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걱정거리가 해소되는 안도의 한숨소리다.

 

어제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미안함이 가신 탓인지 무더움 속에서도 아침하늘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늘 둘째가 학교에서 2박3일 일정으로 현장체험 가는 날이라고 김밥을 쌓아달라고 하는데, 다른건 다 해줄 수 있지만 김밥은 사실 말지를 모른다.

 

어제 저녁내내 애를 달래어 김밥대신 햄버거와 음료수로 대체시켜 주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의 부탁을 못들어주는 미안함에 가슴이 아팠던게 사실이다.

 

아침일찍 둘째와 이것 저것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불쑥 찾아온 친구가 보퉁이 하나를 내밀고는 아침 강의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가버린다.

 

부랴부랴 보퉁이를 풀어보니 배추 절이김치, 총각김치, 소고기조림 등 다양하게도 들어있다.
마침 김치가 다 떨어져 오늘쯤 킴스에 다녀오려 했는데 어찌그리 남의 사정을 잘알고 챙겨왔을까? 이제 이삼주일은 반찬걱정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것 같다.

 

거기다 나를 더욱 즐겁게 한건 김밥이 곱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잘 다녀오라는 메모와 함께...


"얌마~~너"
"그래요. 이모에게 내가 전화했어요. 다른애들은 다 김밥 싸오는데 나만 햄버거 갖고 가기가 뭐해서요"
둘째에게 눈을 흘기는데 말 끝나기도 전에 자기방으로 휭하니 들어가며 하는 말이다.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대모산만 바라보다 아이방을 찾는다.

 

"그래 잘했다. 내가 먼저 부탁해서라도 챙겨주었어야 하는건데 미안하다. 햄버거가 정 싫으면 어제저녁에 얘기하지 그랬냐?"
"아빠 미안해요. 참아보려 했는데 갑자기 이모가 생각나서 그냥 한번 전화해봤는데 부탁을 들어주더군요"

 

아이가 원한것을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가슴 저 밑바닥에서 휭하니 찬바람이 불어오는 기분이다.

찌부둥한 기분속에서도 친구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껴본다.

역시 나는 친구하나는 끝내주게 잘 두었나보다. 이런 친구를 나의 곁에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 본다.

 

덕분에 아침을 내가 좋아하는 밥대신 햄버거에 우유로 때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아침식사라면 날마다 햄버로 때워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출근길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왜이리 아름답게만 보이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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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도 더 지난 옛글이 눈에 띄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집에서 머물고 간 날 아침에...

 

싸디싼 도야지 껍데기집이었지만 내 이웃들의 삶이 있어 좋았고,

비록 맑지 않은 음질이지만 애써 들러주는 축가가 있어 좋았던 호프집...

 

어렵게 선물한 진주목걸이가 잘 어울린다는

함께하는 이들의 축복에 수줍은 미소로 답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있어 행복한 나,

이 행복, 천년만년 고이 간직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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