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비록 가늘지만 분명히 비는 비다.
명님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산과사람들의 산행은 이어진다고 했으니
염려는 붇들어 매놓지만 그래도 대절버스가 텅비지 않을가 걱정이다.
어제 사다 논 상추에 청양고추 올려 몇 숫갈 뜨며 호호거리는데
비오는데도 산에 가느냐고 물어온다.
그럼 산 좋아하는 사람이 비 좀 온다고 산행을 포기하나?
비오는 날 악자 들어가는 산을 오르는건 위험하니
입구에서 촌닭이나 시켜 놓고 그 좋아하는 소주나 마시다 오란다.
금요일 누이의 번개때 술에 맞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술을 먹더라도 위험한 우중산행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는
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온다.
그래 이게 바로 사랑인가보다.
명님의 손을 잡으며 차속을 들여다 본다.
예상은 했지만 같이하는 인원이 20명도 못되니 적어도 너무 적다.
중간에서 솔향일행, 청평에서 달래님이 합류해서 22명...
앗! 행운의 2땡이니 오늘의 산행에 행운이 있지나 않을까?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은 제임스의 사회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마니또게임...
제발 명님이나 또 다른 뻣뻣한 삭신이 걸리지 않게 해주소서~
두손을 맞잡은 효험인지 울 동네분인 과꽃님이 오늘의 마니또다.
과꽃님 산에서 얼린 맥주 잘 마셨죠?
글구 흥국사까지 오손도손 재밌게 내려왔지요?
산의 초입....
매표소 앞에서 바라보는 빗줄기는 장난이 아니다.
에이~ 나 산에 안가고 그냥 술이나 마실래~
그러나 한사람 두사람 다들 빗속으로 나서고.....
그냥 음식점이나 찾아 들자던 달래님마저 배신을 때리는게 아닌가.
혼자서 술을 마시기는 그렇고 궁시렁거리며 일행의 뒤를 따른다.
비옷을 입어봐야 땀으로 젖을 것이고...
이래저래 젖기는 매일반이니 그냥 입은채로 산을 오른다.
초입인 상원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고쟁이까지 푹 젖었다.
일행중 몇 명이 볼일이 급한 모양인데 인심 사나운 상원사 스님들
화장실을 떠억허니 막아놓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방향만 돌리면 온통 화장실이란걸 몰랐을걸?
화장실 입구에다 다들 실례를 했으니 냄새 없어지려면 꽤 오래 걸릴거다.
깔딱고갤(아닌 것 같은데 명님이 맞다면 맞는거지 뭐) 오르며
힘들이 드는지 빗줄기에 맨몸을 노출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힘들어하던 릴라님이 더 이상은 못 가겠다며 뒤돌아 내려간다.
힘든곳 다 지났다고 꼬드겨 다시 모시고 올라온 사람이 설산이던가?
야~ 이 친구야 지금부터가 더 힘들잖여~
그래도 릴라님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씩씩하게 완주를 하셨다.
진짜 깔딱고개는 로프를 잡아야 올라 갈 수 있는 바윗길이 대부분...
다행이 바위가 편마암이라서 그리 미끄럽지 않다.
오늘 자원공학과 출신직원인줄 모르고 어제의 우중산행 자랑하며
규석이라고 말했다가 전문가 앞에서 까분다고 디지게 얻어들었다.
외길을 산사랑산악회와 겹치다 보니 가다 서다....
기다리는 시간에 둘러보는 산경...
빗줄기에 가려 비록 의암호는 보이지 않지만
안개에 산허리를 빼앗긴 삼악산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환호성....
하마터면 놓칠뻔했다며 오늘의 산행에 다들 만족해하고 있다.
부지런한 설산은 한순간도 놓치기 싫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빗속의 카메라는 위험한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심성이 너무 곱다.
밖에서 잘 하는 것만큼 장가가서 집에서도 잘하겠지?
미끄러워 엉덩이를 포기해야할 것이라는 하산길은
명님의 기대를 어그러뜨리고 너무 평탄하고 만만하다.
어두컴컴함에 벌써 해떨어진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온통 원시림이다.
선두그룹에 묻혀 내려오는데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마 흥국사가 가까워지나 보다.
일단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는 흥국사를 돌아보며 후미를 기다리기로...
천년고찰 치고는 너무 왜소하고 퇴락한 것이 향화객이나 있을런지?
다시 나서는 하산길은 후미에 서본다.
그러고는 달래님과 하이에나를 꼬득여 주막에 자리잡는다.
묵한사발에 잣막걸리 한병이 눈깜빡할 새에 사라질 정도로 감칠맛 난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엔 비 덕분에 냇물이 넘칠 듯이 출렁이고,
바위를 감싸다가도 밀어내고 아니되겠다 돌아가는 물길에서 가락이 보인다.
아까마신 막걸리 기운에 흥취를 돋우어 달래님만 없으면 시 한수 읊었을텐데?
등선폭포에 다다르니 왠 仙女? 아니 웬 仙男(분명 신선은 아녀)?
부지런한 하이에나가 입은채로 멱을 감고 있는게 아닌가.
뒤따르고 싶지만 가진게 체면뿐인지라 아쉬운 입만만 다시며 돌아선다.
그리고 술집 아짐씨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착한 주차장....
저멀리에서 웅성거리는게 이미 점심 좌판을 펼쳤나보다.
예민이의 메뉴를 알기에 부리나케 달려가보지만 소문이 자자한
열무비빔밥은 이미 바닥에 깔려있다.
우~쒸 나도 준다고 했잖여~~~
이웃사촌 파이팅!
멀리 있는 사촌보다 옆에 있는 남이 낫다는 옛말이 맞어~
울 동네 이웃사촌 과꽃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거기다 같은 고향출신인 릴라님까정~
같이 산행을 한 님들의 수가 2땡... 역시 행운의 숫자였나보다.
야체에 이것 저것 많이도 챙겨들 오셨다.
거기다 높낮이님의 볶음밥까지....
사십대들의 점심은 이렇게 넉넉해서 좋다.
그리고 나역시 사십대임에 자부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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