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봉(老人峰, 1,338m)

 

산행일 : ‘14. 7. 27()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진고개노인봉대피소노인봉낙영폭포만물상구룡폭포금강사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국립공원(國立公園)인 오대산은 나라에서 인정하고 있는 명산(名山)이다. 그 오대산 안에 노인봉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노인봉은 오대산을 이야기 할 때 손끝으로 헤아리게 되는 다섯 개의 봉우리(비로봉, 효령봉, 두로봉, 상왕봉, 동대산)에는 끼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섯 개의 봉우리들보다 오히려 노인봉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노인봉 산자락에 청학동 소금강이라는 명승지(名勝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결함과 불로장생의 상징인 학() 중에서도 청학(靑鶴)이 깃들 정도의 장소이니 그 얼마나 멋진 곳이겠는가! 때문에 나라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19752)되기도 전인 197011월에 청학동 소금강을 우리나라 명승 제1로 지정한 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봉의 등산보다는 소금강 구경을 더 원한다. 심지어는 노인봉 정상은 들러보지도 않은 채 곧장 소금강으로 내려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노인봉 정상도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에 결코 뒤지지 않을만한 산세(山勢)와 조망(眺望)을 갖추고 있으니 꼭 한번쯤은 올라봐야 할 일이다. 참고로 청학동(靑鶴洞)이란 율곡의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그는 전해 내려오는 민담(民譚)을 수용하여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 전체를 청학산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의 지명 중에는 청학산이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단다. 그렇다면 청학산은 봉우리가 아닌 소금강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지역의 총칭이지 않을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진고개(해발 960m) 주차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오대산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오대산 푯말을 보고 6번과 59번 병합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야생화단지를 지나 병안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계속 6·59번 병합도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가다 진고개 정상 쉼터로 진입하면 된다.

 

 

 

주차장에 마련된 진고개 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노인봉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고개를 들머리로 삼는다. 노인봉까지의 거리가 짧고(3.9km)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해서 오르기가 쉬운 탓일 것이다. 진고개는 비만 오면 질퍽거릴 정도로 땅이 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로는 이미 포장이 덜 된 곳이 없고, 등산로 또한 말끔하게 정비가 잘된 탓에 질퍽이는 곳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 진고개를 뭐라고 불러야하지?’ 싱거운 상념(想念)들을 떨쳐버리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백두대간의 마룻금을 밟으며 노인봉 정상에 올랐다가 소금강의 긴 계곡을 탐사해볼 예정이다.

 

 

진고개를 출발해서 5분 쯤 지나면 오른편에 광활한 개활지(開豁地)가 나타난다. 오래전 수북이 쌓인 눈 위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뒹굴던 추억의 장소이다. 그리고 어느 여름철에 찾았을 때 이곳은 가득 찬 고랭지채소들로 인해 푸르름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묵밭으로 남은 지금은 보라색 꽃을 피운 쑥부쟁이와 하얀 꽃망울을 활짝 연 망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쯤 되면 산자락(이정표 : 노인봉 3.0Km/ 진고개 0.9Km)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한마디로 길다.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계단이 긴 것은 중간에 만들어 놓은 동물의 이동통로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계단이 길었으면 동물의 이동통로까지 만들었겠는가.

 

 

 

계단을 밟으며 12분 정도 힘들게 오르면 쉼터에 이르게 되고,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다시 5분 정도를 더 오르면 지능선(이정표 : 노인봉 2.4Km/ 진고개 1.5Km)에 올라서게 된다. 일단 지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순해진다. 보드라운 흙길인데다 경사까지 완만하다보니 걷기가 여간 편한 게 아니다. 당연히 걸음이 빨라진다. 산길 주변의 나무들은 온통 참나무 일색, 그 속에 숨어있다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작나무들이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그리고 가끔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황병산이 머리를 내민다. 모자처럼 머리에 이고 있는 군부대의 안테나시설이 왠지 낯설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평탄한 능선길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35분 후에는 노인봉 삼거리’(이정표 : 노인봉 0.3Km/ 소금강분소 9.3Km/ 진고개 3.6Km)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서 노인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그다지 가파른 편은 아니다. 때문에 정상에 이르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노인봉 정상은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조망안내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라오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겠네요.’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이제나 저제나 순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곁에 있던 누군가가 내뱉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정상은 인산인해(人山人海). 그만큼 노인봉에 오르기가 수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노인봉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봉우리가 멀리서 바라볼 때 백발노인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날 그곳에 산삼을 캐러 갔다 선잠이 들었던 어떤 심마니의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그의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부근 무 밭에 가서 무를 캐라 하고서 사라졌다 한다. 꿈이 하도 이상한지라 노인이 일러 준 곳으로 가보니 산삼이 많이 있었다는 거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꿈속에 노인이 나타났다고 해서 노인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산행들머리에서 노인봉 정상까지는 1시간15분이 걸렸다.

 

 

 

암봉의 특징대로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펼쳐진다. 강릉과 주문진 시내, 그리고 그 너머 동해바다가 잘 조망되는 것은 물론이고, 북에는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동대산, 그리고 남쪽에는 황병산과 매봉이 의젓하게 앉아있다. 그 외에도 강원도의 산답게 수많은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장쾌하고도 장쾌한 광경이다. 그 풍광에 취한 난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인파에 휩쓸리면서도 한참을 더 정상언저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오른 후에는 아까 지나왔던 노인봉 삼거리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금강분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삼거리에서 몇 발자국 옮긴 것 같지 않은데도 불쑥 노인봉대피소’(이정표 : 소금강분소 9.2km/ 노인봉 0.4km, 진고개 3.9km)가 나타난다. 대피소를 지나 다시 초록의 터널로 들어서며 산행을 이어간다. 소금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요즘 등산로 정비가 한창이다. 경사진 흙길 구간을 나무데크로 바꾸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산을 피폐하게 만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흙으로 된 등산로이기 때문이다.

 

 

 

 

대피소에서 잠깐 산의 사면(斜面)을 따르던 산길은 얼마 후 부터는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이 구간은 가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릴 경우에는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보라는 것이다. 들어가는 곳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노인봉의 바위벼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피소를 나선지 20분 남짓 되면 능선의 끄트머리에서 이정표(소금강분소 8.8km/ 노인봉 0.8km) 하나를 만나게 되고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 아래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낙영폭포 위’(이정표 : 낙영폭포 0.9Km, 소금강분소 8.5Km/ 노인봉 1.1Km)를 거쳐 낙영폭포 언덕(이정표 : 낙영폭포 0.3km, 소금강분소 7.9km/ 노인봉 1.7km)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비록 위험한 곳마다 철난간과 침목계단 등 안전시설들을 갖추어 놓았지만 워낙 경사가 심한데다가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돌계단이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여간 사납지 않은 것이다. 1Km도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35분 가까이나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내려왔는지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간혹 볼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도(高度)가 낮아질수록 숲은 더욱 짙어지면서 아름드리나무들이 늘어난다. 그 굵은 나무들이 쓰러지거나 서있는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멋진 고사목(枯死木)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낙영폭포 언덕에서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개울이 나타난다. 아직은 본모습을 선보이지 않은 탓에 허접한 채로이지만 청학동 소금강이 시작되는 것이다. 청학동 소금강은 기암절벽(奇巖絶壁)과 아름다운 계곡풍광(溪谷風光)으로 이름난 명승지(名勝地)이다. 이 소금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에서 연유한다. 1569년 초여름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내려온 율곡은 연곡천을 거슬러 올라 청학동 계곡을 찾는다. 그리고 그 감흥을 담은 유청학산기라는 기행문에 청학동 계곡의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으로 명명한다. 율곡은 그 글에다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푸르른 물은 낙엽도 발붙일 틈을 주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바위들 모양도 천만 가지로 변하며, 산그늘 밑에 나무그림자는 아지랑이와 섞여서 아스라이 햇볕을 가렸다. 나는 흰 바윗돌 위를 거닐며 때때로 일어나는 잔잔한 물결을 즐겼다. ..중략... 돌아오는 길에 열 발자국을 걸으면서 아홉 번을 돌아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김장호의 한국명산기 참조)>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풍경이다. 그러니 어찌 한번쯤 찾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물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낙영폭포 이정표(광폭포 2.0Km, 소금강분소 7.6Km/ 노인봉 2.0Km)가 보인다. 그러나 아직 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편의 나무들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서니 와폭(臥瀑) 하나가 나타난다. 그러나 폭포(瀑布)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왜소하면서도 볼품이 없다. 실망감을 안고 바위벼랑에 기대어있는 철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인다. 낙영폭포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와폭은 무엇일까?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위의 것도 낙영폭포가 맞았다. 낙영폭포는 2단으로 이우러져 있는데, 다만 철계단 아래에 있는 폭포가 더 멋있는 것이다.

 

 

낙영폭포에서 25분 정도를 더 내려오면 사문다지골 입구(이정표 : 광폭포 0.5Km, 소금강분소 6.1Km/ 낙영폭포 1.5Km, 노인봉 3.5Km)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광폭포(이정표 : 백운대 0.9Km. 소금강분소 5.6Km/ 노인봉 4.0Km)에 이르게 된다. 큰 바위 옆으로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인 광폭포는 아까 보았던 낙영폭포에 비해 그 품격이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삼폭포(이정표 : 백운대 0.3Km, 소금강분소 5.0Km/ 광폭포 0.6Km, 노인봉 4.6Km)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삼단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삼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진 모양인데, 왜소하면서도 보잘 것이 없는 것이 폭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인 것이다.

 

 

 

낙영폭포를 지나면서 계곡의 수량은 조금씩 늘어난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다들 노인봉에서 내려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들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속으로 잠수를 하는 사람들이나 물장난을 치고 있는 사람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표정들이 밝기만 하다. 하긴 이런 곳에서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물줄기는 노인봉의 동쪽 사면(斜面)에서 발원(發源)해서 흐르다가 연곡천과 합쳐져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그 생을 마감한다.

 

 

 

삼폭포에서 6분쯤 내려오면 소금강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시작되는 백운대(이정표 : 만물상 0.6Km, 소금강분소 4.7Km/ 노인봉 4.9Km). 오고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기 딱 좋은 백운대에는 넓게 펼쳐진 계곡에 집채만 한 큰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런데 그 바위의 생김새가 좀 괴이하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올려놓은 것처럼 커다란 돌맹이 몇 개가 커다란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 바위를 보고 솥단지 같다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널따란 암반(巖盤) 위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 풍광에 녹아들며 한가로움을 한껏 자아내고 있다. 글자 그대로 한 조각 흰 구름과 다름없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백운대부터 펼쳐지는 주변 풍광은 이미 알려진 대로 소금강의 백미(白眉)이다. 바위들이 꿈틀대듯 솟아올라 봉우리를 만들고, 앞을 가로막는 절벽들은 제각각의 형상을 가진 거대한 병풍과 같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내버릴 것 없는 풍경들이다. 그러다보니 계곡의 가장자리에 놓인 철다리까지도 예사의 풍경이 아닐 정도이다. 시선을 주는 곳마다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소나무, 바위틈에 솟은 소나무들이 이곳 만물상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주위풍광에 흠뻑 빠져 걷다보면 귀면암(鬼面岩)에 이르게 되고, 곧이어 만물상(萬物像) 이정표(소금강분소 4.1Km/ 백운대 0.6Km, 노인봉 5.5Km)를 만나게 된다. 백운대에서 18분 정도가 걸렸다. 이 구간의 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은 귀면암이다.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귀면암은 촛대봉, 거인봉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만큼 기괴하게 생긴 탓에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백운대를 지나면서 화려해진 청학동은 갈수록 그 도를 더해간다. 암반(巖盤) 위로 흐르는 물은 맑기만 하고, 고개라도 들라치면 보이는 것이 모두 기암괴석(奇巖怪石)뿐이다. 옥빛 물이 흘러내리는 암반 위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골을 가득 메우고, 그 양옆에는 노송(老松)들이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 솟아 있다. 한마디로 소금강의 절경과 심산유곡(深山幽谷)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그래서 이 구간을 만물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만물상이정표에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옛날 학()들이 노닐었다는 학유대(이정표 : 구룡폭포 0.5Km, 소금강분소 3.5Km/ 만물상 0.6Km, 노인봉 6.1Km)가 나온다

 

 

학유대에서 5분이면 공원지킴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구룡폭포다. 다리를 건너기도 전부터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소금강의 명물인 구룡폭포(九龍瀑布)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이정표 : 식당암 1.0Km. 소금강 분소 3.0Km/ 만물상 1.1Km, 노인봉 6.6Km). 아홉 개의 폭포(瀑布)와 소()가 이어지는 구룡폭포 중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폭포는 가장 아래에 자리한 8폭과 9폭이다. 내려오는 길 내내 여름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려주던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우렁찬 물소리에 가려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를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귀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기 때문이다. 거대한 암반(巖盤)을 타고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빠져들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속세(俗世)를 벗어나 선계(仙界)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아까 지나온 선녀탕에서 선녀(仙女)라도 한번 찾아볼 것을 그랬나보다.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거나말거나 말이다. 참고로 구룡폭포쪽 물줄기가 흐르는 골짜기는 피골로도 불린다. 마의태자의 군사들이 고려군에게 대패해 흘린 피가 내를 이루었다고 해서 나온 말이란다.

 

 

 

구룡폭포에서 푸른 이끼로 뒤덮인 등산로를 따라 20분 가까이 내려오면 수십 아니 거짓말 좀 보태서 수백 명이 둘러앉아도 될 만큼 너른 암반(巖盤)이 나온다. ‘식당암(食堂岩)이라는데(이정표 : 소금강 분소 2.0Km/ 구룡폭포 1.0Km, 노인봉 7.6Km), 율곡이 소금강에서 공부를 할 때 이 바위에서 밥을 지어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율곡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는 확실한 기록(記錄)이 없으니 공허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 어쩌면 바위의 생김새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 좋은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기록에 의하면 식당암에서 유유자적하던 율곡은 눈에 잡히는 암봉과 푸른 소()에 촉운봉과 경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식당암이란 이름이 촌스러웠던지 비선암으로 고쳐 부르고, 산 전체를 청학산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씨 탓에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했다고 한다. 청학동소금강의 명물인 구룡폭포와 귀면암, 이월암, 촛대석 등으로 불리는 만물상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이유이다. 참고로 소금강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 식당암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이 거대한 너럭바위에서 군사들에게 밥을 지어 먹었다는 것이다. 한편 율곡은 식당암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겨우 머리를 숙이고 걸어서 석문에 들어서니 그 경색이 더욱 기이하여 황연히 딴 세계였다.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식당암을 벗어나면 바위벼랑 아래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사찰(寺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金剛松)들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띄는 이 절이 소금강 내에 있는 유일한 사찰이라는 금강사(金剛寺)이다. 그러나 유일하다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그 역사는 일천하다. 1964년에 정각스님이 세웠다니 이제 겨우 50년이 지났을 따름인 것이다. 마침 목이 말라 냉수라도 한잔 얻어 마실까 두리번거리는데 물은 절간 밖에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사찰을 빠져나오니 식수대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망설이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고 본다. 그러나 물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긴 계곡의 아랫도리에 위치한 사찰에서 감로수(甘露水)를 기대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약수터 건너편 계곡의 바위에는 율곡이 새겼다는 소금강(小金剛)’ 글씨가 있다지만 그냥 하산길을 서두른다. 율곡의 글씨가 확실치도 않으므로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사를 벗어나면 금방 연화담(이정표 : 소금강 분소 1.7Km/ 구룡폭포 1.3Km, 노인봉 7.9Km)이다. 맑은 계류가 암반(巖盤)을 미끄러지며 그 아래에 푸른 담()을 만들어내는데, 이 담이 바로 연화담(蓮花潭)이다. ()의 하류(下流)가 거북이 기어오르는 형상(形象)이고, 이 거북이의 머리 앞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습이 마치 연꽃봉우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연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연화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하늘에서 일곱 선녀가 내려와 연화담에서 목욕을 하고 오른편에 있는 화장대(명경대)에서 화장을 한 다음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 밝은 밤에 한번쯤 찾아와보면 어떨까. 선녀(仙女)의 날개옷이라도 숨겨보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세상에 꽃다운 마누라와 청실홍실을 엮어가는 것을 싫어할 남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연화담을 지나면서 길가에는 금강송(金剛松)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를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잘 생겼다. 그래서 금강송을 미인송(美人松)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연화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십자소(이정표 : 소금강 분소 1.4Km/ 구룡폭포 1.6Km, 노인봉 8.2Km)이다. 물줄기의 양 옆구리가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십자(十字) 드라이버 끝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나 소()의 풍경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길가의 나무들에 가린 탓이다. 율곡은 이 부근을 지나면서 <푸른 낭떠러지가 오이를 깎아 세운 듯하고 떨어지는 천류가 백설을 뿜어내는 듯.>하다며 그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소를 창운(漲雲)’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소가 아까 지나온 연화담인지 아니면 이곳 십자소(十字沼)를 일컫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십자소를 지나면 오랫동안 등산객들의 안식처였던 청학산장(이정표 : 소금강 분소 1.0Km/ 노인봉 8.6Km)의 터가 나온다. 1972년에 건축된 청학산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하룻밤 묵어가기 위한 산악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92년 진고개를 관통하는 국도 6호선이 확장돼 청학산장에서 400떨어진 지점까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이용객이 급감, 2000년대부터 아예 문을 닫았다. 옛 산장 터를 지나서도 아름다운 계곡은 지속된다. 하긴 무릉계(武陵溪)라는 이름이 그냥 붙었을 리가 있겠는가. 무릉계는 도연명(陶淵明)'도화원기(挑花源記)'에나오는 별천지이자 이상향(理想鄕)인 무릉도원(武陵挑源)에서 유래한다. 도화원기의 배경은 중국 호남성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 호수의 서남쪽을 병풍처럼 가로지르는 무릉산(武陵山) 기슭의 원강(元江) 강변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절경은 무릉도원과 같은 선경(仙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丞休), 또는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金孝元)이 지은 것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금강사에서 25분 남짓 지나면 공원지킴터(이정표 : 소금강 분소 0.5Km/ 구룡폭포 2.5Km, 오대산 9.1Km)에 이르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소금강 대형주차장

공원지킴터를 지나면서 지루한 산행이 시작된다. 차량들이 지킴터까지 이를 수 있도록 길은 넓혀져 있지만 주변의 볼거리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길가의 음식점을 볼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킴터에서 6분쯤 더 내려오면 소금강 분소’, 그리고 4분 후에는 소형차량 주차장이 나온다. 그러나 대형차량 주차장은 이곳에서도 10분 이상을 더 내려가야 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율곡이 <길가의 수석이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기이하고 눈이 어지러워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표현했던 계곡 구간을 버리고 삭막한 포장도로를 걸으니 입에서 상소리가 안 나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삭막한 포장도로를 걷는 것에 지쳐 입에서 상소리가 나올 즈음이면 저만큼에 상상외로 넓은 주차장이 보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5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막걸리를 마시느라 쉰 시간을 감안한다면 5시간 30분을 걸은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공원지킴터부터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가에는 수많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러나 난, 눈 한번 팔지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 하나. 조금 후에 산악회에서 내놓을 음식이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훨씬 더 나을 것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마산악회는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늘의 밑반찬은 6가지, 지난번보다는 분명히 줄었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대신 더 화끈한 메뉴가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에 주문진항에 나가서 떠 왔다는 방어회와 오징어순대를 내놓는다. , 술은 어떻게 보면 잘 넘어간다는 술술이라는 표현을 줄인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뜻에 걸맞게 오늘 따라 술이 잘도 목구멍을 넘어간다. 하긴 이렇게 안주가 좋은데 어떻게 술이 목구멍에 걸릴 수 있겠는가. 다만 하나 안타까운 건, 그 많던 술이 언제부턴가 동이 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안주가 훌륭했으면 그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