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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계룡산 산행기

2005. 12. 1. 14:51

옷장 정리를 해보셨나요?
언제쩍 입던 것들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옷가지들이 첩첩이 쌓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버리자니 영 마음이 안내킵니다.


두번 다시 입을 일도, 또다시 옷장 정리를 하며 마음만 쓰일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속에 묻어있는 추억 때문일까요? 추억속에 숨겨있는 놓치고 싶지 않은 사연 때문일까요?


매서운 겨울이 가버렸습니다.
한동안 겨울다운 추위가 왔다 했더니만 어느새 바람은 매운기를 벗어버렷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옷장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내 가슴속 겨울을 버리려 산을 찾았습니다.


설경이 아니더라도 겨울산의 정취는 적막함 그리고 아늑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찾은 한밭골의 주산은 번잡 그 자체였습니다. 곳곳에 늘어서 사람들의 행렬...
그나마 내 좋아하는 사람들 곁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욕께나 했겠지요.


29인승 버스에 15명이니 영리산악회라도 적자는 아닙니다.
매표소에서 안내판을 보면 그 꿈은 무참히 깨져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3,200원이 누구네 집 애 이름이나요? 그중 절반이 넘는 돈은 문화재관람료라는군요.
동학사, 갑사의 관람료인 셈인데 저는 사찰 구경은 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무조건 받습니다.
항상 공짜로 다니다가 뒷문을 몰라 입장료 다 내니 아깝다는 생각에 목이 매입니다.


동학사를 지나자 마자 얼음길이 어서오라 우릴 반깁니다.
원래부터 아이젠을 싫어하는 전 맨몸으로 버텨보지만 결국엔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50미터도 채 못가서 다시 벗습니다. 양지쪽 너덜길엔 아이젠이 극약이니까요.
우~쒸~ 누구 약 올리는 기야? 뭐야? 그리곤 산행 내내 아이젠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어리석은 사나이 헛된 배짱 때문에 온몸으로 얼음과 싸워야 했지만, 그게 나인 바에야....


관음봉으로 오르는 길은 깔딱고개, 급경사라 앞사람 엉덩이에 코가 닿을 지경입니다.
거친 콧김을 내품으며 베 모양을 떠올려봅니다. 울 주인장나리는 얼마나 힘들어할까요?
호흡도 고를겸 발길을 멈춘 은선폭포 전망대에서 에너지 보충용으로 소주 한병 꺼내듭니다.


건너편엔 겨울가뭄에 말라버린 은선폭포가 있읍니다.
말라버린 폭포는 일면 초라해 보이나 봄이 오면 우렁찬 모습을 또 다시 보여주겠지요.
물이 넘치는 폭포를 그리며 기울이는 소주잔, 캬~ 분위기 끝내줍니다.


라면냄새가 구수한 은선산장을 지나니 또다시 빙판길이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한참을 오름짓 하니 능선인데 관음봉고개 이정표가 있읍니다.
왼쪽으로 통신시설을 머리에 인 천황봉인데 가면 안된다는군요. 출입금지구역이라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더 오르니 관음봉입니다.
정상엔 제법 그럴싸한 정자도 있군요. 많은 사람들이 쉬며 먹으며 즐거운 표정들입니다.
천황봉이 막힌 후론 관음봉이 정상이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카메라 앞에서 폼잡는 이쁘니... 살짝 얼굴 내밀어 나두 한 장 찰칵해 봅니다.


관음봉에서 급하게 내려꽂힌 사다리를 내려와 문뜩 고개를 드니
삼불봉으로 날카롭게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계룡산은 봉우리 이름들이 불교분위깁니다. 삼불봉, 관음봉, 등등


이름에 걸맞게 오밀조밀한 암릉과 오르내림이 심한 봉우리들이 닭 벼슬처럼 생겼습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 사이의 능선은 자연성능...오르내림이 많지만 천연의 산성 모습입니다.
東高西抵인 강원도의 대간 구간이 문득 떠오름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쾌청한 날씨에 대전 시가지의 성냥곽같은 아파트 단지가 눈앞까지 다가옵니다.
자연성능은 오른편에 낭떠러지를 두르고 왼편으론 경사가 심하게 비탈져있습니다.


앞서가던 분이 점심 먹을 만한 장소를 찾았다고 목청 높여 으시대고 있네요.
'그냥 넘기기는 아쉬운데...' 진한 사투리 충청도아저씨의 우스개는 결코 우습지 않습니다.
절반 앉고 절반은 서서 먹을 수 밖에 없는 비좁고 비탈진 공터지만 점심상은 풍요롭습니다.


'40대의 풍요로움' 40대는 몇 명 되지도 않은데 왜이리 풍요로울까요?
흰밥만은 외롭다 오곡밥도 나오고, 산꼭대기에 국까지 공수되고, 와~ 카레까지 이어집니다.
'웬 초장?' 깔판에 엎지른 초장에 놀라다가, 쭈꾸미와 드릅에 벌린 입들을 다물지 못합니다.
과일후식에 커피까지 느긋이 해치우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아~ 하나 빼뜨렸네요. 산중의 일미인 라면... 모처럼 큰 배낭을 맨 운영자의 작품입니다.


또다시 오르락내리락 빙판길을 걷습니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아이젠은 사양합니다.
불쑥불쑥 솟아오른 암봉들과 양쪽 낭떠러지 사이로 좁게 난 등산로며 바위 속으로
뿌리를 뻗고 괴목으로 자라나는 소나무들과 함께 걷는 능선길은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응달진 곳의 찬바람이 제법 춥지만 웅크리지 못함은 빙판길 발걸음이 조심스럽기 때문이지요.


삼불봉을 바라보는 삼거리에서 다들 하산하고, 몇 명만이 삼불봉의 철계단을 오릅니다.
하산한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려 속도를 내어봅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불평...힘들다나요?
두세평 정도 바위봉우리 정상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네요. 삼불봉이 풍수상 주봉이랍니다.
멀리 대전과 주변의 산과 산자락에 들어앉은 작은 집들이 눈앞에 잡힙니다.


금잔디 능선의 쉼터에서 앞서간 탈출자들을 만납니다.
금방 쫒아온 게 못마땅한지 베모양 때문에 늦었다며 다른사람들이 입술을 삐쭉이는군요.
어느 분이 준비해온 양주와 햄으로 목을 축이고 부지런히 갈길을 재촉합니다.
엉덩방아를 찢는 사람들을 보고 미소 두어번 짓다 보니 어느새 갑사입니다.


갑사앞 거북이 입에서 물 한모금 보시 받고, 절 기웃거리다 기절할 번 했네요.
느긋이 후미를 기다리다 안내판 앞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스님이 나오잖아요?
깜짝 놀라 뜰로 뛰어 내릴 수 밖에요. 우~쒸~ 나쁜 스님!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구...
경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종과 목판, 당간 등 보물이 몇점 보이는군요. 주위 경관도 좋구요.
동학사에 1.500원 갑사 500원 준다고 했던 입장료를 아무래도 뒤집어 분배해야할 것 같습니다.


불심을 모르는 저는 산에 다닌 이후로는 절 구경은 거의 한 기억이 없읍니다.
신앙도 없고 특별히 구경할 거리도 없어서인데, 오늘은 모처럼 한가하게 둘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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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재약산행기

2005. 12. 1. 14:49

오랜만의 산행...
참으로 오랜만의 산행다운 산행이었습니다.
올 봄(3.20)에 사고를 당했으니, 장장 6개월여를 애타게 그리던 산행이었지요.
그러나 부푼 가슴 한켠에는 제 체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산에 대한 두려움이 차곡차곡...
‘초심으로 돌아가자!’ ‘중도 탈출을 수치로 여기지 말자!’


산행을 시작한 이래...
백두대간, 한북정맥, 특히 10시간이 넘는 힘든 장거리 산행을 나설 때마다
산행에 대한 두려움이 미리 신체를 접수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출발 당일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화장실에 앉아있어도 생리작용이 불가능...
배는 더부룩한데도 일을 보지 못하는 거북함... 산행내내 길섶을 기웃거릴 수 밖에...
그러나, 신통방통하게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언제 배속이 거북했느냐는 듯이 말짱했지요.


6개월여를 쉬었어도 그 버릇은 제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더군요.
‘제약산은 전에 다니던 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고,
지난 주말의 시험산행인 5시간짜리 청계산도 결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더부룩한 속에 들어간 컵라면이 기어코 뱃속을 휘져어 버립니다.


진불암으로 오를 요량으로 산행을 출발합니다.
앗불싸!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불암으로 가라는 이정표가 없군요.
그렇다고 돌아설 수도 없고...
가다 못가면 돌아올 샘으로 일행의 뒤를 쫒습니다. 이게 불행의 시작...


‘돈 냈어요?’
이정표도 만들지 않고 입장료를 받는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돌아온 조이님의 충고입니다.
난 그녀가 하는 모든 불평에 맞장구를 쳐주는데... 조금 서운합니다.


금강폭포를 지나자 서서히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서상암 무렵부터 불편하던 아랫배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으휴~ 이래저래 말썽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결, 약간은 시원해졌습니다. ᄒᄒᄒ


서상암을 지나서는 오기... 의외로 제가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학창시절 2등으로 밀린게 억울해서 다시 찾을 때까지 잠자는 것을 거의 포기했을 정도로...
후미담당 연신내가 간간히 기다리며 호흡을 맞춰주네요.
처음에는 컵라면에 채한 처자 덕분에 조금 덜 미안했지만, 회복된 뒤엔 체면이 영...
거기에 더하여 모든 분들이 천왕봉 어림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무릎이 상한 난 하산길이 지옥입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온 억새밭... 이게 아닙니다.
2년전에 들렀을 때 그 넓고 광활하던 곳이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조그만 움막이 있던 억새밭엔 규모가 커다란 주막이 이미 여러곳입니다.   불법영업...
그래도 우린 그 주막에서 막걸리 서너병 시켜놓고 아침식사를 합니다.   아이러니...
막걸리 두잔인데 그만 마시라는 조이님의 잔소리...
어? 편해서 인연을 맺었는데???? 내 기대는 이미 빗나간지 오래입니다.


암릉으로 이어진 재약산 정상을 지나 고사리분교까지는 지루한 내리막길입니다.
조이님과 도란도란 얼마전 구입한 홍천 땅에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지었다, 부수었다...
과수원도, 물론 채마밭도 꼭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평수가 자꾸 변하는 것은 ‘여자니까?’
‘아무나 부담 없이 찾아와 쉬었다갈 수 있는 공간’
‘찾아오는 사람은 내 좋아하는 술 한병 들었으면 되었고, 돌아갈 땐 무공해 채소 두어단...’
결국 우리 둘만의 공간이 아닌, 아는 이들이 찾기 쉬운 곳이면 된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천려일실...
층층폭포로 내려가도 곧 원래도로와 만난다는 얘기만 믿고 내려선게 불행의 시작입니다.
경치가 좋으면 뭐합니까? 무릎이 아파 죽겠는데... 그 험한 길이 가도가도 끝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가면 층층폭포입니다. 힘내세요’
숨이 턱에 차서 산을 오르는 여자분들의 애절한 물음엔 이렇게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일행인 듯한 남자분의 대답...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믿지 맙시다’
다 왔다는 하산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쉬엄쉬엄 보조 맞춰준 모든 님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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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빌딩 숲에 갇혀
늘상 일상에 쫓기는 난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을은 남의 일이었답니다.


오색 단풍으로 타들어가는 산...
빨간 연지처럼 곱게 물들은 감도 기껏 TV 화면 아니면
빛 바랜 앨범을 뒤적여야 만날 수 있었지요 ‘산과 사람들’을 찾기 전 까지는....


나무들이 이파리에 공급하는 수분과
영양분을 비밀리에 줄여가던 어느 날, 난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마주 보이는 관악산 자락을 보며 부르짖었답니다. "오매 단풍 들었네."


어느 해부터 가을을 잃어버렸을까요.
아니 실제로 잃은 것은 마음의 여유 아닐까요?
곧바로 짐챙겨 ‘산과 사람들’을 찾은게 두해 전 어느 가을날 적상산이었지요.


추억의 적상산을 떠올리며 따라나서 본 설악산행...
가을하면 설악산인데 거기다 공룡능선이라니 그냥 넘길 수 있겠어요?
갑자기 떨어진 일로 일요일 출근이 불가피한데도 ‘배째라’는 식의 막가파로 밀고나갔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죽어라 올라갔고... 목숨걸고 인파를 헤집었지만 그결과는 우중산행...
언제나와 같이 설악은 날 반기지 않더군요. 난생 첨으로 무릎이 아파 죽는줄 알았습니다.
끝내 ‘내 다시는 공룡 안 탄다. 비선대 내리막길이 있는 한’을 내 뱉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이 담소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분들이 있어 좋았고,
만화에서만 보던 이마에 도깨비뿔을 단 아가씨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하산길... 단풍나무가 하나 둘 보이는게 가을이 스쳐간 자리에 단풍이 들어와 있나봅니다.
산허리... 제몸을 태워 산을 밝힌 나무들이 앞다퉈 노랗고 붉은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이파리 끝부분부터 빨갛게 물들어가는 활엽수....
붉은 단풍잎은 때론 꽃보다 곱고 화려합니다. 꽃은 아무리 고와도 산을 물들이진 못하거든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나 거세지는 않습니다
비구름 사이로 칼날 같은 돌봉우리들이 순간순간 비칩니다.
멀리 백두대간이 파도처럼 다가오고, 젖어있기는 하지만 바람은 참으로 깨끗합니다.


그 깨끗한 바람 때문인지 아님 선홍빛 단풍이
빗속 나그네들의 가슴까지 확확 붉은 기운을 댕겨놓았는지 다들 즐겁게 떠들어댑니다
티없이 맑게 웃는 그들의 얼굴에선 한줌의 번뇌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오늘은 월요일...어제 땡땡이 친 여파가 제법 큽니다.
경위서... 참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인데... 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거야 원~ 자판 두드리는 와중에도 이번주 백두 하늘길이 머리를 꽉 채우는 건
아마 난 산에 미쳐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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