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巨文島)-백도(白島)
일 정 : <첫날> 고흥군 녹동항→소록도 중앙공원→녹동항→쾌속선(페스트로이카)→거문도→거문도 등대→ <둘째날> 영국군 묘역→백도(쾌속 유랑선 이용)→거문도→불탄봉 산행→녹동항
소재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산행일 : ‘11. 5. 14(토)-15(일)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에 다소곳하게 자리한 거문도는 끊임없는 왜구의 침략에 이어, 1885년 고종재위 시절에는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위해 강제 점령했던 아픔의 역사를 안고 있다. 또한 일본 강점기(强占期)에는 임병찬 의사가 유배돼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원시림을 헤쳐 가는 거문도 트레킹과, 화려한 백도의 풍광은, 누구나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코스이다.
▼ 여행의 시작은 전라남도 최남단(最南端) 중의 하나인 고흥군 녹동항에서 시작된다. 승선시간이 조금 남을 경우에는 인근에 있는 ‘소록도(小鹿島)’를 탐방하면 되니까 배의 출항시간에 맞추느라 안절부절 할 필요는 없다. 나환자(癩患者 : 한센병 환자)들의 집단수용시설(集團收容施設)이 있는 소록도에는, 한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원으로 손꼽혔던 ‘중앙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공원은 마지못해 들르는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러봐야 할 명소(名所)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도 어김없이 소록도를 향하고 있다. 이곳 소록도는 내가 젊었을 때, 봉사활동을 위해 몇 번 찾았던 곳이다. ‘가톨릭의사회’의 의료봉사활동(醫療奉仕活動)을 따라 다니던 시절, 비위가 약한 편이었던 난, 매번 먹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도 역시 그러한 곳 중의 하나였다.
* 소록도(小鹿島) :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예전에는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살아가던 한적한 섬이었으나,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특히 이곳의 중앙공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때에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던 명소(名所)였다. 1940년,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의 노력동원으로 세워진 중앙공원은, 처음에는 ‘부드러운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광복(光復) 후에 중앙공원으로 개칭(改稱) 되었다. 약 2만 5,000㎡에 이르는 면적에 솔송과 황금편백을 비롯하여 향나무, 후박나무 등 잘 손질된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있어 다른 곳의 소문난 수목원들을 무색케 할 정도이다. 공원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적힌 구라탑(求癩塔)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있다.
▼ 녹동항으로 되돌아와 출항시간을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서 배에 오른다. 배는 비행기보다도 오히려 더 자리가 넓고, 편안 하다. 심지어는 안에 근사한 매점도 갖추고 있다. 카페처럼 스탠드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며, 일행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비록 호화 여객선은 아니지만 이 얼마나 호사(豪奢)스런 여행인가? 비록 업무 때문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녀본 내 눈에도, 이만하면 다른 선진 관광국(先進 觀光國)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녹동항을 출발하고 나서 한 시간 남짓 지나면 망망대해 저 멀리로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後) 거문도에 도착한다.’는 안내멘트와 함께 선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머나먼 남쪽나라, 아름답기로 소문난 거문도에 닿게 되는 것이다. 속도를 줄인 쾌속선은 섬과 섬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거문항으로 들어선다. 거문항은 ‘우묵배미(땅의 한 부분이 움푹 들어간 형태) 항구’다. 항구의 내수면(內水面)을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이 어깨동무를 하고 ‘ㄷ자’를 만들어 놓고 있다. ‘ㄷ자’의 터진 부분이 병(甁) 모가지처럼 좁기 때문에, 거센 파도도 항구 안으로 넘어들지 못한다. 내수면은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다.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 파도가 3개 섬의 등을 죽어라 두들기며 분풀이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 거문항은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늑하고 포근한 1백만 평 정도의 천연적 자연항만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호수를 닮은 곳을 ‘도내해(島內海=灣內)’라고 부른다, 깃을 세운 파도도, 내항에만 들어서면 숨을 죽일 만큼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 등 열강(列强)들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 거문도 : 여수와 제주도 중간지점에 위치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 섬으로 서도와 동도, 그리고 고도 등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이름은 삼도, 삼산도, 거마도등 이었으나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가 많다는 뜻을 지닌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건의해서 거문도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국 최초 여기자와 초대공학박사, 제2대 해군참모총장, 울릉도 초대 도감 등이 거문도 출신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거문도가 전국 최고의 학력수준을 보였었단다.).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가운데에 있는 항만이 마치 호수처럼 보일 정도로 물결이 항상 잔잔하다.
* 巨門島라는 이름을 낳게 한 귤은(橘隱)선생은 퇴계, 율곡 등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추앙되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밑에서 수학 했으나 출사 하지는 않았다. 그는 평생 동안 고향 거문도와 청산도 등지에서 제자를 길러내며 야인으로 살았다. 문집으로 귤은재집(橘隱齋集)을 남겼고, 그 속의 <해상기문>에 러시아의 문서를 기록으로 남겼다. 1854년 4월, 푸차틴 제독이 이끄는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기항했을 때, 유학자 귤은(橘隱) 김류(金瀏)선생은 만회(晩悔) 김양록(金陽錄)과 함께, 러시아의 함선에 올라 필담을 나누고 '해상기문'(海上奇聞)을 남겼다. 당시 푸차틴 제독은 귤은 등에게 통상 문서를 건네며 조선 정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철저한 쇄국 정책을 견지 하고 있었던 까닭에 문서는 전달되지 못했다.
▼ 거문항에 내려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길을 나선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거문도 등대’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오늘 같이 날씨가 화창한 날에나 만날 수 있는, 일몰에 대한 기대감도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거문도등대는 東島와 西島, 그리고 고도로 구성되어 있는 거문도의 세 개 섬 중에서 서도에 위치하고 있다. 고도의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서 삼호교를 건너면 西島이다. 이곳 서도는 대한민국 초창기 해군 육성에 크게 공헌했던 故 박옥규 제독이 태어난 곳이다.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다는 미명(美名)하에 거문도를 무단점령 했던 곳에서, 대한민국 제2대 해군참모총장이 나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다. 그나저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큰 자랑거리였으리라.
▼ 삼호교를 지나서 ‘거문도 등대’ 방향으로 걸으면 얼마 안 있어 유림해수욕장이 보인다. 도로(道路)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白沙場) 사이는 시멘트계단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샤워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도로의 오른편에 설치되어 있다. 유림해수욕장을 지나 1.5Km정도를 더 들어가면 서도의 끄트머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등대가 있는 수월산은 '무넹이'로 이어진다. '무넹이는' 좁고, 낮고, 위태롭다. 태풍이나 해일 때면 바닷물이 넘나든다 해서 '무넹이'란다. 무넹이는 물넘이의 이곳 사투리란다. 여기서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상록수 숲은 거문도 도보 여행의 백미다.
* 유림해수욕장 : 유루우미(파도가 밀려오다)라는 일본인에 의해 유래한 지명으로 전해오며, 완만하고 깨끗한 사질(紗質)과 투명한 물빛은 여태껏 익사자가 없기로 유명하다.
▼ 거문도 등대로 오르는 약1.5㎞의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터널로 꼽힌다. 나무 계단이었다가, 바닥에 돌을 깐 길이 되었다가, 이내 흙길이 된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은 걷는 재미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매력에 이끌려 이곳을 찾고 있으며, 이 길을 밟으며 영감을 충전해 가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길은 숲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 같다. 우거진 수풀을 뚫고 햇살이 고개를 내밀려고 애를 쓴다. 천연림(天然林)이 내뿜는 산소는 일반 수목원보다 2배나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 풍부한 산소량에도 불구하고, 길은 경사(傾斜)가 완만하다. 등대에 다다를 때까지 숨도 가쁘지 않을 뿐더러, 발걸음도 가볍기만 하다. 이 길은 양 옆으로 빽빽이 들어찬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는 겨울이 더 장관이라고 한다.
▼ 무넹이에서 대략 20분 정도를 걸으면 등대가 보인다. 거문도등대는 수월산(수월산의 ‘수월(水越)’은 ‘파도가 뭍을 타고 넘는다’는 뜻이다. 곧 이곳사람들이 말하는 ‘목넘이’의 한자어다) 정상 바로 아래에 우뚝 서 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우람하게 서있는 등대와 잔디가 고운 별장 같은 관사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절벽 위 관백정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가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거문도 등대 : 인천 팔미도에 이어서 국내에서 2번째로 세워졌으며(1905년), 규모는 동양최대란다. 동지나해를 드나드는 어선들의 뱃길을 안내하는데, 등대의 불빛은 40㎞가 넘는 곳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거문도 등대로 가는 산책길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사방으로 트여 있다. 등산로 옆으로 파도가 넘실대며 밀려오고 있다.
▼ 멀리 백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관백정(觀白亭)에 올라서면, 태평양과 이어지는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쪽빛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어디에서 저 짙푸른 색이 나오는 것일까? 시리도록 푸른빛에 세속(世俗)에 찌든 내 마음을 씻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남해 먼 바다에 있는 이곳 선경(仙境)을 떠날 때에는 기쁨으로 충만한 새로운 가슴으로 바꾸어 떠났으면 좋겠다. 쪽빛 날카로움에 내 묵은 마음을 다쳤건만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설레이는 내 마음은 조금도 쓰라리지 않다.
▼ 수월산의 까마득한 절벽(絶壁) 위에서 저녁노을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가 저녁노을에 물들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뚝 솟은 등대에게로 저녁노을이 옮겨가고 있다. 바다와 등대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태양이 西島의 봉우리에 걸려버린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바다를 기대했던 마음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적색 구름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주변의 사물들은 어느새 암청색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관을 나선다. 백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전에 근처에 있는 영국군의 묘역(墓域)인 ‘해밀턴 파크’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영국군묘역은 선착장으로 나가는 도로에서 바다 반대편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입구에 이정표가 있으니 찾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골목길로 들어서서 약 1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묘역으로 가는 길의 주변에 쓰려져가는 폐가(廢家)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이곳 거문도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섬을 떠난 모양이다. 길 주위엔 말쑥하게 자란 쑥밭 천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 쑥이라 품질도 으뜸이란다. 보통 쑥으로만 한 해 500만 원씩 소득을 올린다니, 아예 쑥밭이 金밭이 된 셈이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유럽에 있어서일까? 묘역은 대체로 서구풍(西歐風)으로 꾸며져 있다.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묘비가 거문도의 아름다움 풍광과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 해밀턴 파크 : 1885년 러시아의 남하정책(南下政策)을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해군이 이곳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거한 일이 있었다. 당시 9명의 주둔군 수병이 사망하였는데, 이중 3구의 시신을 이곳에 매장한바 있다. 영국에서는 당시 주둔군 제독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수시에서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이 묘역(墓域)을 "해밀턴 파크"라 명칭화(名稱化)하여 묘역을 조성해 놓았다.
▼ 백도에 돌아와 숙소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불탄봉 산행을 나선다. 어깨에 배낭이 짊어져 있음은, 육지로 나가는 배의 출항시간에 쫓겨 혹시라도 산행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서이다. 산행의 출발은 어제 답사했던 ‘거문도 등대’와 같다. 다만 삼호교를 건넌 후에, 어제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삼호교를 건너자마자 녹산등대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왼편의 산릉(山稜)이 녹산등대에서 불탄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인줄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야 능선에 닿을 수 있는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진입로 표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올라서면 됩니다.’ ‘사람들이 이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길을 찾기도 어렵고, 오르기도 힘들 것이니, 되돌아가 정규등산로로 올라가세요.’ 이곳 주민 두 분의 답변이 서로 다르니 문제다. 고민 끝에 내 직감(直感)을 믿기로 하고, 왼편 언덕위에 보이는 ‘방송국 송신탑’을 기준으로 삼은 후, 무작정 왼편 골목길로 들어선다. 내 선택이 옳은 줄은 송신탑 근처에서 만난 산행대장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 KBS 송신탑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이내 능선 안부 삼거리에 닿는다. 등산로 주변에는 불에 탄 흔적이 있는 나무들이 보이고 있다. 불탄봉은 이곳 능선 안부에서 왼편으로 600m만 더 걸으면 된다.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녹산곶 등대‘가 나올 테지만 등산로는 ’등산로가 아니니 출입을 금(禁)한다‘는 팻말로 막아놓고 있다.
▼ 불탄봉으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동백나무 숲으로 덮여있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동백나무들이 등산로를 어두운 터널로 만들어내고 있다. 터널을 벗어나면 이내 신선바위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와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왼편으로 짧게 오르면 이내 불탄봉 정상이다.
▼ ‘불이 자주 나는 산’이라는 뜻의 불탄봉의 정상은 널따란 분지(盆地), 가운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 대구의 김문암씨가 사비(私費)로 만들어 놓은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정상에 서면 초록 융단처럼 펼쳐지는 동백 숲 너머로 고도와 동도, 초도, 손죽도, 백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징검다리처럼 이어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 불탄봉 정상에서 신선바위 방향으로 걷다보면 등산로 왼편에 고사목(枯死木)들이 보인다. 연녹색 담쟁이 넝쿨을 뒤집어쓰고 있는 수십 그루의 고사목들이, 감색 바다를 등지고 이색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불탄봉의 지명(地名)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여러 번에 걸쳐 山불이 났을 것이다. 그 때 타고 남은 잔해(殘骸)위에 세월이라는 이끼가 돋아나, 저러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음이려니...
▼ 고사목 지대를 벗어난 능선은, 꽤 긴 구간에 걸쳐 나무 한그루가 없는 초원으로 변한다. 능선에는 쑥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꼭 여기뿐만 아니라 거제도 전체가 쑥으로 들러 쌓인 듯, 진한 쑥 향을 내뿜고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집사람 손길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쑥떡을 만들어 주려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 발아래는 거문도의 내수면이 푸르게 빛나고, 오른편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있다.
* 거문도 쑥은 해풍을 맞고 자라 향이 강하고 품질이 뛰어나 비싼 값에 팔리는 특산물이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거문도의 많은 밭들이 채소 대신에 쑥으로 가득 차 있다.
▼ 쑥을 뜯으며 한가로이 걷다보면, 어느새 능선은 동백나무 숲으로 뒤바뀌어 있다. 잠시 동안이나마 초원에 자리를 내 주었던 게 못내 아쉬웠던지, 동백나무 숲은 울창하다 못해 차라리 어두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문도를 동백나무의 천국이라고 부르나 보다. 어두컴컴했던 동백 터널이 훤하게 열릴 즈음, 밝은 햇살아래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보로봉이다. 가장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보로봉에 서면, 거문도가 한눈에 펼쳐지고,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어 자연 전망대 구실을 한다. 보로봉의 서쪽 사면(斜面)은 수백 길 절벽, 발아래에는 망망대해에서 밀려온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 거문도 전역이 동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시피 하지만, 특히 보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정상을 지나 신선바위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동백터널이다. 동백나무로 가득 찬 울창한 숲은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무들이 길 쪽으로 고개를 숙여 자연스럽게 터널이 만들어졌다. 이곳을 동백꽃으로 수놓는 계절에 찾아왔더라면, 아마 이 길은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보였을 것이다.
*『‘툭’. 꽃이 떨어졌다. 멍든 곳 하나 없이 붉은 이파리 그대로다. 채 시들기도 전에 작정한 듯 훌쩍 뛰어내린다. 말리고 싶다.』 절정에서 추락하는 동백을 보고 소설가 김훈은 ‘백제가 멸망하듯’이라고 표현했다. 필 때보다 질 때가 더욱 아름답다는 동백꽃이 얼마나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웠으면, 떨어지는 동백꽃잎에 ‘비장(悲壯)’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
* 동백나무숲 군락지 : 동백(冬栢) 은 겨울에 피어나야 진정한 동백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천연(天然) 밀림(密林)으로, 이곳에 서식하는 360여종의 아열대식물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단다. 매년 10월말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지천이 붉은빛으로 가득하다는데, 지금은 5월하고도 중순... 선답자(先踏者)들이 남긴 빛바랜 사진들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 보로봉에서부터 등산로는 바윗길로 바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등산로 바닥을 납작한 돌(乭)로 정교하게 깔아 놓았다. 바윗길을 얼마동안 걸어 내려오면 돌을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이 정교하게 쌓아 놓은 건물 터가 보인다. 꽤 넓은 것을 보면 이곳이 ‘기와집 몰랑?’ 그러나 아닐 것이다. ‘몰랑’이 산마루를 뜻하는 남도의 사투리일지니, ‘기와집 몰랑’은 당연히 기와집처럼 생긴 산마루를 일컬을 것이니 말이다. 건물터에서 바라보면 신선바위 방향에 기와집의 처마처럼 생긴 절벽이 보이는데, 어쩜 저 절벽을 보고 ‘기와집 몰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쑥 뜯는데 제미를 붙인 집사람은 이곳에서 하산시키고 난 부지런히 신선바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 건물터를 지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오른편에 수백 길의 수직절벽(垂直絶壁)을 끼고 이어진다. 저만큼 절벽아래에, 원색차림의 낚시꾼 모습이 개미새끼처럼 조그맣게 점점이 박혀있다. 아마 이 부근이 ‘낚시 포인트’인가 보다. 남해의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7~8기의 돌탑이 보이고, 조금 더 걸으면 오른편에 우람하게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신선바위이다.
▼ 신선(神仙)바위, 쪽빛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위치한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겼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란다. 어렵게 바위를 부여잡고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정상은 의외로 넓다. 바둑뿐만이 아니라 수십 명의 신선들이 풍류를 즐기고도 남을 만큼 널따랗다.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방향으로 하얀 바위능선이 마치 용의 꼬리처럼 흐르고 있고, 그 끄트머리에 ‘거제도 등대’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아득한 절벽 아래에는, 바위에 부딪쳐 생기는 새하얀 거품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신선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되돌린다. 발아래에는 하늘을 닮았다는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다른 파란 색의 정수가 발아래에 있다. 그 파란색의 정수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문득 ‘하얀 포말에서 머리를 베었더니 하얀 피가 나왔다’는 어느 일화가 떠오른다. 자신을 바위에 부딪쳐가며 순백색의 하얀 색을 만들어내는 파도, 그렇게 자신을 정화시키는가 보다. 능선 안부로 되돌아와 거문항 방향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또다시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산이야기(전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르다 못해 검어버린 바닷물 흑산도와 칠락산('11.10.29) (0) | 2011.11.01 |
---|---|
어머니의 산에서 만난 억새꽃 잔지, 지리산 만복대('11.10.15) (0) | 2011.10.18 |
쪽빛 바다위에 바위들이 만들어 낸 마법의 성, 백도('11.5.14-15) (0) | 2011.05.19 |
심청이 마을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곤방산-천덕산('11.5.12) (0) | 2011.05.14 |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천상화원, 초암산-방장산('11.5.1) (0) | 2011.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