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걸님이 더덕주라며 한잔 권한다.
행여나 앞자리 명님 눈치챌세라 한숨에 쭈욱~

이미 뒷자리 술좌석 한소리 들은걸 봤고,
얼마 안있어 천안의 양지꽃님 술찾다 낯 붉히는걸 봤기 때문이다.

여걸님이 산에 다니면서 손수 채집해 빚었다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그니의 서방님을 부러워하며 다시 한잔 청해본다.

시트 뒷머리에 이고 잠을 청한다.
기를 써봐도 머리는 점점 맑아져온다.

그리고 점점 목의 통증이 심해져 온다.
함께 찾아오는 벼라별 상념들.....

작년에 목 때문에 죽었다 깨어난 뒤론 목만 아프면 겁부터 난다.
갑자기 부은 후두개가 기도를 눌러 호흡이 끊어졌었고....
10분 아니 5분만 늦었어도 죽었을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뒤론,
삶과 죽음이 언제나 함께였고 그 차이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사실 이번 산행을 무지 망설였는데...
작년 같은 증상이 왔을 때 지방병원의 응급처치 능력을 의심하면서도,
차마 백두대간을 빼먹을 수가 없어 따라나섰다.
서서히 후회가 찾아오지만 어쩌랴? 이미 버스는 출발했는데...

두시 좀 넘어 도착한 여원재
가는 비가 온다는 명님의 뒤를 이어 안개비라는 소리까지...
아스팔트는 비에 젖어 있지만 비는 오지 않을 눈치다.
마침 맞게 자리잡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출발준비를 한다.

"와! 별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별은 이미 우리 곁에 있었다.
그리고 몇 십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야만 생각나는 은하수까지...

무얼 찾으러 예까지 왔누?
저 멀리 꼬리를 남기고 흐르며 손짓하는 행운의 별똥별에다
뭔가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 그 무엇...
짜증스런 그 무엇을 가슴속에 묻으며 나 또한 어둠속에 묻혀본다.

무전기에서 길가에 철쭉이 많다는 전언이 아니더라도
짜증나도록 무릎을 건드리는 길섶 나무가 철쭉인줄은 이미 알고 있다.
어슴프레 보이는 꽃잎의 검푸름은 차라리 처연하다.

오늘은 백두대간의 기나긴 여정을 준비하는 휴식구간?
어느 한곳 어려운 구간 없이 물 흐르듯 순탄한 산행길이다.
그래도 무조건 쉬울 수만 있나 백두대간 체면이 있지.
고남산 오르는 길은 제법 바윗길이 가파르고 한켠에 로프도 메어있다.

한통송신탑을 돌아 내려오는 길...
코끝에서 쇳바람 소리를 내는 이들이 비켜가기 시작한다.
길가에 펼쳐 놓은 종이를 봐선 정토산악회인데...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깨끗한 세상을 淨土라 하는데
그런 세상에 사시는 분들이 뭐 그리 급하다고 밀치고 부대끼는지 원~

임간도로에 퍼질러 앉아 넓직한 등판을 소정님의 등받이로 빌려준다.
"미안해하지 마이소"
미녀에게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내어 줄 용의가 있는 남자라우!

그리고 라면으로 맞는 아침식사는 그야말로 꿀맛...
새벽길을 세시간을 달려왔으니 시장에 반찬은 당연하겠지?
한팀건너 땡민팀의 술 내음이 배부른 다음에야 코 끝에 걸친다.

몇구비 돌아 도착한 민가... 주막이라고 해야하나?
딸 다섯에 아들 셋... 또 거기서 孫이 스물 다섯으로 퍼졌다는 할머니는
가진 것 만큼이나 인심 후한게 가진 것 다 내어줄 듯하다.

한잔 두잔 나누는 막걸리는 달구지조의 도착시간에 맞춰 늘어만 가는데
삼십분이나 늦게 도착한 달구지왈 하두 배불뚝이를 놀리기에 피하느라 길을 잘못들었다나? 거 넘 놀리지 맙시다레 나두 배 나왔수!

터덜거리며 도착한 지리산휴계소 잔디밭...
여기 저기 둘러 앉아 점심을 준비하지만 아직은 배가 덜고픈 11시...
준비해온 양주를 꺼내 20회째 산행을 자축하고 본다.

양지꽃님의 장뢰蔘 안주에 약술도 얻어 마시고...
두루두루 방문하는 취객노릇에 어느덧 알콜은 머리까지 마비시키고...

돌아오는 내내 골아 떨어져 잠만 쿨쿨....
집에 돌아와서도 대충 샤워만 마치고 내내 쿨쿨....
자정에 일어나 옷 좀 다려놓고 다시 쿨쿨...
잠 한번 원없이 잤건만 아침 통근버스에서 다시 꾸벅꾸벅...
잠은 잘수록 더 온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어느 월요일 아침!

덧붙임
산행을 나서며 걱정했던 목감기는 언제 아팟냐는 듯이 말끔하네요.
산행은 역시 만병통치약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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