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덕분에 강남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쩌다보니 오늘은 나 또한 친구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본다.
"야, 여기 삼성동 니가 자주 가는 음식점인데 빨리 나온나"
"이시간에 무슨 음식점?"
"얌마 술마시자는게 아니고 차를 가져가야하는데 술이 취해서 그러니 차좀 운전해주라"
"내일 아침에 가져가면 될거아냐?"
"내일아침 일찍 쓸일이 있어 그러니까, 빨랑 결정해~"
어쭈구리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일쎄?
어제저녁 열두시가 다된 시간...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는데 갑자기 친구의 호출이다
동료 교수들과의 회식에서 술을 많이 마셔 운전을 못하겠으니 대리운전 해달란다.
이게 왜 남의 서방한테 대리운전까지 명령하고 난리누?
귀찮은 마음에 내일아침 찾아가라고 해봤지만,
오늘 이른 아침에 제자들과 지방 탐사나가야 한다나?
그런 여자가 술은 왜 많이 마셔가지구 남까지 피곤하게 하누?
허지만, 두고두고 씹힐 일이 걱정되어
부랴부랴 택시로 도착하니 흐트러진 모습이 꽤나 가관이다.
하여튼 처녀혼자 사는 집에
흐트러진 여자 부축해서 들어가면 주위사람들에게 눈치보일까봐 우리 집으로 호송,
집에 들어오자 마자 내 침대로 직행해버리는게, 인사하는 우리 애들도 안보이는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그리도 잘 챙기더니만...
나에게는 이때부터가 문제다.
잠이야 거실 현관에서 자면 그만이지만, 입은 채로 쓰러진 그녀의 옷을 벗겨줘 말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시트만 덮어주고 거실로 나와버린다.
옷이야 구겨지면 세탁소 보내면 되지만, 아침에 볼 의심의 눈초리는 끔찍하니까
거실에서 불편한 잠을 청했더니 설잠 탓에 눈을 뜨니 여섯시가 채 안됐다.
이왕에 일어난김에 술국으로 북어국을 준비해본다.
술 좋아하던 애들 엄마 내가 끓여주는 북어국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보글거리는 국물 한입 맛보며 와이프 얼굴을 떠올리는건 북어국이 너무 맛있어선가?
둘이만 앉을 식탁이 쓸쓸할 것 같아 아이들까지 깨워 둘러앉은 아침 식탁은
완존히 옛날 우리집이다, 다만 아내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이모 주말에 데이트 약속 없으면 우리랑 놀러가자"
이 짜슥들이 내가 가자고 하면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내빼더니만
친구보고 놀러가자고 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성을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얌마들아 미안하지만 너희들과 놀시간 없단다.
오피스텔에 가서 짐 챙겨 출발해야 한다는 친구를 현관에서 배웅하고 돌아서니
둘째가 메모함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고 보니 요사이 퇴근이 항상 늦어서 애들과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난 벽에 걸린 메모함에서 애들의 意見을 꺼낸다.
"아빠, 내일은 학교 안나가니 혼자 가시옵소서"
달리 할 일도 없어 곧바로 출근해보니 여덟시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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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걱정거리가 해소되는 안도의 한숨소리다.
어제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미안함이 가신 탓인지 무더움 속에서도 아침하늘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늘 둘째가 학교에서 2박3일 일정으로 현장체험 가는 날이라고 김밥을 쌓아달라고 하는데, 다른건 다 해줄 수 있지만 김밥은 사실 말지를 모른다.
어제 저녁내내 애를 달래어 김밥대신 햄버거와 음료수로 대체시켜 주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의 부탁을 못들어주는 미안함에 가슴이 아팠던게 사실이다.
아침일찍 둘째와 이것 저것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불쑥 찾아온 친구가 보퉁이 하나를 내밀고는 아침 강의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가버린다.
부랴부랴 보퉁이를 풀어보니 배추 절이김치, 총각김치, 소고기조림 등 다양하게도 들어있다.
마침 김치가 다 떨어져 오늘쯤 킴스에 다녀오려 했는데 어찌그리 남의 사정을 잘알고 챙겨왔을까? 이제 이삼주일은 반찬걱정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것 같다.
거기다 나를 더욱 즐겁게 한건 김밥이 곱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잘 다녀오라는 메모와 함께...
"얌마~~너"
"그래요. 이모에게 내가 전화했어요. 다른애들은 다 김밥 싸오는데 나만 햄버거 갖고 가기가 뭐해서요"
둘째에게 눈을 흘기는데 말 끝나기도 전에 자기방으로 휭하니 들어가며 하는 말이다.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대모산만 바라보다 아이방을 찾는다.
"그래 잘했다. 내가 먼저 부탁해서라도 챙겨주었어야 하는건데 미안하다. 햄버거가 정 싫으면 어제저녁에 얘기하지 그랬냐?"
"아빠 미안해요. 참아보려 했는데 갑자기 이모가 생각나서 그냥 한번 전화해봤는데 부탁을 들어주더군요"
아이가 원한것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 휭하니 찬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다.
찌부둥한 기분속에서도 친구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껴본다.
역시 나는 친구하나는 끝내주게 잘 두었나보다. 이런 친구를 나의 곁에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 본다.
덕분에 아침을 내가 좋아하는 밥대신 햄버거에 우유로 때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아침식사라면 날마다 햄버로 때워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출근길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왜이리 아름답게만 보이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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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도 더 지난 옛글이 눈에 띄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집에서 머물고 간 날 아침에...
싸디싼 도야지 껍데기집이었지만 내 이웃들의 삶이 있어 좋았고,
비록 맑지 않은 음질이지만 애써 들러주는 축가가 있어 좋았던 호프집...
어렵게 선물한 진주목걸이가 잘 어울린다는
함께하는 이들의 축복에 수줍은 미소로 답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있어 행복한 나,
이 행복, 천년만년 고이 간직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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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 님의 글입니다.
저를 향한 당신의 마음이라며
아침일찍 보내 주신 그녀의 생일이 내일이랍니다.
사무실로 꽃바구니 보내 드리는 거야 연례행사이니 이미 주문을 끝냈고,
지금은 오늘 저녁 모임 때 드릴 선물을 고르고 있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군요.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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