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산(加里山, 1,050.7m)-등잔봉(834m)
산행일 : ‘15. 4. 11(토)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동면과 홍천군 화촌면·두촌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가리산 휴양림→계곡갈림길→무쇠말재→가리산→가삽고개→새덕이봉→등잔봉→홍천고개(산행시간 : 4시간45분)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징 : 가리산은 부드럽고도 풍요로운 것이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비경(秘境)도 없을뿐더러 산세(山勢) 또한 보잘 것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정상만은 예외이다. 수천 길 단애(斷崖)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봉우리는 제법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바위산의 일반적인 특징까지 오롯이 보여준다. '강원 제1의 전망대'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한다는 얘기이다. 정상에 서면 명성(名聲)에 걸맞게 향로봉, 설악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고산준령(高山峻嶺)이 파도처럼 다가온다. 특히 1봉에 내려다보는 소양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쏟아놓게 만든다.
▼ 산행들머리는 가리산자연휴양림 주차장(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를 빠져나와 우회전,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방면으로 달리다 가리산교차로(交叉路 : 홍천군 두촌면 역내리)에서 좌회전(자연휴양림 이정표 참조)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가리산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 주차장에서 관리사무소가 위치한 왼편 임도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휴양림에서 지은 산막이 나오니 참조할 일이다. 널따란 임도는 경사까지 없으니 그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기만 하면 된다.
▼ 이곳은 자연휴양림, 산막이나 공동취사장, 운동시설, 화장실 등 휴양림 운영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 외에도 아름다운 시를 적어 놓은 시판(詩板)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반가운 시 한 편을 발견한다. 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공직에 입문하면서 내 지표(指標)로 삼았던, 그리고 평생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살아왔던 시(詩)이다. 그 덕분에 난 대통령상까지 안 받아 본 상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상들을 다 받아봤지만, 벌(罰)이라곤 그 흔한 경고(警告) 하나 까지도 받아본 적이 없이 명예롭게 공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 의미 깊은 시를 이런 산속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행운이다. 그리고 오늘 산행은 왠지 행복한 산행이 될 것 같다.
▼ 관리사무소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편(말뚝모양 이정표 참조), 그리고 두 번째 갈림길(이정표 : 가리산 정상 3.8Km/ 관리사무소 9.5Km)에서 다시 왼편으로 진행한다.
▼ 휴양림 시설인 산막을 지나는데, 집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호들갑을 떤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갑자기 늘어났다며 길가에 세워진 바위를 가리킨다. ‘가리산 등산로 여기서부터 5Km', 그녀의 말마따나 아까의 갈림길(정상까지 3.8Km)에서 한참을 더 걸었는데도 정상까지의 거리는 오히려 더 늘어나버렸다.
▼ 산막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새로 지은 이층 건물이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12분 정도의 거리이다. 왼편 산자락으로 궤도(軌道)가 깔려있는 것을 보니 아마 ‘강우(降雨)레이더관측소’에 딸린 건물인 모양이다. 이곳 가리산에 한강유역의 정확한 강우측정을 위한 관측소(觀測所)를 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이층건물을 지나면서 임도는 비포장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산길은 오른쪽 산허리로 올라붙는 형태로 변한다. 식수(食水)로 사용한다며 왼편 계곡을 펜스(fence)로 막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산허리를 따라 길이 난 탓에 계곡 방향의 사면(斜面)이 약간 가파르지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될 만큼 길의 폭이 넓고 또한 사면 쪽에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 강우관측소 건물에서 8분쯤 더 올라가면 벤치 몇 개를 갖춘 쉼터가 만들어져 있고, 산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이정표 : 가리산 2.1Km/ 가리산 3.5Km, 가삽고개 2.3Km/ 휴양림 1.20Km)로 나뉜다. 오른편은 가삽고개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고, 만일 무쇠말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왼편 계곡으로 내려서면 된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이 오른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비교적 완만한 북동릉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려는 모양이다. 물론 그들이 내려올 때는 왼편의 남릉 코스를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저들처럼 산행코스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은 나중에 오르게 될 정상에서 확인된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의 ‘하산로 방향표시’가 이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 무쇠말재를 경유하는 남릉을 타기로 마음을 먹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건너면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그저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기만 할뿐 다른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육산(肉山)의 특징대로 볼거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길가에 진달래나무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봐서 시기라도 맞춘다면 꽃구경이라도 실컷 할 수 있었으련만 아직은 꽃몽오리를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다. 남녘에선 꽃 잔치가 시작된 지 이미 오래인데도 말이다. 그저 길가에 피어난 샛노란 생강나무 꽃에 눈이나 맞추어볼 따름이다.
▼ 계곡으로 내려선지 25분쯤 지나면 길가에 홀쭉하게 생긴 나무 두 그루가 뒤엉켜 있는 것이 보인다. 곁에는 ‘가리산 연리목(連理木)’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거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견(比肩)되는 연리목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데, 가리산 연리목은 생물학적으로 종(種) 자체가 다른 침엽수인 소나무와 활엽수인 참나무가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감아 올라 한 몸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목이란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집사람이 뜬금없는 질문을 건네 온다. 연리목 같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연리목을 보아온 집사람의 기대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 연리목을 지나면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힘겹기는 아까와 다름없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아까와는 달리 길가에 피어난 들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 심심찮게 나타나는 들꽃들에 눈을 맞추며 20분 쯤 오르면 능선 안부(이정표 : 가리산 0.9Km, 가리산 약수 0.9Km/ 휴양림 2.3Km)인 무쇠말재에 올라서게 된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은 큰평내에서 늘목으로 넘어가던 옛 고갯마루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리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나 가픈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작은 쉼터일 따름이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옛날 큰 물난리가 나서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이곳에 무쇠로 배터를 만들어 배를 매어 놓았다고 해서 ‘무쇠말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고갯마루에 있었던 무쇠로 만든 말(鐵馬)과 서낭당에서 연유(緣由)된 이름이라는 설(說)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그 철마를 어느 엿장수가 가져가버렸다는 얘기는 그냥 웃어넘겨버리면 될 일이고 말이다.
▼ 무쇠말재에 올라서면 산길은 일단 편해진다. 부드러운 흙길에다가 큰 오르내림이 없는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능선은 온통 참나무들 천지이다.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물론 소나무도 보인다. 다만 거짓말 좀 보태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될 만큼 그 숫자가 적다는 얘기일 뿐이다.
▼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는 가리산의 바위봉우리를 구경하면서 느긋이 걷다보면 15분 후에는 ‘약수터갈림길’(이정표 : 가리산 0.3Km/ 약수터 0.3Km/ 무쇠말재 0.9Km, 휴양림 3.2Km)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이정표가 문제다. 이곳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던지 정상으로 가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하산을 가삽고개를 거치려고 할 경우에는 왼편의 약수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래야 똑 같은 길을 중복해서 걷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표는 오른편으로 해서 정상으로 오르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고생을 사서하라는 모양이다.
▼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사전정보가 부족했던 나로서는 이정표를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반대방향의 풍경을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물맛이 꿀맛이라는 석간수(石間水)도 마서보지 못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내가 알아 온 사전지식이 길을 못 찾을 정도로 작았으니 어찌 더 많을 것을 보길 바라겠는가. 내 자신을 책할 수밖에 없다. 다만 ‘춘천지맥’을 답사하려던 산행계획이 산악회의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코스가 바뀐 탓에 사전준비를 할 수 없었다는 핑계로 작은 위안을 삼을 뿐이다. 그나저나 정상으로 향하면 잠시 후에 바위벼랑 앞에 이르게 되고 산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벼랑 아래를 따르다가 8분 후에는 가삽고개(이정표의 휴양림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1,2,3봉 0.1Km/ 1봉 0.3Km, 약수터 0.3Km/ 휴양림 3.2Km)에 이르게 된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바윗길로 변한다. 그것도 수직(垂直)에 가까울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안전로프나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바위에다 쇠로 만든 받침대까지 박아두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윗길의 위험성까지 없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조심할 경우 큰 어려움 없이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였을 따름이다.
▼ 밧줄이나 난간에 매달려 수직에 가까운 벼랑을 두어 번 치고 오르면 2,3봉 갈림길(이정표 : 2,3봉/1봉/ 휴양림), 1봉으로 가려면 철제난간에 의지해서 다시 안부로 내려서야 한다. 이곳에서는 2.3봉을 먼저 둘러보고 1봉으로 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럴 경우에는 1봉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 아까 놓쳤던 약수터를 들러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고 시원하다는 석간수(石間水)를 마셔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2,3봉을 들러보자’는 집사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난 1봉으로 향한다. 그게 내 두 번째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난 물맛을 보지도 못하였음은 물론, 특히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만 하는 바보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1봉(정상)을 둘러보고 난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 2,3봉 갈림길에서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한 번 수직의 벼랑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가리산 정상이다. 다시 말해 정상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3개의 바위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50분이 지났다. 사방이 서슬 시퍼런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정상은 5~6펼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샘터휴양림 하산로/ 2,3봉), 그리고 삼각점(내평 11-1988재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정표를 보면 하산로를 샘터방향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난 샘터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난 반대방향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내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참고로 가리산은 산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곡식을 쌓아 놓은 노적가리처럼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2봉과 3봉
▼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서쪽으로 골짜기 깊숙이까지 파고든 소양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선을 돌리면 북에서 남으로 향로봉에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의 웅장한 풍모를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발아래에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가리산휴양림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강원 제1의 전망대’라는 칭찬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 아까 지나왔던 ‘2,3봉 갈림길’로 돌아와 이번에는 2,3봉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바위전망대이다. 바위에 서면 사람의 얼굴을 쏙 빼다 닮은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큰바위 얼굴’이라는 어엿한 이름가지 갖고 있다. 조선 영조시대에 이곳에서 공부하던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이어서 벼슬이 크게 오르자 호연지기를 키우던 2봉의 바위가 점차 사람의 얼굴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큰바위 얼굴’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너새니얼 호손 (Nathanier Hawthorne, 1804~1854)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과 흡사한 내용이다. 비록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는 몰라도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다른 지자체들도 본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 전망대에서 또 다시 몇 걸음만 더 올라서면 2봉 정상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이정표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조망까지도 1봉이나 3봉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그저 코앞에 있는 1봉과 3봉의 자태나 바라보다 이내 3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 2봉에서 짧게 내려섰다가 반대편 바위벼랑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3봉 정상, 이정표(이정표(1봉 100m, 2봉 300m)가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비록 거리표시가 엉망으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3봉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1봉 쪽이 조금 답답할 뿐 나머지 방향은 시원스럽게 시야(視野)가 열리기 때문이다. 암릉과 노송(老松)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1봉의 멋진 풍광을 감안할 경우에는 1봉에서의 조망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다. 하긴 이런 볼거리가 있어서 ‘홍천 9경(景)’ 중 제2경으로까지 선정되었을 것이다.
▼ 3봉까지 다 둘러봤다면 이젠 다시 아까의 ‘가삽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던 삼거리로 되돌아올 차례이다. 3개 봉우리를 다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은 50분,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이는 그만큼 구경거리가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휴양림 방향으로 진행한다. 평탄한 길을 따라 6분쯤 걸으면 왼편으로 길 하나가 나뉜다(이정표 : 휴양림 하산로/ 소양호 뱃터/ 정상). 물로리로 내려가는 길로서, 이 길로 내려가서 소양호(湖)의 배편을 이용하여 춘천으로 나가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다만 배편이 하루에 3번뿐이니 배 시간을 미리 알아두고(전화 : 033-241-4833) 이용해야 할 일이다.
▼ 물로리 갈림길에서 또 다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길이 나뉜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까지 오는 산길은 시쳇말로 고속도로 수준, 그만큼 넓고 평탄하다는 얘기이다. 이런 길은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새덕이봉까지 이어진다. 가리산의 메인(main) 등산로라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지도(地圖)에서는 이 지점을 ‘가삽고개’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가삽고개 0.3Km, 휴양림 6.3Km/ 휴양림 3.1Km/ 가리산 0.9Km)는 이곳에서 300m 정도 더 진행하면 만나게 되는 ‘새덕이봉’을 가삽고개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하나로 통일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능선은 온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진달래나무들이 점령하고 있다. 아직은 꽃몽오리도 열지 않고 있지만 만일 제철에라도 찾아온다면 진달래꽃 터널을 통과하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봄철 산행의 최적지로 가리산을 꼽고 있나보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山勢)와 어우러져 더 큰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이 바로 진달래이기 때문이다.
▼ 가삽고개에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15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새덕이봉, 즉 지도에 936m봉으로 표기된 지점에 올라서게 된다. 밋밋한 흙봉우리인 새덕이봉 정상은 산의 정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약간 솟아오른 능선상의 한 지점으로 보는 게 더 옳을 정도로 봉우리답지가 않다. 물론 정상표지석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어떤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만일 ‘서래야 박건석’님께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지만 아니었더라면 십중팔구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 새덕이봉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원동고개 4.0Km/ 휴양림 2.5Km/ 가리산 정상 2.2Km)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갈 경우 휴양림으로 내려가게 된다. 물론 내려가는 길에 등골산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리고 왼편은 춘천지맥으로 가는 길이다. 날머리를 홍천고개(원동고개)로 잡은 우리 부부는 왼편 원동고개 방향으로 내려선다.
▼ 홍천고개 방면의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어느 곳 하나 능선의 정 중앙을 연결시키지를 못하고 모든 곳에서 산허리의 사면(斜面)를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기다 사면의 경사(傾斜)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것이 거의 벼랑 수준이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수십 미터 아래까지 굴러 떨어져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태로운 사면길이 다음 안부에서는 잠깐이나마 능선과 만난다는 점이다. 그래봐야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사면길을 밟아야 하지만 말이다.
▼ 위험천만한 사면길은 50분 가까이나 계속된다. 지루해질 만한 시간이지만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 차라리 호사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을 졸이며 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시간이 되면 산길이 능선의 중앙으로 되돌아오고, 이후부터는 사면으로 되돌아가지를 않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등잔봉에 올라서게 된다. 새덕이봉 갈림길에서 등잔봉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 등잔봉을 오르기 전부터 트이기 시작한 시야(視野)는 시멘트 덩어리에 삼각점의 흔적만 있는 등잔봉 정상에서 극에 달한다. 비록 벌목(伐木)이 된 오른편 방향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가리산의 웅장한 자태를 조망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등잔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산길은 능선의 중앙을 따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면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두어 곳에서 잠깐씩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거리가 짧을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 완만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따름이다. 능선은 참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그러나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생강나무들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고, 길가 진달래는 이제 막 꽃몽오리를 열려하고 있는 중이다.
▼ 그뿐만이 아니다. 길가에는 기이하게 자라난 나무들도 눈요깃감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새로운 볼거리들에 눈길을 맞추며 걷다보면 저만큼 아래에 홍천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을 정도로 구불대고 있다. 도로가 보이면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 산행날머리는 홍천고개(일명 원동고개)
큰 변화가 없이 편안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리는 산길을 따라 얼마간 더 걸으면 홍천고개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홍천고개는 홍천군 두촌면의 원동리와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구불구불 힘겹게 꿈틀거리고 나서야 겨우 올라설 수 있는 험준하기 짝이 없는 이 고갯마루는 춘천에서 홍천으로, 그리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넘나드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생존의 길이다. 홍천고개 너머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가면 그곳 소양호 주변에 춘천시에 속한 조교리와 물로리, 그리고 품걸리 마을이 자리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소양댐 선착장에서 떠나는 뱃길이 열리기 전, 이 고갯마루를 넘어 춘천 장터와, 홍천 장터를 오고갔다. 옛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고, 나물을 팔고 생필품 몇 개 사들고 이곳에서 가쁜 숨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과 만나 땀을 훔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오늘 산행은 정확히 5시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한할 경우 4시간45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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