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방치(兵防峙, 819.2m)-병방산(兵防山, 860.4m)

 

산행일 : ‘15. 6. 27()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산행코스 : 병방치 스카이워크포토죤병방치 정상임도병방산 정상신흥목장계곡귤암새마을교(산행시간 : 4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병방치(兵防峙)는 굴암리에서 읍으로 넘어가는 병방산의 고개 길이다. 이 길은 험준한 절벽 사이를 36굽이나 돌고 돌아 천애(天涯) 절벽의 병방벼루(벼랑)를 통과해야만 한다. 절벽 아래로는 깊고 푸른 물로 이어져 나는 새도 쉬어가고, 다람쥐도 한숨 쉬며 간다는 석경(石逕:돌이 많은 좁은 길)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보면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다. 길의 폭이 의외로 넓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시설을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걷는 것은 쉽지가 않다. 크고 작은 돌덩이나 바위로 이루어진 바윗길이 수북이 쌓인 낙엽 탓에 바닥의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발이라도 잘못 디딜 경우에는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길 찾기이다. 목장 위 무명봉에서 구뎅이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특히 유념해야 한다. 주변 상황으로 보아 길을 잘못 들어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자칫 길을 잘못 들어섰다간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길은 흔적도 없어져버리고 거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윗길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다. 조양강의 물굽이가 만들어낸 한반도 지형이 시선을 놓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병방치 스카이워크주차장(정선군 정선읍 북실리 산105)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읍까지 온다. 이어서 정선제1()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현대아파트삼거리(북실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더 들어가면 용담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오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스카이워크전망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아래 지도에서 병방산은 병방치, 그리고 구덩산은 병방산으로 보는 것이 옳다.

 

 

주차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표소, ‘스카이워크(Skywalk)’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파는 곳이다. 스카이워크는 해발 583의 허공 위에다 ‘U'자 형으로 길게 난간을 만들고 바닥을 강화유리로 깔았다. 물론 지지대는 바위절벽이다. 스카이워크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발아래에 펼쳐지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카이워크들은 절벽에다 만들어 놓았다. 아스라이 펼쳐지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을 감상하라는 의미에서다. 이때 사람들은 살 떨리는 공포감 속에서도 그 절경에 푹 빠져든다. 하나 더, 이곳 병방치의 스카이워크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맞은편에 펼쳐지는 한반도의 모형을 감상하는 전망대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조양강의 물굽이가 만들어낸 기경이 사람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카이워크로 들어가는 것을 사양하고 오른편에 보이는 나무계단을 오른다. 입장료 5천원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무계단의 위에 있는 또 다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양강의 물굽이가 이곳 스카이워크에 뒤지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유리 아래로 펼쳐지는 기경(奇景)을 감상하며 느끼는 살 떨리는 공포감을 맛볼 수는 없지만, 그 정도는 중국 등을 여행하면서 수도 없이 많이 겪어봤기에 아쉬울 것은 없다.

 

 

 

전망대에 서면 발 아래로 굽이치는 조양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면 여량리에서 발원한 조양강이 빚어놓은 작은 산줄기의 모습이 영월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과 흡사하다. 허나 내 눈에는 한반도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는 게 문제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내 수양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이곳 주민들도 소불알을 닮았다고 한다니까 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축 늘어진 소불알을 닮아도 아주 쏙 빼다 닮았다. 그건 그렇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한마디로 빼어나다. 한 폭의 잘 그린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어디선가 숨넘어가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산 아래로 길게 늘어진 쇠줄에 매달려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치듯이 내려가는 것을 보니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던가 보다. 저게 바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부쩍 인기가 높다는 짚 와이어(Zip-wire)’인 모양이다. 이곳 병방치의 짚 와이어는 병방치에서 산 아래에 있는 동강생태학습장까지의 표고차(標高差) 325.5를 시속 70~80의 속도로 내리꽂는다고 한다.

 

 

 

스카이워크를 둘러봤다면 이젠 산행에 나설 차례이다. 산행은 주차장 입구 산자락에 있는 팔각정(이정표 : 병방산 2.8Km/ 귤암리 2.3Km/ 북실리 2.5Km)에서부터 시작된다. 병방산 방향, 그러니까 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른다. 100m 남짓 걸으면 임도(이정표 : 병방산 2.2Km/ 북실리/ 등산로)를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는 마침 비포장, 거기다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어서 걷기에 딱 좋다. 15분쯤 걸었을까 오른편에 이정표(포토존/ 병방산 1.6Km/ 북실리 3.4Km) 하나가 나타난다. 꼭 들어가 봐야 할 곳이다. 아무 의미없이 포토죤(photo-zone)’이란 팻말을 달아놓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20m정도 내려가면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아까 스카이워크 상부의 전망대에서 보았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소불알이 달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까보다 더 정면으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굽이의 헤어나 잠시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청옥산과 가리왕산 등 강원도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파노라마처럼 널따랗게 펼쳐지는 것이다. ()에 문외한일지라도 시 한 수()쯤은 너끈히 짓고도 남을 풍경이다.

 

 

 

전망대를 빠져나와 5분쯤 더 걸으면 왼편으로 산길이 열린다. 병방치(兵防峙)로 올라가는 들머리이다. 오늘 산행의 주봉인 병방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병방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산길은 널따란 임도(林道)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산길이 점점 좁아진다 싶더니 금새 오솔길로 변해버린다. 완만하던 경사(傾斜) 또한 고도(高度)를 높일수록 점점 가팔라져 간다. 그러다가 더 이상 가팔라질 수가 없을 정도가 된 뒤에야 병방치(兵防峙) 정상에다 올려놓는다. 임도에서 산길로 접어든지 18, 산행을 시작한지는 38분이 지났다.

 

 

대여섯 평쯤 되는 정상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물론 조망(眺望)도 터지지 않는다. 정상은 삼각점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을 뿐 정상표지석은 세워져 있지 않다. 새마포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데 이 정상표지판이 좀 문제다. 이곳의 지명은 병방치가 분명한데도 병방산이라고 잘못 표기 해 놓은 것이다. 다음에 오르게 될 봉우리가 병방산인데도 말이다. 산의 이름을 제멋대로 고치는 일은 삼가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북실리에서 이곳 병방치로 오르려면 뱅뱅이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뱅뱅이재란 36굽이의 길을 뱅글뱅글 돌아서 오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 병방치도 그 뱅뱅이에서 유래된 이름이지 않나 싶다. 뱅뱅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임도를 따른다. 3분쯤 걸었을까 송전탑(送電塔)이 보인다. 산길은 송전탑(이정표는 양쪽 방향을 똑 같이 등산로라고만 표기했다) 아래로 나있다. 3분쯤 내려섰다가 다시 3분쯤 올라서면 평상(平床)이 하나 놓여있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바윗길 하나가 나타난다. 일단 들어서고 본다. 명품 전망대들은 대부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평상에서 기다리겠다는 집사람까지 부득부득 끌고 들어간다. 멋진 풍경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서이다.

 

 

 

 

애써서 나가본 전망대는 실망스럽다. 물굽이가 만든 지형, 그러니까 한반도의 모형을 바라보기에 딱 좋은 장소이지만 아쉽게도 나무들이 시야(視野)를 가려버린 것이다. 오메가(Ω)의 윗부분을 싹둑 잘라버린 모양새이다. 그러나 병방산(새마포의 표지판은 구덩산으로 적고 있다)을 조망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병방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것도 흠하나 없는 온전한 모습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물론 오른편은 바위벼랑이 계속된다. 잠시 후 왼편에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그리고 산길과 임도로 연결되는 샛길도 보인다. 아까 송전탑에서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이곳에서 산길로 올라서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다.

 

 

임도를 봤다싶으면 곧이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것도 무척 가파르다. 오른편은 역시 바위벼랑, 나뭇가지 사이로 조양강의 물굽이가 내다보인다. 바위벼랑 쪽에는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오르는 게 힘들 경우 붙잡고 오르라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위험하니 넘어가지 말라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산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길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완만한 구간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내려가기도 한다. 또한 두어 곳에 쉼터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는 그만큼 이 구간의 난이도(難易度)가 만만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도(高度)를 높일수록 가팔라지던 산길이 끝내는 로프에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끝에서 삼거리(이정표 : 병방산 정상/ 목장 2.4Km/ 북실리 5Km)를 만난다. 병방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전망대에서 40, 병방치에서는 한 시간 남짓 되는 지점이다.

 

 

 

두세 평 남짓의 좁은 공터로 이루어진 병방산의 정상도 정상표지석이 없기는 병방치와 매한가지이다. 그리고 새마포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이정표가 정상석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곳의 표지판도 역시 지명을 잘못 적고 있다. 병방산을 구덩산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 삼거리에서 보았던 정선군청에서 세운 이정표만 봐도 이곳이 병방산임은 너무나 분명한데도 말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만일 이곳을 구덩산이라고 부른다면 조금 있다가 오르게 될 구뎅이산은 또 뭣이란 말인가. ‘구뎅이구덩이의 사투리인데 그렇다면 한 산에 같은 이름의 봉우리가 두 개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병방산(兵防山)이란 이름은 한 사람만 지켜도 천군만마가 근접하지 못할 요새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위로는 천애절벽(天涯絶壁)이요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 강물이니 능히 그럴 만도 하겠다.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산행을 이어간다. 목장 방향의 능선을 따른다. 이어지는 산길의 풍경은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길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게 14분 정도를 걸으면 계단이 나온다. 바윗길을 내려가기 편하도록 만든 모양인데, 전망대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진행방향에 강원도의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산릉(山陵)에 자리 잡고 있는 신흥목장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길은 계속해서 능선을 따른다. 위험할 것까지야 없지만 걷는 게 쉽지만은 않은 길이다. 돌들을 심어 놓은 듯한 바윗길이 고르지 못한 탓이다. 속도를 낼 수 없는 큰 이유이다. 그렇게 16분 정도를 걸으면 안부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좌우로 길이 나뉘지만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지도(地圖)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길의 흔적으로 봐서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안부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경사(傾斜) 역시 아까 병방산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가파르기 짝이 없다. 힘겹다. 걸어온 거리로 봐서 서서히 지쳐가는 시간이니 올라가는 게 힘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저 서서히 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가는 집사람은 지칠 줄을 모르나보다. 나물만 보면 정신없이 산자락을 헤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덕분에 다음 한 주는 내내 산나물 반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끝나면 길 왼편에 철선(鐵線)이 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쪽 나뭇가지 사이로 신흥목장의 초지(草地)가 내다보인다. 아마 등산객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인 모양이다. 아니면 가축의 탈출을 막으려는 것일 게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높고 험한 곳에다 어떻게 목장을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목장을 만들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의지의 한국인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철선을 따라 잠시 걸으면 왼편에 목장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타난다. 개의치 않고 곧장 능선을 따른다.

 

 

목장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을 넘기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산길은 바위를 타고 넘거나 우회하면서 연결된다. 위험하다고까지는 볼 수 없으나 속도를 내기는 불가능한 구간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낙엽(落葉)에 가려있는 허방들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바닥의 바윗길이 고르지 못하고, 거기다 참나무 낙엽들이 발목을 덮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목장갈림길을 지난 지 15분 조금 못되었다싶으면 철쭉군락지가 나타나고, 이어서 철쭉들이 만들어낸 터널을 통과하면 무명봉에 올라서게 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구뎅이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무조건 오른편(西陵)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느낌은 곧장 나아가라고 하니 그게 문제다. 훤한 것이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곧장 나아가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선두대장이 이성(理性)보다는 감성(感性)이 앞섰던 모양이다. 봉우리에서 내려서자마자 길은 그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 그저 선두대장이 깔아 놓은 진행방향표시지를 이정표 삼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표시지가 띄엄띄엄 깔려있다 보니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길을 놓치다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육두문자(肉頭文字)가 목구멍까지 치며 오른다. 다만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길의 흔적이 희미한 것 정도는 약과였다. 조금 후에 나타나는 바윗길은 길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음은 물론 위험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파른 바윗길에 놓인 돌맹이들은 조금만 건들어도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행여 그 돌맹이들이 구르기라도 할 경우에는 앞서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덮칠 수밖에 없다. ‘돌맹이가 구를 수 있으니 건들지 마세요.’ 뒷사람에게 외치는 목소리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바윗길이 끝나면 이번에는 너덜길, 이곳도 역시 디디기만 해도 돌들이 무너져 내린다. 거의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설설 기며 내려갈 수밖에 없다. ‘에이 ×앞서가던 일행의 입에서 거친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내가 내뱉고 싶었던 욕지거리다. 이미 두어 번이나 엉덩방아를 찌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때를 맞추어 사람들의 입에서 봇물처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구뎅이산을 못 오른 것만 해도 불만인데 산길까지 험하니 어찌 성질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눈요깃거리도 있다. 녹색 이끼로 뒤덮인 바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오지(奧地), 그러니까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작가들은 이런 비경(秘境)을 찾아 일부러라도 찾아드는데, 우리는 공짜로 구경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겠는가. 오늘 난 또 하나의 인생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삶이란 항상 좋을 수도, 그렇다고 나쁜 일만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진리를 말이다.

 

 

사납고 험한 바윗길은 계곡(나중에 지도를 확인해보니 안골로 표기되어 있었다)에 내려서서도 계속된다. 바닥은 거칠고 길의 흔적이 없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50분 정도를 내려가면 드디어 길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걷기가 편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가시넝쿨들이 온통 길을 점령하고 있는 탓에 걷는 데는 오히려 더 사납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가끔 산딸기들이 입맛을 돋워주는 것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그야말로 천하일미(天下一味). 하긴 점심시간이 지난 지 이미 한참이나 되었으니 맛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름대로 괜찮아진 길을 따라 17~8분 정도를 내려오면 길은 계곡을 떠나 왼편 산자락으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묵밭을 만난다.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은 듯 밭은 온통 망초들로 가득 차 있다. 새하얀 꽃으로 뒤덮인 밭이 또 다른 포토죤을 만들고 있다. 볼품없는 망초들도 저렇게 무리지어 피어나니 어느 꽃밭에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들꽃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자 장점이 아닐까 싶다.

 

 

산행날머리는 귤암새마을교

묵밭을 빠져나오면 곧이어 임도를 만나게 되고, 눈앞에 펼쳐지는 나팔봉의 절경을 눈에 담으며 잠시 걸으면 군도(郡道)인 동강로에 내려서게 된다. 우리가 내려온 계곡이 안골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도로변에 동강로하스라는 황토펜션이 보이니 기점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귤암새마을교까지는 이곳에서 10분 가까이를 더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추가로 걷게 되는 걸음걸이가 싫지는 않다. 아니 싫어질 틈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발걸음의 속도에 맞추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나팔봉의 바위벼랑의 자태가 너무 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4시간10분이 걸렸다. 물론 온전히 걷는 데만 소요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