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산((三岳山, 654m)
산행일 : ‘12. 10. 9(목)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산행코스 : 의암매표소→산장→상원사→깔딱고개→전망대→정상(용화봉)→333계단→흥국사→등선폭포→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가족산행
특징 : 삼악산은 경춘선 철길 주변의 산행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거칠고 화려한 산세(山勢)와 그 주변을 휘감은 의암호와 북한강의 탁월한 풍광이 압권이다. 세외선경(世外仙境)을 방불케 하는 등선폭포 협곡(峽谷)과 선조들의 유적지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니 사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삼악산은 흥국사를 가운데 두고 주능선이 사각형으로 둘러 선 형태다. 이 능선의 안쪽은 완만한 경사의 분지(盆地)가 형성되어 있고, 바깥쪽은 수직절벽이거나 급경사(急傾斜) 바위지대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에 삼한시대의 맥국(貊國)이나 태봉국의 궁예(弓裔)가 이곳에다 터를 잡았을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의암(삼악산장)매표소
서울-춘천고속도로 강촌 I.C에서 내려와 403번 지방도와 46번 국도(國道 : 경춘가도)를 연이어 타고 달리다 의암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 의암교차로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온다. 이때 빠져나오는 갈림길이 1차선이라서 까딱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이정표를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될 것이다. 근처 지리에 제법 익숙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깜빡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일단 교차로를 빠져나오면 외길이니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 일이 없다. 의암댐의 호안(湖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의암매표소 앞에 이르게 된다. 다만 하나 주의할 점은 매표소 근처에 주차장이 없다는 것이다.
▼ 매표소(1인당 1,600원) 앞을 지나 산자락으로 들어붙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삼악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등선폭포를 들머리로 하고 의암댐 방면을 날머리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린 ‘의암 매표소’, 그러니까 상원사 쪽을 들머리로 택했다. 하산을 하는 길에 계곡에 들어가 발이라도 담가보려는 목적에서 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오늘 산행에 초보자가 한 명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의 여자 친구인데 산행에 거의 문외한(門外漢)이라는 것이다. 이미 결혼(結婚) 날짜까지 받아 놓았는지라 이번 가족 산행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바람에 스치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귀한 예비 며느리가 혹시라도 다칠 가 보아서이다.
▼ 가파른 산길을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삼악산장(이정표 : 상원사 0.4Km/ 매표소 0.2Km)이 나온다. 하얀색 양옥으로 지어진 건물이 여간 예사롭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희대통령 시절 별장(別莊)으로 지어진 것이란다. 1967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오래되었지만 등산객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단다. 지금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풍광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니 금·토·일요일에만 문을 연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건물 앞에 서면 시야(視野)가 트인다. 멋지게 생긴 명품 소나무 가지 아래로 의암호가 살포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림 같은 의암호의 풍경 너머에서는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이 넌지시 손짓을 하고 있다.
▼ 산장을 지나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올라갈수록 점점 바위협곡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윗길의 농도(濃度)가 점점 더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15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긴 돌계단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거대한 암벽(巖壁)에 둘러싸인 상원사(이정표 : 깔딱고개 0.35Km, 정상 1.3Km/ 매표소 0.65Km)가 길손을 맞는다.
▼ 상원사(上院寺)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인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자그마한 사찰(寺刹)이다. 그러나 절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창건연대가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인 것이다. 허나 그 이후의 연혁(沿革)이 전해지지 않는 점은 못내 아쉽다. 앞으로 우리네가 밝혀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후 조선 후기 화재로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1858년 금강산에서 내려온 풍계(楓溪)가 상원사의 암자이던 고정암(高精庵)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상원사로 바꿨고,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주지인 보련(寶蓮)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산행을 이어간다. 삼악산은 산에서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는 산이다. 들머리를 의암호나 등선폭포 등 어디로 삼던지 간에 조금 후에 상원사나 흥국사 등의 사찰을 만나게 되는데 절에서 식수(食水)를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원사를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깔딱고개(이정표 : 정상 0.96Km/ 상원사 0.35Km, 매표소 1.0Km)까지는 대략 10분 남짓의 거리, 그러나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도 땀이 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가파르기 때문이다.
▼ 깔딱고개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허리를 곧추세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발딱 일어선 바윗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능선을 줄곧 올라야하기 때문에 곳곳에 쇠밧줄과 ‘발 디딤쇠’ 그리고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만일 그런 시설물들이 없었더라면 아마추어 산꾼들은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도 크다. 오르다가 잠시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어김없이 의암호와 춘천시내가 나타나는데, 그 풍광(風光)이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의암호의 호수(湖水) 위에는 붕어섬과 중도, 그리고 위도 등 자그만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바위벼랑 위에 선 둘째와 여친, 그 다정한 모습이 한없이 아름답고 한껏 피어나는 풋풋함이 주위까지도 신선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 아들아 사랑이란 게 별거 아니란다.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넘게 살아온 내 경험에 의하면 ‘스킨십(skinship)과 립서비스(lip-service)’ 이들 두 가지만 놓치지 않는다면 사랑이 식을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아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스킨십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며 칭찬해주는 것이 립서비스이니 어려울 것이 어디 있겠느냐. 앞으로도 오늘의 감정을 잊지 말고 알콩달콩 사랑하며 무지무지 행복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 아까 올라왔던 길의 가파름은 이해가 간다. 깔딱고개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고개는 무어란 말인가. 깔딱고개보다 더 가파르고 더 험하니 말이다. 깔딱고개에서는 두발로 걷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두발은커녕 네발로 기어서야 겨우 오를 수 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경사(傾斜)가 기운 만큼 몸을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코가 바위에 닿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가픈데, 바위에 닿았던 숨이 다시 되돌아와 코끝을 스친다. 무슨 냄새인지 가늠이 안 되는 향기가 진하다.
▼ 산을 오르다보면 심심찮게 탄성을 들을 수 있다.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眺望)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여념들이 없다. 그들이 배경으로 삼는 것은 하나같이 의암호, 비록 선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의암호에 떠있는 붕어섬과 중도는 물론 춘천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다. 가슴이 탁 터지는 풍경이다.
▼ 설설 기는 둘째의 여친이 보면 볼수록 귀엽다. 아직은 며느리가 되기 전이니 용감한 것보다는 저렇게 약한 모습이 더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집사람의 옛 모습이 떠오른다. 집사람이 불암산의 암벽(巖壁)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날, 벼랑의 중간쯤에 매달린 그녀는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내려오지도 못하는 채로 크랙(crack)을 붙잡고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난 죽을 고생을 하며 벼랑 위로 올려놓았다. 쉽게 생각하고 하네스(harness)와 자일(seil) 등 암벽장비를 챙겨가지 않은 탓에 맨몸으로 목숨을 걸어야 했을 정도이니 집사람이나 나나 할 것 없이 그때의 추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웬만한 암벽은 거침없이 오르내리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랄까? 아무튼 우리 예비 며느리도 언젠가는 내 집사람 같은 강철녀로 변할 날이 있을 것이다.
▼ 삼악산은 우리 문학계(文學界)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신소설(新小說)로 알려진 이인직의 ‘귀의 성’의 주요 무대가 바로 삼악산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시집간 춘천댁이 본처의 질투로 죽음을 당한 뒤 삼악산에 묻혀 봄만 되면 새가 되어 구슬프게 운다는 내용이다. 이런 산을 그저 오르기에만 급급하지는 말자. 가끔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라고 들려올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그 새소리 속에 춘천댁이 전하는 메시지(message)라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 바윗길은 거의 9부 능선쯤 가서야 끝이 난다. 깔딱고개를 나선지 1시간 조금 못되면 동봉(635m)에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 이르고서야 겨우 바윗길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동봉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삼악산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좋은 곳인지라 이를 즐기려는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환상적인 의암호, 그 가운데에 중도와 붕어섬이 떠 있고 그 뒤에는 춘천시가지가 펼쳐진다. 물론 시가지의 중앙에 자리 잡은 봉의산도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대룡산과 가리산, 구봉산, 사명산, 오봉산, 용화산 등 춘천을 감싸고 있는 명산들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시계(視界)가 트이지 않는다. 그저 데크에 설치되어 있는 조망도(眺望圖)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 동봉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삼악산의 정상인 용화봉에 올라서게 된다. 삼악산은 이 용화봉과 청운봉(546m) 그리고 등선봉(632m)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5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둥그렇게 융기한 형태의 정상은 각진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석은 물론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정상은 몰려드는 인파(人波)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덕분에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5분 가까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 떡갈나무로 둘러싸인 정상은 의외로 조망(眺望)이 시원치 않다. 삼악산의 자랑인 의암호와 춘천시가지가 나무들로 인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호수 왼편의 산군(山群)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계관산과 북배산을 잇는 능선일 것이다.
▼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등선폭포 3.2Km/ 삼악산성 0.8Km/ 의암댐(상원사) 1.8Km)로 나뉜다. 오른편은 삼악산성(三岳山城)이 있는 청운봉으로 가는 길, 우리는 왼편 등선폭포 방향으로 내려선다. 초보자가 낀 산행을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은 딴판으로 변한다. 상원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는 험한 바위 중심의 남성적 모습이었던데 반해, 등선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부드러운 육산(肉山)의 여성적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가면 정상어림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너른 분지(盆地)가 나타난다. 큰초원(이정표 : 등선폭포 2.2Km/ 정상 0.8Km)이라는데 벤치(bench) 등을 갖춘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 큰초원에서 다시 10분 남짓 내려오면 길고 긴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의 숫자는 자그마치 333개, 그래서 이름도 ‘333계단’이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코에서 품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단한 걸 보면 길기는 긴 모양이다. 333계단을 내려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이번에는 작은초원(이정표 : 등선폭포 2.1Km/ 정상 1.0Km)이다. 그러니까 큰초원과 작은초원 사이에 333계단이 있다고 보면 된다.
▼ 작은초원에서 1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오른편 언덕 위에 올라앉은 사찰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한 나라가 망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흥국사(興國寺)이다. 흥국사는 894년경 궁예(弓裔)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寺刹)로서, 고려시대에는 제법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조그마한 암자(庵子)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궁예는 이곳 터가 함지박처럼 넓으므로 궁궐(宮闕)을 지었다고 한다. 왜(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서 사용했으며, 궁궐을 지은 뒤 흥국사를 창건하고 나라의 재건(再建)을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흥국사까지는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 흥국사를 빠져나오면 손으로 직접 빚은 손두부를 판다는 ‘털보산장’이 나오고, 곧이어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쪽은 청운봉에서 내려오는 길, 등선폭포는 왼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 삼거리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에 유래를 적어 놓았다. 삼악산(三岳山)은 삼국시대 이래로 강원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관문(關門) 중의 하나로 중요 요충지였던 탓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청운봉과 능선을 따라 성(城)터가 남아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성터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것이라는 의견과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정한 뒤 쌓은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확실한 역사적(歷史的)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說)은 맥국(貊國)의 성터였던 것을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패한 뒤 이곳에 패잔병들과 함께 숨어들어 주능선을 따라 5㎞를 축조(築造)했다는 설이다. 조금 전에 지나온 흥국사는 당시 이 성을 지키는 본영(本營) 역할을 하였다고도 한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계곡은 갈수록 깊어진다. 일반적으로 계곡은 산으로 들어 갈수록 깊어지는 게 보통인데 의외이다. 갈수록 깊어지던 계곡은 협곡(峽谷)으로 변하면서 끝내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버린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풍경과는 또 다른 별천지(別天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걷고 있는 둘째와 여친의 입이 한번 열리더니 끝내 닫힐 줄을 모른다. 협곡이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이 젊은이들의 눈에도 신비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 등선폭포 계곡은 빙하시대에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협곡(峽谷)이다. 협곡을 따라 연이어 만들어진 폭포(瀑布)와 연담(淵潭)들은 층층마다 모양을 달리한다. 깎아지른 듯 양쪽이 패어 만들어진 절벽은 하늘벽을 이루고, 절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손바닥보다 작다.
▼ 등선폭포(登仙瀑布),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에는 크고 작은 폭포(瀑布)가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협곡(峽谷) 속에 숨어있는 높이 10m의 등선폭포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傳說)이 전하는 선녀탕과 절벽(絶壁)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기 때문에, 수도권 주말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名所)이다.
▼ 산행날머리는 등선폭포주차장
내려가는 길에 잠깐 계곡에 내려가 산행에서 흘린 땀을 씻는다. 시원하다. 그 시원함에 빠져 아예 머리까지 감아버린다. 그런 내 모습이 둘째의 여친 눈에도 시원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냉큼 신발을 벗고 발목까지 차도록 물속에 담그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반대편에서 큰아들 내외와 소진이네 신랑이 아들을 데리고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산행에 소질이 없는지라 강촌유원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 올라와보는 것이란다. 오늘은 우리집안의 가족행사. 산행을 마치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로 만찬을 즐길 계획이다. 그래서 가족 모두를 소집해 놓았고 그 집결장소가 바로 등선폭포이다. 오랜 시간과 물길이 다듬어 놓은 풍경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내려서면 거대한 벽 사이, 마치 속세(俗世)로 나가는 석문(石門)을 지나듯 길이 나있다. 저만치 밝은 햇살이 눈부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등선폭포 매표소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에 걸린 시간은 총 3시간45분이지만 초보자와 함께 한 산행이라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산행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3시간을 넘기지 않고도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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