제일 긴 출렁다리라는데, 글쎄~~ 

 

 

 

출렁다리 근처 계곡, 조금 더 올라가면 옥계계곡 본류를 만난다.

옥계계곡은 옥계2교 근처에 세워진 표지석의 仙境玉溪라는 문구에 부끄럽지 않는 비경을 자랑한다

 

초입, 울창한 숲에 갇혀버린 골짜기를 오른편과 왼편에 번갈아 끼는 등산로가 쭈욱 이어진다.  길가 원시림은 칡넝쿨로 뒤 덮여 차라리 어두울 정도... 숲의 빈공간을 뚫고 스며드는 빗살이 너무 곱다

 

숲과의 교감을 시작해 본다. 산이 전하는 메시지를 하나라도 놓칠새라 가슴에 담으며... 자연과의 감응은 나와 자연이 딴몸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부터 시작된다.

나무의 날숨을 내가 마시고, 나의 날숨은 나무가 마시니 나무와 내가 다른 것일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의 삼라만상이 모두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드디어 찾아낸다.

 

 

첫번째 나무다리를 지나서면부터는 미약하지만 계곡트레킹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데, 진회색의 암반 협곡으로 청류가 유유히 흐르는 담, 소(沼), 폭포 등을 안은 계류를 수십차례 건너야한다

 

좁은 협곡은 험한 물굽이 끝에, 와폭에 이은 조그만 소(沼)들을 만들어 내는데, 계곡 곳곳에는 층암절벽과 기묘한 암봉군이 도처에 솟아 있어 트레킹의 묘미를 더해준다. 

 

계곡 좌우엔 부처손이 덕지덕지 붙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나열해 있고, 연록색 암반위를 넘실거리며 흐르는 계류와 소(沼)는 가뭄에 수량은 좀 적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제2목교 

협곡을 가로지르는 아취형의 다리는 진한 녹음과 묵빛 암벽이 어루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

 

무주구천동의 나제통문을 연상케하는 독립문바위 아취형태의 바위로 된 개선문을 빠져나오면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말벌집을 볼 수 있다... 쉿! 조심~

 

계곡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보면 사람키를 훌쩍 넘는 산죽 푸른 숲이 산꾼들을 맞이한다 

 

산죽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외딴집이 나타난다.

뜨락에 널린 빨래 몇개가 한가롭고, 텃밭의 채소와 하얀 들꽃이 평화로워 한번쯤 살아보고도 싶지만, 아서라~ 섣부른 판단은 금물! 혹시 평화로움 뒤,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움이 숨어있지나 않을까?

 

외딴집을 지나 30여분 급경사를 오르다보면 만나는 능선, 억새들이 어느새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가을맞이 기념사진 찍어줄테니 들어가 보세요" 아내의 날카로운 대꾸 "씨~ 가을도 좋지만 묘인데..."

 

 

팔각산 가는 능선에는 굴참나무 천지...

보통 다른 산에는 침엽수는 차지하고라도, 같은 활엽수래도 서어나무, 물박달 등등 수종이 다양한데...

 

또 하나 이산의 특색인 정상 못미쳐 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

행선지와 거리를 알려주는 다른 산의 이정표와는 달리 이곳에는 산행지도를 매달아 놓고 있다

제작하는데 경비는 많이 들었겠지만, 산을 찾는이들에게는 행선지와 거리가 더 필요한데... 아쉽다  

 

팔각산 정상

좁기 때문에 앉아 쉬기에는 적당치 않고, 나무로 둘러쌓여 조망 또한 없다 

 

정상에서 7봉 방향으로 약 10m쯤 진행하면 왼쪽으로 조망이 확 트인다.

가히 전망대라 부를만...근처에 칠보산이 있을텐데 찾을 수 없고, 곧 바로 의미없는 시선을 거두고만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7봉 능선의 뒷면 

암릉 사이사이 늘어선 저 소나무,만학천봉(萬壑千峯)을 거느리고 운무(雲霧)에 이끌려 하늘에 닿아도 벗어남 없는 곧은 마음 그윽한 솔향 흘려주는데, 코끝에 걸린 그윽한 향 한점 구름되어 점점이 흐른다

 

7봉쪽으로 가는 능선 

암릉 상부가 협소하고 뾰족한 데다 암석은 잘게 쪼개진 결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대부분의 암산의 특징을 넘는 소나무와 암릉의 상서로운 만남...

특히 이곳의 소나무는 분재 같은 왜송이 많아 더욱 멋진 경관을 연출해 주고 있다

 

6봉에서 바라본 7봉

6봉 방향 하산길이 급경사에 절벽을 끼고 있어 위험한 편이다. 물론 안전시설도 거의 없다

누군가 표지석을 봉우리 같지 않은 작은 돌출부로 옮겨 소나무 가지사이에 길치듯 심어 놓았으나, 릿찌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을 듯... 물론 난 이 하산길을 집사람과 함께 내려왔다.

 

원래의 7봉 정상

이곳은 정규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고는 결코 다달을 수 없다

 

'나는 곧 나무요, 나무가 곧 나다'에 목을 매고 헤매이다, 눈앞에 나타난 가파름에 놀라 상념의 나래를 접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능선을 타고 병풍을 두르듯 즐비하게 늘어선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 7봉 정상에 선다.

 

7봉에서 바라본 능선...

약간의 위험을 동반하지 않고 어이 선경을 즐길 수 있으리오...

7봉 정상이 아니면 이런 선명한 능선을 결코 가슴에 담을 수 없다

 

 

 

 

6봉에서 바라본 7봉을 향하는 능선

아무래도 팔각산의 경치는 인위적 7봉에서 5봉까지의 능선이 제일일 듯 싶다 

 

5봉에서 바라본 6봉

암벽코스 곳곳에는 어린이 손목만한 밧줄이 매달려 있다

요즘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짜릿한 쾌감을 원하는 편인데, 팔각산은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5봉

암봉주위 바위틈과 벼랑에는 소나무들이... 바위산과 조화를 이루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잠깐의 쉬임 끝에... 나도몰래 소나무 잎파리 가만히 깨무는데 금새 진한 향이 한입 가득차 온다

 

生과 死의 절묘한 만남...

그리 높지 않은 암봉 정상에 외롭지 않으려 마주보고 선 소나무 두 그루...

문듯 '삶과 죽음이 하나이어라...'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름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여기가 4봉일 것 같은데, 사방을 두리번거려봐도 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3봉은 우회로를 이용...

1봉부터 올랐더라면 한때 암벽에 빠졌던 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정상을 밟았으련만(3봉 초입에 좌측 일반등산로, 우측 암벽등산로로 표시되어 있으니, 틀림없이 우측을 선택했을거다)

8봉부터의 하산길인, 3봉 뒷편은 산악회 리본하나 보이지 않고, 산행대장의 방향표시도 우회를 지시... 나름대로 바위에 매달려보지만 실수로 손바닥에 상처를 입은 후, 서운함을 무릅쓰고 우회로를 택한다  

 

1봉

조그만 언덕 같은 곳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외롭게 우뚝 솟아있다

봉우리마다 직사각형의 화강암 지표석을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걸쳐 놓았다

(2봉은 언덕에 납작한 바윗돌 몇개 포개논 것 같이 볼품 없이 생겨 사진 촬영이 무의미...)

 

1봉에서 10여분 내려온 곳에 있는 전망대에서 본 팔각산 전경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108개 철계단...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갖는 백팔번뇌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백 여덟 개의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름은 곧 번뇌를 벗어나는 것임을 의미할 것이고...

 

아서라~ 번뇌란 본래의 자기인 일심(一心)을 잃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일심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빨리 되찾는 것이 백팔번뇌를 끊는 길일지니...

 


철계단 옆의 계곡

폭포 밑은 거의 한길이 다 되도록 깊어, 하산길 숨어서 알탕하기 딱 좋은 곳이다.  오늘 알탕을 같이 하신 어르신 曰 "여심폭포(설악산 흘림골 소재) 같지?" "예! 맞습니다 맞고요" ㅎㅎ  

 

귀경길엔 보너스로 강구항 탐방

일몰을 앞둔 시각, 방파제에서 보는 강구항... 윗편이 주왕산 자락으로 부터 흘러내려오는 오십천이다

 

어시장에서 바라본 등대 

 

 

 

해안선에 늘어선 어선들... 뒤편엔 대게를 파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요즘은 대게가 잡히지 않는 철인지, 식당마다 거의 러시안산을 팔고 있단다

 

어시장 풍경

광어의 흥정이 이루어지지 않자, 해삼 한접시로 아쉬움을 달래는 집사람... 서울보다 비싸단다

일행 한분 曰 "백령도의 횟감은 전부 인천 공판장에서 받아온답니다" 그럼 비싸도 그냥 참으렵니다 

 

진정한 행복...

인간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겠는가?


제우스신의 선물인 결코 열어서는 안되는 상자를 판도라가 열었을 때,

슬픔과 고통,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악(惡)이 쏟아져 나왔으며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았을 땐 희망(미래, 헛된 희망)만이 남았단다.

그때부터 인간은 여러 고통을 겪으면서도 미래의 희망이란 끈을 안고 살게 되었다나?.


그래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내 삶에 있어 제일 큰 희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 붙이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미 난, 집에서는 물론 산에서까지 그녀의 두손 꼭 잡고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음에야...   

 

도장산 (道藏山, 828m)

 

산 아래를 감도는 쌍룡계곡은 세상 어디에도 비길 바 없는 숨은 비경으로

'택리지'엔  "청화산과 속리산 사이에 경치 좋고 사람 살기 그만인 복지"라 적고 있다. 그리 높진 않지만, 능선 군데군데의 암봉과 노송이 어우러진 풍취는 일품이다


산행코스 : 용추교-심원사 갈림길-왼편 능선-도장산-헬기장-심원사-용추교(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반더룽산악회

 

특징 : 바위산이라고들 하나 그리 불리기에는 다소 미약한 듯... 산보다는 쌍룡계곡이 더 유명하다.  이곳도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 그러나 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해서 이직은 덜 오염되었다. 입구에 경찰서장의 취사금지 팻말이 서있음에도 그 곁에서 아예 솥을 걸어놓고 찌게를 끓이는 일부 몰지각한 행락객 무리가 보여, 모처럼 만난 도원경에서 본의아니게 얼굴을 찌뿌리고 만다

 

 

 

 

산행들머리인 용추교를 들어서면  맞은편 웅장한 암벽이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정비된 길을 버리고 청룡계곡으로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기암

웅장한 멋 보다, 끄트머리 척박한 바위에 삶을 기대고 있는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찬탄을 보낸다 

 

 

 

심원사 앞 갈림길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거나 혹은 우측으로 가더라도 하산길에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다

 

도장산은 근처 산들의 특징대로 바위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어느것 하나 곧게 자란 나무가 없지만, 그렇다고 정원에 옮기고 싶도록 어여쁜 나무도 없다

 

그러나, 얼마전 수령 300년이 넘는 소나무(1억원 상당으로 언론에서 명품소나무라 불리웠다)를  훔치다 들켜 법의 심판을 받은 일이 있는 걸 보면 안보이는 곳에는 이쁜 소나무들이 많은 모양이다

 

등산로는 대부분 요로코롬 생겼다

능선에 심은 듯 박혀있는 바위들... 그 바위들에 박힌 듯 자라는 활엽수들... 그 사이를 걷는다

 

가로수(?)는 활엽수와 침엽수들의 교차연속...

 

 

정상어림의 능선은 차라리 육산으로 분류하고 싶을 정도...

보슬보슬한 능선길 주위엔 참나무들이 숲의 터널을 만들어 주고 있다. 

 

 서쪽능선의 정상 못미쳐에서 만나는 암봉...

이정도의 암봉은 여기가 유일, 나머지는 육봉이거나 그저그런 규모의 바위들이다

 

정상은 바닥에 깔린 바위 몇개와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터로 형성되어 있다

정상이 주는 묘미보다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군들의 자태... 조망이 빼어난 곳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희양산

백두대간 탐사때, 저곳 능선에서 땡중들이 길목을 막고 산을 못오르게 하고 있었고, 별수 없이 그들을 피해 비오는 날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프가 제거된 암릉을 오르며 나무등걸에 매달려 위태위태하니 나약한 나무뿌리에 내 생명을 맏긴 허망함에 얼마나 그 땡중들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정상에서 바라본 대아산 방향

백두대간때  저곳에서는 리본을 잘 봇 판단해 용추폭포 쪽으로 500m를 하산했다 돌아온 기억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속리산 방향

지난 초여름 묘봉과 상학봉을 밟으며 그 암릉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많은 감탄사를 쏟았느지...

 

도장산은 그 이름부터가 도를 비장하고 있는 산이란 뜻이니,

오늘 산행은 발부리에 차일 돌맹이 하나에도 도가 갈무리되어 있을 터,

행여 운이 좋아 道 하나쯤 주어 담아 올 수 있으려나???

 

심원사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고승인 윤필과 의상대사가 있었던 사찰이라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화재로 전소된 후 1964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서 산중의 한벽함을 물씬 풍기고 있다.

 

도장산은 산보다 계곡이 더 유명함을 말해주듯

곳곳에 수려한 경관의 암벽과 깊은 소, 그리고 낙차큰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심원폭포

수량이 풍부한 폭포와 깊고 푸르른 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정표 하나 없어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 경관도 좋고, 만만찮은 삼단폭포인데도 이정표가 없으니 안타깝게도 무명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계곡의 한면을 이루고 있는 암벽은, 높고 넓어 가슴 벅찰 정도로 웅장하건만 이름을 모르니 안타깝다. 이걸 배경삼아 사진 찍는 많은 사람들, 다들 뭐라 메모할 것인지 궁금하다, 뭔가 이름이 있을텐데...

 

 

쌍용계곡 입구

이곳에 암룡석과 숫룡석이 있다는데 식별이 쉽지 않다

 

이곳 일대는 우리나라 십승지지 중의 하나로서, 우리민족의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 지리산 청학동과 같은 살기 좋은 선인의 고장인 우복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전해온다  

 

세시경 하산길의 쌍용계곡 입구...

도로변에 수십대의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있는걸 보면 이곳의 유명세를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다만 저중 몇대는 산행보다는 이곳에서 먹고 마시러 온 사람들...

용추교 다리 밑, 걸어 놓은 큰 솥에선 뭔가 열심히 끓고 있고, 그 곁에선 이미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도심이나 그 주위에 유흥음식점이나 노래방이 많은데, 하필이면 이런곳까지 찾아와 어지럽게 할꼬... 

 

도가 깃든 산이어서인지 산행내내 뭔가가 머릴 들쑤시고 있다

 

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한데...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정숙함을 가장한 완전한 삶의 자세일 뿐인 것 같다.

 

어떤 유혹에도 가장 약한 세대에 내가 놓여 있음을 인정하며 오늘도 난 뭔가를 찾아 산을 헤매인다... 그 끄트머리의 한자락에서 뭔가 건져 올리고파...

 

선달산 (1236m)


백두대간의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의 대간 조망이 좋은 산으로,

박달령에서 남쪽 갈곶산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구릉은 산행하기 수월하다.

또한,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각종 나무들이 줄을 서 있어 산세가 우아하다


오산행코스 : 오전약수-박달령-선달산-늦은목-생달마을(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밋밋한 육산으로 산행은 편하나, 대신 숲으로 인해 조망은 없다

봉황산을 통과하여 부석사로 하산하는 길은 막혀있으니 주의...

땡중들(스님들이 산 입구를 막고 근거도 없는 입장료를 챙기는 이후로는 땡전을 챙기는 스님들이라 해서 난 이들을 땡중이라 부르고 있다)이 부석사 진입을 못하게 막고 있단다  

 

산행들머리는 오전약수에서

풍기IC를 나올 때부터 간간히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어느새 굵어져 소나기로 변해 있다

 

오전약수 

보부상에 의하여 발견된 약수로 옛적 조선 제1의 약수로 알려졌으며,

탄산약수의 특징인 톡 쏘는 물맛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염이 있단다

풍기군수 주세붕(백운동서원 설립자)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만하다고 극찬...

한가로운 주변마을과는 달리 약수터앞은 음식점이 꽉 들어찬 관광지로 변해 있다

 

임도길을 잠시 걷다 우측 산길로...

굵은 빗줄기에 더욱 짙푸러진 숲속길은 골바람에 나뭇잎을 가날픈 소리를 내며 흔든다.


완만하게 오르는 산길을 간간히 들꽃들과 눈을 마주치며 오르니

박달령 이정표가 반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측으로 낙엽송숲이 하늘을 가린다. 등 뒤에서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어느새 비내리기를 멈춘 짙은 구름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박달령은 선달산과 옥돌봉 중간위치에 있는 고갯마루로

과거에는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보부상들이 시나브로 통행을 하였던 곳이다. 이제는 성황당과, 백두대간 안내판이 세워져 백두대간을 찾는 산꾼들의 쉼터노릇을 하고 있다.

 

박달령의 성황당

 

고도가 높은 선달산구간 등산로는 부드럽고 아늑하여 걷기 좋으며

이름 모를 꽃들은 백두대간 하늘길 내내 함께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짙은 녹음과 고산의 숲이 발산하는 맑고도 그윽한 향기는 온몸을 정화시켜 준다. 아름드리 신갈나무 숲속에 쭉쭉 뻗은 춘양목은 가는 길 내내 운치를 더하여주고...

 

좌측에서 밝은 빛이 비춰드니 대간이 서남쪽을 향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인의 속살을 탐하듯... 빛살은 부드러우면서도 빨려들듯이 숲속을 파고든다.

 

오전까지 비가 내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깨끗하고 맑기만 하다.

조망이 없다하여 결코 지루한 구간이 아니다.

잠깐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됨을 느껴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가?

 

키 큰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하늘을 가리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신선함에 나도몰래 길게 심호흡을 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하고 신선한 향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물푸레나무과 층층나무, 물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지루해야할 구간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음은 삼림욕효과 때문이 아닐까?

걸어도 걸어도 아늑한 숲길이다.

 

 

물이 부족할 것 같으면 아래쪽에 있는 옹달샘으로 내려가면 된다.

 

나뭇잎이 떨어져 지저분하겠지만, 물이 계속 흐르니 걱정하지 말 것!

'산중의 짜릿한 물맛’ 오랜만에 하늘 길 밟던 시절 느꼈던 입맛을 다셔볼까나?

 

선달산 정상

잡목을 베어내어 조망이 트이게 했으나 구름에 둘러쌓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주위 경관도 별로다. 신선이 놀았다 하여 선달산이라 했다는데 신선이 놀만한 장소는 아닐 듯 싶다. 아마, 날이 좋더래도...

 

정상에선 보이느니 이름모를 들꽃들 뿐... 

 

'고삐 한번 늦춰주질 않고 헐떡이게 만드는 오름길'

늦은목이 고개에서 선달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가히 죽음의 루트라 부를만하다. 주위에 늘어선 진달래 군락은 꽃피는 봄날 이곳을 찾는다면 조금은 낫다며 우리에게 귀엣말 하는 듯... 

 

늦은목이

나무들은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백두대간을 위해 쏟아놓은 흔적이 뚜렷하다.

 

부석사를 가려면 다음  봉우리인 갈곶산에서 대간을 벗어나 봉황산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땡중들이 등산로를 막고 있다하니 어쩌랴... 아쉬운 마음을 접고 생달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왕바우골

생달마을은 두개의 골짜기가 달 같이 생겼다해서 쌍달마을이라 불리웠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생달마을로 변하게 되었을 정도로 계곡이 유명한 곳이다 

 

하류로 내려가면서 물길은 점점 거세지면서 이름없는 폭포들을 만들어 낸다

 

폭포의 진화 #2, 이젠 제법 거센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생달마을 끄트머리의 합수곡

계곡은 진화하여 이젠 어엿한 냇물을 이루고, 곳곳에 비경을 만들고 있다

 

가을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하산길 만난 억새들이 어느새 꽃을 활짝 피운 채 잠깐 쉬어가라며 산꾼들을 유혹한다 

 

 

하산길 임도 주변엔 삼나무가 키큰 위용을 자랑하고

 

와~~

몇번인가 영국출장을 갔었지만... 런던, 맨체스터 등등 늘상 출장지에서만 머물다가, 언젠가, 워드워즈의 생가를 들러보고파 힘들여 짬을 내어봤던 글라스미어 지방의 원더미어 호수...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단체에서 18세기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워즈워드 생가보다도, 난, 하룻밤을 묵으며 거닐었던 호숫가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이곳에서 옛 추억을 되살리는 호수를 만나다니....

 

그때, 원더미어 호숫가에서 난 그 호젓함에 가슴을 떨며 울먹이고 있었다 

그 울렁거림에 나도몰래 저수지 물에 손가락 끝을 담가본다... 앗! 차거~~~

 

호숫가에서 바라본 선달산

어느새 비는 그 생명을 다하고, 마지막 숨가뿜을 산봉우리에서 내뱉고 있다

 

귀경길엔 소수서원(사적 제55호)을 찾는 호사를 누려본다

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현(儒賢) 安珦의 祠廟를 세우고 백운동서원을 설립, 명종 5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오경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다.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정자

산과 물을 어우르는 절묘한 위치... 설마 선비님들이 공부는 안하고 풍류만 즐긴건 아니겠지? 

 

선비촌

입구에 주욱 늘어선  건물들은 지나는 과객 노잣돈 털어먹기 딱이다

 

뒷 건물은 박물관

 

귀경길 떠나는 과객을 배웅이나 하려는 듯,

서원 뒷산 봉우리 걸린 구름은 하이파이브 모형의 용트림을 하고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더없이 푸른 하늘과, 회색빛 높게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과,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코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그리고 내 마음의 반란임을...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을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이 인정하고...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 난 어진 사람들이 찾는 산을 찾는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서...

 

운달산(1,097m)


일명 용암산(龍岩山)이라고도 하며, 북서쪽의 주흘산(1,075m), 서남서쪽의 백화산(1,063m),

남서쪽의 봉명산(692m)과 함께 문경을 둘러싼 자연산성이다.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바위산인 성주봉(961m)으로 종주할 수 있으나,

암릉이기 때문에 자일이 없이는 금물... 지난번 우중에 넘어가다 혼난 경험이 있다


산행코스 : 김룡사-냉골-장군목-정상-금선대-김룡사(산행시간 : 4시간)


특징 : 1천미터가 넘는 산이나 육산이라 산행이 편하고, 능선에서 간혹 마주치는

바윗길도 편하며, 우거진 수림과 냉골의 풍부한 수량은 여름산행지로 적합하다  

 

 

들머리에는 신록의 계절임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산 전체가 온통 연록색으로 물들어있다 

   

운달산은 1천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육산이라 산행이 편하기 때문에 가족산행지로 적합하다

능선에서 간혹 마주치는 바윗길도 위험하기 보다는 차라리 애교로 받아 줄만...

 

산허리에는 온통 진달래가...

능선에는 철쭉나무가 많았지만 아직 꽃몽우리를 열지 않고 있다

 

 

 

 

하산길에 마주치는 매화꽃

 

김룡사 근처의 울창한 숲

 

김룡사(金龍寺) :  신라 진평왕때 운달조사가 창건. 원래는 운봉사(雲峰寺)

조선시대 김모라는 사람이 무녀를 만나서 물가에서 낳은 아이인 김룡이 성공해서

부모를 위해 시주, 김룡이가 지은 절이라 해서 김룡사라 했다한다

 

오지에 있는 절치고는 꽤나 큰 절이다

 

오늘의 산행은 경상북도산악회 및 문경시산악회와 함께 하는 즐거움이다

참여인원은 약 80명,,, 꽤나 많은 인원이다

 

 

오늘 산행의 에너지 원은 막걸리 ...

오미자액을 넣어선지 막걸리 맛에 특별함이 있다

 

하산 길목에도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탁족을 하면서 목을 축이라는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하산후 식사는 촌닭백숙... 아무리 AI가 성행한다지만 우리 입맛을 망칠 수는 없다

함께해주신 보답으로 점심은 우리측에서 부담... 함께 해 주셔서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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