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쉬어볼까 찾아간 연수원은 삼일동안을 내리 졸기만 했다.
그나마 한가지 머리속에 담아온건 뻘소리....
"판단력이 부족한 탓에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부족한 탓에 이혼을 하고,
기억력이 부족한 탓에 재혼을 한다?"
맞나? 에이 설마...
하여간 작업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태반인 산과사람들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이하리 내 그 전철을 이미 밟아가고 있음을...
시간을 예약해 놓은 TV음에 놀라 눈을 뜨며
달랑 팬티 하나만 걸친 채로 소파위에 내 팽개쳐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두시를 넘겨 들어온 처지에 어불성설 침대로 들 수는 없었다.
백운산 떠날 시간에 일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밥 그릇을 들다 말고 슬며시 제자리에 놓을 수 밖에 없다.
품위지킨다고 참치회에 소주를 마셨더니 안주거리가 안되었나보다.
메스껍고 쓰린 속에 어거지로 구겨 넣다간 사고나기 십상일 것 같아서다.
대충 얼린 패드병과 지갑만 챙겨들고 교대로 향할 수 밖에....
이번이 24번째로 참가하는 정기산행...
낯가림이 심한 내가 새로나온 몇분을 제외하곤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걸 보니 나두 이젠 제법 고참이 되었나보다.
오랬만에 모습을 보인 딸기짱과 신선에게서 한층 더 큰 반가움을 찾는다.
아! 작년 겨울에 본 이후 잊고 지냈던 두류봉선배님도 보이시네?
그리고 신혼의 단꿈에서 덜 깬 듯한 젬스와 꽁치를 보며 내 각오를 다져본다.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출발...
힘찬 엔진소리에 시간이 타이트하다는 명님의 잔소리가 묻혀버린다.
그리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유연해지는 설산의 사회로 시작되는 자기소개시간...
오늘도 역시 개파들이 주축을 이루는 것 같다. 하기사 사회도 개파지?
영월쯤인가?
다리 밑에서 개 잡는걸 본 젬스 왈 "오늘 한 마리 잡을까요?"
포동포동한 설산개가 좋겠다는걸 개는 말라야 맛있는 거라고 친절히 조언...
그럼 짱구개? ㅎㅎㅎ
하여간 내 차례도 찾아왔고...
부산의 지혜적님이 오징어를 보내주셨으니 맛이나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안주가 있는데 술이 없어서는 안되니 막걸리는 내가 쏴야겠지?
메일이 수신이 안되어 고마운 뜻을 못 전했는데 지혜적님 잘 먹겠습니다.
꼬불탕 꼬불탕 고갯길 넘어가 점재나루에서 나룻배로 도강...
줄지어 배로 오르는 회원들의 숫자를 세어보며 저배 스폰지로 만든거 아냐?
세상에 그 조그만 배에 30명 이상을 태울 수 있다니....
일단 다 타보라는 명님의 의도를 읽은건 배가 출발한지 얼마 안 지나서다.
돌맹이로 물방울 튀겨 배위 사람 골탕먹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래봐야 먼저 도착해 복수를 벼르는 저 빛나는 눈초리들을 봐야하겠지만...
점재마을에서 산행 시작...
시작부터 마니또인 딸기짱의 곁에 선다.
어떻게 만들어내 마니또인데 허술히 도와줄손가.
처음 골라잡은건 명님...
"에이 씨!"
뒤에 앉은 젬스의 귀에 들어갔는지 얼른 바꿔주는게 딸기짱아닌가?
딸기짱의 산행실력을 익히 아는 나...
오늘은 뭔가 마니또게임의 진수를 느껴보리라!
초컬릿에 얼음물은 기본이고 오르막에 손까지 잡아주니 이만하면 됐겠지?
그리고 딸기짱이 키가 큰 것을 오늘 새삼 느꼈다.
다른사람들은 잘만 통과하는데 혼자서 나무에다 헤딩연습하느라 정신없다.
어때 딸기짱 이마 온전하나?
마지막 깔딱고개를 통과하여 도착한 정상에는 이미 식사들이 한참이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끼리 둘러 앉으며 부부팀 만세!
앞으로는 산행 때마다 부부팀을 한둘씩 끼워갑시다레!
팔봉산 때는 달래님 부부, 이번엔 젬스 부부...
상추쌈에 양념된장 진정 끝내주더이다.
거기다 무거우니 제발 먹어달라며 내 놓는 신선의 과일...
이 맛에 산을 찾는 거나 아닌지.....
하산길...
내려갈 때나마 선두로 내려가자는 딸기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과꽃님 꽁무니를 부지런히 쫒으며 '하이에나가 있는데 뭐~'
나타나는 봉우리 하나! 참을 만 하다.
다시 나타나는 봉우리! 낮으막하니 이것도 참을 수 있다.
우쒸~ 또 나타나쟎아?
거기다 탈수현상인지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 남은 물로 입술만 축이다 과꽃님의 뒷모습을 놓치고 만다.
좌측으로 빠지는 길 없나?
그나마 백운산의... 동강의 아름다움이 피곤한 심신을 달래준다.
백운산을 둘러싸고 있는 동강의 물 굽이 길.... 국악속의 휘모리 장단?
아! 세계 방방곡곡 그 어디에도 이러한 아름다움은 없더이다.
아찔한 절벽위에서 명님께 고마워해본다.
소주 세병을 갖고 올랐는데 위험하다고 해서 한병만 마셨으니 망정이지
그걸 다 마시고 취했으면 나르는 수퍼맨 되기 딱 좋다.
칠목령을 지나 마주친 민가에서 물배 채우고...
동강의 거친 물살에 내 한몸 담궈본다.
물속에 머리 박으니 천하는 내것... 시원함이 뼈속까지 파고든다.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과꽃님을 바라보며 물세례를 줄까? 말까?
아! 조금전 사용한 헨폰을 포켓에 넣는걸 보았으니 참을 수 밖에 없으나
몇번이나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입맛을 다셨는지 모른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친구하기로 한 고향친구 산너울님!
두 살차이로 친구 못해서 내내 안타까워했던 뫼오름님!
새로운 인연에 반가웠고요.
또 산에서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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