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산(屛風山, 796.2m)

 

산행일 : ‘14. 8. 30()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산행코스 : 에너미고개알바(1시간)군부대(폐쇄)병풍산 정상안부 도송리 마을회관도송리 경로당(산행시간 : 2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물 맑기로 소문난 파로호의 주변에는 일산과 죽엽산, 수불무산, 용화산 등 수많은 산들이 널려있다. 병풍산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병풍산은 웬만한 산꾼들의 귀에도 생소할 정도로 오지(奧地)의 산으로 남아 있다. 주변에 있는 용화산이나 사명산 등 널리 알려진 산들의 유명세에 철저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밋밋한 육산(肉山)인지라 산세(山勢)는 내세울 것이 없고, 거기다 접근성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로호에 대한 조망(眺望)만은 인근의 어떤 산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한 번 쯤은 찾아볼만한 산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산행들머리를 꼭 도송리로 잡으라는 것이다. 에너미고개를 들머리로 잡을 경우에는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져버리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에너미고개(화천군 간동면 방천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 양구방면으로 달리다가 간척사거리(간동면 간척리)에서 좌회전 461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음사거리(간동면 오음리)가 나온다. 왼편은 간동면 소재지인 유촌리, 그리고 오른편으로 가면 평화수호참천기념탑이 나온다. 이곳 사거리에서 곧바로 직진(403번 지방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에너미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갯마루 정상에서 왼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옳은 선택이 아니다 병풍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임도는 이곳이 아니고 고갯마루 정상에서 오음리방향으로 60m쯤 내려가는 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는 우리는 잘못 들어서게 되었고, 무려 한 시간 동안 알바를 한 뒤에야 다시 이곳 고갯마루로 돌아 나올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니나요?’ 길을 잘못 들어 30분을 걷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는 길에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하는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늘 산행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산행시간을 좀 늘려보고 싶었데, 마침 워밍업(warming-up) 코스로 딱 좋았다는 것이다. 맞다. 그의 말대로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임도는 준비운동 삼아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갯마루의 정점에서 오음리쪽으로 조금 내려와 오른편에 보이는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제대로 된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임도로 들어서자마자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까 알바를 했던 임도와는 달리 경사(傾斜)가 만만치 않게 가팔랐기 때문이다. 그래 최소한 이정도 경사는 되어야 산을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상의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했는데, 군용차량이 올라 다니려면 이러한 도로포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참고로 아까 알바를 했던 임도는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었다.

 

 

 

임도를 따라 걷는 산행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군용도로(軍用道路)이다 보니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팔랐다 평평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가에 구절초 등의 야생화(野生花)들이 지천이라는 점이다. 자칫 지루해지기라도 할라치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을 가슴에 담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런 길도 장점은 있다. 길이 넓기 때문에 같이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35분 남짓 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다보면 어느덧 임도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군부대(軍部隊)가 나타난다. 그러나 부대는 텅 비어있다. 막사는 아직까지 생생한데도 말이다. 요즘 날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군(), 그들의 사후약방문에 따르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부대는 아예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했다. 설마 이 부대도 그래서 닫힌 것은 아니겠지?

 

 

 

군부대의 옆에서 오늘 산행 후 처음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오늘 산행의 백미인 파로호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으로 이루어진 호반(湖畔)이 녹음과 어우러지며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으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참고로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호수(人工湖水)이다. 6.25전쟁 후 이승만대통령이 적군을 물리치고 사로잡았다는 뜻으로 파로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비취빛 호수를 가슴에 담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군()시설의 왼편으로 열린다. 시설의 맞은편에 보이는 750m봉이 제법 날카롭게 솟아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부대에서 짧게 내려선 산길은 750m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기 때문이다.

 

 

 

 

 

750m봉을 우회한 산길은 막바지 몸부림이라도 치려는 듯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더니 드디어 병풍산 정상에다 올려놓는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50분이 걸렸다.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전망데크가 눈에 들어온다. 북서쪽 방향에 설치된 걸 보면 아마 파로호()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라는 모양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삼각점(양구25, 2003복구) 외에는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그 어떤 시설물도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해 그 흔한 정상표지석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이다. 어느 이름 모를 산악회에서 나무데크에다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과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서래야 박건석선생의 낯익은 정상표시코팅(coating)지만이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병풍산은 병풍같은 바위가 이 산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행 내내 그런 바위는 눈에 띄지 않았고, 산행을 끝내고 도송리 방향에서 올려다봤을 때에도 그런 바위는 끝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망데크에 서면 북쪽 발 아래로 파로호()가 넓게 펼쳐진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파로호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파라호에서 눈을 조금만 더 들면 해산(日山)과 재안산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뒤 보이는 산은 아마 백암산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사방이 산들로 겹겹이 쌓여있는 형상이다. 동쪽에는 사명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고, 동쪽에는 죽엽산이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이 너울대고 있다. 그리고 남서쪽에는 용화산과 수불모산이 늠름하게 자세를 잡고 있다. 서쪽이라고 해서 산이 없을 리가 없다. 두류산과 백적산, 그리고 적근산과 대성산이 나도 여기 있다며 손짓을 한다.

 

 

 

 

정상에서 동쪽에 있는 헬기장으로 가려는데 먼저 산을 올랐던 일행들이 그쪽 방향에서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구태여 갈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다. 그냥 헬기장일 뿐 아무런 특징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헬기장의 특징이랄 수 있는 조망(眺望)까지도 주변의 잡목(雜木)들로 인해 완벽하게 막혀있단다. 그렇다면 하산하는 일 밖에 없다. 하산을 올라왔던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누군가의 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파라호()의 풍경이 나타난다고 했었는데 이는 그른 표현이다. 아니면 그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난 겨울철에 이곳을 찾아왔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름의 막바지, 산길 주변의 울창한 참나무 숲이 완벽하게 시야(視野)을 차단하고 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려갈 수밖에 없는 맥없는 산행이 되어버린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5분 정도면 끝이 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 간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흙길에다 울창한 수림(樹林)이 그늘까지 만들어주니 그저 룰루랄라 산행이 된다. 이런 길은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침 주어진 시간까지도 넉넉하니 느림보의 미학이라도 추구해보면 어떨까. 나뭇잎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시원한 산바람까지 불어오는 이런 산길이야말로 여름철 산행에서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산 길은 특별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 하긴 순수한 육산(肉山)에서 볼거리를 찾는 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인해 능선이 음()지고 습()하다 보니 곳곳에 버섯들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꼭 식용버섯일 필요는 없다. 계란버섯 등 먹지 못하는 버섯들은 대신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서서히 걸으며 이름 모를, 그러나 아름답기 그지없는 버섯들을 감상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산길이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숲으로 들어서더니 나보고도 따라 들어오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의 손가락이 뭔가를 가리키고 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짧고도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둥그런 모양의 버섯이 참나무에 매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 노루궁댕이버섯이닷.’ 나도 몰래 함성부터 튀어나와버린다. 그만큼 노루궁댕이버섯이 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부부는 주변에서 얼마간의 싸리버섯도 채취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담양의 병풍산에 갔을 때도 많은 양의 싸리버섯을 채취했었는데 연거푸 행운이 찾아온 모양이다.

 

 

걷기 좋은 능선길은 30분 정도면 끝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로 변한다. 15분 정도를 가파르게 떨어지다 보면 길은 다시 평탄하게 변하고 이어서 조금 후에는 이름 모를 묘()가 나타나는데, 이쯤이면 산행이 거의 끝나간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들어나는 풍경들이 거의 바닥수준이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5분쯤 더 내려가면 고대하던 계곡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물기라곤 한 점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원래 오늘 산행은 도송리를 들머리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산행 후에 땀이라도 씻어볼 양으로 코스를 정반대로 운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날머리로 삼은 계곡에 도착해보니 바짝 말라버린 개울이 허옇게 배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온 때에도 저렇게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라면 폭우(暴雨)라도 오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물 구경이 불가능 할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산행코스를 잘 못 잡았던 것이다.

 

 

 

계곡을 만나고 나서 산길은 옆구리에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그러나 그 거리는 짧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계곡을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인적이 없는 민가(民家)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마을길과 합쳐진다. 그러나 마을길은 의외로 길다. 첫 번째 민가에서 도송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지루하지는 않다. 주변 풍광이 사뭇 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병풍(屛風)이라도 둘러친 양 병풍산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전원주택은 언젠가 그림에서 본 알프스(Alps)의 산장(山莊)을 닮았고, 그 반대편에는 파로호()의 호반(湖畔)이 그림 같다. 흔치 않은 목가적(牧歌的)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파로호의 상류가 마치 독립된 저수지처럼 보인다. 호수에 좌대(座臺)가 제법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강태공(姜太公)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낚시터인가 보다.

 

 

산행날머리는 도송리 노인정 근처의 정자

첫 번째 민가에서 20분 정도가 지나면 가래울마을에 있는 도송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는 보이지 않고 정자나무 아래에서 먼저 산행을 마친 사람들 몇이서 두런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버스가 노인정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태우러 이곳으로 오기로 했단다. 그러나 다들 언제 올지는 모르는 눈치다. 버스에 점심을 놓고 산행을 했던 우리부부는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점심을 거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분 정도를 걸어 경로당 앞에 있는 버스를 발견하면서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50분이 걸렸다. 알바시간과 간식을 먹느라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에는 2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