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오늘의 일과 끝
나를 생각코 찾아와 주었겠지만 한꺼번에 몰려온 덕분에 번거롭고 짜증스럽기도 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다들 돌아가고 나니 주위의 썰렁함에 조금은 외롭다. 애들이 돌아오면 괜찮아지겠지.
오늘은 병원에 들러야 하는 날. 하지만 집안식구들이 찾아온다니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 수 밖에 없는 날이다. 오늘을 대비하여 찬장과 냉장고는 어제 깨끗히 청소해 놓았고, 오늘은 레인지와 집안 청소만 하면 된다.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땀이 목의 상처부위로 흘러들까 봐 조심스럽다. 왜 굳이 찾아온다고 하여 사람을 고생시키는 건지 원...
그냥 두면 찾아오는 어머님이나 여동생이 해 줄 것을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와이프 때문이다. 집안의 거의 모든 구성원은 집사람을 많이도 싫어하고,. 특히 여동생은 밥먹듯이 헤어지라고 종용할 정도이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생을 나무라지 않는 부모님도 반동의하고 계시다는 증거일 게다. 하긴 우리 부모님과 여동생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공부 더한다고 멀쩡한 남편과 자식을 놔두고 떠난 내 집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게 정상일 거다.
이번에 입원도 모두다 집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난리들인데, 집에 찾아와 구질구질한 꼴을 보면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어제부터 미리미리 청소를 하여왔고 그 마무리를 오늘 아침에 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집사람을 향한 나의 조그마한 정성과 사랑을 집사람은 짐작이나 할런지 모르겠다.
10시에 예약이 되어있기에 서서히 걸어서 병원으로 향한다. 아침공기는 상쾌하더니만 비가 내리는 탓인지 후덥지근한게 별로다.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를 걷는데도 땀이 흐르니 말이다.
다행이 예약되어 있기에 기다림 없이 곧바로 진찰을 받을 수 있다. 담당의사가 수술을 집도했고 그동안 늘 관심을 갖고 회복의 진도를 관찰하던 의사분이다.
모든게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단다, 아물지 않은 목부위를 응급조치후 일주일 후를 기약하고 병원문을 나서는데 웬지 상쾌한 기분이 드는건 회복속도가 정상이라는 의사의 말 때문일까?
집에 돌아오니 이미 부모님은 도착해 계시고 여동생과 작은 아버님댁 식구들은 오고 있는 중이란다. 역시 내가 미리미리 준비했던게 효과를 본다. 식구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다 둘러보고난 뒤에도 아무말이 없다. 단지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땡땡이치는 여동생의 불만에 찬 목소리 "어이그, 이러고 사니 여자가 맘놓고 집을 떠나지... 아무것도 못해야 혹여 굶어 죽을까봐 떠날 생각을 못할거 아냐?"
그래도 깨끗이 해놓길 잘했지, 조금만 어질러 졌어봐라 세상에 둘도 없는 "모진女!"라고 길길이 뛰다 못해 나중에는 결심해라로 진전했을걸... 안봐도 안다 알어!!
하여튼 국수 한뭉치를 다 삶아서 어머님이 준비해 오신 콩국물에 말아 먹는데, 오랫만에 먹어보는 별미의 맛은 둘째치고 시원함이 먼저 와 닿는걸 보니 여름이 오기는 왔나 보다.
식후에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 죽이는데 대부분이 내 건강이야기이고 그러다보니 집사람 주위를 맴돌다 끝끝내 집사람 흉으로 귀결..., 그런데 이상한 건 처음에는 집사람 흉보는 것도 들을만하고 또 같이 박자도 맞춰주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옹호로 변하게 되고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집사람을 대변하게 되는 것은 집사람에 대한 내 사랑의 발로일까?
그래도 다행이 가족들간의 대화이고, 그러다 보니 모든 대화가 서로의 위함을 주재로 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이 넘치는 귀결을 맺는다.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건 또 혼자서 애들 뒷바라지하며 고생할 나를 생각하는 가족들의 염려탓일거다. 그러나 "염려 놓으시옵소서, 저는 하루하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또 보내고 있으니 모든 일이 만사형통일 것이옵니다."
사랑의 마음도 애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아픈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들어 두고두고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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