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중계하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산에 가는 날이면 집안 일 때문에 바빠질 수 밖에 없고...
일주일치 집안 일을 하다보니 늦게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행여 제시간에 못 일어날까 TV에 예약 해두었더니 알아서 깨워주는게
문명이 인간을 피폐하게 한다지만 나는 그 편함이 이렇게 좋은 것을....
계란하나 팍 깨뜨려 시간없으니 스크램블로....
시간 맞춰 예약해 놓은 밥솥의 새밥은 찰기가 돈다.
한접시 남은 김치를 한 두입 넣어보나 애들이 눈에 어려 더 이상은 못먹겠다.
친구에게 전화해 두었으니 오후쯤엔 새김치로 채워 놓겠지?
미리미리 알아서 챙기지 못하고 꼭 전화하게 만든다고 불평까지 보태줬다.
비록 젊은 시절 청혼해서 툇자 맞았지만 이럴 때 보면 와이프가 따로 없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명님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엉겁결에 손을 잡으면서도 궁금함에 님의 모습 찬찬히 살펴볼 밖에...
약간은 초췌하지만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아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그 와중에 건네오는 귀엣말 "냉장고 속에 잣막걸리 준비해 놓았심다. 행님!"
내 이런 맛에 맨날 산과사람들을 따라 나서는게 아닌지......
차속에서부터 산의 가파름을 걱정하는 과꽃, 가을녀, 달빛하늘님 일행...
가을녀와 달빛하늘에서 하나씩만 떼어내고 합치면 나이니 이것도 인연?
무릎이 안 좋다는 님께 건네주는 아대에 완주의 염원을 보태준다.
나 역시 처음으로 찾은 연인산이면서도 시작만 가파르지 능선부터는
괜찮다고 거짓말 하는건 혹여 시작부터 포기하지 말기를 바래서이다.
연인산...
비록 새로 이름을 붙인 목적이 상업적이긴 하지만 이름하나는 좋다.
바위하나 없는 흙산...
샌들이나 운동화 신고도 산행이 가능할 것 같으니...
연인들이 팔짱끼고 데이트하기 딱 맞아 이름도 연인산으로 정한게 아닐까?
그러나 그 산은 연인들 데이트하기엔 너무 가파랐다.
본래 능선이란 오르락 내리락하는걸 이르는 말로 알았는데...
이건 숫제 정상까지 가파름의 연속인게 장난이 아니다.
헉헉거리며 선두인 유자향을 따라 오르며 이제나저제나 쉬지 않을까?
행여나 젊은이들을 못 따라갈까 걱정하던 김향희님은 숨소리도 가볍다.
숨이 턱에 찬 나는 내 뽈록배만 바라보며 내 자신을 탓할 수 밖에...
그리고...
누군가가 산에서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아 볼 수 있다고 했다.
먼저 도착해 쉬고 있던 사람이 뒷사람이 헉헉거리며 도착하자마자
출발해 버리는게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면서....
유자향!
누굴보고 이 얘기하는 줄 눈치 챘겄제?
장수능선 갈림길에서 부터는 평탄한 능선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드디어 내 눈에도 주위의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철쭉축제라는데 왜 꽃이 안보이나?
앗뿔싸 철쭉은 머리위에 숨어 있었다. 왜이리 철쭉나무가 큰겨!
정상 가는 길에 부적도 나눠주고...
한 마장쯤 밑에선 가평군에서 고사막걸리에 머플러까지도 준다지만
늘어선 줄에 미리 질려 포기할 밖에 없다.
능선의 단풍나무와 주목 묘목들을 보고 산에 쏟는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세입이 한정되어 있는 지자체로서는 어떻게든 수입을 늘려야 할거고,
단풍묘목을 보니 얼마 안있어 단풍축제도 열릴게 틀림없다.
그리고 점심시간....
점심을 싸올 수 없는 나는 이 시간이 즐거운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오죽했으면 첫 산행에 울 직원들을 모시고 나와야했을까?
4학년 학생들 틈에 끼어 앉아 준비해온 떡을 풀어헤치며 젓가락정도는
가지고 다니니 그냥 밥만 주면 된다 넉살을 떨어본다.
그러나 십시일반으로 얻어먹는 밥이 제일 많다는건 개구쟁이 시절을
겪어본 이들은 누구나 알 수 있을거다.
아니나 다를까 여유님의 참치비빔밥까지 이것저것 많이도 먹을 수 있었다.
짱구의 뒤를 따르는 하산길....
내 주종목이니 자신있게 뛰는데 개마고원이 질세라 뒤따른다.
능선 곳곳에 늘어선 철쭉들...
그 꽃잎이 바닥에 흩어진걸 보니 철쭉제가 좀 늦은 것 아녀?
능선 하나 더 넘자는 짱구의 뒤를 더 이상 따를 수 없다고
반란을 일으킨 4학년 여자분들을 임간도로로 보내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나
나까지 주저하는데야 별 수 없이 계곡에 난 소로를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한마디 '저 능선으로 갔으면 집결지를 지나쳐 버렸을껄~?'
집결지인 폐교에 도착하니 명님이 잣막걸리를 한잔씩 돌린다.
잣막걸리라~~!
그래 잣막걸리에 잣 안주가 제격이겠지?
조금전 하산길에 산지가 더 비싸다고 투덜거리며 산 잣을 꺼내 놓는다.
돌아오는 찻속에서의 막걸리는 금방 동이나고...
4학년들도 한잔은 더 마셔야겠기에 길가에 차세우고 막걸리 한병 줏어들며,
어른들만 입이나? 그래 젊은이들은 네병이다.
조금 더 같이하고 싶은 시간들이나....
선약이 있기에 청평에서 작별할 수 밖에 없다.
누굴 만났냐고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그건 비밀이우~~~
그런디 데이트하다 다음역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다른 산악회 따라 왔다가 와이프냐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냥 모른체하고 가지 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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