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가산 ((鶴駕山, 882m)


산행코스 : 광흥사입구→복지봉(523m)→당재→상사바위→예천군 정상(870m)→국사봉(정상)→동학가산성→마당바위→천주마을(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북후면과 예천군 보문면의 경계

산행일 : ‘10. 7. 3 (토)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산세가 사람이 학을 타고 노니는 모양이어서 학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산은 북쪽으로 영주, 서쪽으로 예천, 남동쪽으로 안동이 똑같이 15km 거리에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 이름도 다양하다. 영주에서는 정상이 평평하여 선비봉이라 하고,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다고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모습이 수려하다고 인물봉이라고도 부른다. 이산의 특이한  점은 정상이 두개라는 점이다. 예천군에 세워놓은 정상석은 어풍대 위에, 그리고 안동시에서는 능인굴 바위 정상에 세워 놓았다. 아무리 이 지방 사람들이 고집이 세다지만 이건 아니다. 하나의 산에 정상이 두개가 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  산행들머리는 광흥사 입구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 I.C를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읍을 지나면 안동시에 접어들게 된다. 풍산읍 상리리의 상리교를 지나서 좌회전, 천주마을 방향으로 들어가다가 광흥사 입구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하차한다. 이곳에서 광흥사까지는 승용차 통행은 가능하다. 광흥사 입구임을 알리는 標識石 뒤로 난 시멘트도로를 따라 5분정도 걸으면, 왼편으로 복지봉(2.3Km)으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광흥사 방향으로 걷다보면 광흥사 일주문과 그 뒤로 樹齡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조금 더 진행하면 왼편으로 연꽃이 곱게 핀 연못이 보인다. 연신 연꽃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여인의 자태가, 자못 연꽃을 닮아가는 것은 나만의 錯視현상일까? 

 

 

 

 

 

▼  본격적인 등산은 광흥사가 바라보이는 입구에서 왼편 산자락을 따라 진행된다.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의 주변은 참나무群落地, 간간히 소나무들이 섞여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등산로는 능선 안부에 다다르자마자 급한 오르막으로 변해버린다. 어느새 등산로 주변은 별로 키가 크지 않은 소나무들로 바뀌어져 버렸다.

< 광흥사 >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한때 안동지역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하나. 1946년 화재로 인해 대웅전을 燒失하였고, 또한 사세가 기울면서 극락전과 학서루 등 사찰건물들이 허물어져 없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유문화재로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보물 제314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제315호)'이 있었으나, 현재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복지봉 정상은 널따란 공터, 중앙에 묘지 비슷한 봉분이 보이나 허물어져 그 형태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학가산 방향에 산행안내도와 그 반대편, 올라왔던 길가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  복지봉에서 당재로 가기위해 내려서는 길은 심한 급경사, 그 끄트머리에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고개(핀데기골?)가 있으나, 지도에 표기된 당재는 1Km이상을 더 걸어야 나온다. 고개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편은 완전한 농경지, 산 허리를 가로지르면 왼편에 농가와 과수원이 보인다. 폐목으로 방치되고 있는 과수원의 끝을 당재의 임도가 맞대고 있다.   

 

 

 

 

 

▼  당재. 

당재를 향해 걷다보면 학가산의 전모가 정면으로 펼쳐져 보일 듯 싶다.(오늘은 구름에 가려 아랫도리만 겨우 보이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인 당재의 고갯마루는 적송 몇 그루가 차지하고 있고, 적송 곁에 이정표가 서있다.(좌측은 느리티리, 우측은 천주마을, 학가산은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학가산을 오를 때는 이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오늘 우리는 짧은 산행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복지봉을 서비스로 오른 셈이다  

 

 

 

 

▼  상사바위

까마득한 암벽 밑을 지나 바위벼랑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왼편이 상사바위이다. 상사바위의 벼랑 위는 못생긴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어디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경치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바위벼랑 위에 올라서면, 전방이 시원스레 트여있어 조망이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구름이 짙게 끼어있어 이마저 시원치 않다.  

 

 

▼  당재에서 학가산을 오르려면 1km 약간 넘는 거리에서 무려 300m 이상의 고도차를 극복해야만 한다. 무지막지한 급오름이 시작되는데, 그나마 등산로가 넓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따름이다. 상사바위와 남영사지 이정표가 나타나는 어림의 완만한 오름길도 잠깐, 커다란 무덤이 있는 곳부터는, 거의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심한 급경사 오름길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던 등산로는 다시 한번 남영사지 이정표를 만나면서부터 급 오름의 끄트머리를 만나게 해준다.  

 

 

 

 

▼  학가산 정상을 향해 한참을 오르다보면 산 밑에서는 안보이던 엄청난 바위가 곳곳에서 소나무와 조화를 이뤄 기다린다. 기단 위로 돌을 쌓은 작은 돌탑을 지나면 서학가산성이다.

  

 

▼  남영사지 갈림길에서 조금 더 걸으면 ‘학가산 3거리’, 오른편으로 마룻금을 살짝 벗어난 지점에 있는 학가산 정상에 들러 쓴웃음을 지어본다. 사실 이곳은 학가산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예천군에서 자기지역의 봉우리에 정상석을 세워놓았을 따름... 학가산이라는 빼어난 산을 다른 지자체에 양보하기 싫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정상도 아닌 곳에 정상표지석을 세워놓은 행위는 지탄받아야하지 않을까?

 

 

▼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비켜나 오른편에 밧줄이 하나 매어져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올라서니 지도에도 없는 전망대, 발아래 천주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  전망대를 내려와 바윗등을 조금 걸은 후, 철계단의 난간을 잡고 오르면 학가산 정상(국사봉)이다. 학가산 정상은 바위봉으로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비집고 앉으면 20~30명 정도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위쪽의 바위 위에 잘생긴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정상에서 보면 KBS, MBC, KT의 중계탑들이 구름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곳은 예천의 학가산에 비해 조망이 훨씬 뛰어났다.  

 

 

  

▼  정상의 능선에 올라서면 학가산은 완전히 다른 산이 되어버린다. 보드라운 흙길이 많았던 등산로 주변은 이번엔 기암괴석 전시장으로 변해버린다. 늘 그렇듯 소나무가 걸려있는 기암괴석은 시선을 한동안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  정상에서 내려와 조금 더 걷다가, 오른편에 메어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유선봉이다. 만일 유선봉을 오르려면 아래쪽에 설치되어있는 안내판의 글을 읽지 말고 오르라고 권하고 싶다. 조선조 이황선생의 제자였던 송암 권호문선생이 이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만 아무리봐도 그런 느낌을 접할 수 없으니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다. 그 곁에 있는 ‘삼모봉’ 또한 볼품없기는 매한가지...  

 

 

 

 

 

 

▼  삼모봉을 좌측에 끼고 한국통신의 철망을 따라 내려서면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길로 변한다. 철계단과 안전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동학가산성터가 보인다.   

 

 

 

 

▼  동학가산성터

학가산은 곳곳에 성터가 남아있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을 왔을 때, 쌓은 성이 학가산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사봉을 둘러싸고 있었을 학가산성은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것이다.  

 

 

 

▼  下山 길은 동학가산성을 지나 신선바위를 지나가는 길과 우회로로 나누어진다. 전문가가 아니면 우회하라는 경고문이 아니더라도 오늘같이 바위가 젖어있는 날에는 바윗길은 금물이니 당연히 우회를 따라 진행한다. 우회로도 무지막지한 급경사 내리막길의 연속, 그 끄트머리에 ‘네파 안동점’에서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약수터가 있다. 한여름 등산화 속이 질퍽거릴 정도로 흘린 땀의 수분도 보충할 겸 두 바가지의 물을 쉬지도 않고 마셔버린다 

 

 

 

▼  약수터에서부터 이어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양탄자길, 푹신푹신 하기가 그지없다. 등산로에 소복하게 싸인 낙엽을 보며, 이런 낙엽을 긁어내야만 밥도 해먹고, 아랫목에 군불을 지필 수 있었던 옛 시절이 떠오름은, 난 농군의 자식은 아니었을망정 시골에서 나고 잠시나마 시골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것이다.  

 

 

▼  기암괴석위에 분재처럼 꼬부라지게 자란 老松들을 뒤로하고, 등산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원시림을 따라 걷다보면 좌우엔 집채만한 바위들...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에 30명이 앉아도 충분할 듯한 반석이 보인다. 마당바위란다.  

 

 

▼  날머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천주마을 입구.

좌우로 묘들이 심심치 않게 늘어서 있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굵직하면서도 늘씬하게 자란 산죽 숲이 보이고, 곧이어 만나게 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내려오면 시내버스 종점, '천주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마을 쪽으로 하늘을 향해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10여 그루가 의연함을 자랑하고 있다. (* 천주마을은 ’하늘거미‘라는 뜻이다. 복지봉과 학가산에 거미줄을 치면 중앙에 마을이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