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봉(白石峰, 1,170.1m)

 

산행일 : ‘15. 6. 30()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산행코스 : 졸두교1쉼터2쉼터백석봉1,237.5m(주봉)고갯마루 쉼터항골계곡항골탑골공원 주차장(산행시간: 4시간 5)

함께한 산악회 : 기분좋은 산행

 

특징 : 백석봉은 산이 많기로 유명한 정선에서도 ‘9대 명산으로 꼽힐 정도로 괜찮은 산이다. 그러나 외지인들에게는 아직까지 낯선 이름일 따름이다. 이는 바로 곁에 있는 가리왕산의 유명세에 철저하게 가려있는 탓일 게다. 그러나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찾는 이가 드물다보니 아직까지도 원시(原始)에 가까운 자연미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 정상의 바위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곳곳에 너덜지대가 널려있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런 특징 들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색깔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상을 제외하고는 일절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고, 항골로 내려가는 구간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자갈길이 길게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수많은 너덜들은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항골에 있는 탑골공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손수 만든 것이지만 사방에 널린 돌들이 수많은 탑()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탑들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졸두교(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방면으로 내려오면 오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졸두교에 이르게 된다. 들머리 근처에 현대오일뱅크의 부광주유소가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졸두교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 아래는 오대천(),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원시(原始)에 가까운 주변 경관에 이끌려 찾아오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오대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오염되지 않은 맑은 냇물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많지가 않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맑은 물이 넘치도록 흐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강원 영서지역에 가뭄이 심하다는 뉴스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다리를 건너면 졸드루 펜션마을안내판이 길손을 맞는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조(人造) 나무에다 잎이나 과일을 형상화한 동그란 판을 매달고 거기다 펜션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들을 적어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것을 보면 안내판을 설치한 목적을 100%, 아니 그 이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졸드루는 작다는 뜻의 졸과 평지라는 뜻의 드루가 합쳐진 말로 작은 뜰을 의미한단다.

 

 

산길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천변(川邊)을 따라 이어진다. 물론 임도(林道)이다. 잠시 후 마지막 민가(民家) 옆에 이르면 차단기(遮斷機)가 앞을 가로 막는다. 개의치 않고 통과한다. 나는 차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단기를 지나면 잠시 후 상수도용 집수조(集水槽)를 지나고 이어서 평상이 놓여있는 작은 쉼터에 이르게 된다. 들머리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이곳에 백석봉 등산안내도와 이정표(백석봉 3.9Km)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세워진 위치 때문일 것이다. 이정표나 안내도를 이곳이 아닌 졸두교 근처에다 세웠더라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조그만 것 하나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요즘의 화두(話頭)고객만족(Customer Satisfation; CS)’에도 부합될 것임은 물론이다.

 

 

 

물기 하나 없는 석띠골(네이버지도 참조)을 건너 산자락으로 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능선을 고집하지 않고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진다. 때문에 경사가 거의 없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주변엔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그저 앞사람만 바라보며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잘 자란, 그러나 오래 묵지는 않은 황금빛 소나무 숲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지대가 나온다. 이런 너덜지대는 앞으로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첫 번째 너덜겅을 지나고 또 다른 너덜겅 두어 곳을 더 지난 후, 범위가 넓지 않는 낙엽송 군락을 통과하면 벤치를 갖춘 작은 쉼터(이정표 : 백석봉 2.8Km)를 만난다. 자장율사가 백일기도를 했던 장소라는 2쉼터란다. 대사가 여기서 기도를 드리는 중 부처님의 부름으로 수마노탑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석띠골에서 1쉼터까지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안내판에 백석암(白石庵)의 흔적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고 적혀있다. 쉼터 근처에 둥그렇게 쌓아올린 돌담이 보이는데, 저게 혹시 그 절터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얼핏 보면 숯가마터로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1쉼터를 지나서도 길의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산길은 계속해서 사면(斜面)을 따르고, 그 길은 전과 다름없이 흙길과 너덜겅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달라진 점도 있기는 하다. 가파른 길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파름이 하나같이 기껏해야 3~4분이면 끝나버리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를 정도이다.

 

 

 

1쉼터에서 3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2쉼터(이정표 : 백석봉 1.7Km, 항골계곡 6.9Km/ 졸두루 3.0Km)’이다. 울창한 숲속에 벤치를 놓아 무더운 여름철에 제격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물도 눈에 띈다. 비록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있지만 말이다.

 

 

 

2쉼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니 미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이제까지보다 조금 더 가팔라진다는 얘기일 따름인 것이다. 그저 길 주변의 잘 자란 금송(金松)들을 구경하면서 걷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걷다보면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오늘 본 너덜겅들 중에서 가장 큰 너덜겅이다.

 

 

 

 

너덜겅에 이르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그리고 강원도의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른편에는 가리왕산 줄기인 하봉이 또렷하고, 그 왼편에 보이는 산들은 아마 비봉산과 민둔산 등일 것이다.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사납게 변한다. 엄청나게 가팔라진다는 얘기이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거기다 또렷한 볼거리도 없다. 그저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최대한으로 속도를 늦추면서 말이다.

 

 

 

땅만 바라보며 걷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런 색다른 볼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만일 고개를 들고 다른 풍경에 시선을 맞췄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풍경이다. 참나무의 아랫도리가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비탈길과의 힘겨운 싸움은 15분 정도 계속된다. 싸움을 끝내고 능선(이정표 : 졸드류 3.2Km)에 올라서면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또 다른 이정표(내려갈 때 90)에 현 위치를 참나무군락지로 표기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은 온통 참나무들로 가득하다.

 

 

산길은 능선을 곧장 치고 오르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사면(斜面)을 따라 오른편으로 100m쯤 나아가다 다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이정표 : 백석봉 0.6Km). 그러나 향하는 능선은 같다. 올라가는 기점을 오른편으로 약간 옮겨 놓은 셈이다.

 

 

이제부터 산길은 능선을 따른다. 오래 묵은 참나무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숲길이다. 거기다 능선의 경사(傾斜) 또한 완만하다. 그저 즐기듯이 걷기만 하면 된다.

 

 

능선에 오른 지 15분이면 안부삼거리(이정표 : 백석봉 0.3Km/ 항골 5.2Km/ 졸두루 4.4Km)에 이르게 된다. 정상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 오른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삼거리에는 평상을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정상까지 다녀오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다녀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아니면 정상에 오르기 전에 잠시 쉬어가라는 것일 게도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등산배낭을 이곳에 놓아두고 정상을 다녀오면 될 일이다. 오늘 우리 일행들은 맨 마지막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낭 몇 개가 평상 위에서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그 증거일 것이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도 지나온 능선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주변의 나무들이 굵어졌다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참 들꽃들이 늘어난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마타하리 등 화사하게 핀 야생화들의 개체수가 부쩍 늘어났는데도 말이다. 그런 길을 느긋하게 5분쯤 오르다보면 능선은 잠시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위로 향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에서 7분 정도가 걸렸다. 산행을 시작한지는 정확히 2시간이 지났다.

 

 

정상은 하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백석봉(白石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서너 평 남짓한 정상에 오르면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으레 돌로 만들어진 정상석이 있으려니 지레짐작했었는데, 무늬까지 선명한 나무로 된 사각(四角)정상목이 길손을 맞는 것이 아닌가. 생김새도 마치 가구를 짜 놓은 형상이다. 두드려보면 통통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원목(原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천 개가 넘는 산을 오르내려봤지만 이런 정상표지목은 처음이다. 그래서 낯설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정상에는 이 외에도 낡은 이정표(항골돌탑 120)와 삼각점, 그리고 조망도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먼저 건너편에 있는 가리왕산(상봉)과 중봉, 하봉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왼편에도 강원도의 수많은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panorama)처럼 펼쳐진다. 이런 게 바로 강원도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이곳 백암봉에는 옛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정상에 신령스런 샘(靈泉)’이 하나 있었는데 만일 부정한 사람이 먹기라도 할라치면 물이 말라(渴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정상의 바위들이 검은 색을 띠게 되면 수일 내에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현재는 있지도 않은 영천의 얘기야 차지하고라도, 바위의 색깔 이야기는 과학적으로도 맞는 얘기일 것 같다. 흰 바위가 검게 보인다는 것은 먹구름에 둘러싸여있다는 얘기일 것이고, 그 먹구름이라는 것은 늘상 비바람을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바위벼랑 아래에는 가리왕산을 가르며 굽이돌아 흐르는 오대천이 아득하다. 그 물줄기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며 깎아 만든 사행천(蛇行川)이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남은 여백은 어김없이 작은 마을들로 채워진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왼편 마을은 졸두루야영장이고 그 오른편에 보이는 곳은 숙암마을이다. 숙암이란 마을이름은 옛날 어느 원님이 하룻밤 묵어갈 민가(民家)조차 찾지 못해 바위에서 노숙(露宿)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허나 아쉬운 점도 있다. 꼭 저렇게 파헤쳐야 하느냐는 집사람의 말마따나 가리왕산을 헤집어놓은 스키 슬로프(slope)’ 공사현장이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용을 치르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보기 흉한 풍경인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주봉을 거쳐 남릉으로 연결된다. 주봉까지의 1Km정도 되는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주봉이 백석봉 정상보다 100m가까이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능선의 풍경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보기 힘들게 굵고 오래 묵은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다.

 

 

넘어져 있는 나무들도 나름대로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그 풍경들 중의 하나가 터널이다. 그 아래를 통과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아니 허리를 숙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닮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물론 가르침을 받는 상대방도 한정이 있을 수 없다. 오늘도 난 또 하나의 배움을 산에서 얻는다. 겸손을 말이다.

 

 

삼거리를 출발한지 25분쯤 지나면 주봉에 올라서게 된다. 약간 도톰하게 솟아오른 흙봉우리인 주봉(主峰)의 정상에는 이정표(항골 4.3Km/ 백석봉 1.2Km)만 세워져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만일 이경일이라는 사람이 매달아 놓은 코팅지도 없었더라면 이곳이 주봉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다. 아마 황병지맥을 종주하면서 매달아 놓은 모양인데 그 높이(1,237.5m)가 주봉과 같기에 이곳이 주봉인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곳 1,237.5m은 실질적인 백석봉의 정상이다. 그러나 그 생김새가 볼품이 없고, 거기다 조망(眺望)까지 트이지 않기 때문에 정상의 자리를 아우에게 내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능선은 큰 변화가 없이 이어진다. 크고 오래 묵은 나무들이 즐비한 능선을 따라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능선은 가끔 방향을 틀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갯마루 쉼터까지는 능선을 따르는 느낌으로 진행하면 되고, 그 이후에는 이정표만 참고해도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거의 200m 간격으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주봉에서 내려선지 15분 쯤 되면 산길은 능선(이정표 : 항골계곡 2.9Km/ 백석봉 2.4Km)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향한다. 아마 갈미봉(1,264m)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을 벗어나는 모양이다. 이어서 5분쯤 더 진행하면 벤치와 평상을 갖춘 쉼터(이정표 : 항골 2.3Km/ 백석봉 3.2Km)에 이르게 된다. ‘고갯마루 쉼터이다.

 

 

고갯마루 쉼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산길은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으로 나있다. 원시의 숲이 바로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숲은 깊다. 거기다 다래 등 넝쿨식물들까지 함께 어울리다보니 한줄기 빛까지도 허용하지 않을 듯 싶다. 길이 어두컴컴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하산 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 그러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다. 이 정도 길이의 하산코스는 이곳 백석봉 뿐만이 아닐 텐데 무엇 때문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물론 다른 이유가 있다. 바닥이 온통 너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길이 계곡을 따라 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까 산을 오를 때 보았던 그 수많은 너덜겅들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산이 온통 너덜로 이루어진 느낌인 것이다. 때문에 내려설 때마다 무릎에 부담이 온다. 거기다 걷는 속도까지 더딜 수밖에 없다. 짜증나기 딱 좋은 코스인 것이다.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고 35분쯤 지나면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까지도 계곡을 따라 내려왔고, 또 어떤 때는 개울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개울은 마른 채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극심한 가뭄 탓일 것이다. 그러데 언제부턴가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흐르는 소리까지 제법 우렁차진 것이다. 그런데 그 물소리까지 반갑지가 않다. 계속되는 너덜 길의 짜증이 산행의 즐거움까지 앗아가 버린 모양이다.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짜증은 극에 달한다. 그때 쯤, 그러니까 고갯마루 쉼터에서 내려선지 45분쯤 지나면 저만큼에 데크로 만든 길이 나타난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 정도로 등산로를 잘 정비했다는 것은 날머리가 가까워졌다는 증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날머리는 이곳에서도 거의 1Km를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길의 형편은 많이 좋아진다. 길의 폭도 많이 넓어지고 바닥도 자갈과 흙이 섞여있어 걷기가 아까보다는 많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생겨나는 모양이다. 많이 불어난 물가에 앉아가기 딱 좋은 바위들이 널려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기둥에 쉼터라고 적힌 안내판이 걸려있다. 고갯마루 쉼터에서 50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쉼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산길은 계곡을 잠시 벗어난다. 그리고 낙엽송 숲을 지나서 가파르게 잠시 떨어지면 또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게 된다. 산행에서 흘린 땀을 씻고 가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이어서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잠시 더 내려오면 항골탑골공원(이정표 : 백석봉 5.2Km)에 내려서게 된다. 개울가 쉼터에서 이곳까지는 20분 남짓 걸렸다.

 

 

산행날머리는 항골탑골공원 주차장

공원에 내려서면 물레방아가 가장 먼저 길손을 맞는다. 이어서 시멘트로 만든 블록을 쌓아올린 커다란 두 개의 탑()을 지나면 드디어 이곳 항골이 유명세를 타게 만든 돌탑군이 펼쳐진다. 도로 오른편 너덜로 이루어진 산비탈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돌탑들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사이사이에 글씨를 써넣은 옹기 항아리들까지 배열해 놓았다. 이 탑들은 소망탑으로 불리는데 그 수가 무려 180여 기()나 된단다. 작은 돌맹이를 하나하나 쌓아올린 소망탑부터 마이산 탑사의 돌탑들을 닮은 것들까지 그 생김새도 각기 다르다. 이곳은 옛날 나전탄광이 있었던 자리란다. 폐광촌으로 버려졌던 곳에 주민들이 하나 둘 돌탑들을 쌓기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돌탑군을 지나면 곧이어 주차장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4시간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은 시간과 땀을 씻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5분이 걸린 셈이다.

 

 

 

귀경 길에 잠시 백석폭포(白石瀑布)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목에 백석폭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석폭포는 백석봉에서 오대천으로 떨어져 내리는 높이 116m의 인공폭포(人工瀑布)로서 길이 600m, 지름 40의 관()을 매설한 뒤 주변의 계곡물을 끌어올려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물의 양이 적다보니 그 형상은 보잘 것이 없다. 물이 많았더라면 깎아지른 절벽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광경이 볼만 했을 텐데 말이다. 아쉽지만 이곳의 가뭄이 그만큼 심하다는 얘기이니 어쩌겠는가.

 

에필로그(epilogue), 오늘도 난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을 만났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그 첫 째는 양재동에서 버스를 탔을 때이다. 버스의 좌석이 텅텅 비어 있는 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운영진의 얘기로는 유료(有料) 회원의 숫자가 12명에 불과하단다. 그런데도 계획대로 산행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화요산행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행한다는 회원들과의 약속이라면서 말이다. 당연이 오늘 산행은 적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운영진에서는 살구와 요구르트, 그리고 술빵까지 나누어 준다. 미안한 마음에 냉큼 받지를 못하고 잠을 자는 척 눈을 감아버린다. 두 번째의 상황은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맞닥뜨렸다. 구수한 된장찌개과 야채 등이 상 위에 가득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거기다 막걸리까지 올라와 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산행을 진행해 준 것 만 해도 고마운데 말이다. 그 성의가 고마워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도 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런 때에는 맛있게 먹어 드리는 게 감사의 표시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산악회 운영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