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후기

북한산('02.6.24)

2011. 11. 4. 10:55

속이 쓰리다.
아니~ 쓰리다 못해 뒤틀린다.
만사가 귀찮지만 그래도 산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과천...
일원동....
일원동에서 양재대로를 따라 과천까지 출퇴근....
다람쥐 챗바퀴 속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볼 수 있는
일주일에 단 한번인 기회를 포기하기에는 최근의 나에겐 여유가 너무 없었다.

토요일....
광화문....
잠실구장이다 경마장이다 모든 이들이 다 나왔는지 온 세상이 붉지만
배낭하나 달랑 둘러맨 나는 북한산을 찾았다.
누구 하나 없는 텅빈 산속에서
그 무엇인가를 찾아 온 산을 누벼보나 종내는 나 자신까지 잃어버린다.

나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에 쫒겨
달리다시피 내려오는 길목에서 마주친 승전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관전보다 산을 찾았던 나인데도
이유없이 마냥 즐거워지는건 어차피 나도 한사람의 대한민국인이어서일까?
정릉에서 시작된 술이 수서까지 연결되더니 결국은 자정을 넘겨버렸다.

자명종에 맞춰 일어나 배낭을 꾸려본다.
얼린 물 꺼내는 김에 금요일에 사다 씻어둔 오이도 챙긴다.
산행시간이 짧아 행동식이 뭐 필요하겠는가 만은 그래도 서운하니 초콜렛도...

산행 때마다 골치 아픈 점심을 오늘만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약밥에 불고기...
야채에 소주까지 챙겨오신다는 달래님이 맨몸으로 오라하셨겠다?
거기다 과꽃님께서는 매실쥬스 가져다 주신다고 했고.....
남자들에게 안좋다는 것이니 낭군님께는 드리지 마시고 다 절 주시오소서!

어제 빌린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읽을 거리로 챙겨 교대로 향한다.
어젯밤에 비가 오셨는지 아스팔트는 촉촉이 젖어있고
비인 것도 같고 안개인 것도 같은 가랑비가 흩날린다.
아! 은사시님이 언젠가 이런 비를 는개라고 쓰신걸 본일이 있다.

헐레벌떡의 결혼식에 가는 사람들도 많고...
월드컵응원 후유증에 비까지 내리니 참가인원이 적을 거라는 명님의 말에
'다 못 와도 달래님만은!'을 되 뇌일 수 밖에 없다.
굶고 아니 굶고가 달래님 손에 달려있으니 그 외에 달리 무엇이 있을 손가?
애를 태우던 달래님이 늦게나마 모습을 보이신건 아마 내 기도의 효험 탓일거다.

두류봉님을 위시해서 아무거나님...
형희님에 달래님, 과꽃님, 높낮이님....
솔향 곁의 설산 어머님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시고...
거기다 더하여 교대에 나온 김에 빈자리 찾아온 어느 여자분까지...
오늘 따라 유난히도 4학년생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그래~
4학년이 많은 날에는 모든게 풍요로웠으니 오늘하루도 즐거울 예감이 솔솔...

이동시간이 짧으니 자기소개도 짧게 하라는 설산의 명령대로 대충 끝내고
뽑아든 마니또는 채리2....
아차하는 사이 마니또 얼굴을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선착장에 도착...
우선 새우깡부터 줏어 들고 버스문 열리자마자 서둘러 갑판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나 곧바로 버스와 난간사이의 좁은 틈새 앞에 서서 갈등에 쌓인다.
우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상태에서 휘리릭~~
이렇게 가뿐히 통과하는데 '갈하늘님은 안될텐데'라고 외치는 사람 형희씨지?

나 혼자만의 자부심에 쌓인채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해본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 새우깡 두어개 놓고 오른손 준비 끝....
한 마리만 잡아서 점심상에 놓아야지!
기러기도 먹는데 뭐~ 자연산이라 아마 맛이 좋을걸?
그런데 그 노마 갈매기들 내 흑심을 눈치 챘는지 내 옆에는 얼씬도 안한다.

산의 초입에서 먼저 사진부터 한방 박고...
야트막한 산이어선지 모두들 가뿐히 오르는데 나혼자만 식식거리는 것 같다.
해풍에 쪼든듯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숲길....
그 와중에도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앞서가던 어느님 연신 나무를 흔들어댄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몇번의 장난에 내 옷은 이미 후줄근하다.
그래도 여기는 산! 마냥 즐겁다.

달래님이 주신 얼린소주룰 만지작거리며,
명님이 허락한 해명산 정상에서의 축배를 위해 부지런히 달리는데
앞서가던 달래님 曰 '이정도의 길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걷겠다.'
그래 달래님 말마따나 참으로 아기자기하면서 평탄한 산길이다.
그러나 행여 산 나그네들 심심해 할까봐 곳곳에 바위를 숨겨 놓은 산...
그 산의 아름다움에 젖다보니 힘든 것까지 잊은지 이미 오래다.

드디어 해명산 정상...
두병은 많으니 한병만 마시라는 명님의 말을 게기며 끝내 두병을 꼴깍...
사람이 몇 명인데...
두병을 풀었어도 내 입에 들어 온건 세모금뿐이었다우!
그러나 산에 취해 콧노래 흥얼거리다 일행을 놓친 달래님 배낭에
다시 한 마리의 두꺼비가 꼭꼭 숨어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을거다.
둘이서 몰래 나눠 마시고 오다 명님께 걸려 디게 야단 맞았지만...ㅎㅎㅎㅎ

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몇번에 도착한 낙가산 정상....
널따란 바위에 걸터앉아 준비해온 과일들을 나누어 먹는다.
이것 좀 맛보시오!
아니~ 제것도 좀 먹어보시오!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마음...
서로를 배려해주는 이런 마음씨가 산사람들의 참 모습이 아닐런지...

저 건너편에 봉우리가 하나 더 있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데 그곳까지 다녀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눈섭바위에 들러 과꽃님 절하는 뒷모습도 바라보고...
경건한 모습으로 절하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은 대체 무얼 빌고 있을까?
까짓거 나두 딸이나 하나 점지해 달라고 한번 빌어봐?
요사이는 늦둥이 두는게 유행이라던데 이참에 나두 한번......

보문사...
섬에 숨어 있는 절치고는 제법 크고 화려하다.
눈섭바위가 제법 효험이 있다던데 아마 시주가 제법 들어오나 보다.
과꽃님이 내미는 튀김에 문득 올 때 휴계소에서 산 인삼막걸리가 생각난다.
두어병 내오는데 발빠른 두류봉님 먼저 자리잡고 앉아 순무김치 펼쳐놓는다.

뱃길이 막히기 전에 섬에서 빠져나가다 보니 점심도 강화도 선착장에서....
꾸~울~꺽
바리 바리 싸가지고 오신 달래님 점심이 빛깔을 내기 시작한다.
내 앞에 떠억 놓인 약밥하며 불고기에 쌈....
그뿐이랴 여기 저기 다른분들이 펼쳐놓는 진수성찬....
오! 조기 위에 머무르시는 내가 좋아하는 님이시여
매일 매일 찾아오는 나날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게 하여 주소서!

돌아 오는 찻속...
다행이 산행 소감 발표를 생략한다.
마니또를 못 챙겼는데....
휴~ 큰일 날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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