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花信

2004. 4. 9. 08:57

오후 내내 얼굴에 기쁜 내색을 지울 수 없었는지
직원들로부터 무슨 좋은 일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아무렴 좋아하는 분으로부터 반가운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도 부산의 동백꽃잎으로 마든 카드에 꽃 향을 가득 담아
 
95년 지방에 있는 기관의 책임자로 잠깐동안 근무할 때
그분을 처음 뵈었으니 우리가 알게된지도 벌써 8년이 흘렀다.
꽃향속에서 처음 만났고, 꽃향이 그리울 때
그분으로부터 꽃소식을 받은걸 보니 나와는 꽤나 인연이 깊나보다.


그분을 처음 뵌 것은 4월의 어느 나른한 봄날 오후...
따스한 봄기운 탓인지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창문을 열고
바람결에 실려온 벚꽃 향으로 기분을 전환하고 있는데
(그 도시는 꽃 이름의 축제가 열릴 정도로 벚꽃이 유명한 도시고
내가 근무하던 청사가 꽃의 한복판에 위치한 덕분에,
축제기간 내내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도로나, 청사 안에 있는 공원을
빌려달라는 민원 때문에 골치를 썩힐 정도로 꽃속에 묻힌 곳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왠 아담하고 예쁘장한 수녀님 한분이 들어오셨다.

 

공업단지에서 선교행사(종교서적을 판매하는 등의 행사)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신 수녀님은 사무실 분위기에 낯설은지 꽤나 어려워하는 눈치인데,
마침 내가 믿는 종교가 천주교고 하시려는 사업도 좋은 것 같아
행사기간 동안 조그만 편의를 보아 드린 일이 있었다.

 

항시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바로 발령이 났기에 금방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내시는지 매년 부서를 옮기는데도 성탄때만 되면
예쁜 다이어리 몇권과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는 엽서를 보내주셨다.
해외선교를 하시는 중에도 빠뜨리지 않고...

거기에 비해 나는 해외선교를 위한 자료를 얻으러 찾아오신 수녀님을
회의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직원을 통해 자료만 전달했을 뿐인데...

 

그 수녀님이 올 1월말에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고
부임지가 용두산공원 근처에 있어 매일 공원에서 운동을 하신단다.

용두산 공원에 동백꽃이 많이 피어있는지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혼자보기 아깝다 하시며
그 꽃잎으로 예쁜 카드를 만들어 부산의 꽃소식을 전해주신 것이다.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비는 축원과 함께...

 

"이러한 정성이 담긴 편지 받아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것도 하느님이 보장하는 처녀로부터!"
오후 내내 직원들에게 카드를 보여주며 자랑한 말이다

 

요사이 카페에 들러보면 온통 꽃소식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는데
나도 드디어 남쪽나라의 꽃내음을 직접 맡았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 손가?
그러니 싱글벙글 할 수 밖에

 

귀한 엽서 서랍속 깊이 넣어두고 오래도록 곱게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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