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계룡산('01.4.15)

2011. 11. 4. 10:47

아이고 죽겠다.
어제 저녁 11시에 침대에 들었는데 아직 1시가 못되었으니 채 두시간도 못 잤잖아?
문득 남들이 얘기하던 시차적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심심치 않게 나가는게 해외출장이어선지는 몰라도 그동안 이런일이 없었는데...

맑은 머리에 다시 잠을 청하는게 무의미한 것 같아 자리를 턴다.
컴을 켜고 그 동안 도착한 메일을 읽어본 후, 산과사람들에 찾아 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싼 국제전화를 건 보람이 있어 좌석표엔 내 이름 석자가 선연하다.

같이 동행하는 산사람들을 확인해 보니
마침 여행중에 염두에 두고 준비한 소품들의 임자도 몇몇이 끼어있다.
양주 한병 배낭속에 넣다 빼다...
결국 백두대간 때 챙기기로 하고 나서야 배낭 꾸리기가 끝이 난다.

아직도 시간은 세시가 넘지 않아 그 동안 밀린 빨래부터 다리기로하고
어제 도착하자마자 빨아 널어둔 와이셔츠부터 애들이 챙겨둔 셔츠까지...
쉽지 않은건 평소의 경험으로 알지만 두시간을 넘기니 팔이 욱신거려 온다.

김치냉장고도 치울겸 아침은 김치찌개로...
참치 위에 송송 썰어 넣는 풋고추는 2주일을 넘겼는데도 싱싱하다.
새로 지은 밥의 끈끈함을 음미하며 호호 불어 한술 두술....
그렇게 다시 돌아온 내 삶의 현장 새 아침은 시작되고 있었다.

일찍 집을 나섰던 탓인지 교대역에는 명님외에 몇분 보이지 않고...
뒤이어 낮익은 님들이 하나둘 모여드나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썰렁하다.
아픈이들이 많아 그렇다고 가볍게 말하는 명님이지만 이런 때가 제일 부담스럽다.
아무리 산이 좋아 카페를 운영한다지만 자기돈 털어 넣어가면서 까지야 ???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반가움에 한사람 한사람 반가운 님들의 손을 감싸본다.
한달여를 못 본 탓인지 맞잡는 손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설산의 재치있는 사회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처음 참가한 이들 조차 부담 없어 하는건 아마 그의 넉살 탓?
내 차례엔 여행 소감이나 얘기해 볼까하다 뜨끔하여 그만둔다.
이번 여행엔 문화 탐방쪽에 비중을 두었기에 얘깃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오전에 현지의 관련 인사들과 방문한 목적에 걸맞는 프리토킹...
오후에는 관광...
저녁 먹고는 혹여 좋은데 없나 두리번거려 보기로 결심하고 떠난여행이었다.

덕분에 파리에서는 리도쇼에 몽마르뜨의 라이브쇼까지 극과 극을 경험했고,
브루셀에서는 강도 당할 각오로 공창을 찾아 흥정까지 해보는 색다른 시도...
프랑크푸르트의 남녀 혼성 사우나에 들러 이국 풍경을 실컷 구경하고,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는 주독 대사님의 권유로 베를린필하모니까지 관람했다.

그러나 아무리 얘깃거리가 많으면 무엇하랴
여성회원님들 앞에서 무례를 저지를 수야 없지 않는가 말이다.

혹여 잠을 청해볼까 소주를 홀짝거려보지만 잠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여 산행중에 졸리면 안 될텐데....

산의 초입...
후미에서 은사시님, 조약돌님과 보조를 맞추어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따라 유난히도 은사시님이 힘들어한다.
얼마전에 다리를 다쳤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그 영향?

쉬엄쉬엄 꾸준히 오르는데 얼마안가 힘들어하는 여진낭자와 잡초님이 보이더니,
뒤이어 초록과 말짱까지 다들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나도 마침 힘들기에 도와주는척 후미그룹에 자연스레 합류....
떨어진 속도의 여유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계곡의 풍경은 별로고,
그저 잡초님의 계단길이 싫다는 투덜거림만이 시공의 공간을 메꿀뿐이다.

겨우겨우 도착한 문장대 밑 휴계소...
먼저온 이들이 딸아주는 좁쌀술이 차가워서 좋지만 디게 시다.
평상에 앉아 메뉴판의 장터국수를 보며 침을 흘리는데
異床同夢인 옆자리의 찔레꽃님 언제 국수번개 한번 때려 볼까요?

속리산에 올랐다는 기념으로 기어오른 문장대...
이제서야 주위의 경관이 보이고
날릴까 걱정되어 모자를 고쳐 쓰게 만드는 바람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그리고 눈앞의 능선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바위들의 행렬...
비록 웅장하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함이 남녘의 산천은 거의 비슷할걸?

은사시님 일행에 끼어 앉은 점심상...
오늘 산행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풍요롭다.
막걸리에 목축이며 부침개로 안주하고...
조약돌님이 준비한 상추쌈 한 볼태기 넣으며 앞으로도 자주 산에 오소서!
여유님의 김밥까지 간간히 섞으니 이보다 더 좋은게 무에 있으랴?

여행에 소모된 체력을 생각하여 탈출로를 택한 하산길....
산지니의 어머님과 이모부님을 위시하여 나이든 분들이 꽤 많은데,
아마도 진철님과 친구분은 홍규남님의 강요로 합류했을걸?

중간 휴계소에 들러 솔잎주 한잔 나누고...
완주팀보다 늦을걸 염려하는 환객의 재촉에
하산해서 따님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들러보라는 주인여자의 호객은 아예 귓전 밖...

법주사에 들른다는 님들을 뒤로하고 나 홀로 버스 정류장으로...
하품이 시작되더니 매표소를 지나면서 아예 눈이 슬슬 감겨온다.
물적신 스카프로 겨우 잠을 쫒으며 내려오는 하산길은 왜이리 머나먼지?
황토알갱이 길가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유혹하지만
결코 벤치를 찾을 수는 없다 잠을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없는 고로....

황토길 끝머리 봄나물 좌판 아주머니의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에 다리가 떨려온다.
그리고는 법주사 주지부터 환경부 간부까지 줄줄이 엮어가며 욕설....
남이 들을리 없는 나만의 욕설이지만 마음껏 쏟고 나니 조금은 낫다.

돌아오는 버스속의 진철님이 따라주는 막걸리 몇 모금에 겯드리는
뒷자리 하정님께서 권하는 안주가 좋아 종내는 손수 술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말짱의 수고로 돌아가며 한곡씩...
東方禮義之國의 자손답게 長幼有序를 찾아 돌린 덕분에 나두 앞에서...
젊은 분들의 신선한 노래에 감칠맛 나는 나이든 이들의 노래에 젖어,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다 보니 졸림까지 달아난지 오래다.

명님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어느새 올림픽대로...
분위기에 취해 잊었던 잠이 나도 몰래 찾아왔었나 보다.
교대역에서 헤어지는 발걸이 무겁지만
내일은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여기서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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